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선호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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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원인
2.1. 인류학적 측면
2.2. 생물학적 측면
2.3. 사회학적 측면
3. 종교의 남아 선호 사상
4. 한국의 남아 선호 사상
4.1. 역사적, 문화적 배경
4.2. 2000년대 이후
5. 외국의 남아 선호 사상
6. 부작용
6.2. 인구감소
6.3. 소년을 향한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무감각 형성
7. 관련 인물
7.1. 실존 인물
7.2. 가상 인물
8. 서브컬처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남아선호사상()은 동ㆍ서양에서 동시에 존재하던, 말 그대로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인류가 문명을 세우기 이전부터 존재한 관념이다. 남아선호사상은 농경 민족의 역사에서 고대 이집트와 같은 몇몇 극소수의 문명을 제외하고는 예외를 찾기 힘들다. 이러한 인식은 대체로 노동력에 더 도움을 주던 남성의 신체적 특성이 영향을 주었다. 비유하자면 "은보다 금이 더 좋다." 정도.

물론 일반 백성들은 오해와 달리 사대부처럼 예법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성차별을 하는 일은 드물었다. 남아선호사상은, 특히 양반과 같은 고위층들이 훨씬 심각했었다. 민간에선 단순히 노동력을 중시해서 생겨난 인식이었지만, 그들에게 있어선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남존여비라는 심화된 사상을 가지고 여러 예법이란 이름으로 성차별을 정당화 했었다.


2. 원인[편집]



2.1. 인류학적 측면[편집]


전통적으로 인류학적 관점에서 남아선호사상은 원시의 수렵 기반 사회 구조에서 농경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부각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또한 근대까지 남았거나 현대에도 남아있는 원시적인 수렵 생활을 유지하는 민족들의 경우에는 모계 사회인 경우가 있다. 물론 모계 사회라고 여아선호사상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1]

농업 혁명이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데, 실질적으로 이 시점부터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었으며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한 곳에 무리지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인구 증가도 빠르게 일어났다.

농업혁명은 남녀 간의 직업을 고도로 분업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그 이전 시대에도 남자는 수렵을 주로 담당하고 여성은 채집이나 육아를 맡는 정도의 분업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이전의 사회를 수렵 채집 사회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으며, 남성이 어쩌다 성공하는 큰 크기의 동물 사냥과 여성이 늘상 채집하는 식량의 양이 크게 차이나지 않았기에 남성과 여성의 생산력은 동등했고, 따라서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남녀의 일일 이동 반경은 별 차이 없던 시절이 지나고 농경 사회에 들어서면서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넓은 이동 반경과 사회의 안전 보장에 관련된 일을 맡게 되자, 그 지위가 더욱 증대되었다.

쉽게 말해서, 남자들이 사회의 요직들을 차지하고 무기를 들고 외적을 지키는 동안 여자들은 집에서 육아 및 생활에 집중하는 분업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2.2. 생물학적 측면[편집]


남아선호관념이 시공을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퍼진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물학적인 학설들도 존재한다. 우선 종족의 보전을 위해 자연적으로 성비가 조절된다는 설이 있다. 물리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다른데, 이로 인해 손실율이 높은 남성 인구수를 채우기 위해 남성을 더 많이 낳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은 남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모험심이 강해 사고를 자초하기도 쉽고, 염색체 1개가 달라서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항산화력, 면역력, 각종 저항 능력이 낮다 보니 질병에 따른 사망율이 높으며, 환경 적응에 따른 사망율 또한 높다. 또한 1개밖에 없는 X 염색체 때문에 유전병도 더 많이 걸리고 활발한 외적 활동(전쟁, 사냥) 등의 요인으로 타고난 신체 및 사회 활등 특성상, 여성보다 빨리 죽는 일이 많다보니 성비가 안 맞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의학이 최첨단으로 발달한 현대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에서 여성의 기대 수명이 남성을 훨씬 웃돈다.

특히 과거 남성의 수명이 짧아 소모율이 높던 아랍의 경우 일부다처제형사취수제를 통해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야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남성은 많아도 인구가 늘어나지 않지만 여성의 인구가 늘면 인구 증가와 직결된다. 인구 증가와 직결되는 것은 가임기 여성의 인구수이기 때문이다.[2] 가축의 경우만 보더라도 번식을 위해 많은 숫자의 암컷이 필요한 것에 비해 수컷은 씨를 뿌려줄 우월한 종자로 한 두 마리만 있으면 된다.

또한 Y 염색체를 통해 남성 쪽이 자손에 대한 유전적인 동질성을 확인하기 쉬워서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인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조상이 갖고 있던 염색체들이 꾸준히 흩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오로지 부계로만 유전되는 Y 염색체는 후세에 계속해서 아들이 태어나는 한 보존된다. 즉 남자는 집안 대대로 아들이 태어날 경우 그를 통해 최소한의 유전적 정체성을 대대로 물려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같은 형제들은 물론 사촌 형제와 조카, 종질까지도 남자라면 모두 같은 Y 염색체를 갖고 있기에 확고한 동질성을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혈연적 유대에 자연적으로 끌린다는 것이다. 반대로 모계 유전인 미토콘드리아는 염색체가 아니므로 형질 발현에 별 영향을 끼치지는 않기 때문. Y 염색체의 돌연변이 발생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족끼리나 수십 세대 내에서는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돌연변이로 특질을 갖으면 더더욱 해당 씨족의 개성이 확립되기 때문.


2.3. 사회학적 측면[편집]


산업 혁명과 때를 같이, 비료의 발명을 통해 인구가 폭증하였고 차츰 자녀계획도 다자녀에서 소자녀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남아선호사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자녀이기에 가뜩이나 남아를 선호하던 풍조에 더해지는 바람에, 이왕 1명만 낳는 아이, 아들만 낳자는 방식으로 더욱 남성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 대해 사회학적인 분석이 동원된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대부분의 사회구조는 남성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급격히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서구 사회에서 남성의 위치는 여성보다 매우 높아졌으며 상류층의 사교계에선 여성은 남성들을 장식하기 위한 꽃으로 취급받곤 했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들의 사회 활동과 여권 신장 운동으로 성적 분업의 격차가 상당히 개선된 현대에서도 남성스러움, 여성스러움 같은 단어로 여전히 큰 위력을 떨치고 있다. 예를 들어 CEO 같은 상위 직업은 'old boy club'으로 불리는 나이 많은 남성들이 독식하다시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성적 격차는 남아에 대한 높은 기대와 여아에 대한 소홀한 대접으로 이어진다.

육아 차원에서의 관점으로 보자면, 딸이 아들에 비해 양육상 훨씬 조심스럽다는 문제점도 있다. 물론 성범죄는 남자든 여자든 당하고 나서 나타나는 후유증과 트라우마는 똑같지만 성범죄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범죄가 수적으로 그 반대에 비해 완전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수준으로 많기 때문이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딸 가진 부모는 매사에 조심스럽고 신경이 많이 가며 마음을 놓기가 힘들다. 또한 결혼을 하고 나면 어찌 되었든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말로 남의 집안 식구로 보내는 것이 되며 아들은 집안의 인구를 하나 더 늘려주는 기능을 할 수 있으므로 훨씬 유리했다.

또한 군국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군인을 생산해야 하므로 아들 선호도가 높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는 남편-아버지가 한 가정을 지배하는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다. 로마의 가정에서 남편-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죽이거나 벌할 권한을 가졌다.[3] 고대 로마라는 국가 자체가 건국부터 멸망까지 전쟁으로 점철돼있었고 로마의 상무정신은 유별날 정도였으므로 가부장적인게 사회풍조인 것은 당시엔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3. 종교의 남아 선호 사상[편집]


이슬람교에서는 여성이 음욕을 자극하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하여 히잡[4]을 강제하는 등, 있지도 않은 색기를 최대한 줄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연히 여성이 사회적으로 받는 제약이 많고 남성의 가부장적 지위가 높은 편이다. 간통의 경우 말할 것도 없이 사형감이며, 교리상으로는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실제로는 여성 쪽이 음욕을 일으켰다고 간주되는지라 더 잔혹한 꼴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여자아이가 강간을 당해도 보통은 아무 죄 없는 여자아이가 음욕을 일으켰다 하여 피해자인 아이를 처벌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쿠란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다 보니 간통의 경우 증인으로 4명이 필요한데, 여성은 0.5명으로 간주하여 여성들로 증인을 채우기가 힘들단 이유도 있다.

물론 이는 이슬람 국가들의 이슬람과는 별개로 상당수가 그냥 원래부터 남성 중심 사회였으며, 또한 본래 쿠란에서는 만들어진 당대를 기준으로는 나름대로 여성을 배려하는 얘기가 들어가 있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남자는 아내를 4명까지 두어도 된다"는 교리는, 원래 그 이전에는 제한없이 수십 명이고 들이는 경우가 많아서 많아도 4명까지만 두라고 제한을 건 것이다.[5] 문제라면 이슬람권에서도 보수적이거나[6] 후진적인 곳에선 이 조항들을 악용해 되려 여성 인권을 억압한다는 것.

이슬람 종교는 아니지만 유대교를 기반으로 한 하레디 역시 남존여비가 매우 심하다. 하레디/문제점 문서 참고.

그래도 의외로 이슬람권은 사정이 양호한 편이다. 이슬람권은 여아 낙태 문제가 없지만[7] 힌두교권인 인도는 그 이슬람보다 상황이 나빠서[8] 아예 여성의 가치를 재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취급하는 예가 다반사였다. (주방에서 타죽은 부인, 명예살인 참고.) 한 가지 예로, 인도에서는 결혼할 때 신부 측이 신랑 측에 거액의 지참금을 보내는데, 얼마나 많으냐면 인도 노동자 8년치 임금에 해당되며, 지참금을 마련하려고 신부 측에서는 집도 파는 일이 많을 정도. 지참금이 없어 죽은 여성만 1년에 8천 명이고 많은 여아들이 생매장당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태어나기 전에 낙태당하는 일도 잦다.

불교의 경우 먼 옛날에는 비구니의 출가에 있어 제한 사항을 두는 등 여성을 알게 모르게 차별했다. 다만, 이는 당시 인도에서 여성 수행자의 처지란 것이 매우 위태했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물론, 궁극적으론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기독교는 예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목사사제의 지위는 남성이 독식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까 여성 목사에 대한 의견이 나오면 보수적인 남성 목사가 "기저귀 차는 여자가 무슨 목사 자격이 있느냐"는 망언을 하기도 하고, 다른 종교가 남녀 차별이라며 비판하면서 들먹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어느 목사가 "이슬람에는 여자 이맘[9]이 없으니 남녀 차별"이라고 한 개신교 신문에 이슬람교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다른 목사로부터 "한국 개신교에 여자 목사가 있는지 좀 알아보고 그런 소리나 지껄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한국 개신교에는 여자 목사가 존재하긴 하나 교파에 따라 다르며, 보수 교단에 속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이나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단의 경우에는 여성 목사 안수 허용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을 갖고 있어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4. 한국의 남아 선호 사상[편집]



4.1. 역사적, 문화적 배경[편집]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유교 전통의 문제라기보다는 중국식의 종법에서 비롯된 문제다. 중국은 3000년 전부터 집안의 상속이나 제사와 같은 중요한 집안일을 모두 아들, 특히 장남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집에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데려와서라도 가계를 이어가게 했는데, 이 중국의 문화가 한국으로 넘어와 남아를 선호하는 사상이 박히게 된 것. 이는 조선 건국자들의 사상 때문인데, 조선의 건국자들은 중국의 문화를 좋다고 여겼고 각종 중국의 문화를 조선에 대입시키면서 중국의 남자에게 돌아가는 종법까지 대입시킨 것.

이는 고위층들 사이에서 교조화가 이루어져 남존여비의 관념으로 굳어져버렸다. 그 결과, 고려까지만 해도 남녀 균분 상속이 존재했고 조선 초까지도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으나[10], 성리학을 신봉하는 사림 세력이 득세하면서부터는 남아가 없을 경우 양아들을 들여서라도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지독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11][12] 이는 중국의 계승 문화가 그대로 우리나라에 융화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교(특히 성리학)에서 아들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유교에서는 위아래를 구분하는 서열을 중시하며 그 윗 서열에 남성과 어른이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자, 맹자, 주자 등이 제시한 이런 기준은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져 이의를 달 수 없었고, 여기에 반박하면 사문난적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다.

이런 조선에서 여성들은 사내아이를 낳지 못하면 소박맞기까지 했다.[13] 반면, 남성의 축첩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여성의 질투는 칠거지악이라 하여 중죄로 다스렸다. 추가로 아들을 못 낳는 것, 병에 걸려서 아들을 못 낳는것도 칠거지악에 들어갔다.[14] 물론 보호장치[15]가 있긴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저 모양이면 하루하루가 눈치밥이니, 차라리 위자료 받고 이혼하거나 축첩을 묵인하며 사는 게 낫다. 이러한 분위기였으니 여자아이를 천대하는 풍조는 지극히 당연할 정도다.

다만 평민 가정에서는 몰라도 양반 가문에서는 여자아이를 낳았다고 버리는 경우는 없었고 키우기는 다 키웠다. 또한 평민 가정에서 버리는 경우는 여자라서라기보다는, 가난한 살림에 먹여살릴 입이 많아져였다. 물론 버리는 순서에서 여자아이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여러 자식 중 한 아이를 버릴 수 밖에 없다면 아들보다는 딸이 버릴 아이로 뽑히는 경우가 많았다.

유교 사회에서 가문(家門)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제사라는 종교 의식을 통한 단합에서 소외당하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문벌을 가진 가문은 누대에 걸친 족보와 조상을 자랑하였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가문을 결속시키고 사회적 세력을 쌓았다. 문중은 제사를 지낸다는 명분 하에 농경지나 야산 등의 토지를 가문의 이름으로 집중하여 그 자체가 재산을 보유하도록 되었다. 이러한 문중 자산은 '종손'이 승계하였으나, 동시에 종손은 제사를 지낸다는 전제 하에 문중 자산을 유지할 수 있었으므로 이는 일종의 '공동 자산'으로 취급되었다. 문중의 재산은 다른 친척에게 원조를 주고 받을 중심점이 되었다. 과거 민법에서는 문중회의의 권한을 매우 크게 인정하였다.

그때까지도 친족 사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에는 친족을 원조하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로 여겨졌으나, 다른 형태의 복지는 현대 사회 이전까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부족한 편이었다. 결국 가문을 상실한다는 것은 사실상 사회 복지 체계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사회적 성공이나 최소한의 복지 등 모든 것을 가문에 의지했으며, 가문에서 이탈된다는 것은 순전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문제는 혼자 야생으로 들어가 Man vs. Wild를 찍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전근대 농업 경제 사회에서 이러한 단독 가구가 빈민층으로 전락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별로 없었고 만약 야생에서 산다 해도 산적이나 호환(재해) 등에 맞서야 할 상황이다. 그러므로 가문과 문중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생존과 사회 생활의 문제였다.

게다가 조선시대에 문중을 제외한 사적 결사체는 이런저런 명분 때문에 탄압받는 일이 많았다. 남자들이 모여서 뭐 해보려고 하면 당파나 역적 무리로 몰리기 쉽고, 불교는 조선시대에는 아예 전면에 나서지 않는 대신 그 세력을 인정받은 종교[16]이며, 상단은 애시당초 돈을 목적으로 이해관계를 갖고 모였기에 그 결속력이 매우 낮았으므로 조정에서 문제삼지 않았다. 결국 유일하게 국가로부터 정당하게 인정받는 사회 조직인 문중으로 관심이 편중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사실 가문 의식에 기반을 둔 가부장제가 강화되고 그로 인해 남아선호사상이 두드러진 것은 임진왜란의 탓이 크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말로는 성리학을 외치긴 했지만 심지어는 사대부들조차도 그렇게 전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던 터라... 임진왜란 이전 사람인 신사임당의 경우만 하더라도 결혼하고 17년이나 자식들 데리고 강원도 강릉에 있는 친정에서 살면서 시어머니[17]와 따로 지냈다. 훗날 시어머니가 늙어 스스로 살림하기 곤란해진 후에야 서울에 있는 시댁으로 가서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다. 조선 후기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전란 이후 사대부들은 전후 혼란 속에서 생존을 해야 하는 만큼 세력도 강화할 겸 가문을 중심으로 결속하게 되었고, 여성들조차도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이에 동조하면서 남아선호 사상이 극도로 강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사회 혼란과 함께 심화되는 정치극단주의에 대한 예시기도 한다.

조선 멸망 후 일제강점기에도 남아 선호는 당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아니 더 심해졌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도 노년층을 중심으로 남아선호사상은 어느정도 남아있었다. 남아선호가 매우 심한 집안의 경우 아들을 못 낳는다고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18]나 아들(손자)에게는 잘해주면서 딸(손녀)에게는 박대하는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19]은 비단 드라마동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며[20] 아들을 못 낳는다고 이혼을 요구하거나 아들을 잘 낳는다고 소문난 씨받이를 들인 사례가 무려 2000년대 초반, 중반까지도 있었다. 사실상 남아선호사상이 그나마 잠잠해진 것은, 기껏해야 2000년대 후반부터였다.[21] 아직도… 딸 낳았다며 24년간 며느리 구박한 시어머니

8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다음 번에 아들을 낳는다는 기대로 딸 이름에 , 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22] 또한 딸을 그만 낳고 싶다는 의미로 딸 이름을 후남(後男; 다음에는 제발 남자아이), 후자(後子; 다음에는 아들), 말자(末子), 종순[23], 말순, 끝순, 막녀, 섭섭 등으로 짓거나, 다음에 아들을 낳는 이름이라며 꼭지라고 짓거나, 아예 딸로 태어난게 맘에 안든다고 욕설[24]이나 부정적인 단어를 이름으로 붙여주는 일도 있었다. 이는 보통 1970년대 중반까지 이야기이며 197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출생 딸들의 경우에는 이미 딸 둘, 셋을 낳았는데 뒤에 아들을 낳고 싶은 마음에 셋째 이상의 딸 이름을 남자이름으로 짓는 가정드물게 있었다. 물론 그 이전 출생도 그런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영훈, 정훈, 인호, 민호와 같이 남성적 느낌이 나는 이름이다. 당장 한국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선수의 이름이 박봉식(육상 창던지기 출전)이었는데, 봉식이라는 이름은 딱 봐도 남자 이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중성적인 이름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남성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라면 놀림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25] 확실히 남자 이름인데 여자가 쓴다면 그런 경우가 대다수다. 무엇보다 본인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것이다. 2007년 개명신청 허가사례. 오진희 작가의 경우 부모는 딸 넷에 막내아들 쌍둥이 둘이었는데 첫째와 둘째(작가 본인)은 진숙, 진희로 여자 이름이었으나 셋째와 넷째는 진욱, 진형으로 남자 이름이었다. 심지어 2010년대 초반 때도 이런 집안이 아직 있어 2010년대 초반생(개명 당시 만 5~8살, 현재 10~14살) 여자아이의 개명 신청 사례 중 후남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남동생이 태어나서 정상적인 이름으로 바꾸는 것 같은데, 아무리 이름을 바꾼다 해도 그런 이름을 지어줬던 집안에 태어났으니 앞으로의 인생이 험난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26]

또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한국 편의점 알바가 진상으로부터 아들을 낳아달라는 나라 망신 및 남아 선호 사상이 포함된 성희롱을 들었다는 것이 진상월드를 통해 밝혀졌다.

물론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이 무조건 성리학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곤란하다. 여권이 높다던 고려시대에도 중혼의 폐해는 심각했고,[27] 원나라에 공녀를 바칠 시절의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딸을 낳으면 비밀에 부쳐 이웃 사람도 볼 수 없게 하고, 딸의 머리를 깎는 등 공녀 선발을 면해 보려 노력하였다.[28] 이전부터 위에서 언급한 인류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이유 때문에 남아선호사상은 꾸준히 지속되어왔다. 다만 성리학의 교조화 이전에는 남아선호사상의 목적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었지만, 교조화된 성리학이 단순한 생존 문제만이 아닌 사상 문제까지 끌어들였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4.2. 2000년대 이후[편집]



한국의 경우 2000년대 후반 들어 한국의 남녀 신생아 성비는 거의 자연상태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관련 기사

2020년대 기준 사위며느리, 그리고 손주를 볼 50~60대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사회에서 성장해 왔고, 이제 결혼하여 남편과 자녀를 가질 20~30대들은 여자가 집안 일만 한다는 것은 사회 의식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자연히 굳이 아들이 딸보다 우선적으로 대우받아야 할 이유가 많이 사라진 셈이다. 심지어 70대조차도 그런 편이다.

그리고 젊은 층 남성이 맞벌이를 선호하는 비중이 전에 비해 매우 커져가며 2010년대 이후에는 사실상 어느 성별이든 의미는 완전히 사라졌다 봐도 무방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9년부터 대한민국 인구 자체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아진다고 한다. 단 이는 외국인노동자같이 국내 거주 외국인을 포함한 수치이며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한정할 경우 이미 여성이 더 많다.

한국은 2020년대 들어선 남아선호사상이 이전보다 훨씬 나아져 사실상 젊은 세대까지 오면 거의 없어진 편이나, 후세에 퍼진 양반적인 사상을 버리지 못한 보수적인 집안은 여전히 "남자가 대를 이어야 한다"고 말하며[29], 계속 존재한다. 게다가 출산률이 1명 이하로 내려간 현재는 남아든 여아든 아이를 낳아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5. 외국의 남아 선호 사상[편집]


유교의 영향이 없는 곳에도 남아 선호가 있으며, 남존여비가 심해도 여아의 경제적 이익이 있으면 낙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캅카스 3국, 유교 문화권, 인도 문화권, 알바니아 일대가 성비 불균형이 일어날 정도로 심하고 남아프리카 일대는 오히려 여아가 다른 대륙보다 많다. #

유교의 발상지이니 만큼 지구상의 대표적인 남아선호 국가 및 남초국 중 하나이다. 2004년도에 여아 100명 당 남아 119명 이상, 2000년대 초에 여아 100명 당 남아 124명, 일부 지방 한정 여아 100명 당 남아 130명, 2014년도에 여아 100명 당 남아 116명이 출생했다. 2020년 7월 29일에 '또 딸이네' 쓰레기통에 갓난아기 버린 부부가 있다.

의외로 동아시아 중에서 유일하게 여아 낙태 문제가 없었긴 하지만[30], 1982년부터 서서히 아들보다 딸이 더 좋다는 이 나오기 시작했고, 1987년부터 역전되었다. 그래도 양자의 98%가 20~30대 남성이다. 기업남성에게 물려주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기사

2015년아들 낳으려고 18번 낙태한 사례가 있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저학력의 저소득층 여성 그룹은 여아 100명 당 남아 107명, 고학력 고소득층 여성 그룹은 여아 100명 당 114명의 남아를 출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1989년 기준 입양아도 남아를 더 선호했다. 싱가포르징병제이다.

인도 북부 132개 마을 신생아 200명 모두가 남자아기였으니 여아 낙태를 의심한 우타르카시 지방 정부는 이들 마을을 '레드 존'으로 지정하고 조사관 25명을 급파했다. 기사

2011년에 일부 대도시만 집계했을 때, 혈육에게 살해된 후 버려지는 여자아기는 매년 1천여 명이었다. 기사


별난 이름 풍습은 튀르키예에도 있는데, "이제 됐어 딸은 이제 충분해!"라는 뜻으로 예테르(Yeter)라고 짓거나, '마지막 장미'라는 뜻으로 손귈(Songül)이라고 짓는다. 그러나 성비 불균형까지 나타나지는 않는다.

여아 100명 당 남아 112명이 태어난다. 기사

여아 100명 당 남아 115명이 태어난다. 기사

여아 100명 당 남아 114명이 태어난다. 기사

여아 100명 당 남아 112명이 태어난다. 기사

6. 부작용[편집]



6.1. 여아낙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성별 선택 낙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낙태반대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이자, 낙태는 여성의 권리이며 여성해방의 상징이라는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단골로 나오는 멘트다. 찬성론자들은 여아 낙태는 그 주위에 구시대적인 남성선호사상이 깔려있다는 점이 문제라서 그렇지, 사실 낙태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담이지만 딸로 태어났어야 할 아이를 낙태하지 않고 낳아도 양육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여자를 천시하는 사상을 가졌던 사람이 낙태를 포기했다 하더라도, 낳고 나서 천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 이런 경우엔 대다수가 심각한 성차별 문제에 직면한다.

자세한 내용은 성별 선택 낙태 문서 참고.


6.2. 인구감소[편집]


여성의 인구가 남성의 인구보다 많다면 인구감소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아를 낙태하게 되면서 남아의 인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인구수에 비해 많아진다면 당연히 얘기가 달라진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은데, 주로 40대 후반~50대 초반에 폐경이 오게 되므로 그 나이가 되면 대부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다.[31][32]

때문에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20~30대라는 소린데,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30대의 남성은 아이를 갖기 위해선 자신과 동시대에 태어난 또래의 여성 혹은 자신보다 어린 여성과 결혼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결혼 적령기가 된 남성의 인구가 4,000명[33]이고 여성의 인구가 3,000명이라면? 약 1/4(1,000명)의 남성은 당연히 결혼을 못 하게 되는 것이고, 그만큼 인구도 감소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를 돈(양육비+교육비)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선 한 가정당 1명씩만 낳는 추세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다만 실제 상황에서는 여아낙태로 인한 성비붕괴와 무관하게 결혼대란이 터지는데, 원래 남성의 하위 10% 정도는 어느 시대나 도태되는 재원들이라[34] 실질적인 성비는 125:100 같이 극단적인 수준인 인도의 몇몇 지역 정도가 아니면 맞는 편이고, 결혼 기피와 결혼 포기 현상이 극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심한 성비 불균형은 여성이 이성을 보는 눈만 높아지는 부작용도 속출하는 문제점도 있는데 이것 수요와 공급의 법칙만 알아도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면 공급자가 갑이듯이 남성이 많으면 당연히 여성이 갑이 될수밖에 없으며 이는 외모, 경제력, 사회성을 갖춘 인싸같은 남성들도 연애, 결혼시장에서 도태되고 이는 인구감소의 부스터가 되는 기현상이 속출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그럼 이혼 경력이 있는 이혼녀나 자식이 있지만 배우자는 없는 미혼모와 결혼하면 해결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가정폭력 등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서야 배우자와 좀 안 맞아도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혼을 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려는 경우가 많아서다.[35]

또한 이혼 후에는 대개 아이를 여자가 맡아 키우는데[36] 재혼하면 양육비 문제로 전남편과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참고로 친양자입양을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새 남편이 돈이 많아도, 자녀가 새아버지에게 입양된다 해도 생부의 양육비 지급 의무는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소멸되지 않는다. 기사[37] 또한 면접교섭 의무로 인해 아이들이 친아빠를 만나러 갈 때마다 집안에 불편한 기류가 흐를 수도 있고. 이런 이유로 인해, 이혼 경력 있고 자식 딸린 사람과 결혼하는 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인면수심 새아빠[38]가 딸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워낙 많아서, 자식 중에 딸이 있는 엄마들에게 재혼을 꺼리게 한다.

한편, 페미니즘 갈등이 본격화된 2010년대 중반 시점에 2030 연령층 대다수를 이루는 세대이자, 남아선호사상의 직접적 피해자이기도 한 1990년대 출생자들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기성세대의 위선성을 비판할 때 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남아 선호 사상이기도 하다. 1990년대생들 모두가 기성세대가 아이를 가질 시점에 유행했던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받은 당사자일 뿐인데, 정작 이런 문제를 일으킨 기성세대는 오로지 여성들에게만 죄책감을 가지며 자기만족만 한다는 것. 특히 인셀 문제가 유독 크다.

6.3. 소년을 향한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무감각 형성[편집]


남아선호사상이 있는 국가들에서는 대체로 남성에 대한 성희롱, 성추행에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는 밑에 나오는 남성 아동에 대한 성추행을 자연스러운 풍습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로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곳에서는 일명 '남자아이의 고추 보기, 고추 만지기, 고추 사진 찍기' 등이 성추행이 아닌 자연스러운 풍습으로 인식된다. 불과 얼마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사진관 쇼윈도우에는 벌거벗고 앉아 고추가 다 보이는 남자아기의 백일사진 또는 첫돌사진이 버젓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여자아기의 성기는 함부로 보이면 안 되지만 남자아기의 성기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남자아기의 부모도, 사진관 사장도, 사진관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사진을 보게 된 사람들도, 그런 사진을 전시하는 게 문제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화권에서 살던 사람이, 남아선호사상이 약하고 남녀 모두에 대한 성추행에 민감한 문화권으로 이주했다가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면 별 생각없이 남자아이의 고추를 촬영한 사진을 집에 걸어놓았다가 아동 포르노 소지범 취급받는 경우가 있다.[39]


7. 관련 인물[편집]



7.1. 실존 인물[편집]


가해자 - 피해자 형태로 정리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첫째 왕비 캐서린은 폐위되었고, 둘째 왕비인 앤 불린은 참수했다.[40] 반대로 아들(에드워드 6세)을 낳아주었던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왕비였지만, 문제는 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은 지 며칠 만에 산후병으로 숨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즉위한 에드워드 6세도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던 탓에 즉위하자마자 몇년 만에 요절하였고, 후임자로는 캐서린의 딸 메리 1세와 앤의 딸 엘리자베스 1세가 각각 왕위를 이어받게 된다.

EBS 2016.3.15&22일 방영분 '리얼극장' 참고. 제목부터가 "행복-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딸, 조혜련과 어머니"다.

홍석천을 낳기 전 어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해(당시 딸만 셋이었다) 씨받이를 들여 홍석천의 친형을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홍석천이 태어난 후 다시 생모 슬하에 자랐다고 한다.


결혼 후 딸만 줄줄이 4명을 낳아 비난을 당했다. 심지어 측실 제도의 부활까지 거론되었으나 쇼와 덴노가 거부하는 바람에 실행되지 못했고, 다섯째 아이로 어렵게 아들 아키히토 덴노를 낳았다. 그리고 훗날 악독한 시어머니가 되었다.

오랫동안 난임이었다가 어렵게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를 낳았지만, 이후로도 시어머니에게서 황위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을 당했다. 그러나 시어머니 미치코 상황후 역시 자신의 시어머니인 고준 황후에게서 지독한 시집살이를 당한 건 함정.

  • 키코 비 - 형님 마사코 황후가 낳지 못한 아들을 낳아 주목받았지만, 그녀 역시 시부모와 궁내청의 압력에 의해 늦은 나이에 어렵게 임신하여 아들 히사히토 친왕을 낳았다.[41] 또한 마코 공주에 이어 카코 공주를 낳았을 때는, 딸만 둘을 낳았다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42]

  • 남초 현상 시대의 모든 남녀
남자는 남초 현상으로 인한 극심한 경쟁과 신붓감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여자는 여자대로 숫적 열세로 인한 사회적 영향력 축소를 겪어야 한다. 이런 관점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현대에서 결혼 시장에서의 장점만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왕실만큼 남아선호가 여전하나 일반 가정에서조차도 남아를 선호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란 사상으로 남존여비가 존재하여 여성들은 수동적 존재이자 미천한 존재로 취급한 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뿌리깊다.


7.2. 가상 인물[편집]


작품 - 가해자 - 피해자 형태로 정리, 작품명 가나다순

이숙의 오빠 방귀남이 사라진 날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숙을 괴롭혔다는 암시가 보인다.
  • 너도 하늘말나리야
    • 강미르의 할머니 - 강미르 : 태몽이 용꿈인데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미르를 차별했고, 미르 부모님이 이혼한 계기가 되었다.
    • 은영이 할머니와 아버지 - 은영이네 세 자매 : 은영이 엄마가 딸만 셋이나 낳았다면서 구박하는 인물들이다.
  • 단지 - 단지의 부모 - 단지
단순히 남아 선호를 넘어서 학대 수준이다. 딸이라는 이유로 자식 취급은커녕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갖 폭력을 당했다. 독립한 후에도 한동안 가정폭력 피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정도였다.자세한 것은 단지(웹툰) 문서 참고.
개그맨 본인이 아닌 개그 콘서트의 코너 두분토론에서 본인이 연기했던 캐릭터인 남하당 대표 박영진을 말하는 것. 김영희는 피해자라기보다는 대응되는 출연 인물. 이 코너는 꼴마초꼴페미를 모두 까는 병림픽 성향이 짙다.
위로 아들이 2명 있고 막둥이로 딸을 얻었다. 그런데, 오히려 아들이 아니라며 딸을 구박하였던 적이 있다. 다만, 잠시 언급되는 수준으로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남동생 한여름은 1996년생으로 여아 낙태를 통해 얻은 귀한 아들이다.
작중에서도 남편의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딸을 강제로 일찍 결혼시킬 뻔하다가 공초롱의 도움으로 조혼을 막고 딸을 학교로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웃기게도 조윤희 본인은 남편이 공초롱에게 반해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걸 보고 그녀가 남편을 꼬신 것으로 착각하였다. 참고로 공초롱은 그저 호의로 조윤희 모녀를 도왔을 뿐 류동하에겐 전혀 관심도 없다. 한마디로 질투에 눈이 멀어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 나중엔 진상을 알고 반성하긴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한마디로 조윤희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인 셈.
점쟁이 갈이박사 예언에서는 올해에 혼례를 올리면 일곱 딸을 볼 것이고, 그 다음 해에 혼례를 올린다면 세 아들을 낳을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걸 지키지 않고 올해에 혼례를 올려 딸 7명을 낳자 막내딸을 버리려는데 길대부인이 이름이라도 짓고 버리라고 해서 바리데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군인 집안에 딸이 6명이 태어나서 막내딸 오스칼남자아이 이름으로 짓고 남자로 키우면서 오스칼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만화상에서는 딸을 멋대로 남자아이로 키우면서 툭하면 딸을 쓰러질 정도로 구타하거나, 다시 멋대로 딸에게 여자의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등 폭력가장의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의외로 당시 프랑스 사회와는 다르게 딸만 낳았다고 정부를 두지 않고 가정에는 충실하다. 만화에서는 오스칼이 아버지에게 자신이 남자의 삶을 살아간 것을 오히려 멋진 삶을 살 수 있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아버지께 고마워한다.[43]
이쪽은 안 좋은 시어머니 전형으로, 뻐꾸기 둥지 초반부에 장손을 얻어야 한다고 며느리와 아들을 닦달한다.
대발이 아버지인 이병호는 전형적인 남아 선호 사상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엄격한 군인이라 태어난 자식들이 딸이라고 전부 끝에 칠로 끝나는 이름으로 지었고, 심지어 막내딸은 아들을 얻으려다 4번 연속으로 딸이 나오자 이제는 땡친다고 하여 땡칠로 호적에 올리려다가 명자가 여자애 이름이 땡칠이 뭐냐고 티격태격 하던 찰나에 직원이 종친거나 땡친거나 같다고 하여 종칠로 하는게 어떻냐고 하여 호적상으로는 이름을 종칠로 올린다.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아들인 우석과 우돌만 편애하고 딸인 우연은 대놓고 차별하고 무시하고 허구한 날 구박을 자주 하는 모습을 보아 거의 남아선호사상이 의심될 수준이다.
자세하게 나온 건 아니지만, 코르버스 4세 자신이 맞이한 두 아내, 은 전혀 사랑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들 코르버스 레스트레인지 5세를 보고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될 정도로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이 극에 달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생굴 편. 감나무 집 할머니가 큰며느리 영지에게 아들을 낳아도 모자란데 딸을 낳았다며 버려야 다시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하고, 유언으로 손자 수오의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석철이라고 정했는데, 이 석철은 그의 장자가 가질 이름이었다. 감나무 집 할머니도 역시 아들을 못 낳아 시어머니에게 소박받고 어쩔 수 없이 딸을 버린 후 다른 아들[44]을 낳은 가해자가 된 피해자이다. 감나무 집 할머니가 죽은 후 태어난 아이가 딸이어도 이름이 그대로 김석철이 되었지만 부모에게 버려지지는 않았다.
  • 아들과 딸 - 후남 엄마 - 이후남[45]
아들과 딸 문서 참고. 참고로 후남 엄마도 딸만 낳았다고 구박당하는데, 자신도 자기 딸(특히 후남)을 구박한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인 셈.
주인공 심영빈은 집안의 일에 무심하여 모르고 있었으나 주인공의 아내 수경이 손위 동서와 달리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은근히 구박을 받고 있었으며, 남편의 친구인 한광의 병원에서 몰래 낙태까지 두 번 한 끝에 마흔이 넘어서야 아들이 태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냥 다른 거 다 빼고 이라고 대놓고 차별대우 받았다. 결국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했지만 부모의 보호 없이 바로 시작하는 독립생활이라는 게 어떨지는 뻔한 이야기. 인연 끊은 지 5년째고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묘사가 나온다.
유일한 자식인 모이라가 아들이 아닌 이유로 차별대우를 했다. 결국 모이라가 탈선하고 가출해버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런 모이라를 당시 악의 세력이였던 검은무쇠 드워프의 수장 다그란 타우릿산이 위로해주자 그와 마음이 맞아 결혼까지 했다. 다만, 마그니는 그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했으며, 나중에 딸에게 용서를 빌기도 했다.
손효석 병장이 집안의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인데, 즉 위로 누나들만 잔뜩이란 소리. 딸만 봤다면 아들 볼때까지 그렜다고 손효석이 말한다.
할아버지 오목의 가공할 정도의 남아선호로 인해 아버지 오만상은 딸들을 아끼는 마음을 숨겨야 했고 어머니 명란은 과거의 상처[46]와 맞물려 딸들에게 정을 주지 못하고 유일한 아들 대주의 금치산자 기질에 아들만을 편애하게 되었다. 다행히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사망하면서 아버지가 가장이 되며 개선할 여지가 보이는 중.
단, 이쪽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서인숙 문서 참고.


8. 서브컬처[편집]


서브컬처에서는 남아 선호 사상이 그래도 있는 일본에서도 장르에 따라 여아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하드한 성인물에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이 낳은 여아를 좋아하는 건 아들을 자신의 경쟁자로 여기고,[48] 더 성적으로 괴롭힐 여자가 많아져서 그렇다[49]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2010년대 이전 로맨스로맨스 판타지 장르는 여성들이 주로 소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더 선호하는 묘사가 있었다.[50] 사극 로맨스나 중세 로맨스 판타지 장르는 과거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에 남아 선호 사상 묘사가 있을 수도 있지만, 과거 2000년대 중반의 국내의 다른 장르를 다룬 매체처럼 묘사를 상세하게 했다면 사람들이 댓글 등으로 당시 시기를 욕하기도 하고 그 표현을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도 있어서 묘사가 상세하지는 않고 간접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과거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한데다가 과학이 발전하지 않아 남성의 정자가 자녀의 성별을 결정한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을 다룬 작품에서는 난산 등으로 산모사망이 흔한데다가 현대처럼 진통을 줄여주는 경막외마취 등이 없어서 목숨 걸고 임산부가 배아파 아기낳았는데도 딸이라 엄청 싫어하는 묘사가 나왔다. 특히 후사가 중요한 왕실을 다룬 사극 매체에서 많이 나오며 악역이 주로 자신의 자리 보전 때문에 주인공의 자녀가 딸이기를 원했다. 영상. 국내에서도 현대를 다룰 때 2000년대 중반 작품까지는 자주 나왔지만 후반 들어서 점차 사라지다가 2010년대가 되어서야 거의 없어졌다. 단, 시녀 이야기같이 여성 인권을 다루는 작품에서는 남아 선호 사상을 타파하기 전 배경 묘사를 위해 일부러 표현하기도 한다.

왕실 말고도 귀족가문을 중요시 여기는 곳에서는 현실에서 처럼 남아 선호 사상이 왕실 못지않다. 해리 포터 시리즈 중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레스트레인지 가문의 족보 중에는 여자는 얼굴을 그리지 않고 그저 꽃송이로 그려놓아 남성우월주의 가문이라는 것[51]을 알 수 있다.

가문 중 특히 군인 집안도 마찬가지이다. 을 아예 아들처럼 키운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딸의 이름을 줄줄이 이상한 이름으로 지은 소문난 칠공주가 대표적이다.

로맨스로맨스 판타지 장르와는 반대로, 보이즈 러브(BL) 장르에서는 주로 여성들이 작품을 쓰는데도 아기의 성별을 남성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도 그렇지만 같은 성별인 아이를 키울 때 불편하지 않고, 여자아이가 어릴 때에는 문제가 적지만 사춘기가 되어서는 두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질 수도 있고, 해외 기준 현대에서도 남성이 사회에서 유리한데다가 강간 관련 문제가 있어 걱정이 되기 때문. 아이가 커서도 다른 파트너와 만나 2·3세물을 만들기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여성이 주로 쓰기 때문에 선술한 남아 선호 사상 까닭에 그런 건 아니라서 자녀 중 딸이 많은데 딸로 밝혀지더라도 과거 국내처럼 낙태를 하거나 영아 살해를 하지 않으며 좋아하고 심지어 딸바보가 되는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9. 관련 문서[편집]


[1] 모계 사회라고 해도 점박이하이에나처럼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식의 사회는 아니며, 일반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가지는 지위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의 원시 모계사회에서 씨족 내 가장 큰 발언력을 지니는 사람은 어머니의 남자 형제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원시 수렵 공동체 중에는 예외적으로 남미의 야노마모족처럼 여성을 폭력의 대상,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 이상으로는 대하지 않는 경우 또한 있는 편. 이런 원시 사회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인류 초창기에는 모계 사회가 있었다는 이론은 폐기되었다.[2]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가 50만 명씩 있다고 치면 여자 하나당 두어야 할 자녀의 수는 2명을 조금 넘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남자가 60만이고 여자가 40만이라면 여자 하나당 두어야 할 자녀의 수는 2.5명으로 급증하게 된다. 물론 이건 태어난 자녀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3] 출처: 어메이징 세계사/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63쪽[4] 우즈베키스탄, 모로코, 보스니아, 알바니아 같은 세속적인 곳들은 안쓰는 경우도 많다.[5] 아내 개개인을 모두 평등하게 대해야 하며 부양할 능력도 있어야 할 수 있는거라 엥간한 금수저가 아닌 이상 일반적인 경우에는 아내는 보통 1명인 경우가 많다.[6] 대표적으로 탈레반 등.[7] 그래도 여아 살해 문제는 있다.[8] 그래도 이슬람에서는 명목상 남녀는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다만 그 평등의 잣대가 우리 식과는 달라서 문제로 인식되는 것.[9] 사실 정통 이슬람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성직자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무슬림이 '이맘'을 맡을 수 있으며 여성 이맘도 존재한다.[10] 조선 초기에 제도를 정비하면서 법적으로는 여권이 더욱 상승한 상태였다.[11] 실제로 가문에 아들이 없어서 양자로 들어온 경우가 많았고, 양자를 들이지 않는 경우 차남의 아들이 그대로 승계해 나갔다. 장남, 차남 모두 무후일 때는 삼남의 아들이 승계해 나간 경우도 존재하였다. 근래 들어 굳이 양자를 잘 하지 않는 추세다. 물론 재벌의 경우는 다르지만.[12] 이 관습으로 인하여 2000년대 이전에 3대 독자 집안의 아들이면 징병검사시 6개월간의 방위병, 4대 이상이면 군면제가 가능했다. 이 당시는 군대에 입대하면 군내에서 사망할 확률이 1% 이상으로 매우 높았다. 즉, '아들이 죽으면 대가 끊긴다.' 라는 관습으로 이러한 조건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 독자여서 군면제를 받은 배우 정준하가 있다. 다만, 선택이기 때문에 독자 중에서 자원입대를 희망하면 현역병으로 입대는 가능했다.[13] 남아선호사상도 모자라 '모체가 자녀의 성별을 결정한다'는 잘못된 믿음까지 겹친 건데, 사실 자녀의 성별은 정자가 결정한다.(다만 모체가 중증 혈우병 등 X염색체 열성 유전병 인자를 가지고 있어 딸만 정상적으로 태어나고 아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유산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실제로 이 사실이 알려진 뒤로 아들 못 낳는다고 소박하는 일이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경우는 없어졌다.[14] 다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진짜 중죄로 다뤄지는 경우는 정말 심하게 하거나 질투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한했다. 대표적인 예로 성종의 2번째 왕비였던 폐비 윤씨의 경우에는 왕비가 되고 8개월 만에 폐비 논의가 있었는데, 이때 임사홍이 "예로부터 질투를 하지 않은 왕비들이 없으니, 부디 폐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해서 1차 폐비 소동을 종식시켰다. 따지고 보면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하는데 질투하는 건 당연하니, 어찌 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도 이 점은 유의한 듯. 오히려 너무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하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문제시되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질투도 관심이 있으니까 하는 거다. 그런데 남편이 첩을 두든 말든 예스맨처럼 굴면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을 받았다. 사씨남정기의 사정옥 역시도 현모양처의 표본처럼 보이겠지만, 당대 유학자들조차 "아오 뭐 이렇게 답답한 여자가 다 있어!" 라고 반응했다고.[15] 삼불거라 해서 갈 데가 없거나, 부모상을 같이 치렀거나, 가난할 때 같이 고생하다가 뒤에 부귀하게 된 때는 내칠 수 없었다. 물론 이딴 거 다 무시하고 내쳐도 여자 쪽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남자 집에 여자가 얹혀 사는 모양새였기 때문.[16]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교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은 없어졌지만 무시는 여전했다.[17] 시아버지는 신사임당이 결혼하기 전에 사망했음[18] 시어머니여성인데 왜 같은 여성인 며느리를 괴롭히냐는 말이 있는데, 시집살이 문서에서 알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친할머니)가 될 나이 정도의 여성은 대부분 50대 이상이라 폐경기 이후로 남성 호르몬이 늘어나 적극적이고, 주체적이고, 단호해지기 때문이다.(물론 40대에 되는 경우도 있지만.)[19] 심지어 사망했는데 골칫거리가 사라졌다고 좋아하거나 심지어 장례도 안해주는 경우도 있었다.[20] 레진코믹스의 웹툰 단지도 바로 이런 끔찍한 차별을 받은 여자(작가 본인)의 이야기이다.[21] 참고로 장녀는 그래도 넘어가졌는데, '큰딸은 살림 밑천'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성차별을 볼 수 있는 게, 첫째딸로 태어나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부터 공부 대신 일을 하여 돈을 벌어서 부모와 동생들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음을 이런 표현에서 엿볼 수 있다. 같은 첫째라도 아들로 태어났으면 이런 일은 매우 드물었고, 전술했듯 모든 지원을 몰빵받아 장남 혼자서만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이러한 일은 적어도 1980년 이전 얘기다. 2000년대 초중반 MBC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 타임머신에서 딸만 셋을 낳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세쌍둥이 손자들이 놀러오자 손녀가 갖고 있던 크레파스를 뺏어서(!) 손자에게 주는 막장 행각을 보여준다. 아들만 셋보다 딸만 셋이 더 흔했던 것도 그 탓이다. 게다가 그 후 며느리는 기어이 아들을 낳고 사망하는 안타까운 스토리. 참고로 타임머신은 신문에 나온 사실만 재연극을 만들기 때문에 해당 내용은 실화이다. 게다가 1983년에 당시 35살인 현종순씨도 시어머니가 아들을 낳으려고 해서 딸만 네명 낳았다고 한다.[22] 다만 여자 이름에 를 붙이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이름을 붙이게 강제한 것(창씨개명)이 남은 탓이 크다. 사족으로 일본 여성 이름 말미의 子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코'다.[23] 사실 이거 마칠 종을 넣은 거다. 사람 이름에 을 넣는 것은 보통 기피되는 행위다.[24] 언년같이 년으로 끝나는 이름 등.[25] 위에 그 예시들도 그렇다.[26] 셋째, 넷째가 딸일 경우 남자 이름을 지어줬더라도 남동생이 태어나면 예쁜 이름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27] 그런데 고려시대는 이미 유교는 들어온 상태였다.[28] 권순형, 「원나라 공주와의 혼인 및 공녀」, 『한국문화사』 권1, 2005, 85~96쪽[29] 집안의 대는 양반가에서 주로 집착했었다. 그러나 족보를 매매하여 자신을 양반 가문으로 위조할 정도로 양반의 생활양식이 기품있는 것이고 가문을 따지지 못하면 천하게 인식되다보니 모두 대를 잇는 태도를 흉내내려고 하였고, 이런 태도가 인간이라면 지킬 윤리로 설명되었다. 심지어 농민에게 불리한 여성 재혼금지도 민간에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결국 광복 이후 남아선호사상을 억제하는 캠페인은 전 계층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30] 이는 일본이 유교의 영향이 적고 불교가 득세한 데다가 데릴사위 문화로 딸만 있으면 남자가 여자쪽으로 성을 바꾸고 들어와서 대를 이을 수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31] 남성은 걱정할 것이 없는게 60대에 또 자식을 얻은 사례는 드문드문 나오는 정도다. 아니, 나이 관계 없이 성관계가 가능하거나, 그게 안 되어도 정자만 얻을 수 있다면 아이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자가 60대에 아이를 낳은 사례는 뉴스에 나올만큼 희귀한 일이다.[32] 만약 가능은 하다 해도, 그 나이대에는 아이를 키울 체력이나 성인까지 키워낼 양육비와 교육비를 감당하기가 힘에 부치는 경우가 많다. 성인으로 키워낼 때까지 부모가 살아있을지도 불분명하고...[33] 물론 현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다.[34] 통상적으로 극빈층, 장애인, (흉악)범죄자가 해당된다.[35] 이혼가정 자녀들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무신경한 말과 차별로 인해 살면서 상처받는 일이 많다. 그나마 취업은 능력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투라 문제가 되지 않으나, 결혼시장에서 이혼가정 자녀의 결혼은 쉽지 않다. 특히 남성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하는데, '편모가정에서 자란 남성은 양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산 홀시어머니아들한테 집착해서 며느리한테 지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더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사실, 단순한 편견이 아니다. 이는 가정 내 권력과 관계가 있다. 시집살이 문서 참고.) 게다가 이혼한 부부가 각각 재혼까지 했다면 시월드가 2배가 된다. 어지간한 문제가 아니고서야 자기 탓으로 자식에게 이런 페널티를 주고 싶은 부모가 몇이나 될까?[36]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전 배우자가 아이를 맡아 키우고 있는 자신에게 양육비를 안 준다며 상담하는 사람들의 86%가 여성이다. 물론 남성이 아이를 키우면 여성이 양육비를 보내주지만, 여성이 안 준다며 상담하는 경우는 단 14%뿐이라고. 2019년 법 개정 추진 중.[37] 전 배우자가 재혼하지 않았는데도 자기 친자식 양육비 안 주려고 온갖 추태와 발악을 하며 패악을 부리는(모든 재산 명의를 가족 것으로 다 바꿔놓기, 연락처 바꾸고 집까지 이사해 잠적하기, 직장까지 그만둬버리기 등) 양육비 안 주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으니, 재혼했는데 왜 굳이 내가 돈을 줘야 하냐며 버팅기는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38] 새아빠 쪽의 피 안 섞인 친척들, 의붓형제,새아버지의 친구 포함[39] 서구권으로 이민 간 한국 할아버지가 손자를 발가벗겨 앉혀놓고(당연히 성기가 다 보이는 상태로) 첫돌 기념사진을 찍어 큼직하게 현상해 자기집 거실에 걸어놨는데, 이웃집의 현지인이 왔다가 그 사진을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 할아버지는 온동네에 변태 노인으로 소문나서 매장당할 뻔했지만, 나중에 소문을 들은 한국인 목사가 할아버지에게 귀띔을 해줘서 사진을 떼어냈다고 한다.[40] 사실 이 쪽은 아들을 못 낳았다는 것도 있었지만, 저거 외에도 불륜(간통)과 근친상간, 반역의 죄도 있었다. 하지만 헨리 8세가 앤을 내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아들이 못 낳았다는 게 결정적이였고, 앤에게 씌어진 불륜과 근친상간 혐의는 누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41] 일본 황실 최고령 출산이었다. 키코 비는 1966년생, 히사히토 친왕은 2006년생. 일본 황실 최초의 제왕절개이기도 하다.[42] 사실 일본 황실이 어째서인지 아들이 너무나도 귀해져서,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나기 전까지 41년 동안이나 왕자가 태어나지 않고 공주만 줄줄이 9명이 태어났다. (1969년 사야코 공주, 1981년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공주, 1983년 미카사노미야 요코 공주, 1986년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 1988년 센게 노리코, 1990년 모리야 아야코, 1991년 코무로 마코, 1994년 아키시노노미야 카코 공주, 2001년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 문제는 덴노 계승과 관련된 황실전범은 여자 계승, 여계 계승 모두 부정하는지라, 일본 황실은 어떻게든 남자아이 하나는 얻어야 간당간당하게나마 대를 이을 수 있는 처지였다. 문제는 그 불똥이,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너무나도 명백히 밝혀진 시대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인 일본에서 엉뚱하게 며느리 탓으로 돌려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여전히 일본에서는 여성인권이 약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43] 이는 자신이 딸인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남자의 삶도 살아보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44] 이 아들에게는 석철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지지 않았다.[45] 여자다. 이름부터 학대 수준.[46] 그녀도 딸부잣집 막내였지만 강도의 습격으로 언니들을 모두 잃고 오빠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47] 서인숙의 시어머니[48] 특히 호색한 캐릭터 다수가 본인이 남자임에도 남성혐오증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49] 남존여비는 여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여주인공이 딸을 낳기를 원하면서도 여주인공에게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으며 강간을 하거나 성관계를 난폭하게 하는 클리셰가 흔하다.[50] 단 2010년대 이후에는 남아 선호 사상이 옅어지면서 딸이 태어났어도 등장인물이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51] 블랙 가문은 여자도 이름과 얼굴을 그려놓는 걸로 언급된다.[52] 베트남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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