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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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달려라 코바/cova.jpg


1. 개요
2. 역사
2.1. 초창기
2.2. 전성기
3. 생방송과 녹화 방송 병행
4. 게임 목록
5. 여담


1. 개요[편집]


달려라 코바는 SBS에서 방영했던 TV 프로그램이다. 동서게임채널이 게임을 제작하였다. 첫 방송 직전, 주말이었던 1994년 10월 15일 오후 1시 10분에 시범 방영을 했었다. 방영시기나 시간대나 KBS 2TV 게임천국의 경쟁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은 코가 큰 '코바'라는 캐릭터이다. 전화를 걸어서 연결된 시청자가 코바를 조종해서 게임을 클리어한다. 전화번호가 처음에는 02-368-1789였으나 중반 이후로는 02-368-1703으로 바뀌었다. 방송 전부터 전화가 두절될 정도로 인기있었다. 달랑 1명만 연결할 수 있는데 전국에서 전화가 걸려오다 보니 운 좋게 전화가 걸린 한 사람 빼고는 죄다 통화중으로 떴다.

코바 목소리는 EBS 성우조경모가 맡았다.

유럽의 유명한 게임 쇼인 'Hugo the Troll'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타이틀 캐릭터인 코바는 Hugo를 표절했다. Hugo의 모습을 보자. 코바가 엄청 참고 많이 했다.

방영 당시에는 TV 생방송에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신선한 개념이었거니와, 게임 진행 상황에 따른 코바의 재치와 입담이 상당한 재미를 주었기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지금 보면 다소 재미있지만 당시 게임의 화질치고는 그래픽도 괜찮은 편이었다. MC는 같은 시기 〈생방송 TV가요 20〉을 진행한 1994 미스코리아 미 출신 김예분.[1][2]


2. 역사[편집]



2.1. 초창기[편집]


방영 시기는 1994년 10월 24일부터 1996년 3월 29일까지였으며[3] 초기에는 평일 오후 6시 55분부터 10분간만 방송되었다.


2.2. 전성기[편집]


1995년 4월 17일부터 월~목 오후 6시 50분에 15분 동안 방송되었으며 게임과 전화 연결 시스템이 점차 개선됨과 동시에 프로그램의 안정화가 이어지면서 종영시기까지 생방송 체제로 이어지게 되었고 금요특집을 신설해 35분 동안 스튜디오 녹화를 진행하게 되었다.


3. 생방송과 녹화 방송 병행[편집]


달려라 코바 방송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참여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1. 집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우연히 연결되어 생방송으로 전화를 조종함.
2. 제작진에 엽서를 보냄. 제작진이 전날 집에 방문해서 질문과 대답을 알려주고 생방송으로 전화를 조종함.
3. 제작진에 엽서를 보냄. 참여자가 방송국에 방문하여 생방송으로 전화를 조종함.
4. PC 통신 게시판에서 참여 신청. 방송을 미리 녹화하고 방송일에 생방송처럼 송출함. #

아마도 생방송을 원칙으로 하되 방송 상황에 따라 녹화해둔 영상을 생방송처럼 송출하지 않았을까 예상된다.


4. 게임 목록[편집]


1기/2기/3기에 각각 4개의 게임이 있어서, 총 12개의 게임이 3기에 걸쳐있다.

1기: 카누, 모터사이클, 행글라이더, 스키[4]
2기: 우주선,[5] 마법의 동굴, 지하 터널, 황소 피하기
3기: 태권도,[6] 스케이트 보드[7], 롤러코스터[8], 부메랑


1기 시절의 게임의 PC 버전. 당시 생방송을 봤던 사람들이라면 코바의 목소리가 없어 뭔가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질 듯.

이 인기를 업은 PC 버전도 나왔지만 '코바 목소리가 없기 때문에 재미가 팍 떨어진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달려라 코바가 재미있었던 이유가 게임 자체보다는 코바의 재치있는 입담 때문이었던 걸 감안한다면, 이게 빠진 PC판 달려라 코바는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 그나마 PC판 2기에서는 게임 선택화면이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만들어진 동영상으로 나와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9] 게다가 너무나 쉽기도 하다. 한 시리즈당 게임 4개가 들어 있는데… 정말로 게임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20분 이내로 4개의 게임을 모두 끝장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본 방송에서는 그 쉬운 장애물 하나도 못 피하고 끝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걸 보고 '저 쉬운 걸 못 하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실제로 해 본 사람들은 열이면 열 '눌러도 안 움직인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어쩔 수 없는게, 그 당시 전화벨로 컴퓨터로 돌아가는 게임을 제어하는 쪽에서 지연되는 시간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핑(Ping) 지연이 심했기 때문에 그랬다.

당시 이 프로그램의 스폰서가 동서게임채널이었는데, 프로그램 말미에는 동서게임채널에서 유통하는 게임의 짧은 소개도 겸했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도 이 상품협찬 부분에 소개된 바가 있다.


5. 여담[편집]


후속 프로그램으로 날아라 호킹이 나왔지만, 달려라 코바만큼의 인기를 얻진 못했다. 참고로 날아라 호킹의 진행자는 진재영이었다. 호킹 전담 성우는 성우 한인숙이었다가 후기에 성우 김영선으로 교체되었다.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도 게임화된 적이 있다. 추후 진행자는 이의정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퀴니를 비롯한 몇몇 케이블 방송사에서 비슷한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끝내 이 프로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10] 특히 주로 애니메이션을 방송하던 퀴니는 지나칠 정도로 유료 ARS 게임 프로에 집착하였던 것이 화근이 되어 몰락의 길을 걸었고, 얼마 뒤는 폐국하였다.[11]

이 달려라 코바를 소재로 한 최불암 시리즈도 있다.
어느날 최불암이 달려라 코바에 걸렸다. 그래서 게임을 하는데 최불암은 우주선 게임이 걸렸는데 시작한 지 10초만에 죽은 것이었다. 이것은 달려라 코바가 생긴 이래로 최초였다.
김예분: "아니, 왜 이렇게 못하세요?"
최불암: "야, 너도 돌려봐!"
이유인 즉, 최불암은 버튼을 누르는 전화기가 아닌 다이얼을 돌리는 기계식 전화기를 사용했던 것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 게임은 첫 게임 잡지 번들이기도 하다. 1995년 '게임채널'이라는 월간 게임지를 사면 이 CD를 사은품으로 증정했다.[12] 사실 게임채널이 동서게임채널에서 내던 잡지인 지라 제작사가 자사 게임을 사은품으로 준 것이라 다른 번들과는 거리가 있다. 더불어 잡지를 사면 무작정 주는 게 아니라 잡지를 사서 그 달 20일까지 등록자 엽서를 보내야 집으로 보내주는 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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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3년 2월 28일 정부 직할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출생. 1998년 미국 유학으로 인해 연예계를 은퇴한 뒤 드림뮤직 웹PD, 두밥 마케팅디렉터 등을 거치다 2003년 SBS <뷰티풀 선데이> '발리편'에서 컴백하여 <TV장학회> 등지에서 잠깐 얼굴을 내밀었고, 2013년부터 비원비오에프, 도니버거 등 식품업체들을 세워 경영 중인데, 편의점 등에서 판매중인 젤리Ro가 이 회사의 제품이다. 위 영상의 섬네일을 보고 재키 림으로 오인할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김예분이 재키 림의 후임으로 생방송 TV가요 20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2004년 <스포츠조선> 기사)[2] 김예분은 이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돼지바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3] 1995년 5월 5일 방송분은 특집프로 <신세대 자유선언> 때문에 휴방됐다.[4] 초기에는 카누, 모터사이클, 행글라이더 3개만 있었고 스키는 나중에 추가되었다.[5] 시리즈 중 유일하게 마우스를 지원한다.[6] 시리즈 중 유일한 2인용 게임[7] 3D 그래픽이며 점수가 획득이 아닌 자동으로 올라가는 게임[8] 3D 그래픽이다.[9] 삼보컴퓨터 번들판은 해당되지 않는다.[10] 그래도 2000년 9월 4일부터 2003년 중반까지 방송된 온게임넷의 '생방송 게임콜'은 꽤 선전했다. 이때는 전화 기술 연결 시스템이 달려라 코바 당시보다 발전됐기 때문에 핑 지연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11]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사에서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해 가는(…) 유료 게임을 방영한다는 점부터가 큰 문제였다.[12] 하지만 1996년에 레이싱 게임 정품 시디를 부록으로 증정한 컴퓨터 월간지인 하우 PC가 첫 번들을 제공한 잡지라고 알려진 탓에 이 사실은 철저하게 묻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