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제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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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2. 개요
3. 활동과 최후
4. 출처

함종
전함(Schlachtschiff)
함급
샤른호르스트급
함명
DKM 그나이제나우
자매함
샤른호르스트
제작
킬의 Deutsche Werke, 235번 Bau
발주
1934년 1월 25일
기공
1935년 5월 6일
진수
1936년 12월 8일
취역
1938년 5월 21일
최후
1945년 3월 27일 폐기 처분됨


1. 제원[편집]


배수량
표준 32,100 톤, 만재시 38,434 톤
전장
상부 235m, 흘수선 226m
선폭
30m
흘수
37,303 톤일 때 9.69m
추진
3개의 브로운 보베리 기어 터빈, 3개의 3날 프로펠러(지름 4.8m)
승조원
1,908명
무장
주포
280 mm(11.1인치)포 9문
부포
150 mm(5.9인치)포 12문
부포
105 mm (4.1인치)포 14문
부포
37 mm 16문
부포
20 mm 10문 (후에 16문)
어뢰
533 mm(21인치) 어뢰 발사튜브 6기
함재기
아라도 Ar196A-3 3대
항공장비
캐터펄트 2기


2. 개요[편집]


그나이제나우(Gneisenau, DKM Gneisenau)는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나치 독일 해군이 건조한 전함으로[1]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제2번함이다.

함명은 프로이센의 군인이자 아우구스트 나이트하르트 폰 그나이제나우 육군 원수로부터 따왔다. 나폴레옹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프로이센의 군제도 개혁에 힘을 쏟은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와 함께 활동한 장군이다.


3. 활동과 최후[편집]


파일:XmDwvWU.jpg

도이체 베르케에서 진수되는 그나이제나우.[2]

1934년 12월 8일에 '도이체 베르케'에서 기공하여, 건조를 중지하였다가, 1935년 5월 6일 건조를 재개, 1936년 12월 8일에 진수, 1938년 5월 21일에 준공하였다.

1939년 11월 23일에 '페로섬 해전'에 참가하여 영국의 무장상선 라왈핀디호를 샤른호르스트와 협력하여 격침시켰다.

노르웨이 전역에서 활동하던 도중, 1940년 4월 9일에는 샤른호르스트와 함께 '나르빅 해전', 6월 8일에는 노르웨이 해전에 참가하여, 영국 항공모함글로리어스함과 구축함 아카스타함 등 3척을 모두 격침시켰다. 6월 20일, 트룬하임에서 영국 잠수함 클라이드의 어뢰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다. 수리가 완료된 후, 12월 28일에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는 통상파괴작전에 출격하였으나, 악천후로 돌아와야 했다. 1941년 1월 ~ 3월에는 베를린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때 그나이제나우는 총 14척(샤른호르스트는 8척)의 상선을 침몰시키는 대전과를 올리게 된다.

4월 6일, 브레스트에서 영국 항공기의 공격을 받아 어뢰 1발이 우현 뒷편에 명중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4월 10일, 폭격을 받아 여러 발의 폭탄이 명중, 약 50명의 승조원이 사망하였다.

1941년 5월에 비스마르크, 프린츠 오이겐, 샤른호르스트와 함께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하려 했지만 4월 6일 영국 해군 뇌격기에 의해 추진축이 손상되어(수리에는 6개월이 필요하였다.)출전할 수가 없었다.

1942년 2월 11일에는 샤른호르스트, 프린츠 오이겐과 함께 켈베로스 작전에 참가하여 작은 피해를 입어 킬 군항에서 수리를 받았다.

파일:Gneisenau_in_dry_dock_at_Kiel_March_1942.jpg
파일:gallgneisedestruction05.jpg
파일:gallgneisedestruction06.jpg
함수부에 큰 피해를 입은 그나이제나우

같은 해 2월 26일에 군항 내에서 연합군 항공기의 폭격으로 폭탄이 명중, 화재가 뱃머리의 탄약고를 폭발시켜 1번 포탑이 파괴되고 함수부의 갑판과 내부 구역이 대파되며 1번 포탑 인원들을 포함하여 112명이 사망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기관부가 손상되지 않았기에 자력항해는 가능했고, 이를 수선체 길이 연장 및 주포탑을 380mm 연장포로 교체하고자 고텐하펜으로 회항하였으나, 1943년에 바렌츠 해 해전의 패전 소식을 들은 히틀러의 대형함 폐기명령에 의해 공사가 중지, 폐기가 결정되었다.

파일:Gneisenau1.jpg
모든 무장이 철거된 채 자침한 모습

1945년 3월 23일 고텐하펜의 폐기함으로써 예인되어 무장이 모두 철거된 채 항구 봉쇄를 위해 항구 입구에서 자침되었다. 1947년에 폴란드에서 그나이제나우를 인양한 후 해체하고, 고철로 처분되었다.

파일:gallgneisethe_end8.jpg
파일:gallgneisethe_end9.jpg
해체되는 그나이제나우

현재 그나이제나우의 283mm 3연장 주포와 150mm 2연장 부포는 그나이제나우 폐기에 따라 주포를 탈거하여 해안포 포대 겸 박물관으로서 보존되고 있다. 독일 군함들의 몇 안되는 유물 중 하나. 나머지 유물들은 프린츠 오이겐의 스크류와 H-39의 16인치 주포이다.[3]
파일:Gneisenau-1.jpg
파일:150mm_doubleturret_stevns.jpg
현재까지 남아있는 그나이제나우의 11인치 3연장 주포탑과 150mm 부포탑


4. 출처[편집]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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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샤른호르스트급을 종종 순양전함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독일에서 샤른호르스트급은 엄연히 전함으로 분류되었고, 순양전함으로 분류한 건 영국이었다. 정작 독일은 별도의 순양전함 프로젝트가 있었다. 사실 순양전함으로 보기도 어려운데 순양전함의 개념상 장갑을 희생했으면 희생했지 화력만큼은 어지간해서는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건드린다 하더라도 포문 수를 줄이지 구경을 줄이지는 않는다. 샤른호르스트급은 화력이 약하지 딱히 장갑이 부실한 것은 아니었다.[2] 왼쪽의 함선은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1번함 도이칠란트(훗날 뤼초로 개명된다)이다.[3] H-39는 실제 건조가 진행되었지만 중간에 건조가 취소되어 미리 완성되어 있던 16인치 주포 11문은 단장포로 분리하여 해안포로 사용했다. 이중 일부가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