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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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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파(ናቕፋ (티그리냐어), Nakfa)는 에리트레아의 통화이자 지명이다. 어원 때문에 동음이의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면이 있다.
홍해북도(Northern Red Sea State)에 위치한 주도(치고는 다소 작은 마을이다.). 에리트레아 독립전쟁[1] 때 거점지로 사용되느라 건물들이 상당히 파괴되고 복구를 못해 매우 휑한 상태이다. 기껏해야 모스크 몇 채에 집들만 간신히 남아있는 폐허. 하지만 독립의 요람으로서 인정되어 에리트레아의 독립 후, 통화명으로도 등록되었다. 굳이 낙파를 거점으로 삼은 것은 주요도시인 아스마라(Asmara) 및 맛사와(Massawa)와 가깝고, 두 도시에 접근하기 쉬운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에리트레아 낙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정치 계파에 대한 내용은 1. 개요[편집]
낙파(ናቕፋ (티그리냐어), Nakfa)는 에리트레아의 통화이자 지명이다. 어원 때문에 동음이의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면이 있다.
2. 지명으로서 낙파[편집]
홍해북도(Northern Red Sea State)에 위치한 주도(치고는 다소 작은 마을이다.). 에리트레아 독립전쟁[1] 때 거점지로 사용되느라 건물들이 상당히 파괴되고 복구를 못해 매우 휑한 상태이다. 기껏해야 모스크 몇 채에 집들만 간신히 남아있는 폐허. 하지만 독립의 요람으로서 인정되어 에리트레아의 독립 후, 통화명으로도 등록되었다. 굳이 낙파를 거점으로 삼은 것은 주요도시인 아스마라(Asmara) 및 맛사와(Massawa)와 가깝고, 두 도시에 접근하기 쉬운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3. 통화로서의 낙파[편집]
자세한 내용은 에리트레아 낙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둘러보기[편집]
[1] 1961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에티오피아의 내전. 독립 전, 그보다 한층 더 독립 전에는 이탈리아에 의해 에티오피아와 한 묶음으로 지배하에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철수한 후, 에리트레아(티그리냐인이 다수)는 에티오피아(암하라인이 주도하는 국가)와 민족 구성도 다른데다, 오랫동안 에티오피아와 별개의 나라였던 역사가 길어서 독립노선으로 움직이려 했으나 하일레 셀라시에의 에티오피아 제국 및 멩기스투의 에티오피아 공산정권의 탄압을 받아 저지되었고, 1993년 대국민투표가 이루어질때까지 계속 에티오피아의 한 주로 남아있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