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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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무
金永珷 | Kim Yeong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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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2년 7월 19일 (81세)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 (비교법학 / 석사)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법학 / J.D.[1])
종교
개신교[2]
가족
아내, 슬하 1남 1녀
직업
변호사
현직
김·장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약력
제2회 사법시험 합격 (차석)
사법대학원 수료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 취득
베이커 앤 멕킨지 시카고 본사 근무
베이커 앤 멕킨지 시카고 일본 도쿄 사무소 근무
한국통신 비상임이사
중앙일보 사외이사
수상
은탑산업훈장 (1992)
납세자의 날 대통령 표창 (2002, 2007)

1. 개요
2. 생애
3. 논란
3.1. 국회 증언 거부 논란
3.2. 세습 논란
4. 기타




1. 개요[편집]


김·장 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는 국내·외 로펌(법률회사) 업계에서 보기 드문 '오너 중심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973년 김앤장을 세운 김영무 대표변호사가 45년 넘게 확고한 오너로 김앤장을 이끌어왔다. '파트너십'이 구축된 국내 다른 로펌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김 변호사는 김앤장의 역사이자 저물지 않는 태양이다.

그만큼 설립자이자 오너, 로펌 내 최고참 선배로서 여전히 김앤장 내부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가 탁월한 경영 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해 김앤장을 업계 선두로 올려놓은 주역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지금까지도 김앤장 조직은 김 변호사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더벨 2019년 6월 기사


김씨가 김앤장에 들어와 느낀 신기한 것 중 하나는 독특한 사내 문화였다. 무엇보다 어느 조직이나 있는 ‘대표 뒷담화’를 들을 수가 없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세운 김영무 대표변호사는 김앤장 조직 내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였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조차 동기 혹은 선배 변호사들이 김영무 변호사를 욕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존경했다. 김앤장 변호사들은 김영무 뒤에 꼭 ‘박사님’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김앤장 직원들 간에는 상호 존중하는 풍토가 뿌리박혀 있었다. 소위 말하는 선배들의 ‘갑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김씨의 학교 선배인 한 변호사는 김씨에게 김앤장에 들어온 이상 이곳의 룰(rule)을 익히라며, 이 같은 충고를 남겼다. “김앤장은 위에서 일을 뿌리는 구조다. 아무리 자기가 기업 일을 가지고 와서 수임을 해도 윗선에게 찍히면 배제될 수밖에 없다. 어떤 시니어 변호사는 자기 독단으로 일을 하다가 몇 달 동안 월급이 0원이었고, 결국 법원으로 돌아갔다고 하더라. 그러니 항상 변호사가 아닌 ‘김앤장 변호사’로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

시사저널, 김앤장 3년 차 변호사 K씨의 하루

대한민국의 법조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설립변호사(Founding Partner).

흔히 법조계의 이건희라고도 불린다.[3]


2. 생애[편집]


1942년 7월 19일에 태어났다.

1960년 경기고등학교(56회)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1963년 제2회 사법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1966년 현 사법연수원의 전신인 사법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에서 유학해 1967년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에서 비교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하여 1970년 JD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미국 로스쿨에 들어간 한국 유학생들이 1년 남짓한 해외 법률가 전용 LLM(법학석사) 과정을 밟는 것과 달리, 미국 학생들과 같이 3년간 빡세게 공부하여 한국인 최초로 정규과정 학위인 J.D.(법무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4] 하버드 로스쿨 J.D. 과정 졸업 후 일리노이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일리노이 주 변호사 자격도 취득하였다.[5]

1970년 하버드 로스쿨 졸업과 일리노이 주 변호사 시험 합격 후 국제 로펌인 베이커 앤 맥켄지의 시카고 본사와 일본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귀국하여 1973년 1월김앤장을 설립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전문 로펌시대를 본격적으로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3. 논란[편집]



3.1. 국회 증언 거부 논란[편집]


2011년 박한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영무 변호사가 증인으로 채택되자.[6] 증인을 공동대표인 이재후 변호사로 변경해 달라는 김앤장 측의 로비가 있었고,# 결국 김영무 변호사는 청문회 이틀 전인 4월 25일 돌연 미국으로 출국하고서는 다음 날 외국 출장을 구실로 국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내 버렸다.

이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김영무 변호사를 고발하였으나, 대한민국 검찰청은 김 변호사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하는 것에 그쳤다.


3.2. 세습 논란[편집]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장남 김현주에게 김앤장을 승계하려 한다는 소문이 요즘 파다하다.[7]

사실 김앤장을 제외한 우리나라 모든 대형 로펌에는 오너가 없다. 법무법인 형태인 이 로펌들은 파트너(구성원) 변호사와 어소시에이트(소속) 변호사로 나뉘는데, 파트너는 지분을 공유하고 어소시에이트는 월급을 받는다. 구성원 변호사가 되려면 소속 변호사로 경력이 쌓여야 한다. 파트너들은 법무법인을 공동으로 소유해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익을 나눈다. 자기 지분만큼만 권한을 행사한다. 대표변호사도 타이틀에 불과하고 설립자들도 특별한 힘이 없다.[8]

하지만 김앤장은 다른 로펌과 달리 김영무 대표가 오너이다. 모든 변호사가 김 대표와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김앤장은 법무법인이 아닌 공동법률사무소로서, 변호사들은 일종의 월급을 받는다. 월급을 주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김영무다. 그리고 김영무 대표가 7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포스트 김영무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관련 기사


3.3. 배금주의 논란[편집]


한쪽 의견에 따르면 어지간한 기업가들을 포함시켜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인데도, 개인적으로 기부나 그 밖의 공익활동을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 물론 세상에 기부에 관심 없는 부자들은 많지만, 문제는 하필 그가 설립하고 평생 키워 온, 그래서 그의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앤장이라는 곳 자체가 '돈만 많이 주면 악마라도 변호해 주는 데 아니냐'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쪽 의견에 따르면, 김앤장의 조직 문화 자체가 워낙 비밀주의이다 보니, 정말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선행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 인권변호사 조영래를 후원했다.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인해 사법연수원에서 퇴소당한 조영래를 김앤장에서 비공식 사무원으로 채용했고, 조영래가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돼서 수배를 받던 때에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조영래의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대주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조영래 변호사와는 KS(경기고-서울대)동문이기 때문에 단순 친분일 가능성이 높다.
  • 1997년부터는 김앤장의 공익활동 기록이 확인된다.


4. 기타[편집]


  •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출신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김승현(金承鉉)(1911~1993)과 이현경(李賢卿)(1999년 사망) 사이의 4남 2녀 중 3남이다. 김승현의 장남 김영식은 UC 버클리 교수, 차남 김영기는 미네소타 대학교 교수, 그리고 4남 김영욱(金永旭)(1948생)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서울대 특임교수이다.

  • 2005년 한 해 570억원을 벌었고, 그 금액은 삼성 이건희 회장을 제치고 개인 소득 국내 1위라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2006년에도 600억원의 소득신고를 하였는데, 역시 이건희보다 많은 액수였다.[9] 2019년에는 연소득 1,000억원을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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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무박사[2] # # # # 친가, 처가, 매제 집안 전부 대대로 개신교 집안. 처가는 개신교 미션스쿨 계명대학교를 설립한 집안. 2명의 매제 중 장홍선 극동유화 회장 집안은 정동제일감리교회 설립에 기여한 집안이며 다른 매제 윤정선은 한국 최초의 남감리교회 신자 윤치호의 아들로 윤보선 전 대통령의 6촌인데 윤보선 대통령 가문은 100년 넘게 집안 전체가 대대로 교회를 다니는 집안. 또 지금은 이혼했지만 김영무 김앤장 대표 변호사의 외동아들 김현주 미국변호사와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외동딸 허윤영 2명 모두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공통점을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결혼하게 된 것으로 알려짐[3] 심지어 출생년도도 같은 1942년생이다. 다만 이건희 회장은 1월생으로 빠른 42년생이지만 "'빠른 생일' 개념은 62년도에 생겼기때문에 동갑으로 친다.[4] 참고로 한국계 최초로 하버드에서 JD를 취득한 사람은 하와이에서 태어난 최영조(Herbert Choy) 전 연방법원 판사다. 김영무보다 30여년 전인 1941년 취득했다.[5] 현 김앤장 구성원들과 동질성이 높은 법조계의 최고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6] 박 후보자가 김앤장에서 근무하였는데, 그곳에서 근무한 불과 4개월 동안 재산이 4억 원 넘게 증가하여 전관예우 논란이 있었다.[7] 김현주는 1972년생으로,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사법시험에 몇 차례 응시했으나 떨어졌다. 대학 졸업 후 미국 뉴욕 대학교 로스쿨에서 LLM(법학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유학 시절 만난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장녀 허윤영씨와 2006년 결혼해 화제가 되었으나 2011년 이혼했다. 한편 1974년생인 딸 김선희씨는 현대비앤지스틸 정문선 부사장의 부인으로,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가 아랫동서다. 승계대상이라고 얘기가 나오는 사람은 아들 김현주 이다.[8] 예를 들어 법무법인 태평양을 1986년에 설립한 사람이 김인섭 변호사다. 태평양 법무법인 영문명 배김앤리(Bae, Kim & Lee)에서 김이 바로 그다. 2002년 김 대표변호사는 65세에 은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 태평양을 떠났는데, 당시 본인 소유 모든 지분을 로펌에 귀속시켰다. 2012년 아들 김재승 부장판사가 법복을 벗고 태평양에 입사했지만 다른 파트너 변호사와 다를 게 없는 맨손이었다. 여기에는 김인섭 변호사 개인의 결단도 있었지만, 지분이 나뉘어 있는 로펌의 지배구조상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9] 다만 이는 임직원으로서 받는 급료만 비교한 것으로, 삼성 계열사들의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배당금까지 합하면 이건희 회장이 넘사벽이다. 실제로 그는 2009년에 삼성생명 배당금'만' 467억원을 받았다. 참고로 2019년에는 전체 계열사에서 4,700억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