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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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 및 아케이드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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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게임기
AES · 네오지오 CD · 아케이드 스틱 프로
휴대용 게임기
NGP · 미니 · X*
아케이드 시스템
MVS · 64
* : 타 회사에서 SNK와 제휴해서 네오지오를 휴대용으로 복각



1. 소개
2. 사양
2.1. 성능
2.2. 대용량 롬 카트리지
3. 역사
4. 특징
5. 파생작/후속작
6. 게임 목록
7. CMVS(Console MVS)
8. 여담
9.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Neo Geo / ネオジオ

파일:Neo-geo_logo.png

파일:attachment/네오지오로고.png
오락실을 가봤다면 한번쯤은 봤을 네오지오 로고.[1]

파일:external/gaminghistory101.files.wordpress.com/neogeo_aes.png
가정용 네오지오.

알파 전자 공업에서 개발해 SNK가 1990년 4월 26일에 내놓은 아케이드 시스템 기판과 이 기판과 호환하는 가정용 거치형 게임기. 이름의 의미는 '새로운(neo) 땅(geo)'을 의미한다.

1990년 출시 이후 무려 14년 넘게 게임을 출시하며 현역으로 굴려진 장수만세 아케이드 기판이다.[2] IT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네오지오의 분투는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출시 당시에 고사양이었던 점, 인기가 많았던 점, SNK의 차세대 기판 하이퍼 네오지오 64대실패했다는 점 등의 이유로 가능했다.

보통 아케이드용 기판은 MVS(Multi Video System), 가정용을 AES(Advanced Entertainment System)라고 구분해서 부르지만 AES 쪽은 정식 명칭이 아니다. 원래 네오지오는 업무용/가정용의 총칭이고 MVS는 기판명이 아니라 아케이드 캐비넷 및 네오지오 기판을 둘 다 부르는 이름, AES는 네오지오 시스템 자체의 캐치 프레이즈라는 구분이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3] '네오지오'라는 상표명은 이를 모두 포함하는 이름이지만 한국 및 일본에서 '네오지오'라 하면 가정용 게임기를 가리키고, 아케이드용을 기판 포함해서 'MVS'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본 문서에서는 양자를 모두 다룬다.


2. 사양[편집]


CPU
모토로라 68000 16비트 12 MHz
그래픽
SNK LSPC2-A2 24 MHz[4], NEO-B1[5]
사운드 프로세서
자이로그 Z80 8비트 4 MHz
사운드 칩
야마하 OPNB YM2610, 15채널
RAM
메인: 64 KB SRAM, 사운드: 2 KB SRAM
비디오: 64KB(Lower/Slow) SRAM[6], 4 KB(Upper/Fast) SRAM[7], 16 KB SRAM[8]
해상도
304×224
표현 가능 색상
65,536색 (동시 발색 수 4,096색, 스프라이트 1장당 16색까지(투명색 포함)
스프라이트 성능
16×16~16×512 지원. 최대 384개/화면, 96개/스캔 라인[9]
온보드 ROM
512 KB
사용매체
롬 카트리지[* 아케이드용의 경우 '카세트'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참고로 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다.
규격
325㎜×237㎜×60㎜, 3.5㎏
컨트롤러
8방향 조이스틱, 4버튼 + 셀렉트 + 스타트[10]


2.1. 성능[편집]


아케이드 기판으로 보자면 하드웨어 구조 자체는 당대의 68k계열 기판들과 비슷한 구조(68k CPU + z80보조 + 야마하의 음원)를 1990년에 어울리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균형잡힌 스펙이며 가정용 게임기로 보자면 말할 필요도 없이 슈퍼 패미컴이나 메가 드라이브에 비해 강력했다. 메가드라이브의 7.8 MHz CPU보다 50% 이상 빠른 12 MHz의 CPU를 탑재했고, 그래픽 면에서는 최대 표현 색 수나 동시 발색 수, 스프라이트 표시 수 그리고 축소 기능을 고려한다면 당대의 가정용 게임기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단, 더 늦게 출시된 슈퍼패미컴이 가지고 있었던 반투명, 90도 회전, 확대 기능은 없었다.[11] 그러나 기본적인 기능을 대용량의 마스크롬을 활용하여 극대화하는 기판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체급이 작은 가정용 게임기는 물론이고 3D 처리까지 가능한 차세대 게임기들 조차도 네오지오 게임을 이식하기란 쉽지 않았다. 네오지오 게임의 게임기 이식 수준은 드림캐스트 이후 1990년대 말 무렵이 돼서야 완벽해졌다.

하드웨어 설계와 개발 효율화를 위해 하드웨어 배경 레이어를 넣는 것이 보통인데 네오지오에는 이런 기능이 없고 대신 배경도 스프라이트로 처리한다. 이것을 타일맵이라고 한다. 대신 타일 크기를 16×512까지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배경 아트를 15개의 타일로 쪼개 저장한 후 이것들을 순서대로 배열해 사용한다. #

이런 네오지오 특유의 제약 때문에 네오지오는 탄막 슈팅 게임 같은 장르에는 취약하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탄막 슈팅이라는 장르는 출시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고[12] 네오지오에도 소닉윙스 같은 훌륭한 게임이나 블레이징 스타 같은 제법 막대한 탄량을 쏟아내는 게임도 있었다.

네오지오는 아케이드 시스템으로서 비교적 합리적인 비용에 좋은 성능을 냈지만, 가정용 네오지오로 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 게임기는 1990년대 게이머에게는 꿈의 게임기였다. 우선 당시 모든 게이머의 염원이었던 '오락실 게임을 집에서 그대로'라는 꿈을 그대로 이뤄준 제품이기 때문이다. 가정용 네오지오만 있으면 오락실 네오지오 게임을 집에서 100% 똑같은 품질로 즐길 수 있었다.[13] 아케이드 게임과 동일한 품질이 가능한 게임기는 무려 2세대가 지난 드림캐스트, PlayStation 2, Xbox의 시대가 와서야 가능했는데 이마저도 부동 소수점 처리 등의 문제 때문에 살짝 달랐고, 완벽히 상위호환이 되는 것은 그 다음 세대가 되어서였다.

그러나 이런 꿈의 게임기는 중의적으로 꿈의 게임기였다. 가정용 네오지오는 일본 가격으로 무려 5만 8천 엔이었는데 본체 가격은 그렇다 치고 게임 가격이 아케이드만큼은 아니지만 너무 비쌌다. 100 Mbit 이상의 고용량 네오지오 게임팩은 가격이 수만 엔이었다.


2.2. 대용량 롬 카트리지[편집]


SNK는 게임 제작에 있어서 용량을 아끼지 않는 편이었다. 1991년에 캡콤에서 CPS1 기판으로 출시한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용량이 56 Mbit(=7 MB)이나, 네오지오는 버닝 파이트 같은 게임들로도 그 정도 용량은 이미 찍고 있으며 그로부터 1년 이후 출시된 용호의 권 부터는 아예 '100메가 쇼크'라는 구호 아래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두 배에 육박하는 102 Mbit(=12.75 MB)짜리 게임을 내놓고 이후 게임들도 계속해서 용량이 많아진다. 이 시기 게임들은 부팅하면 그 네오지오 로고 직후 '100메가 쇼크!'를 알리는 로고가 별도로 나오며, 일본에서 송출한 TV 광고에서도 네오지오 게임기 이름을 외칠 때 100메가 쇼크를 그대로 발음해 "햐쿠메가쇼크! 네.오.지.오!"라고 연호했다. 그러나 대용량 롬으로 구현하다 보니 도리어 네오지오 CD가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생겨, 특유의 로딩, 애니메이션 수 삭제 등을 야기하는 주범이 되기도 했다.[14]

100메가라는 용량이 '바이트'가 아니고 '비트'인데 이를 두고 당시에도 2HD 플로피 디스크 10장 정도 아니냐고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용량으로만 따지자면 CD-ROM 게임도 진즉부터 나오던 시대였지만[15] 당시 PC로는 성능으로도 메모리 용량으로도 네오지오 게임을 이식할 수는 없었고 1996년에 펜티엄 100MHz와 메모리 16MB 정도를 최저 사양으로 진 사무라이 스피리츠 하오마루 지옥변이나 아랑전설 3같은 게임들이 이식되기 시작될 정도였다.

100메가 쇼크는 단지 비싼 롬을 듬뿍 사용했다는 것 이외에도 그래픽과 음악에 많은 돈, 곧 개발비를 엄청나게 투자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카트리지 하나에 각 지역별 언어를 모두 담고 업소용과 가정용 조차도 데이터가 동일하도록 효율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구분은 본체의 바이오스[16]를 이용하여 감지한다. 그래서 AES가 감지되면 가정용에, MVS가 감지되면 아케이드에 맞게 게임을 구동하고, 미국 지역임이 감지되면 Winners Don't Use Drugs이 출력되게끔 실행되기도 한다. 네오지오 게임을 구동하는 에뮬레이터들 역시 이를 그대로 따르며, 덕분에 구동 시에는 MVS에서 덤프된 롬 하나만 있으면 된다.[17]

그리고 가정용과 업소용은 물리적으로 카트리지의 핀 수를 다르게 만들어, 가정용의 카트리지를 그대로 가져다가 업소용에 쓸 수 없게 했다. 가정용 카트리지가 업소용에 비해 더 쌌기 때문이었다.[18] 커넥터를 이용해서 카트리지를 연결한 뒤에 내부 코드 조작을 거치면 업소용 모드와 가정용 모드의 전환은 대부분 문제 없이 이루어진다. 가정용으로 발매된 적이 없어도 가정용 모드를 지원하는 일도 있는데, 왕중왕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 현지화 면에서는 유리한 방식이었지만, 후술할 불법 복제 등 다른 문제와 얽히면서 후기에 만들어진 게임에서는 이런 호환성이 깨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KOF 2000을 가정용으로 실행하려 하면 붉은 색으로 저작권 경고 문구가 뜨면서 실행을 중단하며, KOF 2001은 가정용 관련 메뉴가 깨진다.

3. 역사[편집]


하드웨어의 설계는 알파 전자 공업에서 담당했다. 1986년에 알파전자가 '슈퍼 스팅레이' 게임을 위해 모토로라 68000을 기반으로 한 아케이드 기판을 개발했다. 이를 본 SNK는 고성능 아케이드 기판 및 게임기 개발을 위해 이듬해인 1987년부터 알파전자와 제휴에 들어갔다.

네오지오와 네오지오 CD, 네오지오 포켓의 하드웨어 개발에 참여했던 옛 SNK 사원이 밝히길, 당초에는 가정용 게임기로 개발 중이었고 아케이드용은 계획에 없었는데 도중부터 아케이드판과 가정용 둘 다 내는 것으로 방향 전환했다고 한다.

SNK는 1987년 '배틀필드(해외판은 타임 솔저스)'로 시작해 알파전자의 아케이드 기판으로 게임을 여럿 내놓았다. SNK를 위해 알파전자의 하드웨어 및 시스템 프로그래밍 엔지니어 후카츠 에이지(深津栄次)가 그 기판을 개량했는데, 이것이 네오지오가 되었다.[19] 이후에 알파전자 역시 SNK의 서드 파티로 참여해 월드 히어로즈 시리즈와 트윙클스타 스프라이츠 등의 수작 네오지오 게임을 여럿 만들었다.

1990년 4월 26일, 일본에서 4개의 게임과 함께 아케이드용 네오지오(MVS)와 가정용 네오지오(대여 시스템) 2종류로 나눠서 선보였으며, 주로 대여 매장이나 게임 센터가 구입했지만 개인도 구입할 수 있게 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통신 판매 등 구입 경로를 다양하게 했다.[20] 또한 1991년 7월 1일부터 전 세계에 가정용 게임기 판매를 시작했다. 상술한 대로 가정용 네오지오는 아케이드 게임과 같은 내용에 고가이다 보니 게임 수명을 위해 본래 판매용이 아니었고 대여용(비디오 대여점 등에 배치해 놓고, 일정 기간 대여하는 방식) 중심으로 전개 예정이었던 상품이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 결국 일반 판매가 주류가 되었다. 다만 1992년 8월, 용호의 권을 발매하기 이전까지는 가정용 게임기의 판매량 역시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격 탓도 있었을 것이고 사실 100메가 쇼크 시대 이전 초창기 네오지오 게임은 괜찮은 것이 일부 있지만 게이머들에게 주목받는 것은 없었다.[21] 미국에서는 골드 시스템과 실버 시스템이라는 명칭의 패키지 구성으로 나누어 출시됐는데, 골드 시스템에는 컨트롤러와 게임이 번들로 들어갔고, 실버 시스템에는 컨트롤러만 번들로 들어갔다.

게임 가격이 보통 게임기의 3배 정도로 매우 비쌌지만 가정에서 당시의 아케이드와 같은 품질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가정용과 업소용의 기계 구조는 거의 같은 것이고, 네오지오의 홍보에 사용된 문구 중 하나가 '아케이드의 흥분을 그대로 가정에!!'(アーケードの興奮をそのまま家庭へ!!)[22]이다. 네오지오가 처음 나온 1990년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아케이드에서 가정용 게임기로의 이식은 느낌만 비슷하게만 만들어도 이식왕 소리를 듣던 시절이라[23] 아케이드와 가정용 게임기의 게임이 완벽하게 같다는 네오지오 게임의 특징은 게이머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네오지오 이전부터 빅코(전신은 빅터)가 SNK의 아케이드 게임을 수입해 왔기에 업소용 네오지오도 자연스럽게 수입하게 되었다. 1992년에는 빅코가 계열사 빅에이를 세워 가정용 네오지오 관련 사업을 처음 시작했으며, SNK의 직영 게임센터인 '네오지오 랜드'도 빅코의 계열사에서 운영했다.[24] 또한 1994년 7월부터 연회비 3만 원을 입금해 가입하는 네오지오 회원 제도도 운영했다. 회원이 되면 비정기적으로 간행되는 회원지를 받거나 게임을 정가의 10~2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계열사에서 직영 게임샵을 운영하기도 했고, 여러 게임샵에 네오지오 게임을 전시하기도 했으며, 1992년부터 1994년까지는 콘솔방에 네오지오를 일부 입하시킨 적도 있었다.

일부 마니아만 구입하는 하드웨어라 그런지 1997년에 가정용 네오지오의 생산이 종료되었는데, 1997년 3월까지 전 세계에 총 41만 대가 판매됐으며, 그 가운데에 35만 대가 일본에서 팔렸다고 한다. 그러나 업소용 기판과 대응 게임은 계속 출시되었다.

1990년도 당시에는 발매 시점을 고려하면 고성능 2D 게임용 기판임에도 가격이 저렴했다. 일반 JAMMA 규격 기판보다 메인보드, 카트리지 구조가 훨씬 간단해 SNK 외에 다른 회사도 MVS로 게임을 제작했다. 그러나 1997년 업소용 네오지오의 후속 기판 하이퍼 네오지오 64를 발매했지만 가격도 비싸고 게임 질도 떨어져서 시대착오적인 후속기라는 낙인이 찍히고 크게 실패했다. 이렇게 네오지오는 세대 전환에 실패했고, 결국 그래픽 수준을 높이기 위해 게임 자체의 용량만 키워 수명을 강제로 연장시켰다. 그러나 용량을 많이 쓴다고 한들 하드웨어가 그대로인지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2004년이면 PC는 기가헤르츠 클럭을 넘어 멀티 코어의 시대로 접어 들어가던 때였고, 가정용 게임기도 플레이스테이션 2엑스박스의 전성기에 고작 모토로라 68000 16비트 12MHz 아니 어쩌면 준 32비트 머신이 현역이었던 어떤 의미로는 정말로 굉장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하드웨어의 구조가 매우 간단한 데다 당시 기준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1998년부터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롬 파일 덤프로 인한 불법 복제 문제에 끈질기게 시달렸다. 그나마 더 킹 오브 파이터즈 2000[25]과 말기 게임인 SVC CHAOS SNK VS CAPCOM은 불법 복제 방지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발매하고 뚫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26] 결국에는 이마저도 기판을 복제 후에 덤프하는 등의 우회책을 사용해서 뚫어 버렸다. 불법 복제 대책을 위해 고심한 결과, 막바지에 나온 게임들인 SVC CHAOS SNK VS CAPCOM더 킹 오브 파이터즈 2003, 메탈슬러그 5는 초반에는 아예 롬 자체를 기판에 용접한 커스텀 기판으로 판매했다. 즉, 다른 게임과의 카트리지 교체를 할 수 없고, 멀티 슬롯에도 꽂을 수 없게 설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저렴하게 신작을 들일 수 있다는 기존 MVS의 장점을 깎아먹은 셈이라 게임 자체의 완성도와 더불어 매출에 악영향을 주었고, 오히려 싸게 도입이 가능한 신작의 불법 복제버전 카트리지가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해외판은 결국 후반에 일반 카트리지 버전으로 판매하게 되었고, 그 중 더 킹 오브 파이터즈 2003은 일본 내 역수입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일본 MVS 기판에 꽂아도 해외판으로 출력되도록 불법 복제 방지 장치를 넣었다.

결국 아케이드용 네오지오는 2004년에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 스페셜을 마지막으로 14년 만에 MVS 기판 생산을 종료했고, 2007년 8월 31일에 유지 보수 지원을 종료했다. 참고로 가정용 네오지오가 단종된 지 7년이나 버텼다. 그럼에도 몇몇 아마추어 게임 제작자들은 아직도 네오지오 시스템으로 게임을 제작, 배포 및 판매하고 있다. 기술 개발의 속도와 아케이드용 기판의 세대교체 주기를 생각하면 가히 기록적인 수명의 하드웨어였다. SNK 플레이모어는 플랫폼을 사미의 ATOMISWAVE로 옮겨갔지만 이마저도 2년만 사용하고 2007년부터 타이토의 Type X 시리즈로 넘어갔다.


4. 특징[편집]


게임 기동 시 네오지오 로고와 SNK 로고가 뜨면서 흐르는 특유의 징글 멜로디는 네오지오의 상징으로, Baseball Stars Professional부터 징글이 들어가면서 거의 모든 네오지오 게임에 들어갔다. 이 징글 멜로디는 KOF 맥시멈 임팩트 2의 숨은 스테이지인 네오지오 랜드 BGM 시작 부분에도 삽입되었고, 현재도 SNK가 자사 게임을 소개할 때에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 부트 화면은 사실 게임보이처럼 카트리지에 내장되는 형태였지만, 네오지오라는 기판을 상징하는 부팅 화면이다보니 SNK는 물론 다른 회사들도 너나할 것 없이 구현했다.[27] 다만 게임보이와는 달리 불법 복제 방지 장치는 아니었기 때문에 음악을 약간씩 다르게 출력할 수 있었다. 음색이 다르게 나오는 건 기본, 작신전설(雀神伝説) 같은 경우 전용으로 편곡된 음악이 들어가기도 했다. 같은 이유로 NAM-1975나 KOF 2003 같이 일부 게임에서는 아예 빠지기도 했고, 기가 파워 게임에는 어트랙션 영상의 마지막에 나오기도 했다. 어찌됐든 이 부팅 화면도 밈이 되어 부팅 화면을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는 사이트[28]도 등장했다.


NEO-GEO 초기 로고(1990~1998년)
여기서 MAX 330MEGA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리는데, 제품 박스에 작은 글씨로 DIRECT ROM ACCESS CAPABILITY: 330이라는 스펙 설명이 써있기에 이걸 가리키는 듯. 또한 출시 때 공개된 스펙에 '직접 ROM 접속 능력 최대 330 Mbit'라고 써있어서 단위가 Mbit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카트리지의 최대용량'이라는 의견은 THE 100 MEGA SHOCK라는 캐치 프레이즈 때문에 생겨난 오해일 가능성이 높고, 6개의 카트리지를 동시에 꽃을 수 있는 MVS 모델이 있었고 예시로 든 게임들의 용량을 표시했는데 이걸 합치니 300 Mbit정도였다. 때문에 복수의 카트리지에 있는 데이터에 한 번에 접속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을 뜻하거나, 본체가 롬에 접속하는 속도가 330 Mbit/초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새로 나오기도 했으나 근거는 없다. 이 때문에 "속았다!"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29] 게임의 용량을 뜻하는 THE 100 MEGA SHOCK와는 별도로 표시한다.


알파 전자 공업 명의로 나온 게임은 대체로 부팅 화면의 일부 글자들이 이상하게 제작되었다.

파일:attachment/neogeo_logo.png


GIGA-POWER 버전(1998~2004년)
리얼 바웃 아랑전설 2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고용량에 대응하기 위해 기판 사양을 바꾸었다기 보다는 '게임의 표현력을 늘리기 위해 용량을 더 키워나가겠다'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가정용 네오지오는 별도 업그레이드 없이 새로 나온 게임 카트리지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스펙이 바뀌었더라도 기판 쪽이 아닌 카트리지 쪽이 바뀐 것이 되기 때문이다.[30] 1998년 3월 20일에 출시한 리얼 바웃 아랑전설 2가 첫 번째 기가 파워 게임이고, 용량이 가장 많았던 것은 더 킹 오브 파이터즈 2003의 716 Mbit.

네오지오로 나온 게임들 거의 다 어트랙션 모드 화면에서 게임의 로고를 화면 한 군데에 작게 표시하는 것도 특징. 특유의 코인음도 비슷한 맥락. SNK 게임이 아닌 서드 파티 게임들도 마찬가지. 네오지오 밑에는 네오지오에 대한 추가 정보가 뜨는데, 1990년대 초중반 게임은 스펙에 관련된 정보가 뜨며 큰 차이가 없었지만, 네오지오 말기로 가면서 내용이 조금씩 바뀌었다. SNK가 하니까 서드 파티들까지 다 따라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업소용 게임은 레벨 설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31] 1부터 8까지 설정할 수 있으며[32] 1이 가장 쉽고 8이 가장 어렵다. 공장 출하 시에는 4로 맞춰져 있다. 1990년대 스틱 게임의 전성기 때 한국에서는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난도를 6 이상으로 설정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으나 요즘은 업주가 의도적으로 세팅을 조정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가정용의 경우, 가정용인데도 크레딧 제한이 걸려 있어 코인 러시가 불가능했다. 양쪽 플레이어가 각 4크레딧씩 쓰면 그대로 게임이 끝나고, 이후 다시 4크레딧이 충전되는 형태였다. 단, 메탈슬러그 시리즈는 2 이후 버전만 5크레딧이 들어가 있다.

업소용의 경우, 초기 설정으로 화면 하단 가운데에 현재 레벨(난이도)이 표시되는데 96년 중반부터 나온 게임에는 초기 설정이 비표시로 바뀌어서 난이도를 확인하려면 테스트 화면으로 가야 한다.[33]


5. 파생작/후속작[편집]


가정용 네오지오의 고질적인 문제인 게임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오지오 CD를 출시했다. 데이터가 어느 정도 호환이 되기 때문에 아케이드 게임을 큰 수정 없이 빠른 시기에 이식할 수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PlayStation이나 세가 새턴에 대항하기 위해 광학 저장 매체를 사용한 하드웨어였으나, CD 로딩이 느려 네오지오보다 먼저 사장되었다. 심지어 후기에는 메모리 부족으로 게임의 질을 낮춰서 이식해야 했기에 유일한 장점까지 잃었다. 네오지오 CD의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네오지오 자체의 공식 휴대용 버전으로 네오지오 X가 있는데, 이쪽은 SNK 자체 제작이 아닌 다른 회사에 제조 및 판매를 허가해 준 것.

업소용 네오지오(MVS)의 후속작으로 나온 하이퍼 네오지오 64가 있는데, 2D가 아닌 3D 게임용 기판으로 나왔다. 사실 네오지오의 수명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진 원인 가운데 하나가 하이퍼 네오지오 64의 큰 실패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구 모델인 네오지오는 SNK의 반복하는 삽질을 메꿔준 캐시 카우 역할을 해준 기판이라고도 하겠다.[34]

휴대용 게임기로 네오지오 포켓이 있으며 단색판과 컬러판이 짧은 간격을 두고 출시 되었다.

2018년에 창사 40주년 기념으로 탁상용 미니 게임기 형태의 네오지오 게임 모음집인 네오지오 미니를 발매했다.

2021년에는 해외용 MVS 캐비닛을 재현한 버전의 네오지오 미니인 'SNK NEOGEO MVSX'가 출시되었다.(Gstone Group/Unico가 제작/판매)


6. 게임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네오지오/게임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CMVS(Console MVS)[편집]


아케이드용 기판을 가정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컨트롤 박스와 네오지오 MVS 기판을 연결하여 가정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MVS이다. 소형 MVS 기판을 이용하면 가정용 네오지오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 유명한 CMVS는 레트로 유저 카페인 구닥동에서 소량 제작하여 공제로 판매한 네오 MVS가 있다.

이런 개조가 성행하는 이유는 업소용이 하드웨어와 게임 모두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특히 메탈슬러그 같이 가정용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의 게임들을 업소용으로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또한 2018년 기준으로 중국에서 네오지오 가정용을 개조한 것으로 추정하는 게임기를 판매하고 있다. 게임기 전면에 SNK라고 써져 있고 네오지오 로고도 그대로 박아 놓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식 제품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물건. 아마존 기준으로 대략 20만원에 판매하는데 161개의 게임(해킹 롬 포함)을 내장한 카트리지를 직접 꽂아서 플레이 하는 물건이다. 즉, 내장해 놓은 게 아니다. 여기에도 마치 정식 제품 마냥 SNK 로고와 주소를 박아놓았다. 일본어로 적힌 것은 덤. SNK 문서에 보면 나와 있는 SNK 캐릭터들이 모두 나온 그림들도 붙어있다. 참고로 세가 새턴 컨트롤러도 연결할 수 있다고. 관심 있다면 유튜브나 구글에 NEW JAMMA CBOX라고 검색해보면 된다. 주의할 점은 JAMMA라고 명명된 것과 달리 JAMMA 표준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8. 여담[편집]


네오지오 발매 및 가정용 대여 서비스 시작 당시에 이미지 캐릭터로 게임망토라는 "굉장한 게임을 집으로 데려가자!"(凄いゲームを連れて帰ろう。)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괴도 신사 콘셉트의 괴상한 캐릭터가 있다. 초기 네오지오 광고 포스터를 보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나중에 출연이 줄어들면서 이후로는 배경 캐릭터로서 가끔 등장했다. 또한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작 당시에 사브르를 든 캐릭터로 내자는 안이 있었다가 여성 캐릭터가 나코루루 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여성 캐릭터를 하나 더 넣게 되면서 이 캐릭터의 검술 스타일만이 샤를로트에게 이어졌다는 비화가 있다. 이후 KOF 2000에서야 료의 매니악 스트라이커 G-MANTLE로 등장하고, SNK 플레이모어로 넘어가서도 일부 배경에 깨알 같이 등장하여 명맥을 이었다.

용량 716 Mbit(=89.5 MB)를 사용한(카트리지판 기준) KOF 2003가 최고 용량의 게임이며, 최저 용량 게임은 22 Mbit를 쓴 퍼즐드(조이 조이 키드)라는 테트리스 게임이다. 참조.

SNK는 네오지오 게임 개발용으로 전용 그래픽 작업(=도트 찍기) 도구를 개발해 사용했는데, 초기에는 '네오지오 그래픽 툴(줄여서 네구라)이라는 것을 사용했으나 평이 좋지 않았고 후에 '아트 박스'라고 하는 새 도구를 만든다. 관련 사진 정보에 따르면 해당 하드웨어에 마우스, SCSI 하드 디스크, 스캐너 등을 연결할 수 있고, 롬 라이터도 연결할 수 있어 작업물은 최종적으로 롬에 저장한 뒤 프로그래머에게 넘기는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35] 비슷한 시기의 아케이드 게임 기업인 코나미캡콤, 타이토 등은 강력한 그래픽 기능을 가진 범용 컴퓨터(X68000 등)를 사용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점.[36] 다만 그래픽 작업만 그렇고, 프로그래밍은 당시 일본 범용 PC인 PC-9801 등을 사용했다. 당시 SNK 직원에 따르면 네오지오로 게임을 개발하던 시기는 해당 개발 환경을 지속했었으며, 이후의 하드웨어 추가나 업그레이드는 용호의 권 외전을 개발할 때 모션 캡처용으로 Windows 기반 PC를 도입한 정도라고.

유니버스 바이오스라 하여 여러 에뮬레이터 개발에 참여한 바 있는 라줄라가 제작한 네오지오 바이오스가 있는데, 롬 라이터 등으로 구워서 기존의 바이오스 대신 장착하면 국가 설정, 가정용 및 업소용 선택, 자체 치트 등 무궁무진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나 업데이트될 때마다 이전 버전을 무료로 공개하기 때문에 이를 에뮬레이터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2020년 3월에 더 이상의 개발을 중단하면서 마지막 버전(업소용 & 가정용 네오지오용: v4.0, 네오지오CD용: v3.3 버전)을 무료로 공개했다. 홈페이지는 http://unibios.free.fr/.

가정용 네오지오는 레트로 마니아들이 게임까지 포함하여 수집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생산이 중단된 관계로 본체 박스셋의 중고는 약 20만 원, 미개봉 신품은 약 40만 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카트리지의 가격도 10만 원 대를 가볍게 넘어서며, 30~40만 원 대에 거래하는 물건도 있다. 2000년대 초에는 메탈 슬러그 1의 중고는 120만 원 대, 상태에 따라 혹은 거품이 끼여서 200만 원 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슈퍼 사이드킥 4(유럽판 명칭. 북미 수출판 제목은 '더 얼티밋 11: SNK 풋볼 챔피언십', 일본 내수판 제목은 '득점왕 불꽃의 리베로')는 1만 달러(한화 약 1200만 원)에 낙찰했다는 흠좀무한 일화도 있다.[37] 롬 가격이 비싸다보니 500개~1000개 이런 식으로 찍어내지 않고 예약 주문 물량을 보고 생산량을 정하는 주문제작에 가까운 방식으로 만들어서 '안 팔린 게임'일 수록 품귀 현상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고전 졸작 게임 리뷰어 AVGN 캐릭터를 연기하는 제임스 롤프도 네오지오 기기와 카트리지 일부를 소지하는 것으로 보이나[38] 대부분이 이름난 명작이거나 하다못해 평작은 하는 것들이라 언급했을 정도로써 똥겜을 주로 리뷰하는 'AVGN'에서는 리뷰된 바가 없고, '제임스 & 마이크 먼데이'에서 메탈슬러그와 더블 드래곤(두 개 다 일본 내수판 네오지오 CD)을 리뷰했다.[39] 북미 유저들의 취향 때문인지 AVGN에서는 격투 게임으로 스트리트 파이터모탈 컴뱃만 언급했으며, 네오지오 격투게임에 대해 언급한 적은 거의 없다. 이카리 워리어즈[40] 리뷰 때 더 킹 오브 파이터즈(일본에서는 랄프 존스클락 스틸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안내를 한 것 뿐.)를 잠시 언급한 정도. 가정용 네오지오 카트리지가 고가라서 북미에서 거의 팔리지 않은 것과 타사 게임기 이식작 중에 인지도가 높은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도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렇다고 미국 아케이드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미국 업계지 Replay Magazine의 월간 순위를 보면 초기 게임을 중심으로 많은 게임이 랭킹(25위권)에 올랐다. 전체 순위는 아니고 캐비닛과 세트로 팔리는 제품은 별도로 순위를 정하고, 게임 카트리지만 교체하는 방식의 게임이 네오지오 게임이 속한 순위이다. 이것(20위권)까지 합치면 총 45개 게임이 순위에 오른다. 예를 들면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미국 아케이드도 장악했던 1991년 6월호부터 반년간의 전국전승버닝 파이트의 성적은 각각 2위→3위→3위→6위→9위→10위, 3위→4위→4위→5위→10위→13위로 높은 성적을 오래 유지했고, 매달 평균 7.7개의 네오지오 게임이 순위권에 올랐다. 아랑전설은 아랑전설 스페셜까지,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경우 1996년에 나온 4탄까지 전부, 더 킹 오브 파이터즈는 95까지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메탈 슬러그 등의 소수 게임만 주목을 받은 것 같다. 대전 격투 게임의 경우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모탈 컴뱃 등에 밀렸을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네오지오의 인지도는 세대에 따라 크게 갈리는데, 네트워크 게임이 큰 인기를 얻는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아케이드 시장이 사양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네오지오의 인기도 시들어 2000년대 초부터는 드림캐스트판 아랑 MOW나 인터넷 등 다른 루트로 네오지오 게임을 알게 된다. 이 세대는 CAPCOM VS SNK를 통해 SNK 캐릭터들을 처음 봤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니 인지도가 매우 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1990년대를 보낸 유저들에게 물어보니, 1990년대 후반에는 네오지오 게임 자체를 집 근처 아케이드에서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41]

1987년에 나온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앨범의 이름과 같다. 단, 앨범의 가나 표기는 'ネオジオ'가 아니라 'ネオ・ジオ'.

비현실적인 가격으로 당시에 한국에선 실사용자가 많은 게임기는 아니었다. 당시 보따리 장사들이 밀수로 들여온 네오지오는 일본 내수 가격에 더해 꽤 고마진을 얹어서 팔았는데, 안 그래도 비싼 물건+당시 일본과 한국의 물가차+보따리 마진까지 고려하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게임기였다. 슈퍼패미컴 같은 가정용 게임기는 어떻게 근성으로 세뱃돈이라도 모으면 학생들도 살 수 있는 레벨이었지만, 네오지오 본체만도 5만 8천엔에 게임 가격은 보통 3만엔 수준이었으니 그야말로 부잣집 자제나 어른 아니면 개인 용도로써 구입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당시 빅코, 빅콤 그룹이 빅에이라는 회사를 세워 정식으로 수입해서 맘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용산 전자상가에서도 많이들 틀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오락실 가면 100원이면 즐길 수 있는 게임이기에 구태여 돈을 마련해 살 필요까지는 없었고, 90년대 후반 아케이드가 사양세로 접어들며 끝물이 왔을 때 게임기만 어떻게 구매하고 업소용 팩을 저렴하게 손에 넣어 컨버터를 이용해 플레이 하는 유저들도 존재하기는 했다. 그때 관념으로 치면 넘을 수 없는 벽 직전 즈음에 있었던 게임기.

네오지오 게임은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일종의 '공공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네오지오 게임팩 안에 네오지오 게임을 몽땅 쓸어 담아 넣은 월광보합이 나온 이래, 아예 조이스틱과 라즈베리 파이 등의 머신 등을 일체화한 월광보합, 판도라 같은 기기들까지 범람하고 있는 실정. 그런데 SNK가 네오지오 미니를 출시하면서, SNK가 한국 시장에 불법 유통하는 중국산 에뮬레이터 게임기에 유통업자들에게 법적인 조치를 천명했다. SNK는 일단 한국에서만 조치를 취했지만, 당시 SNK의 모회사가 중국에 있는 이상 이러한 법적 조치는 한국만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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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 부트 업 로고. 1998년부터는 GIGA-POWER 로고로 바꿔서 나온다. 초기에는 NEOGEO 옆에 ⓒ 마크가 붙어서 나오며 1997년 울트라 전류 짜릿짜릿봉의 출시까지 나왔다가 이후에 마크가 지워져 나온다.[2] 아케이드 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오래 장수했으며 그 다음으로 장수를 한 기판은 1998년부터 2009년까지 거의 11년간 게임이 출시된 세가NAOMI가 있다.[3] MVS는 복수의 슬롯에 여러가지 게임을 동시에 삽입할 수 있어서 붙은 이름(하지만 저가형으로 슬롯 1개짜리 모델도 있었다.), 가정용 게임기 본체 등에 ADVANCED ENTERTAINMENT SYSTEM라고 새겨져 있긴 하지만 MVS 캐비넷 및 매뉴얼에도 SNK 로고 옆, NEOGEO 글자 밑에 조그맣게 ADVANCED ENTERTAINMENT SYSTEM이라고 똑같이 써있다. 즉 가정용 게임기의 올바른 명칭은 AES가 아니라 '가정용 네오지오'라고 봐야한다. 초기 출시 때는 가정용을 Rental System이라고 구분해서 불렀다.(ゲームマシーン 1990년 4월1일호.) 가정용이긴 하지만 처음에는 대여용으로 전개하는 것을 전제로 판매를 했기 때문이다.[4] 선-스프라이트 생성기 및 VRAM 인터페이스[5] 둘 다 후지쯔의 칩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6] 메인용 비디오 램[7] 비디오 스프라이트용 비디오 램[8] 팔레트용 비디오 램[9] 즉, 화면 전체에는 384개까지 스프라이트를 표시할 수 있으나 가로 일렬로 놓일 수 있는 스프라이트 수는 96개까지다. 그 이상이 늘어서면 97번째 스프라이트부터는 표시하지 않게 된다. 이는 초창기(8~16비트 시대) 하드웨어들의 스프라이트 구현 원리과 관련이 있는데 상세한 내용은 스프라이트 문서의 라인 버퍼 문단을 참고하자. 또 다른 참고로, MSX2와 패미컴의 스캔 라인 당 스프라이트 매수는 불과 8개이다.[10] 기본 컨트롤러가 십자패드가 아니라 아케이드 스타일 조이스틱인 얼마 없는 사례이다. 나중에 플레이스테이션 2용 복각판이 출시된 바가 있고, 네오지오 X 초회 한정판에도 USB 케이블로 연결할 수 있는 복각판을 포함했다.[11] 슈퍼패미컴의 반투명 기능은 엄밀하게는 진짜 반투명 기능은 아니다. 네오지오는 180도 반전은 가능하지만 90도 회전은 불가능해서 아티스트들이 대용량의 마스크롬을 활용해 90도로 회전시킨 별도의 그림을 적재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또한 확대 기능이 없어서 '스프라이트를 크게 그린 후 이것을 축소시키는 방법'을 썼다.[12] 탄막 슈팅이라는 장르는 아케이드에서 1993년 토아플랜에서 만든 '바츠군'부터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참고로 토아플랜은 이듬해인 1994년에 파산했고, 이 때 일부 직원들이 오늘날 탄막 슈팅 장르로 가장 유명한 회사인 케이브를 창업했다.[13] MVS의 게임팩을 컨버터를 사용해서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14] 네오지오 CD 초기 게임인 아랑전설 스페셜을 이식한 담당자에 따르면 기스 하워드의 펄럭이는 옷 때문에 메모리가 많이 필요해져서 이미 VRAM 성능의 한계에 걸렸었다고 한다. 출시 때부터 이미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15] 참고로 그 당시 비슷한 수준의 고용량 PC 게임을 내놓는 회사는 시에라 온라인오리진 시스템즈로 양대 산맥이었다. 시에라 온라인은 같은 해인 1992년 킹즈 퀘스트 6를 3.5인치 2HD 플로피 디스크(1.44MB) 9장으로 내놓았고, 오리진 시스템즈는 이듬해인 1993년에 울티마 7을 5.25인치 2HD 플로피 디스크(1.2MB) 8장으로 내놓았다.[16] 27C1024 40핀 모델을 사용. 후기 MV1B/C의 SMD칩(SP1자리)도 핀아웃은 같다.[17] 가정용/업소용 구분과 일본/미국/유럽/아시아 로 구분한다. 한국은 아시아판 바이오스가 달린 MVS가 들어왔다.[18] 지금은 가정용이 거품이 붙어 미친 듯이 비싸고 업소용이 오히려 더 싸다. 예를 들어 메탈슬러그 같은 건 세월이 흐르면서 가정용을 희귀품으로 취급하면서 200만 원대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고 그마저도 없어서 못 사는 정도인데, 업소용은 많아야 10만 원 안팎이면 살 수 있다.[19] 출처1 출처2[20] 출시 직후에 가격이 공개되었는데, 58,000엔이었다. 이는 대여 사업을 하는 매장에서 구입하기 위한 비용으로 제시한 것이나, 일반 소비자도 구입할 수 있게 열어놨다.[21] 일본에서는 1991년 킹 오브 더 몬스터즈버닝 파이트가 그나마 선전했다. 북미에서는 이 두 게임에 전국전승까지도 히트했다. 1992년 들어서는 아랑전설도 나왔다.[22] 이 철칙을 지키지 않아 유저들에게 지탄받고 흑역사로 매장된 게임의 하나가 바로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 스페셜이다. 다만 이게 마냥 지탄받기만 하기엔 너무나 억울한 게, 발매 당시 일본에서 초등학생이 동급생을 살해한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23] 가정용 게임기와 업소용 아케이드 기판간 성능차가 너무 큰 것이 원인이다. 당장 가정용 이식의 전설인 스트리트 파이터 2 슈퍼 패미컴 이식판만 봐도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제법 눈에 띄는 다운 이식임에도 당시에는 얼추 비슷한 외관에 게임성이 제대로 이식됐다는 정도만으로도 열광적인 반응을 받았다. 심지어 외관은 얼추 비슷하지만 게임성은 안드로메다였던 타카라제 네오지오 이식작들까지 제법 잘 팔렸을 정도.[24] 서울 신당점, 서울 송파점, 부산점 총 3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25] 덤프 초기에 불법 복제 방지 장치를 우회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했고, 그마저도 글꼴이나 스프라이트 그래픽 데이터는 암호화된 상태였기에 쉽지 않았다.[26] 롬은 금방 덤프에 성공했지만 한동안 구동하지 못했다.[27] 순서대로 통쾌 간간 행진곡, 블레이징 스타, 더블 드래곤, 갤럭시 파이트, 구루린(ぐるりん), 작신전설(雀神伝説), 파이터즈 히스토리 다이너마이트, 매지컬 드롭 3, 매지션 로드, 메탈슬러그, 메탈슬러그 3, 메탈슬러그 X, 빅 토너먼트 골프, 닌자 컴뱃, 닌자 코만도, 닌자 마스터즈, 봄버맨: 패닉 봄버, 갭포링(ガッポリん), 펄스타, 레이지 오브 더 드래곤, 소닉윙즈 2, 소닉윙즈 3, 스테이크스 위너(ステークスウィナー), 덩크 드림, 스트라이커즈 1945 PLUS, 쇼기의 달인(将棋の達人), 테크모 월드 사커 96(テクモワールドサッカー '96), 스래쉬 랠리(スラッシュ・ラリー), 탑 플레이어스 골프(トップ・プレイヤーズ・ゴルフ), 월드 히어로즈 2 제트, 오퍼레이션 라그나로크의 징글이다.[28] 유니티 WebGL로 제작되었다.[29] 마케팅을 위한 일종의 눈속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무리 봐도 하나의 카트리지 용량의 한계와는 관계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당시 용량부족에 시달렸던 이유는 스펙 문제 보다는 기억장치인 ROM의 단가가 매우 비싸서 많이 쓰지 못한 것이다.[30] 기존에 사용하던 MAX 330 MEGA는 롬 자체의 용량이 아닌 '롬 직접 접속 용량'인데 이를 용량으로 보이게 하는 수법을 써왔고, 1995년 이후 실제 카트리지 용량이 300 Mbit를 넘어서자, 다른 마케팅 문구가 필요해져서 'GIGA-POWER'를 채택한 것으로 본다면 그럴 듯하다. 참고로 GIGA가 되려면 대략 1000 Mbit 정도가 되어야 하지만 이 시기를 계기로 하드웨어 스펙이나 최대용량이 바뀌었다는 정보는 특별히 없다. 당시 ROM의 가격이 비교적 내려갔던 것인지, 복제 기판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대용량 게임을 만들게 했고(용량이 많은 것만으로도 복제가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 위해 게임과 관계없는 사진을 변환해서 더미데이터를 대량으로 만드는 수법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당시 개발자가 인터뷰에서 밝혔다.[31] 가정용 네오지오에서는 일부 게임만 레벨 설정이 가능하다.[32] 예외적으로 라스트 리조트는 0부터 7까지.[33] 161합팩을 사용 시 초기 난이도 설정은 8이다.[34] 당시에 신규 기판으로 2D 게임용 기판을 냈지만 생각보다 재미를 못 봤기 때문에 3개 게임만 내고 '저렴한 구 기판으로 효율적으로 고퀄리티의 게임을 만들어서 판다'라는 대체 전략으로 실적을 올린 캡콤과 비슷한 경우이다.[35] 초기형은 마우스 입력을 지원하지 않아 키보드로 작업해야 했다. 증언1 증언2 SNK의 전통을 지키는 키보드파와 신규 유입된 마우스파로 갈려서 싸웠다는 듯... 한국의 빅콤 왕중왕개발팀도 SNK에서 연수를 받을 때 키보드로 배웠다고 한다.[36] 개발팀에 따라 X68000을 일부 사용했다는 증언은 있다.[37] 이 게임은 일본 내수판도 상당히 비싼 편으로, 2020년 5월 기준 스루가야에 풀패키지가 72만 8천엔에 올라와 있다.[38] 가끔 TV에 연결된 게임기들을 보여줄 때 네오지오가 있는 것이 포착된다.[39] 대신 'AVGN'에서 패미컴(북미 수출판 이름 NES)판 이카리 1편을 리뷰한 바는 있으며, 몇몇 오프닝에서 네오지오 게임 카트리지의 무게를 재는 장면이 나온다.[40] 패미컴용 이카리는 북미에서 쿠소게로 악명이 높아서 오히려 인지도가 높다. 아케이드판은 북미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41] 1994년 이후 북미 아케이드 게임 산업이 사양세에 접어들게 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실시간으로 최전성기 네오지오 게임을 즐긴 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