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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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康津郡
Gangjin County





군청 소재지
강진읍 탐진로 111 (남성리)
광역자치단체
전라남도
하위 행정구역
1 10
면적
500.91㎢
인구
32,748명[1]
인구밀도
65.57명/㎢
군수


강진원 (3선)
군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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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석[2]


1석[3]
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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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수[4]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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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남

상징
군화
동백꽃
군목
은행나무
군조
까치
지역번호
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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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캐릭터 강도령과 진낭자
1. 개요
2. 역사
2.1. 인구
4. 경제
4.1. 금융
5. 관광
5.1. 관광지
5.2. 축제
5.3. 먹을거리
5.4. 특산물
7. 군사
9. 사건 사고
10. 여담
11. 자매도시
12. 출신 인물



1. 개요[편집]



파일:강진군청.jpg

강진군청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탐진로 111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 군의 산업 비중은 1차 산업이 71%인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다. 군 내의 섬은 총 8개인데, 사람이 사는 섬은 강진만에 있는 가우도 하나다. 서쪽으로는 해남군, 북쪽으로는 영암군, 동쪽으로는 장흥군과 접한다.

지도에서 보면 장흥반도 서부와 해남반도 동부를 반반씩 차지하여 강진군의 형상이 지리적으로 강진만을 중심으로 좌우로 갈라져 있고 한가운데에 있는 가우도 출렁다리를 이으면 대문자 A 혹은 바지 그리고 이빨과 닮았다. 강진군 지자체 측에서도 이것을 이용해 강진군 홍보에 A를 밀고 있다. 2018년 강진 관광 홍보 슬로건을 'A로의 초대'라고 지은 이유도 같다.

2. 역사[편집]


강진이라는 지명은 도의 강과 의 진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백제 시대에는 지금의 병영면에 있던 도무군(道武郡)과 강진읍에 있는 동음현(冬音縣)이 있었다.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 신라 경덕왕 때 전국 지명을 바꾸면서 각각 양무군(陽武郡)과 탐진현(耽津縣)이 되었다. 양무군이 이후 고려시대에 도강군(道康郡)으로 바뀌었다. 다른 설로는 역으로 강진과 탐라(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따서 탐진이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는데 전후 사정으로 봐서는 탐라가 탐진에서 생긴 게 맞는 것 같다고.[6] 그래서 강진을 탐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 명종 2년(1172년) 이곳에 감무를 두어 행정과 병사를 병무하게 하면서 전라도 남해안 지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전라북도 부안군과 함께 한반도의 고려청자생산 중심지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렵부터다. 강진 도암면 만덕산에 있는 백련사는 고려의 무신 집권기 당시 요세 스님이 지눌의 영향을 받아 백련 결사를 제창한 것으로 역사에 등장하기도 한다.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이르러 광주목에 있던 전라도 병영을 지금의 병영면 자리에 옮겨 만들었고 이때 비로소 강진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즉 조선시대에는 지역 군 사령관의 주둔지였다는 뜻이다. 오늘날로 치면 군 사령부가 있는 군사도시의 성격이 강했다고 보면 되겠다. 실제로 을묘왜변 당시에는 이 지역이 격전장이 되었기도 했다.

한양에서 멀고 워낙에 한적한 동네였기에 조선시대 때 유배를 당해서 이 지역으로 오는 경우가 꽤 많았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대표적 인사가 조선이 낳은 천재 다산 정약용. 그가 유배 생활 중에 만덕산에 지었던 다산초당은 현재까지도 강진을 대표하는 유적지로 명망이 높다.

삼국시대에 육지에서 탐라에서 키우는 조랑말의 식량을 마량으로 거쳐간 후 탐라로 선적했으며 반대로 탐라에서 나오는 조랑말을 한양으로 올려보낼 때 탐진의 마량을 거쳐서 올라갔다고 한다. 마량은 원래 말의 식량(馬糧)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으로 지금은 馬良이라고 한자를 바꿔서 쓴다. 그러함으로 인해 제주도와의 관계가 여전히 돈독하다.

그 뒤 1896년에 강진군으로 승격한 이후 오늘날까지 계속 강진군으로 남아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단행된 부군면 폐합시에도 다른 군을 흡수하거나 흡수 당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1930년대 중반 강진읍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나진, 혜산과 같이 설치된 것이다. 나진, 혜산은 후일 나선특별시 나진구역과 양강도 도소재지로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감안컨대 강진의 상황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낮에는 국군, 밤에는 인민군으로 인하여 현지인들이 대차게 피해를 뒤집어썼다. 1983년 신전면, 1989년 마량면이 설치되었고, 1990년 8월 1일 해남군 옥천면의 1개리를 이관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2.1. 인구[편집]


파일:강진군 CI.svg 전라남도 강진군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26,812명}}}
1970년 117,866명}}}
1975년 107,491명}}}
1980년 91,804명}}}
1985년 79,116명}}}
1990년 8월 1일 해남군 옥천면 봉황리 → 강진군 도암면 편입
1990년 70,583명}}}
1995년 55,042명}}}
2000년 49,254명}}}
2005년 42,696명}}}
2010년 41,624명}}}
2015년 38,758명}}}
2020년 34,597명}}}
2023년 10월 32,748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읍면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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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읍 13,004명}}}
군동면 4,360명}}}
성전면 2,656명}}}
도암면 2,392명}}}
칠량면 2,156명}}}
작천면 1,797명}}}
마량면 1,693명}}}
신전면 1,686명}}}
병영면 1,540명}}}
대구면 1,083명}}}
옴천면 602명}}}
2023년 5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3. 교통[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진군/교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직 철도는 공사 중이고 도로교통 위주이다. 광주완도간 고속도로가 개통이 되면 강진군은 순천과 버금가는 교통중심지가 될것으로 전망된다.

4. 경제[편집]


주로 1차 산업 위주의 곳이라, 농업이 성하며 남쪽에 바다를 끼고 있어서 어업 역시 성한 편이다.


4.1. 금융[편집]


강진군에 위치한 금융기관
제1금융권 [괄호]
국가기관
강진우체국 (11)
특수은행
농협은행(중앙회) (2)
지방은행
광주은행 (2)
제2금융권(상호금융) [괄호]
농업협동조합
강진농협 (3)
강진한들농협 (3)
강진남부농협 (3)
도암농협 (1)
강진완도축산농협 (1)
대구농협 (1)
수산업협동조합
강진수협 (2)
새마을금고
강진완도새마을금고 (2)
신용협동조합
강진신용협동조합 (1)
산림조합
강진군산림조합 (1)


5. 관광[편집]


남한 한정 조선시대 유배 장소로 유명하다.[7] 이는 강진이 조선시대까지 험한 유배지로 여겨졌던 제주도로 가는 주 기착지이었기 때문이다.[8] 이 정도로 끝나길 다행인 줄 알아 귀양이라고 다 같은 귀양이 아니다. 임금님이 있는 한양에서 먼 곳으로 보내는 귀양일수록 무거운 처벌인데 한양 인근 경기도로 귀양을 보내면 가벼운 벌이고, 제일 최악은 북쪽 함경도 추운 어느 곳으로 보내는 귀양으로 이건 고생하다가 얼어 죽으라고 보내는 귀양이다.[9] 한양에서 멀리 보내도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보내면 어느 정도 배려가 있는 것으로 살만한 편이니 당시 귀양을 어디로 보내는가를 보면 조정 분위기를 알 수가 있다.[10] 또 한 가지는 절도(絶島), 즉 섬으로 보내는 귀양으로, 이건 죽일 생각은 없는데 한양하고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고자 보내는 것이다. 아무튼 대표적인 이 지역의 유배객이 조선의 천재 학자였던 다산 정약용. 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저술 활동을 하고 제자들과 학술 토론 등을 했다고 알려진 다산초당이 도암면 만덕산 내에 있는데 이 고장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11]. 아울러 월출산[12], 병영성, 무위사[13] 등으로 유명하다.

주변에는 탐진강이 흐르며 헨드릭 하멜 일행이 탈출 전까지 유배당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전라병영성이 복원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병영성 동문 맞은 편에 하멜 기념관을 지어 역사문화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4월 중순에 강진 전라병영성 축제를 개최한다. 딱히 관광할 건덕지가 워낙 없는 농어촌인지라, 청자와 함께 이 하멜도 강진의 상징 중 하나로 잘 써먹고 있다. 하멜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네덜란드 호린험 시와 자매결연을 맺을 정도.

유홍준이 자신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 곳을 "남도 답사 1번지"로 칭한 바 있다. 1993년 1권 <남도 답사 일번지>가 나오고는 100만권이 넘게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덕분에 이 지역 홍보로 한동안 오래 써먹었고 지금도 써먹고 있다. 이쯤되면 강진의 슬로건이나 다름 없는 셈. 사실 강진의 유명한 관광지는 이 저서에서 언급된 것이 대부분이다.

과거 고려시대 때부터 청자 생산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지역 마스코트 또한 청자를 바탕으로 만들었고 다산 정약용, 영랑 김윤식 등과 더불어 강진의 3대 상징 중 하나다. 강진읍에서 남서쪽에 있는 신학산 한쪽 면에 청자 무늬를 나무로 만들었을 정도. 청자 자체는 고려 말기에 이미 그 맥이 끊어졌지만 도자기 애호가들이 워낙 많고 문화적 가치가 풍부하기에 그 맥을 잇기 위해 현재도 부단히 노력중인 지역이다. 특히 오늘날에도 청자 복원 사업, 청자 유적지 운영, 청자 문화제, 청자 판매[14] 등을 통해 관광 사업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23년 TV쇼 진품명품에서는 강진에서 고려 왕실용으로 제작된 고려 청자 '청자 음각 연화문 매병'이 역대 최고가인 25억 원의 감정가를 기록했다.

의외로 야구와도 인연이 있는 곳인데 허구연 해설위원과 이승엽 선수의 아버지[15]가 주도하여 만든 강진 베이스볼 파크가 존재한다. 소개 기사 또한 과거에는 서울특별시 연고 팀인 넥센 히어로즈2군 구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넥센 히어로즈 선수가 2군으로 갈 때는 '강진으로 유배간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야구밖에 할 게 없는 환경이며, 그렇다고 야구 하기엔 좋으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시설이 상당히 열악해 심수창을 비롯하여 강진을 경험했던 많은 선수들이 한 서린 증언을 하기도 했다. 야생동물이나 숙소에 도마뱀 등이 튀어나온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로 시설이 열악할 뿐더러, 1군 구장인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고 교통이 험난해서 선수의 당일콜업이 거의 불가능해 프로야구 구장으로서는 좋은 구장은 아니었다. 다만 이럼에도 강진을 사용했던 이유는 역시 이용료. 당시 재정적으로 많이 열악했던 시절 히어로즈는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며 결국 2014년 5월 부로 부지가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다. 경매 가격은 27억 4,800만 원.[16] 낙찰자가 시설 개보수 후 현재는 강진 스포츠파크 & 리조트라는 명칭으로 변경 후 경영 중에 있다. #




5.1. 관광지[편집]


  • 영랑 생가, 세계모란공원, 금서당 터[17]
강진이 낳은 문학가 김영랑의 생가 주변 관광지들이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으며 강진읍 소재 군청 바로 뒤에 있다.
  • 강진읍 한정식 거리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이 거리에 있는 해태식당이 있다. 사실 강진읍 내에는 예향한정식, 다강한정식 등 많은 한정식 식당이 있다.
출렁다리 2개가 강진만 한가운데를 연결하는데 소를 닮았다 해서 가우도라고 이름이 불러졌다. 청자타워가 있고 이 타워에서 저두 쪽 육지를 연결하는 해상 짚라인이 있다.
대구면에 있는 공립 박물관. 주로 고려시대에 만들던 청자와 가마 터가 전시되어 있다. 강진에서 직접 구워낸 청자를 구입할 수 있는 매장도 있다.
고려청자 가마터. 1990년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고 최근 등재 시도중.

2019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가 2023년 고려 후기 가마 유적지가 최초로 발견되어 고려청자가 수백년 고려시대 내내 제작된 것이 밝혀졌다.
  • 마량항
강진의 최남단 마량면에 있는 항구. 횟집들이 꽤 많다.
조선시대 때 축조된 병영성 터가 남아있는데 장기적으로 병영성 전체가 복원될 예정이다. 성 건너편에 하멜기념관이 있다. 여담으로 병영성이 있는 병영면의 돼지불고기가 아는 사람은 아는 맛집이다.
강진군과 영암군에 걸쳐진 국립공원. 산 아래에 월남사 터와 백운동 원림, 설록다원 등이 있으며 산기슭에는 무위사 극락보전 등이 있다.
도암면에 있는 . 전라북도 고창군 선운사, 전라남도 여수시 향일암과 더불어 동백꽃으로 유명한 절이다. 유홍준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이 절이 등장한다. 다산초당과는 산 속의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도암면에 있는 다산 정약용 관련 유적. 정약용이 정조 사후 1801년에 유배를 당했던 곳. 정약용의 후손들이 새로 고쳤고 강진군이 관리하는 대표적 관광지다. 백련사와는 산 속의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대신 입구부터 초당까지 들어가는 진입로가 꽤 험하다. 장기적으로 등산로 정비가 이뤄질 예정이다.


5.2. 축제[편집]


  • 강진 금곡사 벚꽃 삼십리길 축제(매년봄)
  • 강진청자축제
고려시대부터 청자 도요지로 유명하던 대구면의 고려청자박물관, 강진 도요지 일대에서 열린다.


5.3. 먹을거리[편집]


한정식 (강진에서 나온 식재료로 한상 거하게 나온다.)
병영 돼지불고기가 유명하다 (병영면)


5.4. 특산물[편집]


  • 참다래: 일조량이 많이 받고 자라 맛이 좋으며 참다래에 함유된 비타민 C는 다른 과일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웰빙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음.
  • 배: 황토밭에서 충분한 일조량, 알맞은 일교차로 천혜적인 기후와 재배기술을 축적하여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좋음.
  • 아스파라거스: 숙취해소, 피로회복에 효과가 뛰어납니다. 특히 당도와 영양소 함량이 더욱 높은 보라색 아스파라거스는 오직 강진에서만 생산됨.
  • 녹차: 월출산 등 야생에서 자란 차잎을 엄선하여 수제로 제조하며, 진한 녹차의 향을 느낄 수 있음.
  • 잡곡: 푸른하늘, 푸른바다, 푸른들판에서 생산한 강진군 대표 농산물로 쌀에 부족한 영양분을 작곡에서 섭취하여 균형 있는 식단이 가능하며 현미, 찹쌀, 서리태, 차조, 기장, 수수, 약콩, 보리쌀 등 다양함.
  • 방울토마토: 강진에서 생산되는 방울토마토는 재배농민들의 축적된 영농기술과 토마토 재배에 적합한 자연 조건이 조화를 이뤄 당도가 높음.
  • 도자기 : 강진은 고려시대부터 고려청자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만큼 도자기 생산에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음. 청자박물관 앞에 도예촌이 존재.

6. 정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진군/정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군사[편집]


특별한 군사시설은 없으며, 제31보병사단 예하 전남 서남해안 방위를 담당하는 제93보병여단 본부가 성전면에 있다. 다만 예비군훈련장은 강진읍 덕남리에 있다.


8. 하위 행정구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진군/행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사건 사고[편집]




10. 여담[편집]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강진군이 지방행정 분야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재정. 강진군은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재정 교부금 등을 일렬로 세워보았을 때 전국 하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강진군은 적은 지방세 수입과 재정 교부금이라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재정난을 극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바로 이자 수입. 강진군은 예산을 여러 뭉텅이로 쪼개 금융기관에 예치한 후 여기에서 이자수입을 얻는다. 이렇게 강진군이 벌어들인 이자수입이 현재까지 100억원을 상회한다.

문제는 예산을 금융기관에 넣는 순간 이 돈은 강진군이 멋대로 사용할 수 없다. 꺼내면 이자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 이 말은 즉슨 회계 공무원이 한 해 예산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면 강진군이 적금을 깨야 한다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산에는 공무원 월급, 지역 축제 비용, 각종 복지 비용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회계 공무원이 이를 잘못 계산하면 예산 집행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

2021년 1월 16일, 강진군도 코로나19 확진자가 3명이 나오게 되었다.


11. 자매도시[편집]




12. 출신 인물[편집]


[1] 2023년 10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2] 강진군가선거구 노두섭, 김창주, 윤영남 의원, 강진군나선거구 김보미, 정중섭, 서순선 의원, 강진군비례대표 유경숙 의원.[3] 강진군가선거구 위성식 의원.[4] 강진군선거구.[5] 캐릭터의 기본 주제는 불과 물이 청자와 어우러진 모습이다. 이름은 강진군에서 불처럼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모습의 강도령과 물처럼 고요하고 잠재적인 모습의 진낭자의 의미로 명명되었다.[6] 그러나 탐라국의 기록이 탐진보다 훨씬 이르다. 탐라국은 삼국시대에도 이미 여러번 등장하지만 경덕왕은 남북국시대의 인물이다.[괄호] A B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7] 이북으로는 삼수갑산이 대표적이다.[8] 지금이야 제주도가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관광지이지만 비행기는 커녕 선박도 지금에 비할바 없이 열악했던 시절에는 제주도는 일단 뱃길이 멀어 가다가 죽을 확률이 높은데다, 현무암 지대라는 특성상 쌀농사가 어려워 먹고 사는데에 어려움이 컸다. 그런 탓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제주도로 유배 보내지는 것이 유형 중 상당히 무거운 형벌로 여겨졌다.[9] 위도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지역들보다도 지형적 특성으로 훨씬 더 추운 곳이다. 한국전쟁 중 함경도에서 치러진 장진호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보다도 추웠다. 미군 역사상 가장 추운 곳에서 치러진 전투로 남아 있다.[10] 일례로 백사 이항복의 귀양지는 서인 측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함경도 북청으로 정해지는데, 이항복의 나이와 건강을 고려하면 가서 고생하다 죽으라는 뜻으로 이때까지 광해군을 지지하던 서인 세력이 광해군과 척을 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11] 바로 옆에는 백련사도 있다.[12] 다만 산의 정상부는 영암군에 속해 있다.[13] 조선 초기 불교 건축물의 진수로 볼 수 있는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이 이 절의 핵심이다.[14] 대구면의 고려청자박물관 건너편에 청자 판매장이 있다. 여기서는 강진군 내 전통 요업체가 만든 청자를 구매할 수 있는데 강진군 내 음식점에서 식사한다면 10%, 숙박업소에서 묵는다면 20%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영수증지참, 중복할인 불가)[15] 이춘광. 1943년 신전면 용월리 노해마을 출신.[16] 이후 넥센 2군은 베이스볼 파크가 어려워진 것을 보고 2014 시즌부터 화성시로 연고지를 옮겨 2군 이름을 화성 히어로즈로 정했다.[17] 강진중앙초등학교의 전신이자 김영랑의 모교.[18] 아남전자 →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반도체 사업에 착수했고, 앰코코리아(전 아남반도체)를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패키징 업체로 성장시켰으며, 오늘 날의 한국이 세계 반도체 강국으로 발전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에게 반도체 사업 진출을 권유한 인물이기도 하다.[19] 자녀는 윤보현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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