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내청

덤프버전 :






[ 펼치기 · 접기 ]
신위
천황 (역대 천황 · ) · 황후 (역대 황후 · ) · 황태후 · 태황태후 · 상황 () · 상황후 · 황사 [황태자 · 황태손] · 황사비 [황태자비 ([[일본/역대 황태자비|역대 황태자비]]) · 황태손비] · 섭정 () · 친왕 · 친왕비 · 내친왕 · 왕 · 왕비 · 여왕
칭호
어칭호 · 미야고
분가
미야케 () · 구황족 () · 세습친왕가 ()
가계도
황실 전체 가계도 · 구황족 전체 가계도 · 내정 가계도 · 아키시노노미야 가계도 · 미카사노미야 가계도 · 다카마도노미야 가계도
상징
십육엽팔중표국문 · 니시키노미하타
거주
일본의 어소 (고쿄 · 교토고쇼 · ) · 일본의 이궁 ()
신앙 및 궁중제사
삼종신기 () · 아라히토가미 · 이세 신궁 · 천양무궁의 신칙 · 황조신 ()
행사
일반참하 · 천황탄생일 · 황기2600주년 기념 봉축곡
제도
황기 · 황실전범 (제국) · 황적이탈 ()
조직
궁내청 · 내대신부 (역대 내대신 틀) · 추밀원 (역대 의장 틀) · 황궁경찰본부 · 황실회의 (의원 틀)
역사
결사팔대 · 남북조정윤론 · 만세일계 · 북조 천황 () · 인세이 · 추존 천황 ()
문제
후계자 대책





궁내청
宮内庁 | Imperial Household Agency

파일:IHA_logo.gif
<colcolor#fff> 약칭
IHA
설립일
1949년 6월 1일
전신
궁내성
장관
니시무라 야스히코
차장
이케다 겐지
소재지

}}}
도쿄도 치요다구 치요다 1-1(고쿄 내)
(東京都千代田区千代田1番1号)
상급기관
내각부
내부부국
[ 펼치기 · 접기 ]
장관관방(長官官房)
시종직(侍従職)
상황직(上皇職)
황사직(皇嗣職)
식부직(式部職)
서릉부(書陵部)
관리부(管理部)

직원 수
1,061명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Kunaicho.png

고쿄 내부에 위치한 궁내청 청사
1. 개요
2. 역사
3. 조직
4. 특징
4.1. 일본 황실의 생활 통제
4.2. 2022-2023년 이후 경찰관료 출신자 증가
5. 논란
5.1. 나루히토 일가와의 갈등
5.2. 한국사 연구 관련



1. 개요[편집]


일본 내각부 소속 국가 행정기관으로, 일본 황실과 관련된 업무를 전담한다.


2. 역사[편집]




[ 펼치기 · 접기 ]


































━┳━

































━╋━



















━╋━














































































역사적으로 태정관[1] 산하에 궁내성[2]이라고 불리는 일본 황실을 보좌하는 기관이 있었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 정부기관으로 탄생한 때는 메이지 유신 이후이다. 이때 천황의 보좌 전담기관으로 궁내성(宮内省)이 출범했다. 이전까지는 장관은 궁내경(宮内卿)이었고 1869년부터 1886년까지는 궁내대보(宮内大輔), 그 이후에는 궁내대신(宮内大臣)으로 개칭된다. 대일본제국 헌법 제정 후에는 황권이 강화됨에 따라 상당히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당시 궁내성은 정계는 물론이고 제실박물관(現 도쿄국립박물관), 가쿠슈인(학습원) 등의 문화/교육기관도 휘하로 두고 직원 수만 무려 6천 명을 넘는 거대조직이었다. 이 궁내성은 구한말의 궁중부서 궁내부(宮內府)에도 일부 영향을 끼쳤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이후, 일본국 헌법 개정에 따라 부서도 개편되어 기존의 궁내성은 궁내부(宮内府)로 개칭되었고 그 수장도 궁내부장관(宮内府長官)이 된다. 후에 총리부(総理府)의 외국(外局)인 궁내청(宮内庁)으로 격하되었고 2001년 중앙성청 개편으로 내각부 산하 기관이 되었다.[3]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의외로 일본 내각과의 마찰이 종종 발생하는 것 보면 겉으로는 내각에 흡수되었지만, 실제로는 내부에서는 여전히 흡수되지 않고 자체 파벌인 시종 쪽 파벌[4]이 내각 쪽 파벌 및 신세대 시종들을 여러 가지 방면으로 견제하는 듯하다.

3. 조직[편집]


궁내청 장관(宮内庁長官)내각총리대신이 정식으로 임명하고, 천황이 인증(認證)한다.[5] 휘하 내부부국에는 장관관방과 3직 2부가 있고 시설등기관 2개, 지방지분부국 1개를 둔다.
  • 내부부국
    • 장관관방
      • 비서과(秘書課)
        • 조사기획실(調査企劃室)
      • 총무과(総務課)
        • 홍보실(広報室)[6]
        • 보도실(報道室)
      • 궁무과(宮務課)
      • 주계과(主計課)
      • 용도과(用度課)
      • 궁내청병원(宮内庁病院)[7]
    • 시종직(侍従職): 일본 황실의 천황일가, 동궁의 황태자 일가, 내외 여러 황족 일가들을 보필하고 보좌, 시종하는 업무.
    • 상황직(上皇職): 생전 퇴위한 상황 일가를 보필하고 보좌하는 임무.
    • 황사직(皇嗣職): 황사[8] 일가의 일상을 보좌 및 관리 업무로 원래는 동궁직으로 불리던 부서
    • 식부직(式部職): 의식(儀式)과 공연 등을 주관하는 업무. 가가쿠 연주자들도 이곳 소속 공무원들이다.
    • 서릉부(書陵部): 황실 관련 자료, 각종 고문서, 황릉과 전 황족들의 묘지를 관리.
      • 도서과
      • 편수과
      • 능묘과
      • 능묘감구사무소
    • 관리부(管理部): 이름 그대로 황실 관련 시설 관리,의식용으로 사용되는 마차 관리 등을 담당하는 부서
      • 관리과
      • 공무과
      • 정원과
      • 대선과
      • 차마과
      • 궁전관리관
      • 어용저택 관리사무소
      • 황거동어원 관리사무소
  • 시설등기관
    • 정창원사무소(正倉院事務所): 정창원의 유물 관리.
    • 어료 목장(御料牧場): 황실에 올릴 농산물을 생산하고 관리.
  • 지방지분부국
    • 교토사무소(京都事務所): 간사이 지방의 일본 황가 관련 성지나 묘지 등을 관리.

4. 특징[편집]


보통 일본의 청(庁)은 내부부국으로 장관관방과 부(部)를 두지만[9] 궁내청의 내부부국은 다른 청(庁)과는 다르게 내부부국이 부(部)만 있는것이 아닌 율령제 시절의 직(職)이나 료(寮), 현대의 부(部)가 혼재되어있다.

도쿄고쿄(황거)를 비롯하여 교토고쇼 및 이궁, 별장(어용저), 능묘 등이 있다. 패전 이전에는 이것들이 모두 황실 재산이었지만 패전 이후 일본국 헌법으로 인해 황실의 사유재산은 모두 국유재산이 되었다. 일본국헌법 제88조에 "모든 황실재산은 국가에 속한다. 모든 황실의 비용은 예산에 계상하여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라고 못박아 두었다. 따라서 황실이 겉으로는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실제론 황실이 누리는 모든 것은 국가가 제공하는 것일 뿐 천황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은 없다. 모든 황실의 재산과 비용은 내각총리대신이 포함된 황실경제회의(皇室経済会議)라는 조직에서 모두 통제한다. 특히 해당 조직은 대략적인 예산 관리 조직이 아니라 황실 여성이 결혼하여 황족 신분을 이탈할 때 가지고 가는 지참금까지도 일일이 확인하고 융통성 없게 통제할 정도로 상당히 세밀한 부분까지도 파고든다고 한다. 물론 황실 여성이 황실에서 떠날 때 가지고 가는 지참금이야 관계 규정 등에 의거하여 1억 엔 내외로 정해졌고, 여기에서 최종 결정하는 형태다.

군주제 국가에는 왕실의 사무(事務)를 책임지는 부서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왕실 자체에서 운영하고 예산과 인사 모두 국가행정조직과는 분리된 형태이다. 징세나 감사의 형태로 중앙 정부에서 관여하기는 하나, 일본처럼 아예 중앙 정부 부서에 속하는 사례는 의외로 적다. 일본처럼 정부 부서가 황실 사무를 맡는 것이 세계적으로도 드문 관계로, 궁내청의 정식 영문명에도 'Japanese'가 붙지 않는다.


4.1. 일본 황실의 생활 통제[편집]


궁내청은 일본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그 세금을 예산으로 집행해주는 일본 정부의 통제를 받는 이상 일본 황실의 생활 전반을 모두 감독하는데, 이 때문에 황족들의 생활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궁내청 운영비만 연간 100억 엔 단위[10]이니 황족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사실[11]이나, 이러한 지원을 받는 대신 황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궁내청에 의해 매우 철저하게 모두 감독된다. 결혼할 상대가 황실에 적합한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뿐만 아니라 국빈으로서 외국 방문 및 그러한 자리에서 입을 옷까지 전부 궁내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할 정도다.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이후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궁내청에서는 주기적으로 흥신소 등을 이용해서 부마 후보자들에 대한 뒷조사를 비밀리에 체계적으로 실시하는데 그 대상은 상류층 자녀, 화족 출신 자녀, 신적강하된 구 황족 자녀[12] 등에 대해서 다양한 방면에서의 조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리스트는 주기적으로 갱신되기에 미혼의 여성 황족을 보유한 미야케의 궁주가 원하면 제공해주지만 원하지 않으면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하며 만일 해당 리스트에 없는 부마 후보자에 대한 뒷조사가 필요하다면 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궁주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13]

4.2. 2022-2023년 이후 경찰관료 출신자 증가[편집]


2022년~2023년에 걸쳐서 유독 경찰관료 출신자가 대폭 늘어났는 데 이는 코무로 마코의 결혼 문제로 촉발된 국민들의 맹반발에 대해서 그저 허위소문에 의한 비방중상 운운하면서 자기네들에 대한 관련된 정보들을 최대한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일가[14], 정확히는 상황 부부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걸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러한 경찰 출신자들의 대규모 채용은 궁내청을 전전(戰前) 즉, 2차 대전 패전 직전 군국주의 하에서의 황실로 회귀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강한 우려[15]를 낳고 있으며 이는 2023년 3월 신설된 홍보과에 경찰 산업스파이 단속 등에 오랫동안 종사한 정보 통제 전문가를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실제로 그 이후 황실 기자단과 황사 대부[16]간의 회견 자리에서 황사대부는 자신이 가지고 온 대본 이외의 기자들의 질문을 모조리 묵살하는 등 기자들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궁내청으로부터 쏟아지는 후미히토 일가를 향한 각종 항의 전화 등에 대해서 2023년 4월부터 궁내청 홍보실로 보내기 시작했는 데 문제는 그곳에서 의도적으로 강제로 항의를 묵살시킨다는 증언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사실상 궁내청의 경찰 출신 파견은 현 자민당 정권에 깊게 연관된 후미히토 일가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라는 의견이 더욱 더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5. 논란[편집]



5.1. 나루히토 일가와의 갈등[편집]


현 천황인 나루히토 및 그 일가와는 황태자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키히토의 생전 퇴위와 관련해 벌어진 2016년 7월부터의 일련의 소동에 궁내청이 대대적인 여론조작을 통해 아키히토 당시 천황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본 언론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도 하고 있으며, 아주 오래 전부터 황태자 내외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코 공주에 대해서는 대놓고 적대시한다고 평가할 정도다. 이에 대해 나루히토 황태자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할 정도로 사이가 상당히 안 좋은 편인 것임에 반해, 이상하게도 후미히토 가문에 대해서는 묘하게 친절하게 구는 것을 넘어선 형태로 대하는 등[17][18] 궁내청 내부에서의 행동패턴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다.

논란이 시작된 건, 나루히토 당시 황태자가 2004년 5월 10일의 기자회견[19]에서 대놓고 "지금까지의 마사코의 경력이나 그러한 것에 근거해 마사코의 인격을 부정하는듯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それまでの雅子のキャリアや、そのことに基づいた雅子の人格を否定するような動きがあったことも事実です)라고 말했을 시기였다.人格否定発言

마사코 황태자비는 공무와 관련해서는 궁내청 동궁직에서 통보받은 스케줄에 참석하고 지정해주는 의상을 입는 것만이 허용되었으며, 외부 행사 관련 의견 개진이 불가능했다. 궁내청은 이것을 이용하여 과거 여러 차례 마사코 황태자비를 엿먹인 전적이 있다. 예전에 마사코 황태자비가 공무를 취소하고 스키장에 갔다는 이유로 욕을 먹은 사건이 대표적인 사건. 최근에도 이와 관련하여 궁내청에서 크게 사고를 친 사건이 있는데, 2016 리우 올림픽 개막식 불참 미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개막식을 앞두고, 브라질 정부가 서한을 통해 나루히토 황태자 부처를 직접 지명하여 개막식에 초청했다. 공문으로 별도로 일본 정부 측에 방문 요청도 했으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석하는 것이 맞는 상황이고, 실제로 일본 정부도 브라질 정부의 요청을 승인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서한을 본 궁내청이 특별한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나루히토 부부의 브라질행을 막고, 그 자리에 대신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 내외를 보내려 했다.

하지만 궁내청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 상급 기관인 일본 정부[20]“이게 무슨 실례되는 행동이냐?!”라고 펄펄 뛰며 궁내청의 움직임을 틀어막았고, 예정대로 나루히토 부부가 함께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때 마사코 황태자비가 입은 옷은, 무려 20여년 전 결혼 초에 입던 옷이었다. 자기네 뜻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자, 마치 엿먹으라는 듯 궁내청이 지시한 사항이라고 한다.

이러한 궁내청의 결정은, 일본 국내에서의 파장은 둘째치고 외교적으로 대단히 결례이다. 하지만 궁내청 인사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자기네가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일본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망신을 당했으며, 그 결과 일본 고위 관료층 사이에서 “일국의 황태자비가 외국을 방문한다는데 입을 옷도 사주지 않아 20년이나 된 낡은 옷을 입어야 할 정도면 궁내청에 거액의 예산을 굳이 줄 필요가 있는가?!”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아베 신조 총리조차 "궁내청이 조금이라도 사고를 치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겠다!"면서 엄포를 놓았다. 그럼에도 궁내청은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나루히토 천황의 무남독녀인 아이코 공주에 대해서도 궁내청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준 적이 있다. 아이코 공주가 어린 시절 간염에 걸렸을 때, 궁내청 병원이 아닌 도쿄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이 일로 궁내청은 황태자 내외에게 “왜 궁내청 병원을 놔 두고 도쿄대 병원을 찾냐”고 격노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깽판을 놓았다. 그런데 정작 아키히토 천황이 비슷한 시기에 궁내청 병원이 아닌 도쿄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궁내청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21]

아이코 공주가 성장한 후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어졌다. 2016년 9월 26일부터 약 4주 동안,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3학년인 아이코 공주는 무단장기결석을 했다. 그런데 궁내청은 이것에 대한 설명을 일절 하지 않고 그냥 "결석 중"이라고만 밝혀, 아이코 공주에 대한 여론을 부정적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반쪽이 되어 나타난 아이코 공주의 결석 이유가 스트레스성 위장 장애 때문이라는 게 알려졌고, 그제야 일본인들이 비난의 화살을 아이코 공주가 아닌 궁내청으로 돌리게 되었다.

아키히토의 생전 퇴위 발표 이후 천황 계승 문제에 대해서도 충돌이 있다. 아키히토 천황은 "생전에 퇴위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2019년 4월 30일에 퇴위하고, 2019년 5월 1일을 기점으로 장남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천황직을 승계하려고 한다"는 것. 이에 대해서 2017년 1월 17일 궁내청 차장이 대놓고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등의 소동이 있었다.

하지만 궁내청이 아무리 징징거려도 일본 정부가 천황의 생전 퇴위 의사를 거스를 수는 없기에 당시 헌법 개정 등을 논의하던 와중에 '이번 대에는 예외'라는 특별 법안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국회를 통과시켜서 사건을 마무리지은 바 있다. 거기에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으로 궁내청의 추태와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후미히토 일가와 함께 세트로 까이고 있어서 2019년 5월에 즉위한 나루히토 천황에 의한 궁내청 개혁이라는 이름의 숙청이 진행될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18년 말 이후에는 후미히토 편을 적극적으로 들진 않는다. 일단은 나루히토의 승계가 눈 앞에 닥친 상황에서 그동안 나루히토와의 충돌을 감안하면 분명 등극 이후에는 천황의 권한으로 시행될 숙청의 칼날을 최대한 덜 맞고 싶었을 테고, 무엇보다 궁내청 관계자가 2018년 12월 후미히토가 생일 때 한 쓸데없는 발언으로 궁내청과 일본 정부를 뒤집은 이후 후미히토 일가를 돌려서 깔 정도[22]로 그 집안이 궁내청의 힘으로도 온전히 수습을 못할 만큼 논란거리를 만든 것도 모자라,[23] 지금도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마코 공주아버지보다 한 술 더 떠서, 여전히 고집을 부리는 건 물론이고 2019년 1월 22일에 천황 부부[24]후미히토 내외가 니가타 공무로 부재중일 때 코무로 케이의 A4 용지 1장 분량의 문서를 변호사를 통해 공개하는 대형사고를 쳐[25] 완전히 폭주했다. 이때 궁내청은 새벽부터 완전히 패닉에 빠져 요양 중인 천황 내외와 공무 중인 후미히토 내외에게 바로 보고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코 공주가 공무만큼은 여전히 열심히 하는 거라고 한다.

아키시노노미야 궁저의 분위기가 워낙 살벌해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시종들은 이전에도 키코 비 때문에 고생이었지만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동궁 시종들은 대우가 좋아서 그들 중에서 어떤 사정에 의하여 시종을 그만두어 주간지가 나루히토 일가를 공격할 목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면 이들 시종들은 대놓고 나루히토 일가에 대한 온갖 칭찬을 늘여놓았을 정도라고 하는데, 이를 보아 황태자 쪽에서 척만 친 건 아니고 나름대로 자기 세력들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2019년 초 황실도 일본 사회의 시대 변화에 맞춰 나아가야 한다는 나루히토 황태자의 신 천황으로서의 각오가 포함된 발언에서 나루히토의 즉위 이후 궁내청 인사를 대대적으로 숙청할 것을 암시했다. 하지만 즉위하고 나서 아직 얼마 되지 않았고, 2019년 하반기 거의 대부분을 즉위 관련 행사로 가득 찼기에 잠잠하지만, 그렇다고 나루히토 덴노가 손을 놓진 않았는지 새 시종장이 황후의 외교관 시절 직속상관이 유력하다는 정보가 나오는 등 슬슬 물갈이를 할 생각인 모양이다.

여전히 황사 후미히토 집안과 함께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 등으로 여러 가지 논란들을 몰고 다니지만, 비밀리에 역대 여왕의 즉위 이후에 관한 궁내청 소장 자료들을 찾아서 여성 천황 등극[26] 이후 필요한 여러가지 정보들을 모으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 일단은 자신들이 살기 위하여 양쪽에 굽신거리는 것으로 보이나 현재 후미히토 내외의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등 무능을 보여주는 꼴이라서, 과연 이들이 나루히토 덴노의 숙청을 피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네들 스스로 나루히토 덴노에게 자기네들을 숙청을 해달라고 시위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2019년 황족 서열 1위에 해당되는 황사로 등극한 후미히토 일가는 대놓고 궁내청과 외무성을 무시해 지인을 이용해서 부탄을 방문해서 부탄왕실과의 교류를 하거나 공무라고는 겨우 2개 남짓이고 나머지는 전부 여행지 투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 내에서 큰 비판을 받아야 했던 올 여름 카코 공주의 유럽 순방 모두 궁내청으로부터 공무 취급을 받았지만 정작 2019년 초 일본과 캐나다 수교 기념 행사에 초청되어 간 다카마도노미야 히사코 비의 방문이나 나루히토 덴노 즉위 의식이 끝난 밤에 열린 연회에서 아웅산 수치의 부탁을 받아 12월 11일~17일까지 7일간 미얀마 방문 예정인 미카사노미야 요코 공주 모두 궁내청으로부터 공무가 아닌 사적 여행으로 취급받았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궁내청은 천황 및 황족들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오로지 상황 부부 및 아키시노노미야 가문만을 위한 기관이냐.'는 등 여러 가지 불만이 많다.

거기에다가 2019년 12월 일본 내에서 열린 일본/헝가리 관련 행사에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가 참석해서 방일한 헝가리 총리와 환담을 나누었음에도 궁내청 공식 사이트 내 다카마도노미야 가문 황족의 공개 공무 일정 항목에 없다는 사실과 일본 언론 어디도 보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지 몇몇 일본인들은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다면서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2019년 12월 11일 마코, 카코 공주 자매가 겨울왕국 2 자선 행사에 공무로 참여했다. 일본인들은 같은 날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초빙을 받아서 미얀마로 출발한 미카사노미야 요코 공주는 일정 대부분이 공적 요소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궁내청에서 사적 여행으로 취급받는 반면, 마코, 카코 공주 자매가 영화관 VIP석에 앉아서 만화영화 감상만 하는데 무슨 공무냐면서 궁내청에 비난을 쏟아냈다.

2020년 2월 5일 주간문춘 보도를 통해서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가 길거리에서 인터뷰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나갈 때까지 궁내청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일본인들의 분노가 잇따르고 있다.일부는 과거 궁내청이 히사히토에 대해서 언론들을 상대로 선을 넘으면 즉각 법적 조치를 한다는 발언했으며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이 유독 궁내청측의 공격을 받는 미야케라는 점[27] 등을 언급하면서 궁내청은 황족을 무시하는 행위를 그만두라고 항의하고 있다.

5.2. 한국사 연구 관련[편집]


궁내청 산하의 서릉부와 정창원 관리부에는 한국 고대사 시기, 특히 삼국시대남북국시대의 고문서와 유물들이 많이 소장되었으리라 추정되는데, 궁내청 측에서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한국 학자들에게마저 일부 자료 공개를 안 한다는 의혹이 있다. 필사본 화랑세기 떡밥도 서릉부에 있는 원본 화랑세기를 필사해왔다는 주장에서 시작되었고, 정창원에는 실제 신라나 백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으니 이런 소리가 나올 듯도 싶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궁내청에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곳은 시종직, 서릉부, 산노마루쇼조칸(三の丸尚蔵館), 정창원사무소, 교토사무소 등이다. 시종직은 천황을 곁에서 모시는 곳으로 쇼와천황 사망 당시 천황 개인의 물건이되 왕위 계승과 관련된 것으로 면세물로 규정된 유물들, 즉 어물(御物)을 관리한다. 이 어물에는 삼종신기부터 수 많은 도검과 백제 아좌태자가 그린 쇼토쿠천황의 초상 등이 포함되는데 555점으로 목록이 공개되었다.

산노마루쇼조칸(三の丸尚蔵館)은 쇼와 천황 사망 당시 국가로 반납된 미술품 등을 전시, 관리하기 위해 만든 미술관으로 장관관방에서 직접 운영한다. 현재 1만 점 정도를 수장하였으나 역시 목록을 공개하였고, 유명한 몽고습래회사 외에는 한국사와 관련된 것은 별로 찾을 수 없다. 교토사무소는 교토의 어소와 이궁 및 그곳의 전해지는 벽화 등을 관리하는 곳으로 대부분 에도시대 이후의 유물을 관리한다. 역시 한국사와는 별 관련이 없다. 다음으로 궁내공문서관(宮内公文書館)은 메이지시대 이후 천황 및 황족과 관련된 문서, 사진을 관리하는 곳이다. 수장품은 많으나 대부분 근현대사 유물이다.

서릉부는 3개 기관으로 구성된다. 능묘과, 궁내공문서관, 도서료문고가 그것이다. 능묘를 관리하는 능묘과는 천황 및 황족과 관계된 곳에서 발굴, 수습된 유물 1천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각종 동경, 도검 등 고고학적으로 한국사와 관련된 유물은 많으나 대부분 도굴된 곳을 메이지시대 이후 수습한 것으로 양이 적고 완전한 것이 아주 많지 않다. 목록은 물론 사진까지 모두 공개되어 있다.

궁내청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료문고(図書寮文庫)는 방대한 서적과 고문서를 수장하고 있는데 이곳이 주 원만의 대상이다. 그러나 폐쇄적이라고 하기엔 8만 건의 목록이 공개되었고, 대부분 필름화가 완료되었는데 조선의 책이라고 빠지진 않았다. 애초에 궁내청은 한국 학자들에게 도서료문고를 완전 개방한 적이 있는데 2011년 한일 양국 정부의 조약으로 궁내청 서릉부에 있는 불법 유출된 고서를 반환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한국 서지학자들이 도서료문고로 들어가 조선총독부와 이토 히로부미가 불법 반출한 의궤 포함 고서 1205권을 환수하였다. 한국본 책을 직접 열어 도장을 모두 확인했다니 궁내청이 한국 학자에게 완전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도서료문고가 형성된 과정을 보면 이곳에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자료가 있기는 어렵다. 이곳의 책은 과거 에도막부 쇼군의 문고인 모미지야마문고(紅葉山文庫)를 입수한 것과 교토의 천황 거처에 있던 어소본(御所本), 비각본(秘閣本)에 기초한다. 어소본과 비각본은 대부분 에도시대의 의례, 음악, 의학, 취미서로 분량이 많지는 않다. 여기에 구 왕가인 후시미노미야가와 카츠라노미야가의 기증본, 구 공경인 쿠조가와 타카츠카사가, 미부가, 구 다이묘인 모리가, 도쿠시마 모리가, 우와지마 다테가 등이 가문의 장서를 기증하고 일부 도서를 구입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오래된 서적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정창원 사무소 관리의 정창원 유물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내 학자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데 여기엔 예산의 문제가 많다. 정창원이 박물관이나 문부과학성의 관할이 되었다면 더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졌겠으나, 엉뚱하게 천황가를 모시는 궁내청 관할이 되면서 예산과 인력이 자연스레 부족해졌다. 현재 정창원 연구인력의 가장 큰 당면과제는 시대에 따라 바스라지는 30만 점에 달하는 섬유와 종이 조각을 맞추는 일이다. 우리가 전시관이나 도록에서 보는 그럴듯한 유물은 그나마 보존처리가 된 것들이고 지금도 정확한 수를 모르는 유물들이 보존처리부터 기다리는 판이니 정창원의 연구는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14:51:57에 나무위키 궁내청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전근대 시기 일본의 공식 중앙 관청이었으나, 막부의 등장 이후로는 막부의 명령에 서명만 해 주는 관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2] 중무성은 조정을 보좌하는 기관이었지 황실 전체를 보좌하는 기관은 아니었다.[3] 일본에서의 청이 붙는 기관은 보통 외국(外局)이지만 중앙성청 개편 이후에는 내각부에 놓인 기관으로 외국이 아니게 되었다. 일본정부 관보에서는 외국 등으로 분류한다.[4] 이들 시종들은 과거 미치코 상황후 시집살이 항목에서도 보듯 근래까지 구 황족, 구 화족들이 차지하고 있었을 정도이며 지금도 그러한 여파가 있어서 나이가 든 시종들은 대부분 구 황족 및 구 화족과의 어떠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들 시종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추천제에 가깝게 운영된다고 한다.[5] 보통 사무차관이나 경시총감급 고위 인사들을 궁내청 차장으로 보내서 경력을 쌓게한 다음 차장 임기 종료 후 차기 장관에 임명하는 게 관례. 참고로 장관은 특별직 국가 공무원(한국식으로는 정무직)이나 차장은 일반직 국가 공무원. 임면권 자체는 내각총리대신에게 있지만, (옥새가 찍힌) 임명장은 천황에게 수여받는다. 국무대신들의 경우도 동일.[6] 2023년에 새로이 창설된 부서로서 초대 실장으로는 산업스파이 단속 등 정보통제쪽으로 정통한 이력을 가진 여성 경관 출신자가 임명되면서 논란이 진행 중이다. 보통 홍보 부서가 생기면 그 담당자로 소통 관련 전문가가 오기 마련인데 의도적으로 정보 통제 전문가가 온 걸 감안하면 해당 부서가 나루히토 천황의 '이야기하는 열린 황실'을 위한 SNS 등을 구사하는 부서가 아니라 후미히토 친왕 부부나 상황 내외가 이야기하는 주간지으로의 정보 유출 차단 및 국민들의 항의를 묵살하기 위한 정보 통제 부서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주간지 등에서 나오고 있다. 여담으로 2023년 기준 궁내청 장관은 경찰 출신.[7] 본래 황실에서는 고쿄 내 산전(産殿)에서 출산하는 것이 전통이자 관례이었다. 그러나 ‘최초의 평민 출신 비(妃)’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당시 미치코 황태자비는, 이 전통을 깨고 1960년 2월 23일 궁내청 병원에서 첫아이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을 낳았다. 그 이후부터 일본 황족들도 오래된 관습을 깨고 똑같이 궁내청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단, 반드시 궁내청 병원에서만 출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쓰구코 공주,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 히사히토 친왕은 아이쿠(愛育) 병원에서 태어났다.[8] 황사(皇嗣)란 차기 황위 계승자를 가리키는 중국식 용어이다. 2019년 나루히토가 즉위한 이후로 상식적으로는 후미히토를 황태제(皇太弟)라고 칭해야 맞겠으나, 일본의 황실전범에는 '황태제'란 단어가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황사'란 낱말을 사용한다.[9] 규모가 작은 청의 경우에는 장관관방을 두지않고 총무부를 두는 경우도 있다. 또한 예외적으로 일본 경찰청은 부(部)가 아닌 국(局)을 둔다. 일본의 경찰청은 내각부의 합의제 외국인 국가공안위원회의 특별기관이기 때문이다.[10] 다만 궁내청 예산은 천황 내외와 황태자 내외의 생활비 등이 포함된 내정비, 외국 국빈에 대한 의전을 제공하고 전국에 산재한 황실 재산 유지 관리 등의 비용을 의미하는 궁정비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족들의 품위유지비 및 생활비인 황족비가 포함된 비용이다. 2018년 기준으로 궁내청 총 예산은 연간 114억 6581만 8000엔가량[11] 現 천황 나루히토와 그 일가가 지급받는 내정비는 기본적으로 상황 내외와 같이 사용하기에 얼마인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키히토 상황의 차남이자 2019년에 황사(皇嗣)(황위를 이을 다음 후계자)가 된 후미히토 일가는 2016년도 기준으로 6710만 엔을 받았다. 미카사노미야 일가는 다카히토 생존 기점으로 7381만 엔(사후 다카히토가 생전에 받던 3050만 엔이 삭감되어 4331만 엔), 그 방계인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은 4331만 엔, 현 상황의 남동생 마사히토 내외가 4575만 엔을 받는다. 2019년 이후 후미히토가 황태자에 준하는 직위를 얻게 되어 이들 내정비를 지급받게 되었는데, 상황 내외 및 현 천황 일가에게 주고 남는 비용이 후미히토 일가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 황족일 때 받았던 6710만 엔보다 더 쪼들릴 가능성도 농후한 편이지만 내정비 대신 황족비를 계속 받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참고로 2017년 일본 국세청(国稅庁) 조사 기준으로는 일본 사기업 근로자들 평균 연봉이 약 400만 엔이므로 방계황족의 1년 생활비가 어지간한 사회인들 연봉의 10배 정도면 오히려 쪼들리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12] 2018년 기준으로 패전 이후 신적강하된 11 미야케 중에서 4개가 단절, 2개가 단절 확정인 상황이며 후손이 있어 단절을 피한 6개 18명의 50대 미만 남성이 살아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미혼은 9명가량이 있는데, 이들 미혼자의 연령대는 최소 10대 중후반부터 40대 초중반 정도로 다양한 편이라고 한다.[13] 그래서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 언론에서 키코 비가 궁내청 측의 높은 사람을 찾아가서 왜 이러한 사실을 자기네들에게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냐고 항의했다니 내정자가 생기면 자체적인 조사는 대충이나마 하는 모양이다.[14] 실제로 2022년 후미히토 생일 인터뷰에서도 대놓고 언론 통제를 이야기한다.[15] 사실 패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황실은 엄청 폐쇄적인 면이 강했기에 홍보 목적으로 천황이나 황태자의 사진/영상만 공개하는 거 이외에는 일절 노출을 시키지 않았다. 패전 후에 한동안은 미성년자 황족의 육성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는 데 이것도 원래는 패전 전에 덴노 내외를 포함한 모든 황족들의 음성은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한 것을 미성년자 황족으로 축소시킨 것이였고 이후 아이코 공주가 어린 나이에 이러한 암묵적인 룰을 어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서 공개된 이후 이러한 암묵적인 룰도 없어졌다.[16] 후미히토 일가를 책임지는 황사 담당 부서의 최고 담당자[17] 대표적으로 차세대 천황으로 유력시되는 히사히토에 대해서는 원인 모를 정도로 강력한 보도규제 조치 등이 있다. 히사히토 출생 전에도 유독 궁내청은 후미히토 일가(아키시노노미야)에 대해서 관대해서, 일본에서도 "황태자 일가를 천대시하고 후미히토 일가는 사사건건 과보호하는 것을 넘어서 우대한다"는 등 불만이 상당부분 있었다.[18] 거기에다가 최근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도 유독 정식 약혼자도 아닌 코무로 케이에 대해서 과잉 보호만 하면서 해당 논란을 고의적으로 키운 바 있어서 일본 내에서 궁내청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19] 이때 나루히토 황태자는 정해진 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늦게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이는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고, 그만큼 많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20] 정확히는 내각부와 외무성.[21] 궁내청 병원의 시설에 대한 것은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있지 않으나 애초에 황궁 안에 있는 위치한 황족들의 전용 병원이라 병상수는 20개며, 이 정도면 동네에서 간단한 수술한 뒤 잠깐 입원만 하는 정도의 병원이다. 급성 간염은 치료만 제때 받으면 큰 위험은 없는 병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어렸기 때문에 규모가 큰 병원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뭐든지 최고만을 해주고 싶은것이 부모의 마음이고,더군다나 아이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니. [22] 2018년 12월 후미히토 생일 기념회견에서 한 천황 즉위 행사 중에 종교적인 게 있으니 국비보다는 황실비용으로 처리해야 합당하다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궁내청 관계자가 그럴 생각이면 후미히토 저택 개보수비로 투입되는 약 43억 엔(개보수 33억 엔, 임시거처 10억 엔) 등을 최대한으로 줄이시는 것으로 좋은 선례를 먼저 만드시면 어떻겠냐고 돌려서 깐 적이 있다. 사실 후미히토 저택은 원래 지치부노미야 궁저였는데, 궁저였던 1972년에 개수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1997년부터 후미히토 일가 저택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2006년부터 줄곧 저택 노후화가 심하니 개수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뤄지다가 겨우 개수했다고 한다.[23]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카코 공주의 결혼 발언, 후미히토의 즉위 행사비 발언, 히사히토의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 부정진학 시도 의혹 등 나열하기 힘들다.[24] 1월 연초의 공무 이후 2월까지 천황 내외는 공식적으로 휴양 중이었다.[25] 대충 내용이 어머니 빚과 관련해서, ‘어머니는 돈을 증여받은 것이니 갚을 필요 없다’라는 내용이었다고. 거기에 공개한 방식도 각 언론사에 팩스로 이 문서를 보내버렸다고 한다.[26] 참고로 마지막 여성 천황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 고사쿠라마치 덴노였다.물론 이 사람은 고모모조노 덴노가 어느 정도 연령대가 될 때까지 천황직을 하다가 조카에게 양위를 물려주었으나 조카인 고모모조노 덴노가 급사하면서 서둘러서 후계를 고카쿠 덴노로 정하였다. 그리고 현 황실은 이 고카쿠 덴노의 직계 가문으로 내려오고 있다. 부자 세습으로 계속 이어져 나루히토 덴노는 고카쿠 덴노의 직계 7대손이다.[27] 이는 쓰구코 공주의 부모인 다카마도노미야 부부가 나루히토 덴노 내외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 때문에 친 아키시노노미야 성향인 궁내청측이 다양한 방법으로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을 물 먹이고 있는 이유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대다가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은 현 황족들 중에서 가장 서열이 아래라는 점도 이러한 무시행위를 자체적으로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