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현(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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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
金舒玄


파일:선덕여왕 김서현.png

가족
아내 만명부인
아들 김유신
배우
정성모

1. 개요
2. 작중 행적
3. 실제 역사에서



1. 개요[편집]


드라마 《선덕여왕》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편집]


금관가야 왕족 후손인 가야파인데, 왕실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명부인결혼했기 때문에, 초반부엔 신분이 붕 떠버린 아내와 더불어 만노군에서 잠수하고 있었다. 그 때, 만노군 근처에서 사라진 천명공주 수색을 함께하다 김유신이 천명공주를 친히 모셔오는 관계로 김유신의 용화향도가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자신도 서라벌에 묻어갔다.

아무래도 주역이 아닌지라 백제와의 싸움에서도 김서현의 비중은 아들이나 자기 휘하에 있던 알천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그래도 고생은 꽤나 하는데 미실의 생각을 읽은 설원이 서라벌로 올라온 김서현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그가 전장에서 죽도록 판도를 그렸기 때문. 이 백제와의 싸움 때 미끼로 이용해서 사지에 꼼짝 없이 갇혔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다소 불리한 명령에도 곧이곧대로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1] 사실 이런 지휘관은 자신의 병사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십상이지만 전시 특성상 또 그 명을 이행하지 않으면 항명죄가 붙기에 서현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을 것이다.

김서현 또한 알천의 비천지도와 김유신의 용화향도만큼은 아니더라도 굉장히 고생했다.

게다가 자신의 유일한 후계자인 아들의 부대가 조이군으로 편성되어야 하는데도 사심을 두지 않고 그걸 허용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김서현에게도 이 전투는 꽤나 힘든 전투였다.[2] 단, 운빨은 어느 정도 받아서 기절해 있던 그를 누군가가[3] 발견해 말에 태워보내어 살아돌아왔다. 그럼에도 팔에 부상을 입을 정도였다. 실제 이 전투에서 놀고 먹은 건 아버지 잘 둔 보종과 설원의 휘하로 편제되었던 부대들이다.

또한 한가지 중요한 점은, 그가 바로 전쟁 초반에 알천이 시열을 죽이려는 걸 자신의 권한으로 막은 것이다. 만약 이걸 막지 않았다면 시열은 진즉에 죽었을 거고 덕만도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었기에 따지고 들다가 크게 상해를 입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용화향도와 비천지도의 내분이 벌어지고 알천과 김유신 사이에서도 적대감이 형성되었을 것임으로 은근히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이후로도 시열은 비록 민폐는 끼쳤지만 백제 장수 하나를 죽이는 공을 세운 걸 보면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 셈.

결국 이렇게 고생하고 살아돌아온 덕에 천명공주의 약조가 효력을 발휘해서 본인과 부인이 둘 다 진골 귀족으로 신분이 회복되었다. 또한 병부령 다음 가는 자리인 병부 대감으로 승진하고 화백회의의 구성원 중 한 명인 대등의 지위를 받아 화백회의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김서현은 가아파로 왕실 동네북이었던 왕실파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게 됐다. 단, 그 이후 질투심에 눈이 먼 보종에 의해 암살당할 뻔했으며[4] 그 덕에 덕만 역시 생고생을 하게 된다.

그 이후로 왕실에 도움이 되어야 했지만, 가야파라는 자신의 신분이 족쇄가 돼서 행동이 소심할 정도로 몸을 사리는 경향을 보여주게 된다. 미실의 월식계책으로 가야 유민들이 죄다 서라벌에서 쫓겨났을 때 그는 자신의 위치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을제가 가야파란 자신의 신분을 노골적으로 협박을 하는 통에 덕만을 죽이러 가는데 협조하다 또 이 사실을 알고 천명공주가 열받아 '내가 가야파 못 쫓아낼 줄 아니?'로 또 협박을 해서 방향 선회해서 덕만 찾는 걸로 선회하는 등, 그 신분에 대한 유지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결국 가야 지하 유민세력인 '복야회'에게 협박편지까지 받게 되고, 그래서 정신 못 차리고 덕만을 따르겠다는 김유신에게 가야파로서 가문의 존립도 생각하라고 꾸짖기도 한다. 그러나, 또 역시 복야회를 동맹으로 만들고 덕만과 함께 일식 계책 미션을 성공리에 마친 아들 덕택에 이 즈음 해고 당한 을제의 빈자리를 메꾸고 김용춘화백회의에서 발언권을 가지게 되는 수혜를 얻게 된다.

사실상 드라마 전개 동안 자기가 직접 이룬 것보다는 아들인 김유신이 고생해서 얻은 혜택으로 어부지리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가 김유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거의 없는데, 이는 김유신의 풍월주 청문회 때, 덕만을 추적하던 때부터 꽤 오랫동안 미실의 첩자로 활동하던 자기 수하를 여태 파악 못하다 가야 유민에게 지급한 땅문서를 뒤치기당해 아들 앞길을 잠시나마 험한 길로 만드는 경우까지 있었다. 아들이 하종의 딸인 영모와 혼인한 덕에 무마됐지만.

그 후론 화백회의에서 불리한 쪽수 속에서도 할 말은 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김유신과 덕만 심지어는 만명부인에게도 밀린 듯한 안타까운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미실의 군사 정변의 초반부인 화백회의 떡밥에 김용춘과 제대로 낚였다. 미실의 군사 정변 내내 고문만 실컷 받다 덕만의 역습으로 풀려 나와서 서라벌을 빠져 나가려는 미실파를 방어하려다 털렸다. 다만 감안해야 할 점은, 덕만의 군대는 미실이 군을 나눌 거라고 생각해서 군을 나눴는데 미실은 그냥 전군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한데다 미실의 부대는 정예들로만 구성되어 있고 화랑 중에서도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인 보종이 아직도 남아있고 석품도 있었지만, 서현의 부대는 그렇지 못했다는 악수도 작용한다. 사실 석품/보종 이전에 문노 사망 이후 선덕여왕 세계관 최고 실력자인 칠숙도 있었다. 칠숙보다 살짝 아래였던 비담도 혼자 수십에서 백여명을 병사를 죽이는데, 비담보다 위였던 칠숙이면 사실상 막을 사람이 없다.[5]

52회에선 드디어 병부령이 되나, 몇 년 지난 사이에 병부령 자리도 유신에게 내려가고 자신은 그저 그런 노신이 된 듯. 심지어 아들이 양아들 월야 때문에 친아들 김유신이 덤탱이로 역적이 될 판국인데도 병부령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6] 아들이 귀양간 순간에도 어찌 됐건 병부령 자리는 유지하고 있다. 유신이 복귀된 후에도 꾸준히 나오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보조캐릭이다보니 큰 공은 없는 게 사실.[7]


3. 실제 역사에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서현(신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심지어 친미실파인 석품이 이건 너무하다고 할 정도로 불평을 할 때도 군령이라고 명을 수행하였다.[2] 사실 유신은 애초에 알천의 휘하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발언권도 없었다. 그렇지만 알천이 그렇게 결정하자 유신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허용한다. 정말 사심을 가졌다면 어떻게든 빼내거나 아니면 알천 대신 석품을 조이군으로 두거나 여러가지 방법을 취했을 것이다.[3] 후반에 복야회의 설지로 밝혀진다.[4] 단, 이건 엄연한 보종의 실책으로 보종 역시 미실에게 큰 질책을 받았다. 심지어 질투심에 사로잡혀있던 설원마저도 암살시도를 알고 바로 다그치며 김서현을 구하러 갈 정도로 이건 보종의 삽질이었다.[5] 게다가 김서현이 데리고 있던 병사들 중에는 시위부의 병사가 많았는데 시위부 병사들은 미실의 난 내내 고문을 받고 몸이 성한 상태도 아니다. 이 상태에서 미실의 정예군을 막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6] 그런데 서현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월야가 서현의 양자로 입적된 만큼 서현이 나섰다가는 역풍을 맡기 십상이다.[7] 전체적으로 미실 사후에는 비담파가 더 강조되는 편이며 왕실파에서는 김유신, 김춘추, 그리고 덕만 외에는 곁다리 캐릭터로 봐도 무관하다. 김용춘도 상대등이라는 최고의 위치에 올랐지만 별다른 분량이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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