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학
최근 편집일시 :
분류
1. 개요[편집]
도쿄도 분쿄구[4] 에 본부를 둔 일본의 명문 국립대학이다. 약칭은 '토다이(
일본의 첫 번째 제국대학답게 자타공인 일본의 790여개 대학 중 최고(最古)의 대학으로, 일본에서 학생의 수가 가장 많은 국립대학이며, 교원의 수가 가장 많은 대학이기도 하다. 또한 대한민국의 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해외 대학이기도 하다.[6]
아시아 최고 수준의 연구 대학으로서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7] , 4명의 프리츠커상 수상자[8] 및 2명의 필즈상/가우스상 수상자, 19명의 일본 총리[9] 등을 배출했다.
2. 역사[편집]
- 1684년: 에도 막부가 천체운행 및 역법 연구기관인 텐몬카타(天文方) 설치.
- 1790년: 유시마 성당(湯島聖堂)[11] 내에 학문소(學問所)[12] 설립.
- 1797년: 학문소가 유시마 성당에서 분리되어 막부 직할로 편입.
- 1811년: 텐몬가타의 산하 기관으로 양서의 번역 및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반쇼와게고요(蛮書和解御用) 설치.
- 1855년: 반쇼와게고요를 확충하여 난학과 양학 등을 가르치는 양학소(洋学所)를 개교.
- 1856년: 안세이 대지진으로 소실된 양학소 교사를 재건하여 번서조소(蕃書調所)로 개칭.
- 1861년: 막부 직할의 서양의학교육기관인 의학소(醫學所)를 창설.
- 1862년: 번서조소를 양서조소(洋書調所)로 개칭.
- 1863년: 양서조소를 개성소(開成所)로 개조.
- 1868년: 의학소, 학문소, 개성소가 메이지 정부 산하로 편입, 각각 6월, 8월, 9월에 의학교(醫學校), 창평학교(昌平學校), 개성학교(開成學校)로 개칭.
- 1869년: 창평학교, 개성학교, 의학교 3개교를 대학교(大學校)로 통합. 창평학교를 본교(本校)로, 개성학교와 의학교를 분국(分局)으로 하여 운영.[13]
- 1870년: 대학교를 대학(大學)으로 개칭, 본교를 대학본교(大學本校), 개성학교 분국을 대학남교(大學南校), 의학교 분국을 대학동교(大學東校)로 개칭. 같은 해 화학·한학파와 난학·양학파의 갈등 사이에서 양학파의 승리로 화학·한학파의 입지가 대폭 약화되어 대학본교가 무기한 휴교,[14] 결국 대학교의 유명무실화로 대학남교와 대학동교 독립.
- 1871년: 대학교 폐지, 문부성 발족. 대학남교와 대학동교를 문부성 산하로 편입함과 동시에 각각의 이름을 남교(南校)와 동교(東校)로 개칭.
- 1872년: 학제 배포, 남구를 제일대학구 제일번중학교(第一大學區第一番中學校)로, 동교를 제일대학구 의학교(第一大學區醫學校)로 개칭.
- 1873년: 제일대학구 제일번중학교를 전문학교로 전환, 제일대학구 카이세이학교(第一大學區開成學校)로 개칭.
- 1874년: 제일대학구 카이세이학교를 도쿄카이세이학교(東京開成學校)로, 제일대학구 의학교를 도쿄의학교(東京醫學校)로 개칭. 도쿄카이세이의 전문과와 보통과를 각각 본과와 예과로 개편.
- 1877년: 도쿄카이세이학교를 카이세이대학교로 승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발생. 이로 인해 도쿄카이세이학교 본과와 도쿄의학교 본과가 합병되어 일본 최초의 대학[15][16] 도쿄대학[17] 이 설립[18] .
- 1878년: 학사 학위 수여권이 부여됨[19] .
- 1880년: 학사연구과(현재의 대학원) 설치.
- 1881년: 구 도쿄카이세이학교의 후신인 법학부, 이학부, 문학부와 구 도쿄의학교의 후신인 의학부가 대학 기구 개편으로 하나의 총장을[20] 갖추게 되어, 두 학교 간의 느슨한 연합체에서 하나의 학교로 완전히 통합.
- 1882년: 구 도쿄카이세이학교의 예과와 구 도쿄의학교의 예과를 통합, 하나의 통합된 예비문(대학예과) 시스템을 갖추게 됨.
- 1885년: 도쿄법학교 통합. 도쿄대학 예비문[21] 분리.
- 1886년: 공부대학교[22] 통합. 제국대학령의 반포에 의해 제국대학으로 개편.[23]
- 1890년: 도쿄농림학교[24] 통합.
- 1897년: 전국 각지에 제국대학이 설립됨에 따라 도쿄제국대학으로 개칭[25] .
- 1906년: 첫 외국인 유학생 입학.
- 1947년: 제국대학령의 폐지로 도쿄대학으로 개칭.
- 1949년: 제1고등학교와 도쿄고등학교(고등과)[26] 를 통합[27] , 신제 도쿄대학으로 전환. 제1고등학교 자리에 코마바 캠퍼스를 조성.
- 1991년: 대학원 중점화(大学院重点化)를 개시.
- 1999년: 카시와 캠퍼스를 조성. 여러 연구소를 여기로 이전.
- 2004년: 국립대학의 법인화로 국립대학법인 도쿄대학이 됨.
3. 교가[편집]
4. 조직[편집]
학부(学部)의 경우, 6개 학류로 모집[28] 해서 입학 후 전기교양학부에 소속되며, 2년 정도의 전기(前期) 과정을 이수한다. 이후 교양학부를 포함한 10개 학부로 나뉘어 2년(다만, 의학부 의학과 및 농학부 수의학전공, 약학부 약학과는 4년)의 후기(後期) 과정을 이수한다. 학부마다 독립성이 상당히 강한데, 예컨데 법학부는 학과를 두지 않고 코스를 두는 반면, 문학부는 학과 내부에서도 세부 전수(専修) 과정이 따로 있다.[29] 또한 다른 학부들은 수업당 취득 단위가 2단위인데, 공학부는 수업당 취득 단위가 1.5단위이다. 2011년도까지는 학부마다 수업 시작 시간조차 달랐다. 2012년도에는 일부 학부가 수업 시작 및 시간을 통일했지만, 2015년도부터 학부별로 학기제가 달라져 수업 시간의 통일도 의미를 잃게 되었다.
대학원 연구과(研究科)[30] 의 경우, 문과・이과로 나뉘어 공통 내용의 시험을 치루는 학부와는 달리, 입시 절차 및 입시 수험 과목이 연구과에 따라 전부 다르다. 다만 의외로 다른 연구과와의 연계는 강한 편으로, 윤강(輪講) 등을 통해 다른 연구과와 같이 발표회 등을 빈번히 진행하기도 한다. 물론 대학원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를 들어 생명과학 분야라면 종합문화연구과[31] , 이학계연구과[32] , 공학계연구과[33] , 농학생명과학연구과[34] , 의학계연구과[35] , 신영역창성과학연구과[36] 에서 모두 다루고 있는 등, 상세 연구만 조금씩 다른 공통된 주제를 여러 연구과에서 하고 있기에 당연지사라고 볼 수 있다.
5. 입시[편집]
5.1. 학부[편집]
- 입학 계열별 구분[37]
- 문과 1류 - 법학부
- 문과 2류 - 경제학부
- 문과 3류 - 문학부/교육학부/교양학부
- 이과 1류 - 공학부/이학부/약학부/농학부 (수학, 물리학 중심)
- 이과 2류 - 공학부/이학부/약학부/농학부 (화학, 생물학 중심)
- 이과 3류 - 의학부
- 타 대학들과는 다르게 학부, 학과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고, 위와 같이 6개 계열로 나눠서 교양학부로 일괄 모집한다. 모든 학부생은 2학년까지 교양학부에 소속된다. 위 구분은 해당 류에서 주로 진학하는 학부. 해당 류에 할당된 그 학부의 정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법학을 전공하고 싶다면 문과1류에 입학하여 법학부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과1류에는 법학부에 진학 가능한 정원이 아주 많이 할당되어 있으므로, 법학부에 가고 싶다면 학점 최하위가 아닌 이상 진학할 수 있다. 반대로 따지면 문과1류라도 학점 최하위권은 법학부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다만 예외적으로 이과3류는 학점 하위권 학생들에게 면접을 따로 실시하는 등 표면적인 절차를 거치지만 떨어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기에 원한다면 의학부 의학과로의 진학이 사실상 확정이다. 이유는 이과3류의 전원이 의학부 진학이 가능할 정도로 널널한 티오를 배정받기 때문이다. 물론, 이과3류로 입학해 놓고서는 다른 공부가 하고 싶다고 일부러 의학과가 아닌 다른 학부로 진학하는 기인도 존재한다.
- 전통적으로 문과계열에서는 문과1류의 편차치가 제일 높고[38] 그 다음에 문과2류, 문과3류 순서로 위치한다. 이과계열에서는 이과3류의 편차치가 압도적으로 높으며, 이과1류가 이과2류보다 근소하게 높은 편차치를 보인다. 문이과 통틀어서 도쿄대 이과3류를 일본 대학입시의 최고봉으로 친다. 드래곤 사쿠라에서는 무조건 도쿄대를 가라면서도 “이과3류에 붙는 놈들은 외계인들이야!”라며 아예 쳐다도 보지 말라는 대사가 나올 정도. 2015년도까지 존재했던 문이과 융합형 일반입시 후기모집에서도 해당 전형 합격자는 문과1류부터 이과2류까지 자유롭게 진학할 수 있었으나 이과3류만은 진학 불가였을만큼 격이 다른 취급이다. 도쿄대의 다른 과류에 입학해 놓고 이과3류로 가겠다고 반수하는 사람도 있다. 철록회(鉄緑会)라는 입시 학원이 이과3류 진학에서 매우 유명하다고 방송국에서 학원을 특집 방송으로 다룰 정도로 역시 이과3류에 대한 선망은 대단한 수준이다.
-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에 쏠리는 대학입시 경향과 비교하면, 일본은 이러한 현상이 비교적 덜한 편이다. 일본에서도 의학부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이미지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도쿄대 이과1류,2류보다 들어가기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는 곳은 도쿄대 이과3류와 교토대 의학부 2곳 뿐이다.[39] 일본에서 도쿄대라는 간판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 수 있는 부분. 물론 종신고용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비교적 안정적인 고용환경과, 의사와 같은 전문직[40] 이 아니더라도 일류기업 연구직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면 전문직 부럽지 않게 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41]
- 입학자 3명 중 2명(60~70%대) 정도가 현역 합격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현역 합격자의 비율은 여섯 개 모집단위 중 이과3류에서 가장 높다. 최근 2021년 기준으로도 이과3류는 현역 비율이 83.7%로, 다른 류를 압도한다. 카이세이 고등학교의 경우도 이과3류 합격자 10명 중 재수생은 한 명도 없이 다 현역이었다. 지난 10년간의 입시 결과를 살펴봐도 타 모집단위의 현역합격자 비율이 높았던 적도 3번밖에 없다. # 전형적인 될놈될, 야잘잘의 논리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 2015년 입시기준으로 도쿄에서 가장 편차치가 높은 카이세이 고등학교가 무려 34년 연속 최다진학자를 기록했다. 2015년 도쿄대학 입시에서 카이세이고가 185명, 쓰쿠바대학 코마바(筑駒)부속고등학교가 107명, 나다(灘)고등학교 92명의 순으로 많이 입학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과3류에 가장 많이 가는 건 나다고.[42] 그래서 의학과의 절반은 간사이 출신이다. 다른 학과는 1/7 정도가 간사이 출신인 것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편. 이로 인해 도쿄대 의대생의 표준어는 간사이 사투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43]
- 도쿄대학 부속 중학교 및 고등학교가 있지만, 여기 다녔다고 해서 와세다대학, 게이오기주쿠대학 등의 사립대학 부속학교 처럼 무(無)시험으로 자동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명문대 진학이 목표인 다른 대학 부속중고교와는 다르게, 여기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학적인 관찰이 주 목표이다.[44]
- 학비는 모든 학부 공통으로 연간 535,800엔(약 550만 원)이며 영미권 명문대에 비해서는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이는 대부분의 인서울 대학교와 비교하여도 상당히 저렴한 수준으로, 전공에 따라서는 인서울 대학교 사이에서도 국립대라서 등록금이 싼 서울대보다 낮을 정도.[45]
- 도쿄대 학부의 성비는 8:2 정도[46] 이다. 당연하지만, 그나마 있는 여학생들도 문과계열이 대부분이며 안 그래도 남초가 심한 이과계열은 더욱 심각하다. 일부 학과는 그야말로 한두 명 있을까 말까한 수준.[47] 어떻게든 여성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도쿄대는 2017년도부터 자택에서 통학하지 않는 여학생에 대해서 집세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학교 추천형 선발 입시에서도 남녀 성비차를 맞추기 위해 각 학교에서 남녀 1명씩만 추천을 받는다고 한다.
- 2021년도 기준, 도쿄대학 학부 일반입시 수험자 8,651명 중 3,086명이 합격했다. 참고로 일본 국립대학 입시의 경우, 복수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험자 수에 허수가 없다.[48] 도쿄대학 학부 경쟁율(배율)은 홈페이지 참조.
5.2. 대학원[편집]
- 한국과 같이 전기모집과 후기모집(재모집)으로 나뉘고 입학은 10월 혹은 4월 입학 중에 고를 수 있다.[49] 응시료는 30,000엔.[50] 다만 서류의 배송료, 입금 수수료, 토플 수험료, 입학시험 교통비 등은 별도로 든다.
- 입시 절차 및 입시 수험 과목은 연구과에 따라 전부 다르므로 해당 연구과 사이트에 접속하여 절차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이다. 대부분의 연구과의 비슷한 내용만 간단히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 일부 연구과에서는 유학생 특별 입시 전형을 실시하고 있어, 일반입시보다 비교적 쉽게 원하는 연구실에 배속받을 수 있다.[54] 하지만, 외국 국적일지라도 일본의 고등학교, 혹은 일본의 대학을 졸업했다면 유학생 전형은 이용할 수 없다.
- 외국대학 출신의 대학원 진학자들은 연구생이라는 신분으로 입학 전에 먼저 반년~1년 정도 연구실에 소속되어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대학원 입학 전에 연구실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연구방법론이나 연구를 위한 일본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이다. 또한 대학원 입학을 위해서는 필기 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에 그 시험의 족보(기출문제)를 받고 시험 공부를 하는 기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이공계의 경우에도 이 ‘연구생’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대학 이공계의 경우 학부 3학년 중반부터나 늦어도 4학년때부터는 개별 연구실[55] 에 소속되어 졸업논문을 위한 실험을 진행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이공계 학부를 나오면 그 전공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은 학부생 레벨일지라도, 학부생활 중 1년 가까이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한 분야에 관한 연구만 했으므로,[56] 해당 전공에 대한 연구 수행 능력 만큼은 한국의 석사 학위에 비견하는 레벨을 가지고 석사 과정에 진학한다. 그러나 외국대학 학부 출신인 경우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에[57] 연구생을 거치는 것을 권장되곤 한다.
-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외국대학 출신자도 마찬가지로 입학하기 전에 반년~1년 간 연구생으로 연구실에 소속되어 해당 연구를 맛보거나 관련 내용 등을 공부하면서 입학 준비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며, 그 과정에서 지도교수가 자질이 없다고 판단하면 박사 과정 진학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58]
- 공학계연구과, 정보이공학계연구과, 신영역창성과학연구과 등 주로 이공계열 연구과의 경우, 도쿄대학 직속의 연구실이 아닌, 이화학연구소, JAXA[59] , 물질·재료 연구기구 등의 여러 제휴 연구기관 및 연구소의 연구실에서 연구하여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연구실 별로도 다른 연구과와 이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연구실이라도 여러 연구과 소속으로 입학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60]
- 도쿄대학 이학부의 경우 석사 진학률이 무려 92.7%으로, 일본에서 가장 높다. 사실 도쿄대뿐만 아니라 일본의 특이한 점은 이공계라면 거의 대부분 석사에 진학한다는 점이다. 참고 링크를 보면, 구제국대학 수준의 이과는 대학원 진학률이 80~90% 정도에, 특히 공대의 경우 일본 25위권 밖의 대학도 석사 진학률이 무려 65%가 넘어간다. 그 이유는 일본의 대기업은 석사 학위 이상의 이공계 학생을 상당히 선호하기 때문으로, 이 때문에 최상위권 대학의 석사 대학원은 심지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재수를 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반면, 문과 계열은 대학원 진학률이 반대로 한국보다도 낮은데, 이는 문과는 대학원을 졸업해도 기업에서 그닥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2018년도 기준 도쿄대학 대학원 입시의 경우, 석사는 6,490명 중 2,959명이 합격했고, 박사는 1,585명 중 1,126명이 합격, 전문대학원은 891명 중 330명이 합격했다.[61]
- 학비는 모든 연구과 공통으로 석사는 연간 535,800엔(약 550만원)이고, 박사는 조금 더 저렴한 520,800엔. 다만 법과대학원은 804,000엔으로 유일하게 다른 과보다 비싼 편.[62]
6. 캠퍼스[편집]
자세한 내용은 도쿄대학/캠퍼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코마바 지구 캠퍼스
- 코마바 I 캠퍼스
- 코마바 II 캠퍼스
- 코마바 III 캠퍼스
- 혼고 지구 캠퍼스
- 혼고 캠퍼스
- 아사노 캠퍼스
- 야요이 캠퍼스
- 카시와 지구 캠퍼스
- 카시와 캠퍼스
- 카시와 II 캠퍼스
- 카시와노하에키마에 캠퍼스
- 시로카네다이 캠퍼스
- 나카노 캠퍼스
- 코이시카와 캠퍼스
- 타나시 캠퍼스
- 케미가와 캠퍼스
- 토카이무라 캠퍼스
- 미타카 캠퍼스
-
니시치바 캠퍼스 -
롯폰기 캠퍼스
일단 학부를 입학하면 모든 학생들은 코마바 캠퍼스에 위치한 교양학부에 소속되어서 2년간 다니다가, 2학년 겨울학기부터는 전공과목을 들을 수 있는 혼고 캠퍼스로 이동하게 되고[68] , 4학년부터는 카시와 캠퍼스, 혼고 캠퍼스, 코마바 캠퍼스 등에 소속되어 있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졸업논문을 작성한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마찬가지로 여러 캠퍼스에 분산되어 있는 연구실, 혹은 여러 부속 연구소에 소속되어 전문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다만 도쿄대학의 캠퍼스 내에 위치한 연구실이나 연구소가 아닌, 물질·재료 연구기구,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이화학연구소 등의 제휴 연구기구 및 연구소에 소속되는 경우도 있다.[69]
7. 국제 교류[편집]
8. 관련 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1. 일본인[편집]
나무위키에 기재된 인물 중에는 정치인이 많은지라 이 목록에는 법학부가 압도적으로 많다.
- 가라타니 고진 - 경제학부 - 사상가, 비평가, 작가.
- 가메이 시즈카 - 경제학부 - 정치인.
- 가미카와 요코 - 교양학부 국제관계론코스 - 정치인.
- 가와바타 야스나리 - 문학부 국문과 -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 가지타 다카아키 - 이학계연구과 물리학전공 석사 및 박사 - 201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가타야마 데츠 - 법학부 - 제46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 법학부 - 정치인.
- 가타야마 사쓰키 - 법학부 - 정치인.
- 가타야마 요시히로 - 정치인.
- 가토 가쓰노부 - 경제학부 - 前 후생노동대신, 現 관방장관.
- 가토 다카아키 - 법학부 - 제24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고다이라 구니히코 - 이학부 수학과, 물리학과 - 1954년 필즈상 수상자.
- 고바야시 다카유키 - 법학부 - 기시다 내각 경제안보담당대신.
- 고시바 마사토시 - 이학부 물리학과, 이학 석사 - 200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구로다 하루히코 - 법학부 - 前 일본은행 총재, 前 아시아개발은행 총재.
- 구레 겐 - 의과대학 - 의학자. 척수 부교감 신경 발견. 노벨생리학·의학상 최다 후보.[71]
- 구마 겐고 - 공학부 건축학과 - 건축가.
- 규마 후미오 - 법학부 - 방위대신.
- 기라 슈지 - 법학부 - 정치인.
- 기시 노부스케 - 법학부 - 제56~57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기시다 후미타케 - 법학부 - 정치인. 기시다 후미오 제100·101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의 부친.
- 기우치 미노루 - 교양학부 국제관계론코스 - 정치인.
- 기타무라 시게루 - 법학부 - 내각정보조사실 내각 정보관, 국가안전보장국(NSS) 국장.
- 기타자토 시바사부로 - 도쿄의학교[72] - 의학자[73] 로, 차기 일본 1000엔 지폐의 인물이다. 일본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 후보.(1901년)
- 기하라 세이지 - 법학부 - 정치인. 중의원 의원.
- 나쓰메 소세키 - 문학부 영문과 - 소설가. 메이지 시대의 대문호. 前 일본 1000엔 지폐 인물.
- 나카무라 료스케 - 애니메이션 감독 & 연출가.
- 나카소네 야스히로 - 법학부 - 제71~73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나카야마 나리아키 - 정치인.
- 난부 요이치로 - 이학부 물리학과, 이학박사[74] -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네기시 에이이치 - 공학부 응용화학과 - 201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 노구치 히데요 - 이학 박사 - 세균학자, 병리학자. 現 일본 1000엔 지폐 인물.
- 노다 다케시 - 법학부 - 정치인.
- 니사카 요시노부 - 정치인.
- 니시무라 야스토시 - 법학부 - 정치인.
- 니시와키 다카토시 - 정치인. 교토부지사.
- 니시지마 사다오 - 문학부 사학과 - 일본의 역사학자, 중국사 연구자.
- 다니가키 사다카즈 - 법학부 - 자유민주당 총재.
- 다마키 유이치로 - 법학부 - 정치인.
- 다자이 오사무 - 불문학과 - 전후 무뢰파(無賴派)를 대표하는 일본의 소설가.
- 다카하시 토오루 - 한문학과 - 경성제국대학 조선어조선문학과 조선문학분야의 교수 역임.
- 단게 겐조 - 공학부 건축과, 공학 박사 - 1987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 닷소 다쿠야 - 법학부 - 現 이와테현지사.
- 도고 시게노리 - 태평양 전쟁시 외무대신. 한국혈통.
- 도모나가 신이치로 - 이학박사 -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도미타 고지 - 법학부 - 주한 일본대사.
- 도쓰카 요지 - 이학부 물리학과, 이학박사[75] - 중성미자의 진동 관측. 2008년 사망으로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놓쳤다.[76][77]
- 도쿠가와 이에마사 - 법학부 - 관직은 터키대사 등 일본 제국의 정치인으로 제17대 도쿠가와가 당주이자 제13대 귀족원 의장
- 마나베 슈쿠로 - 이학부 지구물리학과, 수물계연구과 이학 박사 - 20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 마루야마 다쓰야 - 법학부 - 정치인.
- 마루야마 호다카 - 경제학부 - 정치인.
- 마루카와 다마요 - 경제학부 - 정치인.
- 마사오카 시키 - 철학과→국문과 전과 / 중퇴 - 메이지 시대의 시인. 하이쿠, 단카, 소설, 평론, 수필, 신체시 등 다양한 작품 활동.
- 마사코 황후 - 법학부[78] -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편입학했다.
- 마스다 히로야 - 법학부 - 정치인.
- 마쓰모토 다케아키 - 법학부 - 정치인.
- 마쓰시마 미도리 - 경제학부 - 정치인.
- 마쓰카와 루이 - 법학부 - 정치인
- 마츠모토 토시오 - 문학부 - 영화 감독.
- 마치무라 노부타카 - 경제학부 - 정치인.
- 마키 후미히코 - 공학부 건축학과 - 1993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 모리 다메조 - 박물과 - 경성제국대학 교수. 한반도의 각종 식생들을 연구하여[79] 한국 생물학계에 큰 역할을 했다.
- 모리 마사히로(森政弘) - 공학 박사 - 로봇공학자. 불쾌한 골짜기 현상 제창.
- 모리야 오사무(守谷治) - 경제산업성 통상무역 전문 고위 관료. 노리히토 친왕의 3녀인 모리야 아야코의 시아버지.
- 모리시타 요시코 -일본의 각본가. 문학부 종교학과 출신.
- 미무라 신고 - 문학부 국문학과 - 정치인.
- 미시마 유키오 - 법학부 - 소설가, 극작가, 사상가/이론가. 다테노카이를 조직하고 미시마 사건 때 할복했다.
- 미야자와 기이치 - 법학부 - 제78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미야자와 요이치 - 법학부 - 참의원. 경제산업대신 역임. 미야자와 기이치의 조카.
-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 쇼와 덴노의 막내동생이자 아키히토 상황의 숙부. 문학부 사학과.
- 사사키 노조무 - 법학부 - 성우. 50대의 만학도로 들어가 졸업했다.
- 사이온지 긴모치 - 카이세이학교[80] - 제12·14대 내각총리대신.
- 사이토 모키치 - 의학 박사 - 시인, 정신과 의사.
- 사이토 미노루 - 법학부 - 경찰공무원. 96대 경시총감.
- 사토 미키오 - 이학부 수학과 - 2003년 울프상 수상자.
- 사토 에이사쿠 - 법학부 법률학과 - 197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제61~63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센고쿠 요시토 - 법학부 중퇴 - 정치인.
- 소 다케유키 - 문학부 영문과 - 덕혜옹주의 전 남편으로 유명한 시인, 영문학자.[81]
- 쇼 히로시 - 문학부 동양사학과 - 제22대 쇼 가문 당주.
- 스기야마 코이치 - 약학 / 교육심리학 - 작곡가.
- 스다 요시키 - 작사.
- 스미노 하야토 - 공학부 계수공학과, 정보이공학계연구과 석사 - 피아니스트 겸 유튜버. 제18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3라운드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 스즈키 게이스케 - 법학부 - 정치인
- 스즈키 노리카즈 - 법학부 - 정치인.
- 스즈키 우메타로 - 농과대학 - 세계 최초로 비타민B1을 발견. 1929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놓쳤다.[82]
- 스즈키 에이케이 - 경제학부 - 정치인.
- 쓰무라 게이스케 - 법학부 - 정치인.
- 시가 나오야 - 국문과 중퇴 - 소설가.
- 시가 슈조 - 법학부 - 일본의 법학자. 특히 중국 법제사 연구자이다.
- 시게토쿠 가즈히코 - 정치인.
- 시나 다케시 - 법학부 - 정치인.
- 시데하라 기주로 - 법학부 - 제44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시무라 고로 - 이학부 수학과, 이학박사 - 일본의 수학자. 오사카대학 및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 시바야마 마사히코 - 법학부 - 변호사, 정치인.
- 시부야 세츠코(渋谷節子) - 마사코 황후의 여동생. 오와다 히사시의 3녀 중 막내.
- 시이 가즈오 - 공학부 물리공학과 - 일본 공산당 중앙위원장.
- 시오자키 야스히사 - 교양학부 미국학전공 - 정치인.
- 시오자키 아키히사 - 법학부 - 정치인이며 위 시오자키 야스히사의 장남.
- 시오타 고이치 - 법학부 - 정치인.
- 스가와라 미사오 - 제2공학부 토목공학과, 공학 박사 - 일본의 철도 기술공학자이자 콘크리트 토목공학자.
- 아라이 사토시 - 정치인.
- 아라이 쇼고 - 법학부 - 정치인.
- 아리가 나가오 - 문학부 철학과 - 법학자, 사회학자. 일본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후보.(1909년)
- 아베 간 - 법학부 - 아베 신조의 조부. 정치인.
- 아베 도모코 - 의학부 - 의사 및 정치인.
- 아베 신타로 - 법학부 - 아베 신조의 부친. 정치인.
- 아시다 히토시 - 제47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아오키 마사히로 - 기타리스트.
- 아이보시 고이치 - 교양학부 - 현 주한 일본대사.
- 아즈마 히로키 - 소설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영문학과 - 다이쇼 시대의 대표 작가. 그의 이름을 딴 아쿠타가와상도 제정되었다.
- 야마기와 가쓰사부로 - 의학부 - 암의 유발 과정을 해명. ‘사실상’ 19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83][84]
- 야마다 미키 - 법학부 - 정치인.
- 야마오 시오리 - 법학부 - 검사 출신 정치인.
- 야마시타 다카시 - 법학부 - 검사 출신 정치인.
- 야마시타 마코토 - 문학부 불문과[85] - 제21대 나라현지사
- 야마조에 타쿠 - 일본 공산당의 일본 참의원.
- 에다 겐지 - 법학부 - 정치인.
- 에다 사쓰키 - 법학부 - 정치인.
- 에사키 레오나 - 이학부 물리학과 - 197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오가와 마사카즈 - 법학부 -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 오구라 다케노스케 - 법학부 - 문화재 수집가.
- 오구라 마사노부 - 법학부 - 도쿄도 제23구 중의원.
- 오구라 신페이 - 고대 일본어 및 한국어를 전공한 언어학자. 경성제국대학 및 도쿄제국대학 교수 역임.
- 오노데라 이쓰노리 - 법학정치학연구과 석사 - 제12, 17, 18대 방위대신.
- 오무라 사토시 - 약학 박사 -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 오무라 히데아키 - 법학부 - 정치인.
- 오스미 요시노리 - 교양학부 -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 오에 겐자부로 - 문학부 불문과 -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恒) - 외교관, 국제사법재판소장. 마사코 황후의 아버지. 아이코 공주의 외할아버지.
- 오자와 사키히토 - 법학부 - 정치인.
- 오자와 켄지 - 문학부 - 싱어송라이터, 작가, 사회운동가.
- 오카다 가쓰야 - 법학부 - 정치인.
- 와시오 에이이치로 - 경제학부 - 국회의원
- 와카쓰키 레이지로 - 법학부 - 제25, 28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와타나베 츄메이 - 작곡가.
- 요네야마 류이치 - 의학부 - 정치인, 의사, 변호사.
- 요사노 가오루 - 법학부 - 정치인.
- 요시다 시게루 - 제45, 48~51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요시다 켄이치로 - 경제학부 - 소니 CEO.
- 요비노리 타쿠미 - 종합문화연구과 석사 - 유튜버.
- 요코미치 다카히로 - 정치인.
- 우에노 에이자부로(上野英三郎) - 농과대학 농학과 - 도쿄제국대학 농학부 교수. 충견 하치코의 주인.[86]
-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 이학부 수학과, 경제학부 - 現 일본은행 총재, 도쿄대학 경제학부 명예교수
- 우에무라 겐타로 - 항공자위대 항공막료장.
- 우츠노미야 타카토 - 법학부 - 주식회사 포켓몬의 COO
- 유우키 유우 - 의학부 의학과 - 심료내과 의사, 스토리작가.
- 이노우에 신지 - 법학부 - 정치인.
- 이데 요우스케 - 작사. 마작을 여러 방식으로 보급.
- 이도 도시조 - 법학부 - 정치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법학부 - 정치인.
- 이바라기 류타 - 공학부 - 정치인.
- 이소자키 아라타 - 공학부 건축학과, 공학 박사 - 201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 이소자키 요시히코 - 법학부 - 정치인.
- 이시도 토시로 - 문학부 - 각본가.
- 이시이 게이이치 - 공학부 - 정치인.
- 이와쿠니 데쓴도 - 법학부 - 기업인, 정치인. 동서대학교 석좌교수.
- 이케다 기쿠나에 - 이학부 화학과, 이학 박사 - 감칠맛과 MSG를 발견한 화학자.
- 이토 기요시 - 이학부 수학과 - 1987년 울프상, 2006년 가우스상 수상자.
- 이토 토요 - 공학부 건축학과 - 2013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 조지마 고리키 - 농학부 축산수의학과 - 식품산업노동조합협의회 의장, 정치인.
- 카가와 테루유키 - 사회심리학 - 배우.
- 카사하라 켄지(笠原健治) - mixi의 창립자. 도쿄대학 출신이 확인된 부자들 중에선 최고 부자.[87]
- 카시와라 마사키 - 이학부 수학과 - 2018년 천 메달 수상자.
- 카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 - 가쿠슈인대학 경제학부 교수. 키코 비의 아버지이며 코무로 마코, 카코 공주, 히사히토 친왕의 외할아버지.
- 카와쿠보 신타로 - 일본의 만화잡지 별책 소년 매거진 편집장
- 키무라 유이토 - 신영역창성과학연구과 석사 - Cygames 소속 전무이사.
- 코시바 마사토시 - 이학부 물리학과 - 200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타바타 이즈미 - 교육학부 - 現 리츠메이칸대학 스포츠건강과학부 교수.[88]
- 타카토 루이 - 만화가.
- 타카하타 이사오 - 문학부 불문과 -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 애니메이션 감독 중 한 명.
- 토모나가 신이치로 - 이학 박사 -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토키도 - 프로게이머.[89]
- 하나무라 요시키 - 법학부 법률과 - 법학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
- 하라구치 가즈히로 - 정치인.
- 하마다 사토시 - 정치인.
- 하마구치 류스케 - 문학부 - 영화 감독.
- 하마구치 오사치 - 법학부 - 제27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하스미 시게히코 - 문학부 - 영화 평론가. 제26대 도쿄대학 총장
- 하야시 요시마사 - 법학부 - 現 외무대신.
- 하차 사하치로 - 전염병연구소[90] - 살바르산(일명 606호)[91] 개발. 일본인 최초의 노벨화학상 후보.(1911년)[92]
- 하타 야와라 - 법학부 - 사이타마현지사.
- 하토야마 구니오 - 법학부 - 유키오의 동생, 정치인.
- 하토야마 유키오 - 공학부 계수공학과 - 제93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치로의 손자.
- 하토야마 이이치로 - 법학부 - 前 외무대신, 이치로의 아들, 유키오의 부친.
- 하토야마 이치로 - 법학부 영미법학과 - 제52-54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유키오의 조부.
- 하토야마 카즈오 - 카이세이학교[93] - 이치로의 부친이자 유키오의 증조부.
- 호리에 타카후미 - 문학부 - 기업인, 저술가, 방송인.
- 호리코시 지로 - 공학부 항공학과 - 항공 기술자 및 교수.
- 호소다 히로유키 - 법학부 - 정치인.
- 혼다 코타로 - 이과대학 물리학과 - 야금학, 재료공학의 선구자. 도호쿠제국대학 총장. 일본인 최초의 노벨물리학상 후보.(1932년)
- 후루타 하지메 - 정치인.
- 후루카와 모토히사 - 법학부 - 정치인.
- 후루카와 요시히사 - 법학부 - 정치인.
- 후쿠다 다케오 - 법학부 - 제67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후쿠시마 미즈호 - 법학부 - 일본 사회민주당 부당수.
- 히라누마 기이치로 - 법학부 - 제35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히라오카 히데오 - 법학부 - 정치인.
- 히라이 신지 - 법학부 - 돗토리현지사.
- 히라타 아키히코 - 실내디자인과 - 배우.
- 히로타 고키 - 32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히카사 준 - 법학부 - 특촬물 프로듀서
8.2. 한국인[편집]
- 강창일 - 인문사회학 석사, 박사 - 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주일대사.(2021.01.22 ~ 현재)
- 계광순 - 법학부 - 정치인.
- 고병익 - 동양사학과 중퇴[94] - 제14대 서울대학교 총장.
- 구태회 - 법학부 중퇴[95] - 정치인, 전 LS그룹 명예회장.
- 권성주 - 지역문화연구학 박사 -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96]
- 권종호 - 법학박사 -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총장 역임
- 권중휘 - 영문과 -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 및 총장, 한국외국어대학 학장 역임.
- 김경주(대학교수) - 언어정보학 석사 및 박사 - 도카이대학 언어학과 준교수.
- 김규남(1929) - 법학 박사 - 정치인,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김낙년 - 경제학 박사 - 現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재직.
- 김사량 - 문학부 독문학과 - 월북 작가.
- 김상협 - 법학부 정치학 전공 - 고려대학교 총장, 대한적십자사 회장, 국무총리 역임.
- 김성용 - 법학부 정치학과 - 前 관료, 정치인.
- 김수근 - 건축학 석사 -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초대 학장.
- 김영구 - 법학부 정치학과 - 고려대, 동국대, 서울대 교수, 내무부(現 행정자치부) 정무차관.
- 김영섭 - 지구물리학 박사[97] - 前 부경대학교 총장.
- 김용옥 - 중국철학 석사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연구소,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역임.
- 김재휘 - 사회심리학과 -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재임, 2016년 한국심리학회장.
- 김종원 - 지질학과 - 경성제국대학, 서울대학교 교수 역임.
- 김준연 - 법학부 - 법무부장관, 유엔 한국 대표 역임
- 김중태 - 법학부 정치학과 - 정치인.
- 김철 - 역사철학과 - 정치인. 사회민주주의자.
- 나성연 - 의학부 - 외과의사. 소설가 나도향의 부친.
- 도상록 - 이학부 - 월북 물리학자, 전공은 이론입자물리학. 북한의 핵개발 중심인물. 서울대학교 및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 박석윤 - 법학부 정치학과 - 야구선수, 야구 감독.
- 박종태 - 법학부 졸업 - 前 국회의원.
- 박영준 - 국제정치학 박사 -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 백남준 - 문학부 미술사학과 - 비디오 아트 예술가, 괴테 메달 수상.
- 백인제 - 의학 박사 - 외과의사,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 설립자.
- 신도성 - 법학부 정치학과 - 정치학자, 정치인. 대구대학(現 영남대학교) 총장.
- 신상초 - 법학부 법률학과 중퇴[98] - 법학자, 언론인, 정치인
- 안수한 - 공학 박사 - 토목공학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 안익조 - 농학부 수의학과 - 안익태의 형. 이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졸업. 만주국 군의관, 대한민국 헌병. 6.25 전쟁 중 총살 당함.
- 오용국 - 법제학회 - 정치인. 제주도 제헌 국회의원.
- 우장춘 - 농학 박사 - 농학자, 육종학자. 한국인 2호 농학박사이다.[99]
- 유기천 - 법학부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와 총장 역임.
- 유억겸 - 법학부 - 연희전문학교 교장, 대한체육회 회장 등.
- 육지수 - 경제학과 - 연희전문학교, 평양사범학교,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역임.
- 윤태동 - 문학부 철학과 - 경성제국대학 교수, 만주국 간도성장 역임.
- 이세기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교수, 정치인, 관료.
- 이양하 - 영문과 - 연희전문학교,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역임.
- 이인기 - 문학부 교육학과 - 서울대학교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총장, 영남대학교 총장 역임.
- 이정환 - 경제학부 - 부산대학교, 연세대학교 교수, 재무부장관, 한국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
- 이종구 - 사회학과 - 성공회대학교 교수.
- 이충영 - 법학부 - 판사, 변호사.
- 이한기 - 법학부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감사원장, 국무총리 서리 역임.
- 이호 - 법학부 - 법무부장관 역임.
- 이효상 - 문학부 독문과 - 3선 개헌 당시 국회의장 역임.
- 이훈구 - 농학부 농학과 - 정치인, 단국대학교 학장, 성균관대학교 총장.
- 장경근 - 법학부 - 내무부장관, 국회의원 역임
- 장철수 - 법학부 - 외교관, 경북대 교수. 일제강점기 고등문관시험 외교과에 합격한 유일한 조선인.
- 정광현 - 법학부 - 이화여자전문학교, 연희전문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역임
- 조병한 - 법학부 - 정치인.
- 주요한 - 구제제일고등학교 - 부흥부 및 상공부 장관 역임. 대한해운공사 초대 사장.
- 지상욱 - 건축공학 박사 - 연세대학교 교수, 국회의원(20대), 여의도연구원장
- 최윤식 - 수학과. 서울대학교 수학과 교수, 대한수학회 초대 회장
- 최하영 - 법학부 정치학과 - 공무원, 정치인.
- 한복 - 법학부 - 판사, 변호사.
- 행창 - 대학원 석사. 승려.
- 호사카 유지 - 공학부 금속공학과 - 2003년 한국 귀화. 정치학자, 세종대학교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
8.3. 교직원[100][편집]
- 강상중 - 정치학자. 한국인 최초의 도쿄대학 교수.
- 김영호 - 유한대학교 총장,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등 역임.
- 김용운 - 객원교수. 수학자.
- 니토베 이나조 - 사상가, 구 5000엔 지폐 인물.
- 다나카 고이치 - 도쿄대학 의과학연구소 -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
- 레오니트 후르비치 - 도쿄대학 객원교수(1980). 200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 미야지마 히로시 - 일본의 역사학자, 한국사학자.[101]
- 볼프강 파울 - 도쿄대학 객원강사. 198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 스가 히로아키(菅裕明) - 현 이학계연구과 교수 - 2023년 울프상 (화학부문) 수상.#
- 안도 타다오 - 현대건축가. 1995년 프리츠커상 수상.
- 염한웅 - 도쿄대학 전임강사. 대한민국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 앤서니 레깃 - 200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 이광형 - 초빙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제17대 총장.
- 이노세 나오키 - 인문사회계연구과 객원교수 - 작가, 정치인.
- 존 밀른 - 공부대학교[102] 지질학과 교수. 현대 지진학의 아버지.
- 제라드 무루 - 201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 존 만지로 - 카이세이학교 교수. 에도 시대의 교육자.
- 찰스 타운스 - 도쿄대학 객원연구원. 196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 쿠로다 아키노부 -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중국사 중심의 세계화폐사 전공.
- 코이즈미 야쿠모 - 도쿄제국대학 교수. 소설가.
- 혼조 다스쿠(本庶 佑) - 의학부 조교수.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 후지타 마코토(藤田 誠) - 현 공학계연구과 교수. 네이처, 사이언스 게재 수 일본 최다. 2018년 울프상(화학부분) 수상.
- 해리 마코위츠 - 도쿄대학 객원교수. 199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 히로이 이사미 - 도쿄제국대학 교수. 토목공학자. 일본 항만공학의 아버지.
- 마윈 - 객원교수
9. 기타[편집]
도쿄대는 학자와 관료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수업을 진행한다"며 "이것이 와세다대 등 실용주의적인 학풍을 가진 다른 대학과 (도쿄대학이) 가장 크게 차별되는 부분 #
- 국제적인 종합 평가로는 2024년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28위, 2023년 ARWU에서 27위, 2024년 THE 세계 대학 랭킹에서 29위, 2023년 CWUR 세계 대학 랭킹에서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학술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에선 2023년 15위를 기록했다.[103]
- 출신 인물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의 경우, 포브스와 뉴욕 타임스가 공동조사한 ‘미국의 기업이 선호하는 대학’에서 10위, 세계 고용선호대학 평가 GEURS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2019년 7위, 2020년 6위, 2021년 6위, 2022년 7위 등을 차지하고 있다.
- 일본의 슈퍼글로벌대학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도쿄대학의 학부/연구과를 졸업하면 일본 고도인재 외국인 대상 포인트 우대제도 신청 시 가산점 10점을 받을 수 있다. 즉, 해당대학 졸업시 어지간하면 요건 점수 70점을 바로 채우게 되어 있어서 일본 영주권이 빠른 시간으로 나온다.
- 동대제국주의(東大帝國主義)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히 정재관계에서는 오랜 세월 누적된 차이로 만년 2위인 교토대학 그리고 정재계 인맥 측면에서는 2-3위를 차지하기도 하는 소케이조차 완전히 그 위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104] 중퇴자 2명[105] 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17명의 총리대신[106] 을 배출하여 총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나, 2000년대 전후로 신제 도쿄대학 출신은 하토야마 유키오밖에 없다. 즉, 도쿄대의 학벌권력이라는 건 관료적 권력 구조의 실무진을 도쿄대 출신 네트워크가 지배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업무에 정통한 사무차관이라거나, 그 이하 각 국장, 과장 등에 이르기까지 관료조직은 대부분 도쿄대 출신자의 손에 장악된 상태라는 것이다.[107] 실제로 초선 국회의원들을 모아 놓고 관료들이 공부를 시켜 실무를 파악시키는 관행이 있을 정도. 어차피 일본은 관료 지배 국가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관료의 힘이 센 나라고, 일본 대기업들도 결국은 관료 조직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조직 구성이다. 엄밀히 말하면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학이 당시의 제국대학으로, 도쿄대학은 그 중에서도 최초이기에 그저 목적에 충실한 것뿐이다. 하지만 실상 관료의 이미지를 만든 건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들이고(#), 문학부 같은 경우는 전통적으로 학구파적 성향이 강하고 관료적 풍토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일본의 근대 문학가들 중 상당수가 도쿄대학 출신인 점을 생각해 보자. 역사학의 경우 도쿄대는 마르크스주의 사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작품에서의 도쿄대학
- 국내에 도쿄대학의 유명세를 일려 준 것은 역시 만화 동경대학 이야기. 일본 사회에서의 동경대학의 위치를 절절히 전해 주고 있다.
- GO! 히로미 GO!가 도쿄대학을 배경으로 하는 캠퍼스물 순정만화다.
- 2000년대말 들어 유명한 것은 드래곤 사쿠라(한국명: 꼴찌! 동경대 가다!). 게다가 여기서는 동경대학이 여타 명문대학들보다 입학하기 쉽다는 등의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그냥 쉽다는 것이 아니라 입시 문제의 패턴이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대비를 해야할지가 타 대학보다 명확하다는 이야기이다.[108] 절대적인 난이도에서는 넘사벽이지만 딴 생각할 필요없이 공부, 특히 정해진 패턴의 반복학습에 꾸준히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하단 의미.
- 러브히나에서는 작품 주요 떡밥으로 작용한다. 주인공 케이타로가 여자친구와 함께 가기로 약속한 대학교. 주인공들의 목표가 도쿄대학 입학이며, 그 이유는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람과 도쿄대학에 가면 행복해 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마지막 에피소드 종료후 나온 에필로그에 따르면 이들이 거주지인 히나타장은 거주 중인 모든 인물들이 도쿄대에 입학하며 히나타장은 목욕만 하면 도쿄대에 입학하는 장소로 알려지게 된 듯하다.
- 데스노트의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가 센터시험 만점[109] 을 받고 입학했다. 범죄자가 등장하는 만화에 실재 대학 이름을 쓰기는 좀 그랬는지 이름은 토오대학(東応大学)으로 살짝 변경되었다. L도 같이 입학했지만 키라 의혹이 있는 라이토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만 입학했기 때문에 얼마 후에 그만뒀다. 동 작가의 작품인 바쿠만에서도 아오키 유리코와 이와세 아이코가 재학중인 것으로 나온다.
- 이 대학의 건물을 모티브로 한 건지는 모르지만 단간론파 시리즈에 등장하는 키보가미네 학원의 모습이 야스다 강당과 엄청나게 비슷하게 생겼다.
- 크로스로드 :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Z회 CM 및 이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소설에 등장. 주인공인 쿠라하시 미호와 타카무라 쇼타가 도쿄대학 문과1류에 지원해 대학별고사를 치른다. 작중 직접 언급되지는 않으며, 그 유명한 '적갈색 시계탑'이 비춰지거나 언급된다.
- 키테레츠 대백과 : 박호구가 7수를[110] 한 끝에 도쿄대학에 결국 합격한다.[111]
- 고독한 미식가의 2권, 8화에서 도쿄대학 혼고캠퍼스를 방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 오자마녀 도레미(라이트 노벨)에서 마키하타야마 하나가 도쿄대 의대에 진학하는 것으로 나온다.
- 일본 드라마 SP(SP 警視庁警備部警護課第四係) : 관료 양성소라 불리는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의 국가 공무원 1종 시험 합격 캐리어 관료들이 뭉친 사조직(법학부 시절에 정치경제연구 서클이었던 조직) "웅상회(雄翔会)" 가 최종보스격 빌런 집단으로 등장한다.[112]
- 치하야후루의 현 명인 스오 히사시와 호쿠오 학원의 전 주장이었던 스도 아키히토가 다니는 대학이다. 주인공들이 3학년이 된 현 시점에서 스오 명인은 4번의 유급 끝에 졸업, 스도는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작중 도쿄대 카루타부의 연습장은 분쿄구의 시라야마 회관인데, 스도가 일부러 이 사실을 전해주지 않아 치하야와 타이치가 도쿄대 캠퍼스에 잘못 갔을 때 야스다 강당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 도쿄대의 이미지
- 도쿄대생 스스로의 반응
과거 대부분의 도쿄대학 재학생들이 상대가 대학을 물었을 때 “일단은 도쿄대입니다.”(一応、東大。)라고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도쿄대학이라는 지위를 보고 판단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더 봐주었으면 하는 뜻에서 나온 말로 다양한 매체에서 언급되었으며, 관련 출판물이 나오기도 하였다. 일본에서 도쿄대학이 가지는 의미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타 대학의 친구나 타인과의 대화에서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신경 쓰는 사람이 많다.
이와 관련해서 노구치 유키오[113] 교수는 초학습법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써 놓았는데, 도쿄대를 나온 중년의 명퇴자가 재취업 전화 문의에서 면접자가 특기나 경력 등을 물어 보아도 “일단은 도쿄대생입니다만...”을 반복하다 결국 전화를 끊어 버렸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서 노구치 유키오[113] 교수는 초학습법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써 놓았는데, 도쿄대를 나온 중년의 명퇴자가 재취업 전화 문의에서 면접자가 특기나 경력 등을 물어 보아도 “일단은 도쿄대생입니다만...”을 반복하다 결국 전화를 끊어 버렸다는 내용이다.
- 과연 도쿄대생[114]
사실상 사라진 위의 내용과는 달리 이쪽은 지금도 꽤나 쓰이는 단어. 공부만 하고 다른 건 모르는 촌티 나는 범생이를 가리키는 마이너스 이미지의 단어이다. 구체적으로 체크무늬 셔츠를 청바지 안에 넣어 입고 하얀 스니커즈를 신는다.
- 암기의 제왕, 그러나 창의력은 꽝
일본 입시 교육이 기본적으로 암기 위주에 학생들 부담 줄인다고 과목을 엄청나게 줄여 버린 데다가 도쿄대의 학풍이 “여긴 관료 양성하려고 세운 대학이니까 너희도 관료가 될 놈들이다. 그러니 의문 이딴 거 품지 말고 그냥 닥치고 교수가 말하는 건 다 받아적고 외워라.”여서 비판을 많이 받는다. 특히 문과1류(법대) 계열 학생들은 너무 심각해서 도쿄대학 불문과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타치바나 타카시가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한 전력이 있다.
- 일부에서는 발음이 같은 점을 이용하여 頭狂()大学라고 말하기도 한다. 직역하자면 머리 돌은 대학.
- 사건 사고
<:>
[1] 전신 기관인 텐몬가타(天文方)는 1684년 설립.[2] 연 2회 발행되는 학내 홍보지의 명칭이기도 하다.[3] 도쿄대학 동문 제외[4] 분쿄(文京, 학문의 수도)라는 이름 탄생에도 영향을 주었다. 대학 캠퍼스는 분쿄구(혼고캠퍼스) 이외에도 메구로구(코마바캠퍼스), 카시와시(카시와캠퍼스) 등에 분산되어 있다. 참고로 돈지랄로 유명한 토끼팀 홈구장인 도쿄 돔도 여기에 있다.[5] 구제국대학들 중 유일하게 이름이 XX University의 형태가 아니다. 다만 도쿄제국대학 시절의 영어 명칭은 Tokyo Imperial University였다.[6] (2017년 12월 집계, 재직중인 정교수의 박사학위 기준) 1위 도쿄대학 406명, 2위 위스콘신 대학교 372명, 3위 텍사스 대학교/오스틴 캠퍼스 368명, 4위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357명, 5위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346명 등.[7] 노벨상 수상자의 경우, 세계적으로 일반적으로 카운트하는 방법인 동문·연구원·교직원을 합산하는 방법을 기준으로는 2021년 기준 18명이며, 비상근 강사를 포함하는 경우 19명, 일본에서 집계하는 방식인 학·석·박 학위를 취득한 동문의 수로는 12명.[8] 하버드 대학교에 이어 수상자 수 세계 2위.[9] 전신 학교 출신자 및 중퇴자 포함. 다만 2000년대 전후 들어 도쿄대 출신은 하토야마 유키오 밖에 없다. 일본은 정치인과 실무진이 분리된 경향이 강하다. 정치의 경우 선임 정치인이 선택한 후계자가 지역 기반을 물려받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업무에 정통한 사무차관이라거나, 그 이하 각 국장, 과장 등에 이르기까지 (유능해야만 하는) 관료조직은 대부분 도쿄대 출신자의 손에 장악된 상태라는 것.[10] 도쿄대학 코이시카와 캠퍼스에 위치. 현재는 종합연구박물관 코이시카와(小石川) 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11] 천주교의 성당이 아니라 공자를 모시는 서원이다.[12] 쇼헤이자카(昌平坂) 언덕 부근에 세워졌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있는 서당이라는 뜻으로 창평횡(昌平黌)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13] 훗날 도쿄로 이전하는 일본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교토의 병학교(兵學校)와도 통합하여 분국으로 운영할 예정이 있었으나 대학교의 이른 폐지로 무산되었다.[14] 이후 창평횡 계열은 30여 년이 지난 1903년에야 카이세이 중학교 · 고등학교의 야학으로 재설립되어 재단법인 창평재단으로 겨우 그 명맥이 이어지게 되며, 현재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학교법인 창평횡이라는 이름으로 동일본국제대학, 이와키단기대학, 부속유치원과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15] 여기서 말하는 대학은 제도상의 진짜 대학(大學)을 말한다. 강습소, 의숙, 학원, 전문학교 등을 전신으로 한다며 수백년의 역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지만, 실제 대학으로 인가받는 교육기관은 도쿄대학이 최초이다. 동양 최초의 제도적인 대학이기도 하다.[16] 다만 학사 학위는 1876년에 설립된 삿포로농학교(現 홋카이도대학)가 일본 최초로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도적인 고등교육기관은 이쪽이 먼저라는 의견도 있다. 1886년에 제국대학령이 반포되기 전까지 학사 학위를 부여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은 구제 도쿄대학, 공부성의 공부대학교, 개척사의 삿포로농학교, 농상무성의 코마바농학교, 사법성의 법학교 밖에 없었다.[17] 제도 상으로는 이때의 도쿄대학이 구제 도쿄대학, 현재의 도쿄대학이 신제 도쿄대학으로 구별된다. 사실 신제 도쿄대학은 1949년부터이지만, 도쿄대학으로의 개칭은 1947년인지라 이름이 겹치는 시기가 생기는고로 1947년부터를 신제 도쿄대학으로 부른다.[18] 교원양성소와 같은 성격을 지녀 대부분의 졸업생이 교사가 됐기에 실질적으로는 사범학교와 같은 성격이었다.[19] 법학사, 문학사, 이학사, 의학사, 제약사.[20] 그 전까지는 의학부는 총장이 따로 있었다.[21] 1886년에 제1고등중학교가 됨.[22] 공부성 소속의 학교. 현재의 공학부.[23] 일본 제국 최초의 제국대학.[24] 농상무성 소속의 학교. 농상무성의 재정난으로 인해 코마바농학교와 도쿄산림학교가 통합되어 설립되었다. 현재의 농학부.[25] 제국대학령을 근거로 1897년 교토제국대학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도호쿠제국대학, 규슈제국대학, 홋카이도제국대학, 경성제국대학, 다이호쿠제국대학, 오사카제국대학, 나고야제국대학이 설립되었다.[26] (구제)도쿄고등학교는 구제중학교+구제고등학교를 통합한 7년제 학교로 일반적인 5+3에 비해 제국대학 진학까지 1년의 수업연한을 줄일 수 있었다. 졸업생의 80%는 도쿄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명문교였다.[27] 일본 제국의 경우 11년의 소학교-구제중학교를 마친 후 제국대학에 입학하려면 3년제 구제고등학교를 거쳐야 했다. 독일식으로 대학 예과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패전 후 중학교를 6년제로 바꾼 뒤 49년 중학교를 신제중학교-신제고등학교로 바꾸면서 이름이 동일했던 구제고등학교 다수는 근처의 대학에 흡수 통합되었다.[28] 따라서, 예를 들어 도쿄대 의대에 입학했다는 표현은 사실 잘못된 것이고, 거의 의학부로 진학하는 도쿄대 이과3류로 입학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 된다.[29] 전수 과정은 미국 대학의 마이너 전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특성이 도쿄대만의 고유는 아니며, 다른 구제국대학들도 비슷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오사카대의 문학부는 하나의 과이지만, 밑에 6개 학문으로 나뉘고 거기에 다시 마이너 전공을 수료한다. 인간과학부는 인간과학과 1개 과에 4개의 과목류로 분리되고 공학부는 각 과에 세부 코스가 달라진다.[30] 도쿄대학 대학원은 기본적으로 연구과(研究科)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보학환 · 학제정보학부는 학부(学府)로, 공공정책대학원은 부(部)로 조직되어 있다.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조직이라는 점은 다름이 없다.[31] 광역과학전공 생명환경과학계[32] 생물과학 전공[33] 화학생명공학전공[34] 응용생명공학전공[35] 기능생물학전공[36] 생명과학연구계 첨단생명과학전공[37] 여기서 ~류는 한자로 쓰면 類(무리 류)로, 서열를 뜻하는 流가 아니다.[38] 변호사, 고급공무원의 직업선호도가 과거에 비해 시들해진 탓에 따라, 문과1류와 법학부의 위상도 과거만큼 독보적이진 못하다.[39] 그 다음에 오는 오사카대, 도쿄의과치과대 의학부는 편차치로는 도쿄대 이과1류보다 높긴 하지만, 본고사에 국어가 빠지고 면접이 들어가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렵다. 상호 비교가 가능한 센터시험 점수로 따지자면 도쿄대 이과1류와 오사카대 의학부는 동일한 득점율을 보여주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편차치 참조.[40] 심지어 치과의사의 포화 및 약사면허의 독점적 지위의 약화 때문에 치과의사나 약사라는 직업 자체만으로 더 이상 고소득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자, 일본의 하위권 사립대학의 치학부나 약학부는 모집 인원을 다 채우지 못하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사립대학 중 편차치 50(한국의 수능 5등급)을 넘어가는 치대는 존재하지 않는다.[41] 예를 들어 오사카에 위치한 전자기기 제조회사인 키엔스는 평균 연봉이 2억원에 달하고 로봇 제조사인 화낙도 평균 1.5억이 넘는다.[42] 카이세이고의 1학년 정원은 400명, 나다고는 240명이다. 2013년 입시에서 나다고는 총 합격자 수 105명으로 2위를 기록했는데 그중에서 이과3류 합격자가 27명이다. 이 숫자는 탑 10 가운데 나머지 9개 고교의 이과3류 합격자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그래서 일본의 커뮤니티에서는 쪽수의 카이세이 vs 소수정예의 나다의 토론도 벌어지는 듯하다.[43] 여담으로 나다고등학교는 교토대 의학부 의학과에도 21명의 합격자를 냈다. 도쿄와 교토대학의 의학부에 각각 10명 이상 진학시킨 고교는 일본에서 나다 한 곳뿐이며, 카이세이나 다른 진학명문고는 진학명문의 타이틀을 이과1류에 많이 진학시키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진학명문고라고 해도 이과3류에 1명도 진학시키지 못한 곳도 많다.[44] 쌍둥이를 입학시킨 후에 성장 발달을 기록해 본다거나.[45] 사실 도쿄대를 포함한 일본 대부분의 국립대학은 일년 53만5800엔으로 수업료가 통일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64만2960엔으로 인상된 도쿄공대, 히토쓰바시대, 치바대, 도쿄예대 등 일부 예외도 있다. 참고로 사립대학의 학비는 국립대학의 기본 2~3배 이상이다.[46] 2014년 입학식 총장연설에선 매년 여성 비율이 2할을 넘지 못하며, 2014년도 입학생 기준으로는 16%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2021년 기준으로는 21.1%로 점점 올라가고 있다.[47] 여학생이 적은 것은 도쿄대의 특수성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편차치 최상위권 고등학교에 남학교가 많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48] 원래 도쿄대학을 비롯한 국립대학은 전기(前期)와 후기(後期) 전형 각각 1곳의 대학 밖에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수험자 수에 허수가 없다. 게다가 도쿄대학은 후기 전형을 폐지해서 전기 전형 밖에 남지 않았기에, 일본의 도쿄대학 수험생들은 1년에 도쿄대학 딱 한 곳의 대학 밖에 전기 지원을 못한다. 그래서 애초에 합격할 확률이 상당히 높지 않은 이상, 지원하는 것 조차 어려운 상황. 자세한 내용은 편차치 문서 참조.[49] 일부 연구과/전공은 전기모집, 후기모집에 관계없이 4월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후기가 없고 전기만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50] 2021년도 입학생 선발의 경우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응시료가 10,000엔으로 내려갔다. 왜냐하면 온라인 시험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현장에 와서 토플 ITP를 볼 수 없고 무조건 IBT 등의 어학시험 비용을 사비로 지불해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그 금액 공제해 준 셈. 이 2021년도 입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급락한 취업시장 때문에 석사로 학생들이 몰려서 경쟁률이 올라간 건 둘째 치더라도, 서류전형 과정에서 많은 지원자들을 걸러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험볼 때 한번에 많은 사람을 감시하기 힘든 온라인 시험의 특성 상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 같은 해의 GSAT(삼성그룹 입사시험)의 경우에도 같은 이유로 같은 현상이 일어나 수험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기도 했다.[51] 어학시험 점수를 제출하지 않는 연구과는 외국어과목을 따로 보는 경우가 있다. 또한 일본대학 출신은 영어나 각 학과에서 지정한 외국어를 선택하여 응시하고 외국대학 출신의 경우는 일본어 시험를 보는 경우도 있다.(문과)[52] 예를 들어 전기 전자 계열의 경우, 공업수학, 전자회로, 양자역학, 열역학, 전자기학, 유체역학, 물성공학, 광공학, 통계학, 제어공학 등의 과목 중에 3~5개 선택. 한 과목은 3~5개의 문제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 학과에 따라서는 시험이 아닌 전공 관련 소논문을 작성하는 경우도 있고, 학부성적 최우수자는 입학 시험이 면제되는 경우도 있다. 경제학연구과의 경우 일부 전공은 입학 시험이 면제다. 대신 해당 전공을 선택한 1차 합격자는 바로 면접으로 넘어간다.[53] 학과에 따라서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서 발표하는 경우도 있다.[54] 연구실 배속 정원의 정원외로 분류되어 배정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 물론 정원이 많이 몰리면 1지망 연구실에 못들어가는 경우도 존재한다.[55] 한 학부에는 2~10개 정도의 학과가 있고, 한 학과에 5~10개 정도의 전공이 있고 그 전공에는 10~20개 정도의 연구실이 부속되어 있다. 즉, 꽤나 다양한 주제 중 선택하여 심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56] 졸업논문을 위한 연구를 제외하고도, 평소 학과공통 실험 같은 것을 다 합치면 어쩌면 한국의 석사보다 실험 기간만큼은 더 길지도 모른다.[57] 특히 한국의 경우 학부 연구생을 경험하는 학생은 소수이고, 게다가 졸업논문을 자격증 등으로 대체하는 학교가 늘었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연구에 대한 기본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학부생들이 굉장히 많다.[58] 물론 큰 문제 없이 열심히 공부하면 대부분 입학 시험까지는 볼 수 있게 해 준다.[59] JAXA의 전신 중 하나가 도쿄대학 우주과학연구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문부과학성 소관의 국가 조직이 되었다.[60] 예를 들어 한 연구실을 신영역창성과학연구과로도 공학계연구과로도 입학할 수 있거나, 정보이공학계연구과로도 공학계연구과로도 입학 할 수 있는 등 여러방법이 있다.[61] 참고로 도쿄대학을 비롯한 국립대학은 본고사 수험비 + 토플 수험비, 교통비 등을 감안하면 수험비만 100만원 가까이 드는 것은 물론, 학부와는 달리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열망을 가진 지원자들만 지원하기 때문에 허수가 없는 편이다. 게다가 시험 일정이 다른 대학들과 거의 겹치기에 여러곳을 지망하는 것은 어려운 편이다. 대학원 경쟁율(배율) 상세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62] 물론 학비 감면 및 면제 제도가 있고 장학금도 나름 후한 편이므로 더 저렴하게 다닐 방법은 많다.[63] 도쿄대는 그나마 국립대학이니까 이렇게 넓은 캠퍼스를 여러개 만드는게 가능했지만,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땅값의 압박 때문에 그냥 좁은 부지에 높은 빌딩 하나를 세워놓고는 캠퍼스라고 우기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일본 최대 규모의 대학인 니혼대학의 경우, 대학 캠퍼스만 무려 21개가 존재한다.[64] 본부 기능을 하며, 분쿄구에 위치. 혼고 캠퍼스, 야요이 캠퍼스, 아사노 캠퍼스를 합쳐서 혼고 지구 캠퍼스로 부른다.[65] 메구로구에 위치. 코마바 제1캠퍼스, 코마바 제2캠퍼스, 코마바 제3캠퍼스를 합쳐서 코마바 캠퍼스라고 부른다.[66] 카시와시에 위치. 카시와 캠퍼스, 카시와II 캠퍼스, 카시와노하에키마에 캠퍼스를 합쳐서 카시와 지구 캠퍼스라고 한다.[67] 교토대학 역시 이와 비슷하게 요시다 캠퍼스, 우지 캠퍼스, 카츠라 캠퍼스, 이 3곳의 거점이 환상의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68] 다만 교양학부와 이학부 수학과 학생들은 혼고로 이동하지 않고 코마바에서 4년간 다니게 된다.[69] 따라서 자신의 소속 연구실에 따라 수업을 듣는 캠퍼스와 실제 연구실이 있는 곳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며 이 경우, 수업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도 한다. 물론 최근에는 코로나 등의 영향으로 온라인 수업이 많아져서 이런 불편은 크게 줄었다.[70] KAIST 공과대학 대학원 한정, 도쿄대학 신영역창성과학연구과 부국(部局)간 교환유학 가능.[71] 1930년대에 6번이나 유력한 노벨생리학·의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엔 받지 못했다. 못 받은 이유에 대해 나중에 유엔 대사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일본이 추축국이었다는 이유로 노벨 위원회장이 수상자로 선정하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72] 도쿄대학 의학부의 전신[73] 페스트균의 발견, 파상풍 등 다수의 치료법을 개발.[74] 박사학위논문 : On Lagrangian and Hamiltonian formalisms (1952)(영문)[75] 박사학위논문 : A systematic investigation of muon bundle underground : method of analysis (1972)[76]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의 애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도쓰카 요지는 2008년 사망하여 2015년 노벨물리학상은 받지 못하고 그의 제자인 가지타 다카아키만이 수상했다. 살아 있었다면 확실하게 공동수상할 수 있었던 셈.[77] 통상적으로 높은 수준인 자연과학 연구에는 다수의 학자가 멤버로 참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노벨상의 자연과학 부문에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대표자 3명까지 수상이 인정되곤 있지만, 2015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택된 것은 위에서 말한 가지타 다카아키와 아서 B. 맥도널드 등 두 사람 뿐이었다. 이는 본래대로라면 수상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선택될 것이었던 도쓰카를 위해서 스웨덴 왕립 과학원의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세 번째 수상자 자리를 일부러 공석으로 해둔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가지타 다카아키도 그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NHK의 특별 프로그램에서 밝힌 적 있다.[78] 다니던 중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졸업은 하지 않고 수료로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79] 대표적 업적으론 진돗개와 풍산개의 보존, 각시붕어, 쉬리 동정 등[80] 도쿄대학의 전신.[81] 쓰시마 섬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한 후 가쿠슈인 고등과를 거쳤다.[82] 해당 논문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는 사실을 기술하지 않아 노벨 위원회에서 그 사실을 몰랐고, 결국 크리스티안 에이크만에게 비타민 B1의 최초 발견자로 타이틀이 넘어가 버렸다.[83] 야마기와 가쓰사부로(山極勝三郎)와 이치카와 고이치(市川厚一)은 1915년에 토끼 귀에 콜타르를 지속적으로 발라 인공적으로 암을 유발해 내는 데 성공하며 그 과정을 해명했다. 당시에 둘 다 노벨상 후보였으나, 1926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은 먼저 기생충이 암의 기원임을 주장한 요하네스 피비게르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현재, 피비게르의 연구는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84] 만약 이 둘이 1926년에 노벨상을 받았으면 이들은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며, 유카와 히데키보다 23년은 더 이른 최초의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노벨위원회였던 폴케 헨센(Folke Henschen)의 증언에 따르면, 노벨상 선고위원회에서 이 연구를 심사할 때 동양인에게 노벨상은 아직 너무 이르다라는 등의 발언이 있었다고 한다.[85] 불문과 졸업 이후 교토대학 법학부 편입[86] 시부야역 앞에 동상도 세워져 있다. 하치코 문서 참조.[87] 일본 부자 순위에서 18위를 기록.[88] 타바타 운동법을 고안한 것으로 유명하다.[89] 게이머계를 통틀어서 손에 꼽힐 만큼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게이머로도 유명하다.[90] 現 도쿄대학 의과학연구소[91] 당시 난치병이라 여겨진 매독의 치료약으로 사용되었다.[92] 1912년 및 1913년에는 노벨생리학·의학상에도 후보로 올랐으나 결국에 수상은 놓쳤다.[93] 도쿄대학의 전신[94] 광복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여 경성대학에 편입.[95] 광복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여 경성대학에 편입.[96] 박사 과정에 입학할 때 한국에서 취득했던 권성주의 논문이 무효 처리되어 입학이 거부된 적 있다고 한다. 6개월간의 비정규 연구생 과정으로 논문을 새로 쓰고 나서 입학이 허가됐다고. 링크[97] 박사학위논문 : Estimate of heat transport across the sea surface near Japan with the bulk methods (1992)[98] 재학 중 학병으로 징병되었으며, 해방 후 복학하진 않았다.[99] 학부의 경우 도쿄제국대학 농과대학 실과 (현재의 도쿄농공대학)을 졸업했다.[100] 도쿄대학 동문 제외[101]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이다.[102] 도쿄대학 공학부의 전신(前身).[103] 2021년 기준 네이처 인덱스의 세부적인 순위는 물리학 2위, 화학 7위, 지구&환경 21위, 생명과학 28위에 해당. 물리학 분야는 2020년 ARWU(세계 대학 학술 평가) 기준으로도 세계 3위를 기록했다.[104] 의외지만, 국가기관 중에서 권력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검찰은 전통적으로 교토대학 출신자가 많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설이 있는데, 일본에서 검찰은 정의 사회의 핵심(보루)으로서, 고급 관료나 정치가 등 권력 범죄에 대한 단속이 최대 과제이다. 그런데 관료나 정치가에는 도쿄대학 출신이 많으니 동문보다는 교토대학 출신이 검찰에 많이 기용 되었다는 것이다.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교토대학의 이미지를 잘 말해 주는 에피소드이다.[105] 하라 다카시, 고노에 후미마로[106] 사이온지 긴모치 - 가토 다카아키 - 와카쓰키 레이지로 - 하마구치 오사치 - 히로타 고키 - 히라누마 기이치로 - 시데하라 기주로 - 요시다 시게루 - 가타야마 데쓰 - 아시다 히토시 - 하토야마 이치로 - 기시 노부스케 - 사토 에이사쿠 - 후쿠다 다케오 - 나카소네 야스히로 - 미야자와 기이치 - 하토야마 유키오.[107] 예를 들어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의 최고위관료 사무차관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단 3명만이 비 도쿄대 법학부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 3명은 도쿄대 경제학부와 교토대 법학부.[108] 즉 '심플'이지 '이지'가 아니다.[109] 류자키와 함께 공동 만점이었다.[110] 그 유명한 삿포로를 안동시라고 번역한 에피소드에서는 홋카이도대학에도 지원했었지만 안타깝게 여기도 불합격했다.[111] 한국판에서는 한국대학교라고 번역되었다.[112] 국가 공무원 1종 시험 합격 후 자신들이 배정받은 정부기관(경시청, 방위성 등)에서의 지위를 이용해 경시청 시큐리티 폴리스 내부의 내통자 경찰관들이나 전직 자위관 등의 병력들을 포섭 및 동원하여 쿠데타를 벌이려 하고, 시큐리티 폴리스 4과 소속인 주인공이 이 쿠데타를 저지하는 것이 SP 시리즈 극장판 겸 완결편인 "혁명편" 의 메인 스토리.[113] 참고로 이 사람도 도쿄대생이다. 도쿄대 졸업 후 대장성을 다니다 경제학 교수가 된 특이한 이력으로 일본 내에서 유명하다.[114] 東大生, 줄여서 이카토(イカ東)
- 일본 학생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특히 도쿄대에서는 1968~69년에 분쟁(東大紛争)이 절정이었는데, 야스다 강당에서 공성전이 펼쳐는 등 심각한 상황 때문에 1969년도 입시가 중지되고 말았다. 최상위권 수험생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대학을 지원했고, 도쿄대 아니면 안 된다는 수험생은 재수를 해야만 했다.
-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혼고 캠퍼스의 종합도서관이 무너졌는데, 당시 이 도서관에 소장 중이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록이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 2022년 1월 15일 나고야 도카이고등학교[115] 에서 온 고교 2학년생 1명이 인근 지하철역에서 나무 조각에 불을 붙이고 도주한 뒤 입학 시험이 열린 야오이 캠퍼스 입구에서 70대 직원 1명과 수험생 2명을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의 대입 시험장에 경비 강화를 요청했다. #1#2
- 2017년에 도쿄대생 노구치 시로(野口 志朗)와 모 여자 대학생 모리타 유노(森田由乃, 1996)가 일본 예능에 출연했다. 도쿄대생은 그 여대생의 내면을 알고 싶다고 했고, 2019년 12월에 여대생은 전 농수성 장관 5선의원과 스폰서 관계를 맺은 일로 신문 기사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고 만다. 이렇게 노구치 시로가 재조명되었다.
- 입학식은 일본 무도관에서 치른다. 2020년도에는 무도관이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리뉴얼하는 바람에 그 대신 국기관에서 치룰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아예 취소되어 버렸다. 졸업식은 언제나 야스다 강당에서 한다.
- 가끔 가다 도쿄대학에 2번째로 입학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2012년에는 아들의 입시 응원을 위해 같이 공부하던 어머니만 합격하는 일이 벌어졌다.[117]
- 도쿄대학의 야구부는 소속 리그인 동경6대학리그에서 만년 꼴찌를 자랑한다. 리그의 다른 대학과는 달리 유일한 국립대학이라 체육특기생 제도가 없고 애초에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라 덕분에 소속 팀들 중 유일하게 우승 경력이 없다.[118] 이렇게 만년 꼴찌를 자랑하는 야구부답게 94연패, 40시즌 연속 최하위 등등의 온갖 막장 기록도 보유 중이다.[119][120] 이렇게 극악의 약체인 야구부인지라 현재까지 일본프로야구에 데뷔한 선수는 6명뿐이고,[121] 그마저도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백전 백패의 신화로 유명한 서울대학교 야구부와 비교되곤 하며, 사실 도쿄대를 포함한 일본의 구제국대학 야구부는 전부 다 서울대 야구부 수준(...)이다. 나고야대학의 야구부는 2019년 드래프트에서 마쓰다 히로아키[122] 가 육성선수로 주니치에 입단한 것이 창단 이래 최초 프로 선수이며, 비슷하게는 교토대학 야구부는 2014년에 다나카 에이스케가 치바 롯데 마린즈에 지명되며 첫 프로지명자를 배출했다. 홋카이도대학은 2024년에 미야자와 타이세이가 첫 프로선수가 되었다. 즉 구제국대학 출신 프로는 다 합산해도 10명도 채 안된다는 것.
- 5월병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최초의 5월병의 의미는 그야말로 약 20년의 인생을 갈아 넣다시피 하여 꿈에 그리던 도쿄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정작 도쿄대에 입학하고 난 후 봄철의 나른함을 겪고서 슬슬 더워질 기미가 보이며 햇빛이 비추는 시간이 길어지는 5월쯤이 되어 “도쿄대에 들어와서 좋긴 한데 이제는 기쁜 감정도 사라지고 나에게 도쿄대는 일상이 되었는데 이젠 또 뭘 해야 하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같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려 극도의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에 빠져 버리는 증상을 말했었다. 이렇게 5월병이 유행처럼 쓰이다 개념 자체가 좀 더 확장이 되어 봄철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첫 장기휴일인 5월의 골든 위크를 거치고 난 후에 극단적인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져서 업무능력이 현저히 저하되거나 심하면 무단 결근 및 사표를 내는 일까지 벌어지는 상황에도 쓰이게 되었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단계 더 발전해서 5월이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싱숭생숭한 감정을 느끼는 것과 그런 사람들 자체를 5월병이라고 하는 듯 하다.
- 도쿄대학의 캠퍼스들에는 각각 연못이 있다. 혼고 캠퍼스의 중앙에 있는 연못은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산시로(三四郎)'가 출판된 이후에 '산시로 이케(三四郎池, 삼사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연못의 이름을 따, 코마바 캠퍼스의 연못은 '이치니로 이케(一二郎池, 일이랑지)', 카시와 캠퍼스의 연못은 '고로쿠로 이케(五六郎池, 오육랑지)'가 되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3 17:25:56에 나무위키 도쿄대학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15] 편차치 75의 주부지방 최고 명문[116] 1위인 홋카이도대학(660 km²)에 이어 대학별 순위 2위에 해당.[117] 이 어머니는 고등학교 시절 교토대학을 목표로 공부했으나 떨어졌고, 도쿄대학을 목표로 재수했으나 또 떨어지고 할 수 없이 와세다대학으로 진학했다고 한다. 아들이 수험생이 되자 함께 공부하여 어머니는 도쿄대에 합격했지만 아들은 떨어졌다고. 관련 글[118] 참고로 도쿄대학을 빼면 가장 우승 경력이 적은 대학이 릿쿄대학(나가시마 시게오의 모교)인데, 이 릿쿄대학도 우승 경력이 무려 13회로 도쿄대와 비교 자체가 미안한 수준이다. 다만 문제는 나머지 다른 대학들이 전부 넘사벽의 30회 이상의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다.[119] 자세한 기록들은 다음을 참조. 야구부 공식 사이트 내 기록, 일본 위키백과 도쿄대 야구부 항목, 리그 공식 사이트 내 기록[120] 참고로 94연패를 끊기 위해, 야구를 잘 하는 고등학생들을 감독이 무료로 도쿄대 입시 공부를 시켜(...) 전력을 보충해 끊었다고 한다.[121] 가장 최근은 2017년, 법학부 재학 중인 투수 미야다이 코다이(宮台康平)가 드래프트를 신청,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7순위로 지명되어 화제가 되었다. 미야다이는 야쿠르트로 트레이드되고 2022년 시즌후 은퇴를 선언해서 5년만에 프로 생활을 접었다.[122] 그런데 이 선수는 아예 비선출이다. 도쿄대 출신의 미야다이 코헤이나 교토대 타나카 에이스케는 고교 시절까지는 일반 야구선수로 활동했던 선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