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의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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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천주교에서의 비중
3. 교회 내의 인식 변화
4. 생애 및 성격
5. 대중매체에서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세계의 그리스도 백성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 요셉에게도 열렬한 신심과 깊은 신뢰를 가지고 그 중재를 기원하는 습관을 몸에 지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황 레오 13세


요셉은 그리스도의 보호자,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을 때의 보호자이십니다. 요셉은 동정녀 마리아의 보호자, 성가정의 보호자, 교회의 보호자,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보호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우리의 보호자이시라고.

교황 바오로 6세


그리스어: Άγιος Ιωσήφ
라틴어: Sanctus Iosephus
히브리어: יוסף הקדוש (Yosef ha-kadosh)
영어: Saint Joseph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양아버지(繼父).[1] 예수는 요셉을 통해 다윗의 후손이 된다. 이름은 나자렛 마을에서 사는 요셉이란 뜻이다.

직업은 목수[2]라고 하는데, 나자렛 지방에는 나무가 많지 않았기에 목수가 아니라 석공이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한평생 노동을 하였던 인물이므로, 가톨릭에서는 노동자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상징물은 나르드 꽃 또는 백합이 핀 나무지팡이와 목수의 도구이다. 이러한 이유로 축일3월 19일이지만, 사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노동절로 잘 알려져 있는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1937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무신론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성인'으로 정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노동자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쓰는 경우는 영명축일이 5월 1일이다.

2. 천주교에서의 비중[편집]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한국 가톨릭 교회수호성인이기도 하였다. 2017년 12월부터 적용된 새 전례력에서부터 " 교회의 공동 수호자"명칭이 삭제되었다. 조선대목구가 설정되기 이전까지 한국 교회는 청나라 북경교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북경교구의 주보인 성 요셉을 조선대목구주보성인로 모시게 된 것이 유래다. 1831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조선을 북경교구에서 분리시켜 조선대목구를 설정했다. 조선대목구 제2대 대목구장인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3]가 1838년 12월 1일자로 포교성성 (현 복음화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새로운 주보로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 성모 마리아를 정하여 줄 것을 청했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1841년 8월 22일자로 성 요셉을 함께 주보로 모실 것을 조건으로 이를 허락하였다.

다음은 이와 관련하여 문서에 나타난 기록이다.

1841년 8월 22일에 있었던 성하의 공식 알현 예식 중에서. 갑사의 주교이자 조선의 대목구장인 라우렌시오 앵베르 주교의 겸손한 청원에 대해서, 하느님의 섭리로 우리 장상이신 그레고리오 16세 성하께서는, 포교성성 장관인 본인이 아래와 같이 기록하도록 하시며, 자애로우시게도 선교지의 주보성인으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호칭 아래 기념하도록 선포하셨다. 그렇지만 요셉 성인의 축일도 마찬가지로 앞서 언급한 선교지의 공동 주보로 유지하도록 하셨다.

- 한국천주교회사 2,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323쪽.


이에 한국 천주교는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를 공동 수호자로 모시게 되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교황청 경신성사성(현 ‘경신성사부’)의 의견에 따라 '한국 교구 고유 전례력과 고유 거행'이 개정되어[4] 2017년 12월부터 시행되면서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명칭이 삭제되었다. [5]

비록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칭호는 없어졌지만, 서울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성당 약현성당의 주보성인으로 성 요셉이 지정되었고, 6년 후 세워진 명동성당은 성모 마리아를 주보 성인으로 지정했다. 말하자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이들 두 성당이 예수의 보호자인 두 성인에게 봉헌된 것으로 그 유산이 남겨진 셈.

3. 교회 내의 인식 변화[편집]


(양)아들아내가 너무 유명한 나머지 묻힌 인물로 마리 퀴리에게 묻힌 피에르 퀴리나, 신사임당이율곡에게 묻힌 이원수와 같은 처지.[6] 물론 가톨릭에서는 매해 3월을 성 요셉 성월(聖月)로 지정해 성인의 전구를 청하는 달로 정할 정도로 대우가 매우 좋은 성인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웬만한 천주교 성당을 가보면 중앙의 예수 십자고상 좌우에는 성모상과 함께, 성 요셉의 성상도 세워져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성 요셉의 인식 변화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근대 이전 중세 유럽에선 아무리 절대자에 의한 것이라곤 하지만 아내를 뺏기냐며 각종 연극에서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는 등 공적이 아닌 사적인 영역에서는 상당히 취급이 박한 인물이었다. 참고로 '중세는 종교로 꽉 막힌 시대'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그 때도 사람들이 살던 시기다. 이런 식으로 '성인'이나 주류 윤리 도덕을 조롱하고 놀리는 사례는 항상 존재했다.

허나 이것도 수평적인 관계에서만 웃고 넘기는 농담에 가까웠다. 엄연히 신성모독에 가까운 발언이라 높으신 분들 앞에서, 특히 종교인들 앞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였다. 17세기 청교도 혁명이나 16세기 위그노 전쟁 등 종교적인 이유로 유혈이 난무하는 등 살벌한 시기에는 이런 농담은 삼가졌다.

근대 이후 노동계층이 사회의 주류로 부상하고, 근면성실한 노동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강조된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노동자와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의 수호성인으로서의 요셉 성인에 대한 존경이 많이 커졌고, 성인의 이미지도 크게 달라졌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선포했다. 지금은 과거의 조롱섞인 이미지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든 수준. 성 요셉 호칭기도에서 성 요셉은 교회 전체의 주보로 공경받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 아버지들, 성직자수도자, 여행하는 사람들, 노동자, 가정, 동정녀, 환자, 임종하는 자의 주보로 공경받고 있다. 교황 문헌과 일반 신자들에 의하여 기도하는 이, 내적 생활, 가난한 이들의 주보로 불리고 있다.

성 요셉을 특별히 공경하는 달인 3월 성 요셉 성월은 1840년대부터 기념되기 시작했다. 의인이며 신앙인의 모범인 그의 덕을 본받고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요셉 성월 신심서는 1850년 처음 발행됐으며 5년 뒤 교황청의 정식 인가를 받았다.

2020년 12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1년 한해 동안을 '성 요셉의 해'로 선포했다. 지난 19세기 비오 9세 교황이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한 지 15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설명이다. 아울러 요셉 성인의 행적이 평범한 가정 속의 아버지, 노동자(일생을 평범한 목수로 살았던 점), 이주민과 난민(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한 점), 여성에 대한 존중과 보호(마리아의 혼전 임신을 알고도 받아들인 점)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귀감이 된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4. 생애 및 성격[편집]


요셉 역시 성모 마리아의 처녀임신을 알고 있었는데, 요셉른 마리아에게 사회적으로 쏟아질 의혹과 비난, 처벌을 의식해 마리아의 임신을 알리지 않고 은밀히 파혼하려 했다. 그러던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니 불륜 의혹은 걱정하지 말고 마리아와 결혼하라"고 알려 결론적으론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을 하게된다. 요셉이 의인이라서 마리아를 조용히 내치려고 했다는 글에 모순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혼전순결을 깨고 외간 남자와 성관계를 맺은 여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사실 지금 기준으로도 배우자의 외도는 명백한 파혼 사유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시 시대상으로나, 지금 기준으로나 엄청난 대인배.

게다가 자기 아이가 아님에도 굉장히 아내와 양아들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는데 마리아가 안전하게 예수를 낳도록 돌보고 헤롯왕이 유아살해를 명령하자 가족을 데리고 고향에서 탈출하기까지 한다. 또 장성한 양아들에게 목수일을 가르쳐 생계를 잇게 도와 주었다. 남편으로서나 아버지로서나 분명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던 셈.

성모 마리아와 결혼했을 당시 마리아가 10대[7]였다. 정교회에서는 성모 평생 동정설의 근거를 들어 요셉과 나이차가 엄청 많이 났고 요셉은 첫부인 사별 후 재혼한 것이라고 본다. 당시 기준으로는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아래에 나온 것처럼 성모 평생 동정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요셉도 10대-20대의 청년이었고 둘 다 초혼이었다고 본다.

그 후의 요셉의 일생에 대해서는 학계의 견해가 나누어진다. 가톨릭정교회에서는 그 후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건드리지 않고 예수의 공생활 전에 사망했다는[8] 전승이 내려오지만, 개신교에서는 예수 출생 이후에는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해석한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놀라며 "저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 마르코 복음서 6장 1~3절

 
위 성경에 예수의 형제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4명[9]이 있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이를 두고 가톨릭정교회, 개신교의 해석이 서로 엇갈리기도 한다. 일단 가톨릭에서는 요셉 또한 마리아와 똑같이 평생 동정을 지켰으며 위 본문에 나오는 인물들은 성모 마리아의 자매인 동명이인의 여인이[10]낳은 이들, 즉 예수의 사촌들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가톨릭에서는 이들을 단순한 일가친척으로 보고 있으며, 이 중 야고보와 유다는 12사도 중 하나이자 알패오라는 사람의 아들인 소(小) 야고보와 그 형제인 유다 타대오로 본다. 그 근거 중 하나는 아람어히브리어에 사촌형제 자매를 지칭하는 말이 따로 없이 모두 형제나 자매라고 일컬기에, 저 위의 형제를 부모가 같은 형제로 해석하기엔 의미가 좁아진다고 본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이들을 말 그대로 예수 출생 이후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나온 형제들이라고 해석한다. 반면 정교회에서는 요셉이 사별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들로 예수에게 이복형제에 해당하는 이들이라고 보고 있다.

이후 로마 역사가들이 기록한 역사서에는 예수의 형제 이야기만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수라는 게 당시에는 흔히 있었던 이름이라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5. 대중매체에서[편집]


천주교나 정교회 계통의 창작물, 예컨대 르네상스 화가들에 의해서는 맨 위의 그림처럼 청년보다 조금 더 나이들어보이는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예수와 마리아에 비해 덜 드러나는 구도로 묘사된다. 이는 동정녀 마리아의 순결함을 더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개신교 입장에서 만든 창작물, 특히 개신교의 세력이 강한 미국에서 만든 영화, 애니메이션 등 영상물에서는 요셉도 마리아처럼 젊은 청년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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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니메이션 더 크리스마스(2017)에 등장하는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
이처럼 거의 대부분의 미국 영상물에서는 둘 다 젊은 청년으로, 초혼으로 묘사된다.

세인트 영멘에서는 예수목수 동료들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 있는데, 목수들이 요셉이 만들었다는 대패를 보고서 예수에게 '네 아버지는 진짜 신이야!'하고 요셉을 칭찬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는 진짜로 신인 아버지가 있다는 점. 덕분에 예수는 목수들의 말을 못 알아 듣고 '그야 정말로 신이니까...' 라고 대꾸하다가 뒤늦게 요셉을 가르킨 대화인 걸 알고 요셉을 "아, 전능하지 않은쪽 아버지"라고 말한다. 키워준 아들에게도 무시당하는 팔자 요셉을 무시하는 예수의 발언에 목수 동료들은 "무슨 소리야!? 요셉 어르신이야말로 우리 목수들의 신이라고!"라고 화를 낸다. 일본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무지가 보이는 장면이지만, 일단은 일본에서 달인을 칭송하는 말인 신 드립을 써먹은 장면. 또, 예수가 성인으로서 설법하기 돌아다닌 것은 30대였기 때문에 20살이 넘어갈 수록 기적을 보이지 않자. 요셉의 눈이 "쟤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내 아들도 아니고 하느님 아들도 아니면)라는 의혹에 가득찬 눈으로 예수를 보기 시작[11]했다고, 이 때는 미친듯이 목공일에만 전념했고, 심지어 뻐꾸기 새끼를 기르는 어미새에게까지 얘기를 걸기까지 했다고 한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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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에 의하면 마리아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처녀인 상태로 임신을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요셉을 예수의 친아버지가 아닌 새아버지로 보고, 본인도 예수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님을 인정했다.[2] 목수로 번역된 코이네 그리스어 단어 τέκτων의 뜻은 나무을 가지고 집짓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가구 만드는 소목장이 아니라 짓는 대목장이라는 것.[3] 한국 103위 순교성인 중 하나.[4]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5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승인[5] 서울주보 2022년 10월 23일, 4면 한국 교회의 수호자 - 마리아와 요셉 참조[6] 사실 성서에서 요셉의 비중 자체가 아내인 마리아보다 낮은편이다. 예수가 성인이 되어서 기적을 행하고 포교를 하고 다닐 때, 그리고 수난당한 뒤에도 마리아는 종종 등장하는데 요셉은 언급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누군가가 예수를 보고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보는 정도.[7] 대략 알려진 정보로 계산되어 당시 14살 정도였다는 설이 있는데 그당시엔 다들 10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에 결혼하고 임신 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8] 이 당시 예수의 나이는 약 18세로 추정된다.[9] 이 4형제들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된 것이 4형제 중 야고보가 썼다는 야고보 복음이다. 이 야고보 복음은 요셉 노인 재혼설(...)이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가 상당한 민폐, 불량 소년으로 기록되며 그가 이웃집 사람을 저주하여 떨어뜨려 죽이자 요셉이 훈계하기도 하는 등 내용이 조잡하기 때문에, 어느 기독교에서도 정경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10] 자매의 이름도 마리아인데, 성모 마리아와 자매 마리아와의 관계는 이복자매라고 한다. 즉 이 둘의 아버지인 요아킴은....알아서 생각하자[11] 예수도 이 시기를 제일 힘들어했다. 목공 동료들은 예수가 가업을 이을거라고 잠정 지었을 정도. 오죽하면 예수는 아버지에게 제발 계시 좀 보내달라고 기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