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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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제15대
유선호

제16-18대
김부겸


제19대
이학영
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구 수성구 갑)
제17-19대
이한구

제20대
김부겸


제21대
주호영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
제17대 후반기
권철현

제18대 전반기
김부겸


제18대 전반기
이종걸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저출산고령대책특별위원장
제18대 전반기
이석현

제18대 후반기
김부겸


활동 종료




대한민국 제47대 국무총리
김부겸
金富謙 | Kim Boo-kyum


파일:100137258.jpg

출생
1957년 1월 21일[1][2](67세)
경상북도 상주군 상주읍 오대리
(現 경상북도 상주시 오대동)[3]
거주지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4]
본관
김해 김씨[5][6]
현직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
재임기간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
2017년 6월 16일 ~ 2019년 4월 5일
제47대 국무총리
2021년 5월 14일 ~ 2022년 5월 11일
서명
파일:김부겸 서명.svg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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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김영룡, 어머니 차숙희
형제자매
1남 3녀 중 첫째
배우자
이유미[1]
자녀
장녀 김연수
차녀 김지수
삼녀 김현수
학력
대구국민학교[2](58회 / 졸업)
대구중학교 (26회 / 졸업)
경북고등학교 (56회 /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 /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병역
병역면제 (수형)
종교
개신교 (예장합동)[3]
신체
169cm, 70kg, B형
소속 정당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6, 17, 18, 20
약력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간사
민주연합추진위원회 부대변인
한겨레민주당 창당발기인
민주당 부대변인
민주당 기획조정실 부실장
통합민주당 수석부대변인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 조직위 부위원장
한나라당 부대변인
제16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열린우리당 홍보위원
제17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제17대 국회 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간사
열린우리당 당의장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비대위 상임위원
제18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 통합민주당)
제18대 국회 전반기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제18대 국회 후반기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수성구 갑 지역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 (대구 수성구 갑 /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특별위원장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 (문재인 정부)
제47대 국무총리 (문재인 정부)
2050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겸 정부위원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


1. 개요
4. 여담
5. 선거 이력
6. 소속 정당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47대 국무총리.

1988년 정계 입문때부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전시기까지 진보정당-민주당계 정당한겨레민주당-민주당-통합민주당에 몸담으며 정치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국민의 정부 시절 보수정당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되었으나,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다시 민주당계 정당인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이후 4선 의원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2017년 6월 16일 부터 2019년 4월 5일까지 초대 행정안전부장관을 역임한 데 이어 2021년 5월 14일에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에 지명되어 2022년 5월 11일까지 1년간 임기를 수행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과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대구광역시장)의 두 차례의 낙선 끝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서 당선되어 TK 지역 지역구도 타파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만 뒤이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하였지만, 그래도 그 상징성과 검증된 행정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다음 해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국무총리로서의 행정도 좌우를 막론하고 호평받아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유임하는 안이 검토되었으나,# 고사하고 모든 공직,정치활동을 내려놓은 채 경기도 양평군 단독주택에서 조용한 노후를 보내고있다. 그러나 워낙에 거물인 만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차출설이 본인의 의사와 관련없이 꾸준히 보도된다.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부겸/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비판 및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부겸/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여담[편집]


  • 2022년 3월 3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7], 재택치료 기간에도 화상 등을 통해 각종 보고와 현안을 챙길 정도였다.

  • 병역면제를 받은 정치인들 중 하나인데, 병역비리나 건강 이상, 가정사, 학력 미달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2대 독자인 데다 박정희 정부긴급조치로 인해 투옥되었기 때문이다.[8] 쉽게 말해 그 시절 정권의 방침에 의하여 군 복무 징집 대상에서 원천 배제된 것으로, 편법을 쓴 것이 아니다. 이처럼 독재에 저항하다 감옥에 가서 면제받은 경우는 꽤 흔한 편이며, 그 때는 비단 김부겸 뿐만 아니라 여러 또래 정치인들도 그런 식으로 군대가 면제되었다. 이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인해 또 감옥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간첩 리선실의 자금을 받아 구속된 바 있고,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된 적도 있다.

  • 아버지 김영룡은 예비역 대한민국 공군 중령 출신인데, 1939년생으로 김부겸과는 19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김영룡이 늦둥이에 외아들이었던지라 자신의 어머니(김부겸의 할머니)에게 얼른 손자를 안겨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일찍 하였다고 한다. #

  • 처남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다.[9]

  • 맨 위의 프로필에서 봤듯이 슬하에 딸만 셋을 두었다. 또한 김무성 전 의원처럼 자녀 중에 배우를 둔 정치인[10]이기도 한데, 그중에 차녀가 배우 윤세인 (본명 김지수)이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스케줄이 비어 있을 때[11] 아버지의 선거 운동에 참여하였다.[12] 한편 2015년에 고려아연 최창근 회장의 아들 최민석과 결혼하였고, 2016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출산한 관계로 20대 총선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대신 삼녀 김현수가 유세단 멤버로 뛰었다.

  • 윤세인의 남편이자, 김부겸 전 의원의 사위가 영풍그룹의 공동 창업 가문 두 곳 중 한 곳인 최씨 집안 사람인데, 고려아연 최창근 회장의 아들 최민석이다. 따라서 최창근 회장과 김부겸은 서로 사돈인 셈이다.

  •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세가 건재했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새정치민주연합대구광역시장 후보였던 김부겸도 '박근혜 마케팅'을 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비판하는 민주당 지지자들도 있었지만, 저 시절에 대구·경북에서 선거를 치르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대구는 박정희 임기 초반까지를 제하면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향해 높은 지지를 보내왔던 곳이기 때문에 여당이든 야당이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박근혜 마케팅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13] 향후 김부겸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대통령하고 당이 다르면 지역 발전이 힘들다"라고 주변에서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 대통령하고 협력해서 지역 발전 하는거다"라고 생각을 하며 저 사진을 사용했다고 한다.

  • 김부겸 전 의원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고 행정안전부장관까지 돼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춘 거물이 된 후에는,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의 롤모델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더불어민주당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 선거 전략을 보면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문재인 대통령의 색깔보다는 김부겸 장관의 색깔을 더 진하게 썼음을 엿볼 수 있다.[14]

  • 자신을 롤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김한규의 후원회장이 되었다. # 상술했듯 험지 출마자들의 새 롤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 덕분에 TK의 도시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자유한국당과 경합을 보이거나 김부겸 장관의 지역구인 수성구에서는 10%대의 우위를 보여주기도 했다. 비록 본선에서는 구미시를 제외하면 시도지사와 구청장 당선에 실패했지만[15] 여러 곳에서 (예전에 그가 이한구권영진과의 대결에서 그랬던 것처럼) '졌지만 잘 싸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기초 의회에서는 민주당 의원이 대거 증가했고 비례대표에서도 민주당 득표율이 대폭 상승 하면서, TK에서도 민주당이 뿌리를 내릴 만한 지지세를 보여주었다는 의견도 있다.


  • 행정안전부장관으로 있는 틈틈이 지역구에도 내려와 관리를 하고 다니긴 했으나 전업 국회의원들보다는 소홀해진 탓에, 지역 주민으로부터 "장관 하느라 정작 지역구는 돌보지 않는다"는 지적을 종종 들어왔고 본인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장관직에서 내려온 이후 지역구를 동 단위로 돌아다니는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구 관리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을 정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1999년, 당시 원희룡은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와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모두 정계 입문 제의를 받았는데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제주도 지역구에 공천을 약속하며 당시 마찬가지로 원희룡과 친분이 있던 김민석이 새정치국민회의 입당을 권유했고,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서울 지역구에 공천을 약속하며 김부겸이 원희룡에게 "힘들지만 맡아서 5년 내지 10년을 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라며 한나라당 입당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후 원희룡과 김부겸 둘 다 16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원희룡은 김부겸과 함께 여러 싱크탱크에서 활동했는데, 이 때 연을 맺게된 사람들이 남경필, 권영진, 정병국 등이라고 한다. 정작 김부겸은 16대 국회가 끝나기도 전에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해버렸고, 오히려 원희룡이 한나라당에서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 주호영 의원과의 인연이 특별하다. 1984년 김부겸이 경북대 앞에서 복사가게를 운영할 때, 주호영의 부인이 석사학위 논문을 이 가게에서 복사하며 인연을 맺게 되었다. 둘은 사석에서 형동생 하는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둘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맞붙게 되었고, 득표율 약 20% 차이로 주호영이 당선되었다.[16] 2년 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구광역시장[17]에 재도전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당대표 선거 도전에 이어 결정적으로 국무총리에 지명되며 가능성이 낮아졌다.

  • 홍준표 대구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홍준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청와대와 정부 여당을 향해 날선 비판을 가해왔지만, 유독 김부겸 당시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해서만큼은 비판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18] 이는 같은 TK 출신[19]인 것과 더불어 한때 같은 당에서 한솥밥을 먹은 것이 영향이 있는 듯하다.[20] 그래서인지 21대 총선에서 홍준표가 대경권에서 무소속 출마지를 물색할 때 수성구 갑은 본인이랑 친한 김부겸 의원과 주호영 의원이 있기 때문에 절대 안 간다며 못을 박기도 했다. 아무튼 한나라당 출신이라 그런지 민주당 소속임에도 보수정당 소속 정치인들과 친분이 깊고 충돌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러한 모습도 김부겸 본인이 TK에서 선전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홍준표 전 의원 본인 말로는 김부겸과 호형호제한지 30년이 넘었다고 하며 실제로 홍준표는 김부겸과 총선에서 겨루지 않기 위해 일부러 수성구 갑을 피해 수성구 을에 출마했고, 당선되었다. #[21]

  • 정두언 전 의원과는 서울대학교 동기로, 서로 친구 사이라고 한다. 김부겸은 정두언 전 의원 총선 낙선 후 차린 일식집에 직접 방문하기도 했고, 정두언도 김부겸에 대해 진보 진영 정치인으로서 '굉장히 유연하고 합리적이고 인품도 좋고 영리하고 내공도 있다', '(그의 장점이) 국민들한테 부각이 많이 안 돼서 안타깝다'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도 말했다.# 정 전 의원이 2019년 여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김부겸은 빈소를 찾아와 “정치하는 한 사람으로서 늘 친구에게 미안하다.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

  • 21대 총선 낙선에 지역언론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기사 1, 기사 2 차라리 2018년 지방선거 때 대구시장에 나왔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길 정도. 이는 임대윤 대구시장 후보가 권영진을 상대하기엔 경쟁력 면에서 처참하게 밀린다는 것이 가장 크다. 비단 언론들 뿐만 아니라 대구시민들도 낙선 소식에 충격먹은 사람들이 많았다.

  • 특히 예산정국 등에서 TK가 소외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 20대 국회 시절 대구 지역 국회의원들이 김부겸 의원을 통해 각종 민원을 해결한 경우가 제법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구 지역엔 김부겸 만큼 경력 있는 의원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낙선함에 따라 민원 해결에 중요한 통로 하나를 상실했다. 과거와 달리 21대 국회는 여대야소 국면이라 여당의 의사가 상당수 반영될 가능성이 큰데 여당에는 TK 지역구 의원들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예산정국 등에서 TK 쪽의 의견이 상대적으로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실제로 20대 국회 막바지 였던 2020년 초 코로나 19로 TK가 힘들 때 정부에서 제시한 예산이 '6,000억' 정도였는데 이걸 김부겸과 같은 당 대구 의원이었던 홍의락이 뛰어서 '1조 4,000억' 정도 증액을 시켰었다고 밝혔다.

  • 물론 지역 언론과 본인도 TK 소외는 안 된다고 했으나 이는 단순 립서비스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현재 여당은 TK와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에[22] 현안 파악부터가 어려운 현실이다.[23] 대구의 경우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한 것인지 역시 민주당 출신인 홍의락 전 의원을 부시장으로 임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북의 경우에도 이철우 경북지사가 과거 국회의원이었던 점을 이용해 기회가 될 때마다 수시로 여당에 현안 사업 등을 어필하고 있다. 최근 대구-경북간 행정구역 통합에 양측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대한 덩치를 키워야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지적도 있으니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자.

  • 2020년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배급제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언급했던 의원이었다.[24]

  • 2018년 5월 행정안전부 장관 재임시절 서울행 KTX에서 갑질 진상승객을 야단쳐서 제압한 일화로 화제가 되었다. 당시 한 승객이 좌석 문제로 여성 승무원에게 소란을 피웠는데 고성을 지르는 등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끼쳤고 보다못한 김부겸 장관이 나섰다. 그러자 그 진상 승객이 "당신이 뭔데! 공무원이라도 돼? 뭐야 당신!”이라고 했고 김부겸 장관은 "그래! 나 공무원이다[25][26]! 내가 당신 이러는 거 두 번째 봤어!"라며 질책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같은 열차를 탔던 승객이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고 행정안전부 대변인실에서는 김부겸 장관이 수행비서와 동행하지 않아[27] 부처 직원들도 뒤늦게 사건을 알게 되었다며 김 장관이 맞다고 확인하였다.#, #, # 이후 본인이 밝힌 소회로는 쑥쓰러운 일이라며 지역구인 대구에 다녀오다가 상황을 목격하였고 본인이 공무원인 것은 맞지 않냐며 웃었다고 한다. #

  • 정원식이해찬과 더불어서 아들이 없는 국무총리 중 하나다. 정원식은 딸만 넷이고, 이해찬은 무남독녀 외동딸만 두었고, 김부겸은 딸만 셋이다. 참고로 이전에 총리를 한 번 했다가 현재 다시 총리를 하고 있는 한덕수는 유일한 아들도 딸도 전혀 없는 무자녀 총리다.[28]

  • 인스타그램 게시물의 비판적인 댓글에 대해 삭제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2022년 3월 14일 윤석열 정부국무총리로 유임되는 방안이 검토 중이라는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가 나왔지만, 이후 윤석열 당선인 측이 검토한 바 없다며 부인했다. ##[29]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

[[한겨레민주당|
파일:한겨레민주당 글자.svg
]]

3,088 (3.25%)
낙선 (5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과천·의왕

파일:민주당(1991) 글자.svg

18,730 (18.02%)
낙선 (3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군포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46,330 (45.54%)
당선 (1위)
초선[30][31]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61,419 (49.56%)
재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49,638 (50.82%)
3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 갑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46,413 (40.42%)
낙선 (2위)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418,891 (40.33%)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 갑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84,911 (62.30%)
당선 (1위)
4선[32]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60,462 (39.29%)
낙선 (2위)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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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부겸1.jpg
파일:김부겸02.jpg
13대 총선 (서울 동작구 갑)
15대 총선 (경기 과천시·의왕시)
파일:김부겸3.jpg
파일:김부겸4.jpg
16대 총선 (경기 군포시)
17대 총선 (경기 군포시)
파일:김부겸5.jpg
파일:김부겸6.jpg
18대 총선 (경기 군포시)
19대 총선 (대구 수성구 갑)
파일:김부겸7.jpg
파일:김부겸8.jpg
6회 지선 (대구광역시장)
20대 총선 (대구 수성구 갑)[1]
파일:김부겸9.jpg
21대 총선 (대구 수성구 갑)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전직 의원 통일민주당 서청원 후보에게 밀려서 패했고, 1992년 14대 총선때는 4년전 같은 지역구에 공천신청했으나 탈락하였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검사 출신인 신한국당 후보로 나선 안상수[33]에게 패했다. 그리고 통합민주당이 한나라당으로 합쳐지자 현역 안상수의 지역구를 피해 옆 지역구의 군포시로 옮겼다.


6.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한겨레민주당|
파일:한겨레민주당 글자.svg
]]

1988 - 1991
창당
정계 입문

[[무소속|
무소속
]]

1991
정당 해산

파일:민주당(1991) 글자.svg

1991 - 1995
입당

파일:민주당(1991) 글자.svg

1995 - 1997
합당[34]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1997 - 2003
합당[35]

[[무소속|
무소속
]]

2003
탈당[36]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3 - 2007
창당

[[무소속|
무소속
]]

2007
탈당[37]

2007 - 2008
창당

2008
합당[38]

2008 -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39]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40]

2015 - 현재
당명 변경
정계 은퇴


7. 둘러보기[편집]











[1] 음력 1956년 12월 21일.[2] 대부분 프로필에서는 1958년생으로 알려졌는데, 1975년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낙방해 재수한 후에, 이듬해인 1976년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했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대 후보였던 김문수하고 경북고-서울대 5년 선후배였던걸 보아(김문수는 1951년생) 빠른 1957년생일 가능성도 있다.[3] 관련 기사[4] 대구 만촌동 집은 매도하였으며, 대신에 경기도 양평군의 전원주택 부지를 배우자 명의로 새로 구매했다. '정치적 고향' 대구 찾은 김부겸 "대구 집 팔고 전원생활 준비중" 이를 토대로 보면, 국무총리직을 마지막으로 수행하고 정권이 바뀌면 사임한 후, 정치 은퇴를 하여 양평 전원주택으로 이사하고, 노년 생활을 거기서 보낼 것으로 추측된다. 마침 지난 5월 인사청문회에선 "국무총리직이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양평 전원주택이 완공된 이후 한 명의 평범한 지역주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5] 경파(京派) 25세손, 수로 75세손 ○謙(○겸) 항렬.[6] 참판공파일 가능성이 높음.[7] #[8] 2대 독자는 과거 병역법상 방위병 처분 대상이었고, 긴급조치 건은 2018년 재심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를 받았던 145명과 함께 무죄를 선고 받았다.[9] 매제와 처남이 정치성향이 정 반대인 흔치 않은 경우. 다만 이영훈은 본래 스스로를 '막스주의자', '마오주의자'로 자처할 만큼 좌익 성향이 매우 강했다가 소련 붕괴 이후 전향한 인물이다.[10] 김무성의 경우 아들 고윤 (본명 김종민)이 배우이다.[11]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 운동 당시 윤세인은 '잘 키운 딸 하나'에 출연 중이었다. 그래서 "잘 키운 딸 하나 윤세인입니다."라며 자기소개를 하며 아버지를 홍보했다.[12] 여담으로,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선거유세를 지원했다.[13] 어느 정도냐면, 이 동네는 박정희 때는 박근혜가 방문하면, 박근혜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박근혜가 가는 길 마다 머리를 조아렸던 동네다.[14] 문재인 대통령의 색깔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북미 외교 훈풍으로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고, 이 지역의 민주당 지지층 역시 젊은 사람들이 대다수라 친문 성향이 상당하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 색을 드러내지 않고 개인기로 돌파하려했던 시절에 비하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내세우는 편이다.[15] 다만 TK 지역 중에서도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시에서 민주당 시장, 시의원 당선과 약진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다.[16] 물론 민주당계 정당의 험지 중 상험지로 악명높은 대구광역시에서 표적 자객 공천이 된 주호영을 대상으로 40%에 가까운 득표를 한 것을 보면 참패까지는 아니다. 그저 상대가 너무 강했던 것 뿐이다. 거기에 21대 총선은 기본적으로 이념 대립이 강한 선거였다. 그거 감안하면 6대4는 기본적으로 깔리는 수치일 뿐이다.[17] 권영진은 통합신공항 사업과 코로나19의 형편없는 대처와 관련해 언론들과 주민들에게 평판이 상당히 나빴으며, 결국 8회 지선은 불출마를 선언했다.[18] 일례로 문재인 정권 핵심 멤버인 조국에 대해서는 "조국인지 파국인지 교수직 사퇴하는 게 맞다"라고 하거나 장관 임명 후에도 "조국 씨"라고 호칭하며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의 수위가 높은 편이였다. 물론 조국 사태 때문에 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조국은 비난이 많은 인물이긴 하지만 말이다.[19] 홍준표의 출생지는 경상남도 창녕군이지만,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20] 김부겸 본인도 친분 관계를 비유하자면 술값 외상을 갚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정도라고 언급했다.[21] 문제는 수성구 을은 주호영의 지역구였다는 것이다. 당 입장에서는 소속이 같은 주호영과 홍준표를 맞붙이기에는 부담이 됐다. 이런 이유로 주호영은 바로 옆의 수성구 갑에 공천되었고, 그 때문에 주호영과 김부겸이 어쩌다 보니 서로 맞붙게 됐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주호영과 김부겸 또한 사적으로 친한 사이인지라, 졸지에 절친을 낙선시키고 당선되어버린 주호영은 꽤나 씁쓸해했다고 한다.[22] 그나마 장세용 구미시장 정도가 있지만, 지역 구의원이나 시의원, 도의원들이 중앙당 가서 얘기하는 것 보다, 국회의원 한 명 가서 얘기하는 게 훨씬 더 낫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치단체장들은 나름 정치적인 중립성도 요구받기 때문에 국회의원보다 활동반경이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23] 당장 거의 확정되었던 대구공항 이전 사업마저도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가 관련 자치단체간 합의로 겨우 불씨를 살려놨다. 이 역시 따지고 보면 중앙정부와 TK 간 소통 창구가 거의 전무하여 중앙정부 차원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도 그 원인이다. 거의 확정되었던 것도 이 모양이니, 그 외 미확정된 굵직한 사업들은 저 멀리 가버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 예시로 대구권 광역철도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을 들 수 있다. 정부나 여당은 당연히 아니라 하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같은 영남권 중에서 아예 표가 안 나온 대구경북 보다는 캐스팅 보트가 된 부산경남에 더 많은 눈길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특히 지역 사업은 여야가 따로 없기 때문에 민주당의 배려와 부산경남이 지역구인 통합당 의원들까지 가세한다면 더 큰 상승작용까지 나올 수 있다. PK 지역의 숙원사업인 경전선 복선화 사업과 전동차 투입의 가시화, 남부내륙철도의 건설 확정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또한 김경수경남지사의 강력한 어필 때문이라는 점을 국민의힘 의원들 조차 인정할 정도였다.[24] 다만 배급제 자체는 김상조 정책실장이 먼저 언급하기도 하였다.[25] 장관도 당연히 공무원 맞다. 당시 김부겸이 장관직을 맡고 있던 행정안전부가 지휘하는 조직 중 하나는 다름아닌 경찰청.[26] 이 일화를 트위터에 올린 이용자는 처음에는 동사무소 직원이겠거니 생각했다고 한다.[27] 당시 김부겸은 장관으로서가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에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었기 때문에 정부 소속 공무원인 장관 수행비서는 동행하지 않은 것이다.[28] 결혼은 했다. 단지 자녀가 하나도 없을 뿐이다.[29] 다만 원희룡 같은 일부 인수위 인사는 윤석열 당선인 측 입장과 별개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30] 당시 현역의원이었던 새천년민주당 유선호 후보하고 불과 254표(0.25%p)차로 신승하였다. 개표결과는 260표차 였다가 유선호 후보측에서 재검표 요구로 최종 254표로 줄어들었다.[31] 2003년 한나라당 탈당 이후 열린우리당 입당[32] 1988년 소선거구제 이후 첫 대구광역시 민주당계 정당 당선인이자 더불어민주당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 당선인들 중 득표율 2위였다. 1위는 경남 김해시 을에서 62.4%의 득표율로 당선된 김경수 당시 의원이였는데 득표수로만 따지면 김부겸이 1위였다. 득표율 1, 2위가 영남에서 떴다는 것이 특기할 만 하다.[33] 후일 한나라당(現 국민의힘) 대표, 민선 6기 창원시장. 인천광역시장 안상수가 아니라 창원시장을 역임한 안상수다.[34]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35]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36]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37]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38] 민주당과 신설 합당.[39]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40]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