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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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기득권()은 '이미 얻은 권리'라는 뜻으로, 특정한 개인(또는 법인)이나 집단이 이미 차지한 권리를 말한다. 사회적으로 볼 때 설령 불법적이더라도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권리를 말하기도 한다. 기득권을 보유한 개인집단은 기득권이 없는 인간에 비해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풍요롭다.


2. 상세[편집]


어느 사회에서, 특정 집단이 타 집단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더 가지고 있다고 인식되는 자산을 말한다. 경제의 개념으로 따지면 부자들이 가진 을 기득권으로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선 자본의 규모가 곧 그 사람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이며 명예권력도 중요한 요소이다.

과거 중세 유럽에선 귀족을 필두로, 성직자, 교수, 법조인권력이 있는 소수의 계층만을 기득권이라 칭했고, 현대에 와서도 어느 국가든 간에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을 필두로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들과 CEO, 고위공무원, 대기업 임원, 금융권,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오너 등의 정·재계 인사들이 전통적인 기득권층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 외에도 의사(치과의사, 한의사 포함) 등의 의료인들과 교수나 고위 연구원학자 계통의 직업이 기득권층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를 기준으로 한다면 참정권 등을 기득권이라 볼 수 있으며, 노동계는 노조위원장대한민국 내 정치적 영향이 엄청나며 이들은 노동법, 행정법, 민법, 형법을 정치인, 법조인 못지않게 알고 있으며 또 정치에 빈번하게 진출하기 때문에 기득권층에 포함된다. 문화예술계는 A급 연예인, 화가, 음악가, 영화감독은 방송, 대중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기득권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특정 범주에 속한다고 모두 기득권이라 칭하지 않는다. 블루칼라 노동자라도 노조위원장과 같이 노동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일부는 정치에 진출하여 나라를 이끄는 경우에는 기득권층으로 볼 수 있다.[1][2]

자주 사용되긴 하지만 상당히 난해한 개념이다. 분명 명목상으로는 법적,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권리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계급이라는 용어에 준하는 의미로 쓰이며, 이미 기득권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실질적으로는 해당되는 권리를 가진 집단이 부당하게 이를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에서 기득권으로 지목되는 권리는 일반적으로 이를 문제시하는 집단이 그러한 상황을 일종의 사회문제로 여기고 해결책을 요구하는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정작 기득권을 가졌다는 당사자들은 자신이 왜 기득권을 가졌다는 것인지 몰라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격렬하게 반발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득권이라는 것이 실존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기득권층"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세대, 직업 등에 대한 일종의 성급한 일반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기득권이라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건물주 아들같은 케이스를 빼고는 기득권 (특히, 의사) 들도 자식들의 학업에 지원을 쏟아부으며 공부시킨다. 다만, 기득권층이 비판받는 주된 이유는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자녀에게 세습하는 과정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불공정하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학습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값비싼 사교육을 자녀에게 제공하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둔 경쟁에 있어 기득권층의 자녀들이 다른 사람의 아이들보다 훨씬 유리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 및 경기도교육연구원 교통통계센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소득층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은 계층의 자녀에 비해 수능에서 평균 43.42점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20년 SKY 신입생의 고소득층(9, 10분위) 비율도 5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9년 2학기 전체 국가장학금 신청자 중 9,10분위 비율은 20.7%에 불과했다.# 전체의 20.7%에 불과한 집단에서 전체 SKY 합격자 수의 55%를 배출한 것이다. 단지 운좋게 부모를 잘 타고났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앞당겨진 출발선에 서는 것이 공정한가? 선천적 운이 재화의 분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물론 출발선이 앞당겨졌다 한들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엘리트 계층이 될 수 있으며, 그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러한 불공정함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모가 있는 것은 보통 다들 인정한다. 그러나 노력도 없이 엘리트 계층을 세습받는 것은 공정성 논장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같은 노력을 하거나 같은 재능(능력)을 타고나도 기득권보다 흙수저가 똑같은 위치에 오르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득권층이 자신의 성취는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만 이루어냈다는 오만한 착각에 휩싸여 일반 대중을 경멸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확실히 비난받아야 할 잘못이 되며, 개돼지 망언 사건이 바로 그러한 예시다. 기득권층이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취를 온전한 자신의 노력으로만 이루어냈다는 잘못된 능력주의적 사고를 버려야 할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성취에 있어 사회가 기여한 바를 인정하고 자신의 재능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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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유럽, 남미에서 노동위원장이 정치에 많이 진출하며 그중 일부는 대통령, 총리가 되어서 국가를 이끌기도 한다.[2] 브라질 전직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초등학교 중퇴이지만 노동운동을 하다가 정치에 진출해 대통령까지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