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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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大同江 | Taedong River

파일:평양 강.jpg

발원지
파일:북한 국기.svg 평안남도 영원군 청남산맥 한태령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평안남도 영원군(명목상)
하구
파일:북한 국기.svg 남포시
유입 해역
황해
길이
450.3km
유역
· 평안도 · 황해도
평양시 · 남포시
유역 면적
20,247km2
수계
미상




1. 개요[편집]


파일:평양 12.jpg

대동강(大同江)은 한반도 북부의 북한령에서 가장 중요한 중 하나로 한반도에서 다섯 번째로 긴 이다. 대동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도평양직할시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 북한의 한강같은 강이다.

한반도 주요한 강들이 그렇듯이 태백산맥에 수원지를 두고 있다. 한반도 북부의 큰 강 중, 국경압록강두만강과 달리 오직 북한만이 관리하는 강이기 때문에 수도를 지나간다는 이유를 포함해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북한정부가 강 중에 가장 세밀하게 관리하는 강이기도하다. 하지만 북한 경제가 열악하여 관리가 안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의 군 명칭 중 하나인 대동군은 이 강에서 유래했으며 강동군은 이 강의 동쪽에 있고 강서군은 이 강의 서쪽에 있다 하여 붙여졌다.


2. 역사[편집]



2.1. 단군 조선 ~ 삼국시대[편집]


한민족의 시작은 요하강 유역으로 알려져 있다. 요하강 유역에서 시작한 한민족은 점차 동쪽과 남쪽으로 영향을 넓힌다. 그리고 적어도 단군 왕검께서 최초의 민족국가인 조선[1]을 건국할 쯤에는 한민족의 영역이 대동강 유역 남쪽까지 확장되었다.[2] 진나라 또한 조선과 같은 민족이었으므로[3][4] 적어도 위만 조선이 세워지기 전에 한반도 전역이 겨례의 영역화되었을 것이다.

남부에서 고대문명이 태동할만한 큰 강인 한강낙동강은 진이 차지했고 진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고전시대(역사가 쓰이기 전 시대)에 한민족 겨례에서 가장 발전했던 지역은 겨례가 태동했던 요하강 유역과 대동강 유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영역 중 요하강 유역은 철기시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연나라의 침입을 받아 쇠퇴했으므로 고대시대 한민족 최대지역은 대동강 유역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대동강 유역은 단군 조선위만 조선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조선의 두 정권의 수도는 왕검성으로 왕검성은 현재 평양시에 위치해 있다.

위만 조선한나라와의 전쟁 끝에 한무제에게 정복당한 후에도 대동강은 한민족의 중심지였다, 삼한목지국한강 유역에서 마한의 수장국으로서 세를 떨치고 있었으나, 철기 문명인 위만 조선이 망할 때까지도 청동기 문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더러 한강 유역조차도 통일하지 못해 한강 유역에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난립하고 있었는데[5] 반하여 대동강 유역에는 한무제가 조선을 정복하고 그 지역 위에 세운 낙랑군이 존재했으며, 왕검성이 있던 자리에는 조선현이 세워져 낙랑의 수도[6]이자 중심지로 작용했다.

낙랑이 쇠퇴하면서 대동강 유역이 겨례의 중심지에서 잠시 벗어나기도 했다. 만주벌판에서는 부여, 압록강 유역에서는 고구려, 한강 유역에서는 백제낙동강 유역에서는 신라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구려가 낙랑부여를 정복하고 장수왕 시기에 평야가 좁고 식량생산량이 적은 압록강 유역의 국내성에서 대동강 유역의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겨례에서 가장 번영한 지역이란 위상을 되찾는다.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한강 유역도 고구려가 정복하고 점유하고 있었으나 남북국시대대신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계속 전장이 되었으므로 번영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대동강 유역은 겨례의 영역 중에서 최대로 번영한 지역으로서 존재했다. 이는 고구려당나라에게 멸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2.2. 남북국시대 ~ 고려시대[편집]


본래 전통적으로 겨례에서 가장 번영하고 발전한 지역이었던 대동강 유역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당나라에게 정복당한 때부터 였다. 당시 당나라는 고구려를 정복한 뒤에 대동강 유역의 인구 상당수를 다른 지역으로 이송했다. 고구려를 완벽하게 짓이기기 위해서 한 조치로 보이지만 덕분에 북방 유목민족이 너무 강해져서 당나라 ~ 송나라에 이은 한족의 수난시대가 시작된다. 당나라고구려의 영토를 북방 유목민족과 고구려 유민들에게 뺏기면서 대동강 유역 또한 다시 뱉어 냈지만 애초에 정복한 이후 관리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대동강 유역이 발해신라국경 지역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쇠퇴했다.

사실상 남북시대에는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로 대동강 유역은 한반도에서는 비교적 꽤 규모가 되는 평야가 존재하는 지역이었음에도 버려졌다. 이 상태는 신라가 분열했다가 고려로 재통일되고 발해가 멸망해 발해유민이 고려로 귀순하는 과정에서 대동강 유역이 고려의 영토가 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고려가 건국되고 안정되자 고려의 시선은 다시 대동강 유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고려고구려를 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고구려의 수도가 대동강 유역의 평양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대동강 유역을 다시 중요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양서경이라 높여서 부르게 되었고 고려의 태조인 왕건은 서경을 중요시해야한다는 유지를 내린바 있으며 또한 서경은 제 2의 수도로서 존중받았다.

대동강 유역은 다시 번영하는 듯했으나, 고려가 안정화되면서 후방이 되어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 된 옛 신라의 가문들이 번성하면서 중앙 정치를 신라계가 잠식하기 시작했고, 고구려 계승의식이 신라 계승으로 교체되면서 다시 대동강 유역은 버려졌다. 묘청서경천도운동 대동강 유역이 다시 겨례의 중심지가 될 마지막 기회였다고 볼 수 있다.

대동강 유역이 다시 등한시 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남경이었던 한강 유역에 밀렸다는 이유도 있는데, 쌀농사는 밀농사에 비하여 효율이 3배 이상이고 당연히 인구부양력도 3배 이상 좋았는데, 조선시대 이전까지 대동강 유역은 쌀농사가 안되는 지역이었다. 덕분에 전란으로 인구가 유지가 안되는 대동강 유역에 비하여 후방인데다 인구부양력이 높았던 한강 유역에 밀리기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금나라가 성장하면서 여진계한반도로 계속 밀고 내려왔는데, 덕분에 대동강 유역은 꽤나 불안정한 지역이었다.

결국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까지 대동강 유역은 변방에서 인구가 좀 많은 지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려도 조선도 쌀농사와 안정으로 인구규모가 큰 한강 유역을 주시했고, 버려진 대동강 유역에 비하여 한강 유역은 고려말에 남경개창도감이 생기고 조선시대엔 한양천도라는 수혜를 받으면서 성장했다.


2.3. 조선시대 ~ 대한제국[편집]


조선시대에는 한반도 북부지역을 천대하는 등으로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다. 조선시대에 조선왕실의 투자를 받은 지역은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평양과 이성계의 고향인 함흥 정도였다. 세종대왕께서 사민정책으로 북방에 힘을 실어 주었지만 사민의 원인은 국경 안정화였고 혜택을 받은 지역은 의주/강계/청진 등의 국경지역이었다.

다만 명나라와의 사대관계, 청나라와의 사대관계로 더이상 전선이 아니게 되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적어도 조선 후기가 되면 왕실의 고향으로 정치적 혜택을 받는 전라도의 곡창지대와 옛 신라의 중요 도시인 달구벌서라벌이 포진한 낙동강 유역을 확실하게 추월하고 당당하게 겨례의 제 2지역이 된다. 이럴 수 밖에 없는게 북으로는 국경지역이자 상업지역인 의주가 있었고, 남쪽으로는 황해도 최대의 곡창지대인 함백평야[7]가 있어서 인구가 늘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쌀농사 지역이 북부로 점차 올라가 구한말이 되기 전에 대동강 유역도 쌀농사가 가능한 지역이 되어서 한강 유역과 인구증감 조건이 동등해졌다.

대한제국이 선포될 쯤에는 한반도 북부에 대한 차별도 철폐될 뿐만 아니라 편견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북부의 중심인 대동강 유역 또한 크게 번성한다. 이 기세로 평양이 대한제국의 제 2의 수도[8]로 선언되며 정치적인 지원도 받게 된다. 평양에 풍경궁이 세워지는 등 대동강 유역의 위상은 한강 유역과 비슷해진다.


2.4. 일제강점기 ~ 해방 초[편집]


경술국치를 맞이하여 대한제국일본제국병탄당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이후, 평양은 식민지 조선에서 제 2의 도시로 취급되었다. 식민지 치하에서 남포신의주상업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에 평양서비스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덕분에 대동강 유역은 남포 - 평양의 경제권을 형성하게 된다. 이 경제권 덕분에 대동강 유역의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대한제국 인구가 고작 약 1800만 명[9][10]이었는데 해방 당시 북한지역인구만 1000만 명이고 그 중 상당수가 태백산맥 서쪽, 특히 평양 - 남포 - 사리원의 북부 평야권에 살고 있었으므로 대동강 유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제국도 이 인구를 기반으로 한반도 북부에 대한 병참기지화를 수행했는데, 그 병참기지화의 핵심이 중공업을 육성하는 것이었으므로 대동강 유역은 함흥-원산 선과 함께 한반도의 주요 공업지역으로 성장했다.

일본제국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에는 만주 작전으로 밀고 들어오던 소련이 3.8선 분활로 대동강 유역을 점령했다. 소련은 공업이 발전한 함흥을 북한의 중심지로 하려다가 북한 정부의 설득을 듣고 평양으로 중심지로 선택했다. 소련군정은 자국의 전후복구를 위해 점령지의 공장을 약탈했고 상당수의 기계들이 소련으로 옮겨졌다. 대동강 유역 또한 소련군정기에 침체기를 맞이했다.

3. 개관[편집]


한반도에서 5번째로 긴 강이다.[11] 평안남도 영원군함경남도 장진군 사이에 있는 청남정맥[12]의 한태령(해발 1,356m)에서 발원하여 평안남도 일대를 흘러 평양시 한가운데를 통과해 남포시황해남도, 황해북도의 경계를 통해 서해로 빠져나가 흐른다. 주요 지류로는 남강, 재령강, 비류강, 황주천, 곤양강, 보통강 등이 있다.

유역면적은 20,247km2이고, 길이는 450.3km이다. 옛 이름은 패수(浿水)[13], 패강(浿江).

하중도로는 능라도, 양각도, 두로도, 곤유도, 두단도, 쑥섬 등이 있다. 특이하게도 도심에 가까운 능라도, 양각도에는 모두 경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두로도 인근 쑥섬에는 과학기술전당이 있다. 곤유도는 밤섬처럼 작은 섬이고 두단도는 여의도처럼 섬으로서의 정체성을 거의 상실했다.

상류유역에는 해발고도 2,000m 내외의 높은 산들이 있으나 유역의 대부분 지역은 낮은 산지이다. 상류유역의 북부·동부에는 청남정맥 및 청북정맥[14]백두대간 북부 능선이 이어져 있으며, 서부에는 청남정맥[15]이 있다.

강 유역의 평균 강수량은 1,207.8mm로 비교적 많다.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면서 많아진다. 대동강 하류인 평안남도 남부 지방 등은 강수량이 적어서 진압농법[16]을 주로 시행하였다. 현재는 위성으로 보면 알 수 있다시피 그냥 관개를 한다.

또한 유역에는 고조선, 낙랑군, 고구려의 연고지이고 특히 고구려 유적이 많이 산재한다.

24절기 중 두 번째 절기인 우수(양력 2월 19일)가 지나면 얼어붙었던 이 강의 물도 풀린다고 한다.

서해갑문을 통해 중류지역의 평양시, 순천시, 성천군까지 1천톤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게 되어있다.

전략적으로는 원산과 이을 경우 청천강-함흥과 더불어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지경선으로 많이 쓴다. 역사적으로 봐도 나당동맹 체결 당시 당나라신라가 합의한 자연경계가 대동강이었으며 6.25 전쟁 당시 북진할 때도, 38선부터 몇 개의 구획을 나눠 단계적으로 북진하였는데 그 라인 중 하나가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선이다. 해리 S. 트루먼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는 맥아더가 38선을 돌파하는 것을 그다지 바라지 않았으며, 돌파하더라도 이 라인을 지키고 중국과 소련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길 바랐으나 맥아더는 압록-두만강 라인까지 완벽히 밀길 원했으며 가능하다면 중공군과 전면전까지 해도 상관없다는 의도를 밝혔다. 중공군은 UN군의 급속 북진과 공군의 월경을 핑계삼아 한반도에 개입했다. 만일 통일 시점에서 이 선을 지켰다면 북한은 압도적인 국력차로 결국 흡수되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중국이 먹지 않았겠냐는 주장이 있다. 사실 북한 분할, 북중합방 문서에서 보듯 중국의 직접적인 북한 병합 시나리오는 중국이 남한 및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치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친중성향의 괴뢰국가 정도로 남아 완충지대로 존재하는걸 최선으로 여기는데 더욱이, 대동강-원산 라인 정도에서 휴전선이 그어졌을 때의 북한은 현실의 북한보다 생존하기 훨씬 더 어려우므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을 확률이 높고, 그로 인하여 중국의 괴뢰국화가 가속될 확률이 높아졌을 것이다.

과거에는 수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평양과 그 근교 일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와 생활 하수로 수질이 안 좋아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 자체는 있는 듯하나, 북한의 사정이 사정인 만큼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이는 김정은이 직접 밝힌 내용이다. #


4. 여담[편집]


  • 평안남도 대동군은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한국의 이북 5도 행정구역상으로는 평양시를 가운데 두고 그 교외지역을 관할하며 이름대로 대동강을 끼고 있으나, 북한 행정구역상 대동군은 평양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축소되어 대동강을 끼고 있지 않다.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지명
  • 봉이 김선달이 물장사를 한다며 사기를 친 물이 평양에 흐르는 대동강 물이다.
  • 대동강 맥주는 북한 맥주 브랜드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최초의 조선중앙방송 광고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유튜브에 풀리면서 한때 유행을 탔었다.
  • 12월 7일 공장에서 생산하는 대동강이라는 이름의 북한산 생리대가 있는데, 이 공장에서 해군 함정, 고속정도 생산한다.
  • 북한 원 2차 시리즈 50원권의 모델이었다.
  • 나훈아의 곡인 '대동강 편지'도 이 대동강에서 따왔다.
  • 내일은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이 경연에서 부른 '한 많은 대동강' 노래가 중장년 층에게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였다.영상
  •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남북관계 안정화나 통일 후 북한(또는 구 북한 지역)의 경제 성장을 '대동강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이를 제목으로 한 책도 있다.
  • 폭우에 약한 강이기도 하다. 2007년 여름에는 폭우가 내려서 대동강이 범람하였고, 이때문에 2차 남북정상회담이 8월말 개최에서 10월 초로 넘어가버렸다. 보도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2020년 당시에는 북한이 3중고를 겪었다고 하였다. 사실 대동강 유역보다는 동해안과 평양-원산 이남의 피해가 심했다. 통일 이후에 어떻게든 손봐야 할지도 모른다.
  • 평양냉면 육수에 사용되는 물은 대동강 물로만 사용한다.
  • 숭어가 많이 잡혀 대동강 숭엇국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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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반도 남부의 최초국가인 은 정보가 없어서 한민족의 근본을 조선으로 본다. 진은 삼한의 모태가 된 나라로 적어도 우거왕위만에게 쫓겨서 남쪽으로 내려올 때 이미 존재한 나라다. 이 진나라가 왜 삼한으로 갈렸는지도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2] 그 증거로 조선이 겨례의 시작인 요하강 유역을 뺏길 때는 이미 중심지가 대동강 유역이었다.[3] 역사 속에서 고조선에서 정치싸움으로 밀려난 세력이 진나라/삼한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4] 또한 중국역사가들도 조선과 진을 동족으로 구분했다. 즉 어떠한 이유로 조선과 진이 다른 국가로 나뉘었지만 언어가 통하는 같은 민족이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고구려백제 그리고 신라통역사없이 대화가 가능했는데, 신라는 고구려와 접점이 없으므로 고조선 때부터 같은 민족이 아니었다면 이미 언어분화로 말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5] 삼한의 정치를 고대 그리스의 도시 연합체제와 비슷하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6] 정확히는 낙랑토성이 수도였다. 왕검성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사실 왕검성과 완전히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7] 사리원이 있는 그 지역이다.[8] 유교에서는 황제국은 2개의 수도를 가진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명나라청나라베이징난징이라는 2경 체계를 가진 것도 같은 원리다. 단 군주가 기거하는 도시가 실질적 수도로 다른 한 수도는 명목상으로만 수도로 인정된다. 유교적 논리로 존중만 받는다는 소리다.[9] 대한제국의 행정체계문제로 인구집계가 정확하지 않다. 1910년 기준으로 1300만 명에서 1700만 명이었을 것으로 파악한다.[10] 한국사를 격하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한제국 인구가 500만 명에서 800만 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1918년 3.1운동 당시 조선 인구가 약 2000만 명이었고 해방된 1945년 당시 조선인구가 약 3000만 명이므로 조선의 출산율과 사망율 그리고 해외이주를 고려했을 떄, 500만 명에서 800만 명이었으면 해방 후 3000만 명이라는 인구는 나올 수가 없다.[11]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한강, 대동강 순이며 북한에서는 3번째로 길고 순수 북한의 강 중에서는 가장 길다. 압록강, 두만강은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니 북한만의 강이 아니기 때문이다.[12] 산맥 기준 낭림산맥.[13] 낙랑군 후기, 고구려 시기의 명칭.[14] 산맥 기준 낭림산맥.[15] 산맥 기준 묘향산맥.[16] 봄철에 땅을 밟아서 수분을 유지하는 농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