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오세티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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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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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오세티야 전쟁
Вооружённый конфликт в Южной Осетии
რუსეთ-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ს ომი
Russo-Georgian War


파일:663452342364646.jpg

조지아 국경을 넘어 진격하는 러시아 연방군 소속 T-72B
날짜
2008년 8월 8일 ~ 2008년 8월 12일
장소
조지아 북부[1]
교전국
[[러시아|

러시아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
]]

[[남오세티야|

남오세티야
display: none; display: 남오세티야"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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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하지야|

압하지야
display: none; display: 압하지야"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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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조지아
display: none; display: 조지아"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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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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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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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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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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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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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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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그리스|
그리스
display: none; display: 그리스"
행정구
]]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display: none; display: 아르메니아"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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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파일:러시아 국기.svg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파일:러시아 국기.svg 블라디미르 푸틴
파일:러시아 국기.svg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라트 쿨라크메토프
파일:남오세티야 국기.svg 에두아르트 코코이티

파일:조지아 국기.svg 미헤일 사카슈빌리
파일:조지아 국기.svg 다비트 케세라슈빌리
전력
[[러시아|
러시아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
]]
70,000명
[[남오세티야|
남오세티야
display: none; display: 남오세티야"
행정구
]]

- 병력 3,000명
- 평화유지군 1개 대대
[[조지아|
조지아
display: none; display: 조지아"
행정구
]]

- 병력 10,000여 명
- 경찰 810명
피해 규모
[[러시아|
러시아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
]]

- 67명 전사
- 283명 부상
- 1명 실종
- 12명 포로
- 2대의 전차 상실
- 1대의 폭격기 격추
[[남오세티야|
남오세티야
display: none; display: 남오세티야"
행정구
]]

- 87명 전사
- 69명 부상
- 27명 포로
- 민간인 162명 사망
- 민간인 225명 부상
[[조지아|
조지아
display: none; display: 조지아"
행정구
]]

- 180명 전사
- 1,174명 부상
- 4명 실종
- 49명 포로
- 민간인 224명 사망
- 민간인 547명 부상
- 전차 20대 상실, 65대 피탈
- 장갑차 20대 상실, 15대 피탈
- 자주포 2대 상실, 8대 피탈
- 대공미사일 체계 8개 상실 및 피탈
- 공격기 3대, 수송기 2대, 헬기 3대 격추
- MCRC 상실
- 해군 전력 전멸
- 다수의 군수물자 및 서방 지원품 상실
결과
러시아, 남오세티야, 압하지야의 승리
영향
러시아-조지아 관계 악화로 인한 외교관계 단절
조지아의 독립국가연합 탈퇴 및 친서방 외교 전향

압하지야, 남오세티아의 완전한 독립

1. 개요
2. 배경
3. 전개
4. 각군의 실태
4.1. 차포 떼고 선공을 한 조지아군
5. 결과
5.1. 조지아의 피해
5.2. 무기 압수
6. 후폭풍
6.1.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
7.1. 긍정론
7.2. 부정론
8. 이후
9. 여담
10.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south-ossetia-war-1.jpg
사람아기 불곰을 때렸다가 어미 불곰한테 흠씬 두들겨맞고 미국, NATO, 유럽 연합을 불러보지만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는다.


파일:attachment/54164_600.jpg
"...어디 원하는만큼 「엉클 샘」을 외쳐보시지."[2]
2008년 8월 8일[3] 미헤일 사카슈빌리 정부 하에 친서방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조지아가 러시아가 지원하는 미승인국남오세티야[4]를 '수복'하기 위해 공격하자 남오세티야를 지원하는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전면 개입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같은 해 8월 12일 나흘 만에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료되었다.

이 전쟁 당시엔 조지아의 나라 이름이 러시아어식 명칭인 그루지야(Грузия)로 한국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었고 또한 대한민국의 공식 표기법이 그리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언론 보도 등은 그루지야로 검색해야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다음 해인 2009년 그루지야 외무부에서 명칭을 영어식인 조지아로 써달라고 부탁하였고 이후부터 조지아로 불리게 되었다. 참고로 조지아어로는 둘 다 아니고 사카르트벨로(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라고 부른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1990년대 내내 지속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혼란과 국방력 약화에 시달리다가 2000년대 고유가 시대에 힘입어 국력을 회복하는 추세였는데, 남오세티야 전쟁은 이러한 러시아의 부활을 만천하에 알리는 동시에 신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배경[편집]


원래 남오세티야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의 자치주였으며, 그래서 독자적인 자치정부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1990년 그루지야 SSR에서 부흥한 민족주의로 인해 남오세티야가 피해를 입자 그루지야 SSR에서 남오세티야 소비에트 민주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고 그루지야 의회는 즉시 남오세티야 자치주를 해체했다. 그루지야가 소련을 탈퇴하면서 남오세티야의 자치정부는 완전히 해산되었고, 독립한 조지아는 남오세티야에게 자치권을 위해 많은 제한을 요구했다. 이에 반발한 남오세티야[5]가 다시금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조지아 정부가 군을 파견해 1991년 이후로 1년간 내전이 벌어졌다. 이를 1991~1992년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후, 러시아가 개입한 3자 합의에 의해 츠힌발리 지역을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해 겨우 정전에 합의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남오세티야와 러시아의 밀월관계가 시작된다. 반대로 조지아는 소련 최후의 외무상을 지내기도 했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에 의해 경제 발전을 명목으로 서방과 급속히 접근하게 되고, 조지아는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로부터 생산되는 원유천연가스의 주요 수송로이기도 해서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BTC 파이프라인 등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였다.

이후 21세기 들어 고유가 영향으로 부활에 성공한 러시아와 그와 대치한 미국유럽연합 사이에서 전개된 파워 게임이 촉발되게 된다.

2003년, 장미혁명으로 셰바르드나제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미하일 사카슈빌리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한 적도 있는 친미파에다 반러 민족주의자로서, EU에게 조지아의 NATO 가맹 합의를 이끌어내고 미국에게는 거액의 군사원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2006년, 남오세티야 공화국의 국민투표[6]에서 잠재되어 있던 문제가 터진다. 선거 결과는 반대 60표(0.12%)로 독립파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조지아 정부는 이를 '러시아에 의한 강제병합음모'라 비난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다. 2008년 8월 1일 츠힌발리 도로 주변을 순찰하던 조지아 경찰 트럭이 IED에 피해를 입어 5명이 부상당했다. 조지아군이 보복으로 저격 공격을 하여 남오세티아 병력 4명을 사살했다. 이에 남오세티야군은 국경에 인접한 조지아 마을에 포격을 가했다. 양측은 포격을 주고 받아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이로 인해 조지아군은 남오세티야를 진압하기 위해 자치주로 진공을 결정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해버리자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 20개국이 코소보의 독립을 곧바로 공식적으로 인정해 코소보는 일방적으로 세르비아에서 독립해서 나오게 된다. 이에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 직후 자신들도 러시아와 유엔에 독립 승인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또한 서방의 일방적인 코소보 독립 추진에 반발한 상태였는데 2008년 2월 15일 외부무 성명에 서방에 의해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이 인정된다면 조지아 내 두 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바뀌게 될 것 이라고 경고했다.

이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에 대해서 당사자인 조지아와 남오세티야의 의견은 당연하게도 상반된다. 남오세티야가 조지아를 상대로 독립을 요구하고 일어났고 조지아는 그런 독립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재의 남오세티야가 있는 남캅카스는 원래 오세트인들의 땅이 아닌 조지아인들의 땅으로, 17세기에 캅카스 북쪽에서 넘어온 오세트인들을 당시 조지아인들이 세운 카틀리 왕국의 국왕이 남캅카스 일대에 거주하도록 허락한 것이 남오세티야의 시초이다.[7] 오세트인들은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국가를 세운 적이 없으며, 이들이 조지아 북부에 정착해 들어온 것은 약 300여년 정도이다. 조지아 입장에서는 지금의 남오세티야 지역은 고대부터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조지아의 영토이다. 국제법상으로 보면 남오세티야는 미승인 국가[8]이며 조지아 입장에선 분리주의 단체에 불과하다. 또한 남오세티야가 선제적으로 조지아인 마을을 폭격하거나 조지아군을 상대로 먼저 피해를 입힌 점 역시 고려해야한다. 하지만 조지아-러시아-남오세티야 간의 평화유지군에 의해 공동관리되던 남오세티야의 수도인 츠힌발리를 선제공격한 것은 앞선 도발과는 양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전쟁 책임을 남오세티야만의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오세트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엄연히 남오세티야 지역은 소련 시절부터 오세트인 자치주가 있었고, 조지아가 이를 일방적으로 해산시킨 것이기 때문에 조지아가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또한 해당 지역은 엄연히 오세트인이 다수이며 이것도 오세트인의 강점이 아니라 엄연히 허가받고 들어와서 사는 것이고 자치주 역시 누가 외압을 줘서 만든게 아니라 조지아가 스스로 줬다가, 갑자기 조지아 내 민족주의가 발흥해 조지아어를 남오세티야 자치주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자치권을 없애는 행위를 한 것이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양국 분쟁의 평화유지군[9]의 역할을 맡은 러시아가 남오세티아를 편들며 참전한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한다. 당시 러시아의 참전과정을 보면, 조지아가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는 츠힌발리를 침공하면서 러시아군을 선제적으로 공격했으며 단순히 남오세티야 진압에서 끝나지 않고 러시아계 민간인, 오세트인, 친러 성향 민간인에게도 공격을 가하는 등[10], 상당히 무리한 공세를 한 덕에 서방에서도 조지아를 지원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조지아의 행동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자국민 생명보호를 이유로 참전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러시아의 참전에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러시아 자국민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위 문단에서 설명하는 러시아 자국민의 범위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2002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11]를 대상으로 자국을 떠나지 않고도 편리하게 시민권을 취득하고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남오세티야의 인구의 약 90%가 이 법안을 통해 러시아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즉 이 모든것이 러시아의 계획이라면, 러시아가 보호한다고 주장하는 자국민이 애초에 남오세티야 거주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12] 설령 이런 뒷사정이 없더라도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타국을 침범하는 행동이 정당한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고, 러시아가 평화유지군이긴 했으나 해당 평화유지군 협정에서 러시아에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는 문제가 있다.[13] 즉, 이런 제반 사정들을 고려할때 러시아가 결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지아의 군사행동은 남오세티야 자치정부를 향한 시점에서 이미 협정위반을 한 상태였고,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엄연히 조약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던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행위까지 벌였기에 충분히 정당하다는 반론도 있다.


3. 전개[편집]


파일:600px-2008_South_Ossetia_war_en.svg.png
  • 2008년 8월 7일: 조지아군의 남오세티야 공격.
  • 8월 8일: 러시아군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해당 주를 침공하여 조지아군과 전투. 조지아는 예비군동원령을 선포.
  • 8월 9일: 러시아군은 조지아군을 일시 제압하여 츠힌발리에서 축출. 동시에 러시아군은 조지아 전역에 공습을 시작함. 이에 대해 조지아 대통령은 계엄령을 발령하고 조지아 전역을 전시 상태로 선언함. 또한 휴전을 러시아 측에 요청하였으나, 러시아 정부가 거부함.
  • 8월 9일~11일 오후: 잠시간의 교착상태. 그러나 지상만 교착상태이지 러시아군은 적극적인 해상 및 항공작전을 지속하고 있었다.
  • 8월 11일 저녁~12일: 러시아군, 지상전이 벌어지던 츠힌발리 지역을 벗어나 전 전선에서 총공세 개시. 공세 몇 시간만에 조지아군의 방어선은 붕괴되었고, 중앙거점도시 고리, 군사물품 야적장이 있는 군항 포티, 서부거점도시인 세나키가 모두 함락당함. 특히 고리의 함락으로 조지아 국토는 분단당함.
  • 8월 12일: 조지아는 러시아에게 사실상 항복을 했으나, 러시아는 공세를 멈추지 않음.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긴급 중재 시도.
  • 8월 12일 오후: 러시아군 전선부대 공격 중지. 고리 방면의 러시아군 선두부대는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약 50km 떨어진 곳까지 진격한 상태였음.
  • 8월 13일: 조지아와 러시아는 프랑스가 내놓은 평화안에 합의함.
  • 8월 14일: 미국이 조지아 사태에 개입할 뜻을 선언하자 러시아가 반발함.
  • 8월 16일: 러시아가 평화안에 최종 서명.
  • 8월 23일: 러시아가 철군협정에 서명하면서 군대를 철수했지만, 미국은 국경 인근 완충지대에 군대를 남긴 것이 협정 위반이라며 반발함.


2008년 초에 있었던 조지아군과 USEUCOM(미 유럽군) 합동의 <Immediate Response 2008>에 심기가 불편해진 러시아는 4월에 MiG-29로 월경한 조지아군의 UAV를 격추시키더니, 7월에 조지아 국경 부근에서 <Caucasus Frontier 2008>이라는 군사훈련을 강행, 게다가 훈련 종료 후에도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아 양측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진다. 서로가 군사행동을 계속 경고하는 과정에서 접경지역에서는 남오세티야 무장조직의 도발과 조지아 정부군의 반격이 지속, 확대되었다. 그러나 서방 정부들 사이에는 곧 닥쳐올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쪽도 본격적 충돌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 섣부른 기대는 결국 최악의 형태로 무너지게 된다.

파일:attachment/osetia_war1.jpg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장[14]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15]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진. 푸틴과 부시의 가장 유명한 사진중에 하나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는 8월 8일, 조지아군의 포격이 시작되어 평화유지군[16]으로 있던 러시아군 18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을 입었다. 러시아군은 바로 제58군 예하 제135독립차량화소총병연대를 선봉으로 반격을 시작했고, 러시아군과 조지아군은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 시내로 진군, 본격 충돌이 시작되었다. 올림픽 개회식장에서 푸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전쟁의 결과는 러시아군의 참전을 예상 못했던 조지아의 참패였다. 전쟁 당시 러시아가 투입한 병력 수는 7만 9천명으로[17] 주둔 중이었던 조지아군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18] 압도적인 차이의 공중·기갑·해상 전력으로 10일, 츠힌발리 근교를 완전히 장악했고 여세를 몰아 조지아 국경을 월경, 12일에는 거점도시 고리(Gori)[19]에 제76근위 공중강습사단을 투입해 점령하여 후퇴하는 조지아군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동시에 압하지야 방면으로도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어서 결국 조지아군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패퇴하게 된다.


(연령제한영상) 8월 11일에 촬영된 영상. 영상에서 보이는 군 병력들은 남오세티야군 병력들이고 전사한 시신과 상실된 전차들은 조지아군의 것이다. 남오세티야군은 러시아군의 지원에 힘입어 조지아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

인터넷 역시 공격대상이 되었는데, 전쟁 초기부터 조지아의 인터넷망에 러시아군의 사이버 부대의 소행으로 보이는 대대적인 해킹과 디도스 공격이 시작되어 조지아의 전국적인 인터넷 네트워크망이 마비가 되어버렸다. 또한 이렇다 할 공중전력은 이스라엘에서 개량사업을 받았던 Su-25 몇 대가 전부였던 조지아군은 개전 초기부터 러시아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지상부대는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관련 사진을 보면 아예 러시아측 공격헬기가 유유히 날아다니며 기총소사를 퍼부었는지 조지아군의 상실된 경장갑차나 군용차는 대부분 지붕에 구멍이 뜷려 있고 내부는 피범벅이다. 러시아군은 자국의 Su-25Mi-24를 동원하여 조지아군의 기갑부대를 섬멸하기 시작했으며, Tu-22M으로 수도 트빌리시의 대통령궁과 주요 군사지역과 공군기지를 폭격하다보니 조지아 내각은 한 곳에서 전투지휘를 못하고 소련 시절 건설되었던 여러 벙커들을 전전해야 했다.

다만 조지아는 당시 NATO 회원국이 아님에도 파격적으로 NATO의 항공감시정보처리소에서 러시아 공군을 감시할 수 있었으며, 우크라이나이스라엘 등에서 상당한 양의 방공무기들을 제공받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조지아 방공망은 러시아의 Tu-22M을 격추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Tu-160을 발진시켜 미사일 단 두 발로 조지아군의 중앙방공망을 날려버림으로서 개전 2일만에 조지아 방공망을 마비시켰다. 결국 제공권은 물론이고 러시아 흑해 함대가 해상봉쇄를 가해 제해권까지 장악하면서 조지아군은 모든 면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특히 러시아군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장악했고, 조지아군은 사용할 수 있던 모든 해상전력인 미사일 고속정 5척이 해상봉쇄를 뚫기 위해 접근하다가 북해함대 소속 나누추카급 초계함에 2대가 격파당하고 퇴각하고 만다. 결국 미군 원조물자 야적장이 있던 군항 포티(Poti)시를 러시아 해군보병대에 의해 점령당하자 조지아군은 전쟁수행능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렸고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제안한 화평교섭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 해군의 시점에서 촬영된 당시 해전 영상. 심지어 함대공 미사일을 발사해 경비정에 불과한 조지아군 함정을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뭐, 애당초 조지아 해군 소속 함정들은 대부분 고속정 수준의 소형 함정들 뿐이라서 상대가 될수 없었지만.[20]


포티 시를 점령한 러시아군. 원조물자야적장에 있던 험비들도 노획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4일에 조인된 교섭으로 조지아는 남오세티야압하지야를 둘 다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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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교섭 이후로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군을 앞세운 러시아군의 진격은 계속되었고 사실상의 전투 종결은 미국 정부 특사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트빌리시에 도착한 16일이 되어서였다. 당시 러시아군은 트빌리시 55km 앞까지 진군한 상태였고 조지아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21]

결국 미국 정부에서 조지아에 개입할 것을 선언하였고[22] 이를 예상못한 러시아는 내정 간섭이라며 크게 반발한다. 이후 미 해군 제6함대와 NATO 혼성함대가 흑해로 들어와 당시 포티 항구를 봉쇄하던 러시아 흑해 함대와 대치하는 상황에 이르자 자칫 일이 너무 커질 것을 우려한 러시아 정부가 프랑스의 화평교섭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군대를 조지아에서 철수시키며 종전을 선언한다.


4. 각군의 실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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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힌발리의 평화유지군 본부 앞에 버려진 후 전소된 조지아군의 T-72 SIM-1 전차.[23]

러시아는 비록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군 내부의 고질적인 장교단과 군장비 정비의 부실함이 푸틴 집권 이후에도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공군의 경우 압도적인 항공전력을 가지고도 개전 후 철도망 마비조차 확실히 하지 못 한다거나, 개전 하루 만에 Tu-22M 1기와 Su-25 3기[24]를 손실하였다. 이후 조지아 공군은 러시아 공군의 Su-24 2기와 Su-25 1기, 그리고 Mi-24 1기를 추가로 격추했다고 밝혔고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

그나마 통신시설은 제대로 작살을 내놓아서 체면은 살렸다.[25] 덤으로 조지아의 요충지 고리시에 일부 러시아군이 진입한 것이 함락된 것으로 잘못 전파되어, 조지아 사령부가 수도 방위를 위해 주력부대를 재배치하는 틈을 노려 주력군에게 공습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히기까지 했다.

소련군에서 알짜전력을 물려받은 러시아군이 저런 상태였음을 감안하면, 그보다 훨씬 곁다리 전력을 물려받은 조지아군은 더 막장임을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다. 조지아군은 총병력 3만 7천명에 공군은 요격기가 한대도 없고, 그나마 지상공격기인 Su-25가 20대 미만이 있었으나, 제공권이 없는 상태에서 공격기가 출동해봐야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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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러시아군 전차의 주포 속으로 굴러들어간 조지아군 전차에서 병사가 뒤를 돌아보며 외친다: "살려줘!"

한마디로 말해서, 조지아군은 맨땅을 들이받는 천하의 무뇌짓을 자행한 것이었다.

조지아군은 초반에 비교적 선전을 했다고는 하나, 거점 도시들을 무기력하게 내주고 보급이 끊기면서 근 2년 간 서방화된 군대의 역량을 정상적으로 펼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흑해 해전에서 보여주듯 적군인 러시아군마저 놀랄 정도의 뛰어난 함대 기동을 선보이며 비록 군장비는 열세일지 몰라도 군인들의 역량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으나 러시아의 대공 미사일에 하나 둘씩 격침 당했다.[26]


4.1. 차포 떼고 선공을 한 조지아군[편집]


조지아군은 2007년부터 미국으로부터 일부 부대를 시작으로 무기 및 군사훈련 지원을 받으며 동구권에서 서구권으로 체계를 개편하는 시발점에 있었다. 문제는 그 서구화된 1선 군대는 다 이라크에 가 있었다는 것이다.

샤카슈빌리 정권의 친서방 정책과 이에 대한 서방권의 화답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샤카슈빌리의 조지아 정부는 서방 세계의 우호도도 쌓고 더 많은 지원도 이끌어내기 위해 이라크 전쟁 이후 치안이 혼란에 빠진 이라크에 재건지원단으로 자국군을 파병한다.[27] 이 파병규모는 초창기에는 800여 명이었으나 2007년에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어 1개 여단 총 2,000여 명에 달했고 이는 이라크 파병국 중 전쟁 주도국인 미국과 영국의 뒤를 잇는 3위에 해당되는 규모이며 조지아 지상군 전투부대의 20~25%를 차지하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샤카슈빌리나 조지아 군 수뇌부가 러시아와의 전면전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때문에 이런 대규모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한 것이지만, 하필 그 시점에 전쟁이 터졌다. 개전 직후인 8월 9일 조지아 정부는 급히 이라크 파병부대에게 본국 귀환 명령을 내렸으나, 애시당초 조지아 같은 소국에는 타국에 있는 자국군을 급히 본국으로 소환할 수단이 철저히 부족했다. 육로는 당연히 불가능, 항공로의 경우 이라크와의 거리는 그나마 가까운 편이었지만 수송기가 없었다. 자국 국적 민항사라도 있으면 여객기라도 징발했겠지만 역시 없었다. 급히 타 국적 민항사들에 전세기 임대를 요청했지만 자국도 아닌 타국 정부의 군사 목적 전세기 임대를 흔쾌히 수락할 항공사는 없다. 더군다나 조지아의 제공권을 바로 러시아가 쥔 상황에서 병력을 여객기로 나르다가는 러시아 전투기에 격추당할 뿐이었다.

그나마 개전 초기 일부 선두 부대가 (격추시켰다간 자칫 잘못하면 3차대전 찍어야 하는) 미군 수송기로 급히 본국으로 귀환하여 이라크 파병군용 사막색 위장복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전선으로 향했지만 미국도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각오할 순 없었던지라 수송기 지원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전면적인 철수 지원은 종전 후에나 이뤄졌다.

결국 예상 못 한 일이긴 하지만 하필 주력이 이역만리 파병을 가서 자국 방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데다, 기대했던 NATO 가입은커녕 전쟁 기간 동안 NATO나 미국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지아는 이라크 파병군을 정식으로 철군시킨다. 그러나 그렇다고 약소국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아주 포기할 수 없었던지라, 이듬 해에 병력 규모를 줄인 800여 명 선으로 아프가니스탄에 ISAF로 파병한다.


5. 결과[편집]


압도적인 전력으로 승리한 러시아는 전임 국가인 옛 소련의 명예를 되찾으면서, 남오세티야의 모든 영역을 신속하게 접수하였다.

이 전쟁으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공화국이 완전히 독립했고 조지아는 즉각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저 두 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한 것은 러시아와 친러시아 국가인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시리아 5개국뿐이다. 바누아투는 압하지야만 승인하고 남오세티야는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도 바누아투는 후에 압하지야 승인을 취소했다. 투발루는 한동안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승인했다가 나중에 철회했다. 블라디캅카스쪽 국경도 폐쇄됐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다시 열렸다.


5.1. 조지아의 피해[편집]


  • 영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지역이 조지아의 수중에서 벗어나 독립하면서 조지아는 20% 면적의 영토를 잃었다.
  • 조지아군: 169명이 전사하고 947명이 부상하고 1명이 실종되었다. 39명은 러시아군의 포로로 잡혔다. 이는 1개 연대 하나가 무력화 된 수준으로 소규모의 조지아군 입장에선 심각한 인명피해였다. 조지아 경찰 병력도 11명이 순직하고 227명이 부상하고 3명이 실종되었다. 10명은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

  • 장비의 손실: T-72 전차가 총 20대가 격파되었으며 그 중 10대는 츠한발리 전투에서 손실되었다. 65대의 T-72 전차는 러시아군에 노획되었다. 조지아군은 총 85대의 T-72 전차를 손실했고 이는 조지아군 전체 기갑 전력의 40%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 장갑차의 손실: 12대의 장갑차 전력이 전투 중 격파되었으며 20여대의 BMP 보병전투차는 러시아군 수중에 떨어져 노획되었다. 이로써 조지아군은 총 30여대의 장갑차를 손실했다. 튀르키예제 코브라 전술차량도 2대가 격파되었고 상용자동차와 트럭도 12대를 손실했다.

ShKH vz.77 Dana 자주포도 2문이 격파되었으며 2문은 러시아군에 노획되었다. 2S7 피온 자주포 6문도 노획되었으며 120mm 박격포를 포함한 20여문의 포병 장비들이 러시아군에 노획되었다. Buk 대공미사일 발사차량 2기와 탄약장전차량 1기가 노획되었고 9K33 오사 대공미사일 발사차량도 5기가 노획되었다. 또한, 1728정에 달하는 소화기들이 러시아군 수중에 떨어졌다.

  • 조지아 공군: 제한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결정적으로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조지아 공군의 An-2 수송기 3대가 지상 주기중 러시아 공군의 폭격으로 상실되었으며 Mi-24 공격헬기 2대와 Mi-14 헬기 1대는 러시아 공수군이 불을 질러버려 전소되었다.

  • 조지아 해군: 문자 그대로 소멸되었다. 흑해에서 러시아 해군 흑해함대의 나누추카급이 함대공 미사일로 조지아 해군 경비정 하나를 격침시킴으로써 제해권은 러시아 해군이 차지하게 되었으며 포티 항구를 러시아 해군 보병대가 상륙해 조지아의 트빌리시 미사일 고속정을 비롯한 주력함 6척을 침수시켜버리고 조지아 해군 본부를 그야말로 탈탈 털어버렸다. 그 결과 조지아 해군은 2009년 부로 조지아 해안 경비대에 통폐합될 정도로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 조지아 민간인: 마찬가지로 심각했다. 조지아 민간인 224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실종되었다. 부상자도 547명이 발생했다. 조지아 주요 웹사이트들도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미국은 조지아군 재건을 위해 3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서 조지아군은 여전히 무력한 상황이다. 미국도 그 직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진 데다가 러시아와의 불필요한 외교 마찰을 피할 필요성도 있었다.

또한 기세등등해진 러시아는 조지아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 이스라엘우크라이나를 압박하여 군수물자 수출을 전면 막아버린다.[28]

조지아 정부는 무리하게 군사도발을 강행하는 바람에 대박 대신 쪽박을 차게 된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외유와 메드베데프의 휴가라는 러시아의 정치적 공백을 노려서 병력을 동원했다고는 하나, 러시아 흑해함대가 해안을 완전히 봉쇄한 상황에서 장기전에 돌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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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제 SSh-68 헬멧에 AKM으로 무장하고 러시아군의 폭격을 피해 이동하는 조지아 예비군. 조잡해 보이는 건 이들이 예비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던 부분. 여느 나라들이 그렇듯 예비군들은 창고에 있던 구형 장구류를 지급 받는다.[29] 그래도 전선에서 러시아군과 싸웠던 현역들은 최소 AK74를 지급 받았다. 정예화된 몇몇 여단은 부시마스터제 M4가 제식 화기일 정도. 게다가 중국제, 우크라이나제 방탄복과 자국에서 생산한 전투조끼를 지급 받았고 00년대 미군에게서 지원 받았던 PASGT 방탄모를 착용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서구화되어 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군사지원은 그 전해인 2007년에 막 시작된 상태였고 사실 조지아군의 전력으로 러시아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특히 조지아군은 서방식 무기로 서방식 훈련을 받았으나, 정작 혼란스러운 전투에서 조지아군 보병들의 손에 들린 것은 그들이 원래 사용하던 AK 소총이었다.

총리를 비롯한 내각 총사퇴로 국내 불만을 겨우 무마시킴으로써 사카슈빌리는 2013년까지 정권을 지킬 수 있었으나 러시아는 현재도 군사적 압력을 계속하고 있으며, 남오세티야에 주둔군을 배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5.2. 무기 압수[편집]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종전 협상이 끝나 조지아에서 철군하기 전에 조지아의 남은 가용 전력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하여 사용 가능한 무기들을 모조리 압수하였다. 살아남은 T-72는 물론이고 Su-25와 각종 군사 장비, 러시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BUK-M1, OSA까지 모조리 압류했다. 또한 미군과 조지아군의 합동 훈련 때 사용된 많은 양의 미군 장비들이 포티 항구에 집결해 있었는데 진입한 러시아군은 이 물자들을 모조리 노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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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험비를 노획한 러시아군. 다른 미제 장비들은 말 그대로 미군이 조지아군에 지원한 장비였지만, 이 험비는 미군 소속으로 합동훈련 종료 후 귀환을 위해 항구에서 선적을 기다리다가 노획된 것이다. 당연히 미국은 반환을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교전 상대국에 있던 군사 장비를 압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요구를 거부했다. 미국 입장으로서는 어이가 없었겠지만 전투함이나 최첨단 스텔스기, 미사일도 아니고 일개 험비에 불과했던지라 그냥 반환 요구 및 항의 몇 번 하고 포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한테선 험비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며 러시아 입장에서도 그냥 노획한 적성장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30]

아무튼 덕분에 러시아군은 미제 군수품으로 잔치를 벌였다. 러시아군은 미제 헬멧과 미제 BDU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차(우크라이나에서 구입한 T-72) 등 가져갈 수 있는 모든 차량을 싹쓸이했다. 또한 서방제로 개량된 각종 전자 장비를 압류함으로써 상당한 이득을 챙기게 되었다.

해군의 경우 전쟁 전에는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고 있었으나, 종전 후 러시아가 쓸만한 함선들은 전부 폭파시켜 전술적 의미의 해군을 아예 없애버렸다. 이 영향으로 조지아 해군은 아예 해안 경비대에 통합되었고 현재까지도 병력 531명에 소형 경비정 몇 대 정도가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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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제 방공 미사일 시스템인 파이썬이나 Derby을 장착한 SPYDER 방공 체계도 노획했다. M16 소총, M4 카빈 소총도 대량으로 노획해서 일부는 노획 전시회로, 나머지는 전부 불태워서 폐기했다. M4 탄창류 같은 건 포장 박스만 까 보고 그냥 내무실에 버리고 갔다. 대신 소련제 군장이나 총기는 죄다 탈탈 털어간 듯.



조지아군 주둔지에서 발견된 성조기를 불태우는 러시아군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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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부 주둔지엔 "Ancle(Uncle) Sam thenks(thanks) for uniform for russian airborn(airborne)"[31]라고 낙서까지 하고 떠났다. 또한 개전 초기 제공권과 제해권이 완전히 장악당하자 러시아군은 일방적으로 조지아군을 몰살시켰고, 조지아군은 가진 자산을 모두 버리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은행까지 털었다고 한다.

괴멸당하기 전 신속하게 퇴각함으로써 조지아군은 병력 손실을 최대한 막아 냈으나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주요 군사 시설이 모두 상실되었고, 위에 서술했듯 갖가지 장비들이 모조리 상실당하거나 강탈당함으로써 사실상 무장해제 당한 셈이다. 특히 조지아군은 퇴각하면서 무기를 길가에 버리고 떠나기도 했다. 이때 약 80대 정도 있던 조지아군의 T-72 전차 중 상실된 것은 20대가량이나 나머지 차량은 버려져서 러시아군은 약 60여 대의 T-72를 획득했다. 그중 40여 대는 지금 당장이라도 사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A급이었다.


6. 후폭풍[편집]


사실 남오세티야 전쟁은 병사 몇 명이 죽고 다치니 하는 점보다, 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정치적 여파가 훨씬 컸다. 때문에 전쟁은 신냉전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새로 생긴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의 주된 전략 중 하나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에게 "너네 이제 한물 간 러시아랑 놀지 말고 우리 미국 편 해라!"라고 대놓고 추파를 던지는 것이었다. 즉, 러시아가 예전 자기 땅덩어리들에 영향력을 찾아서 미래에 다시 강대국이 되어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에게 막대한 양의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고 러시아로부터 스스로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군사 부분에서도 상당한 지원을 해준다.

조지아군과 미군이 합동 훈련을 한 것과 미군 군사 고문단이 조지아군을 훈련시킨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조지아는 그런 대(對) 러시아 포위망의 일부로서, 미국은 장기적으로 해당 국가들에 미군 기지를 건설해서 유사시 러시아군의 도발까지 막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가 이전 같이 미국을 위협할 거대한 가상 적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아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주변국에 이러한 정책을 펼치던 미국과 유럽국가들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던진 셈이 되었다. 이 전쟁이 일어난 직후 러시아 국방장관의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TV에서 대략 "주변국들이 우리한테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는 그들한테 달려 있다."는 연설을 한다. 즉, 이전 독립국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세지로서, 이 발언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니네들도 조지아와 같은 꼴 나기 싫으면 우리 러시아한테 알아서 기어라." 라는 뜻이다. 러시아와 가까운 중부유럽, 동유럽, 구소련권 국가들을 향한 외교적 수사를 시전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압하지야 공화국을 완전히 친러 세력으로 굳히는데 성공하면서 장부상으로도 이득이 남는 전쟁을 했다. 그러나 사카슈빌리 정권을 전복시키지는 않았는데, 러시아가 조지아의 내정에 개입하는 것은 국제적인 비난을 살 수밖에 없고, 괴뢰 정권을 세웠다가는 자칫하면 조지아의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같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장기전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 정부가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부처럼 자국민도 외면한 쓰레기 정부였다면 베트남처럼 접수하고 난 뒤 괴뢰 정권을 세울 수도 있었겠지만, 조지아는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될 공산이 컸고, 사카슈빌리 정권 자체도 그럭저럭 평이 나쁘지는 않았기에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조지아군을 상대로 승전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전술적 단점과 부족한 역량을 노출했던 58군 사령관을 해임해 버렸다. 조지아와 러시아의 국력 차이를 생각하면 고작 조지아를 상대로 여러 문제를 노출한 지휘관은 직위해제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러시아군은 차질을 빚기도 했지만 조지아를 완전히 떡실신을 시킴으로써 정치적·전략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게 되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우수한 전술과 역량으로 이라크군을 압도하면서 관광을 태웠지만, 잘못된 전략으로 베트남 전쟁 시즌 2를 찍은 것과는 대조적인 셈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득만 얻은 것은 결코 아니다. 러시아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 조지아의 주요 수출품인 생수와인 수입에 제재를 가했고, 전쟁이 터진 이후 압하지야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승인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러시아가 조지아 내정에 개입하고 간섭하기 위한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히든카드였다. 한 마디로 "조지아, 너네 말야. 우리 러시아 말 잘 들어라. 그러면 우리가 너희 와인과[32] 생수도 많이 사주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도 독립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줄게." 라면서 조지아를 상대로 유화책을 사용하면서 어르고 달래고 압박을 했는데, 이 전쟁으로 인해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가 완전히 독립해버렸다. 그 결과, 러시아는 조지아에 내정간섭을 하고 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아예 없어져버렸다. 게다가 전쟁까지 치르면서 조지아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기에, 조지아는 러시아에게 완전히 적대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지아는 경제구조상 러시아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조지아는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소련까지 약 300년 간 지배를 받았던 나라다. 무엇보다 조지아의 주변에서 무언가를 팔면 제값을 주고 사갈만큼 부자 나라가 러시아밖에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전략면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게다가 러시아에 대한 무역은 수출 시장 기준이라서 어떻게든 대체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러시아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남오세티야 탈환을 넘어서 조지아 전체를 뭉개버리려는 치명타를 가하는 총력전으로 강행돌파한 것이다.


6.1.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편집]


이 전쟁에 대해, 2년 뒤 한반도에서 벌어진 연평도 포격전을 거론하기도 한다. 실제로, 당시 미국중국도 아닌 북한의 포격을 한국이 일방적으로, 그것도 민간인이 사는 지역에까지 대놓고 얻어맞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보복을 불허하고, 그렇다고 적극 개입하여 북한을 응징하지도 않았다.

이후에는 여러 가지로 지원도 많이 해주고 조지 워싱턴함을 서해에 투입하는 등 무력 시위도 몇 차례 도와줬지만 조지아도 전쟁이 끝난 뒤에는 여러 모로 도와준 만큼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겠지만...

하지만 연평도 포격 사태는 북한이 사카슈빌리처럼 대책 없는 전면전을 강요해온 게 아니라 쌍방 포격만으로 끝났고, 우리 해군의 피해가 적어서 전면전으로 확대될 여지 자체가 거의 없었기에 불발된 것 뿐이다. 전쟁은 결코 장난이 아니며, 시작하기는 쉬워도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33]

그리고, 경제 규모가 큰 나라가 전면전을 벌일수록 세계에 미치는 후유증도 커진다. 미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현재 상황에서의 전면전 돌입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기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단순 교전 정도로 끝났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애초에 교전국의 경제 규모와 충돌의 강도 자체가 다른데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도 기껏해야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의 소국에 불과한 조지아와 2015년 기준 세계 경제 11위인 한국[34]의 사례를 1:1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애초에 미국과 조지아는 확고한 동맹도 아니었으며 미국에게 있어 조지아는 없어선 안될 정도로 중요한 동맹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조지아는 미국의 군사 동맹국도 아니고 단지 "친해지려는" 단계에 불과했다.

2013년 김정은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전쟁 위협 발언을 쏟아놓은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 당시 주한미군은 첨단전력을 끌고 와서 무력시위까지 벌이며 북을 압박했고, 결국 김정은은 공언과 달리 후속 국지전을 벌이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이후 그나마 서부전선 포격 사건을 벌였으나 한미 공군이 F-15 등 전투기로 합동 무력시위를 벌이고 미국 공군공중급유기까지 군산공항에 끌고 왔을 정도였으며, 주한미군MLRS가 급히 통일대교를 건너 사격태세를 유지했다. 그만큼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다.

그리고 러시아중국태평양 진출을 저지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튀르키예와 함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우방국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미 상호 간에는 엄연한 "상호방위조약"이 있다.[35] 하지만 조지아의 경우에는 이미 남오세티야에 주둔한 러시아군 평화 유지군들을 선제포격한 시점에서부터 미국 및 나토가 개입할 명분 자체가 없었다.


7. 미헤일 사카슈빌리의 거취[편집]


이 전쟁은 사실 조지아 대통령 미헤일 사카슈빌리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도박이었다. 배경 설명에는 안 나와있지만 2007년 사카슈빌리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정치적 위기에 처했고 지지율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2008년 1월에 간신히 재선되기는 했지만 사캬슈빌리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저렇게 남오세티야를 대놓고 공격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미국을 믿었기 때문이었고, 러시아가 미국 눈치를 봐서 조지아에 손을 못 대거나 아니면 미국이나 나토가 러시아군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일하게 맞장뜰 수 있는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한 핵전력을 보유한 러시아를 건드린다는 것은 미국이 할 이유도 없었고, 조지아가 털리는 것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는 최선이었다.[36] 즉,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동맹도 아닌 일개 우방국 정도는 손해보는 것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7.1. 긍정론[편집]


비록 조지아 측은 전쟁에서 완패를 했지만 사카슈빌리 조지아 대통령은 친러파에게 쫓겨나기는 커녕,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친미 정책을 펼쳤고, 거기에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단절되었다. 게다가 BTC 파이프라인의 완공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종속도 많이 완화되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친러파에게 쫓겨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 친미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어느 정도 조지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그 성과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경찰의 부패 척결이 있다. 전쟁으로 인해 군사·경제는 완전히 망했지만, 내부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여러 개혁을 취했기 때문에[37] 전쟁에서 패하고 엄청난 국토 상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했으나 오히려 사카슈빌리의 친미 정책이 더 힘을 얻었다.

  • 조지아 국민들에게 반러시아 감정을 확대시켰다. 이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가 상전 행세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국민들이 알았기 때문에 가뜩이나 지배받기 싫어하는 캅카스 민족들의 특징을 가진 조지아 사람들의 저항 정신에 기름을 붓고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지른 격이 되어 버렸다. 이와 관련된 한 가지 현상으로 전쟁 전에는 조지아 사람들이 러시아어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지만, 전쟁 후 조지아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교육 정책도 크게 바뀌어서 제1외국어는 영어로 지정되었고, 러시아어는 제2외국어로 격하되었다. 그 결과 조지아의 어린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안다. 전쟁 이후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자국명을 러시아식인 그루지야가 아닌, 영어식인 조지아라고 불러달라고 공식 요청한 것도 이러한 국민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7.2. 부정론[편집]


하지만 전후 조지아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격하게 일어났고 야당과 정부 간에 충돌이 심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반드시 위의 경우처럼 긍정적인 점만 생각해 볼 수는 없다. 게다가 2013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 야당이었던 친러시아 정당 '그루지야의 꿈'이 승리한 데 이어, 10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그루지야의 꿈' 소속 마르그벨라시빌리가 당선되었다. 과거 소련 위성국들도 친러파로 돌아선 상황에서, 조지아도 다시 친러파로 돌아설 확률이 높아졌다.

2013년부터는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할 것이라 하며, 이바시빌리시가 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첫 방문국은 미국이 될 것이라 한다. 또한 벨라루스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조지아가 다시 CIS에 들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한 말에 "신중치 못한 발언이다."이라고 일축했다. 반드시 친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 다음 행보를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런데 조지아/경제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조지아가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이다. 그만큼 러시아가 싫어도 경제적으로 러시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상 조지아가 강력한 반러 국가로 버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친서방 성향의 러시아의 남오세티야에 대한 개입을 비판하며 인정하지 않는 반러 성향의 야당조차도 사카슈빌리를 매우 싫어하며 무능함을 비판한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등 야권 정치인들조차도 러시아의 책임과 함께 조지아(정확히는 당시 정권을 잡은 사카슈빌리 정부)의 책임도 언급하며 당시 정권을 거머쥔 미헤일 사카슈빌리를 성토했을 정도. 실제로 러시아를 자주 도발해대서 사카슈빌리는 서방 세계에게도 ‘통제 불능 인물’로 찍힌 상태였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대통령이 된 후에 러시아 제재 동참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왜 러시아 제재 동참을 안 하냐고 의회에게 닦달할 정도인데[38] 이런 인물도 남오세티야 전쟁에서만큼은 조지아의 책임을 일부 시인할 정도였다. 결국 사카슈빌리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부패 혐의를 받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로 튀어서 오데사 주지사가 되었다.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학 시절 친구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카슈빌리는 현재 조지아에서 매국노, 파시스트 등등 온갖 욕을 들어먹고 있는 중이다.


8. 이후[편집]


아직도 (무너진 줄 알았던) 소련 시절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국력과 갈등에 대한 강경한 행동, 서방의 방관은 러시아 인접국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009년 9월 오바마 정권이 동유럽[39] MD를 포기하면서[40] NATO의 안전보장에 대한 동유럽 국가들의 의심은 더욱 강해졌고,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 기존의 4개국 연합체인 비셰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을 실질적인 군사동맹으로 개편, 유사시 폴란드 지휘하의 통합군을 결성하기로 했다.

전쟁에서도 쪽박을 차고, 나아가 이 여파로 해외 자본들도 무수히 나가면서 조지아는 경제까지도 우거지상이 된 건 당연했다. 그런 조지아에게 모처럼 돈되는 소식이 바로 이웃 아제르바이잔을 통하여 오게 되는데, 바로 BTK(Baku-Tbilisi-Kars) 철도 공사. 전쟁 패배 여파로 공사비가 없다고 하소연하자, 아제르바이잔은 5억 달러를 싼 이자와 같이 우선 빌려주고 부족하면 추가로 빌려준다고 했을 때 사카슈빌리는 모처럼 작게나마 웃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조지아는 이 공사를 착실하게 진행하면서 전쟁 여파로 BTC(Baku-Tbilisi-Ceyhan) 파이프라인까지 작살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없앨 수 있었다. 이후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조지아 경제는 조금씩이나마 회복세를 찾고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아제르바이잔에게도 신의 한 수가 되는데,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로 군수 물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조지아가 아제르바이잔의 편을 들어 러시아 수송차량의 통행을 금지했다. 결국 집단안보조약기구와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본토가 공격당하면 참전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사실, 내륙국이던 아르메니아는 조지아의 항구를 가로채기를 시도하다가 걸려 조지아의 분노를 얻어냈고 조지아와 갈등을 빚어왔던 외교 문제도 있었기에 아제르바이잔을 편들었던 거였다. 마찬가지로 친러 분리주의 세력과 내전을 거치면서 드네스트르 강 동안이 미승인국으로 독립하는 것을 막지 못한 몰도바나 돈바스에 친러 괴뢰정부가 건설된 우크라이나 역시 이 나라들과 관계를 유지한 아르메니아에게 분노해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편들었다.

2010년 3월 15일, 조지아의 한 방송사가 뉴스에서 "러시아가 기습공격을 가해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뻥을 치는 바람에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고,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직접 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서야 혼란이 수습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방송사는 정국 혼란이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뜻의 경고를 보내고자 했다는 해명을 했지만, 전후 2년만에 이런 뻥포를 쏘는 건 제정신인 사람이 할 짓은 아닐 듯.

그리고 사카슈빌리는 2013년에 권력 남용과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3선에 실패한 후 우크라이나로 망명한다. 유로마이단으로 출범한 포로셴코 정권의 조언자가 되었으며, 2015년 5월 29일 아예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취득해 바로 다음날 오데사 주지사로 발령받았다. 이후 그는 오데사 주에서 강력한 반부패 개혁 드라이브를 걸며 인기를 얻었고, 포로셴코 대통령을 능가하는 40%대의 높은 지지율을 가진 주요 정치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5년 12월 16일에는 우크라이나 정부 개혁위원회 회의에서 부패를 척결하지 못하는 아바코프 내무장관의 무능을 질타하다가 분노한 내무장관이 사카슈빌리를 향해 컵을 던지면서 조지아로 돌아가라며 고함을 지르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이듬해 사카슈빌리는 부패로 인해 주지사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며 사퇴했고 반정부 활동까지 하고 있다. 포로셴코는 그의 우크라 국적을 박탈해 주지사 임명 당시 조지아 국적을 포기한 사카슈빌리는 무국적자가 되었다. 2017년에는 부패척결, 선거법 개정, 심지어 포로셴코 탄핵 운동까지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검찰이 러시아로 망명한 친러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에게 자금 지원을 받고 정권 찬탈을 꾸몄다는 심히 무리수인 혐의로 사카슈빌리를 체포하려다 지지지들이 연행 차량 차문을 뜯고 그를 구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사카슈빌리의 국적을 박탈하면서 무국적자가 되었고 이에 네덜란드에 체류허가를 신청했다.

딕 체니도널드 럼즈펠드는 이 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와 싸우자!는 전쟁 구상을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못했다. 자기가 직접 싸우는 건 아니니 큰소리는 맘대로 칠 수 있지 한국에서는 딕 체니의 구상에 대한 옹호론도 나오곤 했으나, 미군이 최강이기는 하지만 최강이라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며,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고전하는 미군이 또 다시 러시아를 적으로 놓는다는 것은 당시에도 현재도 거의 불가능했다. 미국의 항공모함 전대가 러시아의 연못이나 다름 없는 흑해 앞바다까지 들어와서 남오세티아를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와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2008년 당시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경제도 엉망이었는데,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대규모로 전비를 쓰는 미군이 또다시 대규모로 러시아와 대결한다는 것은 경제붕괴를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 특히 체니와 같은 네오콘이나 미군 만능론자들의 '러시아의 전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미군이 조지아를 도와 나서면 러시아가 호락호락 물러날 것'이라는 생각은 미군만능에 젖은 모험주의적 망상에 가깝다. 1962년 쿠바 위기 때만도 당시 소련의 전력은 미국에 한참 못 미쳤지만 소련은 절대로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았고 전세계는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

더군다나 남오세티야 전쟁의 발발 자체는 조지아가 남오세티야에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던 러시아군을 공격하여 벌어진 일인데다 조지아에 주둔 중인 미군 부대도 없었기에, 이에 미국이 끼어든다면 또 명분이 없는 전쟁으로 변해 베트남 전쟁보다 더 심한 수준의 반전주의 물결이 미국 전역에 몰아칠 수도 있는 일이다.

톰 클랜시는 이미 2001년 고스트 리콘을 통해 이 전쟁을 예언했다. 그의 이름을 딴 게임 고스트 리콘에 남오세티야 전쟁을 모티브로 한 시나리오로 게임이 진행된다.

이 전쟁이 전혀 엉뚱한 소재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조지아와 러시아 양쪽 다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41] "세계는 평평하다"로 유명한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은 자신의 1999년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는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자본주의에 의한 평화 이론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아시발꿈. 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이 주장은 이미 여러 번 빗나가는데 바로 이 책 나오던 1999년만 해도 코소보 전쟁이 벌어져 맥도날드가 진출한 세르비아도 미국과 나토 같은 맥도날드가 예전에 진출한 나라들에게 신나게 폭격당해 버렸다. 실제로 코소보 전쟁 당시 세르비아 맥도날드 가게들이 불바다가 되고 부숴지는 일이 벌어지면서 맥도날드 세르비아 지점에서는 "우리도 폭격 맞습니다. 맥도날드라고 나토나 미군이 공습 안 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하소연하는 걸개를 달기도 했다. 중국 대사관 오폭 때도 중국인들이 중국에서 사업하는 맥도날드 몇몇 지점을 박살내버리기도 했다. 결국 맥도날드가 미국의 상징적인 프랜차이즈라서 반미 시위라도 벌어지면 심심하면 항상 부숴지는 셈이다. 이 이론은 빗나가가는 데에도 유구한 역사가 있는데 미국, 독일 간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인해 대서양을 경계로 분할되어버린 머크 그룹(독일)과 MSD(미국)이라던가 유명 음료수 환타의 눈물 나는 탄생 비화라던가 하는 것들은 자본주의 기반의 다국적 기업의 존재가 전쟁을 막는데 딱히 대단한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세르비아 맥도날드 지점들도 폭격을 당했으니 당시에도 뭔 헛소리냐는 비아냥을 듣던 터였다. 2014년 시점으로 이 이론이 빗나간 가장 최근의 전쟁이 남오세티야 전쟁이 되겠다.

레니 할린 감독이 조지아의 시각에서 본 영화 '파이브 데이즈 오브 워(5일 전쟁)'를 제작했고, 러시아에선 러시아 시각으로 본 풍자 로봇 영화 '어거스트 에이트'를 제작했다. 둘 다 시가전을 비롯 전반적인 전투 고증 자체가 잘 되어 있다. 파이브 데이즈 오브 워는 조지아인 전쟁 기자가 러시아에게 침공당하는 남오세티야에서 살아남기, 어거스트 에이트는 디셉티콘같이 표현된 조지아군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재밌는 건 양측 영화 모두 '우린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알고보면 너희들도 사실은 좋은 사람들이었을 텐데.' 같은 심리가 반영되어 있어서, 주인공의 편을 들어주는 적군이[42] 등장한다는 점이다.

전쟁 후 조지아는 유럽 연합 가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실 조지아는 그전부터 유럽 연합 가입을 추진해왔지만 논의는 흐지부지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조지아는 서방을 향해 나토와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 되어야 자국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홍보했고 유럽 연합 역시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조지아와 유럽 연합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조지아는 동유럽에서도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43] 경제 수준도 동유럽 국가들 중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유럽 연합 가입이 그렇게 쉽지 않은 상황. 일단 2014년, 조지아는 유럽 연합 가입을 위한 첫 단계인 포괄 협정을 서명했다.

2019년 6월 20일에 러시아의 세르게이 보로실로프 하원의원이 조지아를 방문하자 1만 명이 시위를 했다. #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제제를 들어간 가운데, 조지아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단 성명을 밝히자 수도 트빌리시에서 반러 시위가 일어났다. 이후 조지아 민족군단1991~1992년 남오세티야 전쟁에 우크라이나가 그 당시 그루지야를 지원하였던 은혜와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당한 치욕에 대한 복수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여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 3월, ICC에서 전쟁 범죄 혐의를 받는 남오세티야인 3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

2022년 3월 31일 남오세티야 당국은 러시아에 편입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 이에 대해 러시아는 법적 장애물이 없다고 밝히며 사실상 국민투표가 통과되는 대로 합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조지아 정부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9. 여담[편집]


개막일에 올림픽 휴전을 위반했으니 IOC 뚜껑이 열린 건 당연지사다. 러시아야 먼저 공격당했다는 명분이 확실해 참작이야 가능했지만 조지아는 개전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 무사히 넘어가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엄중 경고로 넘어갔기에 양국 모두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나설 수 있었다.

전쟁 발발 직후, 속보를 본 미국인이 인터넷에 올린 한 질문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나 조지아에 살고 있는데 러시아 놈들이 쳐들어왔다면서? 그런데 왜 탱크도 안 보이고 총성도 안 들리지?"라고 질문을 한 것. 이것은 영문 철자로 조지아의 국명이나(Georgia) 조지아 주나 (State of Georgia)동일하기에 생긴 해프닝이다. 그러니까 저 미국인은 조지아를 국가가 아닌 자신이 사는 조지아주로 착각한 것이다. 비슷한 일이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에서도 있었는데, 트럼프 지지자 중 하나가 조지아 주기 대신 조지아 국기를 들고 온 것(...).-자기네 주기도 몰라-

전쟁의 양상이나 원인의 차이를 떠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서 보여준 러시아군의 한심한 작태와 졸전으로 조지아군을 평가 절하하는 의견도 있으나, 애초에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체급 차이도 안 보고 하는 말일 뿐이다. 당장 인구수만 해도 4배 이상 차이나며 국토 면적은 8배 이상이다. 동원 병력도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조지아군은 러시아군의 7분의 1 수준이었으나, 우크라이나는 정규군만 20만으로 침공 당시 러시아군과 비슷한 머릿수를 보유했었다. 두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을 비교하기엔 조지아가 너무 불리한 조건이다.

파일:2008_Georgia_2022_Georgia.jpg
2022년 러시아에서 동원령이 내려지자 러시아군이 조지아로 진격하던 그 장소에서 14년 뒤 강제 징집을 피하기 위해 조지아로 탈출하는 러시아인들이 늘어났다. 조지아 정부는 반러치곤 오히려 받아주는 편이나 일반적인 조지아 국민들의 러시아 피난민들에 대한 감정은 매우 나빠서 수도 트빌리시 곳곳에 "Go Back to The Russia"(러시아로 돌아가라) 같은 낙서들이 수없이 많다.


10. 관련 문서[편집]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가 주축이고 구 소련권 국가가 상대국이며, 상대국 내 친러 분리주의 세력[44]이 발단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어 비교되는 전쟁이다. 물론 남오세티야 전쟁은 조지아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라 조지아가 도움받을 명분도 없어 나흘만에 러시아에 싹 쓸려나갔던 것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은 엄연히 러시아의 선제침공으로 시작된 것이라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지원이 이어지며 어느쪽도 제대로 승기를 잡지 못한 채 전장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11. 둘러보기[편집]







[1] 남오세티야, 압하지야를 넘어 트빌리시 인근 시다카르틀리주 고리까지 점령당하기도 했다.[2] 막강한 군사력의 러시아에 처참히 패배한 조지아가 절박하게 허공을 향해 도와달라고 외치지만 러시아가 이것을 차갑게 비웃는 내용. 조지아의 나토 가입이 긍정적이라는 선언문(부쿠레슈티 나토 정상선언문)의 채택을 주도한 미국(엉클 샘), 이에 미국의 도움을 기대한 조지아, 그리고 나토를 경계하는 러시아로 당시 세 국가 간의 관계 양상을 보여준다.[3]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이다. 백악관도 아니고 국내 시찰 상황도 아닌, 전세계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 개막식장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총리(당시)의 통보를 받았다. 흥미롭게도 이후 푸틴은 14년 뒤 이번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는데 그 때도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되어 있다.[4] 1990년 남오세티야 소비에트 민주 공화국으로 그루지야 SSR에서 독립했고 소련 붕괴 직후 조지아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였다가 러시아의 개입으로 평화유지군이 설치되면서 휴전 상태가 되었다.[5] 조지아인이 아닌 소수민족 오세트인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6] 질문은 남오세티야 공화국은 독립국가로서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가?였다.[7] Ossetian Question 1994, p. 39.[8] 2008년 8월 1일, 인근 미승인국가 3개국만이 남오세티야를 승인했다. 물론 타국의 승인이 필요적 국가 성립의 요건은 아니라는 것은 고려하자.[9] UN소속은 아니고, 단순 러시아-조지아의 협정 하에서 파견된 군대였다.[10] 참고로, 민간인을 향한 공격은 국제형사범죄법에 위배되는 전쟁범죄이다. 그래서 현지 군인이 우발적인 민간인 학살을 할 경우 보통 정부는 해당 군인에 징계를 내리나, 조지아는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 하였다.[11] 남오세티야와 마찬가지로 조지아로부터 독립한 미승인국이다. 압하지야는 남오세티야 전쟁이 아닌, 1992년에 일어난 압하지야 전쟁으로 생겨난 나라이나 남오세티야 전쟁 때 남오세티야 측에 서서 군을 파견하고 이로 인해 러시아로부터 국가로 승인받는다.[12] 현재 해석으로는 러시아가 협정에 참여한 진짜 목적이 이게 맞다는 것이 중론이다. 러시아는 구 소련권을 지속적으로 자국의 세력권에 편입시키려 하였고 조지아도 그 대상이었으며, 원래는 조지아 전체를 러시아의 세력권에 편입시키려고 하였으나 이 전쟁이 발발하면서 조지아의 반러감정이 폭발하면서 그냥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만 떨어뜨려 놓고 나갔다는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러시아 연방 내 자치국가인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주 민족도 오세트인이기 때문에 남오세티야 국민을 자국민이라고 우겨도 이를 국제 사회에서 구분하기가 힘들다.[13] Russian Federation: Legal Aspects of War in Georgia, The Law Library of Congress, Global Legal Research Center, #[14] 원래 올림픽의 취지는 이 시기만큼은 싸우지 말자는 것이고, 지금도 대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국제적 평화주의라는 대원칙이 겉으로라도 지켜지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올림픽의 개회식 때 푸틴이 조지아 침공을 시작하고 그것을 반쯤 적성국가인 나라에게 통보함으로써 대놓고 올림픽 정신에 반기를 든 것이다.[15] 이 시기는 푸틴이 전쟁 개시로부터 딱 3개월 전인 2008년 5월에 임기가 만료되어서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서 총리가 된 상태였는데(이 당시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말인즉 러시아도 정권 교체가 일어난지 얼마 안 돼서 전쟁같은 걸 바로 결정할 수가 없는 혼란스러운 시기여야 정상일 텐데 정권 교체 3개월 만에 바로 전쟁을 개시함으로 인해,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아니라 푸틴 총리가 실세임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메드베데프는 3선 연임을 금지하는 러시아 헌법을 비껴가기 위해 푸틴이 세운 대리인이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보더라도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어차피 같은 정치적 서클에 속하는 동료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기준(예:이명박박근혜같은 정치적 서클에 속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박근혜의 취임이 정권 교체라고 여겨지지 않음)으로 보면 메드베데프의 대통령 취임이 정권 교체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 교체"라는 개념의 사전적 정의로 접근해 보면 전임 국가수반의 임기가 종료되고 후임 국가수반이 취임하는 것 자체가 정권 교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설사 후임자가 전임자와 같은 정치적 서클에 속하는 동료 관계라고 하더라도, 일단 후임자에게 국가수반의 자리가 인계가 되었고 그로부터 3개월밖에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서 무려 전쟁을 함부로 결정하기가 어려워야 정상이기에, 그런 시기에 러시아가 조지아를 상대로 전쟁을 즉각 개시했다는 것이, 진짜 실세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아닌 푸틴 총리라는 증거인 것은 맞다.[16] 덕분에 전쟁 초기에는 러시아군들이 눈에 아주 잘띄는 흰색, 파랑색 UN군 방탄모를 착용하고 작전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17] 러시아군 7만과 남오세티야군 9천명.[18] 심지어 당시 예비역으로 돌려져 있던 T-62도 나타났다.[19] 강철의 대원수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조지아 국토의 정확히 한 가운데 있으며 교통의 요충지라는 것이 이 전쟁에서 더 중요하다. 고리가 함락된 이후 조지아는 국토를 분단당했다.[20] 실제로 함대공 미사일은 소형 함정에 대해 굉장히 효과적인 타격 수단이 된다.[21] 위 사진을 보면 기념촬영을 하는 러시아군 중 철모를 쓰고 있는 건 단 1명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전선에서 철모를 쓰지않는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행위인데 러시아군 병사들이 기념촬영을 대놓고 하면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지아군은 형편없었고 일패도지하였기에 반격은 엄두도 못낸 것이다.[22] 이 때 미국 정가에선 여전히 네오콘의 힘이 강했던 것도 있지만 조지아 전체가 러시아로 넘어가는 것은 러시아가 미국의 동맹인 유럽 국가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서 미국 입장에서도 결코 용인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23] 러시아군의 T-72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조지아군 소속이다.[24] 한 기는 아군 맨패즈의 오인사격.[25] 단순 군시설을 박살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민간통신망(전화, 인터넷 등)에 사이버전으로 마비시켜 조지아 수뇌부가 전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했다.[26] 소형 함정이라 기동력이 좋은 대공미사일을 쏜것으로 추정된다.[27] 이 행위는 조지아와 함께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나토를 들어가길 원했던 우크라이나도 똑같이 한다. 우크라이나는 1천 600여명을 파병했다.[28]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나 이 일로 분노한 러시아가 이스라엘과 대립하던 하마스 측에 최신 무기를 제공했고, 이에 이스라엘이 항의하자 이전에 이스라엘이 그랬듯 러시아는 무시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두 손 들고 러시아 인근 국가들에 대한 무기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키이우에 이란제 드론 테러에 공격받았음에도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아이언 돔을 제공하지 않았다.[29] 전면전에 대비해 예비군용 신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는 대한민국 국군이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이다.[30] 체첸 분쟁에서 체첸 반군이 험비를 사용했기 때문에 러시아에선 그때 노획한 험비도 있어서 험비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험비도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수도없이 터져나간 물건이기에 러시아군이 마음만 먹으면 입수하기는 어렵지 않을 터이니 더욱이나.[31] 러시아 군인이 철자를 잘못 적었다. 번역하면 '미국님들 러시아 공수부대에 옷줘서 고마워요' 정도.[32] 조지아는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권, 동유럽에서는 아주 유명한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며, 러시아가 조지아산 와인 수입 제재를 실시하자 조지아와 러시아 양국에서 난리가 났다고 할 정도로 조지아의 중요한 수출 품목이기도 하다.[33] 예시로 1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지전에 이 나라가 끼고 저 나라가 끼고 해서 유럽 전체의 전쟁이 되어버렸고, 베트남전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1년 안에 끝내버릴 것이라 추측했으나 게릴라와 공산군의 끝없는 공세로 지연전이 되어 결국 미군이 패배했다. 이라크전은...말할 것도 없는 세계 최악의 적을 향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시작점이 되어버렸다.[34] 여기서 조지아를 초박살낸 러시아의 경제가 12위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여전히 산업 구조가 지극히 2차 산업에 기초해있으므로 세계적인 경제적 영향으로 보자면 한국이 그 러시아보다도 영향이 크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러시아의 파급력이 더 클 수 있어도, 영국, 호주 등에 다음가는 미국의 우방국인 대한민국의 전쟁의 파급력 역시 전혀 무시할 수 없다.[35] 다만, 미국이 이러한 조약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전력이 있기는 하다.[36] 미국이 러시아 정도 국가가 아닌 애매한 국가였다면, 명분이고 뭐고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상대는 세계 군사력 2위 국가인 러시아다. 러시아를 상대로 명분도 없이 전쟁에 들가는 것은 러시아에게 출구 전략도 없이 제3차 세계 대전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조지아는 나토 가입국은커녕 미국의 동맹국도 아니었고, 우방국이라기도 살짝 애매한 말 그대로 이제 막 친해지려는 단계인 국가인데, 미국이 자국의 목숨까지 걸고서 지켜줄만한 명분도 의리도 없는게 어찌보면 당연하다.[37] 개혁·개방 정책의 한 예로 조지아에 우호적이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거라 예상되는 국가에게 파격적인 비자법을 제정했다. 대한민국 국민 역시 이 법의 혜택을 받아 조지아에 360일 무비자로 입국 및 체류할 수 있다. 말이 1년 중 360일 무비자 체류이지, 이 정도면 사실상 비자 전면 폐지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EU 솅겐 조약에 의해 2014년 9월 1일부터 90일 무비자 바뀌었다.[38] 조지아는 내각책임제라서 총리가 운영 실권을 쥐고 있다. 결국 화가 난 여당에서 주라비슈빌리의 러시아 제재 동참 촉구에 대해 또 불구덩이에 조지아를 밀어넣을 거냐며 반발했다.[39] 체코와 폴란드[40] 하지만 트럼프 정권이 다시 부활시켰다.[41] 각각 1999년1990년에 맥도날드가 진출하였다. 특히 1990년에 개점한 푸시킨 광장점은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상징 중 하나였다.[42] 파이브 데이즈 오브 워에서는 주인공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는 남오셰티야 민병대 소년, 어거스트 에이트에서는 간절히 도움요청하는 주인공을 위해 차를 몰고 적진으로 달려가는 조지아군[43] 캅카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조지아가 있는 캅카스 지역은 동유럽이 아니라 서아시아로 여겨지기도 할 정도로 유럽에서 변두리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곳 출신인 스탈린 같은 경우 일본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본인을 아시아인이라 할 정도다.[44] 남오세티야 전쟁은 남오세티야압하지야, 우크라이나 전쟁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루간스크 인민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