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선(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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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창선.jpg
김여정 뒤 동그란 원에 있는 사람이 김창선이다.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군인이자 정치인. 이른바 김정은의 집사로 불린다.

조선로동당 서기실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외사국장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에서 근무한 최주활의 증언에 따르면 1944년 태생이고 함경북도 명천군 출신이며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5군단에서 병사로 복무한 이후 제대, 1969년에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 러시아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인민무력부 제5국에 배치, 대좌로 진급하여 부국장까지 지내면서 김정일의 큰 총애를 받았고 군인 측근들만 받는 216-9999 벤츠를 받았다. 1984년, 중앙위원회 행정부 과장으로 조동되었으며 행정부 부부장,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거쳐 김정일의 서기실장에 이르렀다. 영어도 꽤 잘해서 '로렌스 킴'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도미니카 여권을 사용하여 스위스를 드나들며 김정일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한다. 1990년 2월 16일 신천초대소에서 김정일 생일 기념으로 촬영된 사진에서도 1열에 김기남, 김용순 권희경, 리창선, 강관주, 길재경 등 거물들과 나란히 앉아있다.

김창선이 이렇게 고속승진한 배경에는 바로 김창선의 전처인 류춘희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보고 있다. 류춘희는 김일성과 함께 활동했던 항일빨치산 류경수, 황순희 부부의 딸로 김경희와 매우 친한 친구사이였고, 김일성김정일의 총애를 받은 김창선의 아내였기에 그가 별다른 무리 없이 고위급 인사로 발전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이후 류춘희는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였는데 김정일은 황순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속 간호사 리광옥을[1] 김창선에게 하사하여 1990년 2월 28일에 그를 재혼시켜주었고 자신이 직접 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후지모토 겐지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이 북에 있을때 이 사람과 상당히 친했다고 하는데 김정은 집권 이전까지 북한 바깥에서 김창선의 입지는 듣보잡이었다. 굳이 유명하지 않은 사람과 자신이 친했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을 미루어 볼때 사실이 아닐까 생각된다. 후지모토는 자신이 경시청 형사와 몰래 연락해서 숙청당했을 무렵에 김창선 역시 김정일에게 밉보여서 가택연금당하는 등 상당한 고생을 했었다고 회고했다.

류춘희가 황순희의 딸이었을 뿐만 아니라 김경희와 매우 친한 술친구였기 때문에 김경희가 나중에 김창선과 재혼한 리광옥을 몹시 미워해서 김정일의 연회가 열릴 때마다 리광옥에게 온더락으로 브랜디를 마구 마시게 하면서 숫제 리광옥의 입에 술을 들이붓곤 해서 리광옥은 브랜디로 흠뻑 젖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지만, 천하의 장성택에게조차 반말로 술 마시라고 마구 굴리는 김경희에게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해서 구경만 해야 했다고. 그러다가 김정일 시대 잠시 평안남도 안주시 당 조직비서 자리로 좌천되었다가 장성택의 역량으로 인해 다시 조선로동당 서기실 부부장 자리로 복귀할 수 있었다. 장성택 숙청 이후에도 로동당직에 남을 수 있었던건 처세술에 능했거나 장성택 계열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을 보면 김정일 일가를 보좌하면서 어린 김정은과도 친분이 있었을테니 그 덕을 봤을 수 있겠다.

그리고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집권하고도 계속 중용,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서기실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계속 보좌하였으며 2018년 2월 5일 김여정의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위해 방남하였을 때 북한대표단 지원 인력 중 한명으로 참가하였다. 그리고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됨에 따라서 2018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을 총 3번 북측 수석대표로 참여하였다. 2018년 4월 2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김여정김영철을 레드카펫에서 동선 이동에 대한 손짓 지시 및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도보회담에서도 모습을 보이는 등 북측 비서실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2018년 5월 김창선이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다시 모습을 보이며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창선의 방문과 함께 5월 27~28일 및 6월 13일~14일 간 열차 전면 통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북한 고위급 인사가 중국을 다시 방문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5월 28일, 북미정상회담의 의전 경호 보안 실무회담 차 수석대표로 싱가포르로 출국하였다. 북미정상회담 동안 김정은의 옆을 보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1월 말 김정은의 방중 전에도 먼저 중국에 파견되어 의전 및 경호 분야에서 실무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2019년 2월 15일에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여 북미정상회담 의전경호 분야를 다시 맡게 되었다. 15일에는 광저우를, 16일에는 하노이에 도착하여 답사를 하였다고 한다. 17일에는 베트남 삼성공장 주변을 점검하였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김창선의 행보가 주목되는 점은 김정은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19년 3월에는 러시아를 방문했으며 4월에 김정은 시대에 최초 북러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고 김정은이 대외 활동을 중단하면서 이전보다 역할이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었고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정치적 지위가 낮아진 것과 별개로 계속해서 김정은의 수발을 들고 있는데, 2021년 6월 조선로동당 8기 3중전회에서 김정은을 수행하였으며 2022년 2월 1일, 설명절 경축공연 때도 현송월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2023년 7월 27일, 김정은과 쇼이구의 무기전람회 참관에 현송월과 함께 동행했다. 9월, 북러정상회담에도 동행하였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2018년 남북 데탕트 시절보다는 상당히 수척하고 깡마른 인상이 되었다.

3. 여담[편집]


  • 김정은김여정 등 김씨일가의 집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다.
  • 2000년 9월 김용순 로동당 대남담당 비서의 특사 방문 때 '박성천'이라는 가명과 '로동당 중앙위 과장'이라는 직함으로 동행한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 조선중앙티비에서 북한군 중장 정복을 입고 참석한 장면이 나왔다.
  • 단신이다. 김여정보다 키가 작다

4. 참고문헌[편집]


  • 최주활, 북한 체제에서의 당-군 관계 연구(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 현성일,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 간부정책을 중심으로(서울: 선인, 2007).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21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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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옥이 혹은 강옥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후지모토의 한국말 발음이 서투른 탓이고 후지모토가 공개한 김창선의 결혼사진을 보면 이름이 리광옥이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