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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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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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9933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8번}}}
임신근
(1988)

김풍기
(1989~1990)


오상욱
(1992)
{{{#ff9933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4번}}}
윤성훈
(1989~1990)

김풍기
(1991)


백성진
(1992)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4번}}}
김성곤
(1991)

김풍기
(1992)


유현승
(1994~1998)


파일:김풍기프로필.jpg
KBO 리그 심판위원 No.38
김풍기
金豊氣 | Kim Poong-gi

출생
1966년 10월 19일 (57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휘문중[1] - 서울고 - 연세대[2]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9년 연습생 (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 (1989~1991)
쌍방울 레이더스 (1992)
경력
KBO 심판위원 (1994~)
KBO 심판위원장 (2017~2019)
KBO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 (2021~)
본관
강릉 김씨[3]
가족
여동생, 사촌동생 김경기, 숙부 김진영, 매제 염경엽, 조카 염아란

1. 개요
2. 선수 경력
3. 특징
4. 기타 이모저모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김풍기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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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a0010379_4ead59569e550_1.jpg
파일:external/pds.joins.com/201405132012775337_5371ff29bb128.jpg
실제로 마스크 결합 헬멧을 착용한 모습. 조인성?
파일:attachment/201101061621312229_1.jpg
2011년 시즌 후 양복을 차려입고 인터뷰를 하는 모습.


전 야구선수, 현 KBO 심판위원이자 풍기드립의 아이디어 제공자. 별명은 깐풍기.

한국프로야구 심판의 미덕(?)인 퇴근본능을 잘 보여주는 심판으로 유명하였다.[4] 또한, KBO 리그 최악의 심판이라는 소문이 데이터로도 입증되었다. 2017년 한 기사에 따르면, 비디오판정(합의판정)이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번복률을 기록한 심판이 김풍기로, 무려 50%에 이른다. 김풍기 심판은 총 42건의 비디오판독 대상이 되는 판정을 내렸고 그 중 21건이 번복되었다는 것(...).

2016년 12월 21일부터 2020년 2월 6일까지 9대 KBO 심판위원장직을 하였다. 심판위원장 임기 종료 후 역대 심판위원장 최초로 평심판위원으로 복귀하였다.참고

그러나 2021년부터 퓨쳐스 심판 육성위원을 새로 맡게 되면서 심판위원직에서 사실상 물러났다. 사실상 심판 자리에서 물러났음에도 2군의 심판 부족으로 인해 실제로는 여전히 2군 경기 출장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KBO 가이드북에는 여전히 심판위원 명단에 김풍기의 이름과 번호가 실리고 있다.

2023년부터 경기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인천 지역의 프랜차이즈 중의 프랜차이즈인 김경기 SPOTV 해설위원의 사촌형. 김경기의 아버지 2대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이자 인천야구의 대부인 김진영의 조카. [5] 그리고 여동생이 염경엽 LG 감독의 부인으로, 즉 염경엽이 매제다.

서울에서 중학교는 휘문중, 고등학교는 서울고를 나왔다. 서울고 3학년 시절인 1984년에는 당시 1학년 김동수와 더불어 중심타선을 형성하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포지션은 1루수. 고교 졸업 후 1985년 연세대에 진학했으나 고교 때만큼의 활약은 보이지 못하고 졸업할 때 프로의 지명도 받지 못한 채[6] 1989년에 졸업하였다. 1989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하게 된다. 등번호는 38번. 1년 뒤에 태평양에 입단한 사촌동생 김경기가 입단 초기 등번호 37번을 단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태평양에서도 2년간 통산 16게임, 5타수 무안타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면서 1992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 되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고교시절의 맹활약을 기억하는 올드팬들로부터는 그 후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있다.

은퇴 후 야구계를 떠나지 않고 심판으로 진로를 바꾸어 1994년 3월, KBO 심판으로 채용되었다. 현재는 고교시절 활약과 선수시절보단 심판으로서의 지명도가 더 높다. 인천 팬들 중에서도 이 사람이 과거 태평양의 유니폼을 입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올드팬들 뿐이다.


3. 특징[편집]


이런 문단이 따로 있다는 것부터 판정이 개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유명한 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아래의 그림과 같으며 깐풍기존 혹은 오망성존, 육망성존 등으로 불린다.

파일:attachment/KPGJone.jpg
규정대로라면 가로로는 홈플레이트 너비를, 세로로는 가슴, 무릎 사이 부분을 기준으로 한 사각형 공간이 스트라이크 존이다.

파일:attachment/1237741701.gif
단, 위의 영상의 심판은 강광회 심판의 판정이다. 해당 영상은 2008년 6월 10일 목동에서 있었던 우리 히어로즈 vs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로 이 판정 직후 당시 우리 히어로즈의 감독이었던 이광환 감독이 즉시 항의하였고, 설전이 이어지다가 강 심판이 퇴장을 명하자 이광환 감독은 모자를 집어던지며 강력히 항의하였다. 02:32:05부터 볼 수 있다.[7]

그러나 김풍기 심판에게는 모양 안이 스트라이크 존이다. 거기다가 회전까지 한다! 참고로 2014 프로야구 리포트에 따르면 심판별 스트라이크/볼 비율에서, 가장 스트라이크를 적게 주는 심판 1위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8]

놀랍게도 실제로 이런 사례가 존재하는데 일본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투수이자 명구회의 일원인 미나가와 무츠오(皆川 睦雄) 선수[9]의 일화다. 신인 시절 점수차가 벌어진 경기의 하위타순 상대로 대충 스트라익존에 꽂아 넣은 공을 볼판정을 받자 항의했는데, 당시 구심인 니데가와 노부아키(二出川延明)가 "気持ちが入っていないからボールだ(감정이 담겨있지 않아 볼이다)!"라는 말을 해서 충격을 받고 대투수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어이상실한 사례이긴 하다.[10][11][12]

물론 이 짤은 합성이긴 하지만, 이런 합성이 나돈다는 것만으로도 야구 팬들의 불만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셈. 물론 만든 사람도 엉뚱한 사람을 피해자를 만들었으니 좀 한심하기도 하다.[13]

사실 박근영 심판처럼 이상한 세이프 판정을 해대는 경우 야구 모르는 사람도 까게 되지만, 스트라이크 판정의 경우 교묘히 악의적으로 판정한다면 선수들이나 예민한 팬들 말고는 눈치채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의 판정은 팀을 가리지 않고 이상하다.

다만 이후에는 전통의 맞수 박근영, 나광남, 강광회의 분전과 신예 전일수, 최수원, 권영철 그리고 토토와 뇌물수수를 일삼던 최규순 등 막장 심판들이 속출하면서 그 위세가 많이 약해졌고 결국은 오히려 공정한 축에 끼게 되었다.

인터넷 상에서의 비난 일색인 구심으로써의 평이지만, 연차에 비해 상당히 일관적인 심판이다. 높은 공을 잘 잡아주는 편이나 좌우폭이 상당히 좁은 심판이며 이 때문에 비난을 많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높은 쪽 스트라이크 존을 약간 내린 편이다.

김풍기 주심의 재평가엔 메이저리그의 보급이 영향을 끼쳤는데, 김풍기 주심의 존에 대해 별모양 운운하는 소리가 나온 건 근본적으로 비교적 좌우가 좁고, 상하가 높은 스트라이크존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한국프로야구 평균인 좌우로 넓고 낮은 존과는 모양이 크게 다르다보니 생긴 오해다. 알다시피 좌우가 좁고 상하가 높은 것은 메이저리그 스타일 존이라, 옛날 야구팬들은 메이저리그를 잘 보지 않아서 존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다만, 2020시즌부터 다시 심판위원으로 복귀하여 위의 재평가가 뒤집힐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으나 2020년 1군 출장 없이 2021년부터 퓨쳐스 심판 육성위원을 맡고 있어 평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루심으로서는 위에서 보았듯이 비디오 판독 번복률이 50%를 넘는 등 잘 못 본다.


4. 기타 이모저모[편집]


상술했지만 강릉 김씨 38세손 'O起' 항렬이나 '氣'를 쓴다. 사촌동생 김경기는 '起'를 사용한다.

2003년 7월 17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삼성증권배 2003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시구 당시 주심을 맡았다.

2009년 10월 20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12년 6월 5일 목동에서 열린 LG 트윈스넥센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타자, 포수, 주자, 투수, 유격수, 2루심, 해설, 캐스터 전원이 볼이라고 판단한 공을 혼자 주심으로서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그 덕에 볼넷으로 전원이 착각하여 강정호는 주자 이천웅을 태그하지 않았고 이천웅조차 '에잉, 볼넷이네' 하는 태도로 터덜터덜 걸어서 2루 베이스에 발을 찍었다. 강정호가 태그를 하지 않고 이천웅이 걸어들어가는 상황에서 이효봉 해설위원도 명백한 볼을 보고 '지금 이 상황은 볼넷입니다' 라며 어리둥절해하는 시청자를 위해 친절하게 멘트를 날렸다[14]. 백문이 불여일견.

2013년 한국시리즈 3차전 2대2 동점상황에서 오심으로 또다시 까였다. 그 오심만 아니였어도 그 게임의 승패의 향방은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총합 스코어에도 영향을 주었기에 까였다.

2014년부터는 kbo 심판 중에선 최초로 마스크 결합 헬멧[15] 을 착용하고 주심을 보고 있다.

2015년 들어 수염을 기르고 나온다.

2015년 5월 2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16년 8월 9일 KIA두산의 경기에서 주심으로 출장했지만 4회초 시작 전 폭염으로 인해 어지럼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해 교체되었고, 이로 인해 경기는 7분 가량 지연되었다.

2017년 6월 11일 두산과 롯데의 경기에서 나경민의 쓰리피트 아웃 논란이 있었는데, 이후 쓰리피트 아웃의 기준은 수비수라는 발언[16]을 하였다.

삼진콜이 멋있는 편[17]이었으나 2015년부터는 밋밋한 삼진콜로 바꾸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89
태평양
7
.000
0
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1990
9
.000
0
0
0
0
0
0
0
0
0
2
.000
.000
.000
1991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2
쌍방울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2시즌)
16
.000
0
0
0
0
0
0
0
0
0
2
.000
.000
.000


6. 관련 문서[편집]



[1] 배재중학교에서 전학[2] 1985학번[3] 38세손 'O起' 항렬이나 '氣'를 쓴다.[4] 사실 퇴근본능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메이저리그도 심하다. 연장전에 제한이 없는 끝장승부 방식이기 때문에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5] 김경기의 이종사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게시물이 맞다면, 김진영은 김풍기의 이모부가 된다.[6] 지명권을 따지면 MBCOB에 지명권이 있었다.[7] 참고로 해당 움짤의 투수는 송신영이며, 타자는 김원섭이다.[8] 물론 이것만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스트라이크존이 양 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스트라이크 존이 룰에서 정의하는 존을 약간 벗어난 정도의 직사각형이면 스트라이크가 적든 많든 상관이 없다. 문제는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인 걸 볼을 준다거나, 팀/선수/감독에 따라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9]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약한 투수로 일본프로야구의 마지막 시즌 30승 투수(1968년) 란 흠좀무하고 전설적인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2005년 사망.[10] 일본 위키백과에선 대놓고 월권행위 라고 깔 정도다.[11] 참고로 니데가와는 이것 말고도 판정 항의에 대한 어이없는 언행으로 꽤 비난 받은 바 있다. 단일리그 시절 나고야 구장에서 열린 경기 때 세이프 판정과 관련해 아웃 선언을 했다가 다음 날 경기 사진에 분명히 세이프인 장면이 찍혀서 리그 회장에게 불려가 항의를 받자 "사진이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한 어처구니없는 일화도 있고, 미하라 오사무니시테츠 감독 시절 세이프 판정에 항의하면서 심판실을 찾아 니데가와에게 항의했는데 안 받아들여지자 "룰 북을 보여달라" 고 하니 "내가 말하는 거니까 틀림없다! 빨랑 나가!"라고 화낸 일화가 있다.(다만 저 사건은 니데가와의 말이 옳았고 미하라가 규칙을 잘못 알았던 것으로 결론났다.)[12]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 시절(1936~1963) 최고의 심판으로 평가 받으면서 1970년 야구전당에 입성했다. 아마 리그가 첫 출범할 때부터 심판을 해 온 베테랑이라는 점에서 예우를 받은 듯. 참고로 이 심판은 KBO 심판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선출 심판이다. 많은 야구선수들을 배출한 명문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클럽야구 선수로 뛰다가 은퇴한 후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 미국 팀들과 교류전을 펼치던 도쿄 교진군에서 2년간 선수로 복귀하였다. 이후 프로야구 팀 나고야킨코군에서 감독까지 맡았을 정도로 심판들 중에선 역대급 야구경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악명에 비해서는 의외로 존이 과도하게 바깥쪽으로 치우쳐진 것 외에는 판정이 나름 괜찮았다고 한다.(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닌 꾸준히 바깥쪽 공을 잘 잡아주고 몸쪽 걸치는 공은 다 볼로 판정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 때문에 몸쪽 걸치는 싱커로 유명했던 선수가 연속된 볼 판정에 빡쳐서 몸쪽으로 빠지는 공을 던지며 “스트라이크!” 라고 소리지르자 기세에 억눌려서 스트라이크를 준 적도(…) 있다고 한다.[13] 배병두 심판이 임용된 것이 2007년이니, 여러 정황상 저 VJ 특공대 원본은 갓 임용된 심판과 관련된 주제를 두고서 나온 화면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14] 사실 누가 봐도 볼이었으나 결국 판정은 심판의 몫이기에 해설자들도 본인들이 볼넷이라고 생각했으나, 자기들 임의대로 먼저 볼이라고 판단한 이천웅과 강정호가 잘못이라 지적했다.[15] 최경철이나 차일목이 착용했었던 마스크. 공을 맞았을 때 충격이 덜하고 옆쪽도 보호할 수 있어 안전엔 유리하지만, 쓰고 벗기가 불편하다. 이 때문인지, kbo 심판들도 김풍기 심판을 시작으로 2010년 후반대까지 일부만 잠시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최수원, 김성철 심판이 2020년대 들어서까지 사용해 왔으나 이들 역시 2022년, 2023년 들어 일반 마스크로 교체했다.[16] 당시 3루심은 원현식[17] 벽돌 격파하듯이 팔을 땅으로 꽂는 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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