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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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안군 독립운동가, 강기형
2. 울산시 독립운동가, 강기형



1. 천안군 독립운동가, 강기형[편집]





성명
강기형(姜琦衡)
생몰
1868년 1월 25일 ~ ?
출생지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강기형은 1868년 1월 25일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3.1 운동이 벌어질 때 광명학교(光明學校) 교사였다. 1919년 3월 20일, 그는 학생, 주민들을 이끌고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지도했다. 어전에 양대리에서 시작한 시위 행렬은 하장리 입장시장으로 향하다가 천안헌병대와 충돌해 남자 40명, 여자 10명이 체포되었다. 시위대는 입장시장에 이르러 700여 명으로 불어났고,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계속하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해산되었다. 이후 강기형은 체포되어 1919년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강기형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울산시 독립운동가, 강기형[편집]



성명
강기형(姜祺馨)
생몰
1876년 4월 17일 ~ 1940년 7월 27일
출생지
경상남도 울산시 상남면 길천리
사망지
경상남도 울산시
추서
대통령표창

강기형은 1876년 4월 17일 경상남도 울산군 상남면 길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2일 울산군 언양만 남부리 시장에서 천도교 유지인 이무종(李武鐘), 이규인(李圭寅), 이성영(李成榮)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고 태국기를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으며, 시위 군중의 선두에서 일본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동년 5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울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0년 7월 27일에 사망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