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파체지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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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eorgi Pachedzhiev.jpg
이름
게오르기 파체지에프
(Γеорги Пачеджиев / Georgi Pachedzhiev)
생년월일
1916년 3월 1일
사망년월일
2005년 4월 12일 (향년 89세)
국적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출신지
불가리아 왕국 소피아
포지션
포워드
신체조건
불명
소속팀
스포르트 클루브 소피아 (1932-1937)
OSK AS-23 (1937-1944)
차브다르 CDV (1944-1947)
PFC 레프스키 소피아 (1947-1950)
PFC 슬라비아 소피아 (1950-1953)
국가대표
9경기 2골 (1935-1950)
감독
불가리아 대표팀 (1955)
PFC 레프스키 소피아 (1955-1960)
불가리아 대표팀 (1961-1962)
AC 오모니아 (1965-1966)
OFC 포모리에 (1966-1967)
FC 체르노모레츠 부르가스 (1967-1968)
AC 오모니아 (1968-1970)



1. 개요
2. 생애[1]
2.1. 선수 생활
2.2. 감독
3. 수상
3.1. 선수
3.1.1. 클럽
3.1.2. 개인
3.2. 감독



1. 개요[편집]


불가리아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2][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파체지에프는 불가리아의 여러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1935년에 처음으로 스포르트 클루브 소피아에서 불가리아 주 축구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1947년에 PFC 레프스키 소피아의 선수가 된 파체지에프는 1950년까지 세차례 더블을 커리어에 추가했다.

1950년부터 파체지에프는 PFC 슬라비아 소피아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1953년에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1.2. 국가대표[편집]


파체지에프는 1935년 10월 20일, 2대4로 패했던 독일과의 경기에서 불가리아 대표팀의 일원으로 공식 경기에 데뷔했다.

그리고 그는 1937년 11월 7일, 홈에서 있었던 1938년 월드컵 지역예선전에서 첫 골을 기록했고 그 골 덕분에 체코슬로바키아와 1대1로 비겼다. 하지만 다음 체코슬로바키아 원정에서 불가리아는 0대6으로 대패해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파체지에프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는 1950년 11월 12일의 헝가리전이었고 불가리아는 1대1로 비겼다.


2.2. 감독[편집]


파체지에프는 1954년, 모스크바의 축구 코칭 스쿨을 졸업했고 1955년에 잠시 불가리아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그의 본격적인 감독 커리어는 1955년에 PFC 레프스키 소피아의 감독이 되고 난 후였고 5년간 많은 젊은 선수들을 기용해가며 소비에트 육군컵 3회 우승을 차지했다.

파체지에프는 1960년 레프스키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1년이 지난 1961년에 불가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해 1962년 월드컵 지역 예선을 치렀다. 당시 같은 조엔 프랑스핀란드가 있었는데 불가리아는 밀라노에서 단판 플레이오프까지 치른 끝에 프랑스를 1대0으로 꺾고 칠레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즉, 파체지에프는 불가리아 역사상 최초로 FIFA 월드컵 본선 경기를 지휘한 감독이 된다. 하지만 불가리아는 본선 조별 리그에서 1무 2패 최하위로 탈락했다.

이후 파체지에프는 불가리아와 키프로스에서 감독직을 맡았다.


3. 수상[편집]



3.1. 선수[편집]



3.1.1. 클럽[편집]




3.1.2. 개인[편집]




3.2. 감독[편집]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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