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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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
Goldman S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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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SE 코드
GS
업종명
투자은행
설립년도
1869년(155주년)
설립자
마르쿠스 골드만(Marcus Goldman)
사무엘 삭스(Samuel Sachs)
수석회장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C. Blankfein)
회장/CEO
데이비드 솔로몬(David M. Solomon)
한국지사 대표
정형진
본사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뉴욕주 뉴욕시 월가 200
매출액
445억 6000만 달러(2020)
순이익
94억 5900만 달러(2020)
자산총액
1조 1630억 2800만 달러(2020)
자본총액
959억 3200만 달러(2020)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3. 입행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goldsachs5-6a.jpg
파일:external/farm1.static.flickr.com/224680998_232b1ad1d3.jpg
뉴욕의 본부
뉴저지에 있는 백오피스
미국투자은행. 뉴욕에 본부를 두고 런던, 홍콩을 중심으로[1] 전 세계 주요 금융센터에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23개국 50개 사무소에 총 3만명이 넘는 임직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고객은 기업, 금융기관, 각국 정부, 고액 자산가이며 투자, 자문, 자금 조달 서비스 등의 종합 금융 서비스를 지향한다.


2. 역사[편집]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이 세운 어음 거래 회사로 출발해서 21세기에는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석유사업에도 손대고 있으며 온갖 일을 다 하는 회사다. 유대계 기업으로 매우 유명한 회사인데 일단 창립자들이 유대인이었으며 역대 CEO들도 대부분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유대계가 회사를 독점하던 것은 옛날 얘기이며 현재는 유대계와는 별 관계없는 수많은 주주들에 의해 회사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식으로 보는 것은 오해이다. 직원 분포는 80% 정도는 백인이고 나머지 20%는 다양한 인종이 걸쳐있다.[2]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금융지주회사로 기업구조를 재편하였다. 이유를 알아보면 약간 복잡한데, 금융위기 당시 투자은행연방준비은행 산하 금융기관이 아니라 SEC 등 다양한 기관들이 관할하였기 때문에 TARP로 대표되는 구제안의 혜택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미국 재무부연방준비은행투자은행 등을 합병시키거나 금융지주회사로 개편하였고 현재 미국 벌지브래킷 중에서 순수한 의미의 투자은행구조는 사라졌다. 모건스탠리도 이때 금융지주회사로 바뀌었다.

2010년 골드만삭스 본사의 총 매출은 392억 미국 달러. 우리 돈 40조에 달한다. 참고로 이것은 골드만삭스가 가지고 있는 헤지펀드석유 관련 수입은 잡히지 않은 것이다.

2013년 최악의 기업 순위[3] 2위[4]를 차지하면서 Hall of Shame에 포함되었다. 중요한 이유는 물론 해지펀드 특유의 문제도 있지만, 특히 주요한 것은 그리스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금융장부를 조작했고[5], 그 결과 그리스의 파산과 이것을 시작으로 이어진 유럽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수익을 남겼고 도중에 발생한 문제는 로비로 무마했다는 것. 즉 유럽 금융위기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의 폐해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3. 입행[편집]


  • 입사하기 매우 힘들다. 2016년 기준 여름 인턴 및 Analyst 지원자는 학부생 223,849명, 여름 인턴 및 Associate 지원자는 MBA 30,542명이었다. 2015년 모든 직급 채용을 통틀어 9,700명 뽑았고 여름 인턴이 2,900여 명이어서 경쟁률이 높다. 학벌의 비중도 컸는데 2016년까지 아이비리그를 포함해 선호하는 50개 명문대학에 직접 찾아가 학부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하고 채용하는 방식을 전통으로 고수해왔다. 이렇게 채용된 인원은 전체 학부생 채용 인원 중 절반이 훌쩍 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후에 채용 과정을 바꿨지만 팀 구성원들과 20여 번의 면접을 봐야 하고 1명이라도 강한 반대를 하면 탈락한다. 헤지펀드가 대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골드만삭스에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채용 과정에 대해서는 투자은행, MBA 문서 참조.

  • 입사해서도 매우 힘들다. 1970년대에는 업무 시간이 길었지만 전화 메시지는 다음 날 확인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언제 어디서 연락이 와도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하며 점심은 테이크아웃 샌드위치 따위로 때운다. 입사 1~2년차부터 승진 경쟁에 돌입하는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1~2년에 1명꼴로 과로로 사망을 하거나 쓰러진다. 다녀본 사람에 따르면 채권 부서에 들어간 후에는 혹독한 트레이닝 기간을 거쳤으며 매주 1번씩 실무 시험을 봤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상사가 경고를 내렸다. 골드만삭스가 2016년 채용한 신입 직원 가운데 'STEM(스템)'을 전공한 사람들은 전체의 37%. 34,000여 명의 직원 중 엔지니어 비율이 30% 정도이기 때문이다.

  • 아이폰블랙베리에 이어 삼성 갤럭시도 보안 인증을 받았다. 원래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들은 보안을 이유로 사내 기술 부서의 특별 인증을 받은 전화만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내부 특별 보안 인증을 받은 아이폰과 블랙베리만을 업무용 휴대전화로 허용했으나,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은 골드만삭스 경영진과의 미팅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직접 영업에 나서 뜻을 관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맞춰 삼성 KNOX도 도입했는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2016에서 골드만삭스에서는 보안을 위해 업무용 모바일 프레임워크 ‘라군(Lagoon)’과 ‘오르빗(Orbit)’을 삼성 녹스와 결합했다. 녹스는 이메일 시스템 ‘오르빗’을 보호하며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를 구현할 수 있게 한다”고 랜스 브라운슈타인 골드만삭스 기술총괄매니저가 밝혔다.

  • 월가의 IB들은 기업 이미지와 고객관리를 위해 정장 착용을 의무화하는 드레스 코드를 유지했는데 2017년 골드만삭스는 엔지니어에 대해서는 캐주얼 복장을 입을 수 있도록 제약을 완화했다.

4. 기타[편집]


  • 대한민국에는 1992년 서울사무소를 개소한[6] 뒤 1998년 서울지점으로 승격시켰다가 2018년 철수하였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도 철수하였고 골드만삭스증권만 운영하고 있다.

  • 문재인 정부에서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권구훈 이코노미스트를 북방경제협력위원회에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 전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이고 온갖 금융사건에 연루되어서 그런지 음모론필수요소 중 하나. 미국 재무 장관 사관학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 재무 장관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시절의 재무 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이나 조지 W. 부시 시절의 재무 장관이었던 헨리 폴슨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시절의 재무 장관이었던 스티븐 므누신도 여기 출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할 때는 아니지만.[7][8]

  • 하지만 위의 공식은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깨졌는데,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부터 하버드 대학교의 조교수를 거쳐 런던정경대UC 버클리에서 교수를 지낸 학자 출신으로 골드만과의 접점이 사실상 없다. 게다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나 재무부 부장관을 비롯한 재무부 고위 인사에 골드만삭스 출신을 사실상 배제하고 블랙록 출신을 발탁했다. 월가의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골드만삭스와 달리,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어두운 인상이 거의 없는 데다, ESG에 긍정적 스탠스를 가진 점이 바이든 행정부의 성향과 일치한다는 분석이 많다.

  • 금융업계에서 인공지능자동화 산업을 거의 홀로 개척한 회사이다. 각종 업무를 자동화로 처리해서 IPO 업무도 80%쯤 자동화가 될 정도로 발전했다. 반대급부로 인력을 대량해고하고 핵심 중역들 및 그 중역들의 후계자만 남기는 식으로 인력 축소를 하고있다. 최근에는 켄쇼의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면서 리서치 부서도 축소시키고 있는 추세이다.

  • Marcus 라는 일종의 자회사를 이용해 개인대상 은행서비스를 진행중이다[9]. High Yield Savings Account[10][11]와 GM (General Motors) 제휴 신용카드를 발급중이다.

  • 2019년 8월부터는 골드만삭스의 솔트레이크시티 지사를 통해서 Apple과 협업해 애플카드를 발급중이다. 애플카드를 발급신청하면 심사는 이 골드만삭스의 솔트레이크시티 지사에서 심사하고, 실제 신용조회기록도 골드만삭스(GS)가 하는 것으로 나온다.

  •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세차 유튜버 세차요정 밋돌세가 이 회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5. 관련 문서[편집]


  • 공매도
  • 스티븐 므누신
  • 리시 수낙
  • 마리오 드라기
  • 음모론 필수요소[12]

[1] 골드만삭스의 지역본부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홍콩, 런던, 프랑크푸르트, 두바이 6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 중 뉴욕, 홍콩, 런던이 3대 지역본부요직에 속한다. 상하이도쿄, 싱가포르는 홍콩에 있는 골드만삭스 동아시아지역본부의 지사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 서울도 홍콩본부 소속.[2] 참고로 이 임원들 중에는 한국에서는 꽤 유명한 락시미 미탈도 있으시다.[3] 2011년에 삼성과 도쿄전력이 후보에 들었다가 결국 둘 다 2위 안에 들지 않으면서 조작논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 랭킹이다.[4] 영광의 1위는 로열 더치 쉘.[5] 그리스가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 되자 통화 스왑을 통해서 달러를 조달해주었다. 이 통화스왑은 부외거래이기 때문에 장부 상에는 잡히지 않으므로 총 부채가 GDP의 60%, 연간 적자가 GDP의 3%를 넘지 않도록 하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피해갈 수 있었다.[6] 빌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이 방한해 일을 추진했지만 노태우 정부의 고관을 만나려던 일부터 틀어지기 시작해 빈 손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때문에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들이 만나야 할 상대가 하필 루빈이었던 것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가 1998년 대표적인 지일파(知日派) 인사인 박태준 전 국무총리가 일본과 진행한 한국 종금사들의 일본 단기 채권 상환 연장 협상이다. 한국 측이 진력한 끝에 상환 연장에 성공했지만 일본 측이 "우리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어 미안하다"며 갑자기 협상을 틀어버렸던 것. 이 때 시중에는 루빈이 일본 측에 압력을 넣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소문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루빈이 당시 우리나라와 주요 기업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건 분명하다. 워싱턴 정가와 월가 양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공직에서 물러나 월가로 복귀한 시점인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한국 언론들은 루빈의 근황을 끈기있게 다루었다.[7] 대신 오바마 1기 때는 뉴욕 연방은행 총재가 초대 재무 장관을 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2기 때는 예산관리청(OMB) 장 - 대통령비서실장 출신인 잭 류가 맡았다.[8] 그런데, 가이트너는 골드만 출신은 아니지만 재무부에서 일할 당시 루빈이 옛적에 점찍어 논 후계자다. 2기 장관이었던 류는 아예 본업이 변호사+정치인. 오바마와 같은 법무 박사(JD)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빌 클린턴 및 오바마 행정부에서 연달아 OMB 국장을 지낸 능력자. 비금융인 출신이 금융계 정부 관직에 오른 다른 케이스로는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이 있다. 여기도 변호사 출신+JD 소지자. 참고로 JD는 Juris Doctor의 머릿자다.[9] 당연하게 사명은 창업주인 마커스 골드만{Marcus Goldman}에서 유래한 것이다.[10] 굳이 번역하자면 변동금리저축계좌. 22년 9월 16일 기준, 미국 전체의 금리가 높아 계좌 이율또한 상당히 높다.[11] 구좌 개설은 의외로 쉬운데 Marcus 홈페이지로 들어가 자신의 이름및 주소와 같은 신상명세를 하면 되고 자신이 거래하는 기존은행구좌와 연동시켜 금액을 이체시키면 된다. 당연히 미국내 한정이다.[12] 각종 금융계의 배후에 골드만삭스가 암약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드립반 진담반으로 오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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