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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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Disc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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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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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로큰롤 명예의 전당 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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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1996년
후보자격 연도
1992년
후보선정 연도
1992년, 1996년


파일:songwriters-hall-of-fame-logo_770_441_90_s.jpg 작곡가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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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

입성 연도
2005년 출처 참조




























역대 새턴상 시상식
파일:saturn-award.png
영화 남우주연상
제3회
(1974/75년)


제4회
(1976년)


제5회
(1977년)

제임스 칸 / 돈 존슨
(롤러볼) / (소년과 개)

데이비드 보위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조지 번즈
(오, 하느님!)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


파일:데이비드 보위.jpg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
David Robert Jones[1]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2]
출생
1947년 1월 8일[3]
잉글랜드 런던 브릭스턴
사망
2016년 1월 10일 (향년 69세)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직업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배우
서명
파일:데이비드 보위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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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라벤스 우드 스쿨 졸업
버클리 음악대학 명예 박사
장르
아트 록, 글램 록, , 블루 아이드 소울, 일렉트로닉, 익스페리멘탈 록, 디스코
활동 기간
1962년 – 2016년
신체
178cm, 43kg[1]
데뷔
싱글 1964년 6월 5일 <Liza Jane>
앨범 1967년 6월 1일 <David Bowie>
혈통
아일랜드계 영국인, 웨일스계 영국인
종교
무종교[2]
부모
아버지 헤이우드 스텐턴 존스 (1912~1969)
어머니 마가렛 메리 존스 (1913~2011)
배우자
안젤라 보위 (1970년 결혼 ~1980년 이혼)
이만 압둘마지드 (1992년 결혼)
자녀
덩컨 존스 (1971년~)
알렉산드리아 자라 존스 (2000년~)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특징
4. 보위에 대한 말들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5.2. 라이브 앨범
5.3. 컴필레이션 앨범
5.4. 대표곡
6. 음악 스타일
7. 영향력
8. 음악계의 친분
9. 톰 소령
11. 기타



1. 개요[편집]



파일:데이비드 보위 컬러.jpg


보위의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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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ziggy stardust.jpg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 (1973)
파일:aladdin sane.jpg
알라딘 세인(Aladdin Sane) (1973)
파일:halloween jack.jpg
핼러윈 잭(Halloween Jack) (1974)
파일:The Thin White Duke.jpg
씬 화이트 듀크(The Thin White Duke) (1975-1976)



The Greatest Rock Star Ever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스타"

롤링 스톤[4]


영국 출신의 음악가, 배우.


2. 특징[편집]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위대한 뮤지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그는 글램 록의 대부, 변신의 귀재, 페르소나[5] 및 록 아이콘의 표본으로, 퍼포먼스, , 패션 등에 지대한 영향을 준 뮤지션이다.

BBC의 여론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로 선정됐다. 이 조사는 엔터테이너 영역 외에도 예술, 스포츠, 기타 부문에서도 조사를 했는데, 각각 파블로 피카소, 무하마드 알리, 넬슨 만델라 등이 뽑혔다.

음악계의 카멜레온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도전적인 실험에 주저하지 않았던 음악가로 포크 음악, 글램 록, 소울 음악, 익스페리멘탈 록, 펑크, , 디스코, 일렉트로니카, 재즈, 아트 록, 앰비언트, 뉴 웨이브, 하드 록, 테크노 등 대중적인 장르부터 마이너한 장르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장르의 음악들을 두루 섭렵하였다. 데이비드 보위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하면 바로 다양한 장르들을 끊임없이 발굴해내고 융화시켰다는 것으로, 당장 락 매니아들이 좋아 죽는 록 밴드인 벨벳 언더그라운드, 아케이드 파이어 등은 데이비드 보위가 발굴한 밴드들이다. 이처럼 데이비드 보위는 생소한 마이너 장르를 찾아내어 자신만의 독창성과 개성을 불어 넣었고 그 결과 대중성까지 획득했다.#

또 그는 자신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앞세워 파격적이고 매력적인 패션 스타일을 선보였고, 언제나 패션계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비단 패션계에서의 영향력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퍼포먼스, 쇼, 아이덴티티, 젠더 벤더 등 여러 분야에 영향력을 미쳤다.#

3.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데이비드 보위/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보위에 대한 말들[편집]


"대중 음악의 피카소"

BBC[6]


비틀즈 이후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

더 가디언[7]


20세기 대중음악, 예술, 문화에서 최고의 커리어 중 하나.

데일리 텔레그래프[8]


지금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 팝 아티스트

인디펜던트[9]


보위의 50년 경력은 끊임없는 진화, 눈부신 혁신, 그리고 지속적인 예술성의 하나이다. 그의 유산은 형식에 반하는 재능과 정의에 반하는 사람으로 지속된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10]


데이비드 보위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용감하고, 카리스마 있고, 멋지고, 섹시하고, 시각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진정으로 영감을 주었다. 그는 놀랍도록 훌륭한 작품을 창조했다, 그렇다, 그 많은 작품들과 그것은 매우 좋았다.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의 작품과 같은 흔적을 남긴 사람은 또 누구인가? 그 누구도 그와 같지 않다.

케이트 부시[11]


데이비드 보위는 영국에서 나온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예술가다.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는 그에게 영향을 받는 음악가들이 있다.

조니 마[12]


데이비드 보위가 없었다면 대중음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비[13]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 사람 중 한 명이다. 바로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데이비드 보위이다.

― 마이클 이비스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 창설자)[14]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코딩 예술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멍청한 질문이지만, 내가 단 하나의 결정적인 대답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것은 데이비드 보위다." 6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의 전성기 동안, 그는 매우 창의적이고, 매력적이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쓰여진 앨범들의 경이로운 연출을 발표했다. 그 기간 동안(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자신을 재발명했지만, 그가 만든 모든 것에 항상 공통의 표시를 남기며, 인상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통일된 백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다수의 현대 예술가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으며, 그의 클래식 앨범은 원래 발매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독특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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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bye, David Bowie. You are now among #heroes."

"Thank you for helping to bring down the #wall."

잘 가요, 데이비드 보위,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에요.

장벽허무는 걸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독일연방공화국 외무부 공식 트위터




5. 디스코그래피[편집]



5.1. 정규 앨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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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Disc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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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라이브 앨범[편집]


  • David Live (1974)
  • Stage (1978)
  • Ziggy Stardust: The Motion Picture (1983)
  • liveandwell.com (1999)
  • Glass Spider (2007)
  • Live Santa Monica '72 (2008)
  • VH1 Storytellers (2009)
  • A Reality Tour (2010)
  • Live at Nassau Coliseum '76 (2017)
  • Cracked Actor (Live Los Angeles '74) (2017)
  • Live in Berlin (1978) (2018)
  • Welcome to the Black Out (Live London '78) (2018)
  • Serious Moonlight (Live '83) (2018)
  • Glastonbury 2000 (2018)
  • Ouvrez le Chien (Live Dallas 95) (2020)
  • Something in the Air (Live Paris 99) (2020)
  • I'm Only Dancing (The Soul Tour 74) (2020)
  • No Tréndy Réchauffe (Live Birmingham 95) (2020)
  • Look At The Moon! (2021)
  • Live on Kit Kat Club (2021)


5.3.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 The World of David Bowie (1970)
  • Images 1966-1967 (1973)
  • Best Deluxe (1973)
  • In the Beginning Vol. 2 (1973)
  • Changesonebowie (1976)
  • Starting Point (1977)
  • Rock Concert (1979)
  • Chameleon (1979)
  • La Grande Storia Del Rock (1979)
  • Profile (1979)
  • The Best of Bowie (1980)
  • Another Face (1981)
  • Changestwobowie (1981)
  • Fashions (1982)
  • Bowie Rare (1982)
  • Superstar (1982)
  • Golden Years (1983)
  • A Second Face (1983)
  • Prime Cuts (1983)
  • Die Weisse Serie: Extra Ausgabe (1983)
  • Love You till Tuesday (1984)
  • Fame and Fashion (1984)
  • David Bowie: The Collection (1985)
  • Starman (1989)
  • Changesbowie (1990)
  • Rock Reflections (1990)
  • David Bowie (1990)
  • Early On (1964-1966) (1991)
  • The Singles Collection (1993)
  • The Gospel According to David Bowie (1993)
  • Rarestonebowie (1995)
  • London Boy (1996)
  • The Dream Anthology (1966-1968) (1997)
  • The Best of David Bowie (1969/1974) (1997)
  • The Best of David Bowie (1974/1979) (1998)
  • Rarest Series (1998)
  • Bowie at the Beeb (2000)
  • All Saints (2001)
  • Best of Bowie (2002)
  • Club Bowie (2003)
  • Musical Storyland (2003)
  • The Collection (2005)
  • The Best of David Bowie 1980/1987 (2007)
  • iSelect (2008)
  • Nothing Has Changed (2014)
  • Bowie Legacy (2016)


5.4. 대표곡[편집]


많은 앨범 수만큼이나 명곡도 수두룩하다.

1960-70년대

  • Space Oddity[15][16] - 첫 히트곡이자 어쩌면 보위의 시작과 끝을 말해주는 듯한 곡. 이 곡을 캐나다인 우주비행사가 지구로 귀환하기 전에 우주에서 직접 부르고 찍은 영상(!)도 있다. 링크 영화 그래비티 이후, 꼭 보라고 추천받는 영상이기도 하다.[17] 2016년 5월 2일에 공개된 콜 오브 듀티: 인피니트 워페어의 트레일러 영상에 커버 되어 삽입됐다. 그래서 최근 원곡의 뮤비 조회수도 덩달아 올라가는 중이라 카더라.
  • The Man Who Sold the World - 너바나MTV 언플러그드에서 커버한 버전이 더 유명하다. 이 곡을 Nirvana의 곡으로 아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을 정도. 도플갱어에 대한 주 내용 때문에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에서 오프닝/엔딩 곡[18]으로 등장한다. (작품 내 음악 카세트 테이프로도 얻을 수 있다)
  • Changes - 영화 '슈렉 2'에서 커버되어서 나온다.
  • Life on Mars? - 동명의 영국 드라마로 유명하다. 그 영드에서 1화에 이 음악이 나온다. 그리고 라이언 머피의 미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에서도 등장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로드가 추모 공연에서 부른 곡이기도 하며,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로 꼽히는 곡이기도 하다.
  • Starman - 한국에서 자우림쏜애플이, 일본에서 호테이 토모야스가 커버했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일부분이 공연 중에 음악으로 나오기도 했다. 영화 마션에서는 주인공과 나사와 중국이 힘을 합쳐서 화성 탈출 준비를 하는 장면을 쭉 훑으며 이 곡을 틀어준다.
  • Suffragette City
  • Ziggy Stardust - 동명의 앨범 제목이자, 그의 가장 유명한 페르소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란 컨셉이었기 때문에 그의 사망에 대해 "보위는 화성 갔어!"라고 말하는 팬들도 제법 있다.
  • Aladdin Sane - 재즈의 영향을 받은 곡으로 피아노 솔로 부분에서 아방가르드 재즈풍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 Rebel Rebel - 보위의 곡 중 가장 많이 커버된 곡으로,[1995년]보위 자신도 2003년에 커버 버전을 녹음했다. 영화 '미녀 삼총사 2'에서 그 리테이크곡이 나온다.
  • Young Americans - 동명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이자 이 앨범에서 첫 번째로 싱글컷팅된 곡이다. 전설의 블루스 보컬 루터 밴드로스가 배킹보컬을 조직해주었고, 비틀즈의 명곡 A Day in the Life의 일부분이 삽입되어 오마주되기도 했다.[19]
  • Fame - 존 레논과 공동작업한 곡. 빌보드 핫 100 1위를 한 곡이다.
  • Golden Years - 영화 '기사 윌리엄'에서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장면에 뜬금없이 나오는 음악이다.
  • Sound and Vision - 베를린 3부작 중 첫 번째 앨범 Low의 수록곡. 여러 광고에서 사용되었다. 라이브 버전
  • "Heroes" - 미국 영화 '고질라'의 주제가로 커버된(by 월 플라워스), 무척 유명한 곡이다. 영국에서는 응원가로도 쓰인다고. 엠마 왓슨이 출연한 영화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에서 터널송이자 메인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다. 데이비드 보위 사후 가장 많이 재생된 곡이라고 한다.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이 기타 세션으로 참여한 곡이기도 하다 그외에 카툰네트워크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들 중 하나인 레귤러 쇼의 마지막 에피소드 the power에서 삽입곡으로 나온다.

1980년대

  • Ashes to Ashes - 역시 동명의 영드가 있다. 라이프 온 마스의 후속편. 이 곡의 뮤직비디오와 이 곡이 수록된 'Scary Monsters' 앨범의 표지에 나오는 피에로가 그 드라마 속에서 나온다.
  • Fashion -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 영국이 자랑하는 패션과 패션 모델들을 소개하면서 같이 흘러나왔다. 원래는 데이비드 보위가 직접 공연을 하길 주최측에서 바랐지만, 데이비드 보위가 거절했다고.
  • Under Pressure - 과 같이 만들어서 불렀다. 서로의 라이브 레파토리로 계속 사랑받는 곡이다.
  • Let's Dance - 보위의 유일한 영, 미 동시 차트 1위곡.
  • China Girl - 이기 팝과의 공동 작업곡. 곡의 완성도와 별개로,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하지만 인종차별 논란이 있다, 티비쇼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나 실제 보위 본인도 해당 앨범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곡 중의 china girl은 헤로인을 뜻하는 듯하다는 논란이 널리 퍼져있는 곡.이기팝의 원곡 실제 이기팝이 드래프트를 만들었을 당시 이는 이기팝 개인의 연애사가 담긴 곡으로, 원전은 vietnamese girl이었다고 한다. 보위는 이 곡을 프로듀싱하면서 가사로서의 운율에 맞도록 하기 위해 사비부분을 차이나 걸로 변형 시켰다.
  • Cat People - 동명의 영화 Cat People의 OST로 사용된 곡. 조르조 모로더와 협업하여 만들어졌다.
  • This is Not America - 재즈 기타리스트 펫 메시니와 같이 작업한 곡으로, 영화 Falcon and the Snowman의 사운드트랙에 사용되었다.
  • Absolute Beginners
  • Modern Love - 1983년 발매된 곡으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영화 '나쁜 피'에 삽입된 것으로 유명하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도 오마주 되었다. 스윙키즈에도 삽입되었다.

1990년대
  • I Can't Read
  • Jump They Say
  • The Buddha of Suburbia
  • Hallo Spaceboy
  • The Hearts Filthy Lesson
  • I'm Deranged
  • A Small Plot of Land
  • Little Wonder
  • I'm Afraid of Americans
  • Seven Years in Tibet
  • Survive
  • The Pretty Things Are Going to Hell

2000년대
  • Everyone Says "Hi"
  • I Took A Trip (on a Gemini Spaceship)
  • New Killer Star
  • Bring Me The Disco King

2010년대
  • Where Are We Now?
  • Valentine's Day
  • The Next Day
  • Love is Lost
  • Sue
  • Blackstar
  • Lazarus

등등.

1990년대 이후에도 그의 곡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용되었다. 최신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 그의 곡이 옛것 최근것을 불문하고 계속 사용되거나 리메이크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6. 음악 스타일[편집]




그의 전성기 시절 라이브

보위의 음악은 록 음악을 기반으로 했으며, 여기에 댄스 팝, 디스코, 일렉트로니카, 블루 아이드 소울 등의 다양한 장르를 자신의 것으로 융화시켰다. 여기에 그는 특히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하면서 Ziggy Stardust, Thin White Duke와 같은 페르소나를 도입하여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굳히는데 성공했고, 무대에서 각종 세트 기법을 도입해 연극성을 살렸고, 그전까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퍼포먼스를 강조했다. 페르소나에 있어서는 마돈나의 선조이며, 마이클 잭슨에 앞서서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했던 인물. 그야말로 보는 음악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적 변화와 시도에는 모두 그에게 영향을 준 아티스트들이 거론되곤 하는데, 보위 스스로도 자신은 밥 딜런 같은 사람이 아니기에 현 시대에 대한 깊은 고찰과 오리지널리티를 내지는 못하지만, 이를 받아들여 시대에 맞추어 변주하는 것에 능하다고 인터뷰했었다.

데뷔 초기에는 프랑스의 자크 브렐, 미국의 스콧 워커 등에게 영향을 받아 고전적인 느낌의 프렌치 팝을 기반으로 한 어쿠스틱 포크 음악을 선보였다. 그러나 1971년, Hunky Dory 발매를 기점으로 고전적인 사운드와 글램 록이 결합된 아트팝을 시도하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구가한다. 당시, 스투지스이기 팝, 벨벳 언더그라운드루 리드와 음악적으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 받았다.

글램록의 인기가 저물던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짙은 화장과 중성적인 의상을 벗어던지고 블루 아이드 소울에 도전했다. 1970년대 말부터는 전자음악에 관심을 기울이며 브라이언 이노와 협업했다. 이 시기 보위의 음악은 평론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음악적 전성기를 구가한다.

뉴웨이브 광풍이 불기 시작하던 1980년대는 신디사이저를 적극 활용한 신스팝과 펑크(Funk) 음악을 시도하는 등 당대의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음악을 구사했다. 이 시기에는 비평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았지만, 줄곧 외면당하던 미국 시장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는 활동이 부진했으나 당시 인기를 끌던 전자음악을 도전한다.

데뷔 후 1980년대 디스코 시절 이전까지의 앨범은 거의 전부 명반으로 인정받지만, 특히 글램 시절의 절정기 (Hunky Dory,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Aladdin Sane)와 마약 중독의 절정이었던 시기의 음반(Station to Station), 베를린 시절 앨범 중 초반의 두 장 (Low, Heroes)들은 대중 음악사 최고의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7. 영향력[편집]


데이비드 보위는 다른 어떤 록 스타보다 더 많은 음악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중략) 보위는 진정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록 스타로 남을 것이다. 음악, 스타일, 그리고 관점이 다른 누구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을 준 사람이다.

빌보드#


음악계에서는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력을 나열하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없을 정도로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과 업적은 마치 거인처럼 우뚝 서있다. 그의 영향은 대중문화 전체를 아우르고 언어적 차이까지 초월할 만큼 거대해서 비틀즈롤링 스톤스가 그런 것처럼 그에게서 생성된 것이 또 다른 것을 재생산할 만큼 방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비틀즈밥 딜런, 그리고 롤링 스톤스 다음 가는 음악가들을 꼽을 때 레드 제플린, 브루스 스프링스틴, 닐 영, 프린스와 더불어 절대로 빠지지 않는, 즉 영향력이 매우 방대한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음악적으로 그는 글램 록쪽엔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였고 지금까지도 그 장르의 대표 아티스트 자격으로 취급되고 있다. 펑크 록쪽에도 그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이 많으며 그는 1980-90년대에 브릿팝의 태동하는 시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스웨이드는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밴드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한때는 데이비드 보위를 모방한다는 비난과 야유를 받아 공연 중에 무수한 쓰레기 세례를 당했던 일도 있다. 1990년대에는 얼터너티브 록과의 진득한 접점이 있다. 쉬운 예로는 플라시보인데 보위는 플라시보 곡 작업에 참여했고 같이 공연하기까지 했다. 플라시보는 한때 보위의 후계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보위와의 친분으로 인해서 글램 록으로 지긋지긋하게 오인을 받는 게 신물이 난 브라이언 몰코는 훗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보위 이야기는 그만! 그만하라고!'라며 기자의 말을 먼저 잘라버리기도 했다. 보위와의 관계는 밴드가 커지는 데 도움을 줬지만 나중에는 그 영향과 시선 때문에 벗어나야 했을 것이다.

보위의 영향력은 음악 뿐만이 아니라 아주 다양하다.# 젠더 벤더로서, 패션 아이콘으로서, 음악의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의 선구자로서, 퍼포먼스의 도입과 중요성을 각인시켰고, 뮤직 비디오의 발전에도 기여를 했다. 그의 대표작 Space Oddity의 뮤비를 보면 1969년작이라고 생각들지 않을 만큼 세련됐다.

데이비드 보위의 진가는 무수히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여러 아이콘과 스타일에서도 볼 수 있다. 그의 패션과 그가 페르소나로서 보였던 모습들은 여전히 여러 아티스트에게 귀감이 되어 계속해서 언급되고 재창조되며 특히 미술 쪽에선 여전히 보위를 위시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러 미디어에서는 아직도 그의 음악이나 그 자체를 주제로 삼은 산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8. 음악계의 친분[편집]


보위는 음악계의 마당발로 불릴 정도로 여러 뮤지션들과 친분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에게 영향을 줬거나 호감을 느낀 뮤지션들에겐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친분을 맺는 스타일. 게다가 대중예술쪽의 사교계와 각종 파티에서 가장 환영받는 멋진 왕자 같은 존재였으니 친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절친으로는 위에서 언급된 루 리드, 티렉스의 마크 볼란,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20], 그리고 이기 팝 등이 있다. 특히 이기 팝의 경우 스투지스 해체로 방황하고 마약 등으로 폐인이 되어가던 팝을 보위가 데리고 팝의 솔로 앨범 The Idiot 제작에 도움을 줬을 정도로 절친하다.

비틀즈 멤버들과도 인연이 있는데, 인연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팬이었다. 항상 비틀즈를 사랑했으며# 무명 시절때부터 비틀즈를 광적으로 좋아해서 비틀즈가 설립한 애플 레코드와 계약을 하고 싶어했는데 거절을 당했었다. 그러나 보위는 좌절하지 않고 실력을 쌓아 여러 앨범을 발매하고, 후에 비틀즈 멤버들과 상당히 친해진다. 특히 존 레논과는 관계가 특별했는데, 보위가 존 레논을 언급하길 "가장 위대한 멘토존 레논을 언급하지 않고서 저는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존은 대중음악과 다른 형태의 예술의 요소를 어떻게 뒤틀고 결합시킬 수 있는지를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때로는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때로는 아주 강력한 음악으로 그리고 낯선 요소를 불어넣었습니다."라고 평했다.존 레논과 공동작업으로 명곡 'Fame'을 남겼으며[21], 비틀즈Across the Universe도 자기 앨범에서 커버한 적이 있다. 대표적 히트곡 Space Oddity도 비틀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과도 공동작업으로 'Under Pressure'라는 명곡을 남겼고, 프레디 머큐리에이즈로 사망한 뒤에 열린 추모공연에도 참석했다.[22] 자신의 곡 'Heroes'를 부른 뒤, 무릎을 꿇고 기도문을 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레드 제플린과도 친분이 있어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보위에게 기타 리프 몇 개를 선물하기도 했다. 보위는 이 리프들을 The Supermen 등의 곡에 사용했다.

루 리드와는 주먹다짐 에피소드가 있다. 1970년대 내내 보위와 리드는 절친이었지만 1979년에 보위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싸운 적이 있는 것. 정확히 말하면 리드가 보위를 일방적으로 팼다. 레스토랑에서 보위를 비롯한 지인들과 식사 중에 루 리드가 보위에게 자신의 다음 앨범을 프로듀싱해줄 것을 부탁하자 보위는 마약중독 등 나쁜 습관 먼저 끊고 좋은 컨디션으로 음악에 임해야만 도와주겠다고 시큰둥하게 말했다.[23] 이에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다혈질인 리드가 보위의 얼굴을 기습적으로 몇 대 가격했고 갑자기 맞은 보위가 반격하려 했지만 지인들이 말리는 바람에 더 이상의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고 헤어졌다. 이 사건은 목격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소문이 퍼졌을 뿐 아니라 현장에 같이 있었던 멜로디메이커 지의 기자에 의해 기사화까지 되어 유명해진다. 이 뒤로 둘은 수년간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사실상 절교한 상태였으나, 나중에 화해하게 된다.[24] 이후 루 리드는 데이비드 보위의 50세 생일 기념 공연에 참가하여 같이 노래를 부르며 완전히 화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모비와도 친분이 있다. 한 때 아파트 이웃이었던 시기가 있어 음악작업외에 사적으로도 친했는데, 데이비드 보위가 시청자들의 신청을 받아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 Live by Request에 출연했을때 LA로 투어를 가 있던 모비가 시청자인척 전화를 건 적도 있다.

후배 뮤지션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나인 인치 네일스트렌트 레즈너의 경우, Outside 투어 때 오프닝으로 동반하고 자기 곡 I'm Afraid of American'의 리믹스도 맡겼다. 레즈너는 심지어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다. 플라시보와도 친하다. 보위의 50세 기념 공연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서로 게스트 출연해 주는 관계이며 보위는 Without You I'm Nothing을 보컬 브라이언 몰코와 함께 녹음하기도 했다. 아케이드 파이어 1집 CD를 박스채로 사서 지인들에게 돌렸다는 전설이 있다. 후일 같이 공연도 했다. 당연 멤버들과 관객들은 떡실신.영상[25]. 아케이드 파이어는 이후 뉴 올리언스에서 데이비드 보위 메모리얼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https://youtu.be/UKBI_TMHE54. TV 온 더 라디오의 곡 Providence에 배킹 보컬로 참여했다. 픽시즈도 무척 좋아해서 80년대에 나온 가장 흥미로운 록밴드라고 극찬했으며, 자기의 공연에 픽시즈의 리더인 블랙 프랜시스를 초청해서 둘이 합동 라이브 공연무대를 가진 적도 있었다.

익스페리멘탈 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뮤지션 답게, 시드 바렛의 재발굴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스스로 자신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분위기나 스타일 등이 시드 바렛시기의 핑크 플로이드 앨범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시드 바렛을 극찬했으며 보위급의 거물이 밴드 앨범 2장과 솔로 앨범 2장만을 낸 후 정신병으로 인해 은퇴해버린 미스터리한 음악가를 찬양하자, 자연스럽게 핑크 플로이드의 팬 정도만 잘 알던 시드 바렛에 대중들의 많은 관심이 쏠리며 제대로 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생전에 데이비드 길모어와 함께 시드 바렛이 작곡한, 핑크 플로이드의 역사적인 첫 노래 Arnold Layne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콜드플레이가 보위를 염두에 두고 쓴 곡에 보컬 참여를 제안했을 때는 곡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It's not a very good song, is it?')는 이유로 거절했다.# 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크리스 마틴은 보위가 자신에게 "그건 네가 쓴 곡 중에 최고가 아니다(‘It’s not one of your best.’)라고 했다고 한다.링크 이에 대해 콜드플레이는 보위가 높은 기준을 가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그 덕분에 자신들이 높은 기준을 유지하도록 자극을 받는다고 감사를 표했다.

불세출의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의 메이져 데뷔에 큰 도움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1982년 스위스 몽트뢰 재즈페스티벌에 참가한 스티비 레이 본은 자신의 실력을 맘껏 뽐냈으나 유럽인들에게는 땀내나는 미국남부 스타일의 음악이 너무 어색한 탓인지 야유를 많이 받고 스티비 레이 본은 큰 실의에 빠져있는도중 그 공연을 유심히 지켜보던 보위가 자신의 앨범 Let's Dance 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전격 고용하는 등 지원을 해준다. Let's Dance의 성공으로 음악계에서 스티비 레이 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영미 록 계의 마당발.

일본의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와 친하다. 그 이유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리즈시절인 1983년에 오시마 나기사전장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에 함께 출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때는 사카모토를 비롯한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구성원 전체가 보위와 함께 토크쇼 방송에 출연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보위가 사망했을 때 사카모토 류이치는 데이비드 보위와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건즈 앤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와도 인연이 있었다. 슬래시의 어머니는 이혼 후 보위와 사귀었는데, 그래서 어린 시절 슬래시가 기억하는 보위는 달갑지 않은 새아빠 이미지였다고 한다. 링크 다만 성인이 된 후에는 사이가 원만해졌다. 링크 보위는 슬래시가 마약에 중독되었을 때 마약을 끊으라고 조언했는데, 그 즉시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2005년에 보위의 조언을 되새기며 완전히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링크

9. 톰 소령[편집]


파일:Major_tom_space_oddity_video.JPG.jpg
톰 소령(Major Tom)은 보위의 앨범에 등장하는 가상의 우주비행사로, 보위 자신에 대한 상징으로서 해석된다. 초기작 Space Oddity(1969)의 주인공으로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조난을 당해 지구와 교신이 끊기고 우주 미아가 된다. #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지구는 푸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Though I'm past one hundred thousand miles I'm feeling very still
십만마일을 넘었지만 편안합니다
And I think my spaceship knows which way to go
어디로 가야할 지 우주선이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Tell my wife I love her very much she knows
아내에게 내가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Ground Control to Major Tom
지상관제소에서 톰 소령에게
Your circuit's dead, there's something wrong
회로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Can you hear me, Major Tom?
들립니까, 톰 소령?
Can you hear me, Major Tom?
들립니까, 톰 소령?

이후 Ashes to Ashes(1980), Heroes(1987), Hallo Spaceboy(1995)에서 가사로 등장. Slow Burn(2002)에서는 가사에 언급되지는 않지만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한다. 보위의 마지막 앨범 Blackstar(2015)의 뮤직비디오에서 최후를 확인할 수 있다. #


10. 공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데이비드 보위/공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기타[편집]


  • 데뷔 이전 BBC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17세였던 그는 '장발남성학대방지협회(The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Long-haired Men)'의 창립자로서 BBC 투나잇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 1973년 영국의 음악잡지 멜로디 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하였다. 그리고 1976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는 양성애자임을 밝혔다. 그의 첫번째 아내 역시 그가 과거 믹 재거와 관계가 있었음을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1983년 인터뷰에서는 "그 때 양성애자라고 말했던 건 최악의 실수였다"라면서 다시 이성애자로 주장했으며, 이전의 주장들은 유명세를 위한 선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보위가 동성 섹스를 즐긴 것은 사실. 2002년에 자신의 양성애자 정체성 발표를 취하하고 이성애자로 재정체화하였음을 명백히 했다. 보위는 이만과의 결혼 이후 사망시까지 그녀에게 충실했으며 두 자식들과도 원만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이후로는 직접적으로 동성애/양성애를 부정하는 것의 영향성을 생각한 것인지, 직접적인 부정보다는 아이 둘을 가지고 두 명의 여성과 차례대로 결혼한 자신의 삶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정중하게 질문을 거절하는 편이다.

  • 배우로도 유명하다. 유명한 역은 프레스티지니콜라 테슬라. 카트린 드뇌브, 수전 서랜던과 함께 나온 헝거에서는 흡혈귀역을 맡았다. 그 밖에도 여러 영화에 얼굴 들이미는 경우가 많다. 연극에도 다수 출연했으며,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나레이터나 성우로서의 경력도 있는데, 네모바지 스폰지밥에도 하이네스 대왕역으로 목소리 출연을 한 적이있다.[29]
    • 1986년도 짐 헨슨 감독의 판타지 가족 로맨스물(?) "라비린스(Labyrinth)"[26]에서는 당대의 완전무결 미소녀 제니퍼 코넬리와 함께 출연했다. 데이비드 보위는 이 영화에서 어둠의 미궁에 사는 마왕 저레드 역을 맡아 열연했다. 고전 영화 리메이크에 환장한 할리우드가 이 영화만큼은 섣불리 손대지 못하는 이유가 마왕 역을 맡을 배우가 마땅치 않아서 그렇다는 얘기가 돌기도 한다. 보위의 노래 "As the World Falls Down"과 함께 나오는 무도회 장면에서 코넬리와 보위가 서로 춤을 추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마왕이 코넬리가 맡은 '사라'라는 소녀에게 구애했다가 매정하게 거절당해 의기소침하게 물러서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열혈 팬들이 코넬리가 이후에 출연한 다른 영화들과 보위의 각종 영상들을 활용한 편집본으로 패러디 영상을 만들어 오프라인 모임을 중심으로 은밀히 나돌았다고 한다. 국내 미개봉작이고 원제목으로 1989년 대우비디오에서 비디오로 나왔다가 1994년 7월 24일 일요일 오전과 1995년 어린이날에 SBS에서 오전에 더빙 방영했다. 국내 방영 제목은 '사라의 미로여행'. 자레드 성우는 오세홍. 사라는 이다금, 그밖에 황원, 유해무, 이윤선, 최옥희, 조동희, 정동열, 한상혁, 김기현 같은 성우들이 참여했다.
    • 영화 배우로는 니콜라스 뢰그의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라는 1976년 SF 영화에서 주인공인 외계인 역이 처음이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는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으나 상당한 컬트적 인기와 영향력을 누리는 수작이다. 보위의 연기도 인상적이라 단지 가수로서의 인기나 유명세만으로 배우를 한게 아닌 걸 보여준다. 한국의 영화 감독 봉준호는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영화 35편 중의 하나로 데이비드 보위가 주연을 맡은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를 꼽기도 했다. 이 때가 Thin White Duke 페르소나 시절이라 이 이미지로 등장하고, 영화 스틸샷을 Station to Station 앨범 커버로 차용하기도 했다.
    •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주인공인 뉴질랜드인 영국군 소령 잭 셀리어스로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일본군 대위 요노이와 애증의 관계에 빠지는 역할이다.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무척 인상적인데, 요노이 역을 맡은 사카모토 류이치[27]와 애증을 넘어선 뭔가 때문에 보통 두 캐릭터 간의 관계를 동성애로 해석하는 평이 많다.[28]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는 오리지널 라바저스 멤버 역할로 카메오 출연시킬 계획이 있었으나, 촬영 시작인 2016년 2월 한 달전에 사망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 트윈 픽스 극장판에도 등장한 적 있다. 데이비드 린치 측에서는 2017년 시즌 3 격인 더 리턴에도 같은 롤로 재등장해줄 것을 요청했었으나 보위는 이유를 밝히지 않고 거절했었다. 이후에서야 촬영 당시 보위는 암투병 중이었던 것이 밝혀졌다. 다만 이때 보위는 자신이 등장한 옛 씬을 다른 루이지애나 배우의 목소리로 재더빙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 결과 더 리턴에 나오는 필립 제프리는 보위의 목소리가 아니다. 제작 측에서는 보위가 자신의 루이지애나 억양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 Blackstar를 제외한 모든 앨범의 커버에 그의 모습이 등장한다.[30] 모든 앨범에서 직접 전면적으로 나오는건 아니고 다리만 나오거나 뒷모습만 나오거나 일러스트의 형식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그의 모습이 있다.

  • 최신 기술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최초로 인터넷으로 다운받는 형식으로 음원을 공개하기도 했고, 1998년에는 보위넷이라는 인터넷 공급업체를 런칭하기도했다. 1999년당시 보위의 인터뷰를 보면 앞으로의 세계는 인터넷을 매개로 점점 공급자인 소수의 음악가가 아니라 의견 표출이 자유로운 청중들의 커뮤니티 중심으로 진화해나갈 것이라고 이미 예견하고 있다.https://youtu.be/LaHcOs7mhfU

  • 두 번 결혼했으며, 첫 번째 부인 안젤라와는 1970년 결혼해서 1980년에 이혼했으며 슬하에 1남을 두었다.[31] 그 아들이 영화 더 문,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을 감독한 던칸 존스이다. 두 번째 부인인 소말리아 출신 모델 이만과는 1992년에 결혼해서 딸 하나를 두고 있다.

  • 조지 오웰1984프리츠 랑메트로폴리스로 대표되는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는 그의 작품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메트로폴리스의 이미지는 Diamond Dogs, Station to Station 무대 아트에 반영할 정도. 그는 1984년 메트로폴리스의 판권을 사서 OST를 만드는 계획을 하고 있었으나, 조르조 모로더에게 경매에서 져서 실행하지 못했다. 입찰전쟁때문에 이 영화의 판권은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매겨졌는데, 서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Cat people을 작업할 때 서로가 상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보위의 인터뷰.[32]

  • 프랑스의 생수회사 비텔(Vittel, 네슬레 소속)에서는 보위의 페르소나들이 떼거리로 나오는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팬이 그 광고를 보면 여러모로 아스트랄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광고 이 광고에서 데이비드 보위의 페르소나로 분장한 사람은 데이비드 보위 커버밴드로 무척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 영국에서 두 번이나 훈장(2000년)과 기사작위(2003년)를 주려고 했으나, 두 번 다 거절했다고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주최측에서 폐막식 공연의 한 파트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했다. 그래서 그의 단독 파트는 영국의 패션 모델들이 줄줄이 나오는 가운데 배경음악으로만 나오게 된다.

  • 애니메이션 소울 이터 17화에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표지 패러디가 실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기도 했다. 참고로 저 장면은 원작 만화엔 없고 애니메이션판 오리지널이다. R.O.D the TV 에서도 젠틀맨 부활 계획에 관여한 에이전트의 이름으로 지기 스타더스트가 언급된다.

  • 미남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나이가 든 후에도 미중년이었다. 2016년 기준으로 69세이며 미모는 그대로이니 이제 명실상부한 미노년. 1985년 라이브 에이드 때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악수하고 있는 옆모습과 생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이었던 2015 12월 Lazaus 프리미어 때 옆모습을 비교해보면 얼굴선에 거의 변화가 없다.

  • SF영화 더 문소스 코드를 감독한 영화감독 덩컨 존스는 보위가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본 아들이다. 사실 본명은 '덩컨 조위 헤이우드 존스'. 그래서 어릴 때 조위 보위'라고 불렸다고 한다. 영국에서 실시한 괴상한 록스타 자녀 이름 순위에서 9위를 차지했다고.

  • 1994년 Ion이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인지 레이블인지 알수없는 회사에서 Jump라는 제목의 데이비드 보위를 테마로 한 PC, CD-i용 인터랙티브 프로그램을 출시한 바가 있다.[33] 게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팬서비스에 가까운 물건으로, 해당 인터랙티브 프로그램 출시 전년도에 발매된 싱글 <Jump they say>에서 따온듯 하다. 실제로도 프로그램 안에는 의 PV를 편집하거나, 그 곡이 수록된 Black Tie White Noise 앨범의 다른 수록곡들을 편집할 수 있고, 데이비드 보위의 집(?) 혹은 입주한 건물을 입맛대로 꾸밀 수 있다. 그 외에는 데이비드 보위의 인터뷰들을 수록한 잡동사니에 가깝다. 다만 당시 한국에서까지 저런 컬트적인 물건이 알려지지는 않았기에, 진성 데이비드 보위 덕후정도나 어떻게 직접 입수했을 정도의 레어템으로 사료된다.[34] 자세한 것은 Discogs 정보Vinesauce Vinny리뷰를 참고할 것.
정작 보위 본인은 저 CD-i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상호작용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컴퓨터와 일정한 대화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만, 선택형 텍스트 소설에 불과했다." 라는 식으로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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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 제작사 퀀틱 드림의 첫 작품이었던 오미크론: 노매드 소울에도 등장한다. 위 이미지는 스팀판 오미크론의 기본이미지인데 파란 얼굴의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보위이다. 쌍용에서 발매했던 한국 정식발매판 오미크론 패키지판의 표지모델 역시 데이비드 보위이다. 또한 이 게임에는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중간중간에 보위의 음악이 여러 곡이 수록되어 있다. 게임 중간에 어느 한 바에서 싱어송라이터가 노래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스토리의 흐름상 필요한 장면도 아니고 노래를 부르는 인물은 아예 병풍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이 나오는 장면을 꽤 오랫동안 보여주는데 이게 또 나름대로 인상깊은 장면이다. 게임을 제작한 데이비드 케이지는 애초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고 보위와의 친분도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 게임 자체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의 작품은 아니었는데 보위가 게임에 참여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한 점이다. 이 게임에서 보위가 맡은 음악은 1999년작 앨범 'Hours...'에 들어가 있다. 데이비드 보위 사후에 이 게임의 유통사인 스퀘어 에닉스에서는 그의 죽음을 기리며 스팀판 오미크론을 기간 한정으로 무료로 배포했다.

  • 게임 앨런 웨이크의 엔딩곡으로 Space Oddity가 나온다. 가사는 직접 찾아보길. 단,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인 사람은 금지. 이 노래의 가사가 완벽하게 내용누설이 되기 때문이다.


  • 벤 스틸러가 감독 및 주연을 한 영화 쥬랜더에서 극 중 벤 스틸러와 오언 윌슨이 패션 대결을 할 때 데이비드 보위 본인 역으로 출연하여 대결 심판을 본다.

  • 심슨 가족 시즌 26 12화의 커튼콜로 starman이 나온다. 가사가 에피소드 내용과 어우러지며 눈물을 짜낸다. #

  • 영화 월플라워에서 이른바 '터널 음악'으로 보위의 음악, Heroes가 등장한다.

  •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에서 그의 음악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들어볼 수 있으며, 이 곡은 스토리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확히는 그의 곡을 밋지 유어(Midge Ure)가 커버한 버전이다.[35]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등장인물인 존 왓슨은 데이비드 보위를 한두 사람쯤 데리고 데이비드 보위 하나를 또 다른 데이비드 보위 위에다 붙이고, 또 다른 데이비드 보위를 처음 두 사람의 데이비드 보위의 팔뚝에다 붙인 다음에 그걸 전부 합쳐서 더러운 베치 가운으로 둘둘 감은거와 똑같이 생기진 않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낯익다고 생각할 만한 형상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 콜 오브 듀티: 인피니트 워페어의 트레일러에서 Space Oddity를 Lady heroine이 부른 버전이 삽입됐다. 가사가 트레일러에 꽤 잘 어울린다. 게임의 결말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잘 맞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 유투브의 리액션 채널 Fine bros에서 노년층의 리액션 패널인 'Elders react'에게 보위가 승천하기 5일 전 마지막 뮤직비디오인 Lazarus를 보여주며 추모하는 리액션을 보였는데, 노년 세대가 기억하는 음악의 거장이었던 보위를 슬퍼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에서도 영화 시작 부분에서 Space Oddity가 흘러나오는데, 이때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우주 정거장의 연합 도시 '알파'의 탄생 및 발전 과정이 함께 묘사된다.


  • 농발거미속 거미 중에 데이비드 보위의 이름이 붙여진 'Heteropoda davidbowie'가 있다.

  • 앨범 Aladdin Sane의 자켓 사진에 비친 데이비드 보위의 얼굴에 칠해진 페이스 페인팅과 똑같은 것이 칠해진 이모지가 있다. 남성은 👨‍🎤이고 여성은 👩‍🎤이다.

  • 그의 전기 영화인 스타더스트가 2020년에 개봉하였다. 데이비드 보위 역으로 배우 겸 뮤지션 조니 플린이 맡았다. # 하지만, 보위의 음악 사용 허락을 받지 못하여서 영화내 보위 음악이 하나도 삽입되지 않았으며 영화의 완성도 조차 엉망이라 평가와 흥행이 폭망하였다.

  •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의 등장인물 조니 실버핸드의 첫 실제모델이다. 정확히는 구상을 그렇게 했던 것이고, 게임 개발에 제대로 진입하기도 전에 타계했기에 실제모델로 발탁되는 것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 위의 슬래시 일화에도 나오듯이, 주변에 중독자가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1990년대 초에 보위와 함께 일한 어느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보위의 도움으로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 중 하나다. 링크 80년대에 듀란 듀란Rio 뮤직비디오에서 메이크업을 담당했고, 이후 다수의 유명인들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Carolyn Cowan은 10대 시절부터 시작된 코카인 중독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건강도 나빠졌는데, 그녀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보위가 중독자 자조 모임에 나가 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보위의 조언에 따라 자조 모임에 나가면서 중독에서 벗어났으며, 같은 모임에서 만난 남성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 생전 피웠던 담배는 프랑스산 Gauloises를 주로 피웠다고 한다. 90년대 이루로는 말보로 라이트를 피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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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록밴드 몽키즈의 DAVY JONES 와 혼란을 일으키게 되자 보위 나이프 에서 따와 미국 개척자인 제임스 보위의 성을 따서 '보위'란 예명을 썼다. 제임스 보위, 통칭 짐 보위는 "보위 나이프"라는 칼로도 유명하다. 본명으로만 보면 영미권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긴 하다. 덧붙여 Bowie의 실제 발음은 '보:이(/ˈboʊ.i/)'에 가까우나 이미 보위로 굳어진 점이 인정된 바 있다.[2] 죽을 때까지 영국 국적을 유지했으나, 1992년 이후 외국인으로서 평생 미국에서 살았다. 97년 락페스티벌 공연 중에는 헤드라이너로 참여했음에도 노동비자가 갱신되지 않아 공연 순서를 바꿔야 하는 대참사도 있었다.[3] 엘비스 프레슬리와 생일이 같다.[4] #[5] 페르소나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면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 배우들이 연극을 할 때 가면을 쓰던 것에서 기원된 단어로, 현재는 가수나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들이 설정한 캐릭터에 동화되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보위는 여러 공연과 앨범에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선보였기에, 록 장르에서 페르소나의 선두자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말로는 얼터 에고가 있다.[6] #[7] #[8] #[9] #[10] #[11] #[12] #[13] #[14] #[15] 데이비드 보위의 첫 히트곡으로 데이비드 보위 사후를 전후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곡이기도 하다.[16] 비틀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17] 가사가 막 우주에 나아간 우주비행사에서 막 지구로 복귀하는 우주비행사의 입장으로 바뀌었다.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에는 이 사람의 지구 복귀선이 착륙하는 영상으로 끝난다.[18] 이 때에는 Midge Ure의 편곡된 커버 버전[1995년] Dead Or Alive의 피트번즈와 스티브 코이도 Rebel Rebel을 Nukleopatra앨범으로 커버했다[19] I heard the news today oh boy!란 부분이다.[20] 심지어 믹 재거와는 동침까지 한 적도 있었다.[21] 빌보드 싱글차트 1위까지 올랐다.[22] 그 전부터 인연이 훨씬 깊었는데 보위가 점차 메이저로 성장할 때 프레디가 스태프로 고용되어 그의 공연을 도운 적이 있고 후에 프레디와 로저가 운영하던 옷가게에 찾아왔을 때 프레디가 빈티지 롱부츠를 보위에게 선물로 준 적이 있었을 정도.[23] 물론 보위도 마약에 쩔어 살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 시기엔 마약을 끊은 상태였다.[24] 학창 시절에 보위를 주먹으로 쳐서 한 쪽 눈을 다치게 한 사람도 보위의 절친이었는데, 결국 그를 용서해주고 화해한 바 있다. 실로 대인배다운 보위다.[25] 2005년이 보위의 무대퍼포먼스 경력의 마지막이다보니 Life on Mars 공연에서 화면에 비친 붕대나 유독 검은자위가 큰 그의 왼쪽눈에 관해 말이 많았고, 심근경색으로 인한 IV wrap과 스테로이드로 인한 동공확장 아니냐는 말조차 있었으나, 이는 보위가 페르소나를 연기하듯 무대에서 컨셉을 만들면서 렌즈를 끼고 붕대를 감은 것일 뿐 그의 심장질환과는 전혀 무관하다. 당시를 회고하는 윌의 인터뷰[26] 짐 헨슨이 감독과 이야기를, 각본은 몬티 파이선의 멤버 테리 존스가 맡았다.[27] 이 영화의 영화음악도 맡았다.[28] 다만, 전체적인 흐름으로는 전쟁과 국가, 생명, 충성 등에 대해 일본군을 대표하는 요노이 대위와 하라 겐고 중사(기타노 다케시 분)와 영국군을 대표하는 셀리어스 소령을 대비해 놓은 내용이다. 여기에 존 로렌스 중령(톰 콘티 분)이 영국군·네덜란드군 포로들과 일본군의 중간 위치에 있는 입장.[29] 보위는 스폰지밥 팬으로, 스폰지밥 브로드웨이 뮤지컬버전에 1. Outside 앨범의 No Control이란 곡을 주기도 했다.[30] 블랙스타의 경우 맨 아래 있는 오각별의 생김새가 BOWIE라는 다섯 글자를 암시한다.[31] 안젤라 보위에 따르면 이들은 Open marriage 관계였다. 안젤라 보위는 이혼당시 아들 던칸 존스의 양육권을 데이비드 보위에게 넘기고, 향후 10년간 미디어에 데이비드 보위 이야기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위약금 50만 파운드를 받았다. 안젤라 보위는 이혼 후에도 방송용으로 보위라는 성을 유지했으며 10년 후 데이비드 보위와의 결혼생활에 관한 회고록을 출간한다. 던칸 존스는 13살 이후 안젤라와 완전히 연락이 끊겼고 자신의 보모를 진짜 어머니로 여긴다고 발언한 바 있으며, 안젤라와의 연락두절에 대해 아무런 후회도 없다고 한다. 안젤라 역시 던칸은 보위처럼 차갑다고 신경쓰지 않는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안젤라 본인은 코카인 중독이 극에 달한 보위에게 아들을 양육하는 책임이라도 남겨둬야 살아있을 것 같아서 양보했다고 말하지만, 양육권 소송 당시 보위는 이미 약물을 끊은 상태였고, 법원에서 그 전직 약물중독자에게 아이의 양육권을 줄 정도로 당시 안젤라의 정신적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리고 안젤라도 보위의 부성애는 인정했다.[32] 마찬가지로 영화 OST로 사용된 This is not america에 대한 질문에 이 당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유튜브 댓글에도 그가 헷갈린것인지, This is not america를 함께 작업한 팻 메시니와의 사이가 좋지않아져서 일부러 언급을 피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올라와있다.[33] 해당 회사는 이전에도 브라이언 이노, 토드 런그렌(TR-I라는 명의를 사용), 더 레지던츠의 인터랙티브 프로그램 내지는 음반을 출시한 바가 있다.[34] 이 물건은 일본에서도 발매된 적이 있다. 어찌된 연유인지 <컴퓨터 게임>이라는 당시 한 게임잡지에서 '데이비드 보위의 점프' 일본판을 경품으로 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당월호 경품을 보면 라는 물건이 있는데, 원래 American Laser Games의 LD 건슈팅 게임이고 cd-i, 3DO로 이식되었는데 이 경품 역시 cd-i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당시 cd-i 국내 생산관리를 맡고있던 LG미디어가 해당 잡지에 스폰서를 선 것일수도 있지만 경품에 고시된 저 cd-i 소프트들은 해외판 커버이미지인 고로 직수입 물품으로 추정되어서 진실은 저멀리에.[35] 이스마엘에이헤브의 관계를 암시하는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