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

최근 편집일시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이 문서는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건강보험에 대한 내용은 의료보험 문서
의료보험번 문단을
의료보험# 부분을
, 본 제도를 운영하는 준정부기관에 대한 내용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문서
국민건강보험공단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
2. 역사
2.1. 민주화 이전
2.2. 민주화 이후
3. 상세
3.1. 본인 부담금
3.1.1. 본인부담상한제
3.2. 급여의 제한
3.2.1. 제한
3.2.2. 정지
3.2.2.1. 자격정지 및 자격정지의 해제
3.3. 비급여 대상
3.4. 보험료 부과
3.5. 직장가입자 보험료 정산 방법
4. 특징
4.1. 법률에 의한 강제 가입
4.2.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입 가능


1. 개요[편집]


/ National Health Insurance

파일:국민건강보험 BI.svg
국민건강보험 BI

국민건강보험, 줄여서 건보(健保)한국사회보장제도(social insurance)의 하나로, 공공의료보험(public health care)에 속한다. (해당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타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의료보험 문서를 참조.)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단점도 있지만[1], 그만큼 국민에게 큰 혜택을 주는 제도이고, 이런 장점 덕분에 국민건강보험은 지금도 각광받는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로 남아있다.

적용근거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며,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일괄 운영한다. 다만 의료보험 심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맡고 있는데, 본래 건강보험공단의 권한을 분할한 것이나 권한을 내놓기 싫어하는 기관의 속성상 심평원에서 심사한 내용을 건강보험공단에서 다시 이중 삼중으로 점검을 하면서 심사권을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역사[편집]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1963년 의료보험법에 따른 임의가입을 기반으로 한 의료보험조합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역선택의 문제로[2]인해 막대한 지자체 예산 및 국가예산이 투입된 청십자의료보험조합[3]만 성공하였을 뿐 의료보험조합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4] 이후 1977년 일부인원[5]을 대상으로 한 강제가입을 기반으로 한 의료보험조합제도가 시작되었고, 지역별, 직능별, 사업장별을 기준으로 하여 점차 대상범위가 확대되었다. 1989년 노태우 정부 당시 대선공약으로 걸었던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이 완성[6]되었으나 건강보험조합 통합에 대해서는 노태우 대통령의 거부권[7] 발동으로 무산되었다.# 이후 개별의료보험조합으로 운영되는 것을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건강보험조합을 통합해 재원 문제를 마무리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골격을 완성하였다. 국민건강보험이 정착하는 과정에서는 정부관료, 의사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등의 지속적인 노력[8]도 있었다. 여기 뉴스타파 링크에도 나와 있듯이 초기의 재원은 대부분 재벌이 부담했다.[9] 6,70년대 현재와 같은 건강보험 최빈국에서 급속도로 경제 발전을 지속하여서 재원 마련이 가능했던 점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10] 모든 복지가 그렇듯 돈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의료보험연합회에서 발간한 "의료보험의 발자취"를 기반으로 작성하였음을 알린다.


2.1. 민주화 이전[편집]


의료보험에 대한 논의는 1948년 정부수립 직후부터 존재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하여 의료보험보다는 재난민 구제를 중심으로 운영되게 되었다.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은 사단법인 부산노동병원[11]이다. 이 부산노동병원은 일종의 조합의 형식으로 운영되어 일정액의 회비를 내고 회원증을 교부하였고, 회원증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질병이 있을 때에는 회비를 납부하고, 건강할 때에는 회비를 내지 않는 역선택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 노동병원의 독특한 회원제 중심의 진료사업은 행정기관의 별다른 지원 없이 병원자체의 발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한국 최초의 의료 사보험의 형태였다. 이후 부산노동병원은 한국노동병원으로 확대되었다.[12]

지금의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에 대한 최초 논의는 1959년 10월 보건사회부 의정국 산하 "건강보험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회"라는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 연구회의 목적은 당시 문제가 됐던 무의면[13]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이 연구를 위해서 당시 연구회는 주한 미국, 영국, 필리핀 대사관 등 다양한 참고자료를 수집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1960-61년 사이 다양한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그 중에서 1961년 연세대 의과대학 양재모 교수의 연구보고서 "사회보장제도 창시에 관한 건의"는 한국 최초의 구체적 의료보험계획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1960년 1월 2일부터 ~ 4월 28일까지 약 4개월간 세계보건기구, 국제노동기구, 스위스, 서독, 영국,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중화민국, 일본을 순방하여 각국의 사회보장제도, 특히 의료보장제도를 연구 시찰한 후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한 경험이 있어, 이 안이 주로 유럽식 보험제도를 기반으로 했다. 다만 당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시행되지는 못하였다.

구제적인 내용으로는 한국의 여건상 장기보험보다는 질병, 산재, 분만 등 단기보험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전국민을 대상으로는 어려우므로 공무원과 광공업계 생산업체 종업원을 대상으로 하되 우선 서울과 탄광지대인 장성 한두지역부터 실시하는 시범사업을 제의하였다. 또한 보건사회부에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상공부, 문교부, 내무부, 부흥부, 재무부, 입법무, 학계로 이루어진 사회보장심의회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운영은 정부 감독하의 반관반민 단체에서 담당하되 의료보험, 산재보험 등 모든 사회보험사고를 망라하여 운영함이 바람직하다고 했으며, 그 이유로는 각 보험사고의 경계설정이 곤란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보험급여는 일반의를 보험의로 정한 다음 피보험자가 각자 선택한 보험의에 등록케하고 피보험자수에 따라 인두제로 진료보수를 지급하는 방안을 건의하면서 행위별 수가제는 과잉진료의 위험 등 부작용이 많음을 누누이 강조했다. 또 전문의 이용은 일반의의 추천으로 병원급 이상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후 1962년 당시 사회보장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의식한 군사정부는 사회보장심의위원회를 설립하였고,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의료보험에 대한 논의가 다시 진행되었다. 그래서 기존의 연구결과와 일본의 건강보험법을 참고하여 초안을 작성하였다. 당시 법안은 전국민 대상 가입이 아니라 최초의 부산노동병원에서 도입한 건강보험조합의 형태를 각 사업장별로 강제하는 형식을 띄었다. 구체적으로는 지역 또는 사업장 단위로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이 지정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형태였다. 재원은 조합원들이 내는 회비가 정부보조금으로 마련하기로 하였다. 실효성 확보를 위해 500인 이상의 사업장에는 강제조합설립, 미만 사업장은 임의조합설립한다고 구상하였다. 하지만 이 초안은 당시에 최빈국이던 경제 상황 때문에 재원 부족 문제가 컸고 정책결정자들에게는 경제성장의 장애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컸기에 일괄 임의가입형태로 수정된다.[14] 그 결과 의료보험법이 유명무실하게 된다.

당연히 당시 보건 당국자들도 이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이 제도를 살리기 위해서 경주하게 된다. 당시 보건사회부 지방의정과와 사회보장심의위원회는 다양한 후보사업장과 접촉하여 의료보험조합을 설립을 위한 설득에 나섰지만 인식부족, 보험료에 대한 부담감, 임의가입 등 제도적 장치 미흡으로 각 사업장에서 수용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서 바로 종로구에 위치한 현대병원을 중심으로, 시사문화사, 풍진산업사, 소사신앙촌제사공사, 삼흥실업, 고려와사공업, 대한중석 서울제련소 7개 사업장이 의료보험법에 따른 공동조합형태의 조합을 설립하고자 제안한 것이다. 이것이 1965년 4월 23일 설립인가를 받은 제1호 의료보험조합인 중앙의료보험조합이었다.

그러나 중앙의료보험조합은 성공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입자들의 납부거부였다. 구체적으로 중앙의료보험조합은 현대병원과 영등포연합병원을 보험의료기관으로 지정하고 1965년 5월 1일부터 업무를 진행하였다. 5월 동안 급여실적은 입원 1건, 외래 111건, 수술 1건, 분만 1건이었고 급여비는 161,600원이었다. 보건사회부는 국고 33,640원을 지급하였으나, 사업주와 보험가입자가 보험료 납부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줌에 따라 6월 이후 사업비 부족으로 급여지급이 중단되었다. 보건사회부는 제1호 조합의 상징성이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이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조합정비 지시와 지도를 하고, 8월 26일 제2차 사업비 30,276원을 지급하였다. 하지만 조합은 상호불신과 비협조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였고 결국 보건사회부는 1965년 11월 29일 보건사회부 공고 제1394호로 중앙의료보험조합의 설립인가를 취소하고 말았다. 이후 의료보험법에 설립되는 조합은 호남비료의료보험조합, 복명흑연광업소의료보험조합, 대한석유공사의료보험조합, 협성의료보험조합 등 4개 조합이 전부였다. 초기 의료보험조합의 운영실패의 원인은 인식부족, 통계부족, 의료기관의 지정이나 수가 그리고 보험료 등에 있어서 현실적 배려의 부족, 연금과 산재보험 등 관련제도와 의료보험제도의 한계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 인식부족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에 대해서 불신했기에 이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보건사회부는 계간지 또는 광고를 통해 의료보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1968년 무너진 의료보험에 희망이 등장하게 되는데, 의인 장기려 박사가 운영했던 것으로 유명한 청십자의료보험조합 이었다.[15] 부산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1968년 시작된 순수한 민간의료보험으로서 1970년 1차 개정법에 자영자 임의의료보험조합 설립근거가 마련된 이후 자영자조합이 출현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임의의료보험조합으로 가입비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인두제를 택하였다. 본인부담율이 초기에는 20%였으나 이후 30%로 상승했으며, 다시 20%로 재조정되었다. 외래진료는 처음에는 무료로 시작하였으나 1974~77년에는 정액제로 전환되었고, 78년부터는 40% 정율제로 바뀌었는데 해산되기 수년전부터 각종 제도를 거의 강제의료보험의 수준에까지 근접시켰다. 초기 수년 동안은 보험재정 악화로 곤경을 겪기도 하였으나 1975년 이후 정착단계에 들어섰다. 1988년 해산될 때까지 비교적 건실한 재정상태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재정상태에는 1969년부터 개시되어 1985년까지 1억 규모를 넘어선 국고지원이 적지않은 보탬이 되었고 다른 임의조합에서는 볼 수 없는 부산직할시의 지방비 지원이 보험료 지원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16] 임의가입 의료보험의 고질적인 병폐인 역선택의 문제는 청십자의료보험조합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 조합은 가입전 질환에 대한 급여제한과 수급 대기기간(6개월에서 1년)을 설정, 고가 의료이용의 제한 등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또한 청십자조합은 청십자소식을 통해 독특한 선전홍보체계를 수립하여 임의가입에 뒤따르는 미비점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부산청십자의료보험협동조합의 어느정도 성공은 이른바 청십자운동의 확산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첫 사례는 청십자한국의료협동조합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의료보험조합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성공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언론의 부산청십자의료보험조합의 성공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와 함께, 청십자운동이 진행되게 된다. 1972년 광주를 비촛하여 전국에 청십자운동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일부는 시도에 그치거나 해산되었고, 몇몇만 남아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대부분이 해산되었으나 남은 일부는 정부가 1977년 정식 의료보험사업을 실시할 때까지 공백기를 메워주는 역할을 하였다.

1977년에는 피용자의료보험으로 강제보험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주로 500인 이상의 대기업과 같은 일부 인원을 대상으로 선별적인 의료보험으로 진행되었다. 진료수가기준과 요양급여기준도 이와 맞추어 제정되었다. 그러나 진료수가기준은 민간 의료체제로 발전되어 왔고, 의료경제도 시장경제의 큰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음에 따라 진료수가 책정작업이 개시될 당시의 소위 관행수가는 의료기관의 임의성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행수가체제 아래서는 전국적 규모의 일괄적 의료보험 실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임의의료보험이 기대수준 이하에서 담보할 수 밖에 없었던 주요 원인의 하나였다.

보건사회부는 수가제도를 결정함에 있어서 인두제, 포괄수가제, 행위별수가제 중 어느 방식을 택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관하여 의료단체의 의견을 물어 의료단체가 원하는 방안을 택하기로 의협과 약속하였기에 수가제도는 거의 논란의 여지 없이 행위별 수가제로 귀결되었다. 행위별 수가제는 당시로서는 관행수가제도를 큰 단절이 없이 의료보장제도로 연결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수가문제는 1976년 2월부터 보건사회부 의정국에서 검토되기 시작하였다. 대한의학협회는 이에 동년 7월 5일 "의료수가기준 책정을 위한 관행수가 조사보고서"를 제출하였다.[17]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보건사회부가 원하는 구체적인 수가안과는 거리가 멀었고 의협도 구체적인 수가안을 제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향도 방안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의협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의정국을 중심으로 직접 수가제정 작업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자료의 방대함과 이해관계 조정으로 시일이 계속 지연되자 의정국의 작업결과에 따라 총 413개 항목에 걸쳐 관행수가보다 20% 정도 낮은 비교적 간단한 형태로 먼저 시행되었다. 의료보호수가는 당시 국립의료원과 시도립병원 수가의 중간선을 택했고, 100병상 이상의 기관과 100 병상 이하의 기관으로 나누어 차등된 수가를 적용하였다. 의료보호수가는 만 1년간 적용되다가 1년 후 1978년 그사이에 고시된 의료보험수가를 70% 선에서 활용하게 되었다.

이후 복지연금국을 중심으로 하는 수가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당시 의협회장, 병협회장이 참여하고 11개 중요의료기관(국립의료원, 서울대학교병원, 연세의료원, 가톨릭의대성모병원, 적십자병원, 고려병원, 한양대부속병원, 순천향병원, 백병원, 필동성심병원, 을지병원)의 의료수입내역을 모두 조사했는데 당시 수입의 구성은 기술행위료 47.31%, 진찰료 1.49%, 투약주사료 32.86%, 입원료 18.34%였다. 또한 기타 파악된 사항으로는 다음과 같다.

  • 의료기관별로 상이한 임의적 수가채택
  • 기술행위료는 상한액만 정하고 하한액을 개방
  • 물과 행위가 혼동된 채 높은 배율로 투약료 징수(기본진료비가 거의 따로 설정되어 있지 않고 투약료에 포함됨)[18]

망라된 진료행위에 대하여는 모든 행위를 과별로 분리하여 과별 퍼센티지를 부여한 다음 각 행위의 난이도를 상대평가하였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시술에 일정한 기준점수를 부여한 다음 각 행위들을 그에 비교하여 배점한 난이도 평가에는 과목별로 10명씩의 전문의들이 참여했고 이 점수표에서 이상치를 제외한 나머지를 평균하여 최종치를 결정하였다. 같은 방식으로 소요시간과 빈도가 조사되었는데, 소요시간은 시간이 많이 들수록 빈도는 드물수록 일정한 가중치를 부여하였고 반대의 경우에는 경감하였다. 결국 난이도가 주요변수가 되고, 시간 및 빈도가 조정변수가 되는 일정한 공식에 조사치가 대입되어 각 행위의 수가 수준이 결정되었다. 보건사회부는 완료된 수가을 검증하기 위해서 국군통합병원 의료수가를 조사하여 일일이 작업결과와 대비하여 일부 내용을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였다.

  • 의료보험수가는 단체계약수가이고 향후 보험실시로 잠재수요가 유효 수요화하여 환자수가 증가될 것을 감안하여 관행수가보다 낮게 책정하되 당시 대기업 공제조합과 의료기관과의 계약수가가 관행수가의 80% 선이었으므로 이보다 다소 낮은 75%선에서 결정함
  • 기술행위료와 약가 및 재료대를 분리함
  • 의료인의 주된 수입은 기본진료료와 기술행위료로 충당토록 하고 의약품이나 재료는 원가수준에서 보상함으로써 약가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과잉 투약을 방지하고 보험재정을 보호함
  • 관행수가에 있어서 투약 이윤 부분은 기본진료료와 입원료 결정에 반영함
  • 각 의료기관의 소재지역과 규모에 따른 차등수가제를 적용함

당시 의협의 관심사는 수가의 수준과 차등수가제였는데 일정수준의 수가가 유지되어야 하고, 차등수가제는 시설이나 규모에 대하여는 인정하나 지역간에 있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보건사회부는 지역간 차등을 전제로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이러한 결과가 76년 6월 8일 고시되었다. 고시된 수가에 대해서 의료계의 입장은 제정된 수가가 관행수가의 55% 수준에 불과함을 들어 이의 시정을 강력히 촉구하였지만 거국적인 의료보험 실시를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선에서 정리되었다. 그러나 병협은 수가문제로 인하여 당시 회장이 임기를 남기고 퇴진하기도 하였다.

제정 수가의 수준은 기준수가에 있어서 55% 수준이었으나1977년 6월 9일 경향신문 서울지역 종합병원을 기준으로 한 수가였기에 가산율 20%와 약가 등을 감안했을 때 결국 제정원칙에서 정한 75%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실제 검사료의 경우 제정수가가 당시 국립의료원이나 모 대학부속병원의 관행수가보다 높았고 의원급에 있어서도 서울 변두리의 감기환자 관행진료비가 800원 수준이었으며 성남지역은 800원 미만의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정수가가 크게 무리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19]

1980년 전두환 정권시절 지역의료보험 시범사업계획이 수립되었다. 이때 동시에 논의되었던 것이 전국민의료보험체계의 구축이었다. 하지만 시범사업이 부진으로 전국민의료보험체계의 전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한다. 가장 큰 원인은 보험료 징수율이 낮아 발생하는 재원부족이었다. 다른 원인으로는 의약분업의 분쟁 여파, 보험관리운영체계 논쟁의 여파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85년 의료보장 인구는 전인구의 50% 선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의료보장계층과 비보장계층간의 차별성은 보험수가와 일반수가의 차이와 함께 점점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의료보험 확대실시를 전제로 한 연구가 정부 안팎에서 시도되었다.

보건사회부는 이러한 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위하여 종합연구사업을 진행하였다. 이 종합연구사업은 보건복지부의 예산과 함께, 의료보험조합연합회(4,000만원), 공교공단(1,000만원), 한국인구보건연구원(2,000만원)을 부담하여 진행되었다. 이 연구사업은 당시 기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연구사업이었다. 연구를 위해 문옥륜 서울대교수, 인보련의 이재식 수석연구원 등의 5명의 연구원으로 연구팀이 구성되었다.

이후 1986년 본격적인 전국민의료보험 실시 방침이 세워지고 이에 따라 보건사회부는 확대준비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이때 계획은 1988년 농어촌 지역 전면실시, 1989년 도시지역 전면실시, 조합설립은 시군구 단위라는 방침을 정해둔 상태였다.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된 기본방향은 다음과 같다.

  • 1989년까지 전국민의료보험 확대를 실시하는 것을 전제로 1988년에 농어촌지역, 1989년에 도시지역에 지역의료보험을 단계적으로 확대 실시한다.
  • 보험재원은 보험료로 조달하되 저소득층의 보험료 경감을 위하여 정부부담제를 도입하고 관리운영비는 전액 정부에서 지원한다.

이 초안 당정협의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변경된다.

  • 확대대상: 88년 농어촌지역, 89년 도시지역
  • 보험재원조달: 보험료로 조달(보험료는 소득, 재산, 가족수에 따라 차등부여)
  • 저소득주민의 부담경감을 위해 보험료 일부 및 관리운영비 정부부담(보험료의 25%~50% 지원)
  • 각 지역별로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여 운영
  • 진료비 심사기구의 일원화

이후 1987년 1월 23일 보건사회부의 훈령에 따라 전국민의료보험 실행위원회가 설립되게 된다. 이후 의료보험법의 개정이 진행된다. 여기서 당시 의료계가 수가고시제를 폐지하고 보험자단체와 의사단체의 수가협정 및 신고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에 대해 가장 큰 반발을 했던 것은 당시 의료보험조합들이었다. 의료보험조합들은 의료계 주장이 의료인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전체국민의 이익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또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수가협정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후 수가협상에 진행되었는데, 당시 수가협상과정에서 의료계는 연 20%인상을 주장하였고, 이에 대해 한국생산성본부는 보건사회부로부터 병원경영 수지분석 용역연구를 의뢰받아 인건비 수준별로 최하 9.2%에서 최고 12.9%에 이르는 인상율을 결정제시한 바, 보건사회부는 그 중 일반의 인건비와 전문의 인건비를 차등적용한 12.2% 인상율을 수용하여 채택하였다.

1988년 기존의 조합별 의료보험조합을 통합하는 구상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당시 여건의 어려움으로 광역조합 설립이라는 변형된 조합방식으로 변경되게 된다. 이 광역조합설립안을 골자로 한 국민의료보험법안은 큰 파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 안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기존의 작업장별, 지역별 의료보험조합에서는 보험료가 해당 조합 내에서 소진되었으나, 광역별로 통합할 경우 광역으로 보험료를 부담한게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반발했던 직장의료보험의 사용자측은 근로자 보험료 50% 부담 이외에 자영업자 몫의 보험료를 추가로 낼 수 없다고 반대의견을 표시했다. 이러한 논란은 극심했으나,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국회통과이후 엄청난 논란이 시작되었고, 궐기대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1988년 3월 15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국민의료보험법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한다.# 환부된 법안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폐기처리 된다.

이후 의료보험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이 아니라 지역별, 도시별, 직장별 의료보험조합의 형태로 유지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적정한 재원을 공급하고 조합에 대한 지도와 계도, 각종 절차 개선을 통해 조합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게 된다.


2.2. 민주화 이후[편집]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국민소득이 향상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기초적인 의료문제 해결에서 실질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에 저부담 저급여 체계에서 적정부담 적정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초기의료보험법상 요양급여기간은 동일상병 180일이었으나, 1985년에는 연간 180일로 연장, 1988년 연간 180일 초과하더라도 연간 30만원 미만일때는 그 금액에 달할 때까지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이 상한선은 91년에 45만원, 93년에는 55만원으로 상향조정되었다. 또한 보험급여도 상승하게 된다.

초기는 지역의료보험과 직장의료보험으로 나뉘어져 있고 전국에 수백 개의 지자체별로 의료보험조합을 구성하고 직장은 직장끼리 보험조합을 구성해서 자기들끼리 회계를 만들어서 운영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의료보험조합은 조합비가 바닥나면 의료기관에 의료비 지급을 할 수 없고 결국 조합원은 보험정지가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역을 벗어나서 타 지역의 원정 의료나 종합병원 등의 진료를 제한하기도 했는데 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제도였다.[20] 결국 일부 조합의 진료비 늑장 지급으로 의료기관의 고통이 커지자 의사회와 지역조합의 실력대결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김대중 정부는 전국의 지역의료보험조합을 통합하고 직장의료보험조합까지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 10월 1일, 공무원·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과 전국 각지의 지역의료보험조합을 통합하는 대개편[21][22]을 하고, 2000년 마지막 남은 직장의료보험조합을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통합해 개칭된 현재의 '국민건강보험' 체제[23][24]가 완성된다. 중소업체였던 의료보험조합 역시 통합하여 2000년 7월 1일 지금의 대기업급 공공기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탄생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으며 의료기관에게 절대적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법이 성립된 이후 의사들은 건강보험공단에 등재되지 않는 한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은 일단 출생신고에 들어가면 강제적으로 보험에 가입되는 의료보험 당연지정제를 시행하고 있어 보험을 거부할 시 콩밥을 꼭 먹게 되어 있다.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라 일정한 체류 자격을 갖춘 외국인들도 6개월 이상 체류하면 강제 가입이며, 이를 거부하면 한국에서 추방 & 일정 기간 동안 입국금지를 당할 수 있다. 이는 국적에 관계 없는 사항으로서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들도 자동가입되는 게 의료보험이다. 외교 및 공무 목적으로 온 외국인만 예외이다. 또한 관광 등의 단기체재도 예외인데 6개월 이상 있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25]

그리고 병원 및 의료 기관에서 본인 부담금 외 금액을 청구하면 국민 건강 보험 공단에서 심사, 기각 및 삭감이나 승인을 했었는데 심사평가에 대한 공정성 문제로 인해 심사평가원을 별도로 분리했다.

3. 상세[편집]


국민건강보험의 효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면 대다수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시민과 의료인들의 피땀으로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개인 입장에선 본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대부분의 진료 금액은 국가, 정확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납부하고 본인은 일부 본인 부담금만 부담하게 되니 참 좋다. 총 의료비용도 OECD 평균의 약 70% 수준이란 말도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국가 빼도 절대 비싼 편은 아니란 소리.

이런 국민건강보험의 존재는 단순 질병은 병원에서 약국까지 전부 만원 한 장으로 해결할 수 있게되자 사람들이 병원을 쉽게 찾도록 만들었고, 한국 의사들의 노력 덕분에 한국인들의 평균 수명은 빠르게 증가했고, 2003년에는 미국도 추월했다.[26][27] 현재 한국에서는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 못 받다 죽는 일은 잘 없다. 2013년 국민건강통계에 의하면 만 19세 이상 인구 중 경제적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한 비율은 남성 1.5%, 여성 4.1% 정도이고 한국 국민의 90% 이상은 시간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간다고 한다.[28] 다만 아무래도 보장성이나 적용 범위, 보장액 등을 사보험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경제력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은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상당수는 사보험을 하나씩 들고는 있다.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전혀 동의하지 못하지만, 당연지정제라든가 누진적 보험료 납부 체계 등에 있어서는 분명 선진국도 참고할 수 있을 정도로 긍정적인 평가 지점이 있다. 물론 낮은 의료수가 문제, 넓은 비급여대상의 문제 등의 단점도 있다[29]. 국민건강보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건강보험 수가가 지나치게 싸게 책정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비정상적 운영이 의료체계의 부실을 유발하는데, 정부와 국민이 싼 것만 찾는다고 분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이 큰 만족도를 얻는 건 무상의료를 지원하는 국가들에 반해 진료를 빠르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나다에선 (물론 극단적인 사례긴 하지만) 복통 진찰을 위해 15개월 가까이 기다린 사람이 있을 정도로 진료 대기시간이 길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아래 6번 문단을 참조하자.

선진국 중 단연 후진적인 공공 의료 보험 체계를 자랑하는 미국에서는[30] 한국인들은 그야말로 의료 천국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식 의료 보험 제도는 의사들 간의 경쟁을 촉진해서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 기술 국가로 끌어올렸으나[31] 돈이 없으면 의료 혜택 자체가 불가능 하도록 비용도 올렸다. 덕분에 미국의 평균 수명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각설하고, 미국인 영어강사에게 한국의 장점을 물어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싼 병원비다. 오죽하면 의료 쇼핑이란 말까지 나올까. 대략 비행기삯을 포함한 교통비 + 한국에서 한국의 의료보험 없이 치료받는 비용이 미국 내에서 치료받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병명마다 차이는 있다.

참고로 홍콩의 경우 영국식 시스템이지만 미국으로 튀는 의사도 없고, 문제없이 양질의 정부병원 진료시스템이 잘 돌아간다. 홍콩의 의료수가 자체는 한국보다 비싼 편이라 진료비 지원이 안 되는 개인병원을 개업해 버리면 돈이 많이 벌리고, 그에 맞춰서 정부병원 의료진에 대한 급여도 높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개인병원은 고객도 부유층이라 돈이 된다. 특히 중국대륙 부자들이 많이들 찾아오기도 한다.

사실 의료 수준으로만 보면 영국, 프랑스, 홍콩, 일본, 호주 그리고 말이 많은 미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급이라서 질병을 잘 고치긴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만큼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서민들에게는 병원의 문턱이 너무나도 높다는 것이다 . 홍콩영국의 NHS는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세금으로 병원비를 대신 낸 셈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식 의료정책이 훌륭하고 모범이 될 만하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장기적으로 영국 및 홍콩의 NHS 식으로 정부 병원을 따로 운영하거나 광역 응급센터를 지정, 국고 보조로 준공영화 시키고 개인병원의 진료비는 올려서 의료쇼핑을 막는 게 더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 영국, 홍콩이 의료 이용은 한국의 절반이지만 의료비는 한국의 두 배를 쓰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동일한 의료서비스를 받는데 영국, 홍콩식은 지금의 4배 이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위의 말들이 이해가 잘 안 된다면 병원에서 진료비를 낼 때 카드전표만 받지 말고 영수증을 발행해달라고 요청한 후 그 영수증을 매우 자세하게 훑어보면 된다.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이해될 것이다.

3.1. 본인 부담금[편집]


의료기관은 법으로 정한 금액만큼 반드시 비용을 받아야 한다. 받지 않으면 불법이므로 의료기관에서 가격 깎아달라 하면 불법을 요구하는 꼴이다. 건강 보험 제도에서 시행하는 의료 서비스인 요양 급여도 비용 중 일부는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질병의 종류와 환자가 진료받은 의료 기관에 따라 부담 금액이 다르게 적용된다. 이렇게 수많은 진찰료에 일정 비율을 본인부담금으로 징수하니 의사들이나 병원에서 진료비를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진찰료 뿐 아니라 각종 항목에 대해서 일일이 금액을 십원 단위까지 산정하고, 초진, 재진, 야간, 공휴일에 따라 다 다르다. 이것을 본인 부담 10%, 30% 등으로 계산해야 하니 일원 단위까지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제 잘 유통되지 않는 십원 미만은 포기하는 의료기관이 상당해서 이런 낙전으로 인한 의료기관 피해도 수십~수백억 원은 된다.

단,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전액 본인 부담이라 하여 어느 의료 기관에서 진료를 받든 동일한 금액의 본인 부담액이 부담된다.

  1. 요양 급여 절차에 따라 요양 기관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32]
  2. (단기 복무자) 하사, 병, 무관 후보생으로 군에 복무 중인 자나 교도소 기타 준하는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자가 지정된 기관 외 다른 요양 기관을 이용할 경우.[33]
  3. 보험료 체납으로 급여제한을 받은 자
  4. 구급차를 이용하여 응급 의료 기관으로 이송되었을 경우의 이송처치료 및 응급의료 수가 기준에서 정한 응급 의료 관리료 산정 대상이 아닌 환자의 응급 의료 관리료.


3.1.1. 본인부담상한제[편집]


환자가 중병 등으로 인하여 장기입원을 했을 시 부담을 최소화 해주는 제도이다. 환자의 건강보험료 정산에 따른 퍼센테이지에 따라서 최하 200만 원[34], 아무리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는 부자라도 최대 400만 원까지는 환급을 해준다. 2014년부터 최하 100만 원, 최대 500만 원으로 폭을 더 확장하였다. 상한제의 적용방법은 사전 적용과 사후 환급금 2가지가 있다.

사전적용은 같은 병원에 입원해서 보험이 적용된 병원비가 500만 원을 초과 할 경우 그 초과금에 대해서는 해당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청구하지 않는 것으로 만약 보험이 적용된 병원비가 800만 원이라면 500만 원만 지불하고 나머지 비용은 지불하지 않으며, 추후 1년이 지난 후 건강보험료 납부의 소득수준에 따라 최대 400만 원의 환급을 다시 받을 수 있게 된다.

사후환급금은 보통 입원이 아니라 외래로 고가의 신약을 투여받는 등 고가의 보험 적용된 진료비를 사용하는 환자에게 1년(1월~12월)이 지난 후 초과분을 환급하는 제도로 가령 매월 100만 원씩 진료비를 쓰는 환자에게 1년(1월~12월)이 지난 후 500만 원이 초과되는 비용을 6개월 후부터 매달 100만 원씩 환급을 해주며 정산이 끝나게 되면 소득수준에 따라 최대 400만 원을 다시 환급해준다. 공단에서 사후 환급금 지급요청 신청서를 해당자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며, 대상자는 신청서를 받은 후 공단에 전화 또는 직접 신청하면 된다. 또한 THE 건강보험 앱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편리하게 신청할 수 있으며, 본인부담상한제 조회 환급 정보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단, 특진 같은 비급여 항목은 상한제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주의. 본인부담상한제의 자세한 설명

참고로 1년간 수입이 100만원 미만이라면 최저부담금 13100원(1개월)만 납부하면 된다.

3.2. 급여의 제한[편집]


자격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의 경우에는 보험 급여가 제한되거나 정지된다.


3.2.1. 제한[편집]


1.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 행위에 기인하거나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킨 때.[35]
2. 공단이나 요양 기관의 요양에 관한 지시에 따르지 아니한 때.[36]
3. 고의로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질문 또는 진단을 회피한 때.
4. 세대 단위의 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할 경우, 완납 시까지 정지 된다. (분할납부 신청 시 급여제한해제)

3.2.2. 정지[편집]


  • 국외 여행 중일 때.
  • 국외 업무에 종사 중일 때.[37]
  • 병으로 복무중인 군인일 때.
  • 교도소 또는 이에 준하는 시설에 수용되어 있을 때.
  •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의료급여를 수급받고 있을 경우[38]

3번과 4번의 항은 국가에서 병원비를 전부 부담하므로 급여가 정지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두 개 항에 해당하는 자가 요양기관에서 요양 급여를 받았을 시 예탁 받은 금액으로 보험급여가 가능하다. “무조건 안 돼.”는 아니란 뜻.


3.2.2.1. 자격정지 및 자격정지의 해제[편집]

1번과 2번은 출국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서 출국사실을 전하면 바로 정지시켜 준다. 정지된 날짜만큼 보험료를 안 내므로 장기간 출국 시에는 반드시 연락해서 내지 않아도 되는 보험료는 내지 말자. 출국 전에 전화로 정지 요청을 해봤자 출국 사실이 조회가 안 돼서 씨알도 안 먹히니 주의.

만약 장기간 외국에 있었는데 공단에 출국사실을 연락하지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귀국을 했다면 높은 확률로 국민건강보험이 정지되어 있을 것이다. 입국후 2~3일 정도가 지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개인의 출입국 사실 확인 조회가 가능하므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나 주민등록지를 담당하는 지사의 자격부과과에 전화 한번 하면 정지를 해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2~3일도 기다릴 수 없다면 주민등록지를 담당하는 지사의 부과과에 여권정보면과 한국 입국도장이 찍힌 페이지나 출입국사실증명서 혹은 귀국편의 비행기 티켓을 팩스로 보내거나, 해당 지사에 신분증 지참하고 직접 방문하면 바로 해제시켜준다.
최근엔 그냥 아무런 서류 없이 전화 한통으로 자격정지 해제를 해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공단,직원에 따라 전화로만은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MMS나 E메일 등으로 여권과 비행기 티켓의 사진을 보내주는 정도면 보통 해제해 준다.

만약 자격정지 해제가 안 된 상태에서 병원에 가면 100% 본인 부담으로 진료를 받아야 된다. 하지만 추후에라도 자격정지를 해제한 다음 병원에 방문해서 문의를 하면 정산[39]을 해주니 참고해두자.


3.3. 비급여 대상[편집]


건강보험의 재정의 한계로 보험을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다.[40]

1. 업무 또는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실시 또는 사용되는 행위나 약제 및 치료재료.

1. 신체의 필수 기능 개선 목적이 아닌 경우에 실시 또는 사용되는 행위, 약제 및 치료재료.

1. 예방을 목적으로 질병, 부상의 진료를 직접목적으로 하지 아니한 경우.

1. 보험급여시책상 요양급여로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 및 그 밖에 건강보험급여 원리에 부합하지 아니한 경우

1. 건강보험제도의 여건상 요양급여로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41]


기타 등등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모호한 기준이다. 한국의 보험이 굉장히 헬~스러운데 예를 들면 의약품의 사용기간은 7일로 정해 놓고 환자가 7일 이내에 회복하지 않아도 사용을 중지해야 한다. 물론 법규상으로는 의료진의 판단 어쩌구 하는데 그런 것 없다. 그런 애매한 조항은 법이라는 조항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용어인데 의사들의 법 무지를 악용한 수법이다. 생사가 달린 문제에서 의사들은 대부분 법을 무시하고 환자를 살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경우 범죄자가 된다. 법을 어기면 범칙금을 내야 하는 것처럼 의약품 비용을 배상하고 치료 비용도 받을 수 없다. 중증 환자 치료를 전공으로 하는 의사들이 사라지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증외상외과의 독보적인 인물 이국종 교수다. 진료를 많이 할수록, 환자를 많이 구할수록 적자가 늘어난다.


3.4. 보험료 부과[편집]


관련 기사

크게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로 나뉘어서 보험료가 부과된다. 소득조사는 국세청에서 자료를 받아오는 부분과 직원이 직접 소득실태조사를 위해 나가는 부분으로 나뉘는데, 국세청에서 탈세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역가입자의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지역가입자는 보험료가 가지고 있는 재산과 소득에 따라 산정해서 나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꽤 비싸게 나온다. 소득이 적어도 집이나 차가 있으면 보험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도 많은 편이다. 이에 대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고 건강보험공단에는 (2015년 기준) 매년 6천만 건씩의 민원이 쏟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집이 없거나 차도 없거나 하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오게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지, 저렴한 것은 아니다.

직장가입자는 혜택이 많은데, 다니는 회사에서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한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상당히 저렴한 보험료를 내게 된다. 원래 보험료에서 50%나 깎이는 것인 데다 보험료 산정시 소득만 보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을 때 보험료를 공제하고 받는다. 하지만 결국 회사 입장에서는 급여나 건강보험료나 모두 인건비일 뿐이다. 원래 직원들의 급여로 지출할 돈을 줄여 건강보험료로 지출하는 셈이다. 공무원은 고용주가 국가이기 때문에 보험료의 절반을 국가에서 부담하며, 사립학교(국립대학법인 포함) 교원은 30%를 학교법인에서 부담하고, 20%를 국가에서 부담한다. 또한 국민연금에 비해 상한액이 높은 편이다. 2020년 기준으로 상한액은 월 332만2천170원에 달한다.

직장가입자가 되면 일단 그 사람만 지역가입자에서 빠지게 된다. 나머지 가족은 지역가입자로 남는데, 만약 가족의 소득이 미미하다면 부양가족으로 등록할 수 있다. 이 경우 가족이 모두 직장가입자 취급을 받으므로 순수하게 소득만 따져서 보험료가 계산되기 때문에 정말 저렴해진다. 거기다 회사에서 나올 경우 "임의계속가입자" 제도를 활용하면 최장 3년까지 원래 회사 다닐 때 내던 보험료를 그대로 낼 수 있다. 단 이 제도는 첫 달 보험료를 안 내면 자동으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니 잊어먹지 말고 꼭 내자.[42]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GYH2017012300050004400.jpg
2017년 건보료 개편안을 내놓았다.


3.5. 직장가입자 보험료 정산 방법[편집]


200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정산이라는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43] 그에 따라 과거엔 매월 건강보험 공단에서 고지되는 개인별 보험료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 비교하고 급여에서 공제를 해야 했다.[44] 불행하게도 4대보험 중 정산이 가장 귀찮은 게 건강보험이다. 개인도 부담하기에 급여에서 예수도 해야 하고, 퇴직정산이나 연말정산 결과에 따라 정산도 하고, 고용보험과는 달리 대부분의 회사에서 고지된 대로 납부하기에 연말에 예수금액과 정산금액과 차이가 난다.[45] 국민연금은 아예 정산이란 게 없다[46].(월보수액 신고한 대로 납부하고 매년 6월에 월보수액을 다시 통보함) 산재보험은 회사가 100% 부담하기에(근로자 개인이 납부 안함) 산재보험으로 인해 급여에서 공제할 일은 없다. 고용보험은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상의 금액 기준으로 보험료를 재산출하지만 보통의 회사에서는 0.65%(실업급여)만큼 급여에서 정률 공제하여 해결한다.

문제는 건강보험국민연금은 공단에서 부과한 대로 급여 예수를 하는데 정산 제도가 없는 국민연금은 차치하더라도 건강보험은 정산이 수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 정산 방법은 다음을 참고하면 된다(퇴직정산, 연말정산 모두 동일) 인사팀에서 취득신고한 월 보수액이나 작년 보수총액으로 산출된 기준급여대로 12개월 내내 받았으면 당연히 보험료가 추가로 정산될 이유는 없겠지만, 실제로 급여는 변수가 매우 많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증감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홍길동은 2016년 1월 2일 A사에 입사하여 10월 31일에 퇴사하여 50,000,000원의 근로소득을 받았다(비과세 소득[47] 및 퇴직금 제외[48])

아래 건강보험 정산방법은 2016년 보험료 기준이다

  1. 당해년도 총 보수액으로 월보수액 및 근무개월수를 산출한다. 이 경우 홍길동의 월 평균 보수액은 5,000,000원이다(50,000,000/10개월)[49], 근무개월수도 10개월이다(하루라도 들어있으면 개월수 포함)
  2. 월 평균 보수액에 3.06%를 곱한다(개인분, 원단위 절사) 이 경우 153,000원이 산출되었다.
  3. 장기요양보험료는 153,000원에 6.55%를 곱한다(원단위 절사) 이 경우 장기요양보험료는 10,020원이다.
  4. 홍길동의 월 부담해야 했던 보험료는 총 163,020원이었다. 10개월 동안 홍길동은 163,020원 * 9개월[50] = 1,467,180원이므로 급여 예수를 이만큼 했는지 확인하고, 부족하면 퇴직금이나 마지막 급여에서 추가예수하고, 만일 예수금이 초과하면 퇴직이후나 연말정산시즌[51]에 돌려주면 된다.
  5. 만일 홍길동이 해외근무를 했다면 해외근무 기간에는 보험료를 전액이나 반액 감면 받는다. 단, 매월 1일에 한국에 있었든가, 건강보험 감면 해지를 하여서 건강보험 혜택(병원진료)를 받으면 해당 월은 감면이 없다.

참고로 2016년부터는 직장가입자 월보수액 신고가 의무라서 재직자는 매월 보험료가 정산된다.

보험료 정상 과정 중 부족하 게 청구된 경우 국가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정산서를 발급하지만, 과하게 청구 된 경우 그렇지 못 한 경우들이 존재한다. 이런 경우 본인인 직접 환급 신청을 해야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건강보험환급


4. 특징[편집]



4.1. 법률에 의한 강제 가입[편집]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대한민국 전 국민(내국인)은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규정되어 있다. 하다못해 임시직, 아르바이트를 해도 월 60시간 이상 근로하면 국세청에서 4대보험을 자동으로 징수한다. 일반 사보험은 개인의 자유 의사에 따라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된다. 하지만 국민 건강 보험은 일정 자격이 있다면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가입된다. 소비자 뿐만 아니라 의료인들 즉, 의료 기관도 가입한다.[52] 또한, 사보험은 병원에 따라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국민 건강 보험은 보험금을 피보험자에게 무조건 지급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의료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자유 시장 경제에 반하는 제도라는 이유이다. 실제로 강제성 때문에 사회주의 논란에 휘말리는 점도 있다. 실제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의료보험을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사실은 사회주의와 공리주의의 결합이며 사회주의와 공리주의가 합쳐지면 공산주의와 비슷해질 수 있어 미국에서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다만, '법률에 의한 강제 가입'이라고 하니까 마치 한국의 건강 보험 제도가 공정하지 못한 것처럼 들리는데, 다시 말하지만 한국의 건강 보험 제도는 사회보장제도이며,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정자본주의 이념 중의 하나이다. 사민주의 자체를 사회주의의 한 갈래로 취급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한데, 건강보험제도는 사회 보장 제도이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에서 1880년대, 즉 100년 전부터 도입했던 제도이다. 사회 보장이 한국 헌법에 포함된 이념이라는 것은 헌법학개론이나 정치학 개론서 하나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자명하다. 여러분이 암에 걸리는 게 여러분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게 현대 헌법의 시각이다. 또한 시장경제 측면에서도 강제 가입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 효율적인 시장경제를 해치는 요인 중 역선택 문제와 불확실성 문제를 확실히 줄여주기 때문이다. 사보험은 역선택을 거르지 못한다. 강제 가입이 폐지되면 빈곤층, 노약자 계층만 가입해서 보험의 질적 수준이 열악해진다.

한편 국민 보험 가입 자체를 개인의 자유로 두는 게 옳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건강 보험이 사보험보다 보장성이 낮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연봉이 가볍게 억대는 넘을 정도로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 한정된 이야기이다. 중산층들에게 사보험은 건강보험보다 보장성이 높으면서, 더 저렴하게 나올 수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덜 내는 보험료를 부자들이 충당하는 제도니까.

다만, 그럼 '왜 국가가 나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비를 대신 납부하도록 강요하는가?' 라는 질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제도는 부자와 빈자를 떠나 인간의 삶의 질 자체를 올리는데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간단한 예시로 정부는 왜 장애인 복지, 국민 연금, 기초 생활 수급자를 위하여 부유층에게 세금을 거두어서 그들을 부양하는가? 그렇게 치면 공교육도 부유층 위주로 세금을 거두어서 국민 전체에게 보급시키는 것인 데 공교육을 폐지하고 학교를 민영화해야 하는 것인가? 물론 공교육이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또한, 이 제도가 없다면 사보험도 월 보험료가 천정부지로 솟을 게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정형근 전 이사장도 국민 건강 보험 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중에 한국 의료보험 시장의 민영화에 대해 적극 반대했다. 본인이 건강 보험 공단 이사장이었다는 점도 있겠지만 단점에 비해서 여전히 장점이 매우 큰 사회 보장 제도인데다 이걸 민영화한다고 해서 가입의 강제성이 없어지는 것 이외에는 큰 장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민영화한다고 해서 무슨 획기적인 수익 개선 방안이나 자금 운용 방안이 나올 리 만무하고, 보험제도에서 수익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입 비용을 올리고 보장 비용을 낮추는 방안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 입장에서도 사회에서의 성과연봉제 반대 입장처럼, 의사간 일방적인 서열화를 통한 임금 격차 유도, 의료의 사업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면 정말로 치과나 안과같은 '돈 되는' 분야의 의사들만 유리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흉부 외과나 산부인과 같은 분야는 말 그대로 사장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53]

4.2.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입 가능[편집]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상술했듯 어차피 가입 의사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괄적으로 가입시키기 때문에 흔히 간과되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는 사보험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6월 7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개선안에 따르면 외국인도 6개월 이상 체류하고 있다면 국민과 마찬가지로 강제가입이다.외국인 건강보험, 3개월 체류→6개월, 임의 가입→의무로 변경 그럼에도 선진국에서도 외국인이 가입하기 쉬운 국가이기도 한다.# 게다가 부모가 외국인이라도 자식이 한국인이면 피부양자로 인정받아 건보혜택을 받는 것이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54]

대표적으로 사보험 중에서 간판급이라고 할 수 있는 실손의료보험의 경우 무직자는 상해 보장을 못 받는다든가, 기존에 특정 질병을 앓고 있으면 가입을 거절당하며, 그 외에도 가입 희망자의 직업에 제한을 거는 식으로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가히 봉이 김선달 수준의 이득이라고 할만 하다. 보장을 받을 만한 사람은 가입을 거부해버리고 어차피 보장 받을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험비를 받아챙기면서 땅 짚고 헤엄 치는 식으로 부당거래를 하는 것이다. 그레샴의 법칙을 내세우면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보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보험 가입자들은 불쌍한 보험사에게 돈을 기부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순수하게 시장주의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불완전 경쟁이나 독점보다는 완전 경쟁을 추구해야 옳지 않은가?

그리고 실손의료보험은 치과 진료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치과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암이나 뇌, 심장질환 등에 대해서는 따로 특약을 추가해서 보장받을 수는 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가입자들에게는 이러한 약관 자체가 너무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이런저런 특약이 추가 될 때마다 보험비는 우후죽순으로 올라간다.

국민건강보험을 개선하지 않고 현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보험의 가입 거부를 금지하고, 보장범위를 확대하며, 보장금액을 늘리는 식의 규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시장자유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보험사들의 상행위에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느니 차라리 국가정책인 국민건강보험을 강화하는 쪽이 훨씬 명분이 선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보험의 경우 매번 지급받을 건수가 생길 때마다 관련 서류를 준비해서 보험사에 신청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런 것이 부담스러워서 지급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소액이면 그냥 넘어가는 일이 허다하다. 이에 비하면 국민건강보험은 아예 처음부터 보험금액을 제외하고 차액만을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보장 절차에 있어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간편하다.

5. 비판 및 논의[편집]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비판과 관련된 논의는 국민건강보험/비판 및 논의 참조.

[1] 주로 거론되는게 비용 문제.[2] 질병이 있을 때는 보험료를 납부하지만 건강하면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문제[3] 장기려박사가 유명하다[4] 당시 지금처럼 강제 가입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맡긴 건 기업도 근로자도 돈이 부족했던 것이 크다. 현재의 보험료는 기업과 노동자가 나나눠서 부담하는데, 60년대에는 기업도 전반적으로 규모도 작고 임금도 적어서 보험료가 부담되었다. 경제가 더 성장하는 70년대 후반에 500인 이상의 대기업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다.[5] 500인 이상 고용 사업장을 대상으로 직장의료보험 제도 시행[6] 기존 500인 이상 이던 가입가능한 사업장의 기준규모를 줄여나가 1988년 7월에는 5인 이상 근로자의 사업장까지 직장의료보험이 적용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직장의료보험은 그 인적사항과 소득이 정확히 파악되기 때문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었지만, 그 외 자영업자나 농어촌지역주민의 소득은 파악이 어려워 의료보험 적용이 여의치 않았다. 소득수준에 따른 의료보험료의 부과체계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따랐던 것이다. 직장의료보험이 실시, 확대된 지 10여년 동안 지역의료보험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지만 논의만 무성한 채 시행되지 못하다가 1988년 1월부터 농어촌 주민을 지역조합을 통해 의료보험에 가입시켰고, 1989년 7월 마침내 도시지역 자영업자까지 의료보험제도에 포함되면서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완성되었다.[7] 1987년 대선 당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는, 전두환 정부 때부터 도입 발표된 '전국민 의료보험 혜택'을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그러나 1989년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 중심으로 직장, 지역, 공무원 및 사립학교원등으로 나누어 시행되던 의료보험체계를 통합하고 직종 관계없이 전 피보험자의 표준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책정하는 것으로 법안발의됐으나, 자영업, 농어촌 생계자에 비해 소득노출도가 높은 도시 직장근로자의 과도한 보험료 부담이 예상되어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가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이후 2000년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 각 350개가 넘는 건강보험조합들이 단일한 체계 아래 통합되어 재원 및 형평성 문제가 해결되었다.[8] 누가 현재의 '전국민 건강보험'을 만들었나[9] 당시 한국은 기술 부족 문제로 인해 재벌 위주의 성장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게 컸다. 재벌 말고는 돈이 없었기에 초반에는 좁은 범위에서만 운용이 가능했던 것.[10] 복지국가 기틀 박정희가 다졌다[11] 1955년 설립[12] "의료보험의 발자취", 의료보험연합회, 1997. [13] 의사가 없는 면[14] 파이가 있어야 나눠먹을 수 있는데 60년대 초반에는 경제 규모가 너무 작아서 일단 성장부터 하고 분배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15] 장기려 박사의 경우 자신이 만든 조합이 필요가 없어져 해산하게 됐는데도 오히려 기쁜 마음을 가지고 조합의 전 자산을 지역의료보험에 인도하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인다.[16] 장기려 박사 사재로 운영했다는 설도 있다.[17] 보고서는 당시 관행수가와 함께 의사들의 요구사항인 수가의 물가연동제, 입원료의 시설별 차등, 의사 및 지역별 평등, 초재진 구분, 조세감면 등도 명시하였다.[18] 당시 1970년대는 진찰료 개념이 없어 거의 접수 수수료 수준이었고 약값으로 진찰료를 갈음했다.[19] 이에 대해서 이 수가제로 인해서 낮은 의료비용이 의료기관에 부담으로 작용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당시 의료기관은 의료보험 대상자들의 적자분을 의료보험이 아닌 비의료보험 환자에게 전가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의료보험 의료비와 일반 의료비와의 격차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이런 편법도 1989년 이후 의료보험조합의 규모가 전국민으로 점차 확대됨에 따라 불가능해진다. 의료계의 헬게이트가 시작된 시점이고 이때부터 의료기관도 경영이란 것을 시작한다. 즉, 비용축소 이윤극대화를 위해 결국 구조조정해서 간호사나 불필요한 인원 자르고 의사들에게는 수백 명 진료를 강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20] 여담으로 일본도 국민건강보험을 제공하나, 국민개보험 체제로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모두 별개의 보험에 들어야한다.[21] 당연한 말이지만 중구난방 조합들 이해관계 다 조정하고 통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군사정권처럼 짓밟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야말로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것.[22] 의보 통합으로 무엇이 달라지나[23] 통합의보 `국민건강보험' 출범[24] 당시 KBS뉴스 '의보 통합 합헌'[25] 아무리 길게 허가해도 최장 6개월이다.[26] 여성은 2000년, 남성은 2006년에 추월했다.[27] 다만 미국의 평균 수명 자체가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긴 하다.[28] 늦는게 안되면 아침엔 못가고 점심시간 역시 병원도 점심 시간이 걸리기에 늦으면 진료 못받고 일 끝나면 대부분 병원도 마감 시간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진짜 시간없어서 못가는게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병가가 존재하지만 병원의 익숙함이 오히려 회사별로 병가 쓰는데 눈치를 줘서 질병의 애매함 때문에 못쓰거나, 병가 대신 월차로 강제하는 경우도 발생한다.[29] 이를 현재는 민간보험사들의 실손의료비보험과 손해보험으로 커버하는 실정이다.[30] 미국은 의료보험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공공이라는 개념이 매우 취약한 나라다.[31] 물론 한국의 의료기술 역시 세계에서 손꼽힌다. 당장 유럽에서 치과 진료를 보다가 한국에서 받은 진료 흔적에 의사들이 놀라는 썰들이 자주 들려온다.[32] 원칙적으로 의원 혹은 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필요한 경우 해당 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런 것 없다. 일단 종합병원에 예약하고 가까운 동네 의원에 가서 의뢰서 한장 뽑아가면 땡이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다.[33] 즉 군인이라면 군병원, 수감자라면 교도소 부속의원 외 다른 민간 병원을 이용할 경우[34] 이것은 년간 한도로, 저소득층의 경우 한 달 단위로 끊는 경우도 있다.[35] 이 경우 피해자는 일단 국민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가해자에게 건보부담 금액을 청구해서 환수 처리한다. 치료 종결에 따른 합의가 있었을 경우에는 피해자에게 청구가 들어가니 이 비용까지 감안해서 합의해야 한다.[36] 예전만큼 나이롱 환자가 생길 수 없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입원시 진단주수 내에 치료가 계속되면 특별한 사유가 아닌 이상 퇴원시키고 통원을 권유하는 것도 여기에 근거한다.[37] 해외취업이나 유학등으로 장기간 국내에 부재시[38] 이 경우 권한이 상실되기 전까지 국민건강보험이 정지된다. 의료급여는 공단이 아닌 지자체에서 의료비(비급여 본인 부담)를 일부/전액 부담하는 제도이므로, 공단에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건강검진 안내통지문은 공단의 명의로 송부된다.[39] 공단부담금액을 환불[40] 문제는 그 보험 규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도 이 약이 보험에 적용될지 안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고 환자들은 병원이나 의사에게 물어 보아도 알수 없는 경우도 있다.[41] 한방물리요법, 한방생약제제[42] 사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임의계속가입은 건강보험 지사에 본인이 직접 방문해야만 신청할 수 있는데, 신청받는 직원이 이 사실을 안내해주고 그 자리에서 바로 첫달 보험료를 수납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청하러 갈 때 한 달치 보험료를 낼 돈이나 신용카드를 챙겨가면 된다. (참고로 이때 내는 보험료는 회사 명세서에 찍힌 금액의 2배이다. 더 이상 보험료의 절반을 내줄 회사가 없기 때문에 회사 부담금 역시 본인이 내야 되기 때문) 본인 신분증도 역시 지참.[43] 2000년 이전까지 의료보험법이 2000년 부터 국민건강보험법으로 개정되면서 건강보험의 소득에 따른 보험료 부담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제도가 시행 [44] 20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EDI 시스템이 없었고 팩스로 신고한 자격취득신고서, 보수월액변경신고서를 토대로 공단 담당자가 건강보험공단 전산시스템에 수작업으로 등록했다. 이 과정에서 오타가 발생하거나 회사의 업무 담당자가 악필인 경우 공단 담당자들이 나름대로 악필러 명단을 따로 수첩에 관리하기도 했다.[45] 건강보험은 고용보험보다 변수가 많다. 해외근로로 인한 보험료 감면라든지, 보수총액(보험료) 상하한액 등 변수가 많다.[46] 다만 연말정산 결과랑 너무 상이하면 재직자에 한해서 취득시점에서 소급하여 월보수액 재신고를 하라고 한다. 처음 입사할 때 인사팀에서 취득신고를 제대로 안 하면 이때 백만 원 단위로 떼인다. 안 당해 보면 모른다.[47] 건강보험은 해외근무 비과세는 인정 안한다. 다만 해외근무자는 반액(국내에 피부양자 거주시), 전액(피부양자가 없을시)으로 보험료를 감면해준다. 단, 본인은 한국에 있되 피부양가족이 전원 해외로 출국하는 경우 보험료 감면해당 없음[48] 소득세법상 퇴직금은 근로소득이 아닌 퇴직소득에 해당.[49] 월보수액 상한은 78,100,000원, 하한은 280,000원이다. 상한액 이상은 상한액으로 보고, 하한액 미만이면 하한액으로 본다[50] 1일 입사가 아니면 취득 당월은 안내도 됨[51] 재직자에 한함[52] 의료인은 의료 기관에 종사하지 않으면 의료 행위를 못 하게 되어있다. 의료인이 의료 기관 이외에서 의료 행위를 건강보험에서 금지했기 때문이다.[53] 한편 이렇게 특정 분야에만 쏠리며 비인기과는 월세가 높은 지역의 경우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가 된 근본적인 원인이 건강보험 제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54] 대표적인 사례가 윤지오의 어머니가 캐나다 국적인데 캐나다 대기인원이 있다보니 한국으로 와서 장자연을 팔아서 모금으로 벌다가 캐나다로 가버린 사건이 있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12-23 12:52:49에 나무위키 국민건강보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11:52:41에 나무위키 국민건강보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