가미카와 요코
덤프버전 :
분류
|
{{{#!wiki style="margin: 0 -10px"
|
현직 및 역임한 직위 |
|
일본국 제94·95·98·99·103대 법무대신 | |||||||||||||||||||
일본국 제152대 외무대신 가미카와 요코 上川陽子 | Kamikawa Yoko | |||||||||||||||||||
출생 | 1953년 3월 1일 (71세) | ||||||||||||||||||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 |||||||||||||||||||
현직 | 제49대 중의원 의원 제152대 외무대신 | ||||||||||||||||||
재임기간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저출산 대책·남녀 공동참획) | ||||||||||||||||||
2007년 8월 27일 ~ 2008년 8월 2일 | |||||||||||||||||||
제94·95대 법무대신 | |||||||||||||||||||
2014년 10월 21일 ~ 2015년 10월 7일 | |||||||||||||||||||
제98·99대 법무대신 | |||||||||||||||||||
2017년 8월 3일 ~ 2018년 10월 2일 | |||||||||||||||||||
제103대 법무대신 | |||||||||||||||||||
2020년 9월 16일 ~ 2021년 10월 4일 | |||||||||||||||||||
제152대 외무대신 | |||||||||||||||||||
2023년 9월 13일 ~ 현직 | |||||||||||||||||||
링크 | | | | ||||||||||||||||||
|
1. 개요[편집]
일본의 現 외무대신. 자민당 소속으로, 시즈오카현 제1구 중의원, 법무대신 등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에서 태어나 시즈오카 후타바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수를 거쳐 도쿄대학에 진학, 교양학부 국제관계학 전공을 졸업했다. 졸업 후 산와종합연구소(現 미쓰비시종합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으며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에 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잠시 맥스 보커스 연방상원의원의 정책 스태프로 근무한다. 당시 일본인 여성으로서는 최초 케네디스쿨에 입학한 것이었다. 정계에 케네디스쿨 동문으로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경제안보담당대신, 하야시 요시마사 전 외무대신,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 등이 있다. 이후 귀국하여 1988년 12월 정치 컨설팅 회사인 주식회사 글로벌링크종합연구소를 차리고 대표이사를 맡는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일본의 정치에 개혁 필요성을 느꼈기에 정치에 투신했다.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신의 출신지가 속한 시즈오카현 제1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나 낙선. 이후 자민당에 입당하지만 공천을 못 받았는지 2000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자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 1년 후 자민당에 복당했으며, 이후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하기 전까지 중의원으로 당선된다. 아베 신조 1차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저출산 대책, 남녀 공동 참여 담당) 등을 역임했다.
2009년 한 차례 낙선한 이후 3년 뒤인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한다. 복귀 후 아베 신조 2차 내각에서 공직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한 달 만에 사퇴한 마쓰시마 미도리의 후임으로 법무대신을 역임한다. 그 후 1년 뒤인 2015년 경에 퇴임하나 2017년에 다시 법무대신으로 임명되어 1년 간 다시 법무대신을 역임한다.
법무대신을 2번째로 역임하던 시기에 이치카와 4인가족 살인사건의 범인 세키 데루히코의 사형과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사형을 집행했다. 가미카와는 이들을 포함해 법무대신 역임 시절 총 16명의 사형수들의 사형을 집행했는데, 이는 13명의 사형을 집행해 ‘사신’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하토야마 구니오 대신보다 더 많다.[1]
이러한 대규모의 사형집행은, 헤이세이 시대의 잔혹한 테러는 헤이세이 시대에 끝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법무대신 퇴임 후 자민당 1억 총활약 추진 본부장과 시즈오카현련 회장을 맡는 등 당직을 맡다가 스가 요시히데 내각에서 또다시 법무대신에 임명되면서 법무대신을 3번이나 역임하게 되었다.
자신의 파벌의 회장인 기시다 후미오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자, 그간 법무대신을 여러 차례 맡으며 안정적인 능력을 보여준 데다 여성의 중책 기용이라는 이미지도 챙길 수 있는[2]
역대 내각관방장관 중 여성은 제1차 가이후 내각의 모리야마 마유미 단 한 명이다.
실제로 아베-스가 정권의 여성 국무대신들 중에서는 압도적인 안정감을 보여줬다. 오부치 유코나 마쓰시마 미도리, 이나다 도모미처럼 정권에 부담을 주는 대형 사고를 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호리우치 노리코나 노다 세이코처럼 여성 TO, 즉 오직 균형감만을 위해 짧게 기용된 경우가 많은 여성 대신들과 다르게, 가미카와는 법무대신에 무려 3차례 기용되며 법무행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능력 면에서 평이 좋은 여성 중진에 총리 파벌이기도 하니 관방장관 기용 가능성도 마냥 헛된 말이 아니었다.
이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7선에 성공하였고 자민당 간사장대리로 취임했다.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내각에 외무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일본에서 여성 외무대신은 사상 3번째이며, 제1차 고이즈미 내각 시절의 다나카 마키코, 가와구치 요리코 이후 21년만의 일이다.
3. 정치적 성향[편집]
아사히 신문 · 도쿄대 다니구치 연구실 공동 조사 2021년 중의원 선거 후보자 정보 - 가미카와 요코 | ||
이슈 | 질문 | 답변 |
개헌 | 헌법 개정에 | 조금 찬성[4] 개정해야 할 항목은 '자위대 명기', '지방공공단체의 권한강화', '긴급사태에 관한 조항의 신설'이라고 답했다. |
| ||
동성혼 | 동성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 무응답 |
부부별성 | 부부가 원하는 경우, 결혼 후에도 부부가 각각 혼전 성을 유지하는 것을 법률로서 인정해야 한다. | 중립 |
가족관 | A: 부부와 여러 아이들이 갖추어져 있는 형태가 가족의 기본이다. B: 한부모 가정이나 사실혼 등 가족의 형태는 다양한 것이 좋다. | 무응답 |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 기간 | 비고 |
[[무소속| 무소속 ]] | 1996 | 정계 입문 |
| 1996 - 2000 | 입당 |
[[무소속| 무소속 ]] | 2000 - 2001 | 무소속 출마로 탈당 |
| 2001 - | 복당 |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 선거 종류 | 정당 | 지역구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6 |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무소속| 무소속 ]] | 시즈오카 1구 | 26,828 (11.86%) | 낙선 (5위) | |
2000 |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58,358 (24.23%) | 당선 (1위) | 초선 | ||
2003 |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 67,437 (30.21%) | 낙선 (2위) 석패율제 당선 | 재선 | |
2005 |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99,702 (42.18%) | 당선 (1위) | 3선 | ||
2009 |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96,096 (37.59%) | 낙선 (2위) | | ||
2012 |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81,278 (36.18%) | 당선 (1위) | 4선 | ||
2014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89,544 (44.90%) | 5선 | |||
2017 |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96,500 (46.88%) | 6선 | |||
2021 |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01,868 (52.35%) | 7선 |
6. 기타[편집]
-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2001년과 2007년에 한일 국회의원 간담회 등이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으며, 2007년에 시즈오카 시내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400주년 심포지엄에도 참석해 “대화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면 과거의 잘못을 극복할 수 있다”라고 연설했다.#
7. 둘러보기[편집]
내각 각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도카이 지방의 국회의원 기후현, 시즈오카현, 아이치현, 미에현 | ||||||||||||||||||||||||||||||||||||||||||||||||||||||||||||||||||||||||||||||||||||||||||||||||||||||||||||||||||||||
| ||||||||||||||||||||||||||||||||||||||||||||||||||||||||||||||||||||||||||||||||||||||||||||||||||||||||||||||||||||||
{{{-1 {{{#fff 홋카이도 · 도호쿠 · 기타칸토 · 미나미칸토 · 도쿄 · 호쿠리쿠신에쓰 · 도카이 · 긴키 · 주고쿠 · 시코쿠 · 규슈-오키나와 }}}}}} |
[1] 이러한 대규모의 사형집행은, 헤이세이 시대의 잔혹한 테러는 헤이세이 시대에 끝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2] 역대 내각관방장관 중 여성은 제1차 가이후 내각의 모리야마 마유미 단 한 명이다.[3] 실제로 아베-스가 정권의 여성 국무대신들 중에서는 압도적인 안정감을 보여줬다. 오부치 유코나 마쓰시마 미도리, 이나다 도모미처럼 정권에 부담을 주는 대형 사고를 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호리우치 노리코나 노다 세이코처럼 여성 TO, 즉 오직 균형감만을 위해 짧게 기용된 경우가 많은 여성 대신들과 다르게, 가미카와는 법무대신에 무려 3차례 기용되며 법무행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능력 면에서 평이 좋은 여성 중진에 총리 파벌이기도 하니 관방장관 기용 가능성도 마냥 헛된 말이 아니었다.[4] 개정해야 할 항목은 '자위대 명기', '지방공공단체의 권한강화', '긴급사태에 관한 조항의 신설'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