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머스테인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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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가데스의 리더, 기타리스트 겸 보컬.
1.1. 개요
1.2. 일생 및 음악활동
1.3. 연주 및 장비
1.4. 트리비아
2. 웨스턴 샷건의 등장인물




1. 메가데스의 리더, 기타리스트 겸 보컬.


David Scott Must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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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청년 시절 사진으로 보이는 거칠고 똘끼 충만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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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애아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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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아저씨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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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사진

1.1. 개요


미국 헤비메탈 밴드 메가데스의 작사/작곡자 리드보컬 겸 기타리스트이다. 메가데스 결성전에는 메탈리카 기타리스트였다.

1.2. 일생 및 음악활동


데이브는 1961년 9월 13일 캘리포니아 라메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2명의 누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데이브와 어머니 누나들은 술주정뱅이인 그의 아버지를 피해다니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데이브는 13살때인 1974년 기타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고, 16살때 작곡을 시작하였다.[1] 1979년부터는 'Panic'이라는 밴드에 가입해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Panic 시절에 만든 Jump in The Fire, Mechanix[2], Phantom Lord, Metal Militia는 훗날 메탈리카 1집에 수록되게 된다. 한편, Panic 멤버들에게서 술, 담배, 마리화나를 접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1981년 데이브는 Panic을 그만두고 메탈리카에 멤버로 가입해서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약한다. 머스테인은 클리프 버튼이 밴드의 가입을 한 차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밴드에 있으면 밴드는 분명히 음악적으로 한 단계 상승할 것이다. 밴드의 근거지를 옮겨서라도 그를 밴드에 가입시켜야 한다."면서 마지막까지 클리프 버튼을 추천한 멤버였다고 한다. 제임스 헷필드는 밴드의 원 베이시스트이자 매니저인 론 맥고브니와 같은 룸메이트인데다 친구여서 처음에는 라스와 데이브의 주장을 반대했다고. 클리프 버튼이 밴드에 들어왔을 때 머스테인은 버튼이 자신의 음악성을 인정해 줄 것이라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입한 버튼은 "화성학도 모르면서 무슨 밴드의 리드 작곡가냐"라며 그의 음악을 혹평했다고 한다.[3] 그래도 멤버들 중 유일하게 음악을 정식적으로 배운 사람이기에 못 들은 척 넘어갔다고. 또한, 이 시기 자신의 성격이 점점 광폭해지고[4] 알콜 중독이 말로 설득해서 치료되지 않을 수준으로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밴드의 별명이 알콜리카였을 정도로 밴드 내에 알콜 중독이 만연한 분위기였기에[5]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머스테인은 뉴욕에 위치한 녹음실에서 1집 <Kill 'Em All> 녹음을 하기로 한지 딱 1달 전인[6] 1983년 4월 11일 알콜 중독과 행실 불량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한다. 메탈리카의 다른 멤버들은 데이브 머스테인을 추방하기 전날 밤, 머스테인을 술에 만취하게 한뒤 그의 고향으로 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에 강제로 실어서 내보냈다고 한다.[7] 아침에 술에서 깬 머스테인은 자신이 갑자기 버스 휴게소에 앉아있다는 것에 놀라서 밴드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라스 울리히에게 "너는 밴드에서 해고당했다.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절망감과 분노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면서 휴게소 냅킨에다가 뭔가를 끄적거렸는데 이것이 훗날 메가데스 3집에 실린 Set The World A Fire의 가사가 된다. 참고로 머스테인은 돈이 없어서 버스 휴게소에서 고향 집까지 20블록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고 한다. 훗날 머스테인은 메탈리카에서 해고된 이후 긴 시간동안 메탈리카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인터뷰 1(자막 있음).[8]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인터뷰 2(자막 없음).[9]
데이브의 해고는 이미 징조가 있었다. 해고당하기 전년도이자 데이브가 메탈리카로서 활동한 1982년 내내 그는 알콜과 마약에 절어 있었고, 알콜리카로 유명한 멤버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중독 증상과 성격 문제가 심각했다. 다른 멤버들과 말싸움을 하는 것은 예사요, 수틀리면 잘못이 어느 쪽에 있든 주먹부터 내질러 댔다. 단순히 멤버들의 파워게임 결과 잘린 것이라고 하기엔 뭐한게, 당시 매니저와 스태프들도 데이브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연습실에 개를 데려오곤 했는데, 한 번은 개가 론의 차 위로 올라가 칠을 다 긁어 놓았다. 화가 난 제임스는 개를 걷어찼고, 데이브는 곧바로 제임스와 론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날리며 그들을 감싸는 라스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다. 이 일로 데이브는 해고되었다가 다음 날 사과하고 간신히 밴드에 복귀하였다. 82년 내내 론을 구박하고 괴롭혔으며, 12월에는 만취한 채로 그의 베이스 기타에 맥주 한 캔을 통째로 부으며 그의 실력을 모욕해 론을 자진탈퇴하게 만든 전적도 있었다. 데이브 머스테인은 "경고도 안 주고 이렇게 쫓아내는 게 어딨냐"고 서러워했지만 본인의 감상일 뿐 사실 이치에 맞는 변명은 아니었다.
밴드에서 해고된 이후, 머스테인은 세션 기타리스트로 일하면서 캘리포니아의 한 싸구려 아파트에서 폐인으로 살아간다. 이 당시 그는 1집 <Kill Em All>의 대다수 곡들에 작곡자로 표기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사람들이 메탈리카에 대한 것을 물어봐도 메탈리카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거나 듣지 않고 묵묵히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1983년의 어느 날, 술에 취해 자고 있던 머스테인은 아랫층에 사는 베이시스트 데이빗 엘렙슨이 시끄럽게 베이스를 연주하는 소리에 깨어나서 화가 난 채로 엘렙슨에게 시끄럽다며 소리를 지르며 따졌고[10] 그는 머스테인의 집으로 찾아가서 미안하다며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건냈다. 머스테인은 그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클리프 버튼처럼 뛰어난 연주를 하는 베이시스트가 또 있었구나 하고 놀라워하며 데이빗 엘렙슨에게 밴드 결성을 제의하였다. 메가데스의 시작이었다.
1985년, 메가데스의 1집이 발매되자 메탈리카의 멤버들은 라디오 공개 인터뷰에서 "머스테인은 밴드 멤버들에게 망언을 많이 하고 다녔다, 우리들은 그를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품어갈려고 했지만 그는 항상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기에 그를 해고할 수 밖에 없었다."며 머스테인을 비난했고 그 모습을 본 머스테인은 마음을 고쳐먹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음악성을 알리기 위해 라이브에서 그 놈들(메탈리카)보다 훨씬 뛰어나게 연주하겠다"고 어필하기 시작했다. 또한 메탈리카 2집 타이틀 곡, Ride the Lightning의 코러스 리프와 같은 앨범에 수록된 The Call of Ktulu의 메인 리프는 자신이 메탈리카에서 해고당하기 직전 메탈리카 멤버들에게 들려준 미완성 곡을 메탈리카가 2집 작업 중에 편곡하여 수록한 것이고 메탈리카 3집에 수록된 Leper Messiah에서도 자신이 개발한 이른바 '스파이더 코드' 전개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곡의 크레딧에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메탈리카 측에서는 해당 곡들을 만들 때 머스테인은 이미 밴드에서 해고된지 오래였다며 머스테인의 주장은 억지라고 반박하였다. 그러자 머스테인은 메가데스 4집에서 그 미완성곡에 마티 프리드만과 즉흥적으로 고난이도의 속주 솔로를 덧붙여서 Hangar 18이라는 곡을 만들어 수록하였다. 7집에서는 메탈리카에 자신의 후임으로 들어온 커크 해밋이 만든 Enter Sandman의 리프를 꼬아서 Trust라는 곡도 만들었다.
머스테인은 메탈리카에서 굴욕적으로 해고당했음에도 그건 비즈니스적인 문제지, 속으로는 계속 친구요 형제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머스테인을 큰 슬픔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는데, 1986년 클리프 버튼이 밴드 투어 이동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듣게 되었다는 것. 멤버들은 클리프의 사망 소식을 데이브에게 전하지 않았으며, 그의 친구인 마리아 페레로[11]가 주워들은 뒤늦은 소식을 전해받았다고 한다. 클리프는 메탈리카에 늦게 들어와 상대적으로 데이브 문제에 중립적이었으며, 머스테인의 방출 뒤에도 가끔 대화에 응할 만큼 원만한 관계였다고 한다. 아래 인용문은 이에 대한 데이브의 인터뷰.

(3집 수록곡 In My Darkest Hour에 대해) 클리프의 부고를 듣고 쓴 곡이다. 내 친구인 마리아 페레로가 전화해 클리프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해줬다. 난 이것을 사적인 문제로 받아들였다.[12]

"야 이 개새끼들아, 우린 한 밴드에 속했던 형제들인데, 형제의 사망 소식을 제3자한테 전해들어야 하는 거냐?" 이제 생각해보면 사람은 화가 나면 이상한 짓을 하는 거 같다. 난 전화해준 마리아에게 성질을 부렸는데, 그 당시 나는 정말, 정말로 화가 나서, 앉은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곡 하나를 쓰고 가사를 완성해버렸다. 그 곡을 쓰면서 정말 고통스러웠다.

클리프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해 본 것은 공연장이었는데, 메탈리카 멤버들은 아직 나한테 위협당한다 느꼈는지 백스테이지 패스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겁쟁이들 같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야 (멤버들을) 볼 수 있었고, 공연 끝나고 하는 파티에는 부르더라. 난 그런 파티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놀고 싶은 거였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우린 친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In My Darkest Hours의) 첫 공연 때 클리프의 부모님이 공연을 보러 오셨다. 그 곡을 연주하는 것 자체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분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중략) 난 클리프와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받지 못했고, 클리프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천국에서 만날테니 괜찮다. 최소한 그렇게 믿고 있다.

-'15곡으로 말하는 내 인생'이라는 주제로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 중에서

2006년까지도 메탈리카를 까고 다녔고 Mechanix를 연주할 때 시작 전에 엿을 먹이기도 했다. 2006년 Mechanix 라이브 영상 2000년대 후반부터 감정이 좀 누그러들었는지 '젊은 시절 메탈리카에 대한 원한이 아직까지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하기도 하고 4대 스래쉬 메탈밴드 합동 공연인 'The Big 4' 공연을 하기도 했다.
메가데스 활동에서도 마약 중독으로 멤버 불화, 활동 중단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메탈리카. 슬레이어, 앤스랙스와 더불어 세계적인 4대 스래쉬 메탈 밴드로 추종받으며 메탈리카 다음으로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누렸다. 그러나 2002년에 데이브 머스테인이 왼팔 신경이 압박을 받아서 마비가 오는,[13] 기타리스트로서는 절체 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2002년에 메가데스를 잠시 해체 하였다. 당시 그의 왼팔은 물건을 들어올리기는 커녕 왼손으로 주먹을 쥐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포기 하지 않고 재활 치료를 시작하였고 마침내 2004년, 재활 치료를 끝내고 메가데스를 재결성 하였다. 이후 메가데스는 계속 활동을 하고있다.
2009년 메탈리카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에 이름이 오르지 못했는데, 여기에 대해 “난 메탈리카의 첫 두 음반에 무수히 많은 곡을 써내며 그들의 커리어 시작에 확실히 기여했다. 메탈리카는 올랐는데 데이브 머스테인이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노래 듣는 헤드폰에 쇼트가 난 것이 분명하다. (중략) 아니, 아직 아니다. 언젠가 반드시 나도 오를 거라 확신한다. 난 조급해하지 않는다.”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메가데스는 26년동안 12번 노미네이트된 끝에 이 해에 열린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부문에서 수상을 해냈다.#
2010년에 성대에 종양이 생겨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앞으로 보컬을 하는데 치명적일 것이라고 했으며 실제로 2009년에 비해 보컬 역량이 빠르게 쇠퇴하였다. 2015년에 척추 수술을 받은 후에는 더욱 쇠퇴해 제임스 헷필드 보다도 보컬 역량이 쇠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보컬을 도맡아 하고 있다. 메탈리카의 제임스 햇필드에 비해서 목 관리는 잘 했는데 데이브도 이제 2016년 기준으로 만 54세. 당연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리 없다. 팬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새로운 보컬을 찾아야 한다는 등의 발언도 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이제 더 이상 커버해 줄 목소리도 안나오는 것 같다...
2011년 메탈리카 30주년 공연 참여, 2012년 빅4 콘서트 등을 통해 메탈리카 멤버들과 관계가 개선된 후 데이브는 자신의 옛 동료들과 함께 음반작업을 제안했다. 메탈리카의 보컬리스트 제임스 헷필드, 드러머 라스 울리히, 그리고 메가데스의 데이브와 베이시스트 데이빗 엘렙슨 구성으로 작업을 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성사되었다면 올드스쿨 메탈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기념비적인 음반이 나올 수도 있었겠으나 메탈리카 측에서 화답하지 않으면서 없던 일이 됐다.
2017년 10월, 트위터로 들어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이전 몇 달간 벌레에 물려 걸린 라임병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2019년 6월, 최근 후두암에 걸린 사실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렸다. 본인 언급으로는 완치확률을 90%까지 높이는 쪽으로 자신의 주치의와 계획을 세우고 항암치료에 들어갔다고 한다. 다만 항암치료로 인해 향후의 2019년 투어는 모두 취소되어 팬들과 멤버들에게 미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14]
그리고 얼마뒤 메가데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 Thank you 라는 제목의 짧은 멘트 영상을 올리며 자신은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고, 지금껏 나를 지지해준 가족과 친구들, 전세계의 팬들에게 감사하며 우리는 함께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 스스로와 모두에게 격려의 인사를 표했다.

1.3. 연주 및 장비


메가데스의 거의 모든 곡을 본인이 만들고 노래도 부르면서 기타 솔로도 연주한다.
보컬로서는 메탈 보컬리스트하면 생각나는 시원하게 질러대는 보컬과는 거리가 멀지만 특유의 씹어 뱉는듯 읊조리는 보컬은 시니컬한 가사와 어울려 메가데스만의 개성이라 할만하며, 여기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메탈계의 음유시인 일반적인 시각에서 노래를 잘부른다고 할 수 있는 보컬은 아니긴 하다. 제임스 헷필드의 경우와 비슷하게 처음부터 노래까지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보컬을 영입하려 했으나, 적당한 사람을 구할 수 없어서 결국 자신이 보컬까지 겸하게 된 경우.
기타리스트로도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복잡하고 빠른 리프를 치면서 노래까지 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보통 보컬 겸 기타리스트는 리듬기타를 맡고 기타 솔로처럼 기타리스트가 부각되는 부분은 리드기타에게 주거나 같이 연주하는 편인데 머스테인같은 경우에는 상당한 양의 솔로도 자신이 연주한다. 사실상 메가데스에는 2명의 리드 기타리스트가 있는 셈.
메탈리카 시절과 메가데스 초기에는 B.C. Rich의 Perfect 시리즈를 이용하였다. 이후 잭슨 기타를 사용했고 잠시 ESP에서 시그네쳐가 나온 적이 있으며, 현재는 의 엔도서다. 위 사진에서 연주하는 기타가 딘에서 나온 데이브 머스테인 시그니쳐 모델인 VMNT 시리즈이며, 그중 'ANGEL OF DETH' 모델이다. 자신의 시그니처 픽업인 시무어 던컨의 액티브 픽업 '라이브 와이어'가 달려있는데, 이 픽업은 액티브이면서 패시브의 사운드에 가깝게 만들어져서 액티브 픽업의 대명사인 EMG와는 소리가 꽤 다르다.
헤비 셰이프 기타를 특별히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이다. 그중에서도 플라잉브이 스타일을 가장 좋아하여 현재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기타가 V 셰잎이다. V 기타만 사용하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좋아했던 마이클 쉥커의 영향이라 한다. 딘의 데이브 머스테인 시그니처 기타는 V 쉐입과 익스플로러 쉐잎 2종류가 나오고 있다.

1.4. 트리비아


  • 1988년 판테라의 다임백 대럴을 영입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니 폴까지 데려가야 한다고 해서 실패. 비니 폴이 싫었던 게 아니라 드러머 닉 멘자를 먼저 영입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
  • 1991년 Pamela Anne Casselberry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자녀로 아들 저스티스와 딸 일렉트라가 있다. 촌티 팍나는 작명센스 딸인 일렉트라는 모델 겸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다. 일렉트라 머스테인이 부르는 A Tout le Monde.

  • 바디가 큰 기타를 주로 사용하고 연주하거나 노래부를 때 구부정하게 자세를 잡을 때가 많아 약간 왜소해 보이지만 실제로 만나 보면 체격도 좋고 키도 크다.(프로필 상 183cm)
  • 메가데스에 소속했던 기타리스트들은 대부분 머스데인의 성격 때문에 자발적으로 탈퇴하거나 해고된 경우가 많다. 머스테인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취미에 '새로운 기타리스트한테 메가데스 곡 가르치기'라는 말을 하지만 들어오는 사람들의 실력이 다들 괴물급이다. 메가데스 최악의 기타리스트라는 말을 듣는 제프 영도 오디션 때 Peace Sells... But Who's Buying? 앨범에서 크리스 폴란드의 솔로를 귀로 듣고 30분만에 완벽하게 그려서 머스테인에게 보여주었다. 다만 마티 프리드먼이 들어오고 4집 앨범인 'Rust in Peace' 앨범 이후에는 머스테인이 아닌 리드 기타리스트의 입김이 강해졌다.
  • 한국 메탈 커뮤니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여러가지 망언과 흉폭한 행동으로 악명이 높다. 과거에는 메가데스 곡에 나타난 정치, 종교,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가사들 때문에 머스테인은 의식있는 모두까기 독설가로 포장되었고 2001년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그나마 자신이 하는 말에 조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독교 우파 계열, 그것도 뉴 월드 오더같은 음모론을 믿는 기독교로 개종해서인지 음모론을 신봉하거나 "오바마는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나 "릭 샌토럼은 최고의 공화정 입후보자이다"라는 극우적인 발언이나 "나는 동성혼을 지지하지 않는다" 같은 성차별적 발언까지 한 것을 보면...아무말 대잔치하는 것에 가까운 모습이다. 아들딸도 있는 양반이...이 양반이랑 비슷하다. 2015년 11월 호주 브리스번 공연에 문제가 있었던 것에 대해 기타 테크니션의 잘못으로 몰면서 그에게 '그 새끼는 완전 인성이 쓰레기구만!', '다시는 그놈의 빌어먹을 엉덩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등의 욕설을 퍼부었고 공연 직후 그를 해고했다. 이것이 논란이 되자 머스테인은 '기타 테크니션에게 사과하진 않겠지만, 용서는 하겠다.'라는 발언을 했다. 네? 뭐라고요? '이 양반 아직 팔팔하구만'이라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그리고 2016년 2월 페라스코프에 올라온 투어에 사용될 장비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나를 증오하는 놈들은 이거나 받으시지.'라면서 미들핑거를 날려서 또 구설수에 올랐다. 또한 글렌 드로버가 기타로 재직하던 시절 공연도중 자신의 인 이어 모니터(In-ear monitor)의 오작동에 크게 분노하여 FlyingV를 테크가 있는 쪽으로 던져버렸다. 글렌 드로버가 맞지 않은게 다행일 정도로 힘껏 던졌고 자연스럽게 던지는 폼을 봐서는 한두번 해본 솜씨는 아닌듯...영상[15]
  • 비록 언행이 난폭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최소한 예의는 있다. 기본적으로 메가데스 밴드와 멤버를 아껴주는 팬들과 어린이들[16]에게는 기본적인 예의를 다하고 상상 외로 친절하며[17] 고인드립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이가 틀어진 후라도 전 멤버가 사망하면 공연에서 항상 추도사를 읊으며 그립다는 말은 반드시 해준다. 특히 닉 멘자 사망 후 뉴욕 공연 도중 펑펑 울면서 보컬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링크
  • 그는 2003년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2007년 10월 서울에서 메가데스 멤버와 더불어 세계 태권도 연맹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 2014년 10월 4일, 샌디에이고에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장모가 실종됐다고 한다. 기자회견까지 열며 간절히 찾기 바라고 있지만, 20일이 지나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결국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장모 실종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머스테인이 멤버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등 밴드관리를 소홀히 하여 크리스 브로드릭과 숀 드로버의 탈퇴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 2011년부터 시라 포도농장을 만들어 14년 초 와인 사업을 런칭했다. 이름은 Mustaine Vineyards. 제품 이름은 6집 수록곡에서 따온 Blood Of Heroes(...)라고. 머스테인 병기창 재정수입사업
  • 머스테인은 the drew carey show라는 시트콤에 까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다. 영상
  • 마티 프리드먼 하고는 애증의 관계인듯.클리프 버튼 사후 데이브 최애캐 마티도 메가데스 탈퇴후 직접적으로 머스테인을 향해 욕한 적은 없지만[18] 머스테인도 그가 탈퇴한 이후로 한번도 그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한적도 없다.[19] 오히려 '그는 예전과 같은 헤비메탈을 권유하자 반발하여 밴드를 떠났다'라고 하며 아쉬워 했다. 그리고 심지어 메가데스 재결합때도 그에게 같이하자고 권유했을 정도니...물론 마티가 거절했지만, 그 이후에도 밴드내에서 머스테인과 함께하던 기타리스트가 탈퇴해서 공석이 생기면 계속 들어오라고 조르는 듯. 일본에서 라우드 파크 2015때 촬영했던 마티 프리드먼, 제프 루미스, 마이클 아모트의 3자 대면 인터뷰에서 마티가 밝히길 2015년 Dystopia 앨범 발매전에도 공석이 된 기타리스트를 구하기 위해 머스테인이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이 마티였다고...[20] 이상하게 마티하고 섞이면 성격이 서로 뒤바뀌는 듯
  • 위의 마티와의 관계처럼 머스테인 자신이 실력을 인정하거나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메탈리카 시절 클리프 버튼이 "화성학 기본도 모르는 놈이 무슨 기타리스트야!!"고 깠음에도 별소리 하지 않았으며, 손목부상을 치료하고 밴드를 다시 꾸릴 때 닉 멘자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파일:attachment/미카 하키넨/128771987364355126.jpg
  • 7현 기타를 매우 싫어한다. 7현 기타가 전통적인 스래쉬메탈 악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7현, 8현 기타 유저였던 크리스 브로드릭에게 6현으로 갈아탈 것을 요구했다.
  • 올드스쿨 메탈 계보에 속하는 음악을 하다보니 뉴메탈, 얼터너티브, 그런지 뮤지션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솔로 연주도 안하는 녀석들이 무슨 기타리스트냐?", "뉴메탈을 듣느니 차라리 내 눈꺼풀을 뽑아버리겠다.[21]" 등 막말을 뿌리기도 했다.
  • 패션 센스가 좋다. 주로 검은색 도배를 하는 메탈리카와 달리 자신의 큰 키와 체격에 어울리는 청바지+운동화 조합을 잘 활용한다.
  • 잘 안 알려진 내용으로 건즈 앤 로지즈 공연중 무대에 올라갔다가 진행 요원들에 의해 쫓겨난 사례가 있다...80년대 당시 음악잡지에도 짧게 기사화 됐었던 사건. 영상
  • 스카이다이빙 매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아들이 태어난 후 약물을 끊어야겠다는 일념하에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했는데 마약보다 더 짜릿한 걸 해 보라는 의사의 권유로 스카이다이빙을 시작했다고 한다. Rust in Peace의 Holy Wars... The Punishment Due 뮤직비디오에서 스카이다이빙하는 장면이 나오며, 5집 앨범 Countdown to Extinction에 수록된 High speed dirt는 데이브 머스테인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던 중 높은 고도에서 지상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다.
  • 19년 6월, 인후암을 진단 받았다. 생명에 지장은 없고, 원활한 치료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9년 말 암이 호전되어 콘서트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2. 웨스턴 샷건의 등장인물


군부의 친 우드맥파의 수장인 더스티 스프링필드 중장의 직속.
반 우드맥파의 수장인 데이빗 보위가 군의 실권을 잡자 스프링필드 중장의 명령을 받고 우드맥가의 호위부대를 맡게된다.
우드맥가의 장녀인 제니스 우드맥에게 홀딱 빠져있는 상태.[22]
오아시스와의 전쟁에서는 마크 발렌타인의 부대에 합류하여 파라독스 전투에 참여하게된다. 이 상황을 알리며 제니스에게 돌아오면 정식으로 프러포즈 하겠습니다.라며 사망플래그를 찍었다.[23] 전쟁종료 후에는 다시 우드맥가로 돌아와 남자가 모두 빠진 집안의 힘쓰는 일을 돕지만, 정작 제니스는 끈질긴 남자는 질색인데...라며 한숨을 쉬고있다.

[1] Jump in The Fire라는 곡으로 훗날 메탈리카 1집에 수록되었다. 참고로 본래 가사는 자위행위에 관한 것이었다고(...).[2] Mechanix의 가사는 주유소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상상하는 내용이었는데 데이브 탈퇴 후, 묵시록의 4기사에 대한 내용으로 가사를 바꾸어서 The Four Horsemen이라는 제목으로 메탈리카 1집에 수록되었다. 초기 데모 테이프인 No Life 'Til Leather에서 Mechanix라는 제목으로 오리지널 데모 버전이 수록되었다.[3] 머스테인은 2000년대 들어서야 왼팔의 재활을 담당한 지도사에게 화성학을 처음 제대로 배웠다고 하니 그때까지 했던 작곡은 음악적 이론에 기반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감각에 더 크게 의존하여 작곡을 한 것들이다.[4] 데이브 머스테인은 알콜 중독 문제 외에도 관객이나 다른 사람들이 메탈리카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하면 다짜고짜 달려드는 등 호전적인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5] 데이브의 회고에 의하면 밴드 멤버들은 하루에 평균 맥주 8박스를 해치웠다고 한다.[6] 메탈리카 1집의 녹음은 1983년 5월 10일에서 5월 27일까지 진행되었다.[7] 메탈리카는 녹음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뉴욕에 도착해서 대기 중인 상태였다.[8] 하루아침에 쫒겨나 전세계 메탈 팬들로부터 루저 소리나 듣게 된 2인자로서 평생을 살아온 열등감이 서려있다.[9] 자신의 광폭했던 성격과 알콜 중독이 말로 설득해서 치료되지 않을 수준이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왜 자신이 가족같이 여기고 함께 꿈을 꾸던 제임스와 라스가 하루 아침에, 두번째 기회도, 사전 경고도 없이 그를 다짜고짜 쫒아내고 메탈리카의 역사에서 영원히 제명해버렸는지에 대한 끝없는 상실감과 배신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10] 이때 데이브는 창문을 통해 화분을 던졌다고한다.[11] 메탈리카의 1집을 함께한 인디 레이블 메가포스 레코드의 홍보 담당자였다.[12] 흔한 업계 부고 소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13] 만취한 상태로 의자에 거의 누운채 기대어 잠이 들었는데 하필이면, 팔을 깔아 뭉개는 자세로 잠이 들어서 팔에 피가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14] 본래 항암치료는 조금이라도 젊으면 경우에 따라 다소 강한 항암제를 투여하여 그 부작용이 강하게 오는 경우가 많다.[15] 유투버들은 마침 연주곡이 The System Has Failed 앨범의 수록곡이라서 The System Has Failed라고 비꼰다. 그리고 FlyingV가 드디어 flying한다고 놀리는 댓글도 있다.[16] 공연도중에 인파에 떠밀려오는 아이를 스테이지 위로 건져주기도 했다. 메탈이나 펑크 공연장에 어린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다. 밀고 들어오는 것은 기본이고 슬램이나 머슁 등 춤사위가 벌어질 때는 건장한 성인들도 부대낄만한 상황이 연출된다.[17] 한 이슬람교도 팬이 그에게 라마단 기간 인사를 남겨달라고 트윗으로 요청하자 5분만에 그렇게 했다. 트위터 링크[18] 마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친 메탈 뮤지션들과는 달리 성격이 유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장난식을 제외하면 남을 비난하는 인터뷰는 한적이 없다.[19] 데이브가 메가데스 전 멤버들과 '주니어'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앨럽슨 조차도 방송에서 까던걸 생각해보자.[20] 어찌 이렇게 대화가 흘러갔냐면 제프 루미스가 예전에 메가데스 기타리스트 공고 모집을 할때 오디션을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말하자, (정확히 말하면 당시 너무 어려서 그냥 돌려보낸것) 마티가 반응한 것이다.[21] I'd Rather Have My Eyelids Pulled Out Than Listen to Nu Metal[22] 호위부대 전원이 홀딱 반했다.[23] 제니스는 웃으며 배웅해줬지만, 어머니가 '데이브씨가 네 취향이었니?'라는 말에 '전혀요'라며 즉답으로 돌직구를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