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고등학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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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고등학교 전경

경신고등학교
儆新高等學校
Kyungshin High School
파일:경신고등학교.png
교 훈
기독적 인격
基督的 人格

개교
1885년 5월 9일 언더우드학당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남자고등학교
형태
사립
학교법인
경신학원 (儆新學園)
교장
한지민
교감
홍진표
교화
장미
교목
느티나무
교조
독수리
학생 수
463명[기준]
교직원 수
54명[기준]
관할 교육청
서울특별시중부교육지원청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로 74 (혜화동)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고등학교]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총동문회]

}}}

1. 개요
2. 역사
2.1. 학교 연혁
2.2. 역대 이사장
3. 교훈 및 상징
3.1. 교육목표 및 교훈
3.2. 학교 상징
3.2.1. 교표
3.2.2.1. 응원가
3.2.3. 교조
3.2.5. 교화
4. 학교 특징
4.1. 한국 최초의 사립 기독교 학교
4.2. 커리큘럼
5. 학교 시설
5.1. 본관
5.1.1. 역사관
5.1.2. 화학실
5.1.3. 방송실
5.2. 화장실
5.3. 헬스장, 유도장
5.4. 도서관
5.5. 신관
5.6. 예체능관
5.7. 급식실
5.8. 언더우드 기념관
5.9. 운동장
5.10. 기념물
5.10.1. 언더우드 목사 동상
5.10.2. 나기호 박사 흉상
5.10.3. 경신 개교 100주년 기념탑
5.10.4. 경신인상
5.10.5. 4.19 혁명 추모비
5.11. 기타
6. 학교 생활
6.1. 주요 행사
6.1.1. 1학기
6.1.2. 2학기
6.2. 학과
6.3. 야자 & 방과후
6.3.1. 1학년
6.3.2. 2학년
6.3.3. 3학년
6.4. 교목실
7. 운동부
7.1. 축구부
7.2. 유도부
7.3. 야구부
7.4. 기타
8. 출신 인물
9. 출신 교사
10.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11. 사건 사고
11.1. 교내 대형 싱크홀 발생
11.2. 특정 교사의 중간고사 부적절 표현 삽입 및 좌편향적 교육 문제
12. 기타



1. 개요[편집]


경신고등학교 (儆新高等學校, Kyungshin High School)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일반계 남자고등학교이다.

미국 개신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1]가 설립한 언더우드학당을 모체로 한 교육기관이며, 경신(儆新)이라는 교명은 1905년 명명되었는데 '새로운 것을 깨우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배재고등학교와 함께 1885년에 설립되었고, 138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등학교이다. 대표적인 동문으로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 우사 김규식 선생이 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인 김용식, 차범근, 박항서 감독이 있으며, 대학 설립자도 3명[2]이나 졸업하였다.

여담으로, 가까운 거리에 똑같은 남고인 가톨릭 계열의 미션스쿨 동성고등학교가 이웃하고 있다.

2024학년도 기준으로 118회(3학년)~120회(1학년)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2. 역사[편집]


파일:ks.png
경신학교의 역사
파일:ks_grd.png
파일:ks_jeongdong.png
1909년 경신학교 제4회 졸업식
정동 시절 언더우드학당 위치[3]
파일:201510191639_23110923283120_1_99_20151019164003.jpg
파일:경신학교136주년기념식.jpg
2015년 경신학교 130주년 기념식[4]
2021년 인조잔디구장 개장식[5]

구한말 서양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학교이니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개교일은 1885년 5월 9일인데, 일제강점기6.25 전쟁 등으로 학교가 문을 닫은 역사가 길어서, 기수는 2007년도 졸업생부터 100기를 넘긴다.

연세대학교와도 역사적으로 약간 연결된다. 경신학교 대학부가 연희전문학교로 독립한 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통합된 게 연세대이다. 그 때문에 경신고 측은 '연세대의 모체'라고 자부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연세대에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6] 현 시점에서 접점이라고 해봐야, 설립자가 같다는 것과 새문안교회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과 <아카라카>라는 응원가가 있는 것 정도이다. 경신중학교-경신고등학교-연세대학교 테크를 타면 '언더우드의 자식'이 된다는 농담이 있다. 경신학교 개교 130주년 기념식을 연세대학교 강당에서 연세대학교와 함께 진행하였다. 기념식 때 언더우드 목사의 후손도 참석했는데 이런 모습을 통해 연세대학교와 경신학교가 같은 뿌리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러스 언더우드의 선교 보고서에 따르면 "1885년 7월 6일, 서울 정동 자택에서 10명의 어린이들을 모아 학당을 세워 영어를 가르쳤다"고 나와 있다. 학당의 이름은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지만 설립자의 이름과 기독교적 이념을 따서 초기에는 언더우드학당, 구세학당, 예수학당으로 불렀다. 이후 1905년 경신(儆新)이라는 이름을 명명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고 경신학교는 언더우드학당을 계승한 공식적인 중등교육기관이다.


2.1. 학교 연혁[편집]


경신고등학교의 역사
1885 ~ 1905
1905 ~ 1946
1946 ~ 1951
1951 ~ 現
언더우드학당
(예수교학당/민노아학당/구세학당)
경신학교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
+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의 연혁
연도
내용
1885년
언더우드 목사가 정동 32번지에서 창립
1886년
언더우드학당 개설예배 거행, 초대 학당장으로 언더우드 취임
1890년
우사 김규식 수학(修學)
1897년
도산 안창호 수학(修學)
1901년
교지를 연지동으로 이전
1904년
경신학교 축구부 창단
1905년
교명을 경신(儆新)으로 명명하고 1회 졸업생을 배출
1908년
한국 학무부 사립학교령에 의해 사립 경신학원 인가
1911년
경신학교 야구부 창단
1915년
경신학교 대학부(연세대학교의 모체)를 설립,
고등보통학교 지위 박탈 및 지정학교로 강등
1916년
창설자 언더우드 목사 소천
1919년
전교생이 3.1운동에 참가,[7]
본교 출신 정재용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1927년
경신학교 유도부 창단
1929년
본교 학생 300여명이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가
1938년
일시 폐교[8][9]
1941년
교사를 경기도 양주군 정릉리[10]로 이전
1951년
교육법 개정에 의해 경신중고 분리
1955년
종로구 혜화동(현 위치)으로 교지를 이전
1964년
학교법인 경신학원 인가
1985년
경신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기념탑 제막 및 찬가를 제정
2010년
경신역사관 재개관
2013년
서울특별시교육청 과학영재학급, 과학거점학교 지정
2015년
개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연세대학교와 함께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개교기념식을 거행
2017년
학생 식당 완공
2021년
인조잔디구장 조성
2022년
언더우드기념관 완공


2.2. 역대 이사장[편집]


파일:경신고등학교.png
학교법인 경신학원 이사장

[ 펼치기 · 접기 ]
운영이사회 조직

초대
김규식


제2대
서병호

경신학원 인가

초대
전필순


제2대
최거덕

제3대
나기호


제4대
박한용


제5대
이효종






3. 교훈 및 상징[편집]



3.1. 교육목표 및 교훈[편집]


기독적 인격

- 경신고등학교의 설립 정신


이웃과 세상을 섬길 줄 아는 인간교육

- 경신고등학교의 교육 목표



3.2. 학교 상징[편집]



3.2.1. 교표[편집]


파일:경신고등학교.png
교표
* 전체적인 구도는 십자가.
* 상하로 “경신”, 좌우로 영문 이니셜 “KS”를 새겨 넣은 것이 특징.
* 중심부의 문양은 향로이며 온 누리를 비추는 불(성령)을 뜻한다.


3.2.2. 교가[편집]



경신학교 교가
파일:경신고교가.png

주의 첫 빛이 동방에 비취시사

사면 뻗쳐서 퍼져가니

이 어둡던 세계 광명하도다

빛을 찾는 이 인도키 위해

큰 빛난 별 오직 이 경신학교

이는 우리의 받은 바 사명

오 천만세 영원 무궁하도록

만세 경신학교 만만세로다


1922년, 일제강점기 당시 경신학교, 배재학교, 오산학교 등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독립운동가 장지영에 의해 작사된 교가이다. 스코틀랜드 민요인 Bonnie banks of loch lomond에 한국어 가사를 붙여서 만든 노래이다. 따라서 역사가 오래된 학교들이 겪고 있는 친일인사의 교가 제작에 대한 논란에 있어서는 매우 깔끔한 편이다. 미션스쿨이라 그런지 약간 찬송가 느낌이다. 참고로 마지막 구절의 '경신학교 만만세' 부분은 박자가 어렵기로 유명한 편이다.


3.2.2.1. 응원가[편집]


경신고 산악회 부른 응원가

  • 선배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경신 응원가'라는 노래이다. 예전 60~70년대 경신고등학교 축구부 경기가 있을 때 응원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11]
  • 현재는 신앙수련회 때 학생회가 학생들 앞에서 일정한 안무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아아 용감한 우리의 선수들아
전선에 나서서 진칠 때에
너의 용맹과 성실을 다 합하여
저 저편의 전선을 습격하라
나가라(나가라) 나가라(나가라)
너의 용맹을 다 하여
힘쓰라(힘쓰라) 힘쓰라(힘쓰라)
월계관을 다 얻도록 싸워라
KS KS KKSS 경신 경신 VICTORY 야!


3.2.3. 교조[편집]


파일:ksjjj.png
독수리
기품이 있고 용맹하여, 탁월한 능력과 기상이 있고 정의와 용기가 넘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신학교의 상징


3.2.4. 교목[편집]


파일:ksnmnm.png
느티나무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하며 땅 끝까지 생명력 강하게 전파할 선교와 부흥을 상징적으로 나타냄


3.2.5. 교화[편집]


파일:kshwa.png
장미
한국이 원산지인 장미의 꽃말은 사랑이며 기독교의 사랑과도 관련이 깊다.


4. 학교 특징[편집]



4.1. 한국 최초의 사립 기독교 학교[편집]


파일:교육청_KS.png

초기에는 개교기념일이 1885년 10월 16일이었지만, 근래 들어와서는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일지에 1885년 5월 9일에 학당을 개설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학교측이 개교일을 해당 날짜로 수정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교육청 홍보자료, 서울특별시중부교육지원청 '사대문 안의 학교들' 전시자료에는 경신학교의 전신인 언더우드학당이 한국 최초의 사립 기독교 학교라고 소개되어 나오고 있다.

다만, 학교측에서 한국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이라고 홍보하는 것은 사실과 살짝 다르다. 왜냐하면 한국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은 1883년에 원산 덕원 주민들이 설립한 원산학사이기 때문이다.


4.2. 커리큘럼[편집]


학년부장, 기획, 국어, 영어, 수학 커리 담당 교사들은 한 기수를 맡으면 그 기수와 운명을 같이 한다. 즉, 1학년 때부터 3학년이 될 때까지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12] 이 교사들은 담당 세대와 3년 동안 살을 부대끼고 살아야 하며[13], 커리도 걸려있기 때문에 3년을 갖다 바치는 격이 된다.


5. 학교 시설[편집]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이라는 부심을 부릴 수 있을 만큼 건물이 상당히 낡았다.[14] 최근 들어선 인근 혜성교회와의 딜로 인해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5.1. 본관[편집]


  • 경신고등학교 마크가 붙어있는 경신고의 대표적 건물.
  • 6.25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지어준 건물이라고 한다.[15]
  • 본관이 준공된 날짜가 무려 1957년으로, 굉장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벽이 심하게 갈라져 있다던가, 계단손잡이가 부서져 있는 상태였지만, 2019년부터 2021년에 걸친 대대적 리모델링 사업 이후 건물이 깔끔하고 안정적으로 변했다.
  • 1층은 화학실, 생물실, 방송실, 역사관, 교장실, 행정실, 인쇄실 등이 있다.
  • 2층과 3층에는 각각 1학년 교실이 나누어져 있다. 3반까지가 2층, 4반부터가 3층에 있으며, 1학년부 교무실은 3층에 있다.
  • 4층과 5층에는 각각 2학년 교실이 나누어져 있다. 5반까지가 4층, 6반부터가 5층에 있으며, 2학년부 교무실은 4층에 있다.
  • 2층에는 컴퓨터실과 시청각실, 교무실, 인문예술부 등이 있고, 3층과 4층에는 각각 자습실인 양현재와 홍문재가 있다.
  • 5층에는 2학년 교실과 함께 강당이 있는데[16], 뭔가 천장 높이가 다르고 구조상 이상한 점이 몇몇 보이는데, 이는 원래 4층 건물인데 층을 하나 늘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5.1.1. 역사관[편집]


파일:KS_history.jpg

1층 서편에 있으며, 들어갈 기회는 많지 않지만 다양한 역사적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교복, 교과서, 역대 교장, 특활뱃지, 축구대회 우승컵을 비롯한 역사적 사료와 경신학교 출신 독립투사, 대표 제자 12인, 자랑스러운 경신인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이하 인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출신 인물 문단 참고.

경신학교 출신 독립투사
경신학교 대표제자 12인
자랑스러운 경신인상 수상자
......
......
}}}


5.1.2. 화학실[편집]


1층 서편에 있으며, 과학탐구실험 등 수업이 진행되는 곳이다.


5.1.3. 방송실[편집]


1층 서편에 있으며, 방송반 학생들이 방송을 진행하는 곳이다.


5.2. 화장실[편집]


본관에는 화장실 건물이 따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17][18], 이는 2006년까지 1층에만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깨끗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하지만 화장실이 본관의 동쪽 끝에만 있어서 교실이 서쪽에 위치해 있는 학생들이 화장실을 가는데만 2분 이상 소요된다. 본관이 100m[19] 길이가 넘는 긴 건물이기 때문이다.[20]


5.3. 헬스장, 유도장[편집]


본관 바로 뒤편에 헬스장과 유도장이 있다. 많은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이용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매우 좋은 편이다. 특히나 고등학교 전면등교 때문에 2, 3학년 학생들은 점심시간 이외에 30분 가량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때 헬스장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5.4. 도서관[편집]


본관 서쪽에 하나의 건물이 따로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도서관 건물이다. 실제로는 한 층만 도서관이고 나머지 층에는 3학년 야자실인 도산재, 물리실험실, 지구과학실험실, AI 교실 음악실[21] 등 여러 교실이 있다.
도서관에서는 '청소년문화카페'이라는 컨셉으로 작은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바둑돌과 바둑판을 구비해두고 있어 학생들이 오목이나 바둑을 둘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문인지 도서관이 일반적인 도서관 분위기가 아니라 점심시간만큼은 왁짜지껄한 편이다. VR 가상 체험을 하며 총쏘는 체험을 하는 것도 예약을 통해 가능하다. 비트세이버, H3VR, 파블로프, 파스모포비아 등의 게임을 한 학생이 제공해 플레이 할 수 있다. 2022년까지 위 게임들을 이용 가능하다.
또한 도서관에 스무 대 정도의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컴퓨터를 이용한 수행평가를 진행할 때 도서관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5.5. 신관[편집]


정보화 센터
원래는 3학년을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었지만, 2020년 기준 3학년은 본관 교실을 사용하고, 1학년만 신관을 사용하고 있다.
2층 [22]에는 경신교회라는 교회가 있고 가끔 2층의 사회과 교실에서 타학년의 역사 수업을 하기도 한다. 신관에는 1학년이 있는데, 각층에 교실이 4개만 존재한다. 200여 명의 인원을 수용하려면 5층까지 가야하는데, 2, 3층에는 교실은 있지만 방과후 수업 등을 위한 곳이고, 4층부터 각 반 교실이 시작된다. 본관처럼 승강기가 있는것도 아니라서 5층에 교실이 있는 학생들은 죽어난다고.[23]
가장 아래층에는 언더우드 홀이라고 하는 급식실로 쓰였던 장소가 있다. 여담으로 예전 급식실 입구 벽 오른쪽을 보면, 주차장에 있을 법한 페인트 칠[24]이 칠해져있다. 원래 주차장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는데, 쓸모없게 되어 추후 급식실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즉, 주차장에서 밥을 먹는 것. 급식실이 생기기 전에는 교실에서 배식했다고 한다. 운동장 한편에 급식실 건물이 생겨서, 현재는 고등학교 매점으로 사용중.[25]


5.6. 예체능관[편집]


1층에 유도부 숙소, 2층에 축구부 숙소, 3층에는 음악실과 미술실이 있다.[26]


5.7. 급식실[편집]


파일:경신중고식당.png

2017년 초에 완공된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밥을 먹으려면 본관을 나와 운동장 반대편 중학교 건물 앞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이를 귀찮아 하는 학생들도 있다. 확실히 기존 신관을 사용할 때보다 접근성은 나빠진 듯. 2020년까지는 운동장에 비를 막아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2024년 현재는 신관이나 본관부터 급식실까지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게 되어 접근성 면에서는 그나마 나아졌다.



5.8. 언더우드 기념관[편집]


파일:경신중고언더우드기념관조감도.png

경신학교 설립자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27]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강당과 실내 체육관 겸 복합 건물인 언더우드 기념관의 모습이다. 2021년 12월 공사 작업이 마무리되었고, 2022년 1월 기념관 준공 기념식이 열렸다. 최신식 체육관과 주차장이 있으며 큰 예배당도 있다.

본 시설은 혜성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지어졌다. 주차장 및 예배당&편의시설 확충을 위해서 혜성교회는 부지가 필요하고, 경신고 측은 자금이 조금 부족한데,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혜성교회는 부지를 이용하고 경신고는 자금 일부를 지원받는 식이다. 혜성 측에서 경신 부지에 시설을 짓고, 이를 경신에 기증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 대신 일요일에 경신고를 주차장으로 활용하거나, 혜성 측도 필요할 때마다 경신고의 시설을 빌려쓸 계획인 듯. 어차피 학교라는 게, 일요일에는 거의 운영을 안 하니 경신고 측은 크게 손해볼 일이 없다.
[28]

5.9. 운동장[편집]


2021년 5월 상순 경에 운동장 잔디 공사가 끝나고 승인까지 끝나, 잔디 운동장을 사용 가능하게 됐다. 언더우드관은 완공되지 않아 체육관은 아직 없지만, 체육 활동 시에 더 쾌적한 환경에서 할 수 있게 되었고, 중학교 후문 쪽에 농구장도 새로 생겨 그 쪽에선 농구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종로구와 운동장개방협약을 맺어 경신고등학교 인조잔디비용으로 8억원을 지원하는 대신 경신고등학교 측에서 지역주민들이 운동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게 되었다. https://cm.asiae.co.kr/ampview.htm?no=2021052112174154991


5.10. 기념물[편집]



5.10.1. 언더우드 목사 동상[편집]


파일:HGU.jpg

이 학교 설립자인 언더우드 목사를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다.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함께 새겨져 있다.

1885년에 25세의 나이로 내한한 미국 선교사로서 이 땅에 최초로

복음의 씨를 뿌리고 교육기관을 설립하시니 경신학교가 이에서

비롯되었도다. 처음 시작은 정동에서였으나 겨례의 수난과 함께

연지동으로 정능동으로 옮겨지다가 마침내 이 자리에 정착하여 오늘 맥

맥히 이어온 설립정신을 기리며 그의 슬기롭고 고귀한 모습을 가까이

하기 위해 여기 박사의 상을 세우노라.


5.10.2. 나기호 박사 흉상[편집]


파일:나기호_흉상.png

경신학원 3대 이사장 나기호 박사의 흉상이다.
1917년 경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도산 안창호[29]의 지시로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수행하였다. 이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상공부·교통부 장관, 연세대학교 교무처장·상경대학장을 역임하여 조국의 발전과 교육을 위해 헌신하였다.


5.10.3. 경신 개교 100주년 기념탑[편집]


파일:경신100주년.png

1985년에 경신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설립한 조각상이다.


5.10.4. 경신인상[편집]


파일:경신인상.png

경신인상 동상으로 연을 날리는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5.10.5. 4.19 혁명 추모비[편집]


파일:KS_419.png

4.19 혁명에 참여하여 순국한 경신고등학교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이다.
나영주 열사는 경무대 앞에서 총탄을 맞아 사망, 송영근 열사는 남대문로 5가에서 총탄을 맞아 사망, 권무웅 열사는 복부와 눈에 총상을 입어 후유증으로 1998년에 사망하였다.


5.11. 기타[편집]


본관 뒤편을 보면 성터로 보이는 담벼락이 있는데 본관 뒤편부터 경신중학교가 있는 후문까지 성터라고 한다. 그래선지 학교 옆 골목을 지나가 서울성곽을 올라가는 등산객들이 자주 보인다. 만약 서울시에서 성터를 복구한다고 했다간, 본관 화장실 건물과 운동장의 3분의 1, 그리고 중학교 축구부 건물이 소멸될 수도 있다고 한다. 법이 개정되기 전에 학교 건물이 완공되었다. 그렇기에 부수고 다시 지으려면 위에서 말한 성터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곳에서 지어야 한다. 이래서 이사가려고 했나보다.


6. 학교 생활[편집]



6.1. 주요 행사[편집]



6.1.1. 1학기[편집]


  • 입학식, 시업식
3월 첫 날 강당에서 하였으나, 요즘은 각 교실에서 진행한다.

  • 인성수련회
4월 경에 '인성수련회'라는 이름으로 이틀 동안 충무로영락교회 세미나실로 등교한다고 한다. 또한 신앙수련회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급에게는 20만원 가량의 상금을 주어 학급 회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대면으로 신앙수련회를 하기 어려워지자 비대면으로 진행했고, 가장 댓글을 많이 쓴 학급에게 상품을 주었다. 첫날은 예배, 찬양, 특강으로 이루어지며 두 번째날은 예배, 경신한마당 순서로 진행된다. 2018년 이전에는 찬양 순서때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와서 공연을 해주고 갔었으나 교내 비리 사건으로 인해 2019년부터는 오지 않는다.

  • 수학여행
주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었다. 2019년에는 5월에 수학여행을 갔었다. 2020년 기준으로는 10월, 2021년 기준으로는 11월 초순에 1,2학년 수련활동 및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모두의 예상대로 실제로 떠나지는 못했다.

  • 여름방학식
보통 7월 20일 전후에 있는 금요일에 하게 된다.


6.1.2. 2학기[편집]


  • 개학식
8월 15일 이후에 2학기 개학을 한다.

  • 추수 감사 예배
매년 9~10월 경 추수 감사 예배를 진행하며, 경품권 추첨 등의 이벤트가 들어있는 행사이다.

  • 세례식
고3이 수능이 끝난 뒤 세례 기간이 되면 세례 신청자를 받는다. 2019년 기준 세례를 받으면 10,000원의 문화상품권과 간식을 주었다.

  • 경신 음악회
매년 크리스마스 전후로 경신중학교와 함께 새문안교회에 가서 예배 형식의 음악회를 봤었다. 물론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중단된 상태.

  • 겨울방학식
12월 말일 경에 하며, 2월에 개학한다.


6.2. 학과[편집]


크게 진학반과 직업반으로 나뉘고 진학반은 문과반, 이과반으로 분류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시행 및 고교학점제 시범학교로 2019학년도부터 선택과목에 따라 반이 다양해졌다.


6.3. 야자 & 방과후[편집]


타 학교에 비해 야간자율학습이 굉장히 빡세기로 유명하다. 참여 여부는 자율이지만, 특이점이 있다면 방과후 학교와 연계되어 있어서 방과후와 야자 둘 중 하나만 하는 건 안 된다. 학년마다 학년부장의 스타일에 따라 방과후 운영도 달라져 매년 바뀔 수 있다. 야자실은 학년 별로 존재한다.


6.3.1. 1학년[편집]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30]

2013년에 신설된 1학년 야자실은 '양현재'라 하여 '현명한 인재를 키우는 곳'이라는 뜻이다. 본관 3층 소재. 책상은 교탁을 모로 보고 있어서 감독에게는 감시가 쉬운 구조를 지녔다. 학생들의 옆이 교탁을 향해 있고, 이 때문에 사각지대가 거의 없다. 야자 신청은 성적순을 끊지 않고 기존인원에서 추가모집만 받는다. 2022년 현재는 코로나 때문인지 9시 30분까지 야자가 진행된다. 시험기간에는 방과후 없이 4시 반부터 야자만 한다.


6.3.2. 2학년[편집]


절대 정숙, 오직 열공 [31]

2학년 야자실은 '홍문재'로 '학문을 넓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관 4층 서편, 2학년 1~2반 맞은편에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자리 배치는 1학년 양현재와 비슷하게 책상이 두 열로 길게 뻗어 있는 구조이다. [32] 그러나 과거에는 교탁과 평행하여 학생의 앞, 혹은 뒤가 감독과 마주보는 구조였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많았다. 마음먹고 공부를 하기에는 좋은 구조지만, 동시에 놀기에도 가장 좋은 구조라는 흠이 있어서 지속적인 논의 끝에 현재의 구조로 개편되었다.

여담이지만 의자에 바퀴가 달려 있어 의자를 타고 레이싱 게임을 한 세대가 있다는 전설이 있다. 한 교사가 감독하면서 야자실의 불을 다 꺼버리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본 흑역사도 있다. 이때 출석률은 10%도 안 됐다. 이게 학년 기획 교사[33]한테 걸려서 학년부장한테까지 보고되고, 학생들은 물론 감독 교사까지 제대로 혼났다. 힐링을 하기 위해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세대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러 갔는데 불은 꺼져 있고, 감독해야 할 사람은 앞에서 영화나 보고 있고, 애들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야자 신청은 성적순을 끊지 않고 50명 소수정예로 기존인원에서 추가모집만 받았고, 성적에 따라 '독수리반', '언더우드반'으로 나뉘었다고 하며,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4시간동안 자습을 했었다.

그런데 2021년 기준 야자 참여율이 매우 저조해서 그런지 일주일에 학원, 과외때문에 야자를 빠지는 것을 허용하는 횟수가 제한이 없어졌고, 원래 10시 30분까지였던 자습시간이 10시로 단축되었고, 결국 9시 30분까지로 줄어들었다. 결국 현재는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총 3시간밖에 자율학습을 진행하지 않게 되었다.

2022년 겨울방학(12월 30일 이후)부터는 사교육 제한적 허용,
인강 부분적 허용을 하고있다.


6.3.3. 3학년[편집]


3학년 야자실은 '도산재'. 명칭의 유래는 동문인 도산 안창호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유일하게 본관에 없고 도서관 건물에 있다. 3학년 교실과의 접근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


6.4. 교목실[편집]


선교사가 설립한 미션스쿨답게 교목실이 있다. 기독교 수업은 더러 많은 편.
우선, 매주 수요일 1교시마다 예배를 드린다. 예배는 주로 언더우드 기념관의 언더우드 채플에서 진행된다.
또한 매주 화요일, 목요일 조회시간마다 찬송가와 함께 전도사님의 말씀이 교실 스피커에서 나오게 된다.

예배가 끝나면 교목실에서 예배를 잘한 반을 선정해[34] 초코파이 종류의 간식류를 준다. 전에는 초코파이를 빌미로 묘하게 종교를 강요하는 느낌도 있었으나 2019년에 교목실이 개편되면서 간식 제공 빈도가 낮아졌다. 그 결과 간식으로 인한 갈등이나 문제는 줄어들었다. 원래는 ‘종교와 생활’이라는 정규 교과목이었지만 2020년부터는 '자율 활동' 시간에 편입되었다. 수업 진행은 목사 혹은 전도사가 진행하며, 수업은 담당자에 따라 케바케다.

인생 관련 상담을 해주거나[35] 영상[36]을 보여주는 사람이 걸렸다면 운이 좋은 거지만, 최악의 경우 기독교 강연을 들어야 한다. 이 경우 허술한 논리로 창조론을 옹호하고 진화론을 비난하는 내용[37]을 듣거나 기독교가 종교학적으로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한 내용이나 들어야 한다. 심지어 고3에게도 예외는 없다. 물론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학생들은 귀마개 낀 채로 목사 코 앞에서 공부를 하거나 게임, 수면 시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잦다.[38]

교목실에서 운영하는 아침 급식 제도가 있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멀거나 밥을 못 먹고 나오는 학생들을 위해 편의점 햄버거, 편의점 김밥, 편의점 샌드위치, 음료수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2022년도부터 코로나 확산 문제로 시행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코로나가 가장 심했던 20년도, 21년도에는 아침 급식을 시행하고 22년도 코로나 시국에 전학년을 한자리에 모은 기독교 축제를 행사하는 이유는 불문이다.[39]


7. 운동부[편집]


나머지 일과, 방과 후 프로그램 등은 이곳에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축구부와 유도부가 운영되고 있으며, 둘 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의 근대체육 보급에 많은 힘을 써왔다. 김용식, 채금석, 차범근, 박항서, 김진국, 윤상철, 유상철, 임채민, 신세계 등 유명 축구인을 배출했다.

야구부가 창단되어 1920년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준우승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7.1. 축구부[편집]


파일:경신고등학교.png

경신고등학교 축구부

창단
1904년
리그
전국고등축구리그
주요 우승
전조선축구대회
(1928, 1929, 1936)
춘계 연맹전
(1989 ~)
추계 연맹전
(1987 ~)

파일:1928_1.png
1928년 전조선축구대회 중학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신중학 축구팀 선수들



7.2. 유도부[편집]


파일:경신고등학교.png

경신고등학교 유도부

창단
1927년
주요 우승
전국학생유도대회
(1968, 1969, 1970, 1971 ~)
회장기유도대회
(1979 ~)
춘계중·고유도대회
(1979 ~)
축구부와 더불어 유도부도 매우 유명하다.
1927년 창단되어서 일제강점기 암울한 상황 속에서 배재, 보성, 중동, 휘문, 양정 등의 학교와 함께 한국 유도를 발전하는데 일조하였다.
한국 중·고등학교 유도의 변천에 관한 고찰

1969년 전국체육대회 우승을 기점으로 각종대회에서 위용을 떨치기 시작하여 70년대 초 구영회, 임채봉, 이유창 등이 중심이 돼 서울 지역은 거의 석권했고 전구체육대회와 중고유도대회 등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는 등 경신시대를 이끌었다.


7.3. 야구부[편집]


파일:경신_야구부.png
1954년 전국중고등학교야구대회에 참가한 경신고 야구부
경신학교 야구부는 1911년 창단되어 1920년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에 참가하였다. 이 때 준결승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14대 11로 꺾고 결승에 올랐지만 배재고등보통학교에 4대 2로 패해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 4구락부 연맹전[40] 맴버 중 하나였고 1950년대까지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주최한 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기록이 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이후에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7.4. 기타[편집]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토요스포츠-축구와 플로어볼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없다.


8. 출신 인물[편집]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이름
약력
강성모
제15대 카이스트 총장, UC 산타크루즈 교수[41]
강우영
대법관
강인덕
배우
강홍모
목사, 교육자, 전주대학교·전주영생고 설립자
강지환
배우
강훈
성범죄자
곽재기
독립운동가, 의열단원
구본웅
조각가, 화가
구상범
축구선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42]
권신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 정치인 , 코레일관광개발 사장
김규식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43]
김동리
소설가[44]
김두섭
정치인
김병수
전 축구선수, 현 감독
김상덕
독립운동가, 제헌 국회의원
김요환
육군 대장, 제49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45]
김용식
전 축구선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46][47]
김용철
육군 소장, 전 한미연합사단 부사단장
김원벽
독립운동가
김윤호
육군 대장, 제18대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김진국
전 축구선수,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김찬우
탤런트
김태수
전 축구선수
김호산
정치인
나기호
독립운동가, 연세대학교 학장
남택화
제32대 충북지방경찰청
노세극
정치인
노영학
배우
류영모
사상가, 교육자, 오산학교 교장
미티
웹툰작가[48]
민충식
독립운동가, 임시의정원 의원
박요찬
정치·법조인
박인석
독립운동가
박항서
축구선수,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49][50]
방우영
언론인, 기업가, 제5대 조선일보 회장
방정균
한의학 박사, 전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백남훈
독립운동가, 정치인
서병호
독립운동가, 제헌의정원 위원
성석제
시인, 소설가
송재우
야구해설가
신세계
축구선수
안영근
정치인
안종복
축구행정가
안창호[51]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52]
여운홍
정치인
연준석
배우
유상철
축구선수, 축구감독[53][54]
유석창
교육자, 의사, 건국대학교 설립자
유종근
배우
윤상철
축구선수, 축구감독[55]
이갑성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
이규삼
육군 중장, 전 강원도지사
이기영
배우
이동희
국어 강사
이만희
전 영화 감독
이병문
해병 대장, 제9대 해병대 사령관
이병욱
축구선수
이성재
정치인
이승오
육군 소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56]
이창록
정치인
이재홍
정치인
이태석
목사, 순교자
유재헌
목사, 순교자
윤덕여
축구선수, 대한민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정종덕
축구인
정태섭
배우
주영하
교육자, 세종대학교 설립자
정운수
독립운동가, 미합중국 공군한국광복군 장교[57]
정원관
가수
정재용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58]
조광래
제10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조봉호
독립운동가, 순교자
조희렴
독립운동가, 순교자
조희현
제28대 경북지방경찰청장, 제29대 전북지방경찰청
차범근
축구선수,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59]
채금석
축구선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예선 대표팀[60]
최국현
언론인, 정치인
최수영
정치인
케이헌터
가수
한상권
아나운서
홍민우
배우
홍익범
독립운동가, 기자


9. 출신 교사[편집]




10.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편집]



10.1. 버스[편집]


정류소 명칭
노선 번호
국민생활관
종로07, 종로08
삼선교.한성대학교 [61]
100, 102, 104, 106, 107, 109, 140, 143, 150, 151, 160, 162, 171, 172, 272, 273, 710, 1111[62]
성북동주민센터·동구마케팅고
1111, 2112, 성북02, 성북03 [63]
경신중고입구
홍익대부속중고등학교입구


10.2. 지하철[편집]


  •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은 4호선 한성대입구역이다. 위성상 거리 기준으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지만 오르막길 때문에 최소 10분은 잡아야 한다.
  • 4호선 혜화역에서는 종로08을 타고 오면 정문에 도착한다.


11. 사건 사고[편집]


제도권 언론 및 계열 브랜드 언론에서 보도한 경우에만 서술합니다.


11.1. 교내 대형 싱크홀 발생[편집]


파일:경신고싱크홀.png
동아일보 기사
서울신문 기사
2022년 6월 29일 낮 12시 29분 경 학교 본관 바로 앞에서 갑자기 도로가 붕괴했다. 다행히 도로 위를 지나가던 사람이 없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하루에도 수백명의 학생들이 들락날락하는 멀쩡한[64]이 붕괴했으니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인근 주택에 사는 주민들도 급히 대피했지만, 학교 측은 휴업, 온라인 수업 전환과 같은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고 한동안 우회로를 통해 등하교하도록 했다. 싱크홀은 일단 복구된 상태.

학교 한복판이 무너져내렸고 만일 당일이 시험기간이 아니라서 점심 먹는 학생들이 오갔더라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났을 것임이 명명백백한데도 한 번의 요행으로 참사를 피한 학교 측은 그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이 사건을 덮기에 급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29일날 서울 시내 고등학교 한복판에 거대 싱크홀이 생겼는데도 그 어떤 신문사도 기사를 내지 않다가 7월 1일 조희연 교육감의 방문 이후에야 일제히 기사를 내기 시작해 언론통제 논란이 일었다.


11.2. 특정 교사의 중간고사 부적절 표현 삽입 및 좌편향적 교육 문제[편집]


유의 사항
[ 펼치기 · 접기 ]
2021년 12월과 2022년 1월에 걸쳐, 본 항목의 내용 중 물의를 일으켰던 해당 교사(A씨)임을 자처하는 이용자가 '개인과 본교의 명예에 누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용자들 간의 사전 협의 없이 경신고등학교 문서 전체를 삭제하고, 이에 따라 운영진이 문서 반달을 복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는 엄연히 나무위키 운영 관리 방침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편집 및 이용과정에 자칫 이용자의 자유와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겠다는 방침 하에 개설된 나무위키의 기본 정신에 위월되는 내용이 간섭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 바, 2022년 1월부터 본 항목에 관한 서술 시 <아래>와 같은 제한 조건을 추가하여 '이용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당사자 및 본교의 명예'를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분쟁 발생의 여지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다음과 같이 강화된 자체 편집 규정을 적용한다.
<아래>
1. 사건의 중심에 놓인 교사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에 관한 서술은 어떠한 형태로든 제한한다.
이에, 해당 교사의 이름을 서술할 때에는 'A씨' 또는 'A 교사', 'A모 씨'의 명칭으로 한정한다.
하물며 해당 교사의 담당 교과목, 운영 동아리명 등과 같은 정보들도 간접적으로 교사의 신원을 추측할 수 있는 정보에 해당하므로, 서술 상의 제한을 둔다.
2. 지나치게 감정적 내용이 포함된 서술 등도 나무위키가 추구하는 객관성이라는 최소한의 가치와, 나무위키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독자에게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기본 지침과 대척될 수 있는 요소가 있으므로, 해당 논란과 관련이 있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재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3. 편집 상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절대 사전 합의 없이 문서를 삭제하지 않는다. (사전 합의나 토론을 거치지 않고 문서를 삭제하는 경우 나무위키의 운영 관리 방침에 따라 이용권이 제한될 수 있다.) 대신 이의 제기, 토론, 삭제 요청 등 적절한 절차를 거쳐 절충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합당하며, 토론을 할 경우 참여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합의점을 합리적으로 도출함으로써 서술이 공정해질 것이므로 적절한 절차를 우선 거쳐야 한다.

[ 펼치기 · 접기 ]
  • 2014학년도 제1학기 중간고사 국어 시험 문제에서 전국민적 정서 상 민감한 내용인 세월호 참사를 다루며 '홍어', '전라국' 등 특정 지역을 비방하는 부적절한 표현이 나와서 대중들의 많은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출제 교사가 세월호 침몰 사고에 관련된 인터넷 반응을 보기로 제시하며, 이런 댓글 반응을 보고, 온라인 상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가장 적절한 것을 찾는 국어 시험 문제를 낸 것인데, 이 문제의 보기 예문으로 제시된 5개의 댓글이 모두 '홍어', '전라국' 등 특정 지역에 관한 차별적 표현을 포함한 부적절한 문장이었고, 이를 한 재학생이 SNS에 공유하며 이 사태가 촉발하게 된 것이다.

아래는 부적절한 예문으로 인해 한동안 학교와 인터넷 사회망을 떠들썩하게 했던 논란의 2014학년도 1학년 1학기 국어 시험 문제의 원안이다. 해당 문항은 통신 매체 이용자들의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일지를 찾을 것을 지시하고 있다.

 
19. 아래는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한 인터넷 댓글이다. 이를 통해 디지털 통신 매체 사용자들이 취해야 할 자세로 가장 적절한 것을 전체적 맥락 속에서 찾으시오.
 
* 전라도 홍어들이 고향 용궁으로 돌아가겠다는데 왜 막냐…
* 간만에 전라도에서 흐뭇한 소식이네… 염전 조심해라? 점심 신나게 홍어탕 먹어야지
* 역시 또.. 설마 했더니 전라국이네요.. 아무리 대한민국서 제일 가깝고 가기 쉬운 해외라 해도 전라국으로 여행가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어요
* 사고소식을 들으니 안타깝군요. 부디 무사하길 바라며 선박사고와 전라도 섬노예[1]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 아니 잘 가던 배가 왜 하필 전라도에서 좌초됐을까
 
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검증하고 타당성을 확인한다.
② 광고성 정보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도록 한다.
③ 선정적 정보의 유통으로 인한 진지함의 결핍 등에 주의한다.
④ 매체가 항상 올바른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다.
⑤ 수동적 수용으로 세계와 자신의 인식 세계가 왜곡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위는 논란이 된 시험 문항인데, 이를 아무리 읽어봐도 도대체 정답이 몇 번인지를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정답이 ⑤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나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정답이 ⑤번이어야 하는지 적절한 설명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납득되지 않는 시험 문제이다. ④번 선지 역시도 어떻게 보면 정답에 해당할 수 있고, ③번도 넓은 의미의 '선정적임'을 생각한다면 정답에 해당할 수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문제를 정기고사 문제랍시고 출제한 것인데, 이런 문제가 과연 학생들의 학업 역량을 평가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인지, 그 적절성부터가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로 인해 단원고 2학년 학생을 비롯한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전국민이 하나같이 애도에 빠진 상황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이 죽은 소식을 '흐뭇한 소식'이라고 표현하거나, 희생자들의 죽음을 '고향 용궁으로 돌아간다'고 비유하는 등의 반인륜적인 내용을 모든 학생들의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와 학습 역량를 정량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교내 공식 지필평가의 시험 문제의 예문으로 포함시켰다는 것은 정말 인간으로서 봐줄 수 있는 선이 아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에 가던 중 안타까운 참사로 인해 차디 찬 바다 속에 가라앉는 와중에도 단원고 교사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학생들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고, 학생들을 지키지 못한 단원고 선생님은 그 죄책감에 극단 선택을 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 문제를 출제한 A교사는 교사로서의 이런 책임감을 갖기는 커녕,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세력을 공격하자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마음에 두 번씩이나 상처를 입히며 커뮤니티 일각에서 긁어모은 반사회적인 댓글 자료를 시험 문제에 포함시켜 이 시험을 응시하는 학생들에게도 충격을 안겨준 것이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흐뭇한 소식'으로 희화화하는 내용을 출제해놓고서도 과연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진정성은 있는지 의문이며, 이런 행동은 어떠한 정당성도 결여되어, 사회적으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내용이다.

시험 출제자 A씨가 단순히 이런 내용을 사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더라도 논란거리가 될까 말까 한데, 공식적인 시험 문제에 이런 내용을 포함한 것은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난 비상식적 내용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실제로, 이 문제에 포함된 심각한 비하적 표현을 보고 분노에 찬 누리꾼들은 해당 출제 교사가 상식 이하의 짓을 저질렀다고 비판하며 파면할 것을 요청하거나 교사의 자질이 의심된다며 이 교사로부터 배우는 순수한 경신고등학교 학생들이 가엽다는 식의 반응을 남겼으며, 다음과 같이 원색적인 비판을 남겼다. #

이 소식은 언론사에게까지 전해져 기사화되었고, 관련 기사를 읽은 네티즌들은 이 기사 댓글창에 하나같이 위와 같은 심한 비판을 쏟아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 교사의 신상을 털어 신상 정보까지 게시하는 등 분노에 찬 모습도 보였다.

이 뿐만 아니라 여러 네티즌들이 출제자의 부적절한 행태를 비판했고, 특히나 출제자가 전라도 비하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출제자가 사건 당시 여당의 핵심 지지층인 영남 지역 출신일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경상도민들에 대한 비하 표현을 담은 댓글까지도 썼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베 회원인 우편향 교사가, 호남 지역에 대한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위해 전라도를 비하한 사건으로 보일 것이지만, 사실은 이게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기사, 다른 언론사가 쓴 기사, 또 다른 언론사가 쓴 기사를 비롯해 다양한 기사들이 실체적 진실에 관해 왜곡해 전달한 것이다. 위 기사를 읽어보면 '선생님이 일베하는 것 같아요', '일베 국어 교사'와 같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잡고 A씨를 일베 회원인 듯하게 서술해놓았지만, 사실 A씨는 정확히는 일베가 아니라 친민주당 성향전라도 출신 교사이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교감 선생님이 오히려 전라도가 고향이신 분이라고 써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본인이 어떤 가치관을 지녔건 관계는 없지만, 본인이 싫어하는 정치인이 집필한 책을 가지고 온 학생에게 핍박하며 책을 집어던지는 행위 등은 본인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며 절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렇게 이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A씨가 친민주당 성향임에도,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A씨가 호남 지역을 비토하는 보수 정당 지지자일 것으로 오해하고 당시 친여권 세력과 여당 지지자들[2]을 싸잡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나 이 교사가 호남 지역에 대한 지역 감정을 유발하여 사회 혼란을 부추긴다고 판단한 누리꾼들의 댓글도 다수 남아있다.

하지만, 실제 사실 관계가 확인된 바, A씨는 오히려 새누리당을 혐오하는 친민주당 성향을 띤 호남 출신인이었고, 평소 편향적 가치관을 가지고 수업 시간에 발언을 하기도 한다. 호남 출신 교사가 왜 하필 시험문제에 주어진 예문 5개를 모두 호남 지역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채운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텐데, 사실 이 교사가 본인의 정치색을 드러내며 극우 성향 일부 사람들의 무지함을 밝히겠다는 명목 하에 이 문제를 출제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호에 탑승했던 304명의 안타까운 희생을 비하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고, 자칫 A씨를 극우 교사로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많은 학생들이 이 교사가 일베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 기사들만 보고 이 교사를 일베로 오해하고 있는데, 이는 오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친민주당 성향의 교사가 시험 문제에 '홍어'와 같은 차별적 표현을 넣은 것은 인터넷 예절상 올바른 태도가 무엇일지를 고르는 문제에서 잘못된 인터넷 예절 보기를 준 것으로, 정확히는 '일베를 까려고' 낸 문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일베를 까는 내용의 문제가 왜곡되어 일베의 편을 들어준 것으로 와전된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지지자인 사람이 엉뚱하게 극우로 몰리게 셈이다.

이에 사건 당시 교감이었던 현재 교장은 "해당 선생님이 인터넷에 올라온 전라도 비하 댓글을 개탄하며 학생들에게 바른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문제를 냈다"라고 밝히며 이 사건을 덮고 옹호하려는 태도를 보여 몇몇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경향신문일요신문 등 언론사들은 이런 명백한 오보를 내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해놓고서도 정정 보도 하나 안 냈다. 게다가 시험 문제의 의도는 '올바른 태도'를 고르는 것이었지, '올바른 댓글'을 고르는 것이 아니었는데,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올바른 댓글 하나를 고르는 문제였다고 소개했다. 모두 명백한 오보였다. 언론보도윤리강령에 따라, 오보를 냈다는 사실이 발견된 때에는 즉시 그 오보를 정정한 올바른 보도를 내고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함이 마땅한데, 경향신문을 비롯한 다수의 언론사들은 이 기사가 사실관계와 맞지 않은 명백한 오보임이 확인되고 나서도, 잘못된 보도에 대해 솔직하게 시인하거나 신속하게 바로 잡기는 커녕 아무 후속 기사도 올리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으며, 이는 경향신문 등의 언론사에서 명백히 공정보도윤리를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기사를 읽은 네티즌들은 학교 홈페이지에 방문해 다음과 같은 시험 원본이 올라와있는 것을 확인했고, 이를 다운받아 확인한 뒤 맘카페 등에 이 시험 문제 원본이 공유되며,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다.
파일:2014경신고1국어시험예문.png

실제로 이 교사가 아무리 일베를 까려고 문제를 냈다는 출제 의도를 밝혔다 할지라도, 공식적인 지필 평가 문제에 특정 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담은 표현을 서슴치 않고 써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이 분분했고, 이런 부적절한 예문을 사용한 것 자체부터가 교육 현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령 히틀러를 비판하려고 히틀러 지지자들의 맹목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히틀러 찬양 시를 보여주는 것이 적절한가? 이와 같은 논리를 적용해보면 해당 시험 문제를 만든 A씨가 사려깊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겠다. 또한 본인이 일부러 일베 게시판에 들어가보지 않고서야 그런 반응들을 어떻게 수집했겠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일베의 심각성을 알려주기 위해서 저런 예문을 사용했다고 하자니 교사의 자질이 의심될 뿐 아니라, 아무리 이 사회 문제를 일깨워주려는 의도를 갖고 출제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국의 다른 수많은 교사들은 19금 예문이나 자극적인 사건사고의 내용을 예문으로 내진 않는다. 이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교사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교육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채 예문을 보고 학생들이 모두 일베에 대해 본인의 의도대로만 해석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문제인 것이다. 학생들 중 일베가 뭔지도 몰랐던 전라도 비하 용어에 대해 듣지도 보지도 몰랐던 학생들도 관심갖게 될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이 교사의 책임 소지는 명확하다.

학교는 이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이에 대한 항의 전화들로 인해 카오스에 빠졌으며, A씨는 결국 시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A씨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기는 커녕 '시말서 낸 건 상관없는데 내가 혐오하는 집단의 수괴가 된 것 같아서 불쾌했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시말서라는 개념부터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해당 사건의 경위에 관해 자세히 적은 문서인데 '시말서 낸 걸 상관없다'고 표현한다는 것은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는 것을 표현하므로 시말서의 내용으로써는 매우 부적절하며,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게 아니라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시말서 낸 게 전혀 상관 없었는지, A씨는 2024년 현재도 이 학교에서 해고되지 않은 채로 교내에서 극좌 성향의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 교사를 아직도 일베라고 잘못 알고 있는 학생들이 많은데 일베가 아니라 호남 출신 민주당 지지자이며, 지역주의에 매몰되어 정상적인 보수나 중도마저도 싫어하는 수준이다. 특히 수업시간에 자기 편이 아니면 다 수꼴이라고 몰아가는 등의 의식 수준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냐면, 수업 때에 자신이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했고, 전라도 태생이며 자기가 학생 때부터 사이클에 들어가 각종 토론활동을 하고 학생 운동을 했던 것을 자랑하고 다니고, 평소 마오쩌둥을 찬양할 정도이며, 보수 정당 지지 연예인들을 욕한다.

이외에도 A씨는 자기가 이전에 경상도 출신 판사와 싸운 얘기를 하며 영남 지역에 대한 부정적 지역감정을 조장하려 하기도 한다. 이는 본인이 전라도 지역 비하 용어를 사용하는 실태를 보여주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려던 의도와는 정반대이다. 전라도를 욕하는 건 굉장히 뭐라 하면서, 정작 본인은 경상도를 욕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A씨는 진보 정당 쪽에 가까운 성향을 띤 사람들도 자기 생각과 다르면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한다. 예컨대, 진보 성향에 가까운 연예인 이효리가 예능 프로에서 본인이 '마오'라는 예명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했을 때, 이 발언이 마오쩌둥 중국 전 국가주석을 모욕했다는 중국 네티즌들의 십자포화를 받아 국제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교사는 이효리를 비판하는 중국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하며 이효리가 '생각이 없이 산다'며 욕설을 했다. 이어 "마오쩌둥이 중국 초대 주석으로 현대 세계를 바꾸어놓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고의 영도자인데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마오'라는 이름을 함부로 말하다니 얘가 처음에 미친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오는 우리나라의 김, 이, 박씨처럼 중국의 흔한 성씨 중 하나일 뿐 마오쩌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 발 양보해서 이효리가 '쩌둥'이라는 이름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했으면 이는 충분히 비난 받을 소지가 될 만 하다. 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세종대왕은 '이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까 외국인들이 나는 예명을 '이'로 하겠다 라고 하면 우리 나라 모든 사람들은 들고 일어서서 감히 우리의 세종 대왕을 모욕하냐는 식의 억지 논리나 다를 바 없는 셈인데, 이런 논리 구조를 갖춘 중국인들의 일방적 악플을 옹호하며 되도 안한 이유로 몰아가며 맹비난을 하는 행위는 부적절하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인들의 국수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며 악플을 남긴 중국인들이 나쁘다 여론을 형성했는데, A씨는 오히려 악플을 당한 피해자에게 욕을 하였던 것이다. 연예인이 싫으면 그냥 혼자 싫어하면 될 것이지, 악플을 남긴 중국인들을 옹호하며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어조로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심지어는 박원순 사망 직후 수업시간에 박원순 영결식을 틀어주며 그간 서울시장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며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해야 한다고 하며, 정치적 세뇌교육을 한 적도 있다.[3] 수업시간에 뉴스나 정치 관련 유튜브를 틀어놓고 당시 미래통합당 소속 국회의원에 대해 욕설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어 박원순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같은 날에 백선엽 장군이 사망했다는 이슈를 설명하며, 백 장군이 일제강점기 때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전력을 소개하며, 이렇게 나쁜 인물인데 백 장군을 추모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며 백선엽 장군을 향해 심한 욕설을 섞어가며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하지만, 모든 인물에 대해서는 '공'과 '과', 다시 말해 업적과 과오가 있고, 역사적 인물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의 밝은 부분은 밝은 부분대로, 어두운 부분은 어두운 부분대로 인정하고, 종합적인 평가를 내려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백선엽 장군 역시도 역사적으로 평가를 할 때,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과오가 있긴 하지만, 6.25 전쟁 당시 한반도조선인민군 세력에 의해 적화통일될 위기에 빠졌을 절체절명의 순간에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활약을 해서 우리나라를 구해준 명장이라는 큰 업적도 있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에 대해 현명하게 종합적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는 부정적 측면 뿐 아니라 이런 업적들과 활약상도 함께 고려하여 평가를 함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A씨는 백 장군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밝은 면은 완전히 외면한 채 오직 과오에 대해서만 강조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해 뭣도 모르고 있는 순수한 학생들에게 다짜고짜 '이 사람은 위험하고 부정적인 '악당''이라는 식으로 단정지어 평가를 내린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이런 내용을 듣게 된다면 이 교사의 개인적인 의견을 역사적 사실인 양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국가공무원법상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크게 위배한 것이다.
게다가 이런 발언을 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니들은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는데, 이 사람의 어조로 보아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비정상인이라는 식의 어조로 질문을 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 사람은 일제시대때 이러이러한 나쁜놈이야, 저런 것을 장례를 치르자고 하는 XX을 하냐?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는면 이건 뭐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거의 답정너 수준의 강요 아닌가? 이런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본인의 사고 방식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을 뿐이다.

반면 같은 시기에 사망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는 성폭력이라는 가장 큰 과오는 덮어둔 채 오직 시장 시절 업적들만 이야기하며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는 업적은 무시하고 오직 과오만을 언급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 같은 시기 사망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는 오직 업적만을 이야기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전인수식의 모순이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겠다. 사자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사자에 대해 평가하는 기준이 왜 같은 시기에 죽은 두 사람인데도 그렇게 극명하게 차이가 있을 수 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으며, 교사라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개인적 평가를 강요하는 어조를 보여서는 안 된다. 이는 이 사람이 교사로서 보여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백 장군 별세 이후 백 장군의 장례를 지내는 사람들 조차도 비난하는 반인륜적인 모습도 보였는데, 이런 반면 자기가 지지하는 박원순 전 시장의 장례를 수업시간에 보여준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자가당착에 빠지는 논리로 학생들을 호도하려는 것은 크나 큰 문제라고 본다. 이렇게 궤변론자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니 학생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뭘 배울 수 있겠는가.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갖추어진 학생들이야, 교사가 수업 시간에 뭐라 말하든 본인이 잘 판단하고 걸러 들을 내용은 알아서 잘 걸러 듣겠지만, 아직 가치관이 덜 형성되었거나 비판적 분석력과 독립적 판단력이 발달하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에는 교사가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게 될 염려가 있다.

특히나 고교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가치관과 신념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놓인 청소년기의 학생들을 교육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중요한 사람인 만큼, 그만한 사려깊은 언행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 교사는 본인의 편향으로 점철된 사상을 심어주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발언하는 모습만을 보이는데, 이런 행동을 지속하는 것은 굉장히 부당하다는 의견이다.

교사 본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공무원 신분의 '교육자'라는 사람이 학생들을 자기 편으로 세뇌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며 발언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며, 이것은 곧 교사로서의 자질과도 큰 관련이 있다.

또한 A씨가 운영하는 토론 동아리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동아리 시간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직무집행정지가 내려진 상황에 대해 다루는 동아리 수업을 기획[4]하였는데, 이 교사는 '검사의 판사 사찰 논란' 등의 내용을 다루는 과제를 내어 검찰과 윤석열에 대해 비난을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검찰의 판사 감찰에 대해 '사찰'으로 규정하며 학생들에게 검찰에 관해 악의적 감정을 심어주기 위해 검사의 판사 사찰 논란에 관한 동아리 활동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였는데, 이 과제를 부여받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검찰과 법무부 중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 법적 논란이 많았고, '사찰'이 아닌, 검찰의 정당한 직무감찰이라는 의견도 존재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주장하는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은 무조건 선하고 반대자는 무조건 악하다흑백논리를 내세워 한 쪽을 비판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교육활동을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아직 정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한 쪽의 입장만을 수용하는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배타주의에 의한 오류에 불과하다. 이런 한 쪽으로 치우친 진영논리에 기반한 주장들은 학생들에게 정치극단주의의 위험성을 일깨워주는 행위일 뿐 일말의 교육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도리어 대부분의 현명한 학생들은 저런 극단주의적 행태를 보고 극단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다.

정말이지 책을 안 읽은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무서운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 말인 즉, 특정 사관에 매몰되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협성과 비뚤어진 역사관, 그리고 파시즘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극단적으로 사고하는지, 그 위험성을 표현한 말이다. 실제로 모 학생이 우편향적 도서를 갖고 오자 화를 내며 가볍게 집어던지는 행위도 보였는데,

책을 안 읽은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무서운 것이다.

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토론 동아리의 활동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민감한 정치적 분쟁의 소지가 있는 현안을 주제로 보고서 작성 활동을 진행한다는게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반지성적 배타주의에 기반해 특정 세력만을 무조건적으로 공격하는 의도를 가지고 동아리 활동을 기획하는 것은 그 어떠한 교육적 의미도 결여된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수업 시간 중 PPT 발표를 할 때에, 어떤 사례에 대해 정부의 책임이 있음을 언급한 학생에게, 이런 사례를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고, 네가 아직 어려서 뭘 제대로 모르겠지만 크면 알게 될거다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담이지만 A씨는 이렇게 지나친 정치적 편향성 뿐 아니라 고리타분한 수업 방식으로도 교내에서 유명하며,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교사로도 유명하다. A씨와 소통이 이루어지기란 매우 쉽지 않다는 학생들이 많으며, 말할 때에 목소리가 작은데다가 굉장히 더듬으면서 말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알아듣기 다소 힘들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A씨의 고향이 전라도인지라 전라도 말씨를 섞어 사용하기 때문에, 표준어를 사용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알아듣기가 다소 어렵기도 하다. 경신고 학생으로 추정되는 한 네티즌은 해당 사건과 관련된 기사에 평소 수업 방식과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좋지 못하다며 비판적 답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가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출석번호가 23번까지밖에 없는 반에서 자꾸 38번을 찾는다. 이 교사가 수업 중에 밝히길, 자신이 과거에 고3 담임을 맡았던 한 학생이 졸업 후 몇 년 뒤에 자기를 보러 찾아왔는데, 인사를 하니 "안녕, 네 고3 담임선생님 만나고 와"라고 반응하며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학생은 이 교사의 학급 학생이었고, 이 교사를 보러 온 것인데, 불과 몇 년 못 봤다고 네 고3 담임 만나고 오라고 했다며, 나중에 이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물론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과거의 학생을 일일이 기억하기란 어려울 수도 있지만, 불과 몇 년 전에 본인이 직접 맡았던 학생을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본인이 담임으로서 너무 무심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A씨는 학생들에게 욕설이나 구박을 자주 하기 때문에 비호감도가 높은 편이다. 실제로 A씨가 구박할 때 한번 받아주기 시작하면 계속 갈굼당한다. 특히나 만만해 보이는 학생들을 위주로 갈구기 때문에, 여기서 한번 잘못 찍혔다간 졸업 때까지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해진다.

또한 A씨는 학생들의 경제적 수준으로 차별적 발언을 하기도 한다. USB가 없냐고 따지면서 부모의 경제적 수준을 운운하거나, 이미 에어팟 2세대가 나왔는데 왜 기능 떨어지는 1세대를 쓰고 있냐고 구박하기도 하고(...) 학생들 휴대폰 기종을 가지고도 차별한다. 정작 본인 휴대폰은 좋은것도 아니다 학생들이 좋은 휴대폰을 가졌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경제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휴대폰을 가졌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경제력이 없는 집안이라고 속단하는 것 부터도 논리적 오류이고, 무슨 일이든지 자기 중심적으로 왜곡해서 차별을 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경제적 수준이 실제로 높건 낮건 관계없이, 모든 학생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따뜻하게, 차별 없이 대해주어야 할 교사라는 사람이 본인의 생각에 매몰되어 치졸한 행실을 보인 것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학생들이 교실의 컴퓨터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출석부로 뒤통수를 후려갈긴 적도 있다. 아무리 그릇된 행동을 했을지라도 학생들을 신체적인 수단을 이용해 혼내는 것은 학생인권조례에 의해 정당하지 못하며, 이 학생들이 하지 말라는데도 계속 한 것도 아니고 처음 걸린 것인데도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교육현장에서 이런 식으로 교육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 교사 본인만큼은 모르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패드립도 하는데 듣는 사람 입장이 되면 참으로 어이가 털릴 지경이다. 어찌 보면 이 역시도 폭언을 사용하여 학생에게 상처를 남긴, 넓은 범위의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이도 한참 어린 학생들에게 패드립을 하며 상처를 주고 싶을까 학생들 사이에서도 A씨가 교사가 된 것이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능가하는 미스터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교사가 역설적이게도 인성교육은 강조한다. A씨는 2008년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등학교 교육에서 '인성교육'이 상실된 현실을 통탄하다고 여기며,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취지의 언론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에서 이 교사는, "비교하게 되는 학생들이 만약에라도 생기게 되면 진행을 못하죠. 포기를 해야죠. 숨막히는 경쟁이 돼버릴 것입니다, 아마. 인성 교육이 아니라."라고 답변하며 인성교육이 소홀해진 교육 현장을 비관하는 어조로 인터뷰했다. 하지만 A씨의 과거 행적으로 비추어 보아, 출석부로 머리를 때리거나 교사의 권위를 내세워 학생들을 협박하는 사람이 저렇게 인성교육을 강조한다는 것이 우스울 지경이라는 반응이 중론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학교 측에서 교장, 교감 등의 책임자들이 시험문제를 철저히 검사해서 그런지 요즘 A씨의 시험 문제는 정상적인 편이다. A씨는 요즘들어 고전문학을 주로 수업하고 관련된 문항을 출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의 시험문제들보다는 편향적인 내용이 간섭할 우려가 덜해졌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A씨가 이전에 편향성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더 문제 일으켰다간 학교 입장에서도 굉장히 곤란해질 것이고, 심각한 논란 속에서도 겨우 버티고 있던 경신고에서의 입지도 장담 못 할 것이기 때문에 특히나 요즘 들어서는 시험 문제에서만큼은 편향성이 들어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는 듯 하다.

하지만 A교사를 자처하는 이가 개인과 본교의 명예에 누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문서 전체를 삭제한 적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행동을 되돌아보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학생에게 패드립을 하거나 출석부로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핍박하는 행동이야말로 그 당하는 학생의 명예에 누가 되는 행위이며, 본인과 학교의 명예에 누가 되고 있는 건 이 문서에 적힌 본인의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의 정치극단주의적 교육과 시험 문제 논란 이후 본인의 반성 없는 태도야말로 진정코 본교의 명예에 누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의 과오 때문에 생긴 일을 가지고 남탓을 하고 변명만 늘어 놓을 것이 아니라, 이 시험을 응시하며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은 학생들, 학부모들과 관련 기사를 접한 전국민에게 부적절한 예문으로 인해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잘못을 시인해야 할 일이다. 물론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 선정으로 인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 것도 문제점이었지만, 만약 언론사들마저도 이 시험 문제에 관해 공론화하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을까? 물론 본인이 시말서를 쓰게 되어 언론사의 자극적인 기사 작성이 괘씸하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고 학교 전체에 물의를 일으켜 힘들었던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본인이 한국 역사상 벌어진 최악의 선박 비극을 희화화시키는 내용을 시험 문제에 포함시키고서는 자기 의도가 그게 아니었다며 나는 오히려 언론에서 까발려진 피해자라는 식으로 일관하며 일말의 사과와 반성도 없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치 뉴스를 틀어놓고 반대편 국회의원들을 욕하거나 마오쩌둥을 옹호하고 수업시간에 박원순 시장의 장례식을 틀어주는 등 편향적, 폭력적 교육을 보이고 있는 행태가 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문서를 편집하며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며 이 사건의 본질을 오직 언론사 탓으로 돌리며 희석하려고 하고 있는 것인데, 이 사건의 본질은 언론의 무책임성이 아닌, 교사의 무책임성과 부도덕함이며, 아무리 이에 대한 기록을 지우려 애써도 본인의 도덕적 가책과 도의적 책임은 면치 못할 것이다.



12. 기타[편집]


  • 아침에 가끔가다 교복 단속을 한다. 안전생활부장 교사가 학교 건물 입구에 서서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은 학생들을 잡으려고 대기타고 있는데 슬리퍼를 신고 등교하는 경우에도 얄짤없이 걸린다. 처음 걸리면 한두번 욕먹고 끝나지만 이게 여러번 상습적인 사람이 되면 또 심각하게 곤란해진다. 교복 단속을 안 하는 날이 더 많은데, 가끔가다 잘못 얻어 걸릴 수도 있다. 등교 시간이 7시 50분까지인데 10분이 지나면 단속도 안 한다. 걸릴 것 같으면 기왕 지각했다면 10분만 더 기다렸다 들어가라
  • 현재 60년대생 후반, 70년대생 출신 졸업생들 사이에서는 이대부고가 금란여고랑 합쳤듯이 본교도 연세대학교와 합쳐서 연대부고가 되어야만 학교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농담이 밥 먹듯이 돌아다녔다.
  • 학교에 등교하면 휴대폰을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아예 입학 전에 휴대폰 제출에 관한 서약서를 쓰기 때문에 마음대로 안 낼 수도 없는 구조. 하지만 담임교사별로 약간 안 내도 봐주는 식으로 관대한 경우도 있는데, 이러다가 한 학급 학생들이 단체로 휴대폰을 내지 않은 현장이 발각되어 모두 압수당한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 하교 시간에 학교 쪽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담을 넘어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 학교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남교사들의 헤어스타일이 비슷하다. 이 때문에 경신에서 근무하게 되면 곧 탈모가 생긴다는 괴담이 있을 정도.
  • 운동장에 펜스가 쳐 있어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이 있는 부분으로만 출입이 가능하다. 근데 심지어 문도 잠겨있는 경우가 있다.
  • 2013년도에 경신중·고교가 서울성곽 복원과 종로구의 학령인구 감소라는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강남구 세곡동으로 이전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65] 이전 시 성균관대학교가 해당 부지를 매입해 캠퍼스로 사용하고 경신고등학교는 남녀공학으로 바뀐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결국 무산되었고 경신고가 이전하려고 했던 세곡동 보금자리지구에는 풍문고가 들어서게 되었다.
  • 2016년부터 Mr.Kyungshin라는 이름으로 보디빌딩열었다. 전직 운동선수였던 체육 선생님의 제안이 이렇게 실현되었다. 네임드들이 찬조출연한 것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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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A B 2023학년도[고등학교] [총동문회] [1] 연세대학교의 설립자이다.[2] 건국대, 세종대, 전주대 설립자[3] 근처에 배재학당, 이화학당, 경희궁 등이 있었다.[4] 연세대학교와 역사적으로 연결되었기에 연세대 대강당에서 함께 진행하였다.[5] 경신학교 축구부 창단 117년만에 정식규격 잔디구장을 갖게 되었다.[6] 근데 왜인지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면 언더우드 전형이라며 장학금을 준다. 근데 연세대 입학생이 고려대 입학생보다 적은 건 모순의 모순의 모순[7] 이 때문에 학생 대부분이 퇴학당해서 1920년 졸업생은 단 1명이었다.[8]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신앙교육 금지에 저항하다가 학교운영권 박탈[9] 숭실학교도 같은 이유로 폐교당했으며, 학교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역사이다.[10] 현 성북구 정릉동[11] 신앙수련회 당시 동문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12] 당연한 얘기지만, 부장, 기획 교사는 자신의 담당 과목 커리까지 겸한다. 결과적으로 팀(?) 구성은 4명 정도[13] 담임은 물론 야자도 전담한다. 3년동안 주 5~6회 6~12시간 이상 보고 산다고 생각하자. 애정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14] 하지만 경신학교 설립연도(1885)와 혜화동 교사 착공연도(1955)는 다르다.[15] 6.25 전쟁 당시 정릉동에 있었던 학교 건물이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16] 미션스쿨이라 그런지 예배당 형태이다.[17] 본관 동편에 붙어있는 갈색건물[18] 서편과 헷갈리지 말자. 서편에 있는 건물은 도서관이다.[19] 측정 결과 108m라고 한다[20] 휴지가 없다.[21] 음악실이 총 2개이고 나머지 하나는 예체능관 3층에 있다.[22] 본관쪽에서 신관으로 들어가면 입구 층이 바로 2층이다[23] 하지만 신관 5층이 이름만 5층이고 실질적으로는 4층이라 올라가는게 귀찮을 뿐 체감상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24] 파일:경신고등학교 급식실 입구.jpg [25] 예전 급식실이었던 자리는 운동기구들이 있고 매점만 덩그러니 남아있다.[26] 음악실에는 책상과 걸상이 붙어있는 일체형 책걸상이 있고, 미술실은 매우 좁다[27] 한국 이름은 원두우[28]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 등산로와 한양도성 산책로, 중고등학교, 식당, 상점들이 바로 옆에 있고, 지하철과 버스정거장이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유동인구가 많다. 고지대에 있는 게 약간 문제긴 하지만 바로 옆에 도로가 있어서 차로 통행이 용이하다. 돈을 떠나서 상당히 가치가 있는 땅으로 보인다.[29] 당시 임시정부 내무총장[30] 양현재 야자실 뒤쪽 벽에 붙어 있는 문구.[31] 홍문재에 붙어있는 문구.[32] 마치 한자 冊과 비슷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33] 그 학년의 1반 담임[34] 예배드리는 시간에 교사가 돌아다닌다. 때문에 초코파이가 간절한 반에선 자고 있다가도 교사가 지나가면 친구를 깨우는 등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35] 버킷리스트 만들기나 주제에 관한 발표 등[36] 기독교 영상인 경우도 있지만, 영상을 보여주실 정도로 열린 사람이라면 '성실함'이나 '행복', '희망' 같은 걸 주제로 한 영화를 보여줄 확률이 높다.[37] 예를 들어 모 학자의 '사막에서 시계가 발견되면 그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나온 책을 예로 '키 큰 나무가 높은곳까지 수분을 전달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의 은총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라는 논리를 사용하는데, 시계랑 생명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잎에서 수분을 증발시켜 높은 곳까지 수분을 전달하는 기본적인 과학상식까지 무시하고 예수님과 엮어버리니 기본 상식의 부재가 의심될 정도.[38] 몇몇 학생들은 듣지도 않고 할 거 하면서 불만은 엄청나게 많다.[39] 3학년만 아침 급식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추가 필요[40] 1926년 시작된 경신고, 배재고, 중앙고, 휘문고 야구부의 연맹전[41] 세계 최초로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사람 중 한 명이다.[42] 1988년 서울 올림픽, 1994년 FIFA 월드컵 출전[43]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44] 국민훈장 동백장·모란장 수훈[45] 매년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하고 간다.[46] 대한민국 축구의 레전드. 일제마저 실력을 인정하여 조선인이었던 그를 일본 국가대표로 뽑기도 했다.[47] 대한축구협회 선정 명예의 전당 7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48] 본명은 홍승표, 대표작으로 남기한엘리트만들기 한번 더 해요 등이 있다.[49]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18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 아시안게임 축구 4위, 2018 AFF 스즈키컵 우승, 2018 AFC 아시안컵 8강 진출이라는 박항서 매직을 이루어내며 베트남에서 엄청난 인기과 지지를 얻고 있다.[50] 체육훈장 맹호장·베트남 3급 노동훈장 수훈[51] 호를 따 3학년 야자실이 '도산재'이다.[52] 신민회·흥사단 설립,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53] 2002 FIFA 월드컵 올스타팀 미드필더 선정, 1998년 K리그 득점왕,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54] 2002 FIFA 월드컵 4강 진출의 주역,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55] 1990년, 1994년 K리그 득점왕, K리그 최초 개인 통산 100호골[56] 경제관료로서 굉장히 적절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57] 국내진공작전 계획에 참여하였다.[58]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59] 학교 동문으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인물, '경신학교'를 모르는 사람들도 '차범근 나온 학교'라고 하면 어딘지 기억한다.[60] 예선전에서 큰 활약을 했지만, 정작 본선에선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출되지 못했다.[61] 이곳에서 학교 후문 근처까지 가는 1111번 버스로 갈아타자. 간선버스를 타고 이곳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면 최소 15~20분은 걸리기 때문에 내린 자리에서 1111번 버스로 갈아타 세 정거장을 더 가서 경신중고입구에 내려 들어가는 것이 빠르다.[62] 1111 버스가 삼선교에 정차하긴 하지만, 학교 후문 근처까지도 가므로, 1111을 탄다면 학교에서 더 먼 곳에서 내릴 이유가 없다.[63] 취향에 따라 성북동주민센터, 경신중고, 홍익중고 중 한 군데에서 내려 올라가면 된다. 성북동 주민센터에서 내리게 된다면 엄청난 오르막길이 있고, 경신중고나 홍익중고에서 내리면 오르막길 대신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며, 계단으로 올라가는 경우 경신고의 후문이 아닌 쪽문이 나온다. 쪽문은 상시개방되지 않으며 등하교시에만 개방된다.[64] 멀쩡하지 않으니까 붕괴했겠지만[65]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51408284501290&nv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