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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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2.1. 한국사에서
2.2. 실존 인물
2.3. 동아시아의 황제와 유사한 칭호 목록
3. 고려~조선시대 신의 경칭
4. 기타
5. 같이보기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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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왕국 제3대 국왕 프리드리히 대왕
조선 제4대 국왕 세종대왕

大王 / the Great

훌륭하고 뛰어난 군주를 높여 이르는 말. 황제일 경우 대제(大帝)라고 한다. 교황일 경우에는 대교황(大敎皇)이라고 한다.


2. 상세[편집]


대왕 혹은 대제라는 명칭의 사용방법은 지역마다 많은 차이가 있었으며,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 기준으로도 용어 사용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중국사에선 대왕은 공식적인 존호시호가 아니었고 군주호가 '왕'인 군주를 예의를 갖춰 높혀 불러줄 때 사용되었다. 당시 시황제황제라는 명칭을 만들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신하들이 각국의 왕을 부를 때 '폐하', '성상'과 같은 의미로 '대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제 칭호는 한자문화권에서 사용된 예가 거의 없다. 공식적으로 대제라는 시호를 사용한 사람은 동오 대제 손권이 유일한데, 대(大)는 시법에 없는 글자로 대황제를 시호로 받은 손권이 오히려 이례적이다.[1]

현대에 들어서 서양에서의 대왕, 대제의 정의가 들어온 뒤로 대왕, 대제 칭호는 정말 대왕이 어울리는 사람에게나 붙여주는 아주 희귀한 칭호로 바뀌었다.

한자문화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대왕 및 대제가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정말 뛰어난 업적을 세운 군주에게만 헌정하는 칭호. 사실 한자문화권의 특성상 대왕이라 번역하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별명에 가깝다.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의 개수가 무한대에 가까운 한자문화권과 달리 대부분의 다른 문화권은 일반 명사에서 이름이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름의 절대 개수가 적다. 게다가 피휘 관습이 없고 오히려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름이 중복되는 경우가 워낙에 많고, 그래서 구별을 위해 별명을 붙이는 관습이 발달했다. 사자심왕 리처드, 존엄왕 필립의 예처럼 인물의 특성이나 업적을 칭송하는 별명을 많이 사용하였고, 대왕(the Great) 역시 이러한 별명. 시호와 비슷하게 번역하는 관행이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러한 별명은 "사자 심장(을 가진) 리처드", "존엄한 자 필리프"라 번역하는 것이 원래 의미에 가깝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역시 직역하자면 "대(大) 알렉산드로스" 또는 "위대한 알렉산드로스"이다.


2.1. 한국사에서[편집]


한국에서는 원래 왕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였던 대왕고구려태왕과 더불어 우리식 왕중왕 격의 군주명으로서 고유명사가 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백제어라하건길지도 뜻을 풀이하면 곧 큰 + 임금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서 고구려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의 시호엔 모두 '대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이 때문에 초창기 고구려에서는 '대왕'이 잠시 정식 시호가 된 게 아닌가 추정되고 있으며 신라백제에선 묘호[2] + 임금의 이름 혹은 시호 + 대왕(大王)으로 책이나 비석에 기록되어 있는 실례가 많으므로 이 경우도 위와 같은 추측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신라나 백제의 '대왕'은 금석문에서 폐하라는 경칭으로도 등장하고 있으며[3] 삼국유사 가락국기나 여러 고고학적 유물들을 보면 가야 역시 때때로 군주를 대왕이라고 부른 듯하다.

발해의 경우 임금들의 공식 시호가 모두 시호 + 왕(王)이라서 알기 어렵지만 발해 공주의 무덤 조사를 통해 발해 문왕의 존호[4]가 연호(2개) + 문왕의 존호 + 대왕(大王)[5]임을 알아내 발해 역시 '대왕'이란 용어를 사용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한국사의 고려는 당나라의 흥성 이래 중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 문화권이 당·송 교체기를 지나 다원론적 천하관[6][7]으로 정착해가는 국제 질서의 소용돌이 안에 놓여있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려의 군주들은 공식적으로 중원의 황제를 자처하여 '황제국'을 선포하기보단 독자적인 해동의 '천자국'으로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거의 모든 문물에 황제 제도를 수용하였다.[8][9] 화이사상에 기반한 성리학적 질서를 중시했던 조선은 이러한 요소들을 대부분 걷어 냈으며 심지어 고려의 해동천하관[10]을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고려 때 사용했던 황제 제도의 일부를 관습적으로 받아들였고 아예 원간섭기 이후로 폐지 된 묘호제도를 공식적으로 부활 시키기까지 하였다. 한편 고려, 조선 시대에는 간혹 왕들의 시호를 부를 때 '대(大)'자를 빼서 짧게 부른 경우는 있었어도 왕들의 공식 시호는 고려가 몽골의 부마국이 된 시기를 제외하면 모두 묘호 + 임금의 시호 + 대왕(大王)이라서 '대왕'이 정식 시호였음을 알 수 있다.[11]

정식 군주호가 아닌 칭송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서양의 정의가 들어온 후 한국에서 대왕이라 가장 많이 불리는 사람은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이 있다[12]. 그 외에는 대왕호와 왕호가 다소 혼용되고 있으나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끈 문무왕이 문무대왕 칭호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13] 군함마다 위인의 이름을 붙이는 대한민국 해군에서도 대조영함 등 한국사 역대 국왕의 이름을 붙인 배는 더 있지만 그 중에서 대왕이 붙은 배는 세종대왕함, 광개토대왕함, 문무대왕함, 정조대왕함 네 척밖에 없다.[14]


2.2. 실존 인물[편집]


  • 한국
    • 고구려 -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15] 광개토대왕[16]
    • 신라 - 문무대왕[17]
    • 조선 - 세종대왕[18], 정조대왕[19]
  • 중국[22]
    • - 손권[20]
    • - 강희제[21]
  • 아카드 제국 - 사르곤
  • 헬레니즘 제국
  •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 포함)[23] - 콘스탄티누스 1세, 테오도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1세, 마누일 1세[24]
  • 교황 - 레오 1세, 그레고리오 1세, 니콜라오 1세
  • 동고트 왕국 - 테오도리크 대왕
  • 프랑크 왕국 - 카롤루스 대제
  • 신성 로마 제국 - 오토 1세
  • 프랑스 왕국 - 앙리 4세, 루이 14세[25]
  • 몽골제국 - 칭기즈 칸, 쿠빌라이 칸
  • 오스만 제국 - 무라드 2세[26], 쉴레이만 1세
  • 인도 - 아소카, 찬드라굽타 2세, 카니슈카 1세, 악바르
  • 일본 - 메이지 천황
  • 태국 - 람캄행 대왕[27], 쭐라롱꼰 대왕(라마 5세), 푸미폰 대왕(라마 9세)[28]
  • 티베트달라이 라마 - 달라이 라마 5세, 달라이 라마 7세, 달라이 라마 14세
  • 페르시아
    • 아케메네스 왕조 - 아케메네스[29], 키루스 2세[30], 다리우스 1세
    • 사산 왕조 - 샤푸르 1세, 샤푸르 2세, 호스로 1세
    • 사파비 왕조 - 아바스 1세
    • 팔라비 왕조 - 팔라비 1세(레자 샤 팔라비)[31]
  • 쿠웨이트 - 무바라크 알사바(일명 무바라크 대에미르)
  • 영국 - 알프레드 대왕, 크누트 대왕
  • 프로이센 왕국 - 프리드리히 빌헬름[32], 프리드리히 대왕, 빌헬름 1세[33]
  • 덴마크 - 크누트 대왕, 발데마르 1세
  • 스웨덴 - 구스타브 2세 아돌프
  • 스페인 - 베렝겔라
  • 폴란드 - 카지미에시 3세
  • 체코 - 카를 4세[34]
  • 헝가리 : 러요시 1세, 마차시 1세[35]
  • 불가리아 - 시메온 1세[36]
  • 세르비아 - 스테판 두샨
  • 러시아 - 이반 3세, 표트르 1세, 예카테리나 2세
  • 아르메니아 - 티그라네스 2세
  • 조지아 - 다비트 4세, 타마르
  • 메리나 왕국 - 라다마 1세
  • 하와이 - 카메하메하 1세
  • 베트남 - 보대제[37]


2.3. 동아시아의 황제와 유사한 칭호 목록[편집]






3. 고려~조선시대 신의 경칭[편집]


고려~조신시대엔 신사(무교)가 많았다. 신사는 역사적 인물[38], 산신, 물의 신[39] 성황신[40]을 섬겼는데 이 신 중 남성이면서 민중의 지지가 높았던 신은 '대왕(大王)'으로 높혀졌다.

나라에서 우리 신의 위엄있는 영혼이 의지할만하다 여겨 대왕의 호(大王之號)로 높히고(崇) 봄, 가을마다 제사를 지냈습니다.

- 둥국이상국집 제38권 경주동서양악제문

대왕은 고려 정부에서 높여준 신의 경칭이다. 이규보는 경주의 동악대왕, 서악대왕에게 글을 써 대왕이란 이름은 나라에서 올린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 대왕 신호는 민간에서 천왕(天王)과 동일시 됐다. 그 예로 구룡산 대왕과 지리산 대왕은 달리 구룡산 천왕, 지리산 천왕으로도 나온다.

조선시대에도 이 대왕이란 경칭이 유지됐고, 태조 이성계는 한술 더 떠 진국공, 진국백, 계국백, 호국백이라는 1공 3백 작위까지 신설해 봉했다. 하지만 태종 이후 신들을 단지 '~지신'으로만 기록하게 하면서 대왕 경칭은 삭제됐다.

대왕으로 기록된 신은 다음과 같다:
  • 구룡산 대왕: 고려사(편년통록) 기록. 황해도 구룡산(성거산)의 신.[41]
  • 동악대왕: 동국이상국집,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 경주 토함산의 신.
  • 서악대왕: 동국이상국집,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 경주 선도산의 신.
  • 목멱대왕: 조선왕조실록 기록. 서울 남산의 신.
  • 구월산 대왕: 조선왕조실록 기록. 황해도 신천군 구월산의 신.
  • 공산대왕: 동국이상국집 기록. 대구 팔공산의 신.
  • 지리산대왕: 동국이상국집 기록. 지리산의 신.[42]
  • 전주 성황대왕: 동국이상국집 기록. 전주의 성황신.
  • 계양 성황대왕: 동국이상국집 기록. 계양의 성황신.
  • 마포대왕: 동국이상국집 기록. 전주 마포의 성황신.
  • 선위대왕: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 강원도 안변군의 성황신.
  • 대왕/대황: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 개성 송악산 대왕당/대황당에서 모신 신으로, 정확히 어떤 신인지 미상이다.
  • 국사대왕: 동국이상국집,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 개성 송악산 국사당에서 모신 신으로, 정확히 어떤 신인지 미상이다.

이 외에 유이하게 지리산신과 태백산신은 대천왕(大天王)으로도 불렸다[43].


4. 기타[편집]


  • 군주가 아닌 경우에도 대(大)를 별명으로 가진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아들이나 후손 중 이름이 같은 사람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의미상 연장자(the Elder)이며 영문으로 이렇게 쓰기도 하지만 그냥 the great도 사용될 수 있다. [44]

  • 본 항목에서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 사극에서 제목에 '대왕'이 들어간 사극은 크게 히트하지 못한 일종의 징크스가 있다. 대왕의 길대왕 세종이 그랬고, 2012년 하반기부터 방영하는 대왕의 꿈도 크게 흥행하지 못하고 종영되었다. 광개토대왕은 제목이 '광개토태왕'으로 나오긴 했는데 이것도 시청률이나 평가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45]

  • 한국에서 무언가 크고 아름다운 것을 지칭할 때 붙이는 접두사이기도 하다. 러시아권의 차르와 비슷한 용례.

5.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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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희제 같은 경우 강희대제라는 표현이 나타나긴 하지만 이는 근대 이후의 표현으로 보인다.[2] 예로 신라의 태조, 태종이 있다.[3] 미륵사 사리함기에 나오는 '대왕 폐하'라든지.[4] 임금이 살아있을 때 이름 대신 부르던 것, 죽었을 때는 시호라고 한다.[5] 광개토대왕릉비에 의하면 대왕의 존호 역시 연호(영락) + 태왕(太王)임을 알 수 있다.[6] 10~13세기 동아시아 세계를 관통했던 기준이 되는 천하관. 중국이 유일한 천하의 중심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그 군주가 천명을 받은 천자국이듯이 고유의 토풍을 지닌 여러 나라들도 각 천하의 중심이 되어 병존한다는 사상이다. 고려는 이 같은 천하 다원론을 독자적인 해동천하관으로 구현하여 각국의 군주를 '해동천자(海東天子)', '송조천자(宋朝天子)', '거란주(契丹主)', '금주(金主)' 등으로 지역명을 덧붙여 지칭함으로써 그 세계를 명확히 구별하였으며, 고려의 제후국이었던 여진 또한 이러한 사상을 바탕에 두고 “이적과 화하는 바뀔 수 있다”는 '이하가변(夷夏可變)'의 논리를 국제 사회에 적극적으로 피력하였다. 그 결과 여진은 종래의 수많은 침투·정복 왕조들이 종족적 개념의 정통관을 극복하지 못한 것과 달리, 자신들의 뿌리가 고려에서 나왔음을 당당히 밝힌 채 중원의 유일한 정통 왕조임을 천명하여 한족 중심의 종족주의를 타파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으니 이는 매우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 하겠다. ☞ "1142년 4월 “남송이 (여진의) 신하로 칭하게 된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였다”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 시기에 성덕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1141년 『조종실록』이 완성되고, 같은 해 소흥화의를 맺어 남송과 신속 관계를 맺은 다음 해다. 성덕비에는 『조종실록』의 조상들의 세계와 소흥화의 이후 남송이 신속국임을 밝히는 내용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한족들의 주거지인 연경에 신공성덕비를 세워 자신의 근원이 고려에 있음을 밝혔다는 것은 금 통치자가 종족주의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정통 왕조가 되겠다는 의지를 천하에 공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거란과 금나라는 송나라의 정통성에 대한 태도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거란은 자신을 정통 왕조라 하였으나 북송도 정통 왕조인 것을 굳이 부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금나라는 달랐다. 금 통치자들은 남송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유일한 정통 왕조가 되고자 하였다. 원나라 사가들은 송-요-금 3사 중 “누가 정통인가”에 관한 대토론을 거쳐 “세 나라 모두 정통(三國各與正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금나라는 종족적 한계를 뛰어넘어 객관적으로 정통 왕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전사들의 황금 제국 금나라-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中〉[7] 중세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견지했던 다원론적 천하관은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한 당나라 중심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여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의 발로이기도 했다. ☞ "요하(遼河)의 동쪽에 따로 한 천지('해동천하')가 있으니, 우뚝 솟아 중국과 뚜렷이 나뉘어 있네..." 《제왕운기 하권》|"우리나라(고려)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은 없을 것입니다." 《고려사, 문종 12년》|"충선왕이 “우리나라(고려)의 문물 수준이 중국과 대등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묻자 이제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광종 이후 문교(文敎)를 닦아 서울에 국학(國學·국자감), 지방에 향교와 학당을 세워 학교에서 글 읽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습니다. 문물이 중국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은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고려사 열전, 이제현》[8] "우리 동방(東方)은 옛날부터 당나라의 풍속(唐風)을 흠모하여 문물(文物)과 예악(禮樂)이 다 그 제도를 따랐으나, 지역이 다르고 인성(人性)도 각기 다르므로 꼭 같게 할 필요는 없다. 거란(契丹)은 짐승과 같은 나라로 풍속이 같지 않고 말도 다르니 의관제도(衣冠制度)를 삼가 본받지 말라" 【훈요 10조 中 제4조(其四曰)】[9] 고려에서 황제 칭호는 성황, 신성제왕 등과 함께 별칭으로써 사용됐다.[10] 신성 혈통을 부여받은 용의 후손이자 해동 세계의 주인인 고려의 군주가 중원의 천자와 구별되는 해동의 천자로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관념.[11] 다만 몽골 간섭기를 지나 조선이 건국된 후 성리학적 질서가 강화됨에 따라 대왕(大王)의 칭호는 독자적인 해동 세계의 천자라는 위상을 상실했으며 그저 중국 황제의 제후라는 수직적 관계가 견고해졌다. 이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소위 황제 콤플렉스를 갖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12] 영어판 위키백과에서도 대왕을 뜻하는 "the Great" 칭호가 붙어있는 한국 군주는 이 두 명이다.[13] 문무대왕릉은 한국의 문화재로 지정된 여러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왕릉이 아닌 대왕릉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이름붙여져 있다(사적 158호). 2021년에는 지명도 생겼다. 문무대왕면 문서로.[14] 동시대의 태종 무열왕김유신은 현대 민족주의적 시각 기준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문무왕은 고구려와 백제뿐 아니라 외세 당나라일본나당전쟁, 백강 전투에서 싸워 물리친 공적에, 죽어 동해용왕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처럼 민족주의적 시각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면모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비판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15] 이 셋은 정식 명칭이 대왕이다.[16] 삼국시대 시절의 군주들 중 단연 최고의 군주이며 고구려를 힘 좀 있다 싶은 작은 산악 국가에서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제국이자 중국과 대등한 천하의 중심으로 만든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로 꼽힌다. 또한, 성품과 정치력도 매우 뛰어나 나라도 잘 다스렸으며 그의 승하 이후 아들인 장수왕이 고구려의 문화와 경제의 최전성기를 이루었다.[17] 세종대왕, 광개토대왕은 대왕을 빼고 부르는 게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널리 쓰이지만 문무왕, 정조는 이들과 연관이 깊은 지역들(경주, 수원 등)에서 특별히 부각하고자 쓰는 경우 외에는 그리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경주에는 문무대왕면, 문무대왕릉, 문무대왕연구소 등이 있으며 이외 대한민국 해군구축함 문무대왕함이 있다.[18] 한글을 창제했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현대 한반도의 경계를 확정짓고 조선의 영토를 넓히는 업적을 이루었다. 그 외에도 각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오늘날까지도 명군의 대명사로 여겨진다.[19] 문무왕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쓰이는 명칭은 아니나 수원화성이 있는 수원에서는 지역축제를 정조대왕능행차로 부를 정도로 많이 쓰며 문무왕과 마찬가지로로 정조도 대한민국 해군구축함 정조대왕함이 있다.[20] 이쪽은 정식 시호가 대제다.[21] 사실상 중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제 칭호가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는 군주[22] 중국은 따로 대왕 또는 대제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묘호에 해당 군주에 대한 평가를 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23] 기독교 공인 이전에는 '신격'의 칭호를 받았으며, 기독교화 이전의 황제들이 빠지는 등 기독교적 관점이 많이 들어간 평가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기독교 공인 이전의 황제 중 신격화 이외에도 동시대 혹은 후대에 별도의 경칭을 받은 황제로는 트라야누스 황제(옵티무스 프린켑스: Optimus Princeps, 지고의 황제로 번역되나 당시 로마엔 공식적으로 황제 칭호가 없었다. 직역하면 완벽한 으뜸 시민.)와 그를 포함한 오현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24] 마누일 1세의 통치로 동로마 제국은 마지막 중흥기를 맞아 역대 최고의 경제 호황을 누렸고, 외교적으로도 동로마 제국을 당대에 신성로마제국과 유럽의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으로 만들었다[25] 당대에 대왕 칭호를 받긴 했지만, 현실은 그의 왕권에 기생하기 위한 귀족들의 아부성 칭호에 불과했다. 루이 14세 치세 중 대왕이라 부름받을만한 시기는 통치 전반기로 국한된다.[26] 영문판 위키백과에 터키어로 the great에 해당하는 Koca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제시되어 있으며, 터키어판에도 그렇게 나온다. 아들인 메메드 2세가 워낙 유명한지라 묻혀서 그렇지 이 인물도 상당한 명군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업적이 부왕인 필리포스 2세가 마련해놓은 기반 덕분이었듯이 무라드 2세가 그냥 평범한 군주였다면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비롯한 메메드 2세의 업적은 불가능이었거나 실제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27] 크메르 문자를 다듬어 타이 문자를 만들었다.[28] 태국 국민이 1987년에 '대왕(the Great)' 칭호를 헌정해 공식적으로 대왕으로 불린다.[29] 페르시아의 시조라는 전설이 있는 인물로 아케메네스 왕조는 그의 이름을 딴 왕조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를 부풀리기 위해 만든 가공인물이라는 설이 유력하며, 오늘날에는 키루스 2세를 실질적인 시조로 간주하고 있다.[30]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실질적인 시조. 개신교 성경에서 고레스 대왕으로 불리는 인물.[31] 1950년 이란 국회에서 대제 칭호를 헌정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Reza Shah the Great를 치면 레자 샤로 리다이렉트된다.[32] 이쪽은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써 대선제후(Großer Kurfürst)로 불린다.[33] Wilhelm der Große : 구 독일제국 한정.[34] 신성 로마 제국 황제도 겸임했다. 우리식으로 치면 세종대왕급으로 체코에서 존경받는 왕이다. 보헤미아 왕으로는 카렐 1세이다.[35] 야노슈 후냐디의 아들로, 중세 헝가리 왕국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군주이다. 가문의 문장반지를 물고있는 까마귀(라틴어로 코르비누스, 헝가리어로는 초르빈)라서 '마차시 코르비누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며,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코르비누스 대학이 여기서 유래했다.[36] 불가리아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이자 세계 최초의 차르. 당시 판도가 현재의 루마니아에서 마케도니아에 이르렀다.[37] 연호가 보대라서 보대제이다.(...)[38] 삼성사의 환인, 환웅, 단군. 동명성제사의 동명성제, 석탈해사의 석탈해 등.[39] 동해신사, 서해신사, 남해신사 등.[40] 고을의 신이다. 유명한 성황신으론 이규보가 제문을 쓴 전주 성황대왕 등이 있다.[41] 달리 구룡산 천왕이라고도 한다.[42] 달리 지리산 성모, 지리산 천왕이라고도 한다.[43] 세종실록지리지를 따르면 진주에 지리산 '대천왕사'가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태백산신의 제사를 지내던 근산신사는 달리 '대천왕사'로 불렸다고 한다.[44] 후손의 별명은 대에 맞춘 소(小)다.[45] 그런데 10년 뒤 KBS Drama Classic 연속 무료 스트리밍에서는 인기작이 됐다. 물론 작품성이 재평가를 받았다기보다 시청 진입 장벽이 낮고 묘하게 중독되는 병맛이 묘한 인기를 끌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