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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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Modernization

근대화는 봉건제 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사회[1]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근대화' 개념은 선형적 시간개념[2]과 목적론[3]에 의존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근대화' 관념은 제국주의시대에 사회진화론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작동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근대화'도식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사상, 기술, 과학 등 복잡다단한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개입되어있다.[4][5] 따라서 특정 부문의 도입과 발전만으로 '근대화' 달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 '근대' 개념도 일반적인 이념적 용어가 그러하듯이 그 정의가 역사적 지역적으로 일정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변용될 뿐 아니라[6], '근대' 내에서조차 시대구분이 이뤄지고 있으므로[7], 일관된 접근과 판단이 매우 어렵다.[8]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은, 근대화가 단순히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달성된다는 생각이다. 그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치관 등 모든 분야가 전부다 자본주의 단계로 넘어가야지 근대화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화로 인해 열강의 개입이 이뤄진다고 반드시 빠른 근대화로 인해 국가발전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동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성공했다던 일본보다 수십년은 근대화가 더 빨랐던 메흐메드 알리 치세의 이집트나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이미 해군마저 서구화가 이뤄지던 베트남이 근대화를 이뤄도 열강의 개입으로 국가가 무너진 대표인 사례며, 오히려 일본의 경우엔 막부가 혼란스러워져 식민지로 전락하기에 좋았던 1850~70년도에 수많은 운이 따라줬다. 이 시기에 서구열강의 관심은 그레이트 게임이나 보불전쟁같은 유럽 열강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아시아로 향하지 않았던데다, 1853년에 쿠로후네 사건이 일어나서 미국이 대외활동을 펼칠정도로 국력이 강성했다고 여겨지겠지만 정작 미국은 서부개척시대가 막 시작된데다 1860년대에 남북전쟁이 일어나는 등의 내치에 더 집중해야 했던 행운이 잇달으면서 막부시대에서 일본 제국으로 넘어가는 기간과 이 사이에 벌어진 보신 전쟁같은 위험한 시기를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즉, 근대화로 국가발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일본마저도 열세인 국가가 단순히 근대화만으로 성공하기엔 수많은 행운이 따라줘야 하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에 의한 자발적이고 점진적인 사회변동을 통해 근대 사회로 이행되는 '아래로부터의 근대화'와 지배계층의 주도하에 강제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이식되는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있다.


2.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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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관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기는 하나, 다소 경제중심주의적 해석임을 유의할 필요는 있다. 물론 자본주의는 배제하기 어려운 '근대'의 핵심 특성 중 하나이지만, 후술하듯 '근대화'개념은 경제적 변동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으며 보다 광범위한 문화적, 과학적, 기술적, 종교적, 철학적,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전방위적으로 동반한다. 경제중심주의는 이러한 전방위적 변화들을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인과적으로 후행하거나 부수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며, 이러한 관점이 널리 통용되기는 하지만, 근대화에 대한 다른 관점들 역시 존재하므로 유일한 해석은 아니다.[2] 지역 불문 고전문화에서 발견되는 순환론적 시간관과 대비시켜 이해해야한다. 순환적으로 보게 되면 역사를 유사한 역사의 반복으로 이해된다. 반면 선형적 시간 관념에 따르면 과거와 구분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게된다. 이런 사유의 뿌리를 계몽주의나 기독교에서 찾으면서 서구예외주의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사실 법화경이나 미륵 관념에서 보듯이 고전시대 동아시아나 한국에서도 이런 관념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3] 따라서 필연적으로 후대의 것이 더 궁극적 목적에 부합한다는 가치판단이 개입하게 된다. '근대화'를 탈가치화할 수 있다는 믿음, 탈가치화하려는 노력이 존재하기는 하나 '근대화'개념이 갖는 역사적 의미지평에서 목적론과의 연계는 매우 선명하므로 이 개념을 완전히 탈가치화해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소위 '과학적,' '물질적' 관점의 해석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가장 광범위하게 퍼진 근대화=목적 도식 중 하나가 마스크스주의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4] 예를 들어, 구한말처럼 서양식 의복을 입고, 단발을 하고, 전함이나 소총 등 근대식 무기로 군대를 무장시킨다고 해서 근대화가 되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제도적인 면에서는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 또는 공화제로, 경제적으로는 농업국가에서 근대적 자본주의로, 사회적인 면에서는 근대적 인권보장제 등 위부터 아래까지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 외적, 내적 개혁이 싹 이루어져야 근대화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5] 이런 의미에서 일제시대 조선에 대해서도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곤 하는 것이다. 당대 조선이 일제하에서 '후기근대'는 커녕 '초기근대'로 진입했다고도 명확히 말하기 어려운 것은, '근대'개념에 엮인 이 복잡다단한 요소들을 모두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민국가나 자율의 이념은 근대성(특히 초기근대에서)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인데 식민체제 하에서는 달성불가능한 요소다.[6] 예를 들어 19세기~20세기초 유럽 주도국들이 제시하던 근대 개념, 마르크스주의적 근대 개념, 20세기~21세기 미국이 제시하는 근대 개념은 유사한 면이 존재하면서도 동일한 것으로는 다룰 수 없다.[7] 초기근대와 후기근대의 개념이 흔하게 사용되는데, 이 둘 사이에는 분명 유사성이 있으나 또한 극명한 차이가 존재한다.[8] 예를 들어 오늘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구분(developed/developing country)은 미국이 제시하는 근대화 개념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 기준에 따라 판단하게 되면 21세기 이전 한국은 전근대로 파악된다. 또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는 다수의 나라들도 전근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매우 논쟁적인 요소가 있음에 다수가 동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