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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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감독 장편 연출 작품




MBC 대하드라마
대장금
(2003~2004)
大長今

파일:대장금 포스터.jpg

장르
한국 사극
방송 시간
월요일 · 화요일 / 오후 9:55 ~ 11:05
방송 기간
2003년 9월 15일 ~ 2004년 3월 23일
방송 횟수
54부작
제작
MBC 자체제작
채널
MBC



제작
정성효, 이진서
연출
이병훈
각본
김영현
출연
이영애, 지진희, 홍리나, 임호
시청 등급
파일:12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2세 이상 시청가
관련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시놉시스
3. 특징
5. 시청률
7. 평가
7.2. 역사재현의 오류
8. 미디어 믹스
8.1. 소설
8.2. 뮤지컬
9. 기타
9.1. 캐스팅
9.2. 2기 제작 가능성
10. 언어별 명칭
11. 둘러보기
12.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MBC에서 2003~2004년 월화에 방영한 사극.[1] 조선시대 궁녀 '서장금'이 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장금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드라마이다. 여담으로 이병훈 PD가 MBC를 퇴사한 후 MBC에서 연출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파일:b43986f1ad14ebcd44fb0e4acea33ea8acda6ed8_s2_n0_y1.jpg

최고시청률 57.8%로 대한민국 역대 드라마 최고시청률 10위를 기록했으며, 평균시청률은 무려 46.3%로 역대 5위를 기록했다.[2]


2. 시놉시스[편집]


가. 조선조 의녀 '장금'의 성공담

남존여비의 봉건적 체제하에서 무서운 집념과 의지로 궁중최고의 요리사(料理師)가 되고, 우여곡절 끝에 조선 최고의 의녀(醫女)가 되어 어의(御醫)를 비롯한 수많은 내의원(內醫院) 남자 의원들을 물리치고 조선조 유일한 임금 주치의가 되었던 역사상 실존인물, 의녀(醫女) 장금(長今)! 조선조 중종(1506-1544)때 대장금(大長今)이라는 엄청난 칭호까지 받은 전설적인 인물인 장금(長今)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통해 그 동안 역사에 뭍혀 있던 한 여성의 의미 있는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나. 궁중내 하층민들 중심의 애환과 갈등

왕과 왕비, 후궁과 권신 중심의 권력쟁탈과 암투를 기본으로 엮는, 기존 궁중사극(宮中史劇)에서 벗어나, 미천한 신분의 주인공 장금(長今)을 중심으로 궁중내의 하층민(下層民)들인, 무수리, 나인, 상궁, 내시, 금군병사, 정원서리, 내의원 사령 및 의녀들의 갖가지 애환과 갈등을 궁중이면사(宮中裏面史)와 함께 우리 사극(史劇)에서 처음으로 보여줍니다.

다. 궁중요리를 중심으로 한 전통음식에 관한 모든 것

현대인들의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된 음식문화(飮食文化)에 대한 정보를 궁중요리(宮中料理)를 중심으로 그 종류와 조리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아울러 보양식(補陽食)을 포함한 우리고유의 전통음식에 관한 모든 것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라. 조선조 의학 상식 및 의녀제도에 대한 소개

그 내밀성(內密性) 때문에 의학의 금기(禁忌)로 여겨왔던 부인병(婦人病) 중심의 한방치료와 가정에서 여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갖가지 민간요법 그리고 세계 유일한 제도였던 조선조 의녀제도(醫女制度)와 특성과 운용, 의녀(醫女)와 의원(醫員)의 관계, 역할 등에 관하여 드라마에서 상세히 소개합니다. 특히 기존 의학드라마와 차별화하기 위해 약초학(藥草學), 부인병(婦人病), 일반침구(一般鍼灸)등 생활과 밀접한 내용의 질병을 주로 다룹니다.

주인공 장금이가 궁궐에 들어가 최초 어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드라마.


3. 특징[편집]



시대 배경은 조선시대 중종대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 의녀 '장금'을 주인공으로 하였으나, 장금이 중종의 총애를 받은 의녀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기록이 전무한지라, 모티브만 따왔을 뿐 드라마 내용의 대부분은 픽션이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시대에 궁녀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 사실 그 당시 수라상은 '대령숙수'라 불리는 남성에 의해 만들어졌고, 궁녀는 옆에서 도와주는 보조 요리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궁중요리 붐을 일으켰으니 아이러니.

이병훈 PD의 경력이 묻어나는 연출력과 김영현 작가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악역마저도 공감이 가는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 등 다방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메인 스토리인 장금이의 인생역전과 사랑이 서스펜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청률이나 평단의 평가 모두, 국내외적으로 성공한 드문 케이스의 드라마가 되었다. 특히 시청률은 궤도에 오른 후부터 마지막 회까지 40~50%대 괴물 시청률을 유지했다.

특히 기존 사극에서 고작해야 왕을 유혹해 권세를 탐하는 발칙한 요부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던 궁궐 여성의 이미지를 깨버리고, 넘치는 도전 정신과 집념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역경을 주체적으로 극복해가는 장금의 캐릭터는 여성계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 부터 조연까지 전면적으로 극을 이끌어가고 극을 끌어가는 캐릭터가 대부분 여성캐릭터라는 점이 평소 사극을 기피하던 젊은 여자 시청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을 통해서 MBC의 전매특허인 트렌디 사극이 더욱 공고화되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각본을 맡은 김영현 작가는 이 작품을 계기로 사극 전문 작가로 전향한다.[3]


4. 등장인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장금/등장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시청률[편집]


당시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2003년 9월 15일 19.8%를 시작으로 한 시청률은 방송 1개월만인 9부에서 30%를 넘었으며, 결국 2003년 11월 10일 17부에서 40%를 돌파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40%의 시청률 고공행렬을 기록하다가 2004년 3월 극중 대반전과 최 상궁이 죽었던 48부에서는 기어이 51.4%로 50%의 벽을 뚫고 만다. 49부와 50부는 시청률이 40%대로 떨어졌지만 51부부터는 다시 50% 시청률에 복귀. 결국 종영 때까지 계속 50%를 기록하였으며 2004년 3월 23일 54부 마지막 회에서 최고시청률 57.8%를 기록하였다. 최종 평균시청률은 45.8%였다. 같은 시기에 방송했던 천국의 계단도 시청률이 40%를 넘을 정도로 화제작이었으나 대장금의 시청률을 넘지 못하고 주간 시청률이 2위로 끝마쳤다.


6. OST[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장금/OST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평가[편집]


후술하듯이 당시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대장금> 신드롬은 시청률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전방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모든 언론들은 앞다투어 '장금이 신드롬'을 기사화했으며, 정치권에서도 장금이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장금이가 만들었던 요리는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대장금 테마파크도 운영되었다. '장금이의 꿈'이라는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재창조되기도 했다.

실록에 단 몇 번 언급된 인물을 이렇게 까지 재창조하여 사랑받을 수 있게 만든 것에는 작가 김영현의 역량, 이병훈 PD의 관록, 그리고 배우진의 열연이라는 요소가 적절히 배합된데에 있다.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보니 역사 왜곡 등의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고, 창작물 자체가 워낙 훌륭하다보니 설령 왜곡 논란이 있었다 할지라도 금새 잠잠해졌을 것이다.

이전 작으론 예능인 '테마게임'을 집필하였으며 이후 드라마 '애드버킷'의 공동작가로 활동했던 김영현은 대장금으로 그야말로 역대급 필력을 보여주며 퓨전사극계의 신화로 자리 잡았다. 이후 '서동요',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 레전드 작품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이후 작품들은 작가 박상연과의 협업이었지만 대장금은 오롯이 혼자 쓴 작품으로 초반부 전개에서부터 후반부 마무리까지 어색하거나 부족한 부분 없이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MBC 사극의 전설로 불리는 PD 이병훈은 늘상 비판받던 '올드한 연출'이라는 오명을 대장금을 통해 벗어내며 이후 작품들의 연이은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주연급 배우였으나 큰 한방이 없어 잔잔한 연기생활을 하던 이영애는 이 작품을 통해 그야말로 스타배우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사극 출연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대장금을 통해 본인의 연기 내공을 십분 발휘하며 드라마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배우 지진희 역시 대장금을 통해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 작품 이후로 여자 주연 배우를 묵묵히 서포트하는 남주 포지션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로 자리잡게 된다. 악인이지만 미워할 수 없고 오히려 연민하게 되는 '금영' 역의 홍리나는 바로 이전작인 똑바로 살아라의 시트콤 이미지가 무색하게 연기변신에 성공해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자신의 신념과 집안의 악행 중간에 낀 인물의 고뇌와 갈등을 아련하게 표현해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악역 캐릭터론 손꼽히는 인물을 창조해냈다. 중종 역의 임호는 중후반부까지 '맛있구나'의 이미지로 소비되어 다소 저평가 받았으나 막판 장금을 연모하면서도 의녀로서 그 꿈을 지지하고 의술을 펼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후원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며 극찬을 받았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치료하는 장금의 얼굴, 손끝을 아련히 바라보는 장면은 임호의 연기력이 절정에 달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연급 배우들의 열연도 중요하지만 이 작품을 고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조연들의 엄청난 존재감 때문이다. 이병훈 PD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임현식은 이 작품에서도 중요한 인물을 맡으며 극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그와 부부로 열연한 금보라 역시 무거운 분위기 속 단비 같은 역할을 해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배우는 '한 상궁' 역의 양미경과 '최 상궁' 역의 견미리이다. 양미경은 그야말로 '한 상궁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자신이 출연하기로 한 회차보다 10회나 연장한 27회에서야 퇴장하게 되었고 그 당시 '한 상궁 살리기 캠페인'이 벌어졌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장금의 멘토이자 스승으로서 그 길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200%이상 해냈으며 죽음 직전 자신의 그토록 그리워하던 친구의 딸이 장금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자 감사함과 슬픔 그 중간의 감정을 애절하게 연기하며 배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견미리는 당초 맡기로 한 '한 상궁' 배역과 정반대인 악역 '최 상궁'을 급히 연기하게 되었지만 그런 비하인드가 없었던 사람처럼 연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나쁘기만 한 악인이 아니고 최고상궁 집안 출신으로 스스로 악행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인물의 고통과 이면을 절절하게 연기했고 후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레전드급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 외에도 경합에서 패배한 후 자존심의 큰 상처를 입고 눈물을 쏟는 장면, 절친이자 자신의 손으로 죽게 만든 장금 엄마의 무덤에서 독백하는 장면은 견미리[4] 배우 인생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장금의 절친이자 돌아온 장금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연생' 역의 박은혜[5], '정 상궁' 역으로 열연한 여운계, 장금의 의녀 생활을 열어주는 '장덕' 역의 김여진[6], 중후반부 장금의 멘토, 스승 역할을 하는 '신익필' 역의 박은수 등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숱한 난관과 역경에 시달리면서도 심성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이겨내고, 악인을 처리할 기회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의 원한을 버리고 용서하며[7] 자신의 길을 정진하는 장금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으며, 결국 장금이를 괴롭혔던 많은 악인들이 쓰러지고 자멸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옛 한국말로 쓴 노래 '오나라'도 대장금의 인지도에 힘입어 크게 히트했다.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간간이 회자되는 곡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는지 2019년 기준 중학교 1학년 음악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7.1. 한류 열풍[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장금/한류 열풍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2. 역사재현의 오류[편집]


작품성에서 호평받았지만 오류는 좀 있는 편이다.

  • 3회에서 아역배우 장하린이 생각시로 등장했는데, 마지막회에 나온 민정호와 장금이의 딸 소헌 역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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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반에 '단도리(段取)'란 일본어를 너무 남발하다 시청자들에게 지적을 당했다.

  • 어렸을 때 장금에게 금영은 언니였는데 성인이 됐을 땐 '금영아'라고 맞먹는 소설과는 다른 설정변경이 있다. 이는 실수로 그런 것이 아니라 의도한 설정변경이다. 방송 당시 홈페이지에 매번 같은 위치에서 맞붙어야 하는데 나이차이가 있으면 품계는 물론 진급에도 금영이가 먼저 진급하는 등 차이가 나 전개대로 할 수 없어서 나이 설정을 변경한다는 공지가 올라왔었다. 소설에서는 금영이 후궁의 자리까지 오르는데 드라마에선 장금과 금영을 계속 라이벌로 남기기엔 후궁과 의녀라는 신분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금영 대신에 연생을 후궁으로 하고, 금영을 수라간 최고상궁으로 설정했다는 의견도 있다.

  • '대장금'을 통해 널리 알려진 '생각시'는 원래 지밀과 침방, 수방의 각시들만이 해당되었으며, 수라간은 생머리를 드리지 않은 그냥 각시들이었다.

  • 수라간에서 궁녀들이 한 일은 잡다한 일이나 음식을 데우는 정도(특히 소주방)였으며, 실제 음식의 조리는 남성인 숙수들이 도맡아 하였다.[8] 따라서 수라간도 거의 허드렛일을 하는 곳으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수라간 최고상궁제조상궁에 오른 예는 없다. 수라간보다는 왕과 왕비, 대비의 수발을 드는 지밀과 부제조, 침방과 수방의 최고상궁이 더욱 권력이 컸기 때문이다.

  • 대장금의 시대 배경은 16세기 초 조선시대 중종대인데, 대장금에서의 복장들은 조선 후기 18세기 쯤에 나타나는 형태이다. 대장금에서 의복의 저고리가 짧은 편인데 원래 조선 초기에는 저고리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차차 짧아지게 된다. 게다가 극중 상궁, 대비, 중전, 후궁들을 비롯한 궁중여성들도 죄다 당의를 입고 나오는데,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이 당의는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치세 때부터 나왔던 저고리 형태였고, 그 전까지 궁중여성들은 주로 장저고리나 장삼 등을 주로 입었다. 조선 후기의 형태만 한복이라고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있어 현대의 개량 한복은 저고리를 짧게 만들기 때문에 용의 눈물과 같은 조선 초기 한복을 다룬 사극은 드문 게 현실이다.

  •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최 상궁만한전석을 대접하는데, 만한전석은 사실 이때부터 약 200년 후인 청나라 강희제 때 만들어진 것이다. 차라리 이병훈 PD의 후속작인 이산에 만한전석이 나왔다면 그 때는 강희제의 손자인 건륭제가 청나라를 통치하던 시기였으므로 옳았을 것이다.

  • 6회 효혜공주(10세 내외)가 밥을 거부할 때나 11회 원자(5~6세 가량) 가 충조전압탕으로 쓰러졌을 당시 장경왕후가 등장한다. 그러나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6일만에 산후병으로 사망하고(당시 효혜공주 5살), 2년 뒤에 문정왕후가 제2계비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6회부터 이미 문정왕후가 등장했어야 한다.

  • 명나라 사신의 복색을 묘사할 때 한국 사극의 고질병인 어떻게든 조선의 관복과 차별화를 둘려는 발상인 긴머리와 기괴한 사모뿔 형상이 그대로 묘사되었다. 여기에 더해 이 작품에서는 아예 명나라 사신의 관복 색상을 황색으로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행태까지 저질렀다.[9]

  • 42회에서 열이가 연생이의 지병인 지병을 이용해 태아를 사산시키려는 음모[10]를 꾸미다 발각당하나, 내의원 내에서 조용히 자숙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에피소드가 있다. 극에서는 내의정이 주도하여 조용히 덮고 넘어가는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실제로 일어난다면 고의여부를 떠나서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해치려고 한 대상이 종4품 숙원이든, 태아였든 왕족을 해치려고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에 왕실의 안전과 권위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간주되어 반역이나 역적의 죄까지 물을 수 있을 만큼 매우 중대한 사안이고, 열이가 그동안 보여왔던 실력과 평범한 의녀들도 알 수 있는 수준의 질병이라는 점들이 조합되어 열이의 발뺌이 통하지 않는게 정상이다.[11] 이게 외부로 보고되는 순간 최씨 일가까지 잡혀갈 것은 뻔한 수순이기 때문에 극의 단계적 전개를 위해 조용히 봉합한 것으로 보인다.

  • 46화에서 윤막개가 오겸호에게 박나인, 한상궁, 최상궁 관계에 대해서 말할 때 최상궁이 나인 시절 인수대비에게 해가되는 재료를 넣어야 한다는 말을 인수대비가 아닌 인목대비로 잘못 말하였다.

  • 50회에서 출산 직후 심정지가 온 연생이를 장금이 흉부압박법을 통해 소생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CPR/흉부압박 등이 체계화된 시기는 20세기 중반이다... 의학사에 혁명을 일으킬만한 사건이라는 말이 있다.

  • 유황오리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연루된 인원들이 전부 체포되었는데 최 상궁은 걸어서 궁을 나와 명이의 무덤을 찾아간다. 의금부에 최 상궁의 도주 사실이 보고되었고, 궁에 소문이 돌아 최 상궁이 연루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인데, 어떻게 나간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작중 대사로는 도망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뒷간을 보낸 틈에 사라졌다 언급이 되며, 잠시 몸을 숨겼다가 궁을 빠져나갈 때는 장금에게 들켰으나 장금이 묵인하여 빠져나갔다.

  • 극 말기에 명종 6년이라는 배경이 명확히 등장하는데,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생각시로 궁에 들어갔던 장금의 나이는 50대 초중반일 시기다. 민정호는 장금보다 10살은 위이니 60대다. 그런데 배우는 물론 분장조차 안 바뀌어서 전혀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딸을 낳은 시기도 장금이 50대 초반일 때이다. 일반적으로는 여성은 폐경기이고 남성도 정력이 부족하여 아이를 보기가 몹시 힘들다.

자순대비는 1530년에 승하하였고 경원대군(명종)은 1534년에 태어났다. 경원대군(명종)이 두창에 걸렸을때는 자순대비는 이미 승하하신 이후이다.

  • 자순대비는 수라간 최고상궁 경합이자 자신의 생신연에서 장금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마늘이 들어가 톡 쏘는 맛이 일품이라 하더니, 나중에 장금이 의녀가 되어 들어와 각기병 치료를 할 때는 마늘은 입에도 못 대는 설정이 되었다.

여기서 일부 의문점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최 상궁에 대해서는 허구 내지는 최 상궁의 비극적 최후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연출진의 각색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12] 작가도 이 부분이 걸렸는지 작중에서도 관리의 말을 빌어서, '설마 제조상궁이 도망갈줄은 몰랐다' 라고 언급하고 (경계가 허술 했다는 점) 최상궁이 숨어 있는곳은 궁중 여인들이 있는곳(대비전 상궁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으로 아무리 의금부라고 하더라도 진입이 다소 어려운 지역들인 점을 감안하면 의금부 보다는 내시부쪽에서 수색을 해야 하는 곳들인데 작중 대비전 상궁이 '옛정을 생각해서 봐줄테니 빨리 가시라 나는 바로 내시부에 고할것이다' 라는 언급이나 나인들에게 발각 되었을때도 나인>민상궁>의녀 장금에게 알리고 장금이 민상궁이 의금부에 고하는걸 말리는 장면이 있다. 따라서 소문이 났지만 쉬쉬하였고 결정적으로 장금이가 최상궁이 스스로 죄를 고할수 있게(죄값을 치룰수 있게) 봐준것에 가깝다.

8. 미디어 믹스[편집]



8.1. 소설[편집]


소설로 1~4권이 발배됐다. 대본을 원작으로 했지만 그 대본이 tv방영본이 아닌 초본이라 1, 2권은 방영분과 다른부분이 좀 있고 3권은 아예 tv와 달라졌다.


8.2. 뮤지컬[편집]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다. 2007년 초연은 드라마를 그대로 옮겨놓은 버전이었는데 흥행은 신통치 못했다. 2008년 대폭 수정을 거쳐 경희궁 숭정전에서 '고궁 버전' 이라는 이름으로 올렸는데 제목만 '뮤지컬 대장금'이지 '뮤지컬 조광조'. 그래도 원 버전보다는 흥행에 성공했으며, 2009년 3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는 최우수재공연상과 남우신인상(강태을)을, 15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는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했다. 근데 강태을은 돈주앙 때문에 탔는지 대장금 때문에 탔는지 애매하다. 사이트에도 돈주앙/대장금으로 나와있다.


8.3. 애니메이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장금이의 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기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을 토대로 나온 장금이의 꿈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대장금과는 틀만 같고 다른 전개로 진행되지만,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 치고는 꽤 수준이 높은 데다 살짝 귀여운 분위기도 있어서 상당한 인기몰이를 한 작품이다. 덕분에 만화화 되기도 했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9. 기타[편집]



  • 2011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언어 영역(현 국어 영역)에서 7번째 지문(시나리오)으로 출제된 적이 있다. 이 드라마의 극초반 부분[13]이 나왔다.

  • MBC유튜브에서 일부 장면을 편집한 축약본으로 전편을 공개하고 있다. 전편 보기 본래 2014년경에 네이버 TV가 주요 방송사와 독점계약을 하면서 한국에 지역제한이 걸려서 볼 수 없었지만[14], MBC가 2017년 경에 2006년 이전 영상의 지역제한을 풀면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영상이 오래 방치되면서 일부 영상이 삭제되는 등 문제가 생겼다. 그러다 2022년 2월부터 10월까지 MBC에서 자체 편집한 축약본을 순차적으로 올리고 플레이 리스트까지 제공하고 있다. 축약본이지만 편당 5분 내외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들만 들어내서 감상에는 큰 무리가 없다. 각각의 영상마다 썸네일도 넣는 등 꽤 신경을 썼다. 풀버전은 Wavve에서 볼 수 있다.

  •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았지만, 특히 레즈비언 커뮤니티 등지에서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아예 대놓고 작중 레즈비언 코드를 분석한 기사가 나온 적도 있을 정도. 기사. 종영한 지 20년이 지난 이후에도 트위터 등지에서 활발하게 관련 2차 창작물이 보일 정도로 그쪽 계통의 지지를 받고 있다.


  • 역사 실록에서 기록된 장금은 엄연히 궁중 요리사가 아닌 의녀 이지만 본 드라마에서 궁녀 로써 여러 음식을 만드는 장면들이 워낙 너무 유명해져서 아주 훌륭했던 임금 주치의 보다는 오히려 조선시대 최고의 요리사 였던 여인으로 대중들 뇌리속에 굳혀지기도 했으며, 때문에 본 드라마로 인하여 이후 여러 대중 매체에서는 요리 솜씨 실력이 아주 특출나고 뛰어난 어느 인물들을 가리켜 X 장금 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9.1. 캐스팅[편집]


  • 이영애가 맡았던 서장금 역은 당초 송윤아, 장진영 등이 거론되었으나, 개인사정을 이유로 출연을 거부하자 이영애가 우여곡절 끝에 낙점됐다.[15]

  • 홍리나가 분한 최금영 역은 당초 강성연이 낙점됐으나, KBS 2TV 월화드라마 '그녀는 짱'에 갑작스럽게 캐스팅되면서 고사하여 MBC 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강성연은 '대장금' 출연이 좌절됐다. 당시 '그녀는 짱'에는 강성연 외에도 김정은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16]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해 버렸다. 강성연이 '대장금'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고 선택한 '그녀는 짱'은 미스캐스팅도 있었으나 폭력 장면을 여러 차례 다루어 물의를 샀으며 반복된 간접광고로 2004년 1월 15일 연예오락 제1심의위원회에서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이 때문에 한 자릿수 시청률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으며, 강성연 외에도 정선경이 물망에 올랐지만 MBC 귀여운 여인 캐스팅으로 거절했다. 참고로 둘 다 시청률은 쪽박이었다.

  • 최 상궁 역의 견미리는 당초 한 상궁 역이었으나, 최 상궁 역으로 낙점됐던 송채환이 개인사정으로 인해 드라마에서 하차하자 양미경이 한 상궁 역 대타로 들어갔고 견미리는 최 상궁 역이 됐다.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뭬야?!

  • 이병훈 PD가 맡은 작품이다보니 PD가 자주 출연시켰던 배우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중에서 이병훈 PD 작품에 주로 선역내지 조력자로 자주 출연했던 이희도 배우가 본작에서는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악역 최판술 역할을 맡았다.


9.2. 2기 제작 가능성[편집]


결론부터 말하자면 떡밥은 참 쉴 정도로 많이 돌았는데, 현실은 뜬구름.

이에 대한 썰로는 우선 어떤 사기꾼이 '대장금' 2기를 만든다고 투자를 받는다는 사기를 치는 바람에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다 MBC에서 2012년 7월 제작을 목표로 대장금 2기를 만들 구상이라는 이야기가 터져나왔지만, 결국 대장금 2기 대신 그냥 이병훈 PD의 신작인 마의를 들고 나와서 일단은 무산되었다. 그러다 2013년 초부터 동년 7월에 다시 방영 예정이라는 얘기가 떴지만, 2013년 3월말 편성 불발 소식이 전해졌다. 게다가 이병훈 감독이 마의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지라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물론 이병훈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 맡아서 할 수도 있겠으나, 이영애가 과연 이병훈 감독이 감독하지 않는 대장금 2에 출연할지는 의문. 물론 구암 허준의 사례처럼 주인공까지 바꿔버릴 수도 있지만 애초에 이영애 버전의 대장금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고생을 겪은 후 인생의 정점에 도달한 것까지 보여줘서, 그 이후의 이야기는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으니 사실상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 수가 없긴 하다. 이 때문에 이영애는 부모고 딸의 얘기를 '대장금' 2기의 주요 스토리로 한다는 썰이 돌기도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미 '대장금' 같은 이병훈 PD 타입의 사극너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최하층인 주인공이 갖은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고, 그걸 일방적으로 시기하는 라이벌에 그런 주인공에게 키다리 아저씨 격으로 지켜주는 남자가 나오는 드라마는, 당장 생각해도 동이불의 여신 정이가 대번에 생각날 정도로 레파토리가 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뭘 만들던 시청자들에겐 늘 하던 MBC 사극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MBC 드라마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방송사는 어떤 포맷으로 성공을 하면 그 뒤로도 계속 그 포맷의 드라마로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다. 이 성공하자 원작이 없음에도 그 뒤를 이어 궁S마이 프린세스, 더킹 투하츠, 황후의 품격 같은 가상의 한국 왕가를 다룬 드라마가 이어졌듯이 말이다.

그런데 2014년 3월 20일, 중국 유명 사이트인 알리바바, 바이두 등에서 약 300억~350억 가량의 투자금액을 받고 '대장금' 2 제작을 결정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전작에 출연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다시 캐스팅될 것으로 보이고, 극중 장금의 라이벌이었던 금영의 딸을 장금이가 수제자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7월부터 중국 현지 로케이션 촬영에 들어가 10월경에 보도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하지만 이영애가 출연을 최종적으로 고사하면서 이영애가 없는 작품이 나올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제작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2024년 1월 30일 이영애가 의녀 대장금에 캐스팅 되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무기한 연기 10년만에 사실상 2기나 다름 없는 작품 제작이 확정되었다.

10. 언어별 명칭[편집]


언어별 명칭
한국어
대장금()
러시아어
Жемчужина дворца(Zhemchuzhina dvortsa)
마인어
Jewel in the Palace
베트남어
Nàng Dae Jang-geum
스페인어
Una joya en el palacio
아랍어
(jawharat alqasr)
영어
Dae Jang Geum[17]/Jewel in the palace[18]
일본어
宮廷女官(チャングム((Kyūteinyokanchangumunochikai)[19]
중국어
[20]/大长今(Dà zhǎng jīn)(표준중국어)
Thai Chhòng-kîm(객가어)
Tāi Chióng-kim(민남어)
태국어
(Dæ cng km cxm nāng hæng wnghlwng)[21]
튀르키예어
Saraydaki Mücevher[22]
페르시아어


기타 [ 펼치기 · 접기 ]
루마니아어
Giuvaierul palatului
벵골어
(Dā'i jā gi'uma)
불가리아어
Съкровище в двореца(Sŭkrovishte v dvoretsa)
싱할라어
(dē ja gum)
우즈베크어
Saroy javohiri
쿠르드어
(소라니 방언)
파슈토어

폴란드어
Klejnot w pałacu
헝가리어
A palota ékköve



11. 둘러보기[편집]





12.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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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년 11월 5일부터 2007년 2월 23일까지 'MBC 명작드라마'로 재방영되었는데, 2006년 11월 4일까지는 토요일 오전 9시 44분, 2006년 11월 10일부터 마지막회까지는 금요일 낮 12시 35분에 방송되었다. 사실 지금도 케이블에선 종종 편성되고 있다.[2] 단순 수치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순위에 오른 드라마들 대부분이 90년대인걸 감안하면 인터넷 문화가 급속도로 발달하던 시기인 2000년대 초에 유일하게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 수치. 심지어 위 드라마들 중 대장금과 방영기간이 가장 차이가 적게나는 태조 왕건조차 무려 3년이나 차이가 난다.[3] 후에 김영현 작가는 선덕여왕에서 전무후무한 레전드 캐릭터인 미실을 탄생시켰다. 대장금, 미실은 연기대상을 탔다.[4] 이 작품의 인연으로 이병훈 PD의 이산에선 혜경궁 홍씨 역을 맡게 된다.[5] 이 작품의 인연으로 이병훈 PD의 이산에선 효의왕후 김씨 역을 맡게 된다.[6] 이 작품의 인연으로 이병훈 PD의 이산에선 정순왕후 김씨 역을 맡게 된다. 주인공 정조의 아치에너미 역할이자 악역으로 활약하였고 이 인물은 김여진의 대표 캐릭터가 된다.[7] 근데 드라마 보면 알겠지만, 장금이 캐릭터는 마냥 착해서 쉽게 남을 용서해주고 이런 캐릭터는 아니다. 은근히 똥고집 실제로 제주도 유배 후 처음에는 복수심에 불타는 모습을 보여주어 정운백에게 크게 혼나는(이 때 장덕이 자신도 복수심에 침을 잡았다며 대신 쉴드를 쳐주기도 했다.) 모습도 보인다. 장금의 용서는 의녀로 재입궁해서 여러 일을 겪으며 상당히 치열한 고민을 한 끝에 이루어진 것이기에 개연성이 있다.[8] 궁중요리는 정교한 화력 조절이 요구되는 메뉴가 많았으며, 당시엔 현대식 가스 버너가 없었기에 직접 불조절을 하는 것이 엄청난 육체노동이었다. 워낙 고된 일인지라 숙수들 조차 힘들어서 무단 결근했다가 귀양가는 일도 있었고 임금에 따라선 숙수들의 가벼운 일탈은 너그럽게 봐주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따라서 당시 통념으로 3D 업종이었던 궁중요리를 여자들에게만 맡기기엔 무리가 따랐다.[9] 당연히 황색은 오직 황제의 황룡포에만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이었다. 일반 관료가 관복에 황색을 사용할 경우 반역죄로 처리당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의 중죄이다.[10] 고혈압이라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음식 관리를 까다롭게 해야 난산을 피할 수 있는데, 오히려 고량진미를 올려야 한다고 처방한다. 지병만 아니면 문제가 없는 처방이기 때문에 발각되더라도 발뺌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 듯.[11] 신익필은 "신비조차도 잡아낸 맥이다. 네가 모른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일축해버린다.[12] 이러한 형태의 최후는 최판술이 유배지로 가는 도중 장독이 올라 객사하는 것으로 표현되긴 하였다.[13] 대장금이 태어나기 전, 서천수와 박 나인이 만나는 파트.[14] 유튜브의 광고 수익 배분은 전세계 공통 55%로, 방송사들이 이에 불응하여 광고료 협상을 하였으나 합의되지 않고, 한국 사이트에 90%로 계약한 것. 링크, 링크 2, 링크 3.[15] 김현주, 송혜교 등도 서장금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김현주는 당시 송혜교가 여주인공으로 나온 KBS 2TV 가을동화의 유력한 여주인공이었다고 한다.[16] 김정은은 '그녀는 짱' 뿐 아니라 '대장금', '그녀는 짱'이 끝난 뒤 시작된 SBS 화요 예능 프로그램 '최수종쇼' 보조 MC 출연을 고사했다.[17] 한국 로마자 표기 영어 이름.[18] 유튜브 영상 공식 영어 이름.[19] 궁녀 장금의 맹세[20] 한국 대장금에서도 차회예고 때 항상 한자로도 주로 쓰인다.[21] 왕궁의 여왕 대장금[22] 궁전의 보석. '궁전의 보석' 자체는 튀르키예가 처음으로 번역한 제목이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 번역명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