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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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그롤 소속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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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그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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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그롤
Dave Grohl


파일:external/www.billboard.com/Dave-Grohl-MusiCares-2016-billboard-650.jpg

본명
데이비드 에릭 그롤
David Eric Grohl
출생
1969년 1월 14일 (55세)
미국 오하이오 주 워런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신장
182.2cm
활동
1986년 ~ 현재
소속
너바나(1990 ~ 1994) (드럼)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2000 ~ 2001, 2013) (드럼)
스크림(1986 ~ 1990) (드럼)
뎀 크루키드 벌처스(2009) (드럼)[1]
푸 파이터스(1994 ~ 현재) (보컬, 기타)
악기
드럼, 보컬, 기타, 베이스 기타
장르
얼터너티브 록, 그런지, 포스트 그런지, 펑크 록, 헤비 메탈
레이블
RCA, 캐피톨 레코즈, Roswell, DGC, Dischord, Sub Pop
배우자
제니퍼 레이 영블러드(1994년 ~ 1997년)
조딘 블럼(2003년 ~ 현재)
자녀
바이올렛 메이 그롤(2006년생)
하퍼 윌로우 그롤(2009년생)
오펠리아 세인트 그롤(2014년생)


1. 개요
2. 생애
2.1. 유년 시절
2.2. 너바나 (1990 ~ 1994)
3. 음악적 성향
3.1. 드럼
3.2. 보컬과 기타 등등
4. 여담



1. 개요[편집]


미국 뮤지션. 너바나의 드러머이자 푸 파이터스의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를 담당하고 있다. 너바나에서 함께 활동하였던 커트 코베인의 뒤를 이어 미국의 그런지 씬을 상징하고 있는 인물이다.[2]


2. 생애[편집]



2.1. 유년 시절[편집]


데이브 그롤은 교사인 어머니와 작가인 아버지[3] 사이에서 태어났다. [4]

7살 시절 부모님이 이혼했고, 그 이후로는 어머니와 지냈다. 이혼 후 혼자 데이브를 부양해야 했던 데이브의 어머니는 교사봉급으로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투잡 혹은 쓰리잡 까지 해야했다고 한다. 하지만 넉넉치 않았던 가정형편과는 별개로 밝고 명랑하게 자랐다고 한다.

어렸을 땐 꽤나 천방지축이었다고 한다. 끌고 다녀서 너덜너덜해진 곰돌이 푸우 인형을 옆구리에 꼭 끼고 다니며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아이였다고. 학교 다닐 시절에는 골프클럽에서 장난치고 놀다가 머리를 다쳐 피를 한 바가지 흘리며 집에 돌아오는 등 몰고 다니는 사건사고도 많았으나, 기본적으로 선생님들에게 매우 예쁨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롤 본인은 자신이 멍청해서 귀여워 보이니까 그런 거라고 얼버무렸다.

어릴 때 부터 데이브와 그의 가족은 일리노이 에반스톤(시카고 근교) 에 살던 사촌 트레이시의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냈었는데, 그의 나이 13살때, 그의 사촌 트레이시와 함께 보러갔던 The Cubby Bear에서의 Naked Raygun 공연을 보고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회고한다. 이후로 그는 14살 무렵부터 꾸준히 밴드 활동을 해왔다. 원래는 기타 포지션으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드럼 연주에 더 뛰어남을 보여 드럼 포지션으로 바꿨다.[5]

17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당시 워싱턴 DC에서 한창 잘나가던 하드코어 펑크 밴드 스크림을 따라 미국 투어를 떠났다. 스크림의 투어 날짜가 결정되고 학교 중퇴를 결심한 데이브 그롤은 어머니에게 학교 중퇴를 허락 받으려 했더니 의외로 단번에 허락해 주셨다고 한다. 데이브 그롤의 어머니 버지니아 그롤이 아들의 학교 중퇴를 이렇게 흔쾌히 허락해 준 이유는 데이브가 착한 학생이긴 했지만 학업에는 영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재능을 보이는 쪽으로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2. 너바나 (1990 ~ 1994)[편집]


데이브 그롤이 원래 활동하고 있었던 밴드 스크림의 베이시스트가 탈퇴하게 되어 밴드 활동이 일시 중단되었을 때, 자신의 멘토 같은 존재였던 멜빈스의 버즈 오즈본이 너바나의 멤버 크리스 노보셀릭의 연락처를 주었고 이것이 데이브가 너바나의 드러머가 된 계기이다. 커트 코베인은 그롤의 드러밍을 듣고 Nevermind의 프로듀서 부치 빅에게 전화를 걸어 아주 대단한 드러머가 왔다고 흥분해서 외쳤다고 한다.

너바나에서 활동하면서 데이브는 비록 자신이 너바나 사운드의 핵심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라고 해도 자신의 위치를 크게 이탈하면서 주목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 덕분에 음악적 아이덴티티가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는 그것이 진짜 너바나의 음악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는데, 너바나 활동 당시에는 이 곡들을 많이 공개하지 않았다. 그가 너바나에 있을 때 작곡한 곡으로 유일하게 발표된 곡으로는 Marigold가 있으며 그롤은 이 곡을 나중에 자신의 라이브 무대에서 부르게 된다.


2.3. 푸 파이터스 (1994 ~ )[편집]


푸 파이터스의 시작 계기를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커트 코베인의 자살 이후 커트의 자살을 다루는 뉴스를 듣고싶지 않아 TV, 라디오도 모두 버렸고, 드럼 연습도 중단했다고 한다. 그렇게 거의 반쯤 폐인으로 지내던 어느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훌쩍 떠난 아일랜드 여행에서 드라이빙을 하는 도중 우연히 길을 잃은 히치하이커를 발견했다. 그 히치하이커가 입은 티셔츠가 다름 아닌 커트 코베인 티셔츠였고, 데이브는 순간 공황에 빠져 그 히치하이커를 태우지 않고 지나쳐 버렸지만 결국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심정으로 푸 파이터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데이브는 15트랙 데모를 하나 만드는데 한 곡의 기타 파트를 빼놓고는 모든 파트를 본인이 직접 연주하고 녹음한다.[6] 이때부터 기타보컬로 활동한다. 이후 이 데모를 중심으로 다른 파트원들을 모으게 되는데, 본인이 드러머다 보니 드러머를 구하는데 까다로움을 많이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그롤 자신이 말도 없이 앨범 작업 중 드럼 파트를 모두 다시 재녹음하여 갈등을 빚은 나머지 초창기 드러머 윌리엄 골드스미스가 밴드를 떠나기도 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테일러 호킨스(Taylor Hawkins)가 드러머로 들어오며 지금의 푸 파이터스 라인업 완성. 너바나 때도 함께 활동했었던 팻 스미어(Pat Smear)는 밴드를 나갔다 들어왔다 하다가 지금은 돌아온 상태.

사고 사진들 데이브 그롤이 홈페이지에 올린 공식 사과(?) 편지 데이브가 무대에서 떨어지는 영상 요약글
2015년 6월 12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콘서트 도중, Monkey Wrench를 연주하며 케이블을 피해 넘으려다 무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다른 밴드 멤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못 봐서 연주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바닥에 떨어지면서 받은 충격에 뼈가 부러지는 순간 정말 말도 안 되게 아팠다고 한다… 그러나 그롤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은 상태에서 관객들에게 사과부터 한다. 역시 the nicest guy in rock 그리고 소문난 워커 홀릭답게 다리를 치료해서 다시 돌아오겠다며 드러머인 테일러 호킨스에게 보컬을 맡기고 백스테이지로 갔다. 10분간 백스테이지에서 부러져 튀어나온 뼈를 제자리에 밀어 넣는(!) 응급처치와 깁스를 했는데, 그롤은 마취제도 약도 없이 위스키 한잔 마시고 입에 거즈를 꽉 물고 부러진 뼈를 밀어 끼우는 과정을 버텼다고 한다... 관운장 깁스를 하는 중 그롤은 의사에게 공연을 계속해도 되겠냐고 물었으나 의사가 그러려면 부러진 발목이 움직이지 않게 계속 잡고 있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이 나랑 같이 무대 올라갑시다!! 하며 의사를 데리고 올라왔다. 공연의 열기와 아드레날린과 위스키 덕에 전혀 아프지 않았다고 하며 그 뒤로도 2시간 동안 공연을 했다! 그리고 의사도 2시간 동안 그롤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이 정도 되면 진짜 공연 성애자...?

이 골절 사고로 나머지 6월 공연들과 함께 글라스톤베리 공연에 올라가지 못한 그롤은 서브 헤드 라이너인 칸예에게 뒷일을 맡긴다는 말과 함께 팬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 편지도 썼다. 응급 처치를 하느라 좋아하는 바지를 잘라버렸음을 깨알같이 원통해했다.

그런데....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nqzzwnNEET1tiaps1o1_1280.jpg
다리 부상 후 라이브에서 그롤의 모습(...)
이 양반 7월 초부터 브로큰 레그 투어[7]라는 이름으로 다시 투어를 돌기 시작했다! 사실 수술한 다음날 컨디션이 너무 좋아 바로 공연하고 싶었는데 진통제 없이는 장난 아니게 아파서 못했다고 한다.. 저 화려한 무대는 데이브 그롤 본인이 병원에서 진통제 맞고 몽롱한 정신으로 누워있다가 왕좌의 게임떠올라서 직접 디자인했다고(...) 아무튼 그 덕분에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로 오게 되는 첫 내한공연은 취소되지 않았으며, 팬들은 저 아름다운 전용 무대와 함께하는 진귀한 라이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유쾌하게 투어를 돌던 그롤도 부러진 다리로 전 세계를 다니려니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시카고 공연이 끝난 후 드레싱 룸에서 엉엉 울어버렸다고 한다. 같이 있던 멤버들이 옷 갈아입다 말고 괜찮냐고 해줬다고..

그리고 푸 파이터스가 투어를 끝내고 왕좌 이슈도 잠잠해져가던 2016년, 저 왕좌의 게임 의자를 다리 부상당한 액슬 로즈에게 빌려줬다고 한다. 뭐?!?![8]

파일:external/cdn.shopify.com/FOO242a_XRAY_800X800_1024x1024.png
공식 머천다이즈 스토어에서 파는 티셔츠. 이쯤 되면 일부러 부러뜨린 것 같다

전부터 폴 메카트니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2년, 푸 파이터즈의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가 남미 투어 중 사망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메카트니의 격려로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었으며 둘은 함께 2022년 글래스톤베리에서 공연했다.


3. 음악적 성향[편집]



3.1. 드럼[편집]


데이브의 스타일은 현란한 필로 화려하게 곡을 메꿔 곡을 좋게 만들기보다는 밟는 것을 확실히 밟고 때릴 것을 확실히 때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덕분에 너바나 특유의 약-강-약-강 다이내믹의 매력을 최고조로 뽑아내게 되었다. 너바나 때부터 푸 파이터스, 그리고 뎀 크룩키드 벌처스에서 활동하는 지금까지도 작곡을 할 때 다른 모든 악기와 드럼의 쿵짝이 잘 맞는 것을 항상 중요하게 두고 그것을 중심으로 두고 작곡을 하며, 드러머 중심으로 음악생활을 했기 때문에 곡들에서도 화려한 기타 솔로가 있는 곡들보단 전반적으로 짜임새가 훌륭한 리프 중심의 음악을 맛볼 수 있다.


디스코 드럼을 좋아했는지 테크니션 계열의 드러머가 되고 싶었지만 악보를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한 드럼 연주 밖에 못한다고 한다. Nevermind 작업 당시 The Gap Band, Cameo, Tommy Thompson의 디스코 스타일의 드러밍을 많이 응용을 했었고, Smells Like Teen Spirit의 드럼 도입부는 The Gap Band의 Burn Rubber On Me라는 곡의 드럼 도입부를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 당시의 디스코 취향이 푸 파이터스의 Dee Gees 컨셉 프로젝트의 영향을 주기도 했다.


다만 그렇다고 메트로놈 스타일의 연주만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기본에 충실하다고 주장하지만 동시에 상당히 짜임새 있고 테크니컬한 록 연주도 무리없이 소화하는데,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러시(밴드)의 2112 앨범을 듣고 나서 드럼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닐 피어트의 연주를 듣고 "그제서야 드러머들의 연주가 귀에 들어왔다"라고 표현하였고, "피어트가 교수(The professor)라는 별칭을 얻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러시를 동경한 듯하다. 실제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러시의 헌액을 맡은 것도 그롤과 테일러 호킨스였다.

3.2. 보컬과 기타 등등[편집]


음역대는 (D1-)D2-E5(-D6) 정도로, 바리톤과 테너 중간대에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락 보컬로서는 꽤나 낮은 목소리. 그러나 중저음대보다는 고음역대를 많이 사용해서 거칠고 날카로우며 호소력 있어 이목을 확 끄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목 긁는 소리와 샤우팅을 즐겨 구사해서 그런지 팬들은 그의 목소리가 언젠가 성대결절로 망가지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중.

기타 외길만 판 전문 기타리스트들과 비교하기엔 그롤의 기타 실력이 그 정도로 뛰어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절대로 그의 기타 연주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중독성 있는 기타 리프를 작곡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다른 뮤지션들과 차별화를 두는 것이 그의 엄청난 장점이며, 푸 파이터스의 리드 기타로서 수십년간 기타 솔로를 소화했기 때문에 그 또한 기타리스트로선 결코 폄하될 수 없는 실력의 소유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롤을 그저 너바나의 드러머로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기에 기타 실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할 것이다. 추가적으로 푸 파이터스 시절에는 대부분의 리드 기타를 크리스 시플렛이 도맡아 하기 때문에 기타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어서 더욱 그럴 수 있다. 그의 제대로 된 기타 실력이 궁금하다면 아래의 락 밴드 러시와 푸 파이터스가 함께한 '2112' 공연 영상[9]을 보면 되겠다.[10]


푸 파이터스의 첫 앨범을 데이브 혼자서 연주하고 녹음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베이스도 치고 키보드도 만질 줄 아는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기도 하다.


4. 여담[편집]



TCV의 보컬/기타 조시 하미의 말이 압권이다. "제가 그 정도로 커피를 마셨다면, 전 아마 울고 카페인 해독을 했을 거예요."

  • 그런지의 부흥기인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음악 활동을 하는 위대한 록커다 보니, 컴퓨터나 다른 전자기기의 사용을 자제하고 모든 것을 순수 기타/이펙트/앰프 셋만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단한 프라이드를 느끼는 음악가다. Echoes, Silence, Patience & Grace (이 앨범 다는 몰라도 The Pretender 한 곡은 알것이다. MSL 오프닝으로도 쓰였던 적이 있으니) 이후 나온 가장 최신 앨범 Wasting Light의 녹음은 모두 차고(garage)에서 아날로그 장비로 이루어졌으며, 페스티벌 라이브 무대에서 "님들아 우린 막 기계 그런거 컴퓨터 그런거 못하고 그냥 록밴든데 괜찮나여???"라며 관중을 흥분시키는 마이크웍도 보여준 적 있다. 그리고 그래미 상을 받고 수상 소감으로 "음악은 인간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기계 필요 없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혀서 엄청난 환호와 호평을 받았다.

  • 그런지 록을 해서 그쪽 계열 밴드들만 친분이 있을 것 같지만 헤비메탈 뮤지션들과 상당히 친분이 두텁다. 메탈의 대부 레미 킬미스터, 오지 오스본 밴드의 기타리스트 잭 와일드, 건즈앤로지즈 기타리스트 슬래쉬, 캐나다 밴드 러시, 그리고 메탈/하드 록의 대선배 지미 페이지존 폴 존스등.[11] 사실 메탈 뿐 아니라 로큰롤의 전설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 록 보컬 리암 갤러거[12], 팝 가수 노라 존스, 할시, 빌리 아일리시 등 장르를 떠나 많은 뮤지션들과 상당히 관계가 좋다.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데이브 그롤이 여러 뮤지션들과 같이 공연하는 영상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 밴드의 보컬임에도 불구하고 흡연을 자주하는 편이었는데,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금연을 하였다고 한다.

  • 락스타 치고는 사고를 치는 편은 아니지만, 말할 때 fuck을 자주 쓴다.

  • 세계적인 음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악보를 읽을 줄 모른다.[13]

  • 어렸을 때 한국인 이웃이 있어 음식뿐 아니라 많은 한국 문화를 접했다고 한다. 자기가 사는 지역의 한식당도 가끔씩 들린다는 듯. 그 이웃집 아들내미랑 친한 친구였는데, 성인이 된 후 근황이 궁금해져서 곡의 제목을 보고 나면 연락하라는 뜻으로 그 친구의 이름을 따와 곡도 냈다. 그게 바로 푸 파이터스 정규 2집 The Colour and the Shape의 3번 트랙인 .

  • 1999년 푸 파이터스 3인의 멤버가 그롤의 자택에 다 같이 살면서 3집을 녹음할 당시엔 매일 바베큐를 해먹었는데, 아스파라거스에 향신료와 마늘 분말을 뿌려 그릴에 구워낸 음식을 정말 잘한다고 한다.

  • 밴드 메이트인 네이트 멘델의 말에 의하면 식성이 역겹다고한다. 투어 내내 같이 다니면서 먹는 걸 보면 너무 기름진 음식만 먹어서 역겨울 정도라고한다.[14] 매일 튀긴 음식과 맥도날드를 사 먹는 모양인지 맥도날드 메뉴를 모두 외우고 있어서 메뉴판도 없이 메뉴 번호로 주문한다고 한다.[15]

  • 파일:external/4.bp.blogspot.com/Jack+Black,+Dave+Grohl+and+Kyle+Gass.jpg
잭 블랙과 친분이 깊은 편이라 터네이셔스 D의 《Tribute》 뮤직비디오와 영화에 악마로 출연했다. 전자는 위 아 벗 멘, 락!, 후자는 민지 뿌우 짤방으로 유명하다. 사실 멀쩡한 사람 같은데 그렇게 멀쩡하진 않다 링크. 터네이셔스 D랑 엮이면 이상해진다. 푸 파이터스 뮤직비디오에도 터네이셔스 D가 몇 번 출연했는데 그럴 때마다 좀 이상한 장면을 연출해낸다. low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그냥 잭이랑 데이브 그롤 단둘이서 웬 모텔 방에 들어가 미친 짓을 하며 온갖 기행을 벌이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내용도 있다.[16]


  • 2012년 12월, 마치 너바나의 재결합을 연상시키는, 너바나의 베이시스트였던 크리스 노보셀릭과 세컨 기타리스트였던 (그리고 지금 푸 파이터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팻 스미어와, 폴 매카트니의 프로젝트 그룹 무대가 꾸며졌다. 2012년 12월 12일, 허리케인 샌디의 피해자를 위한 자선콘서트 "The Concert for the Sandy Relief"에 등장하여, 그롤은 드럼을 쳤다. 곡은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Sound City의 트랙 "Cut me some slack".

  • 딸 부자이다. 바이올렛은 공연에서 다른 가수들의 곡을 커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고, 하퍼는 공연에서 의 we will rock you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2014년 4월에는 너바나의 멤버로서 커트 코베인, 크리스 노보셀릭과 함께 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

  •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추모공연에 등장하여 비틀즈의 'Black bird'를 기타 연주로 불렀다. 생전의 커트 코베인과 마찬가지로 그롤도 비틀즈의 광팬이다.

  • 2021년 기준 11살의 딸이 있다고 하는데, 그 딸이 라나 델 레이 팬이라 음반을 사주고 SNS에 자랑을 했다고. 2021년에는 딸과 함께 싱글도 냈다!


  • 푸 파이터스 이외에도 프로젝트 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밴드로는 슈퍼그룹 '뎀 크루키드 벌처스'[17]가 있다

  • 사용하는 기타는 깁슨사의 세미 할로우 기타인 ES-335의 Trini Lopez 시그니춰 모델을 일부 변경한 데이브의 시그네쳐인 DG-335를 쓴다. 파란색과 검은색 두 가지가 있는데, 주로 파란색을 쓰며, 검은색은 D드랍 튜닝을 해야 하는 곡에 쓴다. 이외에 황토색 모델도 존재하는 듯하다.

  • 최근에 청력 문제와 귀울림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소음이 있는 식당에서는 사람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 입술을 보며 말을 해석하는 게 20년 째라고 한다. 대부분의 록 음악가들, 특히 드러머는 엄청난 소음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난청을 얻기 쉬운 편이다. 그런 상황에 처했음에도 여전히 라이브에서 관중들과의 소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보호 장구를 착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어 팬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 가장 존경하는 드러머는 존 본햄이다. 팔뚝과 손목에 그를 상징하는 심볼을 문신했다.

파일:8e7b8cf3045def309b2a1aa1cdea6fa7.jpg

  • 톰 페티의 밴드 하트브레이커스의 드러머 스탠 린치가 1994년 밴드를 떠나고 나서, SNL에 출연 예정이었던 하트브레이커스의 드러머 자리를 제안받아 충실히 수행한 바 있다. 위의 영상에서는 를 연주하는 중. 드럼 사운드가 시작될 때 기타리스트 마이크 캠벨(빨간색 ES-335를 연주하는 사람)의 표정이 흥미롭다.
여담으로 이후 하트브레이커스의 드러머 자리는 스티브 페론(Steve Ferrone)이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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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조쉬 하미, 레드 제플린존 폴 존스와 함께 결성했던 슈퍼 밴드이다.[2] 너바나와 푸 파이터스 모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데이브 그롤은 이중 헌액자가 되었으며 두 번의 헌액 모두 첫 해 헌액이다.[3] James Harper Grohl. 참고로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정치전문 저널리스트였다고 하며, 데이브 그롤에게 "니가 음악활동을 하며 받는 그 체크(수표)가 마지막 수입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해라!" 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데이브 그롤은 그 이후로도 그 충고를 명심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4] 독일, 아일랜드, 슬로바키아 혈통이다.[5] 하지만 제대로된 드럼레슨은 받아본적은 없고, 주로 그룹 Rush의 드러머 닐 퍼트와 레드제플린의 존 본햄의 드러밍을 주로 들으며 자신의 드러밍 스킬을 발전시켰다고 한다.[6] 너바나 드러머였을때도 라이브에서 코러스를 했고(Polly나 On A Plain 등에서), 언플러그드 라이브 Jesus Doesn't Want Me for a Sunbeam 이란 곡에서 크리스가 아코디언을 연주할때 베이스를 쳤다.[7] 사족으로 영어권에서 쓰는 표현 중 공연 등에서 퍼포먼스를 잘 하기를 기원하는 말인 Break a leg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대충 '대박 나는 투어'라는 의미인데 이걸 그롤의 상황에 대입시켜보면 진짜로 다리도 부러지고 공연도 끝내주게 한 셈이다.[8] 너바나 멤버들(특히, 커트 코베인)은 건스 앤 로지즈 멤버들과 앙숙으로 유명했지만 아마 같이 나이를 먹어가며 화해를 한 모양이다... 액슬이 말하길 '내 절친한 친구가 빌려줬다' 라고 표현할 정도...;; 그리고 얼마 뒤 액슬과 슬래시재결합하게 된다. 그리고 데이브 그롤은 재결합한 건즈 앤 로지즈 공연에 초대받아서 같이 공연도 하였다.[9] 2013년 러시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당시의 협연이다. 여담으로 데이브 그롤은 러시의 멤버들을 매우 존경한다.[10] 웬만한 록 덕후들은 알겠지만 러시의 곡 대부분의 모든 파트들은 엄청난 연주 난이도를 자랑하는 곡들이다.[11] 실제로 영화 터네이셔스 D의 비하인드 영상에서 어린 시절 데스메탈 음악을 좋아했다고 짧게 언급한다.[12] 리암 갤러거와는 17년도에 내한 공연도 했었다![13] 사실 비틀즈도 악보 읽을 줄 모르고, 에릭 클랩튼, 에디 밴 헤일런, 프레디 머큐리 등 여러 전설적인 록스타들이 악보를 잘 볼줄 모른다고 한다. 대중음악 뮤지션들은 악보를 끄적이기보다는 바로 악기를 통해 감을 잡아 작곡을 하기 때문에, 못 읽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음악을 클래식으로 시작하였던 딥 퍼플 멤버들이나 제대로된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드림 씨어터들은 예외다.[14] 푸 파이터스 멤버들은 록 뮤지션치곤 관리가 상당히 잘되어 있는 편인데, 그 이유는 본인들 세대 뮤지션들 절반 이상이 자기 관리를 못해서 망가진 케이스다. 아무리 저항 정신인 록 음악을 한다해도 가족들도 있고 오랫동안 음악을 하고 싶으면 몸관리는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앨범 작업 기간 때는 늘 바베큐로 식사를 한다는 말을 보면 식사 자체를 제대로 챙겨 먹고있다고 볼 수 있다.[15] 매우 큰 저택에 살고있을 만큼 큰돈을 버는 환경인데도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는 것을 보면 가난했던 시절 때 자주 먹던 메뉴다 보니 매우 익숙해져있는 모양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재임기간 동안 어린 시절에 즐겨 먹던 햄버거를 비롯한 패스트푸드를 즐겼다고 하니, 특이한 사례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6] 실제로 데이브 그롤은 터네이셔스 D의 데뷔 앨범과 2012년 앨범 'Rise of the Fenix'에서 드럼을 연주했으며, 2010년 터네이셔스 D의 블리즈콘 라이브에서는 드러머로 참여해 전곡을 연주했다.[17] Queens of the Stone Age의 조쉬 하미가 기타/보컬에, 본인이 드럼, 레드 제플린의 존 폴 존스가 베이스/다른 모든 악기에 있으니 정말 말 그대로 슈퍼그룹이다. 같이 공식 석상에 많이 안 올랐어서 그렇지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고 함께 잼을 많이 했다고. 라이브를 보면 얼마나 이 셋의 호흡이 정말 찰떡같은지를 알 수 있다. 너바나와 푸 파이터스와 비교해 훨씬 더 테크니컬하고 드럼 셋을 폭넓게 사용하는 플레이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