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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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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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기록보관소
Archives of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국가·소장
남아프리카 : 케이프타운 기록보관소
네덜란드 : 국가기록보관소
스리랑카 : 국가기록보관소
인도 : 타밀나두 기록보관소
인도네시아 : 국가기록보관소
등재유형
기록유산
등재연도
2003년

1. 개요
2. 역사
3. 해산 이후
4. 사건사고
5. 여담
6. 대중 매체에서



1. 개요[편집]


파일: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깃발.jpg
파일:attachment/largecompany.jpg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깃발
현재의 화폐가치로 따졌을 때의 시가총액[1][2]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약칭 VOC.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설립에 자극받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2년 후인 1602년에 설립하였다.[3] 세계 최초주식회사이자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 그리고 17세기 세계 최대의 회사였다.


2. 역사[편집]


16세기 최대 이익을 내는 무역 항로는 인도, 중국, 동남아 항로였다. 후추향신료는 유럽에서 어마어마한 고가에 팔렸고 동방에서 가져온 다른 상품들도 값비싸게 팔렸다. 1595년 네덜란드의 한 무역 회사가 포르투갈의 독점 상품이었던 동남아시아 향료 무역에 진출했는데 이 해의 첫 항해는 투자자들에게 무려 4배의 수익을 안겨 줄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이 모습을 본 유럽 각국의 다른 회사들이 동남아시아 무역에 앞다투어 뛰어들어 출혈 경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1600년 영국 상인들은 서로 연합하여 영국 동인도 회사를 결성했다. 독립을 한 대가로 대 스페인 무역이 중단돼 국가 재정에 큰 타격을 입은 네덜란드 정부는 영국이 동남아시아 무역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돈벌 기회가 널려있는 곳에 투자할 생각으로 대규모 무역선단을 꾸리려 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의회와 상인들의 재정만으로는 조금 무리가 있어서 고민하던 차에 부자들과 국민들의 투자를 받아 대규모 선단에서 나오는 이익을 나누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다.

그런데 돈을 받기 전에 문제가 생겼다. 투자금을 나눌 때 표시를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네덜란드는 투자금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그 자금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내는 종이 권리증서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증서에는 동인도 회사 주식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이것이 근대 주식의 시작이었다. 이를 따라서 다른 유럽 열강들도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여기서 주주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이익을 배당한다는 주식회사의 개념이 이 때 처음 생겼다. 즉,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다. 회사의 지분을 판매하는 주식이라는 개념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최초이며, 역사상 최초의 증권거래소도 네덜란드에서 바로 이 동인도 회사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 생겼다. 근대 금융에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1602년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 투자금은 650만 길더였다. 정부도 권한을 2만 5천길더로 환산을 해서 주주로서 참여해 네덜란드 국민들의 신뢰를 높였다. 그 외에 출혈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독점권을 부여했으며 또 일개 회사 주제에 조약 체결 및 협상권, 전쟁 발동권을 가진 하나의 국가로서 활동을 했다. 처음 10년간 투자자들은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도 조선, 건축, 아시아의 무역왕국 건립 등 장기적인 사업에 투자했다.[4]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향신료 무역으로 얻은 자산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 말라카, 스리랑카, 일본 나가사키(데지마), 타이완 섬, 중국 광저우는 물론 페르시아에까지 상관을 설립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은과 구리가 많이 나서 네덜란드의 무역 적자를 상당 부분 해소해 주었다. 이 무렵 동인도 회사가 보급항으로 건설한 아프리카 남단의 상관이 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된다.

여기에 투자자들 중 갑자기 금전이 필요해져 투자한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익을 받고 주식 권리를 포기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동인도 회사의 미래를 유망하게 보고 주식 권리를 신규로 혹은 증액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이 둘 간의 주식 거래가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1609년에 생긴 것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다. 여기서 매년 2500만 길더 이상의 수익을 얻는 등 너무 빨리 돈이 돌자 과부하를 막기 위해 1609년에 은행을 만들어 다른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 당시에 신용 대출도 있었고 은행의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은행에 간섭할 수 없도록 법을 제정했는데, 네덜란드 공화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적대국에게도 합법적으로 돈을 빌려줬다.

이렇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은행, 증권거래소, 유한회사를 하나의 금융 체계로 통합시켜 폭발적으로 돈을 끌어모았다. 전성기인 1670년대 회사는 150척의 상선, 40척의 군함, 50,000명의 직원과 10,000명 규모의 군대를 거느린 거대 조직이 되었고, 회사의 주식은 배당금으로만 액면가의 40%를 배당하는 큰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수익은 크지 않았고 1660년대 남명청나라에 멸망하면서 중국무역이 대폭 감소하고, 같은 시기 일본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으로 은 수입이 감소하자 회사의 성장은 정체되기 시작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기존의 향료 무역으로부터 커피, 차, 도자기, 면직물 등으로 상품의 종류를 늘리고 상관의 숫자를 늘려 대응했지만, 경쟁사인 영국 동인도 회사가 규모를 키우고, 1700년대 이후로는 신대륙에서도 향료, 설탕 등 상품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에서의 수익이 줄어들게 되었다.

18세기 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사실상 파산 상태에 이르러, 나폴레옹에 의해 네덜란드에 세워진 괴뢰국인 바타비아 공화국 정부에 의해 국유화되었다. 1799년 동인도 회사는 해산되었고 회사가 소유한 식민지(네덜란드령 동인도 등) 역시 네덜란드의 직할령이 되었다.


3. 해산 이후[편집]


구 동인도회사의 금융, 상업 부문은 네덜란드 무역회사에 인계되었다.[5] 이 회사는 현 ABN-AMRO 은행의 전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 가치로는 약 8조 3천억 달러[6] 정도의 시가총액을 가지고 있었다.[7]


4. 사건사고[편집]


  • 1624년 네덜란드령 동인도말루쿠 제도에서 향신료 무역을 이유로 현지에 주재하고 있던 잉글랜드 왕국 상관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간 마찰이 폭발, 네덜란드 병력이 잉글랜드 상관을 습격해 상관장과 직원, 일본인 호위무사 등 인원 20여명을 첩자 혐의로 참수하는 암보이나 사건이 발생했다.

  • 1643년 캄보디아에 주재하고 있던 네덜란드 상관이 후기 크메르 왕국의 공격을 받아 상관원 대부분이 처형됐다. 네덜란드 본사는 이를 빌미로 군대를 파견했으나, 크메르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철수했다.




5. 여담[편집]


  • 화한삼재도회 14권 네덜란드 항목에서는 "네덜란드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콘판야(古牟波爾亞, コンパンヤ)로 부른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도 일본에 온 네덜란드인들이 대다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회사"(compagnie)라고 말한 것을 지도자의 이름으로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소장한 인피(人皮) 장정(책표지) 도서가 바로 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작품이다. 제목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중국 제국에서 행한 기념비적 임무'(Gedenkwaerdig bedryf der Nederlandsche Oost-Indische Maetschappye, op de kuste en in het keizerrijk van Taising of Sina)로, 1670년 출간되었다. 한국에 온 경위는 알 수 없으나, 광복 후 경성제국대학 장서들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들어왔다고.


6. 대중 매체에서[편집]


문명 4문명 5에서 등장한다. 문명 4에서는 네덜란드 문명의 고유 유닛인 동인도 무역선(East Indiaman)으로 나오는데, 갈레온을 대체하는 르네상스 시대 해양 유닛으로 전투력이 높고 수송 공간도 널찍하며 국경 개방을 하지 않고도 다른 문명의 영토에 진입하며 정찰할 수 있다. 문명 5에서는 네덜란드 문명의 문명 특성으로 나오며, 사치품을 모두 내다 팔아도 약간의 행복 보너스를 제공받는다. 이래저래 사치품 장사를 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약간의 행복이라도 절실해서 내다 팔기 곤란할 때는 효용이 떨어진다.

[1] 2020년 3월 22일 기준 무려 9035조원이다. 삼성전자가 시가총액 약 500조원, 현존하는 기업 중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이 시가총액 2,287조원인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임이 틀림없다.[2] 좌측부터 벨 시스템, Apple, Microsoft, 스탠더드 오일, 중국 석유 천연가스 공사, 사우디 아람코, 남해회사, 미시시피 회사,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초기 주식시장 양대 거품인 미시시피 거품남해회사 주식사건의 그 회사들이 바로 뒤를 잇는다.[3] 다만 무역 시장에서 당시 영국은 어디까지나 네덜란드에 비해 후발주자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먼저 회사를 설립한 것.[4] 이렇게 발행된 주식 중 1606년 발행된 것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주식이기도 하다.[5] 다만 직접적인 전-후신 관계는 아니다.[6] 2022년 7월 기준 약 1경 1천조 원. 참고로 미국의 2022년 GDP가 23조 달러 정도였다.[7] 아무래도 이때 무렵 네덜란드 일대의 튤립 가격이 정신나간 수준이었던 것이 한몫한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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