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철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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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철곤
譚哲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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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5년 6월 6일 (68세)
경상북도 대구시 종로출장소 종로2가
(現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2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등주 담씨
학력
서울외국인학교
조지 워싱턴 대학교 (졸업)
배우자
이화경

1. 개요
2. 일생
3. 여담
4. 논란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기업인. 현 오리온그룹 회장.


2. 일생[편집]


1955년 6월 6일, 경상북도 대구시 종로출장소 종로2가에서 화교인들이 밀집한 종로 한의원을 운영하던 대만화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에 있는 서울외국인학교를 졸업했고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를 졸업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외국인학교에서 만난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차녀 이화경에게 10년 넘는 구애를 한 끝에 결혼을 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하면서 곧바로 동양시멘트 구매과장으로 입사하였으며 그로부터 1년 뒤 동양제과로 회사를 이직해 동양제과 구매부장, 사업담당 상무이사, 영업담당 부사장 등의 현장을 거치면서 실무를 배웠다.

둘째 사위여서 그런지 크게 물려받지 않고 오로지 동양제과 한 회사를 물려받았다. 첫째 사위인 현재현 회장이 동양그룹을 거의 그대로 승계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출발이었다. 이는 장인 이양구 선대 회장이 첫째 사위를 극도로 총애했기 때문인데, 현재현 회장은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자 변절하여 골수 친일파가 된 현상윤[1]의 손자였다. # 또한 서울대 법대, 대학교 3학년 때 이미 사법시험을 패스한 수재였다.[2] 반대로 담철곤은 가뜩이나 한국인들에게 툭하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1931년 평양화교 학살 등 탄압받던 화교 중국인 출신이였으니. 게다가 마침 이양구 회장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첫째 현재현 사위를 반쯤 아들로 여기고 애지중지했다. 화교라는 사실 때문에 매우 큰 결혼 반대를 받았다고 한다.

동양제과 사장으로 취임한 뒤 먼저 화교 2세라는 출신이라는 배경을 활용해[3] 남들보다 앞서 중국시장 진출에 나섰다. 당시 한중수교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그에게는 과감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크게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의 선택으로 크게 밀고 나갔다고 지금까지 알려져 있었다.

오리온그룹 내부에서는 담철곤 회장 측에서 내세우는 중국 성공신화에 대해 비판을 하는 기류가 있는데, 담철곤 회장은 여러 매체에서 자신이 남들보다 앞서 중국시장 진출에 나섰다고 자신의 공적으로 과시했다. 당시 대한민국중국 간의 수교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그에게는 과감한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내부에서는 크게 반대했다고 하면서도 결국 그의 선택으로 크게 밀고 나갔다 본인이 주장했지만 이는 다름아닌 오리온그룹 노조와 선대 이양구 회장을 보좌하던 원로 임원들의 폭로에 의해 사실이 다름이 밝혀졌다.

오리온그룹 노조의 폭로에 의하면 한중 수교는 1992년 8월 24일인데 오리온그룹이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1997년부터다. 즉, 시기적으로 그동안 담철곤이 공적으로 주장하던 아직 한국과 중국과 수교를 맺지 않았지만 자신이 과감한 결정으로 성공을 일구어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한중관계 참고. 또한 노조의 폭로에 발맞춰 선대 이양구 회장을 보좌하며 초코파이의 개발과 사업화에 기여한 전대 임원들도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것도 담철곤 회장이 혜안이 있어서가 아니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들의 폭로에 의하면 오리온 초코파이공산권이 붕괴되기 전인 1980년대에 이미 인기가 많아 공산권 보따리상들이 자국에 들여가 팔아 입소문을 탔는데, 1986년 개최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개최된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공산권이 조금씩 개방하면서 중국, 러시아, 미얀마, 베트남, 몽골 등 구 공산권 국가들에 각국의 보따리상을 넘어 무역업자들도 본격적으로 자국으로 수입하여 인기가 상승했다. 이때문에 당시 이양구 전 회장도 공산권을 하나의 큰 시장으로 보고 그 중심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주목하여 그룹이 진출할 수 있는 조건들을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그룹 내부의 실무자들이 여러 공산국가로 진출하는 것을 이미 추진했던 것을 이양구 회장이 타계하면서 바통을 넘겨받아 승인한 것으로 모든 계획과 추진은 어디까지나 이양구 전 회장과 내부의 실무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철곤은 오리온 초코파이의 성공신화에 대해서 그동안 자신의 공적으로 과시했다. 이에 오리온 그룹 노조와 임원들이 한마디로 화교 출신인 담철곤에게 둘째 딸 이화경을 시집 보내주고 키워서 경영권을 넘겨준 장인어른 이양구 전 회장의 공적을 자기 공적으로 둔갑시켰다고 그룹 내부에서 배은망덕하다고 보고 패륜이라고 본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심각한 횡령 사건까지 벌여 대한민국 국민에게 오리온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한 점이 있다. 2018년 국정감사 때 오리온그룹 노조 탄압 및 갑질 논란에서 횡령으로 인해 국정감사에 불려온 담철곤 회장에게 횡령 문제를 떠나서 제기한 문제점 중 하나가 오리온그룹이 중국, 러시아 등 공산권 국가에서 급속한 성공을 거둔 공적을 자신의 공적으로 둔갑하여 선대 회장인 이양구 전 회장의 공적을 가로챘다고 패륜을 저질렀다고 제기한 것이다. 담철곤이 그렇게 공적 부풀리기에 혈안인 이유를 중국 혈통인 그가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자신의 업적으로 포장하여 혈통에서 오는 한계점을 무마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국회의원들도 이에 편승해 정체성 문제로 담철곤을 공격해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노사 양측에서 이구동성으로 그룹 회장을 비판할 정도면 오리온그룹 내부에서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과는 별개로 비판이 상당하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현재는 예전처럼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자신의 공적으로만 포장하는 발언은 하지 않는데, 그룹 내부의 불만을 넘어 노조가 나설 정도로 비화되어 자신의 중국 혈통이 언론에서 강조되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3. 여담[편집]



  • 부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과의 사이에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딸 담경선은 2010년 그룹 입사 후 (주)오리온 마켓오사업부를 거쳐 오리온재단으로 옮겼고, 2020년에 이사로 승진했다. 아들 담서원은 2021년 (주)오리온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했다.

  • 한국에서는 굉장히 드문 귀화성씨로 중국 산둥성 등주(登州)를 본관으로 하는 (譚)씨 성을 갖고 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1985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총2가구 8명에 불과했으며 2000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총17가구 단 53명만이 소유한 성씨이다. 등주 담씨는 일제강점기 때 전쟁을 피한 산둥성 일대의 사람들이 각지로 흩어질때 일부가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담철곤 회장이 1955년생이며 이미 다수 제도권 언론에서 담철곤의 조부에 대해서 대만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화교라고 보도하였다. # # # # 따라서 담철곤 회장의 부모는 대만계 화교들이다. 즉, 담철곤 회장은 조부나 부모가 모두 중국인들이다. 오리온이 중국 판매시장을 개척하는데 있어서 성공적인 이유는 오리온의 판매전략도 좋긴 하지만 담철곤 회장의 조부나 부모가 대만계 화교라는 것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일대일로 정책에 따르면 대만도 중국의 영토이기에 담철곤 회장의 조부나 부모가 모두 대만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화교라는 것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담철곤의 조부나 부모가 중국 국적이라서가 아니라 중국의 입장 상 대만도 자신들의 영토이므로 그게 그거라서 문제를 삼지않은 것이다. 실제로 한한령 당시에도 수만은 한국 기업들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대만계 화교라는 혈통으로 오리온그룹이 중국에서 크게 제재를 당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4. 논란[편집]






  • 담철곤 회장은 직원 소유 토지에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의 호화 분묘를 불법 조성하였다.

  • 회사의 공적 자금을 유용하여 개인 별장을 지은 혐의로 수사중이다. 담철곤 회장 측은 직원 연수원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 2018년 국정감사 때 오리온그룹 노조 탄압 및 갑질 논란으로 국정감사 출석을 요청받았으나 해외 출장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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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상윤 문서에도 나오지만 골수 친일파였다. 태평양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다수 기고하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간부,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등을 지낸 사실이 발견되어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2] 현재현 회장이 이양구 선대회장의 사위가 될때만 하여도 인터넷 등의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아 현상윤이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만 알려졌지 노골적인 친일행위를 한 것이 발각되지 않았다. 당시 골수 친일파의 후손이었다는 것이 당대에 알려졌다면 이양구 선대회장의 성격 상 현재현을 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평이 있으며 2013년 동양그룹 위기 사태에서 동양그룹의 파산 위기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못한 것도 조부의 적나라한 친일 행위가 발각되어서 외면당했다. 이에 동서인 담철곤에게 자금지원을 요청했으나 위의 이유로 담철곤도 거절하면서 동양그룹은 파산하고 2013년 현재현 회장은 징역 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게 되었다.[3] 정확히는 화교 3세다. 2세라고도 보는 이유는 그의 조부는 대만에서 이승만 정부의 한국으로 이주했지만 중화민국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철곤 스스로도 자신을 화교 2세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