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물리학상/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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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역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이력은 다종다양하다. 즉, 다른 노벨상과 비교하면 여러 분야에 걸쳐 골고루 상이 돌아가는 편이다. 물리학은 타 학문보다 방법론에 가까운 성격을 지녀서 분류가 더 세부적으로 나뉘는 이유가 크다.
다수가 입자물리학, 핵물리학, 양자역학 등에서 배출됐는데고 특히 첫 수상자가 X선을 발견한 뢴트겐일 정도로 초창기 방사선 연구에 업적이 있는 학자에게 관심이 집중됐으며 양자역학 역사에 한획을 그은 코펜하겐 학파[1] 출신들에게도 많은 영광이 돌아갔다. 최근엔 반도체, 신소재같은 응용 분야와 천체물리학, 광학, 양자역학의 기초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오고 있다.
2. 연도별 수상자[편집]
2.1. 1900년대[편집]
2.2. 1910년대[편집]
2.3. 1920년대[편집]
2.4. 1930년대[편집]
2.5. 1940년대[편집]
2.6. 1950년대[편집]
2.7. 1960년대[편집]
2.8. 1970년대[편집]
2.9. 1980년대[편집]
2.10. 1990년대[편집]
2.11. 2000년대[편집]
2.12. 2010년대[편집]
2.13. 2020년대[편집]
3. 기타[편집]
전체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보았을 때 수상자 중 미국인이 263명(약 44%), 영국인이 87명(약 14%), 독일인이 70명(약 11%) 등으로 국가 별로 편중이 심한 편이다.
이에 대해 김해도 한국연구재단 정책연구팀장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국가별로 편중이 발생시킨다고 중앙일보 기사에서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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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닐스 보어를 위시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막스 보른,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 등이 모인 연구집단.[2] 로런츠 변환, 로런츠 힘, 로런츠 인자 등을 정립한 그 사람이다.[3] 이름은 미국인 같지만, 사실은 프로이센에서 태어난 폴란드계 유대인이다.[4] 마이컬슨-몰리 실험, 마이컬슨 간섭계 참조. 그런데 몰리는 노벨상을 못 받았다.[5] 노벨물리학상 역사상 최악의 수상으로 뽑힌다. 등대라니...[6] 당시 니콜라 테슬라와 토머스 에디슨이 공동 수상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소문을 들은 테슬라가 에디슨과 같이 받을 바엔 차라리 안 받겠다며 거부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달렌이 수상했다는 루머가 있다.[7] 부자가 수상했다. 둘 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수상 때 로런스는 만 25세 8개월 14일로 이는 무려 99년 후인 2014년에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만 17세 5개월 1일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깨지까지 세계 최연소 수상 기록이었고, 과학상 수상자로만 한정한다면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론을 만든 것이 아들인 로런스이고, 실험을 한 쪽이 아버지인 윌리엄이다.[8] 수상 당시[9] 흔히 아인슈타인의 대표적인 연구 업적으로 상대성 이론이 유명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실험적 증명이 불가능한 사고 실험으로 도출된 이론이어서 노벨상 수상 대상이 될 수 없었다.[10] 주파수의 단위 헤르츠의 어원이 된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의 조카이다.[11] 이는 양자역학의 중심 원리이자 이후의 양자 파동역학과 행렬역학의 근본이 되는 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입자가속기와 안개상자,거품상자의 발명을 통한 소립자론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3대 영역을 확립한 가장 근본이 되는 이론중 하나이다.[12] 최초의 아시아계 수상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의 숙부.[13] 190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J. J. 톰프슨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전자를 발견했고 아들은 전자의 파동성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14] 이 사람 제자 6명이 노벨상 수상자다. 겔만, 리청다오, 양전닝등...여튼 연구와 교육 양쪽 모두 탁월했던 과학자.[15] 중국 대륙 출신이고 국부천대 시기에는 미국 유학 중였으며, 중화민국 국적을 유지했을 뿐이므로 대만과는 직접 관련은 없다. 이후 둘 다 귀화해서 미국 국적이다가, 양전닝은 2017년에 다시 중화인민공화국 국적 취득. 참고로 양전닝의 정치적 성향은 중화민국이 아닌 중화인민공화국 지지다.[16] 나중에 맨해튼 계획에 참가한 그 체임벌린 맞다. 맨해튼 계획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참가하긴 했지만...[17] 퀴리 부인에 이은 노벨물리학상 2번째 여성 수상자.[18] 다만 자신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연구내용에 오류가 있었음을 본인이 직접 밝혀내고 수정 보완했다. 근데 어차피 다른 업적들만으로도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했는지라...[19] "for his decisive contributions to elementary particle physics, in particular the discovery of a large number of resonance states, made possible through his development of the technique of using hydrogen bubble chamber and data analysis"[20] 존 바딘은 현재까지 노벨 물리학상을 1956년과 1972년 두번 받은 유일한 분이다.[21] 재밌는게 조지프슨은 노벨상 수상 이후 텔레파시, 투시 등의 '초능력'을 양자역학으로 규명하려고 시도했다.[22] 닐스 보어의 아들이다.[23] 본명 딩자오중(丁肇中). 부모는 중국 산둥 출신으로 미국 체류 중 그를 낳아 중화민국/미국 이중국적이다. 미국 출생 후 아버지 고향 산둥성 르자오로 갔다 국부천대 때 대만으로 이주해 자란 후 대학 때 미국에 돌아와 계속 거주 중. 그는 삼남매의 맏이로 바로 둘째는 자오화(肇華), 막내는 자오민(肇民)이다. 그래서 중공의 중국 중앙 텔레비전이 그를 인터뷰 때 '만약에 동생이 하나 더 있었다면 자오쭈(肇族) 아니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오궈(肇國)가 됐을 것'이라 답해 제대로 엿먹였다. 돌림자를 제외한 남매의 이름 끝글자를 모으면 바로 무엇이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24] 제이 입자의 제이는 새뮤얼 팅의 성을 한자로 썼을 때 그 모양과 닮아서 붙였다는 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25] 볼프강 파울리와는 다른 사람이다.[26] 이 연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중력파가 실존한다는 첫 간접 증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훗날 LIGO연구의 당위성을 제시한 셈.[27] 리처드 파인만의 제자다. 스승과 제자가 각각 노벨상을 받은 보기 드문 사례. 아이러니하게도 스승처럼 우주왕복선 참사가 터지자 진상조사에 불려나왔다.[28] 사족으로, 이 사람은 버락 오바마 정권기에 에너지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미국 정부의 각료로 활동하기도 했다.[29] 쉽게 풀자면 빛의 도플러 효과와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이용해 입자의 운동상태를 최소화 시킨 것이다. 입자의 운동상태가 kbT(열적 에너지)에 비례하므로 더 낮은 온도로 냉각된 셈.[30] 엄밀한 의미에서의 Optical Tweezer 개발자는 무려 20년뒤에 최고령 기록을 깨며 노벨상은 역시 장수해야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8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Optical Gradient Force와 도플러 효과는 다른 매커니즘이기 때문.[31] KAIST 12대 총장을 지냈다. (2004.7.14 ~ 2006.7.13)[32] 201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가지타 다카아키의 스승이다. 이쪽은 카미오칸데의 3천톤의 물을 이용했다.[33] 옥스퍼드 대학교의 저주(?)를 깬 인물이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옥스퍼드 대학 물리학과는 레깃 이전까지는 방문 연구원 등 외부 출신 인재를 제외하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34] 범신론 사상을 가졌는데 2022년 템플턴상을 받았다.[35] 빅뱅 이론(시트콤) S02E17 'The Terminator Decoupling' 에서 출연하기도 하였다. 대사는 다음 한 줄. "With all due respect, Dr. Cooper, are you on crack? (셸든 쿠퍼 박사. 미안하지만 혹시 마약 하셨소?)"[36] 2016년 현재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프로젝트 사이언티스트이다.[37] 이 노벨상은 사실상 이 둘 뿐만이 아닌 NASA의 우주 극초단파 관측 탐사선 COBE 미션의 수상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우주물리학 관련 연구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38] 1970년 미국으로 귀화했다.[39]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 후 인터뷰에서 I am sorry. I cannot speak English.라고 말한 후 일본어로만 인터뷰 한 걸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논문도 일본어로 작성했다.[40] 이 사람은 자기장으로 개구리를 띄우는 방법을 연구하여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41] 현재 국적은 네덜란드이지만 원래는 독일계 러시아인이다.[42] 이 사람 응용물리학잔데 대학 다닐 땐 응용물리학 B를 맞았었다고 한다.[43] 여담으로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셸든 쿠퍼를 소환시킨 인물이다.[44]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하나 두께의 6각 평면형 물질이다. 킹왕짱 튼튼하고 전도성도 지니고 가공도 좋은데 합성이 힘들어서 학자들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팀에서 흑연(그래파이트)의 표면에 테이프를 붙였다 떼서 한 층만 추출하는데 성공했다고. 1980년대에 그래파이트 덩어리 연구할 때부터 이미 하던 방식인데 단지 그 버리던 테이프를 역으로 그래핀 연구에 활용한 것이다. 그야말로 콜럼버스의 달걀. 창의력대장. 가장 싸게 먹힌 노벨상 연구로 꼽힌다. 논문도 꼴랑 한장이다![45] 다만 마찬가지로 그래핀 확증 실험에 성공해 공동 수상이 유력했던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가 제외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던 한국의 노력 부족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46] 힉스 보손은 2012년 중후반에 실험을 통해 확인이 되었고, 2012년의 남은 기간 동안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갑론을박을 거친 상태에서 실험이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거의 확신한 상태에서 2013년이 왔다. 사실 피터 힉스와 프랑소와 앙글레르외에 로버트 브라우트라는 학자도 앙글레르와 공동연구로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의 존재를 예견했다. 하지만 2011년 타계하여 살아있는 사람들만 노벨상을 받는다는 노벨물리학상의 원칙상 수상하지 못하였다.[47] 하기의 아마노 히로시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이다. 출처(노벨상 홈페이지) 즉 스승과 제자가 동시에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48] 상기의 아카사키 이사무의 제자이다. 출처(노벨상 홈페이지)[49] 청색 LED를 최초로 대량생산에 성공한 발명가.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고.[50] 노벨상이 초창기에 비해 공학분야에 많이 인색해졌음에도 나온 상인 점이 특이하다. 노벨재단은 수명이 길고 값싸며 살균 능력도 있는 청색 LED 개발을 제2의 전구 발명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인류에게 기여한 공로가 매우 크기 때문에 노벨상의 취지와 부합한다고 밝혔다.[51] 2002년 수상자인 고시바 교수의 제자로 스승과 제자가 모두 노벨물리학상을 수여받았다. 이쪽은 슈퍼 카미오칸데의 5만톤의 물을 이용했다.[52] for theoretical discoveries of topological phase transitions and topological phases of matter[53] 사실 많은 사람들이 중력파를 예상했으나, 2015년이 입자/천체물리 계열이라 다른 분야가 받을 것이라 예상한 사람도 꽤 있었다. 결국 킵 손은 2017년에 노벨상을 받았다.[54] 이번 노벨물리학상의 내용 이해에 위상수학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기자들 앞에서 도넛을 들고 강의를 했다.[55]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라이고라고 읽는다. 라이고와 더불어 유럽의 Virgo나 일본의 KAGRA 등을 대표적인 중력파 망원경으로 뽑을 수 있다. 라이고는 미국 워싱턴주 핸퍼드,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에 위치해있는 중력파 관측 시설이다. 1992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킵 손과 로널드 드리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라이너 바이스가 공동 설립하고 두 학교와 다른 대학 등이 참여하는 중력파 천문학의 공동 연구사업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연구 협업 조직을 확대 설립하면서 세계 9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게 된다.[56] 이때도 사람들이 쉽게 예상했다. 2013년의 재림 이유는 2016년에 받을 수도 있던게 못받았으니...[57] 1922년 9월 2일 출생. 이 수상으로, 지난 200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레오니트 후르비치의 최고령 노벨상 수상자 기록(수상 당시 나이 만90세 3개월 21일)을 무려 6년 2개월 11일이나 갱신하였다. 그러나 불과 1년 후, 201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존 B. 굿이너프(1922년 7월 25일 출생)에게 최고령 수상자 기록을 내주게 된다.[58] 광 집게(Optical Tweezer)의 발명. 1997년 노벨 물리학상과 혼동하기 쉬우나 메커니즘은 완전히 다르다. 97년의 경우 입자에 조사하는 빛의 운동량을 이용하여 입자의 운동량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라면, 이건 빛을 한 점으로 강하게 집중시키면 근처의 입자가 gradient force를 느끼는 방식이다. 24, 25번 주석 참조.[59] 55년만의 여성 수상자이자 역대 물리학상 수상자 중 3번째 여성 수상자이다.[60] 현대 실험물리에서 고밀도 고단축 레이저 펄스가 쓰이는 곳은 매우 많다.[61] 수학자이기도 하다.[62] 일본명 마나베 슈쿠로(真鍋淑郎). 일본 에히메현 출신으로, 일본에서 박사 취득 후 미국 기상청 주임연구원에 취직 및 시민권 취득.[63] 기상학 관련 연구로는 첫 노벨상 수여.[64] 양자 컴퓨팅으로는 첫번째 사례다.[65] [math(10^{-18})]초(100경분의 1초) 단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