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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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기
1.1. 개요
1.2. 상세
1.3. 역사
1.3.1. 유물
1.4. 제도
1.4.1. 문헌의 기록
1.5. 음정
1.5.1. 음계와 조성
1.6. 주법
1.6.2. 연주하기 힘든 악기?
1.7. 대금 개량
1.7.1. 산조대금
1.8. 악곡
1.9. 명인들
2. 代金
3. 大金


1. 악기[편집]


관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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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현삼죽
신라삼죽 新羅三竹
대금
중금
소금
신라삼현 新羅三絃
거문고
향비파
가야금





파일:대금.jpg
대금 (大笒)


1.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통 관악기.


1.2. 상세[편집]


삼국사기에서 중금, 소금과 함께 '신라삼죽'으로 기록하였는데, 당시 대금곡만 324곡이 있었다고 할 만큼 메이저한 악기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 역시 대금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정악대금과 산조대금 두 종류가 있다. '저' 또는 '젓대'라고도 한다.

대금의 금(笒) 자는 확장한자로 분류된다. 지원되는 한자중국어 글꼴은 더더욱 적어서, 지원이 되지 않아 글자 입력이 불가능하다면 눈물을 머금고 琴(거문고 금, 고금을 뜻하는 글자) 또는 芩(풀 이름 금), 岑(봉우리 잠)을 대신 써야 한다. 우리나라의 전문가용 한자사전인 단국대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에 따르면 笒 자에는 잠/금/함 3가지 음이 있다. 잠은 '대나무 이름', 금은 '대나무 이름' 또는 '잘게 쪼갠 댓가지', 함은 '속이 꽉찬 대나무'란 뜻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악기를 보통 '대금'이라고 읽지만, 북한에서는 '대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3. 역사[편집]


옆으로 부는 '횡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디즈(笛子)의 역사 항목 참조.[1] 이른 시기의 사료로는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에서 발견된 뼈로 된 횡적(골제적)이지만, 이쪽은 실제 연주용으로 사용된 건 아니라고 추정한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고분벽화라든지 사리기, 범종에 장식된 주악상에도 여러 횡적의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현행 대금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주시에서 출토된 옥으로 된 대금이다. 본격적으로 '대금'이라는 명칭이 나온 기록으로는 앞 문단에 소개한 삼국사기가 최초이다. 1500년 정도 된 악기라고들 하지만 여러 가지 유물들을 근거로 2300년이 훌쩍 넘었다는 주장도 있다.

향삼죽[2] 또한 신라에서 기원하나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신문왕동해에 작은 산이 있어 그 형상이 거북이 머리같고, 그 산 위에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임금이 이것을 베어 오게 하여 관악기를 만들게 하고 이름을 만파식적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
삼죽의 음악은 7곡이 있으니 평조, 황종조, 이아조, 월조, 반섭조, 출조, 준조이다. 대금곡은 324곡, 중금곡은 245곡 소금곡은 298곡이 있었다.
삼국사기 악지
이렇게 삼국사기에서는 대금이 신라에서 기원하였다고 하지만, 믿을 만한 대목은 아니다. 신라의 대표적인 악기는 가야금(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3] 추정하기로는 거문고와 함께 고구려에서 전래되었다고 본다.[4]

이후 고려도경, 악학궤범 등에도 기록되며 활발히 사용되어 지금에 이르며, 19세기 말 대금산조가 발생하면서 한숙구, 박종기 등이 제도가 약간 작은 산조대금을 개발했다.

중국의 디즈와 외형과 세부적인 구성(부는 방법, 지공의 수, 청공)이 비슷한데, 아무래도 디즈의 역사가 더 오래되었으므로 대금의 직접적인 조상 격이라고 추정한다.

대금의 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중국에서는 디모(笛摸)라고 부르는데, 한국의 청과 재료 및 채취법까지 완전히 동일하다. 다만 중국에는 한국의 대금이나 퉁소와 같은 청가리개가 없이 청공 부분이 밖으로 완전히 드러난다. 요즘엔 보통 플라스틱으로 된 청 가리개를 사용하여 그 부분을 보호해 두고 연주할 때에는 그것을 완전히 떼어내 따로 보관한다.


1.3.1. 유물[편집]


파일:옥대금 통일신라.png
통일신라 때의 제 대금. 현행 대금의 형상을 갖춘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경주시에서 출토되어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취구가 옆으로 긴 현행 대금과 달리 원형이고 청공 하나, 지공 여섯, 칠성공 하나가 있다.

파일:옥대금.jpg
맹사성의 유품인 제 대금. 조선 초기에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취구와 제1공은 일제강점기 때 부러져서 백동으로 만들어 이었다. 옥은 약간 황색과 옥색이 도는 백옥 계열 돌인데, 대나무 마디를 3개 깎아 새겼다. 현행 대금보다 훨씬 짧고, 지공 여섯 개와 청공, 취구가 있으나 칠성공은 없다. 현행 대금이나 중금과는 음정이 맞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옥대금에 비하면 비교적 잘 만든 작품으로 비교적 음정이 고르다. 상징적인 악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4. 제도[편집]


대나무로 만든다. 일반적으로는 여러 해 묵은 황죽으로 만드는데, 악학궤범에도 황죽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최고급 재료로 치는 것은 쌍골죽[5]으로, 살이 두껍고 단단한 경우가 많아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원체 쌍골죽은 수가 많지 않아 귀하기도 귀하고 가격도 비싸다. 하지만 쌍골죽이 무조건 좋은 재료는 결코 아니다. 기형인 만큼 변형이 심하거니와 골이 파인 부분이 약해서 금이 가고 터지는 경우가 많다. 그냥 민죽 대나무 중에서도 단단하고 속이 찬 경우도 있고, 쌍골죽이 변형이 거의.없이 곧게 자라기도 한다. 재질이 좋아도 잘 만든 악기가 있고 못 만든 악기가 있는 법이므로 재질에 연연하기보다는 악기의 음정, 취구, 내경, 마디가 손에 불편하진 않은지 따위를 살피는 균형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물론 연습용 대금은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도 한다. 플라스틱 대금은 아무래도 대나무 대금보다는 질이 좋지 않지만, 잘 못 만든 대나무 대금보다야 훨씬 낫다.

평균 길이는 정악대금 기준 75 cm. 한쪽 끝이 막혔는데 막힌 쪽에 취구가 하나 뚫려 있다. 지공[6]은 총 여섯 개가 있고, 취구 반대편 끝자락에는 음을 조절하기 위해서 손으로 짚지 않는 '칠성공'을 판다. 칠성공은 악학궤범에 따르면 다섯 개 파는 것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한 개나 두 개만 판다.

특이한 점은 취구와 지공 사이에 '청공'이라는 구멍이 하나 더 있다는 것. 두 번째 문단에서 소개한 신라 옥대금에도 청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시대부터 이미 청공이 존재했다고 보인다.[7] 이 청공에는 ''이라고 해서 갈대 속에서 채취한 얇은 막을 팽팽하게 붙여 놓는데, 고음을 불거나 김을 눌러 밀도를 높여주면 이 청이 진동하면서 대금 특유의 호쾌한 소리가 난다. 물론 청은 아주 얇아서 잘 찢어지기도 하거니와, 늘어지게 붙여 청을 과도하게 울리면 소리가 영 좋지 않다.

일반적으로 대금의 청공 위에는 청가리개를 씌운다. 청가리개로 청공을 얼마나 가리느냐에 따라서 청소리의 크기나 질감이 달라진다. 물론 청가리개로 가려도 연주 중에 지 혼자 터질 때도 있다. 초심자가 김을 늘리려 연습할 때나, 공연직전 청이 터진 경우 응급처치로, 또는 청을 붙이기 귀찮다면 청 대신 절연테이프를 붙여 놓고 연습, 연주하기도 한다.[8]

중국디즈(笛子, dízi)가 제도나 청을 붙이는 것 등에서 대금과 거의 동일하다. 중국의 디즈는 다양하게 발전되어 청공이 아예 없는 것도 있다. 당연히 청공이 없는 쪽이 압도적으로 관리 및 연주가 편하지만 청이 울리는 특유의 소리는 들을 수가 없으니 취향에 따라 골라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1.4.1. 문헌의 기록[편집]


고려사 악지에 따르면 대금은 구멍이 13개라고 하는데, 취구 1개, 청공 1개, 지공 6개로 치면 칠성공은 5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파일:대금_문헌.gif
악학궤범에는 총 길이가 2자 7치 7푼, 즉 85.32 cm[9]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칠성공 끝나는 부분부터 끝까지의 길이라든가 취구 앞쪽의 길이 등 발성에 사용되지 않는 부분을 빼면 악학궤범 대금이 현행보다 짧다. 즉 옛날 대금이 전체 길이는 길어도 오히려 지공 사이가 짧아 불기는 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런 이유로 현행 대금보다 지금은 듣보잡이 된 중금 혹은 산조대금이 현행 정악대금의 원류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취구 1개, 청공 1개, 지공 5개에 칠성공 5개로 구멍의 개수는 고려사에 나온 것과 같다. 취구와 지공의 크기는 현행 대금보다 조금 작다. 특히 취구는 악학궤범 기준으로 지름 1.5 cm 정도의 원형이었는데 요즘은 이보다 긴 타원형으로 두 배 가량 넓어졌다. 아마 흔드는 소리나 반음 처리를 쉽게 하기 위해서 변한 듯하다.

칠성공의 개수가 5개에서 2개로 줄어든 이유는 불명이다. 대금의 재료로 사용되는 대나무는 두께가 일정치 않은데, 과거 제작기술의 부족으로 내경을 고르게 파지 못해 조율하기 어려운 탓에 칠성공을 많이 파야 했다는 설도 있다.[10]


1.5. 음정[편집]


정악대금의 경우 저취 전폐음이 㑣(B♭)으로, 평취하면 8도 높은 배음이 나고 역취하면 평취보다 5도 높은 배음이 난다.[11] 음역은 탁임종(㑣)부터 중청황종(㶂)까지이지만, 당악이나 현대 음악을 연주할 때는 중청태주(㳲)음 내지 중청중려(㴢) 까지도 올려 내기도 한다.

1.5.1. 음계와 조성[편집]


대금의 음정과 조성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악기를 만들기에 따라 음정과 조성은 상이해질 수 있고, 같은 악기도 주법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대금의 음정과 조성이 아닌, 음악에 따른 조성만이 있을 뿐이다.


1.6. 주법[편집]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크고 아름다운 악기이기 때문에 플루트 불듯이 불지는 못한다. 취구 쪽 끝을 왼쪽 어깨에 얹은 다음 악기를 땅과 수평이 되게 잡는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살짝 숙여 취구에 입술을 대고, 왼팔은 땅과 수평이 되게 들고 왼손 식지/장지/명지로 각 1, 2, 3공, 오른손 식지/장지/명지로 각 4, 5, 6공을 짚는다.

1900년대 구한말 ~ 일제강점기 때 찍힌 대금 연주자들의 사진을 보면, 고개를 돌리거나 악기를 어깨에 얹지 않고 그냥 앞을 보고서 왼손으로 악기의 왼쪽이나 취구 아래를 받치고 지공을 오른손으로만 짚으며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에도 대풍류나 취타풍류 등 경기제 음악에 쓰이기도 하는 주법이나 안정성이 떨어지는 탓에 대부분 어께에 얹어 연주한다.


1.6.1. 운지[편집]


안공법은 다음과 같다.

●닫는다 ○연다 ⊙열어도 되고 닫아도 된다[12]
파일:attachment/Daegeum_.png

다만 이 운지는 '평균적'인 운지이다. 악기 제작자에 따라서, 또는 연주자에 따라서 권안법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대금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위 표를 참고하여 운지법을 익힌 다음, 추후 음정을 시험해보면서 정확한 음을 내는 운지법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


1.6.2. 연주하기 힘든 악기?[편집]


연주법이 말이야 쉽지만 실제로 해 보면 고개도 아프고 팔도 많이 뻗어야 하고 지공 사이 역시 멀어서 손가락도 많이 벌려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힘든 자세이다. 직접 해보면 고개가 왼쪽으로 90도 홱 돌아가고 손목도 90도로 굽혀야 하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가 올 때도 있다. 초심자들은 목 근육에 염증이 생기거나 손목에 건초염(근막염)이 걸리기도 한다. 특히 체구가 작고, 손이 작거나 유연하지 못한 사람은 처음 배울 때 꽤 고생한다. 가끔 농담으로 '대금을 오래 불면 뼈가 비뚤어진다'느니 하는 말도 있는데, 사실 뼈 자체가 아닌 관절이 틀어지는 것으로, 관절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소리를 내는 것도 힘든데 지공 간격은 넓어서 운지는커녕 제대로 짚지도 못 하고 자세도 힘드니 배우기 상당히 어려운 악기로 취급되는 일이 많다. 대금을 배울 땐 손이나 체구가 작으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취미로 배운다면 크게 상관이 없으나, 체구에 따라 호흡량과 힘의 한계치가 다른 만큼 몸집이 작으면 그만큼 이미 불이익을 안고 시작하므로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현재 키가 달린 개량대금도 많이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전통 대금은 키가 없이 그냥 지곡에 손가락을 얹는 형식이다. 현재 대금 창작곡 중에는 플룻 저리 가라 할 만큼 어려운 곡들이 많은데, 손을 매우 빠르게 움직이다보면 정확히 음정을 맞추기는커녕 지공이 잘 안 막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1.7. 대금 개량[편집]


대금은 겉으로 보면 개량되는 것 처럼 보이나 실제론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창작곡 연주를 위해, 안공이 어려운 E이나 B의 안공을 위한 중간 키가 두 개 달린 악기부터 시작하여, 플룻을 모방하여 플룻에 있는 모든 키를 다 붙여 정체불명의 악기를 내놓기도 한다. 또한 음역별로 저음, 중음, 고음 대금을 따로 만들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저대' 라고 하여 키를 단 대금을 사용한다. 그런데 말이 개량 대금이지 생김새를 보면 플룻이랑 도대체 다른 점이 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베껴놓았다.


1.7.1. 산조대금[편집]


20세기 초 개발된 산조대금은 정악대금 보다 체제가 좀 더 작아서 정악대금 보다 음이 높으며, 운지나 자세도 힘이 덜 드는 편이라 하나, 사실 연주하기 힘든건 마찬가지이다. 취구가 정악대금보다 훨씬 커서 소리 내는 것 자체가 더 어렵기 때문. 정악대금이 정악에만 쓰이는 반면(사실 정악대금으로 민속악이나 창작곡을 할 때도 종종 있다.) 산조대금은 산조, 민요, 시나위, 민속무 반주, 창작국악에 쓰인다. 이런 민속악은 음을 흔들거나(요성), 밀고 떨어뜨리는 기교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취구가 정악대금보다 다소 크다. 산조대금의 음정은 만들기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현재 산조를 많이 연주하는 본청의 음높이는 전폐음이 C(6관 본청), C#(5관반 본청) 정도이며, 창자가 있고, 반주로써 연주되어지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에서, 7관청부터, 3관청까지도 각각 반음간격씩 올려 제작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음정표기는 오선보에서는 실음 그대로 표기하지만, 정간보에서는 정악대금을 따라 전폐음을 㑣으로 표기한다.


1.8. 악곡[편집]


현악과 관악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합주 음악에 편성된다. 관악 중심의 음악에서는 고음의 청소리가 두드러지지만, 현악 중심의 음악에서는 저취와 평취로 불어 그리 튀지 않는다. 또 다른 국악기에 비해 음이 변하지 않아 합주할 때 조율음을 불어주기도 한다. 먼저 대금이 潢 음을 불어주면 그 뒤로 피리가 그 음에 潢을 맞추고 그에 따라 해금, 가야금, 거문고 등등이 음을 맞춘다.[13][14]

청울림에 의한 음 빛깔이 일품이라 독주 악기로도 애용된다. 대금 독주로 유명한 곡으로는 청성자진한잎(청성곡)과 유초신지곡상령산, 경풍년이 있다. 거문고의 풍부한 저음과 어울려 거문고와 병주도 많이 하는데 중광지곡상령산이나 하현도드리를 많이 연주한다.


청성자진한잎.


서편제 주제곡 천년학.

대금 산조에 대해서는 산조항목 참조.


1.9. 명인들[편집]


역사상 유명한 대금 명인으로는 조선 시대의 맹사성박연이 있으며, 특히 고종 때 어영청(御營廳) 세악수(細樂手)로 있었던 정약대(鄭若大, ?~?) 역시 유명하다. 야사에 따르면 정약대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가 대금을 불었는데, 앞에 나막신 한 짝을 놓고 한 곡[15] 불 때마다 모래를 한 알씩 넣어서 신이 다 차면 내려왔다고 한다. 대금을 불다 보니 나막신에 담긴 모래더미에서 이 자라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말기 기록에는 대금정악의 명인으로 함제홍(咸濟弘, ?~?)이 있고, 아들 함재영(咸在韺, ?~?) 또한 피리와 대금의 명수였다고 전한다.[16] 허나 이들의 계보는 현재 그 이후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확실히 그 계보가 현대까지 이어지는 명인으로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아악수로 있었던 최학봉(崔鶴鳳,1856~?)이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녹음자료나 상세한 약력이 전하지 않고, 최학봉의 제자 김계선(金桂善, 1891~1943)이 스승보다 더욱 유명하다.

김계선은 호가 죽농(竹濃)으로 아악부 아악수로 일했으며, 청성곡, 평조회상, 상영산에 능통하여 독주 음반을 많이 남겼다. 연주 활동이 매우 많았고, 그 기량 또한 대단해서 오죽하면 별명이 '아악부의 김간판'이었다고. 그의 대금 정악을 들어보면 후대의 정악이 연상되질 않는다. 후대의 정악은 느리고 박자 변화가 거의 없는데 비해 김계선은 붙임새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더 대단한 것은 김계선은 관악기는 다 잘했다는 것. 동시대에 활동했던 함화진은 최소한 서양악을 배우기라도 했지 이 양반은 배우지도 않았다. 흠좀무. 심지어 성격도 좋아서 겸손하고 거리낌이 없었다고 하니 또한 대인배의 기질이 보인다.

김계선의 제자가 김성진(金星振, 1916~1996)이다. 김성진은 해방 이후 대금정악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스승과 달리 화려하진 않지만 유려하고 섬세한 기교파로 유명했다. 스승과 함께 김성진의 청성곡은 천하제일로 꼽히며 현재까지도 따라갈 곡이 없기로 유명. 아니 요즘의 청성곡 연주는 김성진의 청성곡을 따라 한다. 이 사람은 대금 하나를 무려 50년 동안 불었는데 이왕직 아악부 아악사양성소 재학 시절 선배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한다. 이 악기는 국악원 국악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툭하면 악기 바꾸기가 일수인 국악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사례.

김성진 이후 대금 정악의 명인으로는 김응서, 조창훈, 박용호, 조성래 등이 유명하다. 김응서는 스승 김성진 명인의 뒤를 이어 대금정악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그가 작고한 후에는 조창훈이 지정되었다.

지방제 풍류 음악(지방의 정악) 명인으로는 추산 전용선이나 편재준, 김환철, 김정식 등이 있다.

한편, 1900년대부터는 민속 악기로서 대금이 개발되었고, 민속악의 한 장르로 '산조'가 개척되자 대금 산조의 명인들이 나타났다. 대금산조의 명인으로는 구한말의 강태홍, 박종기부터 일제~해방 직후까지의 한범수, 한주환, 김광식, 편재준, 인간문화재 시대의 강백천, 김동식, 이생강, 김동표, 서용석, 원장현 등이 있다.

산조 이외의 경기 음악 등의 명인으로는 김한국, 지영희 등이 유명하다.


2. 代金[편집]


물건값으로 치르는 돈을 일컫는 단어.


3. 大金[편집]


타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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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1:44초 왼쪽에 나오는 타악기가 대금이다.

타악기로 분류되는 국악기.

과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민속악에서 쓰는 징보다는 조금 작다. 종묘제례악에서 정대업을 연주할 때 편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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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자로 가로 부는 악기는 횡적이나 장적처럼 적(笛), 세로 부는 악기는 단소나 퉁소처럼 소(簫)라고 부른다.[2] 대금, 중금, 소금[3] 삼국사기 악지의 다른 기록을 보면 신라의 고유 무용과 노래의 반주음악 편성법이 나오는데, 가야금(琴)만 편성될 뿐 관악기(笛)는 없다. 또한 일본에 전하는 삼국시대 악기를 보아도 적(笛)은 고구려악과 백제악에만 있지 신라악에는 없다.[4] 한국 예술총람, 이혜구 <한국사> 신라편; 장사훈 <한국악기대관>에서 재인용[5] 대나무 마디에 양쪽으로 곁가지가 두 개씩 나 골이 쌍으로 파인 일종의 기형 대나무.[6] 손가락으로 짚는 구멍[7] 물론 이 청은 중국에서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디즈(악기) 참조.[8] 다른 테이프 대신 굳이 절연테이프를 쓰는 이유는 신축성이 있어 팽팽하게 붙이기 용이하기 때문이다.[9] 악학궤범의 기준척은 영조척인데, 세종이 표준화한 영조척의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학자마다 조금씩 주장이 다르지만 대체로 30-31 cm 정도로 모인다. 국립국악원과 문화재관리국은 30.8 cm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30.8 X 2.77 = 85.316 cm가 된다.[10] 조성래, <대금정악>, 한소리출판사, 1992[11] 물론 운지가 미묘하게 달라진다[12] 권안(權按)이라고 한다. 닫아도 음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공을 짚어 운지를 편하게 하기 위한 것.[13] 고려도경 악률조(樂律條)에도 비슷한 설명이 있다: "또한 관악기〔簫管〕가 있어 길이가 2척 남짓 되는데, 그것을 호금(胡琹)이라 불렀다. 몸을 구부려 먼저 불면 여러 가지 악기들이 이어서 소리를 낸다"(又有簫管 長二尺餘 謂之胡琹 俯身先吹 以起衆聲) [14] 실제 연주회에서는 潢음을 불지만 대부분의 서적에는 潢이 아닌 㑣을 불어서 음정을 맞춘다고 되어 있다.[15] 출처에 따라 이 곡이 영산회상이라고도 하고 수연장지곡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이 두 곡이 대금 연습곡으로 중요하다는 이야기. 그냥 어느 곡인지 설명하지 않은 자료도 많다.[16] 함제홍의 집안은 그 아버지 함윤옥(咸潤玉 , 咸允玉)이 장악원(掌樂院)의 악사(樂師)였으며, 함제홍의 둘째 아들인 함재운(咸在韻 , 1854~1916) 역시 아버지, 형과 더불어 장악원 악사로 일했다. 특히 함재운은 아악사장까지 역임한 바 있다. 함재운의 아들이 함화진(咸華鎭, 1884~1948)으로 제5대 아악사장이었다. 현재 국립국악원 정악단으로 이어지는 아악부의 명성은 함화진이 기틀이 다진 바가 크며다. 그 자신이 정악뿐 아니라 서양악도 배웠던 만큼 이론에도 밝기로 유명했다. 다만 문제는 일제가 주도한 이왕직 체제에서 진행된 것이다 보니 함화진의 친일 논란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