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최근 편집일시 :

성(性)과 제도

[ 펼치기 · 접기 ]
가정과 제도
결혼
귀천상혼 · 난혼 · 동성결혼 · 동질혼 · 만혼 · 부부 · 시민결합 · 생활동반자법 · 이혼 · 일부다처제 · 일부일처제 · 일처다부제 · 매매혼 · 조혼 · 졸혼 · 파혼 · 혼전임신 · 혼외출산 · 국제결혼
가족
가족구성권 · 가족사회학 · 건강가정기본법 · 다문화가정 · 혼전 동거 · 시험관 아기 · 여성폭력방지기본법 · 유사가족 · 이주배경인구 · 임신 · 원하지 않는 임신 · 입양 · 한부모 가족 · 딩크족 · 청소년 부모
관련 문서
틀:성과 범죄 · 간통 · 불륜 · 낙태 · 근친상간 · 혼인빙자간음죄
성 문화
성행위
틀:체위와 성교
성인물
틀:성인물
성산업
틀:성산업
성 이념
주요 개념
몸 긍정 · 상호교차성 · 성교육 · 성별 · 성소수자 · 성소외자 · 성 역할 · 성 정체성 · 성차별 · 성적 지향 · 섹슈얼리티 · 양성평등 · 적극적 우대조치 · 젠더 · 젠더 감수성 · 젠더 권력 · 퀴어 이론
여성주의
(페미니즘)

틀:페미니즘 · 틀:대한민국의 여성정책
대한민국의 여성인권단체 · 여성들의 행진 · 여성주의 치료 · 여성 우월주의 (여존남비) · 자유의 횃불 · Title IX
남성주의
(매스큘리즘)

가부장제 · 남성 우월주의 (남존여비) · 탈갑옷 운동
관련 문서
남성학 · 여성학 · 퀴어학 · 대한민국의 젠더 분쟁 · 성 관련 비하표현 (성소수자 비하명칭) · 생리휴가 · 양성평등채용목표제 · 양성평등연대 · 여성 징병제·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 자국 이성 혐오 · 펜스 룰 · My Stealthy Freedom · World Hijab Day · Bill C-16 · MGTOW · 레드필



1. 개요
2. 대한민국의 가부장제
3. 역사적 흐름
3.1. 과거의 가부장제
3.2. 현대의 가부장제


1. 개요[편집]


/ patriarchy

한자를 그대로 풀어쓰면 가정(家) 아비(父) 연장(長)자 제도(制)이다.

이는 관습적•법률적으로 남성 연장자가 가정을 이끌어가는 제도를 뜻한다.

부권제(父權制)라고도 한다.

가부장이 가족성원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지도·통솔하는 가족형태이다. 농경산업의 시대를 지나 점차 개인주의의 사회로 빠르게 변화해가며, 현대에는 남성만의 통솔력 및 독점적 힘이 약화 되어가는 중이다.

2. 대한민국의 가부장제[편집]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교적 가부장제에 대한 의식이 강고하지 않았다. 애초에 남녀가 결혼을 하면 남자가 처가에서 일정기간 살았던게 우리 민족의 오랜 혼인 풍습이었는데[1][2]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확고하게 정착된 역사는 얼마 되지가 않은 것이다.

사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인 양반층은 여성의 학문 공부를 적극 장려했으며, 부부간엔 서로 존댓말을 썼다 한다. 즉 여성 차별은 현대의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실 양반 집안에선 아들 못 낳는다 해도 부인/며느리를 잘 구박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처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며, 아들 항렬의 친척을 양자로 들이면 해결될 문제였으니.

지금 한국인의 인식에 박힌 가부장제는 변질된 유교적 전통의 발현으로, 양란발발, 삼정의 문란으로 발생한 장기 경제침체로 인해 백성들이 가난에 시달리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원리주의 퇴행의 길을 일제강점기,6.25 전쟁까지 거치면서 밑바닥까지 추락한 끝에 지금의 형태로 고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일본의 경제와 사회상을 일상의 롤모델로 받아들이면서 일부 일본의 가부장제가 섞여들어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가 어려우면 원리주의 퇴행이 쉽게 발생하고 인권이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가부장제가 강고해지기 쉽다.

어찌 됐건 조선말+일제의 영향으로 인해 강력한 가부장 문화가 대한민국에 뿌리내렸고,외환위기 전까지 이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기존의 역할분담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다보니 한국 사회도 변화해 가고 있다.

파일:external/s23.postimg.org/image.jpg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238243_article_99_20161117090129.jpg
출처: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기사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 더 없애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한국 페미니스트의 대다수는 기승전가부장제 탓을 하기 때문에 가려서 들을 필요가 크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가 가부장제탓이라고 주장하는데 심지어 연인, 부부사이도 아닌 그냥 동등한 남녀 간의 의견갈등과 여성에게 불리하기만 하면 모두 가부장제 때문이라고 하는 수준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성의 집안 권력이 지나치게 낮아졌는데 가부장제 의무만 남아있는 사회적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시대가 이렇게 바뀌면서 아버지는 가정 내 권력은 잃어가고 점차 가족에게서 소외되면서 그저 '돈 벌어다주는 기계'로 책임만 강요당하는 현실에 절망하며 생활비를 내지 않겠다는 갈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양상으로 바뀌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기사

그것과 별개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다르게 현재 20대 남성 83.4%가 '공평한 가사분담'을 지지한다. 출처기사. 이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가부장제를 경계한다는 의미이다.

3. 역사적 흐름[편집]



3.1. 과거의 가부장제[편집]


농업사회에서는 땅을 일굴 노동력 때문에 남성의 힘이 강해졌다고 보통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도 상당부분을 농사일, 혹은 남편의 본업에 같이 참여하였다. 이에 더해 남성 또한 가사노동에 자주 참여하는 등 분업의 경계는 상대적으로는 모호했다. 이는 한 명이라도 더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던 자급자족 사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힘이 필요한 일에는 집안 남성이 필수적이었다. 과거엔 사회 제도가 정비되어있지 않고 치안이 좋지 못했기에, 집단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남성의 신체력에 상당부분을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신체적 요건의 차이는 남성에게 권력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그만큼, 남성에게는 가족, 나아가 사회 집단을 보호할 책임이 생기게 된다.

허나 이런 남성의 권력은 시간이 지날 수록, 사회.경제 제도가 정비되고 정부의 통제력이 강해질 수록 약해졌다. 한 마을에 모여살며 남성들이 치안을 담당하고 의견을 조율하던 과거와는 달리,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들며 집단촌이 점차 해체되기 시작했고, 도시로 모여든 주민들은 주변 남성들이 아닌, 국가의 경찰력과 사법력으로 보호받게 되었다. 허나 가부장제가 쉽게 해체되진 않았다. 해가 지면 집에 들어왔던 농본사회와는 달리, 산업화 이후엔 남성이 오랜 시간을 공장에서 일하게 되며 집에 밤 늦게 들어오게 된 것이다. 결국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식으로 분업화되었고, 이에 따라 혼자 일하는 남성이 오롯이 경제력을 쥐게 되었다. [3] 물론 이 또한 여성의 사회,경제,정치에 참여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점차 해체되었으며, 종국에 21세기에는 가부장제가 '구시대의 유물' 취급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통해 알 수 있듯, 가부장제 = 여성차별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가부장제는 차별이 아닌, 구시대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체재였을 뿐이다. 즉, 가부장제 자체가 여성차별적이거나 바로 여성차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이와 여자들(아녀자)'[4]이라는 표현은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표현이라 봐도 좋다

단, 여성이라고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과거, 권력은 주로 신분과 재산을 따라갔었다. 높은 신분이거나 재산이 많은 경우 여성도 권력을 가진 경우가 존재한다. 다만 상술했듯이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잘 정비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신체력이 약한 여성이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별로 없는데다가 모든 활동에 신체력이 많이 필요하던 과거에는, 남성에 비해 권력을 유지하기 더 어려운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맨몸뚱이 빈털터리로 무연고자가 살아가야 할 때(전근대 사회에서 재난이나 전쟁, 불상사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밭을 갈거나 산이나 숲, 강에서 먹을 것을 찾거나 누구 밑에 들어가 일을 해주며 살거나 어떠한 생존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단독 생존을 시도하려면 노동력이 높은 남성의 생존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결국에 여성이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면 상호보호를 보장하는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거기다 가부장제의 조건은 일단 남자는 자기가정을 부양할 능력을 가져야한다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나온 것처럼 가족부양도 안하고 술과 도박이나 계집질에 빠진 주제에 가장대우 받으려고 하는 것은 가족을 포함한 모두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단지 남의 집안일에 크게 간섭하는 것을 꺼리기에 터치를 안하는 것뿐이다.

가부장이 되는 남성은 집안에 속해있는 모든 재산(토지, 동산을 포함)에 대해서 그 처분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며, 가문의 재산권은 가부장에게 속해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가부장은 가문 내부에서 아내와 자녀 등 가문의 구성원에 대하여 인신구속권을 가지며, 결혼 등으로 가문을 나갈 때는 미리 가부장의 허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부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무단 결혼은 간통과 같이 취급된다. 노예가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구성원을 노예로 파는 것도 용인된다.[5] 또한 중국에서도 1911년 중화민국이 성립하기 전에는 법률에 의해서 가부장이 자식들을 노비로 팔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6] 가부장은 인신구속권에 따라서 구성원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처벌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처벌은 많은 경우 폭력적이다. 처벌을 내릴 권한은 법률적으로 인정되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받는다. 극단적인 경우, 가부장은 구성원을 살인하는 것도 허용받는 생살여탈권까지 가진다. 아프간의 탈레반들이 바로 이런 극단화된 가부장제의 가장 명확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장은 (집단의 위기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맡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군대의 사령관을 떠올려 보면, 사령관은 부하인 군인들을 지킬 의무를 가지지만 동시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더 많은 부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소수의 부하들에게 사망확률이 지극히 높은 임무를 강요할 권한 역시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과거 여성들이 가부장제로 인해 겪은 대표적 폐단이 남아선호사상이다. 과거 사회에서 여성은 내부 활동이, 남성은 외부 활동이 잦았기에 남성이 대다수의 책임을 부여받게 되었다. 때문에 관직에 오르거나 높은 자리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따라서 집안의 대를 잇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남성의 몫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에서는 변질•심화된 남아선호사상이 80-90년대의 여아 낙태 문제 같은 사회적으로 매우 좋지 못한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98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부계혈통주의였으며, 기혼녀는 호주제로 인해 남편 호적에 들어갔다. 심지어 남편이 사망 시 장남이 호주가 되어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호적 아래 들어가는 이상한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7]

한편 동성애남색을 강하게 혐오하는 종교[8]가 영향력이 강한 지역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가부장제가 매우 심한 지역들이라는 것이다.[9]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가부장적이면서 동성애가 만연한 고대 로마와 그리스, 중세 일본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는,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및 문화권에서는 게이나 레즈비언뿐 아니라 남녀간의 결혼을 통한 성행위 이외에는 전부 안 좋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10][11]


3.2. 현대의 가부장제[편집]


현대 사회는 정부에 의한 치안의 강화, 교통과 통신의 발달, 그리고 누구든지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지식산업 위주로 개편되면서 여성도 사회생활하고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식산업 위주의 개편이라 함은 과거에 비해 "남성의 신체적 우월함", "남성만이 관직에 오르는 사회적 시스템"이 사라지면서 그 존재의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단 뜻이다.[12]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가사노동의 난이도가 과거에 비해 감소하였다.[13] 현재 대표적인 논란거리는 맞벌이부부의 가사노동이나 육아의 분담 문제로 이건 가정마다 다를수 밖에 없는 문제다 보니 토론에 대해서는 제대로 확답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현대는 완전히 육체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세대적으로도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대부분 남성이 가정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이나 청장년층은 서서히 맞벌이로 바뀌어가고 있는 등 여러모로 과도기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대 후반의 대세가 된 남성혐오페미니스트들, 기성세대 정치인,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되어가는 젠더 문제 등이 짬뽕이 되어 성별에 상관 없이 함께 타파해야할 과거의 잔재라는 시점에서부터, 오직 여성만이 가부장제의 피해자라거나 반대로 가부장제야말로 가장의 권한, 가정 유지를 위한 문화라는 등의 주장까지 난립하고 있다.[14][15]

이런 인간의 생산구조 변화를 통해 여성과 남성의 노동력 격차가 줄어들고, 격차가 줄어든 만큼 수요가 늘어나면서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단계적으로 여성의 인권은 개선되기 시작했다. 즉, 과거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처럼 힘든일 위주의 생산구조가 중심인 나라는 남성 우월주의가 유지되고, 고도의 산업화,정보화,지식화 산업사회가 된 나라들(주요 선진국들)의 여성인권은 크게 상승했다. 특히 이슬람 세계에서 심각할 정도로 여성차별이 만연한 것은 이슬람이 퍼진 곳이 주로 사막이라 생산조차 되지 않는 약탈경제로 대다수의 나라와 민족이 굴러갔기 때문이다. 힘으로 뺏거나, 힘으로 독차지하는(자원의 저주도 본질은 독점이다.) 약탈경제의 생산구조에서 힘 센 남자들이 절대권력을 갖는 것은 필연적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12-22 18:51:14에 나무위키 가부장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09 12:30:27에 나무위키 가부장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보통 처가에서 3년정도 살면서 일을 해주고 그 후에 시집으로 와서 살았다. 딸이 출가해서 사라지는 노동력을 보상해준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집에 아들이 많고 처가에는 아들이 없으면 합의하에 처가로 넘어가서 대를 잇는 경우도 있었다.[2] 무려 고구려 시대부터 관련기록이 있다. 즉 데릴사위 전통의 시작을 아무리 늦게 잡아도 기원전인 셈이다. 고려시대 문벌귀족과 조선 중기까지의 양반도 당연히 그렇게 했다. 여자가 처음부터 남자의 집으로 들어와 사는 문화는 17세기 이후에야 나타난다.[3] 이런 외벌이 현상은 미국의 경우 20세기 중반에 가서야 일반적인 모습이 된다. 일하는 남편, 가정에 충실한 아내의 스테레오 타입은 미국의 50년대 중산층 가족을 대표하는 이미지.[4] 이는 권력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의무의 대상으로서도 압력이 가해지는 표현이다. 사고나 재난시 '여자와 아이들 먼저' 탈출시킨다는 서양의 관념이나, 과거로 돌아가서 '여성(과 과부), 아이들을 지키는 기사도' 라는 로망적 계율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5] 로마의 십이표법을 보면 "아버지가 자식을 3번 노예로 팔면 자식은 아버지의 지배권에서 해방된다."는 조항이 있다. 바꿔 말하면 3번씩이나 노예로 팔 수 있다는 거다.[6] 중국의 오래된 속담인 "아버지가 죽으라고 명령하는데, 자식이 이를 거부하면 불효자식이다."도 이를 반영한다.[7] 다만 이러한 행보는 근대 사회에 들어서며 생겨난 폐단들이지, 과거 사회에서부터 쭉 이어져온 현상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양반가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평민들은 집안의 대를 이을 이유가 없었고, 더욱이 호적•족보가 없없기 때문에 이같은 폐단은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8]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9] 실제로 성소수자 권리가 비교적 잘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은 성평등 의식 역시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10] 사실 고대 그리스의 영향으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큰편이 아닌 고대 로마(기독교 도입 전)조차도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고대 로마에서는 아버지는 자식의 생살여탈권까지 가지고 있었고, 로마 시민남자답게 박을지언정(penetrate) 박혀서는(penetrated) 안되는 존재였다. 즉, 고대 로마에서 황제원로원 의원 등 높으신 분들동성애자인 경우 전부 다 포지션이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가 특히 그러했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경우 20대 초 청년시절에 술라숙청을 피해 비티니아에 망명해 있으면서 비티니아 왕 니코메데스 4세과 관계를 맺으며 바텀 역을 했다는섹스 스캔들이 퍼진 이유만으로 정계활동 내내 카이사르의 약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놓고 로마 시민 자신이 바텀임을 주장한 결과가 어땠는지는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최후가 이를 말해준다.[11] 실제로 로마 제국에서든 수메르 신화에서든 "남자로서 삽입 당하는 것"을 그 자체로 사회적 죽음인 것처럼 이야기하며, 수메르 신화에서는 자기가 남자를 강간해 놓고서 "이 남자는 삽입 당했으므로 자유민이 아니다"라고 언플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12] 어디까지나 과거에 비해서다. 여전히 남성의 신체적 우월함이 요구되는 직종은 매우 많다. 물론 현대에는 안정적으로 몸을 덜 쓰며 편하게 머리 굴리면서 하는 고소득 직종이 몸을 혹사시키는 고소득 직종보다 압도적으로 인기가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일례로 주변에서 특히 체력 좋다고 소문난 남성조차 힘들고 고된 일보다는 편한 일을 선호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생각해보자.[13] 과거에는 가사노동을 전문적으로 해줄 사람이 필요 했지만 현대에 와선 1인 가구로 생활이 가능해졌다.[14] 그래서 최근에 가부장제와 남성혐오페미니즘으로 인한 피해자가 1990년대생~2000년대 중반생인 남성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15] 그러나 면밀히 보면 남자도 가부장제의 피해자다. 극단적으로 모든 권한과 일이 남자에게 몰렸던 부작용인데 권한과 일이 여성에게 나눠지는 과정에서 육체적으로 힘들거나 생명이 위험한 일은 같은 직장이라도 레이디퍼스트, 기사도, 성별효율 등 이유로 남자가 주로 하게 된다. 여자도 하는 것은 가능하나 몇천 년 동안 각인된 인식인데다 각자 환경과 의견이 달라 현재 명확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