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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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적
2. 미스테리와 의문
3. 대중매체에서



1. 행적[편집]


吉三峯
(? ~ ?)

선조 시기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했던 도적이자 반란수괴. 길삼봉은 충청도 천안군(현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노비 소생으로 태어났으며, 힘이 장대해 그 힘을 믿고 전라도 태인현(현 전라북도 정읍시)과 남원도호부(현 전라북도 남원시) 일대서 관아를 공격하고 도적질을 일삼아 민관에 큰 피해를 입혔다.

관에서는 길삼봉을 잡으려 했으나 그는 신출귀몰해 절대 잡히지 않았고, 이후 정여립과 손을 잡고 진안군의 죽도에서 활동했으며 임금을 상대로 반역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악명이 자자하고 조선사를 뒤흔든 역모사건의 주동자이며 길삼봉은 국가의 적이 되었으나 이후에는 정여립이 죽도에서 자결했을때 그는 숱한 의문을 남긴 채, 살아남지 못한 것으로 봤을때 정여립 체포 작전 당시에 도주하지 않고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미스테리와 의문[편집]


정여립의 체포 작전 당시에 군사를 몰고 갔으며, 정여립을 체포하기 위해 정여립의 은신처인 죽도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체포 군과 대동계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체포하기 직전은 정여립은 자결했다. 만약에 전투가 일어난 진안 죽도에서 제대로 조사했으면 길삼봉이 미스테리한 인물이 되지 않았겠지만, 정여립이 자결했던 진안 죽도에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고, 정여립의 시체와 그의 아들인 정옥남을 한성으로 급하게 압송했다.

그래서 길삼봉이 출몰해 관아를 습격하고 임금을 상대로 역모를 저질렀는데도 정작 길삼봉을 잡아내지 못하니까, 길삼봉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아다닐 지경이었다. 많은 역사서가 길삼봉의 행적을 기록하였으나 하나같이 모순되는 내용만 이야기하였다.

"전주(全州) 정여립의 집에 가면 삼봉(三峯)이란 자가 있는데, 나이는 60세쯤 되었고 낯빛은 검으며 몸은 비대하다."

하였고, 혹자는 말하기를,

"삼봉은 나이는 30세쯤 되었고 키는 크며 얼굴은 파리하다."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삼봉은 나이는 50세쯤 되었고 수염이 길어 배에까지 드리워졌으며 낯빛은 검고 키는 크며 말할 때마다 기침을 한다."

하였다. 그 뒤 적의 무리 김세겸(金世謙)이 말하기를,

"길삼봉은 상장이 아니고 졸병이다. 진주(晋州)에 사는데 나이는 30세쯤 되었고 하루에 3백 리를 달린다."

하고, 또 한 역적은 말하기를,

"삼봉은 본디 나주(羅州)의 양반 집안이다."

하고, 또 박문장(朴文章)이란 자가 있어 말하기를,

"삼봉은 길씨가 아니라 최삼봉(崔三峯)인데 진주의 사노(私奴)이다."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1년 전에 한 선비가 전주의 만장동(滿場洞)을 지나갔다. 거기에 활쏘기 모임이 있었는데, 최영경이 수석에 앉고 정여립이 차석에 앉았었다."

선조수정실록 선조 23년(1590) 6월 1일 신미


그래서 이에 대해 선조정철정여립의 난이라는 사건을 정치적인 시나리오로 만들어서 정언신, 김우옹, 이발, 백유양, 정개청, 최영경을 왕권을 위협하고 국정을 어지럽게하고 나라를 망치는 권신간신이라는 혐의로 누명을 씌워 이들을 날려버리기 위해 급하게 조사를 마무리 한 것도 있다. 이 탓에 길삼봉은 점차적으로 가공의 인물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정여립인 자결한 장소인 진안 죽도에 대해 희생자들을 부실하게 조사하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는 길삼봉에 대해 물증조차 없는데 "네가 진짜 길삼봉이지?"라는 개논리에 진짜로 엉뚱한 사림 유생들이 역모죄로 끌려나와 고문받고 멸문되고 목숨을 잃었다. 더군다나 정여립은 대동계(大同契)라는 엘리트 사교모임을 주선했는데, 이러한 사조직 결성은 정여립을 역모죄로 몰아가기에 딱 좋은 행적거리이기도 했다.

정여립의 난 진행 과정을 보면 선조가 정여립을 자결한 뒤에 진안 죽도에 대해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끝내고 선조가 왕권을 위협할 예비 권간들을 지목하며 제거하려고 했단 점, 서인 세력이 정여립의 난이 발생하기 전 해당 사건을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사서에 남아 있다. 그래서 선조 또는 정철이 정여립의 난을 이용해서 선조에 의해 왕권을 위협하는 권간으로 지목된 정언신, 김우옹, 이발, 백유양, 정개청, 최영경을 제거해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큰 그림을 짠 게 아닐까 하는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한편 '삼봉'이라는 호를 쓴다고 알려진 진주의 선비이자 조식의 제자로서 이름 높은 동인이었던 최영경이 실제 진안 죽도에서 정여립 체포 당시에 체포군과 대동계가 전투를 벌인 뒤에 실종되었던 길삼봉의 모티브가 된 인물인데, 여기에 진안 죽도에 대한 부실한 조사와 왜곡된 이미지가 더해져 최영경이 길삼봉이라는 허구의 인물이 창조되었다.

특히 최영경정철이랑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최영경이 길삼봉이라고 관에 잡혀 들어오자 관리들 사이에선 '정철이 최영경을 죽이려 길삼봉 소문을 냈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녔다. 게다가 실제 최영경의 호는 수우당(守愚堂)이지 삼봉이 아니다. 어찌되었든 실제 역사에서 천 명이 넘는 유생들이 정여립의 난때 역모 수괴이면서 정여립 체포 당시에 사망했거나 실종된 길삼봉으로 몰리거나 길삼봉과 가까이 지냈다는 물증도 없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받고 처형당했다.

정여립 체포를 위해 체포군과 대동계가 전투를 벌이면서 희생자가 생겼지만 그것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해 자결한 정여립 시체와 그의 아들인 정옥남을 급하게 끌고 왔다는 것은 길삼봉을 실존여부조차 불분명하고 그 존재 역시 너무나 미스테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현대 역사가들에게 특정 정치세력이 정여립이 자결한 장소인 진안 죽도에서 조사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정여립의 난을 고의로 조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확신을 품게 하였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 소설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의 회상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허깨비로 등장한다. "마침내 길삼봉은 누구냐?라는 질문은 누가 길삼봉이냐?라는 질문으로 바뀌"면서 허깨비가 피를 부르기 시작했다."라고 적고 있다. 전자는 그저 특정인인 길삼봉에 대해 묻는 질문이나, 후자는 이 중에 길삼봉이 누구냐며 색출하려는 말이다. 곧 모두가 용의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서, 동지와 적을,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이데올로기적 신문(訊問)이다. #
  • 소설 율곡검원의 소드마스터에서는 길쌈질을 워낙 잘한다하여 길쌈봉이라 하던 여성이 길삼봉이라 불렸다고 한다.
  • 만화 언데드킹에서 주요 악역 중 하나로 등장한다.
  • 배상열 작가의 7권짜리 소설 풍운에서는 사실 길삼봉은 '지리산 봉우리'란 단어를 약간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묘사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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