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동아리/문과대학 소속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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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녹두울림
2. 녹두극회
3. 라온제나
4. 문과대학 기독인 모임
5. 작은자유
6. 징크스
7. 푸른소래
7.1. 역사
7.2. 특징



1. 녹두울림[편집]






문과대학 밴드

1980년대 사회학과와 중어중문학과 노래패를 중심으로 창립되었으며 현재는 밴드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00년대 들어 민중가요 뿐만 아니라 대중가요와 팝송도 많이 연주하면서 2003년에 동아리의 정체성을 노래패에서 노래동아리[1]로 변경하였으며 2007년 경 밴드로 명칭을 재변경하였다. 17학번 때 새로 생긴 FM은 '늘 푸르른 밴드 녹두울림'. 구리다

녹두울림의 부원들은 동아리 내외적으로 '녹두'라고 불린다. 부원들은 밴드명 '녹두울림' 또한 줄여서 '녹두'라고 부르지만, 비녹두 학우들은 하단의 연극동아리 '녹두극회'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녹울'이라고 부르며 매년 3월에 8명~9명 정도의 신입생만을 선발하여 활동을 이어나가는 소수정예 체제이다. 여타 대학 밴드 동아리들과 구별되는 점으로는, 앞서 언급했듯이 매년 새로 선발되는 8~9명의 부원들이 하나의 밴드를 이뤄 2년간 현역활동을 이어나간다는 점이다. 즉, 똑같은 '녹두울림'이어도 그 안에서 17학번 녹두울림, 18학번 녹두울림, 19학번 녹두울림 등으로 나뉜다는 뜻이다. 일례로 2017년에는 16학번 녹두의 주도 하에 16, 17학번 녹두가 활동을 했고, 2018년에는 17녹두의 주도 하에 17, 18학번 녹두가 활동을 했다. 기수제지만 동아리 역사가 워낙 길었던 탓에 현역 녹두울림이 몇 기인지 정확하지 않아 편의상 '(학번)+녹두'라고 하게되었다.

2월 문과대학 새로배움터 전체마당 공연부터 3월 워크샵 공연, 5월 상반기 정기공연(前주점공연), 9월 하반기 정기공연까지 1년에 총 4번의 공연을 매년 준비하고 있으며, 그 외에 각 학번 회원끼리 의논하여 외부공연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동아리방(일명 '녹방' ) 위치의 변천사가 꽤나 기구하다. 원래 교양관 뒤뜰 컨테이너를 동아리방으로 쓰다가 옛 교양관 교사를 헐고 현재의 우당교양관을 지으면서 홍보관 2층 A201호로 옮기게 된다. 하필 3층짜리 건물의 2층 한가운데에 밴드 동아리를 꽂아놓는 바람에 주변에 위치한 과방 학우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2]홍보관 A106호로 옮겼다가 2018년 홍보관이 철거되며 국제관 145호로 이전, 2019년 5월 다시 현재의 국제관 2층으로 옮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담으로, 고려대학교 단과대 동아리들 중 최초로 작성된 동아리이다. 나무위키에 고려대학교 중앙동아리들만 기재되어있는걸 개탄하던 한 녹두가 직접 작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 녹두극회[편집]


문과대학 연극 동아리


3. 라온제나[편집]


문과대학 댄스 동아리


4. 문과대학 기독인 모임[편집]


문과대학 기독교 동아리(줄여서 문기모)


5. 작은자유[편집]


문과대학 사회과학 학회


6. 징크스[편집]


파일:징깃발최종.png

2004년에 설립되어 2013년에 인준받은 문과대학 유일의 야구 동아리. 국제관 140호 소재.
비정기적으로 연세대 문과대학 야구 동아리 BATS와의 문과대 고연전을 진행한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koreaunivjinx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u_jinx/

7. 푸른소래[편집]



1988년에 창립된 문과대학 풍물패. 원래 이름의 형태는 푸른소ᄅᆡ가 맞으나 옛한글을 쓰기가 어려워 흔히 푸른소래로 쓴다. 소ᄅᆡ는 소리의 옛말이다.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국제관 104호에 자리하고 있다.


7.1. 역사[편집]


공식 창립 연도는 1988년이다. 창립 당시에는 단일 동아리가 아닌 문과대학 풍물패 연합이었다. 창립기념일은 9월 9일[3]이나 창립기념일일 뿐 실제 창립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한반도 북쪽 왕조 수립일과 같은 날짜인데, 관련성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모든 풍물패 연합이 그렇듯이 각 학과 풍물패에서 임기를 마친 후 일부가 푸른소래에 남아서 집행부 역할을 하는 체제였다.

1999년 학부제가 실시되면서 단일 동아리로 변화하였다. 1990년대까지는 농악과 풍물극[4]을 같이했으나 2002년부터 풍물극을 포기하고 농악 중심의 풍물패로 개편하였다.

본래 푸방[5]은 교양관 건물 안에 있었고, 교양관 뒤 작은 컨테이너로 이사하여[6] 2002년 1월까지 사용하였다. 교양관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2002년 2월 홍보관 3층 A308호로 이전하였다. 옛 교양관은 우당교양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2003년준공되었으나 기부자 우당 박종구 교우가 "건물을 교육 목적으로만 사용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며 동아리 활동은 교육 활동으로 볼 수 없다는 학교 당국의 결정으로 푸방은 교양관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2018년에는 홍보관마저 인문사회관 신축을 위한 철거가 결정됨에 따라 국제관으로 이사하였다. 2019년에는 실질 임기[7]가 끝나는 5월 판굿을 3월로 변경하여 임기를 단축하였으며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에 따라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7.2. 특징[편집]


문과대학 동아리이지만 타 단과대학 학생의 가입을 막지 않는다. 드물기는 해도 타 단과대학 학생이 활동한 경우가 없지 않았으며, 29대[8]에서는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학생이 상쇠를 맡기도 하였고 이후 심지어 자연계캠퍼스에서도 넘어와 활동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밖에도 외국인 교환학생, 외국인 대학원생도 활동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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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때까지만 해도 일명 떼창이라 불리는 합창 또는 중창곡을 부르기 위해 한 기수에 보컬을 여남은 명씩 뽑곤 했다.[2] 태권도부도 기합 소리 등으로 꽤나 시끄러웠던 덕인지 별 마찰이 없었다.[3] 이른바 구구절.[4] 풍물을 활용한 음악극이다.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5] 푸른소래방[6] 당시 문과대학 학생회실과 녹두울림방 사이.[7] 명목적 임기는 창립기념 행사가 열리는 9월에 끝난다. 1학년 3월에 활동을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2년 6개월이다.[8] 2015년 하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