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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세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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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건설대신, 경제기획청 장관을 역임한 노다 우이치의 손녀다.
2. 생애[편집]
후쿠오카현 키타큐슈시, 야와타 제철 직원의 사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야와타 제철이 신일본제철로 합병되며 유치원 시절 도쿄로 오게 되어 덴엔쵸후 후타바학원[1]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 고등학교는 중퇴. 이때 동급생을 이지메를 시켜서 중퇴했다는 괴문서가 돈 적이 있다. 학교에 허락받지 않은 원동기 면허가 있었다고도 하고, 이외 여성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본인은 나름 "발산하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많아 미국으로 떠났다"고 밝히는 등, 오죠사마[2] 학교와 맞지 않는 기질이었던 듯하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 미시간주 존스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에 조치대학 외국어학부 비교문화학과를 졸업한 뒤, 테이코쿠 호텔에 입사해 프론트, 해외영업 업무 등에 종사했다. 1984년 조모 히카루의 사망 이후 조부 노다 우이치의 양자가 되어, 원래의 성씨였던 '시마(島)'에서 조부의 성씨인 '노다(野田)'로 성씨를 바꾸었다. 왜 조부와 성이 다르냐고 하면, 아버지인 시마 미노루가 노다 우이치의 장남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외조부인 시마 도쿠조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 기후현의회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해 최연소 현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정치경력이 전무했던 그녀가 현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은 기후현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력이 꼽힌다. 할아버지 노다 우이치는 이케다 하야토, 후쿠다 다케오와 함께 대장성의 3다(田)로 묶일 정도의 위계였다.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할아버지의 지반이었던 舊 기후현 1구에 출마했지만 자민당의 공천도 받지 못하고 낙선했다. 그러나 1993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같은 지역구에 재출마해 '중의원에도 자민당 여성의원을!'을 공약으로 내걸어 중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6년 제2차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에서 우정정무차관이 되었고, 1998년 오부치 게이조 내각에서 우정대신에 임명되었는데, 당시 나이 37세로 남녀 통틀어 역대 최연소로 임명된 것이었다. 1999년에는 자민당 국회대책 부위원장에 취임했으며, 2000년에는 자민당 정조 부회장, 자민당 수석 부간사장에 취임하는 등 당의 여러 직책을 맡았다.
2005년에는 우정 민영화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으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공천한 사토 유카리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5선에 성공했다. 당선 이후에는 우정 민영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얼마 안 가 자민당을 탈당했다. 하지만 2006년 아베 신조의 뜻에 따라 우정 민영화 반대파 의원들의 복당이 이루어지면서 자민당에 복당했다. 2007년 후쿠다 야스오가 자민당 총재로 취임하면서 당의 홍보국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다가 후쿠다 야스오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에 임명되었고 아소 다로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역구에서 낙선했으나 석패율제로 구제되어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인 기후 1구에서 다시 당선되어 7선에 성공했으며, 같은해 자민당 총무회장에 임명되었다.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8선에 성공했다. 2015년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추천인 20명을 모으지 못해 포기했다. 이후 히라누마 다케오가 복당을 시도하자 다니가키 사다카즈 간사장에게 복당요청서를 제출했다.
2017년 다카이치 사나에의 후임으로 아베 신조 제3차 개조내각에서 총무대신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마이넘버제도 담당)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9선을 기록했다. 선거 이후 제4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도 총무대신으로 유임되었다. 2018년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재도전했으나 이번에도 추천인 20명을 모으지 못해 출마가 좌절됐다. 이후 제4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이 출범하면서 총무대신에서 물러났다. 이후 여성 최초로 중의원 예산위원장을 맡았다.
아베 신조 총리의 사퇴 선언에 따라 실시되는 2020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재도전을 하려했지만 불출마하였으며 스가 요시히데 총재로부터 간사당 대행으로 임명되었다.
2021년 3월 11일 통신 대기업 NTT로부터 과거 2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내용의 폭로가 터져나왔다.
2021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하였다. 개표 결과 국회의원 표 34표, 당원표 29표, 총 63표로 4위로 낙선하였다.
2015년과 2018년 2차례에 걸쳐 총재 선거 추천의원 20명을 모으지 못 해 출마조차 못 했었던 것에 비하면 선전했다는 평이지만 앞으로 또 출마할 때 얼마나 회파를 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강경 우파 성향 의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기시다 후미오가 당선되는 것을 보면 많이 힘들 것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2021년 10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인 저출산 담당상으로 기용되었으며, 2022년 8월 10일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내각 출범으로 물러났다.
3. 정치적 성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이력[편집]
6. 여담[편집]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에 찬성한다.
- 참의원의원인 츠루호 요스케(鶴保庸介)와 사실혼 관계였으나 2007년에 이별했다.
- 현재 남편이 재일 한국인 3세인데 전직 야쿠자다. 2017년 주간문춘이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자마자 논란이 일었고, 노다 본인이 "사생활에 관련된 부분인데... 뭐 맞습니다."라고 흔쾌히 인정해버려서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남편의 이름은 김문신=기무라 후미노부(文信)로 교토의 아이즈코테츠카이 산하의 마사야마구미 출신이다. 조직에서 빠져나와 한국음식점을 운영하던 중 이 음식점에 노다가 자주 방문하며 연이 맺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노다 세이코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자 다시 남편의 과거가 들먹여졌고, 이에 남편이 주간문춘과 주간신쵸를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했지만 법원이 오히려 남편의 과거 경력을 대체로 사실이라고 확인해주었다. 다만 주간문춘을 상대로는 일부승소하여 110만엔의 배상명령을 받았지만, 주간신쵸를 상대로는 패소했다.
- 2009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다.
- 젊은 시절에 테이코쿠 호텔 직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이때 화장실 청소를 하다 화장실 변기물을 마시며 일했다는 일화가 인터넷에서 나돈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자기계발서같은 서적에서도 작은 일부터 충실하자라는 이야기를 하겠답시고 이 이야기를 묘사하기도 하는 등 사실인 것처럼 미화하고 있다. 애초에 사실이라 하더라도 화장실 변기물을 마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가장 위생이 안 좋은 장소가 화장실인데 거기 물을 마신다는 것은 대놓고 병에 걸리려고 하는 자살행위에 가깝다. 실제로 화장실의 깨끗함을 증명하기 위해 변기물을 먹었다가 난리난 사건이 중국에서도 있었을 정도이다.
- 2021년 일본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투표 당일 새벽에 자민당 후보에게 투표를 호소한 것에 대한 선거법 위반이 나왔다.[9] 이에 비서가 잘못 게시했다고 사과했다.#
- 부동산 부자다. 일본 최고의 부촌 중 하나인 도쿄 덴엔초후와 휴양지이자 일본 상류층들의 별장지로 유명한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각각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역구인 기후현 기후시에는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남편은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해변 근처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 한일여성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지한파고 한국에 우호적인 편이다. 조부 노다 우이치는 한일의원연맹 창립자 가운데 한사람이라고.#
- 과거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젊은 시절 선거운동을 할 때에도 성희롱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물론 일본이 성차별이 심하다고 하지만 조부가 기후현의 거물이었던 명문가 출신 여성 정치인도 성추행을 당할 정도로, 그만큼 일본의 여성 인권은 선진국이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뒤떨어졌다는 소리이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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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덴엔초후에 위치한 명문 가톨릭계 사립여학교로, 마사코 황후, 미치코 상황후도 다닌 학교이다.[2] 유복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귀하고 곱게 자라난 여자.[3] 4년 전과는 다르게 어떤 부분을 개정해야 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4]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5] 고이즈미 내각의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하면서 탈당.[6] 1990.? 사직 (39회 중원선 출마)[7] 당적은 유지한체 무소속으로 입후보. [8]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9] 일본 공직선거법상 투표 당일에는 선거운동이 불가능하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