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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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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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




1. 개요
2. 골키퍼가 하는 일
3. 유형
3.1. 슛 스토퍼
3.2. 스위퍼 키퍼
4. 골키퍼의 등번호
5. 야신과 야신상
6. 훈련 방법
8. 신체 조건
8.1. 선수들의 신장
9. 대한민국의 골키퍼
10. 복불복인 포지션
11. 골키퍼가 골문을 비운다면
12. 골 넣는 골키퍼
12.1. 필드에서 골 넣기
12.2. 골문에서 골 넣기
12.3. 페널티킥으로 골 넣기
13. 필드 플레이어가 뛰는 골키퍼
14. 서브 혹은 써드 골키퍼들의 비애
15. 기타



1. 개요[편집]


축구포지션 중 하나로 경기장 내에서 유일하게 손을 쓸 수 있는 포지션.

말 그대로 (Goal)을 지키는 사람(Keeper)이라는 뜻. 팀의 최후 방어선이며 골키퍼 장갑을 끼고 골대 앞에서 골을 막는다. 그래서 흔히들 수문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갑을 끼고 골을 막는 특성상 필더들과 구분되는 색상의 유니폼을 입는것도 유명한 룰이다. 같은 색의 유니폼을 입으면 다른 선수가 가까이 접근하여 핸드볼 반칙을 몰래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구별하기 쉽도록 하는 것이다. 영어론 골리(Goalie)라는 표현도 많이 쓰이는 편. 보통 슛 스토퍼(shot stopper)라는 역할의 의미로도 자주 불린다.

문화어로는 문지기라고 하며, 대한민국도 과거에 진행된 축구 용어 재정비 작업에서 용어를 문지기로 바꿀 뻔 하였으나 얼마 안 가 곧 사장되고 골키퍼로 그냥 냅뒀다.[1] 대신 팀의 골문을 지킨다는 비유적 표현으로 '수문장'이라는 표현을 비공식적으로 자주 쓰곤 한다.

강팀이 되기 위해서는 평균 이상의 골키퍼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이 크다. 특히 중요한 것은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전술 위에 움직이지만 골키퍼는 그것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이다. 즉 골키퍼만 좋은 선수로 바뀐다면 팀의 전력은 무조건 향상된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덜할 뿐 골키퍼의 플레이 특성과 팀 전술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재능 있는 키퍼라고 해도 본 실력을 100% 발휘하기 힘들다. 아래의 복불복 문단 참고.

동호인 등의 아마추어와 축구가 직업인 프로의 차이가 가장 현격하게 드러나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일단 일반인들은 공에 맞는 것도 아프고 몸을 날려 바닥에 닿는 것도 아파서 뻣뻣하게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 흙바닥이라서 그렇지 잔디 구장에서는 할 수 있다고 많은 일반인들이 말하지만 잔디 구장에서도 아프다. 학교 레벨에서 이리저리 적극적으로 다이빙하는 골키퍼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귀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자보다 피지컬이 떨어지는 여자 축구에서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 약팀과 강팀을 나눌때 골키퍼의 실력으로 평가할 정도로 골키퍼가 남자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순식간에 강팀이 된다. 평균적으로 실력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고, 남자에선 보기 힘든 실책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2]

다만 프로가 아닌 일반인 수준에서 골키퍼를 볼 경우 낙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게 좋다. 낙법 문서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몸을 던지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한 행위다. 실제로 프로 경기에서 골키퍼가 퇴장당하고 교체카드가 없어 필드플레이어가 골키퍼로 투입될 경우에도 부상의 위험이 높기에 몸을 던지거나 하는 동작은 상당히 제한된다. 일반인도 골키퍼를 하고 싶다면 반드시 낙법을 배우고 장갑 등 전용장비를 반드시 착용한 후 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 그냥 몸을 사리고 골을 내주자. 프로 선수도 아닌데 부상을 당할 바에 한 골 먹히는 게 나은 건 당연한 사실이다.

역사상 이름을 남긴 유명한 골키퍼로는 레프 야신, 잔루이지 부폰, 디노 조프, 고든 뱅크스, 피터 슈마이켈, 제프 마이어, 미셸 프뢰돔, 올리버 칸, 에드윈 반 데 사르, 이케르 카시야스, 페트르 체흐 등이 있으며, 현역 가운데 월드클래스로 평가받거나 평가받은 적이 있는 선수는 마누엘 노이어, 다비드 데 헤아, 얀 오블락, 잔루이지 돈나룸마, 위고 요리스, 티보 쿠르투아, 알리송 베케르, 클라우디오 브라보, 조 하트, 케일러 나바스, 에데르송 모라에스, 마르크안드레 테어 슈테겐, 사미르 한다노비치, 에두아르 멘디, 카스페르 슈마이켈, 마이크 메냥,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등이 있다.


2. 골키퍼가 하는 일[편집]


한 팀은 출장 선수 11명 중 '자기 팀의 페널티 박스 안에 있는 공이라면 핸드볼 반칙에서 면제되는[3] 선수 한 명을 지정할 수 있고, 그게 골키퍼다. 그래서 어떤 선수가 자기편 페널티 박스에서 공을 손으로 건드렸을 때 주심이 반칙을 선언하고 상대편에게 페널티킥을 줘야 할지, 반칙을 선언하고 상대편에게 간접 프리킥을 줘야 할지, 반칙을 선언하지 않고 경기를 계속 진행시킬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하므로 골키퍼가 다른 선수와 구분되는 유니폼을 입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이 지정된 선수를 어떻게 활용하든 그 팀의 자유지만[4], 세상의 모든 축구팀은 이 선수를 99.9%의 상황에서 골문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활용하고 있다.

골키퍼의 능력 여하에 따라 그날 경기의 양상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토너먼트 경기에서 승부차기에 돌입하는 순간 골키퍼는 팀의 운명을 짊어지는 가혹한 운명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운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해 낸 가장 유명한 사례로 이스탄불의 기적의 주인공 리버풀 FC예지 두덱이 있다. 신들린 댄스(...)를 선보이며 AC 밀란의 키커들의 혼을 빼놓아 3-2 승부차기 승리를 이끌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8강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신들린 슈퍼 세이브로 철통같이 골문을 방어하고, 이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선방해 내며 결과적으로 한국의 승리를 이끈 이운재의 일화도 유명하다. 추가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골키퍼 한 명의 존재로 인해 결코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상대처참하게 발라버린 실화도 존재한다. 13-14 시즌 레반테 UD는 매 경기가 케일러 나바스의 인생 경기 수준이었고, 리그 중위권을 기록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나바스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 대표팀의 수문장이 되어 팀을 8강에 올려놓고 빅 클럽으로 이적하는데도 성공했다. 반대로 골키퍼의 실책으로 팽팽하던 경기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집히는 일도 있는데, 예로 리버풀의 로리스 카리우스단 한 경기에서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모든 걸 잃고 지울 수 없는 흑역사를 생성했다.[5]

일반적으로 순발력, 반사 신경과 상황 판단력, 의사 소통 능력 등이 매우 중시되며, 신체 조건의 영향도 꽤 큰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대 축구에선 볼에 대한 반응만 빠른 선수가 뛰어난 골키퍼는 아니다. 수비 전술이 발달한 이후의 골키퍼는 단순히 손을 써서 골문을 지키는 선수라는 개념을 넘어 수비수들의 위치 조율, 빌드업 능력, 역습 시 손이나 발을 이용해 공격 진영에 빠르고 정확히 볼을 전달해야 하는 역할과, 필요하다면 최종 수비수의 역할 또한 책임져야 하며,[6] 압박당하는 팀 동료에게서 받은 백 패스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동시에 본인 또한 압박당했을 때[7] 상대 공격수를 속일 수 있는 간단한 속임수 같은 개인기 또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때 골문 앞에 버티며 막아야 하는지, 어떤 때 골문을 버리고 뛰어 나가 상대의 공격을 끊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경기 중에 바로 해야 하기에 경기를 읽는 눈과 그에 따른 판단력과 결단력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 현대 축구에서는 골키퍼에게 골 결정력을 제외한 축구의 거의 모든 요소를 습득할 것을 요구한다고 보면 된다.

이는 골키퍼가 다른 수비수와는 달리 1:1 마킹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고, 경기장의 최후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필드 플레이어 중에선 가장 냉정하고 여유 있게 경기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골키퍼는 이 시야와 사고를 바탕으로 수비수와 미드필더에게 큰 소리로 지시를 내려서 팀의 수비를 조율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도 맡고 있다.[8] 극단적인 경우 슈퍼 세이브를 연발하지만 한두 골 먹는 골키퍼와, 별다른 세이브 없이 정면으로 오는 공만 몇 번 처리하다 끝나는 골키퍼를 비교한다면 슈퍼 세이브를 연발하는 골키퍼가 겉보기에는 상대적으로 더 뛰어나 보일 것이다. 하지만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능력과 그에 따른 위치 선정 능력에서 크게 차이가 날 수 있으며 보통 신기하게 골키퍼 정면으로 오는 공이 많은 골키퍼는 이 위치 선정 및 수비 조율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9] 가장 이상적인 골키퍼란 옷에 흙을 묻히지 않고 경기를 이기는 골키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며 다르게 비유하면 불이 났을때 불을 빠르게 진화하는 것보다 아예 불이 안 나거나 작게 나도록 하는 게 좋은 것과 같은 것.

뒷 공간을 집요히 노리는 상대 팀 전술의 카운터 혹은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공격 전술을 사용하는 경기 막판일 경우 골키퍼는 스위퍼의 역할까지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압박과 패스를 중시하는 축구가 될수록 수비의 배후 공간은 넓어질 수밖에 없고 그 곳을 메우는 역할을 골키퍼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아예 골키퍼가 어느 정도 공을 분배하는 역할을 넘겨받는 것, 골키퍼가 중앙선 근처까지 나와서 압박 대형을 설정하는 전술도 입 축구의 영역에서 고려되었으며 실제로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 팀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흐름 하에서 0:0 경기나 1:0 경기가 너무 많이 나왔기 때문에 FIFA에서 룰 개정을 했고[10], 골키퍼는 다시 페널티 라인 근처로 돌아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다시 골키퍼가 높이 올라오거나, 공 분배의 일익을 담당하는 빌드업 역할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아예 하프라인까지 올라와서 뒷공간을 홀로 커버하며 날카로운 돌진으로 칼같이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고, 정확한 패스로 어시스트까지 기록할 정도의 적극적인 스위핑을 아이덴티티로 삼는 마누엘 노이어의 플레이 스타일은 '스위퍼 키퍼'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골키퍼의 역할 정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뛰어난 골키퍼에게는 노이어처럼 적극적인 스위핑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확한 던지기나 롱킥으로 팀 공격의 포문을 여는 빌드업 능력까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위고 요리스케일러 나바스처럼 골문 방어 능력이 뛰어나지만 발밑이 불안해 빌드업 능력이 떨어지는 소위 "고전적 유형"의 골키퍼들은 비록 주전이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빌드업 능력도 뛰어난 골키퍼들에 비해 저평가당하며 끊임없이 그 자리를 위협받게 된다.[11]

상대적으로 육체적 능력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포지션 특성상 장수가 가능한 편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요구되는 피지컬 능력의 분야가 다르다. 나머지 10명의 선수와 골키퍼는 서로 매우 다른 분야의 스포츠를 플레이한다. 위에 언급한 내용 말고도 세트 피스 상황 시 수비 조율이나 일대 일 상황 등 경험이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17년 동안 유벤투스의 골문을 지키고 만 39세의 나이로도 쟁쟁한 월드 클래스 골키퍼들을 제치며 각종 베스트 스쿼드에 이름을 올리고 FIFA 올해의 골키퍼로 선정될 정도로 활약한 잔루이지 부폰[12], 30대 중반에 맨유로 이적하여 빅 이어를 들어올린 에드윈 반 데 사르나 늦은 나이에도 활약한 셰이 기븐 같은 베테랑들이 다수 있다.

다만 비교적 장수가 가능하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전성기가 길다는 것은 아니다. 통계적으로 키퍼의 전성기는 27세에서 31세 정도이며 최전성기는 28세다. 타 포지션, 특히 센터백과 스트라이커와 고작 1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오히려 축구에서 에이징 커브가 가장 빠른 포지션이 키퍼라는 다른 통계도 있을 정도. 젊은 시절에 기량을 너무 빨리 소모한 경우나 신체능력을 앞세워 활약할 경우 신체능력 저하와 함께 전성기가 빠르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비교적 신장이 작은 골키퍼들이 신체조건의 열세를 신체능력으로 커버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전성기가 짧은 일이 적잖은 편. 대표적 사례인 이케르 카시야스의 경우 전성기가 20대 중반에 상당히 빠르게 온 탓에 30대 들어 급격한 노쇠화를 보였다.

역습 상황에서는 골키퍼가 볼 배급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지고, 평소에도 골 킥을 잘 차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골키퍼의 킥력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좋은 편이다. 킥이 안 좋다는 평을 듣는 선수들도 정확도 등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킥력 자체는 엥간한 필드 플레이어들 이상이다. 여기에 종종 정확도, 그리고 정교한 데드볼 처리 능력까지 갖추면 호제리우 세니같이 프리킥을 잘 차는 골키퍼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더해 상대 세트피스 이후 등의 역습 상황에서는 공을 빠르고 정확하게 던져주는 것 역시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로, 이러다보니 때때로 엄청나게 긴 거리를 킥도 아닌 던지기로 정확하게 처리하는 골키퍼도 등장한다.

이러한 막대한 역할 탓에 팀의 주장을 맡는 경우도 꽤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마누엘 노이어(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위고 요리스(토트넘 홋스퍼 FC,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사미르 한다노비치(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얀 오블락(슬로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이운재(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남 드래곤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잔루이지 부폰(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유벤투스 FC),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 CF,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등등. 그라운드에서 많이 뛰어야 하는 미드필더, 포워드진에 비해 체력 소모가 적어[13] 상대적인 여유 시간이 많고, 풀 타임, 전 경기를 소화하기 쉽기 때문. 또 최종 수비선에서 경기의 모든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의 주장 골키퍼의 선방과 수비진 지휘로 위기 상황을 넘기는 모습은 팀 동료들에게 있어서 힘을 고무시키는 효과를 주어 후배, 동료 공격수들은 듬직한 주장에게 수비를 맡기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골키퍼 주장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대부분의 골키퍼들이 필드 플레이어보다 선수로 더 오래 생활을 하다 보니 연륜에서 나올 수 있는 리더쉽도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장점. 하지만 포지션의 특성상 그라운드 활동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고 너무 그라운드 끝부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상대편 진영에서 일어나는 판정 논란 등에 대해 재빠르게 대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주장으로 선호하지 않는 의견도 많으며,[14] 실제로 상당수 구단에서는 골키퍼가 경력이 길고 팀의 리더로서의 모습을 확고히 보여주지 않는 이상 골키퍼에게는 주장 완장을 잘 채워주지 않는다. 최근에는 팀을 전반적으로 조율하기 유리한 중앙 수비수,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의 선수들이 주장을 맡는 일이 많은 편.

한 골키퍼가 한 경기에 한 것들을 모으면 이렇게 된다.#


3. 유형[편집]



3.1. 슛 스토퍼[편집]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맡는, 고전적인 유형의 골키퍼. '슛 스토퍼'라고 분류되긴 하나 전통적으로 '골키퍼'라고 불리는 선수들은 이 역할에 속해 왔고, 현대 축구에서 스위퍼 키퍼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선수들은 모두 이 분류에 속한다. 아무래도 스위퍼 키퍼가 골키퍼 중에서는 비교적 소수인 편이다보니 그냥 '골키퍼'라고 하면 보통 이 역할을 의미하는 편.

골키퍼라는 역할의 가장 본질적 책무인 상대편의 슛을 막는 것에만 주로 집중하게 되며 아래의 스위퍼 키퍼와 달리 볼배급이나 후방 빌드업에서 템포 조절 역할 등에 관여하지 않는다. 대개는 골포스트 사이에서 골대를 지키기 때문에 페널티 박스 밖으로 나오는 편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래서 반사신경이나 포지셔닝 능력이 주로 중요해진다.

현대 축구의 대표적인 슛 스토퍼로는 케일러 나바스, 다비드 데 헤아, 티보 쿠르투아, 위고 요리스, 얀 오블락, 디에고 로페스, 사미르 한다노비치, 기예르모 오초아, 조 하트, 페르난도 무슬레라, 케빈 트랍,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에두아르 멘디, 닉 포프, 조던 픽포드, 야신 부누, 도미니크 리바코비치, 알렉스 메렛, 잔루이지 돈나룸마, 알반 라퐁, 기오르기 마마르다슈빌리 등이 있다.


3.2. 스위퍼 키퍼[편집]


위 문단에서 언급했듯 키퍼의 역할은 현대축구로 오면서 뒷공간 커버와 롱 패스를 이용한 빌드업 임무도 일부 분담하게 되었는데, 이런 부수적인 옵션을 극대화하면서 스위퍼 키퍼라는 골키퍼의 새로운 역할이 등장했다.

최초의 스위퍼 키퍼로 꼽히는 선수 중 한명은 웨일스의 골키퍼였던 리 리치몬드 루스로 당시 규정에선 골키퍼는 아군팀 하프라인까지 손으로 공을 다룰 수 있었다. 루스는 이 규정을 이용해 마치 농구처럼 공을 튀기면서 하프라인까지 달려나가 볼배급을 하거나, 수비수들이 전진한 빈 공간으로 달려가 커버하는 등 당시 시대상으로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1912년부터 골키퍼가 손으로 공을 다룰 수 있는 범위를 패널티박스 안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만든 것이 루스의 영향이라고 보고있다.

1925년엔 오프사이드 규정이 최종 수비수와 2번째 수비수 사이로 변경되면서 최종 수비수인 골키퍼와 2번째 수비수 사이의 공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0년대에 아마데오 카리소, 줄러 그로시치같은 패널티 지역에서의 뛰어난 수비력과 장악력, 그리고 킥력으로 공격에 관여하는 골키퍼들이 등장했다.

50~60년대 TSV 1860 뮌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고슬라비아의 골키퍼 페타르 라덴코비치도 패널티박스 밖까지 나와서 커버하거나, 하프라인까지 드리블을 하는 등 현대의 스위퍼 키퍼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리누스 미헬스토탈 풋볼을 창시하면서 골키퍼의 역할에 대하여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토탈 풋볼의 골키퍼는 수비수들이 전진하면서 생기는 빈 공간을 커버하는 최후방 수비수이자, 공격의 활로를 만드는 최후방 공격수였다. 그래서 얀 용블루트가 네덜란드 주전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토탈 풋볼의 영향을 받은 요한 크루이프는 전술철학에서 수적 우위를 위해 골키퍼는 수비수들과 함께 수비라인을 형성한다는 개념을 만들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골키퍼였던 안도니 수비사레타는 이런 낯선 개념의 골키퍼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기에 주요 전술에서는 멀어진 채 사장되었다.

1992년 골키퍼가 백패스를 잡을 수 없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골키퍼의 발밑의 중요성이 올라갔고, 크루이프즘의 영향을 받은 루이 판할의 아약스에선 골키퍼면서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는 에드윈 반 데 사르가, 사키이즘을 필두로한 이탈리아에선 높은 라인형성으로 생긴 넓은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잔루이지 부폰같은 선수들이 있었다. 다만 반데사르는 수비라인이 낮은 세리에 무대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부폰은 골키퍼로서의 안정성을 중요시여겨 점차 플레이스타일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후 스위퍼 키퍼의 명맥을 이어온 것이 펩 과르디올라빅토르 발데스였다. 발데스는 유망주 시절부터 발밑이 좋고 활동 반경이 높은 골키퍼로 유명했는데, 크루이프즘을 지향하는 펩 과르디올라가 발데스에게 스위퍼 키퍼 역할을 지시하면서 골키퍼의 빌드업을 본격적으로 전술의 일부에 편입시켰다. 다만 발데스는 반대급부로 불안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역할을 더욱 완벽하게 수행해내는 노이어가 등장하면서 스위퍼 키퍼의 선구자라는 이미지는 많이 약한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위퍼 키퍼 역할을 완성시킨 선수가 바로 독일FC 바이에른 뮌헨의 수문장 마누엘 노이어이다. 사실 노이어는 샬케 시절부터 뒷공간을 커버하고 적극적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의 노이어가 본격적으로 전술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유프 하인케스 체제하의 바이언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15][16]

노이어는 한술 더 떠서 웬만한 수비형 미드필더들 못지 않은 롱 패스 정확도와 손을 이용한 던지기로 빌드업에 많은 관여를 하기 시작했다. 중앙선을 넘기는 비거리와 정확성을 이용한 빌드업의 관여는 바이에른의 역습과 빌드업에 큰 몫을 보탰으며 후방에서의 템포 조절과 롱 볼 전개에도 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플레이로 인해 많은 키퍼들이 그의 성향을 참고하고 있으며, 현대 축구에서 키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길을 제시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17] 지난 10년 동안 가장 발전한 포지션이자 다른 어떤 포지션보다 더 많이 발전함을 증명하는 사례. 강한 압박과 높은 라인 형성 그리고 빌드업의 중요성 등 현대축구에서 골키퍼에게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18]

그리고 노이어 덕분에 그 이전 세대에도 스위퍼 키퍼의 모습을 보인 선수가 있다는 점도 재조명되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IT가 연약했던 시절 당시 90년대 최강의 괴짜 골키퍼로 명성을 쌓았던 호세 레네 이기타. 이기타는 이른바 전갈 킥 세이브와 독특한 유니폼을 비롯한 기행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사실 프리킥/페널티킥/심지어 직접 공을 몰고가서 현란한 드리블로 필드골을 기록했던, 통산 40골을 넘게 기록했던 선수였다.

특히 남미엔 이기타처럼 빠르게 달려나가서 페널티 박스 밖에서 공격을 차단해내는 골키퍼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했는데 특이한 점은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거나 중앙선까지 공을 몰고 질주하며, 뛰어난 킥력을 이용해 세트피스 키커로 나서는 등 무모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과감한 플레이를 즐기는 골키퍼들이였으며 이들에겐 '엘 로코(El Loco, 미치광이)'란 별명이 따라붙었다. 아마데오 카리소, 우고 가티, 라몬 키로가, 호세 레네 이기타,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호르헤 캄포스 등이 이런 유형에 속했다. 노이어같은 현대 스위퍼 키퍼와의 차이점은 일관적으로 전진수비만 고집하는 유형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200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린 에드빈 판데르사르[19], 그 앞 세대의 페테르 슈마이켈도 스위퍼 키퍼의 모습을 보여줬고,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레프 야신 역시 현대에 들어서는 스위퍼 키퍼 역할을 수행했던 선수로 또 다시 재평가되고 있다.[20] 스위퍼 키퍼의 원조로 꼽히는 후보로 리 리치몬드 루스, 아마데오 카리소, 줄러 그로시치, 그리고 레프 야신이 있다. 스위퍼 키퍼의 기준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21] 하지만 이런 골키퍼의 역할을 '스위퍼 키퍼'라는 명칭으로 정립시킨 것은 노이어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노이어 이후로는 비교적 이런 적극적인 스위퍼 키퍼 성향을 띄는 선수들이 전보다 늘어났으며 대표적인 선수들은 마르크안드레 테어 슈테겐, 알리송 베케르, 에데르송 모라에스, 클라우디오 브라보, 보이치에흐 슈체스니, 케파 아리사발라가, 마이크 메냥, 다비드 라야, 안드레 오나나, 아론 램스데일, 우나이 시몬, 로베르트 산체스, 디오구 코스타 등이 대표적인 스위퍼 키퍼 유형의 선수이다.

점점 스위퍼 키퍼가 늘어나는 서구권에 비해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유형의 선수가 드문 편이다. 국대급 선수 중에서 빌드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선수는 드문 편이고, 그나마 예전부터 종종 있었던 킥력 좋은 선수들은 심심찮게 있는 정도. 그나마 벤투호에서 김승규가 향상된 발밑과 패스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빌드업에 기여하고 있으나, 스위퍼 키퍼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다. 현역 선수 가운데는 그나마 김경민, 김정훈이 스위퍼 키퍼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편이다.

하지만 오히려 과거에 좋은 킥력과 활동 범위를 무기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선수들이 있었으니, 김병지이용발이 대표적이다. 김병지의 경우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나온 악몽의 드리블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 당시 김병지는 굉장히 훌륭한 스위퍼 키퍼였다. 발밑과 롱패스 정확도가 매우 좋아서, 2022년 월드컵 때 골키퍼의 빌드업을 중시하던 파울루 벤투 감독 아래에서 이운재와 경쟁했다면 벤투가 김병지를 중용했을 확률도 꽤 있다.당시 기사. 이용발 역시 국대 활동이 없어서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리그 내에서는 훌륭한 킥력을 바탕으로 스위퍼 키퍼의 역할을 잘 수행해낸 선수였다.


4. 골키퍼의 등번호[편집]


주전 골키퍼의 등번호는 1번이라는 인식이 예로부터 널리 통용되고 있다. 포지션별로 등번호를 배정하던 시절 언제나 골키퍼부터 등번호를 순서대로 배정했기 때문에 1번은 골키퍼의 전유물이었다.

사실 과거의 FIFA는 등번호 사용에 관대해서 1번부터 99번까지 중 선택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더 제한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팀의 에이스마다 선호하는 번호가 생기고 꼼수까지 등장하자 결국 단순한 권고를 넘어서 규정으로 강제하게 되었다. 현재 월드컵을 비롯한 A매치에서는 1번부터 엔트리 총원까지의 번호를 사용할 수 있으며[22] 결번은 허용하지 않는다.[23] 또한 1번은 오직 골키퍼에게만 배정할 수 있다.

대다수 대회나 리그에서도 등번호 1번은 골키퍼가 다는 것이 의무거나 관행이지만 예외적인 사례도 있다. AEK 아테네 FC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1번을 가졌던 그리스인 판텔리스 카페스(Παντελής Καφές), 40세에 바닛 FC의 코치가 되는 겸 직접 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선수 등록까지 하면서 1번을 선택한 네덜란드인 에드가 다비즈, AC 키에보베로나 임대 시절 1번을 선택한 캐나다계 네덜란드인 요나탄 더구즈만. 이 세 사람은 다 미드필더였다.

최근에는 주전임에도 1번이 아닌 다른 번호를 달고 뛰는 골키퍼가 꽤 늘었다. 각 리그 규정이나 전통적인 인식 등의 영향으로 골키퍼가 주로 다는 등번호 자체는 1번 외에도 예로부터 여러 번호가 존재해왔는데, 그 번호를 달고 백업으로 뛰던 선수들이 주전으로 발돋움한 후 등번호를 유지하면서 주전 골키퍼가 1번이 아닌 다른 등번호를 착용하는 사례가 되는 것이다. 주로 12번, 13번, 16번, 18번, 21번, 22번, 23번, 25번, 30번 등이 꼽히는데, 각 번호별로 세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2번, 21번: 전통적으로 백업 골키퍼의 등번호라는 인식이 있다. 특히 12번의 경우 과거 주전 11명에게 1~11번을 부여한 후 백업 선수에게 순서대로 등번호를 부여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는 백업 골키퍼에게 먼저 등번호를 주기 때문에 12번=백업 골키퍼의 등번호로 정착되었다.[24] 단, 구단에 따라 12번을 팬에게 헌정한다고 영구결번 처리하는 경우도 꽤 보인다.
  • 16번, 30번: 리그 1의 등번호 규정상 1, 16, 30번은 골키퍼에게 배정하도록 되어있으며,[25] 이로 인해 리그 앙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프랑스어권 국가의 골키퍼들이 16번이나 30번을 많이 달고, 리그 앙이 아닌 타 리그나 국가대표팀에서도 해당 번호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각각 첼시와 AC 밀란으로 이적 후에도 16번을 쓰고 있는 에두아르 멘디마이크 메냥이 있다.
  • 13번, 25번: 라리가의 등번호 규정상 1, 13, 25번은 골키퍼에게 배정하도록 되어있다. 얀 오블락은 아틀레티코 입단 후 꾸준히 13번을 달고 뛰었고, 티보 쿠르투아도 아틀레티코 시절 13번을 단 후 첼시에 가서도 꾸준히 13번을 사용하다가 레알 이적 후에야 등번호를 1번으로 바꿨다. 25번의 경우 현재는 규정이 완화되어 1군에 골키퍼를 2명만 등록할 경우 필드플레이어도 달 수 있지만, 원래는 골키퍼만 달 수 있었다. 또한 라리가를 비롯해 여러 빅 리그에서는 1군 스쿼드가 25명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등번호를 순서대로 배정할 경우 끝번호가 25번이 되는 만큼 서드 골키퍼가 25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12번을 서포터즈 영구결번으로 주느라 백업 골키퍼에게 13번을 주는 경우도 있다.
  • 23번: 월드컵을 비롯한 국제대회 엔트리가 23명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끝번호에 해당하는 23번을 서드 골키퍼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최은성이 대표적 사례. 이게 정착되면서 UEFA 유로 2020에서는 엔트리가 26인으로 늘어났지만 많은 서드 골리들이 23번을 달고 엔트리에 등록되기도 했다. 물론 김진현이나 조현우처럼 23번을 달고 주전으로 뛴 경우도 있다.[26]
  • 18번: 엔트리가 18명으로 제한되는 대회에의 경우 끝번호인 18번을 백업이나 서드 골키퍼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 올림픽 축구가 대표적인 사례로, 18인 엔트리+골키퍼 두 명을 차출하기 때문에 백업 골키퍼가 18번을 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2012 런던 올림픽이범영이 대표적인 사례. 또한 여자 축구는 아직 저변이 넓지 못해 스쿼드 자체가 적은 선수로 구성되어 18명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서드 키퍼가 18번을 단다.

물론 골키퍼가 필드 플레이어나 달 법한 한 자리수의 번호를 달고 뛰는 경우도 있었다. 197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의 주전 골키퍼 얀 용블루트8번, 1978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전 골키퍼 우발도 피욜5번을 달고 골문을 지켰다.


5. 야신과 야신상[편집]


축구에서 각 포지션별로 이른바 GOAT에 관한 토론이 많지만, 적어도 골키퍼만큼은 센터백의 베켄바워처럼 그 누구도 레프 야신GOAT라는데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다.

야신은 구 소련의 골키퍼로, 오랜 역사를 통틀어 골키퍼 유일의 발롱도르 수상자라는 점에서 그 압도적인 위상을 체감할 수 있다. 들어갈 것 같은 공까지 말도 안되는 선방으로 쳐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검은 거미라는 별칭을 얻었다.

야신의 활약은 너무나 압도적이라 축구계에서 반쯤 고유명사화 되기도 했다. 때때로 미칠 듯한 슈퍼 세이브를 보여주는 선수를 보고 야신 모드에 들어갔다고 하고, FIFA 월드컵에서 해당 대회 최고의 골키퍼에서 수여하는 야신상(現 FIFA 월드컵 골든 글러브) 역시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는 FIFA에서 최초로 축구인의 이름에서 따온 수상이기도 하다.[27]

야신상은 16강 이상 올라간 팀의 골키퍼들 가운데 선정하는데, 아무래도 우승국이나 높은 라운드에 올라간 국가의 선수일수록 수상 가능성이 커진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처음 시상한 이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까지 8차례의 시상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우승국 골키퍼가 5번, 준우승국 골키퍼가 1번, 4강 진출팀 골키퍼가 1번 수상했다. 유일하게 야신상이 처음 제정된 1994년 대회에서 16강 탈락 국가인 벨기에의 미셸 프뢰돔이 수상했는데, 당시 프뢰돔은 16강에서는 3실점했지만 조별리그에서는 엄청난 선방쇼로 세 경기에서 단 1실점만을 허용하며 벨기에를 토너먼트로 끌어올렸다.[28] 현재까지도 유일하게 4강 진출에 실패한 팀 소속으로 야신상을 받은 사례.

2010년에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아 '아디다스 골든 글러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당시 돈 때문에 야신의 이름을 너무 쉽게 떼어냈다고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다. 현재는 FIFA 월드컵 골든 글러브라는 이름으로 시상하고 있는데, '골든 글러브'라는 이름 자체가 너무 흔한 이름이다보니[29] 그냥 옛날 이름인 '야신상'으로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2019년부터는 프랑스 풋볼에서 발롱도르 시상과 함께 해당 시즌 최고의 골키퍼에게 트로페 야신 상을 신설하여 수여하고 있다.


6. 훈련 방법[편집]



아마추어 골키퍼의 훈련 장면들이다.


국가대표 골키퍼 김승규, 조현우, 구성윤 선수의 훈련 모습이다.


EPL 골키퍼 위고 요리스의 훈련 장면이다.


7. 세이브 기법[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골키퍼/세이브 기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신체 조건[편집]


교육과 기술, 훈련 등의 요소들을 똑같이 극한까지 끌어올렸을 때, 우수한 신체조건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포지션이다.

팔을 뻗어서 멀리있는 무언가를 쳐내는 것을 주로 해야하니 아무래도 타고난 팔다리, 특히 팔이 길면 길수록 똑같은 위치의 공을 처리하는데 그만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똑같은 위치에 들어오는 공을, 보다 단신이라면 힘들여서 점프다이브[30]를 해야하지만, 보다 장신이라면 훨씬 체력소모가 덜한 컬랩스다이브[31]로 처리할 수 있다. 헤더나 크로스를 막아낼때도 보다 단신이라면 거의 무조건 공격수와 같이 뛰어야 하겠지만 보다 장신이라면 가만히 서서 손만 뻗으면 되거나 까치발만 서면 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키가 크니 똑같은 힘을 들여서 뛰어도 더 높이 있는 공에 더 쉽게 손이 닿는다.

물론 긴 기럭지로 인한 사정거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유용한데, 유사시에 급하게 대충 팔을 뻗거나 했을 때 보다 단신이라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스텝을 밟고 다이빙을 하지 않으면 아예 안 닿을 거리도 일단 리치가 길다보니 어거지로 닿는 경우도 있다. 이 점은 특히 페널티 킥에서 부각된다.

타고난 긴 기럭지는 착시효과에도 유리하다. 보통 골키퍼들은 골대가 작아보이는 착시효과를 노리기 위해 실제 골대의 위치보다 훨씬 더 앞으로 나와서 수비하는데(물론 현재 공격수의 위치에 따라서 부득이하게 골문 바로 앞까지 후퇴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 때는 수비수들이 추가로 달라붙어서 골 공간을 막아준다.), 팔다리가 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똑같이 큰 대(大) 자로 팔다리를 펼쳤을 때보다 단신의 골키퍼와 같은 위치에 서 있다면 훨씬 더 골대가 작아보인다.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들을 극한까지 짜내면 이렇게 하드웨어 자체만의 장점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하는데, 이런 수준까지 간 프로급의 경우 실력 뿐만이 아니라 신체 조건 유리한 선수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니 다른 필드에서는 절대로 단신 소리는 안 듣는 180cm가 골키퍼에게는 최소치 수준의 대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선수들의 신체조건이 좋아지고 있는 현대로 올 수록 점점 허들이 높아지고 있다. 불과 10~15년 전만 해도 이케르 카시야스, 이운재, 김병지 등 180cm대 초반 골키퍼들이 훌륭한 기량을 보여줬지만, 이제는 185cm보다 작으면서 빅 클럽 주전을 꿰차는 선수를 보기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 단적으로 1929년생인 레프 야신부터가 189cm이다.

사실, 골키퍼 신체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키보다는 팔 길이다. 다만 팔이 길려면 그만큼 필연적으로 키도 커지게 되어있는 것. 다리 길이에 비해 팔이 짧으면 오히려 무게 중심만 높아져서 영 좋지 않다. 키 그 자체는 짧더라도 자기 키보다 더 긴 리치를 가지고 있으면 나름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32]

다만 이렇게 신체 조건의 영향을 꽤 직접적으로 받다 보니 그만큼 키에 대한 선입견이 큰 포지션이기도 한데, 특히 청소년 때 실력 이전에 키만 보고 걸러내는 코치와 스카우터들이 허다하다. 축구 좀 잘한다는 나라들도 이런 사고가 종종 터지며, 하다못해 김병지도 키가 늦게 큰 편이라 자칫하면 10대때 축구 인생 끝날 뻔 했고[33] 노이어도 프로 레벨에 데뷔하지 못할 뻔 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소프트웨어가 좋을 때'를 기준으로 하드웨어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지, 소프트웨어가 후달리면 아무리 키가 커도 안될 건 안된다. 위치 선정을 이상하게 하고 수비 조율을 못하면 야오밍이 다이빙해도 못막을 각도의 슈팅 각과 타이밍을 허용하게 되며, 기름손이 작렬하면 기껏 잡은 크로스를 놓쳐서 위험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심지어 프로 수준에서도 장신일수록 긴 사정거리로 유사시에 유리한 반면 그만큼 미숙한 위치선정 능력이 가려지는 경우도 있다. 또, 팔이 길어질려면 필연적으로 다리도 길어지게 되어있는데, 그렇다면 그만큼 타고난 무게 중심이 높아지며 길어진 뼈로 인해 몸무게 자체가 늘어나기에 민첩성을 기르려면 오히려 훨씬 고도의 훈련을 요구한다. 고효율이지만 그만한 투자가 필요하다. 소프트웨어가 한계까지 최적화되어야 비로소 하드웨어만의 장점이 부각되는 것이며, 웬만해서는 그럴 일 없는 군대스리가나 동호회 등 생활 축구의 경우 키와 상관없이 일단 의욕있고 잘하는 사람을 골키퍼에 둬야 한다. 신체 조건이 본격적인 영향을 끼치려면 올림픽, 프로축구 등 흔히 생각하는 탈생활급 레벨로 가야한다.[34]

한편, 여자 축구에서는 여자 선수들이 대개 키가 작지만(즉 팔다리도 짧지만) 골대 규격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남자 선수들이었다면 쉽게 막을 수 있는 슈팅이 골키퍼(와 수비진의) 신체적 한계로 인해 득점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골대 상단 구석으로 날카롭게 공략하면 십중팔구 골이다. 그래도 성인 프로 레벨에서는 높은 경험치와 다이빙 능력으로 커버해낸다지만 여자 저연령(15세, 17세 이하 등) 청소년 축구처럼 아직 성장 중에 있는 선수들이 많은 대회에서는 동연령대 남자 대회에 비해 골이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여자 17세 이하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을 우승할 당시 화제가 되어 주목을 끌었는데 여자 축구에 익숙치 않은 일부 축구팬들이 골을 많이 허용하는 골키퍼가 답답하다 성토하기도 했지만 대회를 직접 중계하기도 한 박문성 등 축구계 종사자들은 신체적 차이로 인해 골키퍼가 골문을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다는 이유를 설명하며 도리어 골 많이 터지니 엎치락뒤치락 흥미진진하지 않냐(...)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이것도 옛날 얘기인 것이, 최근에는 남자 축구에 비해서 왜소해 보인다 뿐이지 여성 중에서 상당한 장신 선수들로 도배되어 있다. 최근 나오는 여성 골키퍼들은 신장이 180cm 이상인 경우도 흔해졌다. 게다가 여자 축구도 계속 투자 및 발전을 통해 신체조건 뿐만 아니라 빌드업 및 선방 능력까지 갖춘 실력 있는 골키퍼도 많이 등장하고 있어 메이저급 국제 대회에서 더 이상 예전같이 순수하게 골키퍼가 못해서 대량 실점을 당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편 과거에는 대중매체나 서브컬쳐 등에서 골키퍼=덩치 크고 우람한 선수라는 인식을 반영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골문을 지킨다는 특수한 입지때문에 비교적 비대한 덩치가 안정감있게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축구에서 골키퍼는 다른 포지션과 동일하게 과체중이거나 지방이 많을 경우 매우 불리한 포지션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건데, 골키퍼는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줘야 하는데 몸이 과하게 비대하면 민첩할리가 없다. 이운재가 2000년대 중반에 체중이 불자 '돼운재'라고 까인 이유가 이것. 반대로 너무 마른 몸도 좋지 않은데, 공중볼을 비롯한 여러 상황에서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하면서 공중볼을 따야 하는 상황이 있어서 몸이 너무 마르면 몸싸움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이 역시 안 좋다. 그래서 정상급 골키퍼들을 보면 적정한 체중 선에서 근육량을 잘 유지하면서 커리어를 지속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역대 골키퍼 중 무게가 가장 많이나갔던 선수는 첼시 FC의 초대 주장 윌리엄 폴크.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폴크의 몸무게는 최소 140kg, 추정 150kg 전후에 달하며, 별명마저도 뚱뚱이(Fatty)다. 그럼에도 이 선수가 골키퍼로 활약할 수 있었던건 비교적 정형화가 덜 된 당대의 축구 환경이나 강도 등도 영향이 있었겠으나,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206cm라는 어마어마한 장신의 소유자였던 점이 한 몫 했을 것이다. 현대 축구에서도 206cm 골키퍼는 세계에서 한 두명 수준으로 드문데, 지금보다 평균 신장이 훨씬 작았던 그 시절에는 폴크가 무슨 거인과도 같은 위압감을 뽐냈을 것이다.


8.1. 선수들의 신장[편집]


현역이 아닌 골키퍼들은 이탤릭체 처리하였다.

200cm 이상:


190cm 대:

199cm: 아스미르 베고비치 , 닉 포프[35], 에드윈 반 데 사르
198cm: 로빈 올센, 웨인 헤네시, 라르스 우너슈탈, 치프리안 터터루샤누
197cm: 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 랄프 페어만[36], 이범영
196cm: 페트르 체흐, 잔루이지 돈나룸마, 조 하트, 디에고 로페즈, 잭 버틀랜드, 파울로 가자니가, 이르지 파블렌카, 프란체스코 톨도
195cm: 보이치에흐 슈쳉스니, 알퐁스 아레올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194cm: 피터 슈마이켈, 지다, 마커스 베티넬리, 송범근, 리카르도 사모라, 에두아르 멘디, 굴리엘모 비카리오
193cm: 마누엘 노이어, 데이비드 시먼, 마르쿠스[37] , 사미르 한다노비치
192cm: 잔루이지 부폰, 다비드 데 헤아, 세르히오 로메로, 살바토레 시리구, 스벤 울라이히
191cm: 알리송 베케르, 다니옐 수바시치, 팀 하워드, 레네 아들러[38], 샘 존스톤, 비센테 과이타, 마이크 메냥
190cm: 로만 바이덴펠러[39], 우카시 파비안스키, 옌스 레만, 베른트 레노, 알렉스 메렛, 후이 파트리시우

180cm 대:

189cm: 레프 야신, 리나트 다사예프, 로리스 카리우스, 케빈 트랍, 조현우, 김승규
188cm: 올리버 칸, 위고 요리스, 호제리우 세니 , 얀 오블락, 페페 레이나, 에데르송 모라에스, 마티아 페린
187cm: 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 줄리우 세자르, 카스퍼 슈마이켈
186cm: 로베르트 엔케, 케파 아리사발라가
185cm: 케일러 나바스, 스티브 만단다, 기예르모 오초아, 세르히오 고이코체아,[40] 조던 픽포드[41], 고든 뱅크스 [42]
184cm: 피터 쉴튼, 클라우디오 브라보, 앙토니 로페스, 김병지, 최은성
183cm: 제프 마이어, 레이 클레멘스[43], 빅토르 발데스, 다비드 오스피나, 미셸 포름,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셰이 기븐 , 루카 지단[44], 얀 좀머, 클라우지우 타파레우[45], 호세 데헤수스 코로나
182cm: 디노 조프,[46], 이운재, 이케르 카시야스[47]
181cm: 산티아고 카니사레스[48]
180cm: 파비앵 바르테즈

180cm 미만:

178cm: 에지뉴[* '펠레의 아들이다.']
176cm: 닉 리만도
175cm: 모아시르 바르보자 나시멘투,[49] 호세 레네 이기타
173cm: 제레미 자노
172cm: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
168cm: 쥘리앙 다리, 호르헤 캄포스[50]

신장이 작은 골키퍼들일수록 은퇴/사망한 선수들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시만 해도 선수들의 평균키가 지금보다 작았기 때문에 골키퍼들의 신장도 자연히 현대의 선수들에 비해 작은 것. 다시 말해, 시간이 흐르면서 평균적인 신체 조건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가뜩이나 평균을 가볍게 뛰어넘는 골키퍼의 신장도 커진다. 동급의 실력을 가졌다면 신체 조건이 가져다주는 여러 장점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이러니까 괜히 같은 조건이라면 보다 장신의 선수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비교적 단신인 골키퍼들은 그만큼 장신의 골키퍼들보다 더 잘하는 무언가가 있으니 기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9. 대한민국의 골키퍼[편집]


한국 축구계가 제대로 된 육성 시스템을 도입하긴 전인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육성 노하우가 떨어지는 포지션으로 꼽혔다. 일단 화려함이 덜하다 보니 인기가 적은 포지션이고, 골키퍼를 맡기면 학부형에게 항의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 이는 한국인의 성향과도 직결되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단체활동을 할때도 맨 앞에 있는게 제일 잘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도 가장 공을 잘차면 공격수, 좀 모자란다 싶으면 수비수, 그것도 아니면 골키퍼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소거법이 적용되어 결국 제일 못하는 아이가 골키퍼를 맡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51][52] 이 때문에 프로 구단들도 80년대까지는 골키퍼들의 능력이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었고, 그 가운데 특출난 모습을 보인 김풍주, 최인영 등 몇몇 선수가 국가대표 주전 자리를 사실상 독점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크게 두 차례의 변수를 통해 이러한 저평가는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다. 첫번째는 K리그 역사를 바꾼 레전드 골키퍼 신의손의 등장이었다. 러시아 리그에서 넘어와 K리그 성남 일화 천마에 합류한 사리체프는 말 그대로 클래스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1992년부터 1998년까지 157경기 출장 179실점을 기록하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겼고, 사리체프의 합류 후 성남 일화는 그럭저럭 하던 구단에서 순식간에 K리그 최강팀으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사리체프의 활약은 대한민국 축구인들의 골키퍼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으니, 바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나온 골키퍼들의 부진이었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비단 골키퍼 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1992년 아시안컵 예선에서 탈락하고, 1994년에는 도하의 기적 끝에 턱걸이로 미국 월드컵 본선에 간신히 진출했다. 그렇게 힘들게 진출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선전을 보여줬지만, 최인영 골키퍼가 독일전에서 치명적인 실책을 범하면서 다시 한 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연이어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는 차상광 골키퍼의 충격적인 알까기로 우즈베키스탄에 패해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골키퍼로 인해 국가대표팀이 치명적인 패배를 겪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고, 이는 앞서 말한 사리체프의 충격적인 활약과 더불어 국내 축구인들의 골키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199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 축구계에서도 체계적인 골키퍼 육성과 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로 인해 모든 팀에 전문적인 골키퍼 코치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국산 골키퍼의 육성을 위해 K리그에서도 용병 규정을 손봐, 1999년부터는 외국인 골키퍼가 활약할 수 없게 되었다.[53] 국가대표팀에서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골키퍼들을 모아 경쟁 구도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당시 난세 영웅처럼 등장한 선수가 바로 김병지이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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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역사에서 골키퍼의 전성기를 논한다면 당연히 김병지, 이운재가 활약한 1995~2009년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팀 데뷔는 이운재가 1994년 미국 월드컵을 통해 먼저 치렀지만, 이후 이운재가 주춤하는 사이 김병지가 맹활약하며 이운재보다 먼저 대표팀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두 레전드 골키퍼의 경쟁 구도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절정에 달했고, 끝내 이운재가 판정승을 거두며 한일월드컵 주전 골리로 낙점되었다. 이 둘의 경쟁구도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금 발생했는데, 당시에는 주전으로 이운재가 낙점된 가운데 김병지는 골키퍼 세대교체를 위해 김영광과 김용대를 대신 선발하면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렇게 두 명의 야신상급 골키퍼가 버텨선 14년간 골키퍼는 국가 대표팀에서 가장 안심할 수 있는 포지션이었고, 이로 인해 이 둘에 버금가는 골키퍼인 최은성은 국대 커리어를 1경기로 마감해야 했으며, 김병지, 이운재 다음 세대였던 김용대김영광은 끝내 선배들을 뛰어넘지 못한 채 비교만 실컷 당하다 정성룡, 이범영 같은 후배들에게 밀렸다.

2009년부터는 리그에서의 활약으로 정성룡이 차세대 국가대표팀 골키퍼로 떠올랐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이운재가 벤치로 가면서 정성룡이 주전으로 풀 타임 출전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이범영이 런던 올림픽 8강전에서의 활약으로 임팩트를 남겼고, 비슷한 시기 리그에서는 김승규라는 신예가 빠르게 성장하고, 청대를 거친 김진현이 J리그에서 자리잡고 국대에 발탁되는 등 차세대 국대 골키퍼 자원들이 부상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런던 올림픽 이후 정성룡이 다소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망해버렸고, 이범영은 리그에서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사이 김승규가 리그에서의 맹활약과 브라질 월드컵 벨기에전의 좋은 모습으로 눈도장을 찍고, 김진현이 슈틸리케호에서 중용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다.

2015년에는 아시안컵에서 김진현이 맹활약하며 먼저 치고나갔지만, 이후 잠재적 불안요소가 연달아 터지며 김승규가 다시 주전 자리를 가져갔다. 이 둘의 경쟁구도가 지속되면서 K리그 정상급 골키퍼 권순태는 국대에서는 서드 골키퍼로나 뽑히고, 신화용은 아예 뽑히지도 못하는 상황. 그러더니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한 정성룡이 부활에 성공하고,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이창근, 김동준, 구성윤같은 젊은 골키퍼들이 이운재 코치의 지도 하에 싹수를 보여주는 등 새로운 춘추전국시대를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준은 2016년 리우 올림픽 전후로 부진을 겪고, 이창근은 성장이 정체되고, 구성윤도 성인 대표팀에서 바로 기용하기에는 안정감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며 성인 대표팀 진출은 조금 뒤로 밀리는 모양새. 대신 2017년부터 대구 FC에서의 맹활약으로 국대에 승선한 조현우가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끝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엔트리에도 조현우, 김승규, 김진현이 선발되었다. 당초 신태용호의 국대 주전은 김승규가 유력했고 조현우는 김진현과 백업 자리를 경쟁하는 수준이었지만, 조별리그 1차전 스웨덴전에서 조현우가 선발로 출격해 선방쇼를 작렬하며 눈도장을 찍더니, 멕시코전에서도 맹활약한데 이어 독일을 격파하는 역대급 기적에서는 MoM에 선정될 정도로 날아다니면서 전국민적 인지도를 쌓았다.

월드컵 이후 벤투호 체제에서는 다시금 무한경쟁이 시작되었는데, 조현우김승규가 주전 자리를 놓고 끊임없이 경쟁하는 중이다. 선방 능력은 조현우가 좀 더 앞선다는 평이지만, 김승규가 빌드업이 어느정도 되다보니 벤투의 철학에 더 부합해서 상대적으로 김승규가 주전에 좀 더 근접한 상황. 그리고 이들을 이을 차세대 골키퍼 자원으로는 포항 스틸러스강현무와, 전북 현대 모터스송범근이 꼽히고 있으며, 이들보다 한 세대 위긴 하지만 구성윤이창근 역시 간간이 국대에 뽑히는 등 국대 자리를 계속해서 넘보고 있다. 여기에 2019년 U-20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이광연도 떠올랐지만, 이후 리그에서 다소 주춤하는 모습.

2020년에는 울산 현대 소속의 조수혁이 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음에도, 조현우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주전으로 나서게 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모든 경기를 책임지고 무패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대회 공식 SNS와 외신에서도 "리그에서 한번도 나오지 못한 선수가 대륙대회에서 날아다닌다"라며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로 접어들면서 현재 한국의 골키퍼 자원은 과거에 비하면 양적으로 훨씬 풍족해졌고 더 이상 약점으로 지적받지 않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없진 않은데, 킥 좋은 골키퍼가 드물다는 점이다. 김병지야 말할 것도 없고, 이운재도 김병지에 비해 다소 떨어질 뿐이지 좋은 킥력을 갖추고 있었다. 동 시기에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킥이 좋았던 골키퍼인 이용발은 이들보다 먼저 은퇴했고, 그 다음 세대로 우수한 킥 능력을 가진 정성룡이 등장했지만 결국 경쟁에서 밀려버린 상황. 2014년 월드컵 이후 주전을 차지했던 김승규, 조현우, 김진현 모두 킥 능력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남겼는데, 특히나 조현우와 김진현의 경우 클럽에서 보여주는 킥 능력을 국대에서는 전혀 피지 못하고 있어서 더욱 아쉬운 상황이었다.[54] 다행히도 벤투호에서는 김승규의 킥 능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대한민국 축구에서도 골키퍼를 기점으로 한 후방 빌드업이 어느정도는 가능해졌다.

골키퍼 자원이 풍족해지자 이로 인해 이웃 일본의 J리그에서 한국인 골키퍼가 뛰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주된 이유는 일본의 골키퍼 기근 때문인데, 사실 일본은 골키퍼 기근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이전부터 이어진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유럽 골키퍼 선수들이 오기엔 가뜩이나 일본어 배우기가 어렵다 보니, 결국 거리도 가깝고 일본에 비하면 골키퍼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한국 골키퍼들을 찾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해 수요와 공급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학 재학중 J리그에 진출하여 자리잡은 김진현의 성공사례가 큰 역할을 했는데, 선수 육성이 클럽에서 이루어지는 유럽, 남미와 달리 대학의 비중이 높으면서 거리도 가까운 한국은 스카우트가 일본 국내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용이하다. 대표 상비군 급에서는 세레소 오사카에서 리빙 레전드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 김진현 외에도 구성윤이 프로 데뷔를 일본에서 했다. 베테랑 골키퍼들 또한 흔하지 않은 해외진출 기회로 일본행에 적극적이며,[55] 예를 들어 정성룡도 가와사키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서 지지가 높은 편.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J리그도 K리그처럼 외국인 골키퍼 기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언급하기도 하나, 이는 한국과 일본의 인프라 차이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021년 기준 한국은 1부리그에 12팀, 2부리그에 10팀으로 프로팀이 22개밖에 없지만, 일본에는 1부리그 18팀, 2부리그 22팀, 3부리그 16팀[56], 무려 56개의 프로팀이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인데, 애초에 한국보다 인구가 2.5배 많은 나라에서 프로팀이 한국과 비슷한 수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따라서 한국인 골키퍼에게 주전을 내주는 팀이 있더라도 결국 프로무대에서 뛰는 골키퍼 수는 일본인 골키퍼가 더 많으며, 게다가 일본은 외국인 골키퍼를 제한하고 안하고와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선수들의 신체조건이 나빠서 골키퍼 자원이 잘 등장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전 58명에 후보선수까지 죄다 일본인으로만 채운다면 자국인 골키퍼의 수준 향상은커녕 고교축구 에이스같은 아마추어 수준의 골키퍼들이 프로경기를 뛰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9.1. 여자 축구에서[편집]


한편 국내 여자축구에서는 역사적으로 걸출한 골키퍼가 전혀 없었다. 여자축구가 전반적으로 있었던 문제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골키퍼 쪽에서 유망주 육성 및 훈련의 열악함 때문에 예부터 대대로 골키퍼 포지션은 항상 아쉬운 소리를 많이 들었으며 그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2003년부터 김정미가 현재까지도 부상 등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국가대표 엔트리에 꾸준히 들고 있지만 냉정하게 국제 대회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고 실수도 잦아 매번 골키퍼 포지션이 취약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특히 김정미는 노쇠화로 인해 폼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GK 포지션에서의 불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대한민국의 2010 FIFA U-17 여자 월드컵 트리니다드 토바고 우승 이후 여자축구 저변도 확대가 되면서 유망주 육성에 투자를 한 덕에 걸출한 골키퍼 기대주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원래부터 여자축구 인프라가 좋았던 일본, 미국, 브라질 등은 물론이고 최근에 여자축구에 엄청난 투자를 하며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다수의 유럽 국가들에서 월등한 신체조건 및 선방 능력을 가진 유망주 골키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 부족한 실정이다. 거기다가 국내 여자축구 리그인 WK리그는 국내에서 프로 리그가 활성화된 여농이나 여배에 비해 인기도 매우 떨어져 그나마 세미프로인 실업리그의 형태로 겨우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저변이 없는 골키퍼 포지션에서의 인재는 더더욱 귀할 수밖에 없다.[57]

김정미가 나이가 들며 노쇠화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윤영글이 그녀를 밀어낼 강력한 경쟁자이자 후계자로 떠올랐으나, 부상이 잦고 중간에 유럽 진출로 인한 공백기까지 있었기 때문에 2023년 기준 아직도 김정미를 확실하게 밀어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윤영글 역시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그녀또한 서비스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김정미, 윤영글이 훗날 대표팀에서 물러나도 이들을 이을 촉망받는 어린 골키퍼 유망주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WK리그에서 압도적인 선방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젊은 골키퍼인 류지수가 아직 A매치 출전 경험은 없지만 대표팀 서드 키퍼로 꾸준히 발탁되고 있으며 180cm로 WK리그 최장신 GK인 최예슬도 1997년생으로 아직 젊은 편에 속해 있다.

여담으로 WK리그의 문경 상무 구단은 키 큰 골키퍼를 구하지 못한다. 신장이 185cm 이상인 여성은 군 입대 결격 사유에 걸리기 때문.


10. 복불복인 포지션[편집]


아무리 뛰어난 골키퍼라 해도 골키퍼 혼자서 상대 팀 공격수들을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운재,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끝나고 나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골키퍼는 어떠한 수비수를 같은 팀으로 만나 같이 뛰느냐에 따라 그 능력이 발휘되는데, 다시 말해 수비수 없이는 능력이 반감되는 포지션으로 뛰어난 수비수가 뒷받침 되어주지 않으면 잘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포지션이다.[58] 때문에 좋은 수비수를 만나는 것도 골키퍼로서는 행운이며 반대로 형편없는 수비수를 만나는 것 역시 골키퍼로서는 불운이다. 실력이 중요한 포지션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복불복의 영향을 유난히 크게 받는 포지션 역시 골키퍼다. 이 복불복 최대의 피해자는 뭐니뭐니해도 모아시르 바르보자 나시멘투인데, 이유는 마라카낭의 비극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이 사실을 우리나라 선수가 증명했는데, 바로 김병지다. 김병지는 조별 리그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무려 5실점했지만, 당시 네덜란드 감독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의 골키퍼(김병지) 때문에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없었다."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맹활약했다. 만약 골키퍼가 김병지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스코어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 당시 네덜란드의 슈팅은 27개, 유효 슈팅도 매우 많았는데 5실점밖에 안한건 진짜 잘한거다. 당시 김병지 혼자 월드컵을 뛰었다는 자조 섞인 조롱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1950년부터 1966년까지 멕시코의 골문을 지켰던 안토니오 카르바할도 그 예시 중의 하나. 월드컵에 5번이나 출전하면서 대회마다 선방을 거듭하며 멕시코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칭송받는 그이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25실점이라는 월드컵 역대 최다 실점 기록이었다. 이 기간에 멕시코는 12경기 중 무려 10번을 졌고 단 한 번도 8강에 못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이 사실이 증명되었는데, 브라질의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는 이 대회에서 8강전까지 놀라운 선방을 보여주었으나,[59] 수비의 핵이자 주장인 티아고 실바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여파로 수비가 약화되자 4강에서 독일에게 7:1로 학살당하고 말았다. 미네이랑의 비극 참조. 세자르의 경기력이 처참해서 벌어진 비극이 아니었건만 그 여파를 직격파로 맞았기에 더더욱 비참한 경기였다.

이날의 여파인지 3/4위전에서도 네덜란드에게 3골을 얻어맞으며 이 두 경기에서만 10실점을 기록하며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 같은 수비수(나아가 팀 전체)와 골키퍼의 관계 때문인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잘나가던 강팀인데 골키퍼가 돋보인다면 그 팀은 이번 시즌은 망했다, 나아가 몰락의 시작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잘나가던 팀이면 골키퍼도 능력 있는 선수일텐데 팀이 망하면 수비가 무너져서 골키퍼가 선방해야 할 슈팅이 많이 날아올테니 골키퍼가 돋보일 테고, 공격이 잘 풀려서 난타전이라도 나오면 골 넣는 공격수가 더 화제가 될 텐데 골키퍼가 돋보인다는 건 공격수도 딱히 돋보이지 않는다는 소리일테니 원래 강팀에서 골키퍼가 에이스 소리를 듣는다는 건 공수 가릴거 없이 망했다는 증거. 실제로 다비드 데 헤아가 맨유 올해의 선수를 연속으로 받으면서 다음 시즌엔 골키퍼가 아닌 공격수나 미드필더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역으로 골키퍼는 평범한 클래스[60]인데, 선수진이 어마어마해서 우승까지 그냥 버스 타고 가는 케이스도 많다. 이 케이스에 대표적인 경우는 2008년 이후로 신과 우주라 불렸던 바르셀로나의 주전 골키퍼 빅토르 발데스. 바르셀로나를 논할때 월드클래스 수비진인 카를레스 푸욜제라르 피케를 말하는 경우는 있어도, 골키퍼가 잘 막아서 승점을 챙겼다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그렇다고 발데스가 수준이 떨어지는 골키퍼는 아니고, 충분히 리그 정상급의 선방 능력은 물론 당시로서는 비교적 생소했던 골키퍼의 후방 빌드업에 있어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 A급 골키퍼였다. 단지 수비진이 S급이라 발데스가 바르사 수준조차 아닌 선수랍시고 억울하게 저평가를 당했을 뿐이다.[61]

또한 주로 미드진과 공격진이 뛰어난 팀에서 일방적으로 2점, 3점 이상 내는 팀에서 골키퍼는 한 것 없다고 저평가를 받는 케이스인 경우도 많은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멤버인 파비앙 바르테즈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티보 쿠르투아 등이 이런식으로 욕을 많이 먹는다. 강팀의 골키퍼로서 그냥 하는 거 없이 묻어갔다라는 평가가 많은데, 공교롭게도 이런 선수들이 클럽에서 타팀으로 이적하거나, 필드 선수들이 세대교체가 되면 귀신같이 몰락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더 골키퍼가 팀에 묻어갔다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골키퍼 입장에서는 이것도 어느 정도 억울할 수도 있는데, 앞서 말했듯 골키퍼는 같은 팀 수비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포지션이고, 따라서 수비진의 클래스가 떨어지면 골키퍼 역시 고생하고 전보다 못 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실제로 수비진의 하락세와 함께 골키퍼의 폼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폼은 일시적일지라도 가지고 있는 클래스가 있어서 금세 자기 컨디션을 회복하는 경우도 많다. 바로 위에 있는 티보 쿠르투아가 대표적인 사례로, 레알 이적 직후에는 그렇게 욕을 먹었지만 그 다음 시즌부터는 더 약해진 레알 수비진을 데리고 선방쇼를 찍으면서 본인의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62]


11. 골키퍼가 골문을 비운다면[편집]


골키퍼는 보통은 골문을 지키지만, 팀이 패배 직전에 몰려 한 골이라도 넣어야 할 때, 또한 한 골 더 주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때는 필드에서 손수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보통은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얻었을 때, 상대편 골문 앞으로 가서 공격에 나서게 된다. 어찌 되었건 신장이 좋은 골키퍼를 박스에 넣어서 숫자도 늘리고 제공권을 따려는 의도다. 실제로 성공한 사례도 종종 있어서 옌스 레만이나 마르빈 히츠, 알리송 베케르가 이 상황에서 득점하기도 했다.

그런데 공격이 실패하고 되레 상대 팀이 역습을 한다면? 실제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2018 FIFA 월드컵 러시아/F조에서 골문을 비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득점을 했다.

우다다다다다다다다
달려라 조 하트

맨체스터 시티 FC의 골키퍼 조 하트가 죽어라고 뛰는 영상이다.[63] 섣불리 공격에 나섰다가 역습이라도 당하면 이렇게 부리나케 돌아가야 한다. 물론 조 하트는 운이 좋아서 막았고, 노이어는 운이 없어서 먹었다. 덤으로 조 하트는 이 경기 이후에 육상 경기 3관왕인 우사인 볼트의 이름을 따서 '우사인 하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걷어내려다가 골문을 비우고 먹히는 경우도 있는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위고 요리스는 스웨덴전에 볼을 걷어냈는데 그게 올라 토이보넨에게 가서 실점한 사례도 존재한다.이동국 안면슛


12. 골 넣는 골키퍼[편집]




12.1. 필드에서 골 넣기[편집]


간혹 가다 프리킥을 차거나 세트 플레이를 해서 필드 골을 넣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역대 골 득점 1위인, 상파울루 FC호제리우 세니가 있고,국내에서 보다 인지도가 높은 선수로는 역대 2위인 파라과이 수비력의 절반 이상이라고 불리던 명골키퍼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가 있다. 역대 4위인 호세 레네 이기타는 바로 아래 참고.

물론 골키퍼의 특성상 야구에서 타자로 나온 투수가 홈런을 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희귀하다(다만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경우라면 김성한, 오타니 같은 예외 상황이 아닌 한 투수의 홈런이 더 보기 힘들다). 물론 실수라도 해서 수세로 몰리면 골키퍼가 공격 가고 없을 테니 되레 골을 안 먹으면 다행인 상황이 된다.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콜롬비아 국대의 골키퍼였던 '광인' 호세 레네 이기타는 수많은 기행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실점도 많았다. 레네 이기타는 잉글랜드전에서 모두의 말문을 막히게 한 스콜피온 킥 선방을 보여준 그 사람이다. 참고로 슛을 쐈던 사람은 해리 레드냅 QPR 감독의 아들이자 당시 리버풀에 있던 제이미 레드냅.

골키퍼가 전문 키커가 아닌 경우에도 간혹 골을 넣는 경우가 있다. 보통 키퍼가 공격에 가담하는 경우는 경기 막바지에서 득점을 하지 못하면 패배나 탈락이 확정될 경우이다. 물론 그런 상황이라고 해서 골키퍼가 골을 몰고 나오는 것은 아니고 코너킥 같은 세트 피스 상황에서 가능한 수적 우위를 가져 만회골을 넣기 위한 목적으로 올라온다. 게다가 보통 상대팀들은 전원 수비에 들어가더라도 한명의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확률상 공격 경험이 없는 골키퍼에 맨마킹을 두지 않는다. 때문에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한 골키퍼가 득점하여 탈락을 면한 사례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들어간 골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1999년 잉글랜드 디비전 3(4부 리그) 꼴찌였던 칼라일 유나이티드가 시즌 최종전 94분에 터진 골키퍼 지미 글래스[64]의 결승골로 극적으로 23위로 올라서 극적인 생존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칼라일 유나이티드는 2014년 기준으로 3부 리그인 리그 1에 올라와 축구를 하고 있지만[65], 마지막 순간 칼라일에게 뒤집혀 강등당한 스카브러 SC는 이후로도 다시는 풋볼 리그에 복귀하지 못한 채 2006년 재정난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1995-96 시즌 UEFA컵 1라운드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골키퍼 페테르 슈마이켈라이언 긱스가 올려준 코너킥을 헤더로 넣어 득점했다. 이 골은 퍼거슨의 맨유의 400호 골이었다.

1998년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인저리 타임 헤더를 성공시켜 울산 현대 호랑이를 연장전으로 이끌고 결국 결승 진출에 성공시킨 김병지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2015년 분데스리가에선 FC 아우크스부르크의 골키퍼 마르빈 히츠가 후반 추가시간에 공격가담했다가 득점해 팀의 무승부를 이끌어내는 영웅이 되기도 했다.


2015년 에레디비시 ADO 덴 하흐PSV 에인트호번의 경기 중 후반 95분 덴 하흐의 골키퍼 마르틴 한센이 프리킥 상황에서 정신 나간 백힐 킥 골을 보여주었다.

2016년 초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스완지 시티의 경기에선 후반 추가시간이 끝나갈 무렵 우카시 파비안스키가 코너킥에서 다비드 데 헤아의 발을 묶는 완벽한 헤더슈팅을 작렬했으나...골대를 깻잎 한장차이로 비껴가버렸다. 특히 이 헤더는 다른 대부분의 사례처럼 필드플 레이어의 헤더 등 플레이 후 세컨볼이나 혼전 상황이 아닌, 길피 시구르드손의 코너킥을 파비안스키가 직접 슈팅으로 연결한 것이라 더욱 놀라웠다.

2017-18시즌 전반기 세리에A에서 리그 최하위에 머물러있던 베네벤토 칼초는 15R에서 만난 AC 밀란을 상대로 후반 추가시간 막바지에 나온 극적인 동점골로 무승부를 거두고 감격적인 시즌 첫 승점을 획득했는데, 이 골을 넣은 선수는 다름아닌 골키퍼 알베르토 브리뇰리였다.#

2019-20 시즌 EPL 전반기 첼시 FC왓포드 FC의 경기에서는 왓포드가 1:2로 지고있던 상황에서 벤 포스터가 후반 추가시간 막바지에 공격에 가담, 멋진 다이빙 헤더까지 연결했으나 케파 아리사발라가의 슈퍼 세이브에 막히며 아쉬움을 삼켰다.#


2020-21 시즌 EPL에서 리버풀 FC알리송 베케르가 36R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전에서 1:1로 비기고 있는 상황에 후반 추가시간 마지막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극장골을 작렬시키며 팀의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불씨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EPL에서 골키퍼가 결승골을 넣은 최초의 사례가 되었는데, 골키퍼가 공격에 가담하는 상황은 1골차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골키퍼가 극적으로 골을 넣어도 보통은 동점골이지 결승골인 경우는 거의 없다. 알리송의 경우 챔스권 경쟁 때문에 비기는 것이 지는 것이나 다름없던 상황이기 때문에 동점 상황임에도 공격가담을 해서 결승골을 넣은 것. 그렇게 알리송의 골로 진출하는데 성공한 21-22 시즌 챔스에서 리버풀은 준우승이라는 성과까지 거뒀으니, 과장 좀 섞어서 알리송의 골 하나가 팀의 챔스 준우승의 발판을 놓은 셈이다.

2023-24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는 SS 라치오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0:1로 밀리다가 후반 추가시간에 골키퍼 이반 프로베델의 동점 헤더골이 나와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프로베델은 전 시즌 세리에A 최우수 골키퍼를 받을 정도로 선방과 후방 빌드업 양면에서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인데, 극장골까지 넣은 것은 물론 골을 넣을 당시의 오프더볼 움직임이 전문 최전방 공격수 저리 가라 수준의 침투라서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유스 시절 공격수로 자주 뛰었었다고.[66]

12.2. 골문에서 골 넣기[편집]



정성룡의 포지션이 DF로 나오는데, 골키퍼가 득점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방송사에서 저 부분에 넣을 GK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뭐, 이런 경우도 있긴 하다. 과거 '재밌는 축구 기록' 등을 찾아보면 '골킥으로 골을 넣은 골키퍼'가 있긴 했지만 눈 앞에 일어나니 다들 어안이 벙벙...정성룡은 이걸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사상 최초로 골을 넣은 골키퍼로 역사에 남았다. 프로 리그에선 앞서 서술한 김병지 등이 득점한 사례가 있지만 국가 대표 선수로선 정성룡이 처음.

원래는 골 인정이고 뭐고 아무 규칙도 없었지만, 1997년 7월 1일 규정을 개정하여 이 날부터 인정되었다.

2007년 3월 16일, 토트넘 홋스퍼 FC의 폴 로빈슨은 왓포드 FC와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88m 짜리 장거리 골을 넣었다.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길게 찬 롱킥이 피치에 바운드 된 후 왓포드의 벤 포스터의 키를 넘겨버리며 골망을 흔들었다.

2011년 4월 14일, 콜롬비아 출신의 골키퍼인 윌손 키뇨네스(Wilson Quiñonez) 선수가 프리킥을 시도했는데, 이게 83m를 날아가서 상대방 골대에 꽂히면서 득점을 올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웃통을 드러내는 세레모니로 옐로 카드를 받았지만 누구라도 저럴 만하다. 당연히 이 프리킥은 축구 역사상 가장 길게 날아간 프리킥이다. 어쩌면 기네스북에 등재될지도 모른다. 그만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린 상대 팀 골키퍼한테 잠시 묵념...

2012년 1월 4일 볼튼 원더러스의 경기에서 팀 하워드가 자기 진영 페널티 지역에서 걷어찬 공이 상대 페널티 지역 부근에서 크게 바운드하였고, 아담 보그단 골키퍼의 키를 넘긴 뒤 그대로 상대 골문으로 들어갔다. 이와 같은 골키퍼에 의한 득점은 프리미어 리그 사상 4번째 기록이며, 상대편 골대로부터 91m 거리에서 넣은 이 기록은 종전에 정성룡이 갖고 있던 85m 거리에서 넣은 골 기록의 기네스 북 항목을 갱신한다. 그리고 왜 세레모니를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상대 골키퍼의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2013년 11월 3일 2013/14 시즌 EPL스토크 시티 FC사우스햄튼 FC 간의 경기에서는 스토크 시티의 주전 골키퍼 아스미르 베고비치가 백 패스를 길게 차서 경기 시작 12초 만에 득점을 올렸다. 오랜 역사를 가진 EPL이니만큼 골키퍼가 골을 넣은 사례가 EPL 출범 이후로도 5번째 기록이긴 했지만, 당당히 골키퍼 역대 최단 시간 득점(...)에 이름을 올릴 만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하지만 그저 공을 차냈을 뿐이었던 베고비치는 바로 위의 하워드와 마찬가지로 상대 골키퍼 아르투르 보루츠의 불운을 깨닫고 세레모니를 하지 않았고, 경기 후에도 별다른 기쁨을 표현하지 않은 채 보루츠를 위로하는 동업자 정신을 보여주었다.

기네스 북에 등재된 세계 최장거리 골 기록은 2014년 대한민국 내셔널리그에서 나왔다.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소속이었던 구상민골킥 골. (106.1yds / 97m) FANDOM 기네스 월드 레코즈 위키

2021년에는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강릉시민축구단 소속 김철호 골키퍼가 88m 거리에서 득점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영화 소림축구의 준결승전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골킥 상황에 골키퍼가 손으로 공을 던져서 골을 넣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골키퍼가 공을 손으로 던져서 골인을 하면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1887년부터 영국 축구 리그에서 골키퍼가 자기편 진영 어디서든 공을 손으로 잡을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골키퍼들이 자꾸 하프라인까지 공을 들고 와서는 던져서 골을 넣자 1912년부터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만 손을 댈 수 있도록 룰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 중, 골키퍼도 손으로 던져 득점이 불가능하다고 확실하게 명시됐다[67]. 영화는 2001년작이라 해당 규정이 없어 득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12.3. 페널티킥으로 골 넣기[편집]



골의 주인공은 현역 통산 41골을 기록한 호세 레네 이기타. AT 마드리드 vs 월드 레전드 친선 경기에서 50세가 넘는 나이에 출전해서 기록한 골이다.

축구 규칙에서 골키퍼가 페널티킥을 차는 것을 전혀 문제로 삼지 않는다. 따라서 골키퍼도 원한다면 페널티킥 키커로 나설 수 있다. 실제로도 위 영상에 나온 호세 레네 이기타도 현역 당시 페널티킥으로 득점을 많이 기록하기도 했으며 독일 분데스리가에선 한스외르크 부트가 페널티킥 키커로 많은 득점을 했다. 국내에선 2014년 펼쳐졌던 K리그 올스타전 팀 K리그와 팀 박지성간의 친선경기에서도 김승규이범영을 상대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골키퍼들은 필드 플레이어에 비해 슛 정확도나 페널티킥 성공률이 낮은 편이며, 슛이 막힐 경우 곧바로 골문이 비어버리는 비상 상황이 나오는 만큼 골키퍼가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는 건 매우 드물다. 이기타나 부트가 매우 희귀한 케이스. 김승규는 완전 재미로 하는 격의 친선경기에서 패널티킥 키커로 나서서 득점한 거라 이기타와 비교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반드시 키커로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 올 때가 있다. 바로 승부차기인데, 1~5번 키커로 승부가 나지 않아 필드 플레이어 10명이 모두 찼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골키퍼가 11번째 키커로 나서야 한다. 골키퍼가 골키퍼를 상대하는 풍경이 펼처지게 되는 것. 다만 골키퍼가 필드플레이어들이 다 찬 후 맨 마지막에 차야 할 의무는 없으며, 팀의 전략이나 골키퍼 본인의 실력을 고려하여 더 먼저 차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처음 5명에 골키퍼가 들어가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예시로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2011-12 UCL 결승에서는 3번 키커로, 2014-15 DFB-포칼 준결승전에서는 4번 키커로 나선 바 있다.[68] 물론 대부분의 골키퍼는 페널티킥 능력이 필드 플레이어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골키퍼 순서까지 왔다면 이 차례에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69]

이 중 국내에 잘 알려진 사례로는 2016 KEB 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이 있다. 이 경기에서 서울과 수원 양 팀 선수들이 한 명씩 퇴장당한 가운데, 합산스코어 3:3으로 정규시간이 끝나 연장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승부차기에서 양팀 모두 앞선 9명의 키커들이 전부 득점에 성공하면서 양팀 골키퍼들이 10번 키커로 나섰는데, FC 서울유상훈 골키퍼가 크로스바 위로 넘겨버리는 실축을 저지르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양형모 골키퍼는 득점에 성공하면서 우승을 가져간 적이 있다.

UEFA 네이션스리그 18-19 시즌 3,4위전에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 조던 픽포드가 승부차기 5번 키커로 나와 그의 강력한 킥을 바탕으로 스위스얀 조머 골키퍼를 뚫고 골대 오른쪽 상단으로 빠르고 강력한 골을 성공해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승리에 이바지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UEFA 유로파리그 20-21 시즌 결승전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나왔다. 비야레알 CF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경기가 1:1로 끝나며 승부차기로 이어졌고, 승부차기에서 앞선 10명의 키커들이 전부 성공시키며 10:10 스코어로 양팀 골키퍼들에게 배턴이 넘어왔다. 먼저 나선 비야레알 헤로니모 루이 골키퍼가 득점에 성공하고, 맨유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의 슛이 루이 골키퍼에게 막히면서 비야레알이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되었다.

21-22시즌 리그컵 결승전 첼시와 리버풀의 경기에서도 이러한 장면이 나왔다. 리버풀 골키퍼인 켈레허가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케파의 슛이 허공으로 날아가면서 리버풀이 리그컵을 우승하였다.


13. 필드 플레이어가 뛰는 골키퍼[편집]


골문을 온 몸으로 막는 유일한 포지션인 만큼 골키퍼에게는 독특한 룰이 있다. 그것은 부상이나 레드카드로 인해 골키퍼가 퇴장을 당할 경우인데, 교체 인원이 남은 경우는 필드 플레이어를 한 명 빼고 서브 골키퍼를 대신 들여보낸다. 정상적인 팀이라면 유소년 선수라도 교체 명단에 골키퍼를 두는 게 당연하기 때문. 하지만 교체카드를 이미 다 썼거나, 이미 서브 골키퍼가 교체 출전했는데 그 선수가 부상이나 퇴장으로 또 빠지게 된다면 이때는 어쩔 수 없이 필드 플레이어가 장갑을 끼고 골문을 지켜야 한다. 프로 무대에서도 가뭄에 콩나듯 드물게 보이는 상황인데, 그나마 코로나19 이후 여러 리그에서 교체멤버 수와 교체 횟수가 늘어나 벤치에 골키퍼 두 명이 앉는 일도 있어서 이런 모습은 다소 줄어들었다. 다만 교체 카드가 아예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얄짤없이 필드 플레이어가 장갑을 껴야 하기 때문에 아예 볼 수 없는건 아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으로 인해 골키퍼에서 뛴 필드 플레이어의 명단은 나무위키 문서 '분류:골키퍼 출장 기록이 있는 필드 플레이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주 드문 사례로 스쿼드에 있는 골키퍼들이 모두 출전할 수 없어서 필드 플레이어가 골키퍼로 선발 출전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보통 클럽간 리그 경기의 경우 스쿼드의 골키퍼들이 전멸하면 유스에서라도 골키퍼를 끌어오거나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FA 골키퍼를 급하게 주워오는 일이 많고, 리그에 따라서 골키퍼 포지션에 한해 긴급 임대 규정이 있는 경우도 있는 만큼 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러한 선수 이동이 발생하지 않고 스쿼드 내 골키퍼 숫자도 제한되는 단기 국가대항전에서나 볼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런 일이 202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카메룬에서 실제로 발생했는데, 조별리그에서 가나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키고 극적으로 16강전에 합류한 코모로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세 명이 전부 부상과 코로나19 확진으로 이탈해서 개최국 카메룬과의 16강을 앞두고 엔트리에 있던 골키퍼들이 전멸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70] 심지어 16강 상대는 개최국 카메룬. 이에 코모로는 수비수였던 샤케르 알라두르를 골키퍼로 세우고 16강전에 나섰는데, 놀랍게도 알라두르는 골키퍼로 나와 큰 실수를 범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전문 골키퍼 못지 않은 선방 능력을 보여줬고, 코모로도 비록 1:2로 패하긴 했지만 날카로운 역습을 바탕으로 개최국 카메룬을 상대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필드 플레이어가 골키퍼로 나설 경우에는 골키퍼의 유니폼을 입도록 규정되어있다. 그러나 등번호에 대해서는 규칙이 정립되지 않았었는데, 주심의 재량에 따라 유니폼을 빌려준 골키퍼의 등번호로 뛰거나 해당 필드 플레이어의 등번호로 뛰는 경우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2019-20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C조 4차전인 아탈란타 BC맨체스터 시티의 경기에서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에데르송 모라에스가 백업 키퍼인 클라우디오 브라보와 교체되었다가 경기 막판에 브라보가 퇴장을 당하면서 수비수인 카일 워커가 브라보의 유니폼을 입고 골키퍼로 뛰었다. 후자의 경우 K리그 2000 시즌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는 안양 LG 골키퍼 신의손이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진순진이 대신 골문을 지켰는데, 원래 비주전 골키퍼인 박동석의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71] 그러나 주심이 진순진의 등번호로 바꾸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박동석의 1번 위에 진순진의 36번을 흰색 테이프로 억지로 덮어씌워 뛰었다. 보통은 전자의 경우로 진행하나 후자의 경우가 생긴 이유는 필드 플레이어가 골키퍼로 뛸때에도 그 필드 플레이어의 등번호로 뛰기 때문인데, 유니폼을 빌려서 입는다면 선수와 유니폼의 등번호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쪽으로 하던 기록상으로는 필드 플레이어의 등번호로 남지만, 후자로 진행하면 경기가 지연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FIFA 월드컵에서도 관련 룰이 없었다가 2018 러시아 월드컵부터 등번호가 없는 골키퍼 유니폼을 입도록 규칙이 개정되었다. 한편 윗 문단에서 언급한 샤케르 알라두르의 경우 코로나19 감염으로 빠진 백업 키퍼 모야드 우세니의 16번 저지를 받아 그 위에 파란 테이프로 자신의 등번호 3번을 덮어씌우고 출전했는데, 이때는 선발 출전이었기 때문에 경기 지연 등의 우려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2022년 4월 16일, 경남과 부천의 경기에서, 경남은 골키퍼 4명이 코로나 확진 및 부상으로 출전할 수 없게 되자 미드필더 이우혁골키퍼로 기용했다. 그리고 본인은 골키퍼로 풀타임을 소화했다. 2022년 8월 8일, 전남과 부천이 경기하던 중 전남은 골키퍼가 부상당하여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데다 교체 카드를 소진해버린 탓에, 중앙 수비수 최정원골키퍼로 기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정원은 발을 사용해서도 슈퍼 세이브를 기록해서 좋은 평을 받았다. 이들은 골키퍼 경험이 없었음에도 명색이 축구선수인지라 골키퍼 역할을 잘 수행했다.

골키퍼 자원이 필드플레이어보다 많은 경우는 없으므로, 반대로 골키퍼가 필드플레이어로 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장 유명한 선수는 호르헤 캄포스로 전반엔 골키퍼, 후반엔 공격수로 뛰기도 했으며 공격수가 다는 등번호인 9번을 단적도 있었다. 2004년 자선축구에서 골키퍼 김병지가 스트라이커로 출전했다.

그 외의 경우 골키퍼는 장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급히 최전방에 제공권이 필요한 경우에 골키퍼를 필드플레이어로 내보내는 경우도 있다. 데이비드 제임스가 04/05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유로파 진출권을 건 경기에서 막판에 공격수로 출전해 간접적으로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활약을 했지만, 로비 파울러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면서 유로파 진출에 실패했다. 서동명도 2001년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리그컵 연장전에 공격수로 출전하여 10분간 활약한 뒤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 득점에 성공하여 승리를 이끈 적이 있다. 그 외에 특이 케이스로 정성룡의 사례가 있는데, 2009년 성남 일화 천마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정성룡은 주전 골키퍼로 선발 출전했으나, 연장후반 종료 직전에 승부차기를 대비해서 김용대를 교체하면서 정성룡 대신 김정우를 빼고 정성룡을 필드로 돌려서 몇 초 가량을 사전에 미리 준비한 정성룡의 등번호 1번이 달린 필드 플레이어 유니폼을 입고 뛴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승부차기를 대비하기 위해 골키퍼를 교체할 경우엔 보통 골키퍼끼리 교체하지만, 정성룡의 경우 킥력이 좋아 승부차기 키커로 쓰기위해 필드 플레이어로 돌린 정말 특이한 경우이다.[72]


14. 서브 혹은 써드 골키퍼들의 비애[편집]


골키퍼는 단 한명만 뛰는 포지션인 만큼 필드 플레이어들보다 주전 경쟁이 특히 심하며, 주전을 차지하지 못하면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드 플레이어는 팀의 경기가 많을 경우 주전 선수의 체력 관리를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후보 선수의 출전 시간이 보장되지만 체력 소모가 매우 적은 골키퍼 포지션의 경우 그런 이유로 후보 키퍼가 출장하지는 못한다.

전술적 이유의 교체도 필드 플레이어에 비해 매우 드문데, 골키퍼들의 경기력 서열이 경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으로, 그나마 현실에서 전술적 교체가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페널티킥 방어에 특히 강점이 있는 후보 키퍼를 보유한 팀이 경기 막판 승부차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골키퍼를 교체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닌 일반적으로 서브 키퍼가 경기에 나오는 상황은 주전 골키퍼가 퇴장,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이 불가해 대신 나오는 경우, 혹은 리그컵과 같이 중요도가 떨어지는 대회에 선발되는 경우가 전부이다. 그나마 후자의 경우도 서브 키퍼의 경기력 유지 및 최소한의 주전 경쟁 보장을 신경 써줄 수 있는 팀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감독이 모든 대회에 주전 키퍼를 선호하거나 팀의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한정된 출전시간 마저 주어지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서브 키퍼의 비애는 클럽팀보다 국가대표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73] 대표적인 예로 빅토르 발데스FC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함께할 만큼 출중한 골키퍼였지만,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이케르 카시야스라는 존재로 인해 경기를 거의 뛰지 못했다. 발데스의 후배 격인 마르크안드레 테어 슈테겐 역시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마누엘 노이어가 장기집권을 하고 있어 30살이 넘도록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나마 빅클럽 주전 골키퍼이며 기억해주는 이들이 많다. 문제는 카를로 쿠디치니스티브 하퍼같은 선수들은 상당한 기량을 가졌음에도 클럽에서도, 국가대표에서도 주전 골리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실력이 모자라서 밀린거 아니냐곤 할 수 있지만 쿠디치니는 본래 잔루이지 부폰의 백업으로 이태리 국대에 있을 만큼 실력이 좋았으며 이러한 실력으로 첼시에 입단했고 02-03 시즌에는 PL 최고의 골키퍼상까지 수상하는 등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문제는 그 다음 시즌에 쿠디치니의 백업을 한 명 영입했는데 그 백업이 페트르 체흐였다. 결국 08-09까지 첼시에서 백업으로 뛰다가 토트넘으로 이적했는데 그곳에 경쟁자는 위고 요리스에우렐류 고메스. 결국 토트넘에서도 서브로 남으면서 실력에 비해 적은 출장 시간을 기록하였다.

스티브 하퍼 또한 뉴캐슬 시절 국가대표설까지 떠오를 정도의 실력자였지만 셰이 기븐이라는 괴물의 등장으로 출장 시간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심지어 글렌 로더 감독은 "EPL 넘버1 키퍼와 넘버2 키퍼가 모두 우리팀에 있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실력에 비해 출장 수가 아쉬운 선수

국내에도 이러한 유형이 있는데 조수혁 또한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주전 골리였으며 꽤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후 울산 현대로 이적했는데 문제는 울산 커리어 내내 오승훈, 김승규, 조현우로 이어지는 국대급 골키퍼 자원의 등장으로 커리어 내내 벤치만 지켰다. 심지어 20시즌 조현우의 부상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주전 골키퍼로 낙점되었는데 매 경기마다 신들린 선방 능력을 보여주며 본인이 세컨 골리로 있기 아쉬운 선수임을 증명했다.


15. 기타[편집]


  • 골키퍼라는 단어는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이 단어 자체가 뭔가를 지키는 마지막 관문을 뜻하는 관용어가 되었다. 마지노 선과 비슷하지만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마지노선은 보통 커트라인 혹은 최후의 보루로써 여기서도 밀리면 끝장이다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골키퍼는 위기의 순간을 잘 막아서 불을 꺼주는 소방수같은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 필드 플레이어와는 다르게 골키퍼는 꾸준한 자기관리가 뒷받침 된다면 40대 초중반까지도 충분히 현역으로 활약하기도 한다. 실제로 40대까지 현역으로 활약한 골키퍼들도 많은 편이다.

  • 몸값이나 연봉은 필드 플레이어에 비해서 많이 낮은 편이다. 골키퍼의 연봉은 평균적으로 필드 플레이어의 70% 정도다. 일단 화려한 면이 떨어져 타 포지션 선수들에 비해 스타성이 덜하고, 매물이 적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대 교체가 적기 때문에 주전급 자원들이 벤치에 앉아있는 팀들이 많고, 출전 기회 문제로 포텐이 터지지 않는 긁지 않은 복권도 즐비하다. 다른 선수로 바뀌더라도 전술적으로 크게 영향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원인 중에 하나다.

  • 아마도 축구의 전 포지션 중 가장 심리적 부담이 큰 포지션일 것이다. 다른 포지션과는 달리 자신의 작은 실수가 바로 실점, 더 나아가서는 팀의 패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0:0일 때는 자신 때문에 이 균형이 깨져서는 안된다는 부담감, 팀이 1:0으로 리드하고 있을 때에도 자신이 이 리드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린다. 특히 월드컵때는 말할것도 없다.... 제법 괜찮은 칼럼

  • 골키퍼가 공을 들고 차는걸 몸싸움 등으로 방해하는 것은 규정상 금지돼 경고를 받는 행위로, 그러다보니 골키퍼가 공을 잡으면 상대 선수들은 어느정도 거리를 두는 편이다. 다만 공을 땅에 놓는다면 달려들어서 뺏어도 합법이므로, 공을 내려놓을 때는 주변을 한번 살펴보고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김진현이 J리그에서 이걸 방심해서 안했다가 허망하게 실점한 적이 있다.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당시, 미국령 사모아는 프로 축구 선수가 없는 작은 자치령이라서, 그나마 국대 선수들이 조기 축구 선수들이거나 축구는 취미로 하는 다른 직장을 가진 이들이었다. 당시 사모아 골키퍼로 오려던 이가 개인 사정으로 못 나오는 터에 결국 다른 이가 대타로 뛰어서 첫 국대 경기 데뷔전을 치렀는데, 이 골키퍼는 골키퍼로 경기를 두 번째로 해봤다고. 그리고 현재까지 FIFA 최다 실점인 31골을 헌납하며 당시 오세아니아 소속이던 호주에 31-0으로 대패했다. 하지만 골키퍼 얼굴은 비참하다기보단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고…

  • 대한민국의 학교 및 대부분의 남성들이 무조건 한 번은 가야되는 군대에서는 매우 푸대접을 받는 역할이다. 골키퍼가 중요한 포지션임은 분명하지만, 재미가 없다. 혹은 골 먹으면 욕 먹으니까. 등의 이유로 회피하는 포지션이다.[74] 결국 군대에서는 짬밥 안 되는 이등병이, 학교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몸이 약한 애들이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덩치가 커서 달리는데 다른 사람보다 힘이 더 들어간다든가, 뛰는 걸 매우 싫어하는 경우 등 유독 골키퍼를 좋아해서 그것만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나 군대스리가가 다 그렇듯이, 화려한 공격수는 전부 운동신경 좋은 학생이나 병장들 차지이다. 이와 관련해 별의별 촌극이 존재하는데, 골키퍼를 돌아가며 맡는 경우도 있고, 평상시에는 필드 플레이어가 되었다가 상대 팀의 공격시에만 키퍼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으며, 자기편 골 에어리어 안에서는 누구나 골키퍼가 되는(=손을 쓸 수 있는) 괴랄한 룰[75]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근엔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중요성이 퍼지면서 군대나 학교[76]에서 키퍼 잘하는 사람을 육성시켜서 전문적으로 쓰는 경우도 늘어나는 중이다.

  • 물론 위의 처우는 90년대 이전~2000년대의 관점일 뿐 최근 골키퍼에 대한 시선과 처우는 아마추어 축구라 할지라도 수년전부터 급격히 좋아지고 있다. 실점을 해서 골키퍼만 욕을 먹는다면 장갑 낄 골키퍼가 전 세계에 한 명이라도 있겠는가? 실점은 대부분 키퍼가 끔찍한 역적질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수비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으며, 팀을 구해내는 슈퍼 세이브 또한 득점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대학 축구, 조기 축구같은 아마추어 축구라 할지라도 수비 조율 잘해주는 경험 많은 키퍼 한 명의 존재는 경기 양상이나 팀의 수비력을 확 바꿀 정도로 상상 이상의 위력이다. 특히 운동신경이 가장 좋은 사람이 골키퍼를 보게 되었다면 '안 들어간다'라는 느낌이 뭔지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현대 축구에서 골키퍼는 주장이나 정신적 지주 역할, 그리고 수비에서 마지막으로 공을 차단하고 공을 보급하는 스위퍼 역할까지 확대되면서 골키퍼라는 포지션에 매력에 빠지는 축구인들이 과거보다 많아졌다. 동네 축구라도 수준급인 골키퍼를 가진 팀이 이길 획률이 높으므로, 자신이 골키퍼를 동경해왔다면 당장 운동장에 가서 골키퍼 트레이닝을 하자. 골키퍼를 하기 싫어하는 친구 혹은 직장 동료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도 있다.

  • 가끔씩 팀 내(국대도 아닌 클럽에서)에 탑 클래스 골키퍼 두 명이 공존하며 누가 누구의 백업이라 하기 곤란할 정도로 대등한, 묘하게 재능낭비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이케르 카시야스디에고 로페스/케일러 나바스의 사례처럼 기존 선수가 점점 맛이 가면서 감독이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주전 교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멀쩡히 전성기를 구가하며 최고의 골키퍼로 뛰다가 임대나 돌던 어떤 애송이가 정상급으로 성장한 채 돌아오자 타의에 의해 주전 자리를 내주고 폼까지 하락세로 접어들며 커리어가 꼬이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최고의 골키퍼라도 주가를 올리지만 정상급 명문 구단들이 골키퍼 자리가 마땅치 않다면, 선수가 안정적인 주전 보장을 원할 경우엔 눈높이를 낮춰서 이적하든가 아니면 자기 팀에 말뚝을 박는다. 하지만 이런 소동을 가끔씩 찾아오는 묘한 상황이라고만 하긴 뭐한게, 전 세계 모든 축구 팀의 골키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3~4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으며 절박한 주전 경쟁을 하고 있고, 제아무리 최고 골키퍼라도 장기 부상 끊어서 다친 동안에 백업이 계속 클린 시트를 찍어대면 주전에서 훅 간다. 그냥 팀 내 단 하나뿐인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모든 골키퍼들의 숙명이되 그 현상이 UEFA 챔피언스 리그급 클럽에서 벌어지면 더욱 화제가 된다고 이해하면 될 듯. K리그에서도 앞날 창창한 수준급 골키퍼가 이렇게 타의에 의해 팀을 옮기는 경우가 몇 년에 한 번쯤 나온다. 부상이라던지 청소년 대표팀/리저브 등에서 주가를 올린 신예의 등장 같은 면에서 다른 리그와 사정은 비슷하지만, 레프 야신이라도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면 피해갈 수 없는 콜 오브 듀티 때문에 벌어지기도 한다.하지만 메달을 따 온다면 어떨까? 우승을 노리는 강팀에서는 국대급 골키퍼를 굴리다가 군대 보냈다고 해도 기존의 백업 수준 선수로 2년간 뻐팅기며 마냥 기다려줄 수는 없기 때문에 다른 팀의 주전급 골키퍼를 끌어오고, 기존 골키퍼는 전역한 뒤에 몇 달쯤 같이 뛰다가 경쟁에서 이기면 좋고, 지더라도 주가가 하락했다고 볼 수는 없으니 무리없이 다른 팀 알아보는 식이다.

  • 부상의 위험이 가장 큰 포지션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1대 1 찬스를 막을 때 양 팔과 다리를 완전히 벌려 막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상대 선수가 공을 구석으로 차지 않고 중앙으로 차게 된다면 명치를 맞아 쓰러지거나 고자가 되거나 얼굴을 맞아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또한, 강하게 찬 공이 손 끝을 맞으면 손가락이 다칠 위험이 있고, 손목도 함께 다칠 위험이 있다. 몸을 강하게 던질 경우 갈비뼈나 어깨가 나가거나 골대에 몸을 부딧힐 수도 있고, 땅에 낮게 미끄러지면 화상을 입거나 살이 심하게 까질 수도 있다. 땅볼 처리나 땅볼 패스 차단을 하다 상대에게 밟힐 위험도 있고, 펀칭 시 상대와 강하게 부딧힐 수도 있다. 그리고 무릎 부상 위험도도 높다. 특히 공중볼 캐칭시 착지에 실패한다면 십자인대도 다칠 수 있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상대적으로 뛰어다닐 일은 적기 때문에 부상이 심각해서 폼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필드 플레이어와 비해 드물다.

  • 골키퍼들이 꽤 예상외로 많이 뛴다고 한다. 보통 프로 기준 한 경기 당 4~5km를 뛴다. 보통 필드 플레이어 10km와 비교했을 때 반이나 뛰는 셈이다. 이는 골키퍼는 가만히 서 있는 포지션이 아니라 공의 위치에 따라 골대 앞에서 이리 저리 움직여가며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 필드 플레이어만큼 풋워크(발놀림)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상식적으로 못 막을 사각지대에 슛이 날아올 때 기본 다이빙 만으로는 손이 닿을 수 없다. 그 때 두 세 발을 더 가서 다이빙 하면 공을 막는 슈퍼세이브가 나올 수 있다. 이 풋워크는 특히 태생적으로 신장이 작은 키퍼들에게 더더욱 중요하다. 멕시코리그, MLS에서는 소수지만 키가 180도 안 되는 키퍼들이 재빠른 동작과 반사신경만으로도 프로선수로서 살아남는 경우도 있다. 호르헤 캄포스,[77] 닉 리만도 참조.

  • 시속 100km가 넘는 강슛을 막을 때도 많은 만큼 손가락 보호를 위한 장갑은 필수품이다. 제대로 된 전용 장갑이 없던 시절 골키퍼를 했던 한국의 원로 축구인들을 보면 하나 같이 손가락이 휘어 있다고 한다.

  • 한 번 주전으로 정착되면 큰 삽질을 하거나 부상을 입지 않는 이상 거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철밥통포지션이기 때문에[78] 포지션 경쟁의 부담이 가장 큰 포지션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포뮬러 원 드라이버들과 마찬가지로 팀메이트 골키퍼들이 최고의 경쟁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필드 플레이어들이야 주전 경쟁에서 다소 밀려도 간간히 후보나 땜빵 선발로 나오더라도 공격 포인트를 조금씩 쌓으면서 팀의 성적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리그 우승 등의 영광을 함께 가져갈 수 있기에 포지션 경쟁 상대에 있는 선수들끼리도 동료라는 관념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79] 골키퍼들의 경우 주전에서 밀리면 거의 시즌 내내 출전 기회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동료의식보다 주전 경쟁의 부담이 훨씬 크다. 시몽 미뇰레로리스 카리우스리버풀 FC에서 같이 뛰는동안 SNS는커녕 사적으로는 말도 안 섞었다고 할 정도.[80] 때문에 보통 클럽에서 세컨 키퍼까진 팀 성향에 따라 주전 키퍼 자리를 경쟁할만한 실력의 선수를 둬도, 서드 키퍼는 실력보다는 출전 기회가 적어도 라커룸 분위기나 후배 키퍼들의 튜터링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험많은 홈그로운 노장들을 선호하곤 한다. 물론 이들도 비상시에는 장갑을 끼고 출전해야 하니 기본적인 실력은 있어야 하지만 어지간하면 나올 일이 없기에 그렇다. 국가대표팀의 골키퍼의 경우는 그래도 이야기가 조금 다른데, 리그와는 달리 토너먼트 방식이라 경기 수 자체가 많아봐야 6~7경기이므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더라도 팀이 우승할 경우 우승 메달도 주고 우승 상금도 적게나마 준다. 그래서 국가대표팀의 후보 골키퍼들은 벤치에 앉아서 필드에 나가 있는 선발 골키퍼의 조력자 역할을 하거나 벤치의 응원단장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으며 프로팀에서만큼 서로 적대적이지는 않다[81].


  • 김병지는 2004년 자선축구(12월 26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스트라이커로 출전했다. 그리고 이운재와 창-방패의 대결을 펼쳤다.
2016년 슛 포 러브를 통해, 배구 선수 문성민과 공방 대결을 펼쳤다. 한준희 해설이 둘의 창-방패 대결을 해설했고, 둘의 대결은 5대5로 끝났다. 자생한방병원을 통해 메이크어위시(make-a-wish) 재단으로, 공동 명의로 300만원을 기부하게 되었다. 상대방 문성민은 축구선수가 접하기 힘든, 익숙하지 않은 구질로써 무려 다섯 번이나 골을 넣었다. 게다가 스파이크는 특성상 공중에서 내리꽂는 공격이기에, 축구 선수의 헤딩 공격과 비슷해보여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영상 끝 부분에서, 김병지는 떨어지는 공을 대비하는 연습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82]

  • 김병지는 과거 '논키퍼'라는 농약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축구에는 골키퍼 논에는 논키퍼"


16. 골키퍼인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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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명한 썰로,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은 프로레슬링,복싱,씨름등 투기종목을 좋아하던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축구등의 구기종목을 좋아했고 육군사관학교 재학 중 육사 대표팀 축구 골키퍼를 맡을 정도였는데, 이 언어순화작업을 하다보니 골키퍼를 문지기로 바꾸면 전두환은 육사 문지기가 되기 때문에, 어감이 영 좋지 않아 무산됐다는 썰이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에 나왔다.[2] 당장 2023 월드컵에서 윤영글이 어이없는 선방 미스로 실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실책은 상당히 자주 나오는 실책이다.[3] 농구와 다르게 축구는 사람이 아닌 공을 기준으로 본다. 그래서 골키퍼가 박스 밖에 있더라도 팔을 뻗어 잡은 공이 안에 있으면 무방하고, 반대로 골키퍼가 안에 있더라도 공이 밖에 있으면 반칙이다.[4] 페널티 박스 안에서 손을 쓸 수 있는 추가적 옵션이 붙었을 뿐, 그 외에는 필드 플레이어랑 같은 취급을 받기 때문에 공격에 참여해도 되고 골도 넣을 수 있다. 다만 골대를 비우고 나갔다가(일명 Empty Net) 상대팀이 공을 가지면 실점을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아무때나 함부로 그러지 않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11명 모두 공격에 참여할 때 득점의 기댓값 - 10명만 공격에 참여할 때 득점의 기댓값) < (11명이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할 때 실점의 기댓값 - 골키퍼가 최종 수비만 전담할 때 실점의 기댓값)이기 때문이다.[5] 그나마 리버풀 입장에서는 18-19 시즌에는 새로 영입한 알리송 베케르가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보여주면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머쥐고 아픔을 씻어냈지만, 카리우스 본인은 아직도 그 영향으로 커리어가 꼬여있다.[6] 대표적인 스위퍼 키퍼인 마누엘 노이어가 있다.[7] 골키퍼에게 줄 의도가 있었던 패스를 골키퍼가 손으로 잡을 경우 파울로 간주하며, 상대에게 간접 프리킥의 기회를 부여한다.(페널티 에어리어 안이지만 패널티 킥이 아닌 간접 프리킥으로 진행되며 벽을 세우는 것 또한 가능하다.) 단, 헤더나 트래핑과 같이 무릎 위의 부분으로 패스를 준 경우에는 파울이 아니다.[8] 특히 골키퍼가 주장을 맡는 경우 카리스마 있게 수비진을 갈구고 휘어잡을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9] 대한민국에서 이 부문으로 가장 유명하고 우수한게 바로 정성룡이었다. 큰 키와 압도적인 신장 때문에 느릿느릿해 보이기만 하고 정면으로 오는 공만 막는것처럼 보이지만, 수비 조율이 뛰어나고 위치 선정이 좋으니 공의 궤적 정면에 서 있을 수 있는것. 만약 능력없는 키퍼였다면 진작에 도태됐을것이다.[10] 상술된 내용처럼 팀원의 백패스를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것[11] 다만 이로 인해 빌드업은 잘하는데 키퍼의 본질인 선방 능력이 떨어지고 키도 180대 중반이라 공중 장악력까지 떨어지는 형태의 키퍼도 고평가를 받으며 다수 등장했고, 이 선수들이 부진하면서 빅 매치에서 뒷공간이 쉽게 털려 상대팀의 빠른 역습으로 인해 골을 헌납하거나 세트피스 상황에서 쉽게 실점하는 경우도 많아졌다.[12] 만 42세인 2020년 현재 리그나 컵 경기에서 종종 출전하고 시즌이 끝난 후 유벤투스 FC와 1년 재계약을 했다.[13]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필드 플레이어들의 활동량과 비교했을 때이다. 경기의 양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상대가 점유율을 높이며 수시로 슈팅을 날려 온다면 골키퍼도 바쁘게 움직여야 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의 체력으로는 절대로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운동량임은 분명하다.[14] 알렉스 퍼거슨이 이러한 이유로 게리 네빌의 다음 주장 후보로 에드빈 판데르사르를 완전히 배제하고, 센터백인 네마냐 비디치를 다음 주장으로 세웠다.[15] 당시 바이언은 흔히 말하는 게겐 프레싱 외에도 패스 정확도, 패스 횟수 등등 패스 관련 데이터는 FC 바르셀로나에 이어 모조리 2위를 차지할 만큼 기본 바탕은 포제션에 둔 팀이었다. 이런 팀들의 특성상 뒷공간이 넓어지기 마련인데, 노이어는 12-13 시즌부터 점점 스위퍼처럼 이 공간들을 커버하더니 펩 과르디올라 부임 이후에는 거의 스위퍼 롤을 고정으로 병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이어의 플레이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6강 알제리전에서 포터백과 점유 축구로 나온 독일의 뒷공간을 알제리의 역습으로부터 박스 밖으로 족족 뛰쳐나가며 철통 같이 방어해내 다시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16] 노이어는 필드 플레이어 못지 않은 우월한 퍼스트 터치 능력과 낙하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는 능력, 대담성을 앞세워 35~40m 가까이 전진한 뮌헨의 포백 배후 공간을 모조리 커버하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스위퍼 키퍼를 하나의 역할로 정립해냈다. 골키퍼의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과거의 스위퍼의 역할까지 병행하여 유프 하인케스, 펩 과르디올라의 전술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17] 스위퍼 키퍼의 최대 장점은 아군 센터백의 뒷공간을 최대한 커버하여 불필요한 체력 낭비를 상당히 줄이는 것으로 풀타임 동안 수비진의 수비력을 안정화시키는 부가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18] 이런 이유로 위고 요리스는 골문을 비우고 나와 공간커버를 하는 등 스위핑에서의 기록은 스위퍼 키퍼라 하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발밑과 빌드업 능력이 부족해 스위퍼 키퍼인지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19] 실제로 노이어가 자신의 롤모델로 판데르사르를 꼽기도 했다.[20]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재평가와 함께 위상도 더욱 높아졌다. 이미 선방 능력만 가지고도 역사상 최강의 골키퍼라고 불린 선수인데, 스위퍼 키퍼 역할의 정립과 함께 야신이 보여준 긴 던지기를 활용한 빌드업, 수비 조율 및 적극적인 공간 커버, 롱 킥을 통한 공격 방향 설정 등 스위퍼 키퍼가 보여주는 모습들도 보여준 것이다. 현대로 치자면 노이어보다 선방 능력이 우월한 골키퍼가 노이어가 하는 플레이까지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21] 루스는 시기상으론 가장 최초지만 19세기 선수라 현대축구 룰과 매우 다른 시기의 선수이며 카리소는 '엘 로코' 별명이 붙는 남미 골키퍼들의 시초라 볼 수 있다. 그로시치는 수비수에게 빠르게 공을 굴려 후방빌드업을 하는 역할의 시초였다. 90년대까지도 골킥은 최대한 길게 차는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시기였다.[22] 과거 월드컵 등 국제대회 엔트리가 23인이던 시절에는 1번부터 23번까지만 사용할 수 있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기준으로는 엔트리가 26명으로 늘어나면서 26번까지 사용 가능하다.[23] 단 부상등의 이유로 부득이하게 엔트리에서 하차하는 선수가 생길 경우 대체 선수를 발탁하지 않을 시 해당 번호에 공번이 생기기도 한다.[24] 12번의 경우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백업 골키퍼였던 김병지가 등번호 12번을 단 것이 유명 사례. 21번의 경우 대전 하나 시티즌의 경우 간판 골키퍼 최은성이 21번을 달고 크게 활약해서 21번을 21년간 결번했다.[25] 다만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리오넬 메시가 30번을 요구하자 리그 사무국 차원에서 특별히 허용해 준 사례도 있다.메시니까[26] 조현우는 월드컵 이후엔 선호하는 번호인 21번을 쭉 쓰고 있다.[27] 본래 유일한 케이스이기도 했지만 푸스카스상 제정으로 유일한 사례는 아니게 되었다.[28] 당시 허용한 1실점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에드 알 오와이란에게 허용한 골인데 골 장면을 보면 알겠지만 진짜 막을 수 없는 골이다.[29] 영화/TV드라마 대상 시상식인 골든글로브 시상식하고 이름이 비슷하고, 야구에서도 골든글러브라는 상을 각 국가에서 시상한다.[30] 슈퍼세이브 장면에서 흔히 나오는 아예 몸 전체가 공중에 확 뜨는, 흔히 '선방' 하면 생각하는 그거다.[31] 단순히 몸을 옆으로 주욱 뻗은 다음 그대로 중력과 함께 땅에 쓰러지는 다이브.[32] 김영광이 대표적인 예다. 키를 자라게 한답시고 철봉을 하다가 오히려 팔만 길어졌다고 본인이 언급한 적이 있다. 또, 윤기해도 팔이 긴 골키퍼로 알려졌다.[33] 고1까지만 해도 키가 180은 커녕 170을 넘기지 못해서 마상공고 축구부에서 사실상 잘렸으며, 골키퍼를 구한다는 말에 일부러 소년의 집(현 알로이시오 고등학교)으로 전학해서 고등학생 시절에도 어떻게든 경험을 쌓기는 했으나, 대학진학 자체를 실패해서 다시 한번 축구 커리어에 빨간불이 켜졌다. 다행히 고등학교 졸업~해사 입시준비 할 때 즈음 현재의 184~5cm 가량으로 성장했으며, 이후 직장인 축구팀 및 국군체육부대를 거쳐 K리그에 들어간다.[34] 군대나 학교에서 중대원 혹은 급우 전원이 강제로 축구를 할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축구를 못하거나 관심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럴 때 보통은 그들 중 운동신경이 떨어져도 키만 크면 골키퍼로 세워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보다는 차라리 키가 작더라도 평소에 골키퍼를 해본적이 충분히 있는 선수를 골키퍼로 세우는게 훨 낫다. 만약 골키퍼 경험이 아무도 없다면 농구를 잘하는 사람을 세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 농구를 잘한다면 기본적으로 반사신경을 비롯한 운동 신경이 있고 농구공을 자주 다룬 덕분에 볼 핸들링이 되기 때문에, 키가 작더라도 이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35] 잉글랜드 국가대표 골키퍼 3중 한 명이다.[36] 노이어에 가려서 그렇지 이 선수도 현재 분데스리가 최상위권 골키퍼중 한 명이다.[37] 지우마르, 에메르송 레앙, 클라우지우 타파레우, 호제리우 세니와 더불어 역대 브라질 최고 골키퍼 논쟁에 이름이 올려지는 골키퍼들 중 한 명이다. # 그리고 브라질 역대 최고의 골키퍼 10인 중에서 3위를 기록했다. # 2002년 월드컵 때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38] 역시나 마누엘 노이어에 가렸지만 충분히 최정상급 실력을 가진 독일 골키퍼중 한 명이며, 오히려 부상을 틈타 노이어가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사람이 독일 국가대표 골키퍼 본좌였다.[39] 역시나 마누엘 노이어에 가렸지만 충분히 정상급 실력을 가진 독일 골키퍼 중 한 명이다.[40] 디에고 시메오네와 동시절에 활동했던 국가대표 주전급 아르헨티나 골키퍼다.[41] 잉글랜드 국가대표 골키퍼 3중 한 명이다.[42] 펠레, 가린샤의 시대에 활동하던 사람이며, 펠레의 헤더를 막아낸 그 사람 맞다.[43]피터 쉴튼과 국가대표로 출전하던 사람이다.[44] 지네딘 지단의 아들이다.[45] 역대 브라질 최고 골키퍼들 중 한 명이다.[46] 펠레 시대에 활동한 이탈리아 역대 최상위권 골키퍼이며, 최고 연장자 월드컵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47] 골키퍼에게는 치명적인 페널티인 작은 키를 소프트웨어적인 능력으로 커버하여 21세기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의 위치까지 올라갔다.[48] 발렌시아의 레전드 골키퍼. 올리버 칸이 챔스리그에서 위로해준 그 골키퍼 맞다. 카니사레스는 본래 2002 한일 월드컵에 선발 출전하려 했으나 대회 직전 향수병을 발로 트래핑하려다 부상을 당해 선발을 당시 한참 어리던 2옵션 키퍼에게 넘겨줬는데 당시 카니사레스 덕에 주전이 된 그 한참 어린 키퍼는 카시야스다.[49] 마라카낭의 비극 때문에 인생 망친 그 사람이다.[50] 이래 봬도 1994/1998년 월드컵 선발 출전 골키퍼라는 경력 및 멕시코 국가대표 130회 출전 등의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다.[51] 멀리 갈 것도 없이 동네 축구나 군대스리가 정도만 돼도 이 말이 현재진행형이다. 만약 실력이 도긴개긴이면 제일 목소리 크고 싸움 잘하는 아이, 군대 고참들이 공격수로 나가고 제일 못하거나 축구하기 싫어하는 아이들, 짬없는 이등병이나 고문관 취급받는 병사들이 골키퍼를 주로 갔었다. 반대로 덕분에 병장이 골키퍼를 좋아하는 사람일 경우 부대 전체가 평화로워진다. 후임들도 좋아한다.[52] 현재 이렇게 천대받는 포지션은 골키퍼에서 양 풀백으로 이동했으며, 이는 비단 국내 뿐만 아니라 유럽 무대에서도 통용된다. 현대 축구에서 전술의 중요한 핵심 가운데 하나로 취급받는 포지션이 풀백/윙백임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데, 풀백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선수들이 풀백을 싫어할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53] 이 규정으로 인해 발레리 사리체프는 6년간의 활약을 마치고 일화를 떠나야 했으나, 1년간 안양 LG 치타스에서 코치를 역임한 뒤 2000년에 신의손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하며 안양 소속으로 현역에 복귀, 2004년까지 뛰면서 녹슬지 않은 활약으로 안양에게 우승을 안겨주고 은퇴하기도 했다. 이후 현재까지도 연령별 대표팀이나 프로/준프로 구단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며 한국에서 생활중.[54] 조현우는 대구 시절 이용발 코치의 지도로 세모발이라고 하기에는 괜찮은 킥 능력을 보여줬고, 김진현은 한때 잠시나마 스위퍼 키퍼와 후방 빌드업의 거점 역할을 기대했을 정도로 킥 능력이나 본인의 적극적인 빌드업 가담 능력이 호평받았다. 하지만 2019년 이후의 조현우는 그런 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특히나 국대만 가면 세모발 수준으로 골킥을 차대는 상황이며, 김진현은 데드볼은 정말 잘 차는데 다이렉트 킥이 심각하게 불안해서 상대의 적극적 압박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 너무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다.[55] 한국 국가대표급 골키퍼라면 K리그나 J리그 어느 쪽이든 6~10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게 되므로 실제 대우에서는 동등하다고 볼 수 있다.[56] 여기에 J3에 참가하는 프로구단의 U-23팀도 두 팀 더 있다.[57] 뛰어난 골키퍼에 부합하는 조건인 우월한 키에 우수한 반응속도와 날렵함을 가진 인재들은 대부분 인기있는 종목인 농구나 배구로 빠지지 인기도 없는 WK리그에서 골키퍼를 할 이유가 없긴 하다.[58] 물론 예외도 항상 존재하는데, 이케르 카시야스의 경우 그 유명한 지단-파본 정책으로 떨어지는 수비수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치를 먹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골키퍼 중 하나가 되었다. 반면 잉글랜드의 경우 좋은 수비수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시먼 은퇴 이후 한 동안 골키퍼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59] 5경기 4실점에 클린 시트 1회. 그러나 그 4실점 중 PK 한 번, 자책골(...) 한 번이 있었으니 사실상 2실점에 클린 시트는 3번이다. 더구나 칠레와의 16강에선 승부차기에서 결정적 선방을 해내며 8강행의 1등 공신이 되고 MoM에도 선정되었다.[60] 어디까지나 1부 리그에서 주전에서 뛸 수 있는 기량을 말한다.[61] 사실 바르셀로나는 전성기가 아닌 부진하던 07-08 시즌에도 당시 챔스 우승까지 해낸 맨유 같은 강팀조차 홈경기에서도 점유율 우세를 가져오지 못할 정도로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경기 스타일을 고수했기 때문에 수비진조차도 미드빨-점유율빨로 수비할 일이 없다고 폄하를 받았다. 하물며 잊을만 하면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던 발데스는.....[62] 특히나 쿠르투아는 2018 러시아 월드컵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만큼, 국대에서의 퍼포먼스를 지나치게 저평가할 이유가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진짜로 수비진에 묻어간 골키퍼는 골든 글러브 후보로도 언급되지 않는다.[63] 2008년 11월 30일 에티하드 스타디움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웨인 루니에게 이미 전반전 42분에 실점하고 후반전 추가시간이 3분을 향해 갈 때 공격에 가담한 상황으로 조 하트가 왼손으로 막은 공 또한 웨인 루니가 슛한 것이었다. 이 경기는 맨유의 1:0 승리로 끝났다.[64] 스윈든 타운에서 임대.[65] 17-18시즌에는 4부리그인 리그 2소속. 그 전 시즌이었던 16-17시즌에는 리그 2에서 6위로 시즌을 마쳤다.[66] 본인이 원해서 뛴 것도 아니고 코치가 프로베델은 공격수의 자질이 충만하다며 억지로 공격수를 시켰다고 한다. 정작 프로베델은 레프 야신을 동경해서 골키퍼를 원했고, 그대로 골키퍼로 성장했다. 이 일화 때문에 극장골을 넣으면서 보여준 환상적인 오프더볼 움직임을 보고 타고난 공격 재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67] 다른 말로 하면 2020년(동계리그는 2019-2020시즌) 전까지는 이론상으로는 손으로 던져 넣어도 골이 인정됐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야 인간의 능력상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창작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배경이 2020년 이전이라면 득점이라 해도 오류가 아니다.[68] UCL 결승에서는 성공했고, 포칼 준결승 때는 실패했다.[69] 11명이 전부 찼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1번 키커부터 다시 시작하며, 계속해서 서든데스 형식으로 진행된다.[70] 이 대회에서 CAF가 로스터를 26명으로 확대하면서 골키퍼 4명을 엔트리에 포함하는 팀이 많았는데, 코모로는 필드 플레이어들만 더 추가하면서 평소대로 골키퍼 세 명을 엔트리에 포함했다. 만약이란건 없지만 골키퍼 4명을 포함시켰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71] 이 경기에서 양 팀의 벤치에 백업 골키퍼가 없었는데, 규정상 벤치에 백업 골키퍼를 두도록 의무화하지 않았고, 연장전이 폐지되면서 벤치 멤버가 7명에서 5명으로 줄어 당시 대부분의 팀이 벤치에 백업 골키퍼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2001 시즌부터 벤치 멤버를 6명으로 늘리고, 백업 골키퍼를 반드시 벤치에 두도록 의무화했다.[72] 당시 기사를 보면 골키퍼들을 포함한 성남 선수들조차 예상 못한 깜짝 전술이었다. 우스운 것은 이렇게까지 해서 승부차기 키커로 써먹기 위해 남겼던 정성룡은 정작 실축했다(...). 그래도 골키퍼로서 선방쇼를 보이고 심지어 그 본인이 직접 5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키기까지 한 김용대의 활약으로 승부차기는 성남이 승리했다.[73] 클럽 팀은 어느정도 실력이 있다면 본인이 팀을 이적하면 그만이지만, 국가대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74] 사실 골키퍼를 회피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몸을 던져야 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옷이 쉽게 더러워지는 건 기본이며, 낙법을 잘못 하면 가장 쉽게 다칠 수 있는 포지션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골보다 중요한 것은 다치지 않는 것이다.[75] 일명 자유킵 내지는 프리키퍼다.[76] 반대항 경기가 안 치열한 학교는 없다. 군대도 포상휴가가 걸려있다면 반대항보다 당연히 더 치열하다.[77] 이 선수는 골키퍼인데도 키가 168cm밖에 안 된다.[78] 이것 때문에 크게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부상도 없고 실책도 안 저지른 골키퍼를 후보 골키퍼로 교체시키는 행위는 승리팀 입장에선 최고의 도발, 패배팀 입장에선 최악의 굴욕으로 꼽힌다.[79] 물론 출전 시간, 공격 포인트 등으로 객관화되는 팀의 기여도에 따라 책정되는 연봉이나 인센티브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80] 그나마 미뇰레는 알리송 베케르 입단 후에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 편이다. 미뇰레 본인에 따르면 카리우스와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고만고만한(?) 경쟁의식이 너무 컸는데, 알리송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월드클래스라 주전경쟁에서 밀려도 납득이 되고 사이도 제법 화기애애했다고. 챔피언스리그 우승 때는 알리송 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 골키퍼들도 다 같이 즐겁게 놀았다. 이렇듯 한 프로팀 내에서의 골키퍼들의 친분은 차라리 실력에 따른 우열관계 또는 선후배관계가 확고해야 오히려 돈독해지는 면도 있다.[81]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라면 최소 소속팀에서의 입지와 실력은 인정받은 경우라고 봐야 한다. 국대 골키퍼 자리의 경쟁은 그정도로 절박하진 않다는 뜻. 물론 그렇다고 국대팀 골키퍼들끼리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을 안 한다는 뜻은 아니다.[82] 배구의 서브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고,(거기에 문성민은 120km 이상의 초고속서브를 구사한다.) 그런 서브를 네트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근거리에서 직선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반사신경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