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푸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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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프랑스의 정치인. 프랑스 왕국의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2. 상세[편집]
루이 14세 시대에 마자랭의 신임을 받아 1653년에 재무장관이 되었다. 프랑스 제일 부자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미술가와 문학가를 보호하고 호화로운 보 르 비콩트 성관을 세웠으나[1] , 이것이 루이 14세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려 자기의 욕심만을 채운다는 죄로[2] 장 바티스트 콜베르에게 고발당했고 푸케는 이에 지지 않은 채 3년간 자신을 죽을 힘을 다해 변호했지만 결국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어느 성채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짓기 시작한 것도 보 르 비콩트 성관을 보고 진노하여 왕권의 위엄을 세울 방도를 찾다가 결정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여기서 그를 몰락시킨 루이 14세의 이중적인 면모가 드러나는데 그가 푸케를 체포하기 2주전 푸케가 연 보 르 비콩트 성관에서 연회에 참석했으며 그보다 더 3개월전 이미 푸케를 체포하겠다는 서명까지 다 마쳤다는 점이다. 즉 이미 다 준비해놓고 뒤에서 통수를 친 격. 이 때문에 훗날 이 사실이 드러나고 귀족 사회는 크게 경악한다.
3. 여담[편집]
- 훗날 철가면으로 추정되는 실존 인물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흥미로운 점은 그를 체포한 사람이 바로 샤를 드 달타냥 백작이었다는 것.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푸케 본인이 아니고 함께 수감되었던 그의 시종이 철가면이라고 본다.
- 푸케 사후 그의 가문은 명예가 실추되었으나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아 그의 손자 샤를 루이 오귀스트 푸케는 장군직을 지냈다.
[1] 최고 권력자 쥘 마자랭이 죽은 후 장바티스트 콜베르와 권력 싸움을 하던 중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고 다른 이들도 호화로운 성을 짓느라 재산을 탕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었다.[2] 왕가의 재산을 빼돌린 죄였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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