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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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규칙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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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포스터
크라이테리온 DVD 커버[1]
La Règle du jeu
(1939)

시민 케인〉과 함께 현대 영화에서 가장 선구적인 작품
- 앙드레 바쟁[2]
나는 〈게임의 규칙〉을 통해 게임의 규칙을 배웠다.
- 로버트 알트만
영화들의 영화
- 프랑수아 트뤼포
모든 영화를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
- 폴 슈레이더[3]

1. 개요
2. 소개
3. 평가
3.1. 개봉 당시
3.2. 재평가
4. 관람
5. 여담
5.1. 국내 제목에 관하여
6. 외부 링크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장 르누아르1939년 프랑스 영화.

〈시민 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 받으며, 현대에도 명작을 언급할때는 반드시 언급되는 영화 중 하나다.

부르주아평민들이 별장에 모여 파티를 벌이다가 좌충우돌 소동이 터진다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다.[4]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로버트 알트만, 스티븐 스필버그, 빔 벤더스, 폴 버호벤, 알랭 레네 등이 이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소개[편집]



〈게임의 규칙〉 예고편, 크라이테리온 제작

시놉시스

대서양 최단시간 횡단에 성공했지만 한없이 우울해하는 비행사 「앙드레」 / 그와 관계 깊은 귀부인 「크리스틴」 / 이 둘 사이를 중재하려는 친구 「옥타브」[5]

/ 귀부인을 충실히 섬기는 하녀 「리제트」 / 리제트와 함께 대저택에서 일하는 남편 「에두아르」 / 대저택에 새로 고용된 하인 「마르소」 / 대저택과 하인을 관리하는 후작 「로베르」 / 그리고 그와 관계 깊은 여자 「마라」까지.

그 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파티를 즐기기 시작하는데...

보면 알 수 있듯이, 영화가 수많은 인물들로 진행되는 다중 플롯을 구사하는지라, 줄거리 요약이 매우 힘든 영화다. 그냥 직접 보자


3.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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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는 결국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이다.

정성일[6]


너무나 솔직하고 너무나 격정적이며,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영화를 단순히 감상하는 선에서 그칠 수가 없다. 여러분은 이 영화에 한껏 빠져들어야만 한다.

로저 이버트[7]


감독 장 르누아르는 영화 제작 전부터 "프랑스 부르주아를 가장 정확히 묘사한 작품이 될 것."이라 공언했다. 평소 부르주아의 허영과 위선을 정확히 꿰고 있던 르누아르는, 이 영화를 통해 부르주아와 평민들이 계급에 가릴 것 없이 자기 욕망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

비평가 앙드레 바쟁은 〈시민 케인〉과 함께 이 영화를 '딥 포커스(Deep Focus)'[8]를 활용한 걸작으로 평가했는데, 〈시민 케인〉이 느와르 특유의 그림자 사용과 정교한 화면구성(미장센)으로 딥 포커스를 활용한 반면, 〈게임의 규칙〉은 카메라의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 속에서도 초점을 잃지 않고 모든 상황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딥 포커스를 활용하였다. 때문에 이 영화에선 단 한 번도 스테디캠을 쓰지 않았지만, 지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테디캠을 어떻게 활용할까에 대한 교과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빔 벤더스도 "스테디캠이 없던 시절에 어떻게 이런 우아한 카메라 움직임을 보였는지 믿을 수 없다." 라며 이 영화를 극찬했을 정도.

그 외에도 프랑스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주제, 화법, 클리셰, 플롯 등을 가장 적절하고도 아름답게 완성시킨 영화이기도 해서, 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논할 때에는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 같은 웅장한 수식어를 자주 붙인다.

3.1. 개봉 당시[편집]


그러나 개봉 당시에는 온갖 혹평에 시달리며 흥행에서 참패했는데, 이후에 감독 스스로도 "가장 큰 실패"라고 자주 회고할 정도였다.

〈게임의 규칙〉에 대해 얘기하려니 기쁩니다. 제가 만든 영화 중에서 분명히 가장 큰 실패였으니까요. 〈게임의 규칙〉이 처음 공개했을 때엔 타격이 컸습니다. 제가 살면서 타격을 종종 받아왔지만, 이 정도로 엄청나진 않았죠. 정말 거대한 화제거리였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 뉴욕에 있는 학교에서 젊은이들에게 〈게임의 규칙〉을 소개했었습니다. 개중에 몇몇 청년들은 이 영화가 파리에서 받은 평가에 대해 알고 있더군요. 그중에서 하나가 물었습니다. "르누아르 씨, 이 영화가 왜 그리 논란이 많았는지(controversial) 알려주실 수 있나요?" / 영어로 '논란이 많았다(controversial)'라고 말했는데, 이걸 프랑스어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 저는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왜 논란이 많았는지 들어보면 아실 겁니다. 당시 콜리지(Colisée)[9]

에서 영화를 첫 상영할 때에, 관객 중에서 어느 신사 분이 조용히 신문을 펼치더니, 성냥개비를 꺼내서 신문에 불을 붙이고는, 정말 진심으로 극장을 불태우려 하더라고요.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 영화라면 '논란이 많았다'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ㅡ 장 르누아르[10]

당시 유럽은 히틀러가 벌이는 오스트리아 병합 같은 사건들로 인해, 세계대전 직전의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이때에 프랑스 국민들을 단결시키는 영화를 만들기는 커녕, 부르주아든 평민이든 모두 자기 생각만 하는 풍자영화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을 리가 없었다. 앞서 르누아르가 소개한 일화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관객이 이 영화에 분노했고, 결국 흥행과 평가 모두 참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개봉 한 달 뒤엔 아예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영화"라며 상영을 금지시켰고,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재편집을 거치면서 영화가 조각조각 나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 후 프랑스 침공으로 파리를 점령한 나치당은, '불순한 영화'라는 명목으로 〈게임의 규칙〉의 원본과 복사본을 불태우거나 매장해버렸다.

흥행 참패와 전쟁 발발로 감독생활이 위협받은 장 르누아르는, 결국 미국으로 떠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게 되었다.(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미국과 전 세계에 르누아르의 명성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3.2. 재평가[편집]


개봉 당시 엄청난 재난을 겪은 영화였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걸작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다만 전쟁으로 인해 그 소문조차 금방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전쟁 직후인 194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 평론가 앙드레 바쟁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며, 동시에 영화에 대한 복원 작업이 실시되었다. 온갖 가위질과 파괴로 인해 전쟁 직후엔 88분 분량만 남았지만, 시네필들의 대대적인 후원과 발굴 작업을 통해 원본에 거의 가까운 106분 분량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장 르누아르는 복원판 첫 장면에 "이 영화를 앙드레 바쟁에게 바친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원본 필름에서 딱 한 컷만 복원되지 못했는데, 감독이 직접 '중요하지 않은 컷' 이라고 언급해서,[11] 복원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개봉부터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고난을 겪은지라,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임에도 불구하고 〈시민 케인〉만큼 유명하진 않다. 특히 20세기 중반 복원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도 온갖 판본이 난립하다보니, 제목만 유명할 뿐 정작 제대로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많이 없었던 것이다. 로저 이버트의 말로는, 크라이테리온이 앞장서서 이 영화를 제대로 출시하기 전까진, 북미 사람들은 흐리멍텅한 버전으로만 보았다고 한다(...) 복원 작업이 늦어진 결과,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게임의 규칙〉 판본도 동시대 영화들에 비해 얼룩이 심한 편이다.

4. 관람[편집]



  • 개봉 후 70년이 지나 저작재산권이 만료된 작품으로,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5. 여담[편집]


  • 사진가로 유명해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조감독으로 참여했으며, 배우로도 출연했다. 배역은 영국인 하인 역할. 이후로도 브레송과 르누아르는 친분을 유지했다.

5.1. 국내 제목에 관하여[편집]


1990년대 영화 정보를 전하던 월간지[12]에서는 〈게임의 칙〉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소개하곤 하였다. 예를 들어 1992년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선 '세계의 걸작 영화 10편' 으로 이 영화를 넣으며 '게임의 법칙'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그러나 1994년 한국영화 〈게임의 법칙〉이 개봉하면서, 원 제목의 프랑스 영화가 빛바래기 시작했다. 당시 《로드쇼》에선 '제목 훔치기'라며 비난했지만 제목의 변질을 막진 못했다. (이러한 제목이 같거나 유사한 작품 관행은 2010년대에도 이어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마의 휴일〉 같이 대놓고 제목을 가져다 쓰는 상황으로 악화됐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순에 정식 비디오로 발매되면서 교묘하게 〈게임의 칙〉이라는 제목으로 바꿨고, 이에 따라 두 영화 제목의 인식이 분리되며 이것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일각에선 '법칙'보단 '규칙'이 더 어감이 좋다며 "차라리 잘 됐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한다.


6. 외부 링크[편집]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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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러스트레이터 에드워드 소렐(Edward Sorel)의 작품.[2] 프랑스 평론가. 카예 뒤 시네마에서 활동하며 누벨바그 감독들의 정신적 아버지 역할을 하였다.[3]택시 드라이버〉 각본가[4] 때문에 '명작'이라는 말만 듣고 진지한 영화인 줄 알았다가, 그야말로 개판 터지는 이야기에 당황하는 관객이 종종 있다고 한다(...)[5] 이 배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감독 장 르누아르다.[6] 한국영화 〈춘향뎐〉 비평에서, 〈게임의 규칙〉을 인용하며 한 말. #[7] 저서 《위대한 영화》에서[8] 렌즈 특성상, 카메라는 한 가지 물체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는데, 이를 극복하여 화면 내 모든 사물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당대의 신기술이었다.[9] 파리 내 상영관을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10] 1960년대 TV 프로그램에서 영화를 소개하며.[11] 앙드레와 감독이 연기한 옥타브가 메이드들의 성적 관심사에 대해 떠드는 장면이었다고 한다.[12] 당시에 영화 전문 주간지가 없었고, 모두 월간 잡지였다. 영화 주간지는 1995년에 창간한 《씨네21》이 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