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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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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前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2. 선수 시절[편집]
단국대 시절, 1년 선배인 국가대표 좌투수 김홍집의 그늘에 가려 4년 내내 이렇다 할 활약을 벌이지 못했으나, 1994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대구·경북 지역에 뛰어난 선수가 없었던 덕에[2] 운좋게 1차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낮은 기대치를 반영하듯 계약금은 1차지명 치고는 초라한 3천만원에 불과했다.[3] 그래도 좌완투수라서 당시 삼성의 취약점[4] 을 메울 수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1군 통산 기록은 30경기 ERA 14점대로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는데, 불펜에서 몸을 풀 때는 최고 153km/h를 찍을 정도로 실제로는 빠른 공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등판 전에는 그렇게나 엄청난 강속구를 던지다가도 마운드 위에 올라갔다 하면 공이 빌빌댔다. 그래서 불펜에서 몸 풀 때만 잘한다는 의미로 '불펜 최강', '불펜 특급'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그밖에 이 투수에겐 한 가지 특별한 경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만야구 진출. 삼성 라이온즈와 1차지명으로 계약한 후 삼성이 1년간 실전 훈련 차 대만으로 파견했다고 한다. 타이완의 쥔구어 베어스(俊國熊隊)로 와서 1년간 경험하다 다시 삼성으로 건너간 케이스. 그러나 쥔구어 베어스에서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중계로 첫 등판에서 2이닝동안 4실점을 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고,네 경기에 출장하여 세 경기를 선발로 나왔는데 18.1이닝을 던져 승리없이 2패, 평균자책점 6.87만 기록하며 물러났다.
3. 은퇴 후[편집]
은퇴 후 개인사업을 하다가 2015년 부산공고 투수코치를 맡으면서 야구계에 복귀했고, 현재는 수성구에서 야구 레슨을 하고 있다고 한다.
4. 연도별 성적[편집]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
그러나 없다)
5. 여담[편집]
- 성씨가 감씨로 정말 특별한데, 실제로도 감사용과 함께 프로야구 역사상 단 둘뿐인 감씨이다. 둘 모두 좌투좌타 투수이고 팀에서 별 볼일 없는 투수였던것도 같다.
감씨는 야구선수가 적성이 아닌가보다그러나 영화빨로 인지도는 감사용 쪽이 훨씬 높다.[5]
6. 관련 문서[편집]
[1] 1990학번[2] 당시 2차지명에서 선택받은 TK 출신 선수는 감병훈의 경북고 동기 안경환이 유일했다(...)[3] 참고로 2차 1라운더인 김한수의 계약금이 4천 5백만원, 2차 2라운더인 임채영의 계약금이 4천만원, 2차 3라운더인 김태균의 계약금은 2천 5백만원이었다. 2차 신인 지명이었다면 2~3라운드 정도에 지명받을 선수였다는 것.[4] 당시 삼성 좌완투수로는 김태한과 성준이 있었으나 사실상 이 둘이 전부였고, 그러한 점 때문에 1995년 시즌 중에는 트레이드로 쌍방울의 최한림을 영입했다.[5] 심지어 감(성씨)문서에 이 사람은 없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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