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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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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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9번}}}
결번

구윤
(1986)


이현택
(1987~1992.5.6.)
{{{#fff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9번}}}
곽현태
(1986)

구윤
(1987~1993.6.29.)


감병훈
(1994~2000)
{{{#131B66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24번}}}
조병천
(1986~1992)

구윤
(1993.6.30.~1994)


도명진
(1995)



구윤
Koo Yoon

출생
1963년 6월 18일 (60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경북고 - 중앙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6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6~1993)
태평양 돌핀스 (1993~1994)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삼성 라이온즈, 태평양 돌핀스 소속 외야수.


2. 선수 경력[편집]


경북고 시절 성준, 류중일, 문병권, 홍순호, 조광덕 등과 함께 1981년 경북고의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이 활약으로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게 된다. 강견으로 투수로도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대학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고 한다.

1986년 1차 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활약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부상으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한 케이스. 주로 백업 외야수로 활동하였으나, 1987년 장효조의 이적 이후에는 준주전급으로 활약하였다. 우익수로 훌륭한 활약을 한 이종두의 포지션 경쟁자로, 어깨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아 이종두를 밀어내고 우익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다만 잘 나갈만 하면 찾아오는 부상이 결국 그의 선수 생명을 갉아 먹고 말았다. 실제로 1990년 개막전에서 슬라이딩을 하다가 온 무릎 부상 이후 91년까지 뛴 경기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1] 이후 1993년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되었으나 별다른 활약없이 1994년까지 활동하다가 방출되면서 커리어를 마쳤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수비에 있어서는 신언호, 김형석과 함께 강견으로 손꼽히는 우익수였다. 타격에서 커리어하이였던 1989년에는 괜찮은 갭파워로 2루타를 양산하는 중장거리 유형의 타자로 분류되었다. 선구안이 나쁜 편은 아니나 꽤 적극적인 타격을 했던 타자로, 커리어 삼진률이 29%에 달한다. 덕분에 1993년에는 KBO 리그 기록인 8연타석 삼진이라는 불명예 기록도 갖게 된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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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삼성은 부상 관리 부족으로 인대 손상을 입은 선수가 많았는데, 김성래, 이종두는 수술 후 복귀에 성공했지만 구윤은 결국 커리어를 마감하다시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