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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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신라의 세 왕조 중 하나 경주 김씨
2.1. 신라에서의 위치
2.2. 신라 멸망 이후
2.3. 시조
5. 기타


1. 개요[편집]



성이 김씨인 왕조를 의미한다.


2. 신라의 세 왕조 중 하나 경주 김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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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사
新羅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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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 마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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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및 활동
신라-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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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왕릉 · 황남대총
가계
김씨 왕조



박씨, 석씨와 함께 신라의 세 왕조 중 하나였다. 현대 이들의 직계 후손은 경주 김씨다.


2.1. 신라에서의 위치[편집]


최초의 김씨왕 미추 이사금을 시작으로 해서 두 번째 김씨왕 내물 마립간을 기점으로 명실상부하게 신라의 유일한 왕조로 자리매김한다. 다만 모든 김씨 왕들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인 박씨 왕조를 숭배하였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신라 왕실은 박씨 왕실이라고 볼 수 있고, 왕은 김씨집단에서 많이 배출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왕조였을 뿐 아니라 최고위 지배층이던 성골의 위치를 독차지하고 그다음 계층인 진골도 이들이 장악하다시피 했다. 신라 역사 992년 중 586년을 김씨 왕들이 통치했으나, 후반에 신라가 기울면서 박씨왕조에게 왕권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왕을 경순왕인 김부가 다시 차지하였고, 얼마 못가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멸망하게 된다.


2.2. 신라 멸망 이후[편집]


왕조가 무너진 이후 대거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백제, 그리고 후대 왕조인 조선에 의해 대거 숙청당한 고려의 왕족과는 달리, 경순왕의 자발적인 항복으로 끝난 왕조이므로 이후에도 지배층의 일부로 편입되어 영화를 누렸다. 특히 경순왕의 사촌 신성왕태후의 손자인 고려 현종을 통해 이후 고려의 모든 왕은 신라 김씨 왕조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2.3. 시조[편집]


김알지가 신라의 경주김씨의 시조라고 볼 수 있으나, 김알지는 생전에 신라의 왕이 되지 못하고, 그의 5대 후손때부터 신라 왕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신라의 모든 김씨 왕들은 시조였던 김알지를 숭배하지 않았고, 성이 다른 박혁거세를 자신들의 시조로 숭배했다는 것이다.[1] 즉, 신라의 모든 김씨 집단들은 박씨 왕실의 일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금관가야의 왕조 김해 김씨[편집]


가장 오래인 조상은 수로왕으로, 현대 이들의 후손은 김해 김씨다.


4. 북한백두혈통 일가 전주 김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백두혈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원래 김씨 왕조라면 위 2, 3번 문단을 가리키는 말이어야 정상이겠지만, 21세기대한민국에서 이 말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독재자 일가를 지칭하는 멸칭으로 더 많이 쓰인다.

북한이 겉으로는 사회주의, 공화국, 민주주의 등을 표방하지만 이미 그들이 혐오한다는 봉건 전제군주제, 제정일치, 신정국가이자 전체주의, 군국주의, 파시즘 국가로 변질된 지 오래다. 공화국을 표방한답시고 한 국가에서 3대째 권력 세습을 이루어낸 상황에 김씨 왕조가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김씨 일가와 그 부하들은 북한이라는 국가 전체를 군국주의라는 표현이 아까울 정도로 독재가 만연하는 국가로 변질시켰다. 고난의 행군, 화폐개혁으로 그동안 속아온 것을 어렴풋이 깨달아 가는 북한 주민들은 세뇌에서 조금씩 깨어나 장사도 하고 보지 말라는 한국 대중매체에 심취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에는 제약이 따르고 한류는 2020년부터 감독자와 부모까지 연좌제로 처벌시키고 학생들도 감옥에 보내고 있다.

이들의 본관인 전주 김씨는 본래 1번 문단에서 파생한 가문이니[2][3], 따져보면 이들도 1번 문단의 일부인 셈이다. 한술 더떠서 이들의 조상인 경순왕왕건의 장녀인 안정공주와 혼인했으니 외가로 고려 왕가를 계승하고 있기도 한 셈.

북한에서는 백두혈통이라는 왕조 국가적인 프로파간다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행한 거짓선전과 혹독한 세뇌의 결과로, 사실상 김씨 삼부자의 북한 내에서의 지위는 황제를 뛰어넘은 과 같은 지위다.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제국이 아닌 공화국이라 황제, 전하, 폐하라고는 안 부르고 수령님, 장군님, 이렇게 부르는 중이다. 그냥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호칭만 다를 뿐이다. 이 논리로 따지면 리설주왕비이고 김여정장공주가 되는 것이며 장성택부마였던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Kim Dynasty('김 왕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백두혈통에 관한 영어 위키피디아 문서의 항목명도 Kim Dynasty (North Korea). 참고로 한국어 표제명은 '김일성가'이다.

5. 기타[편집]


KBO 리그 초창기의 해태 타이거즈에서 일발 장타력이 강한 것으로 평가받은 타선인 '"KKK포'"(김봉연 - 김성한 - 김준환/김종모)에 김일권, 김일환, 김무종 등 김씨 성을 가진 선수가 여럿 있어서 김씨 왕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본 계보는 최희섭 - 김상현의 "CK포"로 이어졌다. 이범호KIA 타이거즈 입단 후에는 "LCK포"로 거듭났다. 다만 CK포가 온전히 가동된 것은 타이거즈가 10번째 우승을 거둔 2009년 단 1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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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 김씨 왕들이 태조로 추존한 성한왕이 김알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2] 전주 김씨의 시조 김봉모경순왕의 후예이다. 그의 아들 김태서는 평장사를 지냈으며 문장공(文莊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김태서의 장남 김약선은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였던 최우의 사위이자, 고려 원종의 1비 정순왕후의 아버지이고, 차남 김경손여몽전쟁의 영웅이다.[3] 참고로 이 가문의 또다른 유명 인사로는 소설가 김동인, 시인 김광섭, 한양대학교 설립자 김연준, 정치인 김재순김동원, 배우 김영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