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제1구
덤프버전 :
일본의 폐지된 선거구에 대한 내용은 도쿄도 제1구(중선거구) 문서 참고하십시오.
도쿄도의 치요다구와 신주쿠구를 관할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
현재 지역구 중의원 의원은 자유민주당 소속 야마다 미키.
지역구 내에 천황 일가가 거주하는 고쿄를 비롯해 일본 국회의사당, 일본수상관저, 카스미가세키, 도쿄도청 등 일본의 주요 정치, 행정 기관들이 밀집해있다. 그 외에도 마루노우치, 오테마치, 도쿄역, 신주쿠역, 가부키초, 아키하바라, 칸다, 일본 무도관, 야스쿠니 신사 등 도쿄의 주요 시설들이 위치한다. 과거 미나토구가 관할 구역으로 포함되었을 당시에는 롯폰기와 도쿄 타워까지 이 지역구 내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일본의 정치 1번지[1] 로 불리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소선거구제 도입 이래 2005년 44회 중원선를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1위, 2위간의 득표율차가 10%p 이상 차이났던 적이 없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는 선거구인 것이 특징이다.
이 지역구에서 당선된 대표적인 정치인으로는 요사노 가오루와 가이에다 반리가 있다. 요사노는 무라야마 내각 시절부터 문부대신을 역임했으며, 이후에도 오부치 내각, 오부치 제1차 개조내각, 제3차 고이즈미 개조내각, 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 후쿠다 야스오 개조내각, 아소 내각에서 통상산업대신, 내각관방장관, 재무대신을 역임했고, 민주당 정권 시절인 간 제2차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등 각종 대신직에 올랐다. 가이에다도 요사노와 같은 시기인 간 제2차 개조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을 역임했으며, 이후 민주당 대표를 거쳐 중의원 부의장을 지내고 있다. 그 외에도 군소후보들의 출마가 많다.[2]
요사노와 가이에다의 4번째 매치. 이번에는 자민당의 요사노 가오루가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민주당 가이에다 반리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가이에다는 비례대표로 부활하지 못하고 낙선했다.
참고로 소선거구제 개편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들 중 이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의 득표율이 과반을 넘는 것과 1, 2위 간의 득표율 차가 두자리수를 기록한 사례는 현재까지 이 선거가 유일하다.
이번 선거에도 현역인 요사노와 가이에다의 5번째 매치가 성사됐다.
개표 결과 가이에다 반리가 자민당 요사노 가오루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로써 4년 만에 원내에 복귀하게 되었다. 다만 정권교체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3.9%라는 크지 않은 표차로 당락이 갈리면서 자민당 요사노 가오루도 비례대표로 부활해 당선되었다.[3]
한편 스마일당 소속 맥 아카사카 후보도 출마했다.
현역 의원인 가이에다 반리는 간 제2차 개조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직을 역임했다. 허나 이것이 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면 장점이 되지만, 민주당 정권의 평가가 극악을 달리게 되면서 장점이 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한편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가이에다와 함께 치열한 접전을 펼쳤던 자민당의 요사노 가오루는 건강 문제로 선거를 3개월 앞두고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도쿄 1구를 주름잡던 요사노와 가이에다 두 사람의 라이벌 매치는 요사노의 정계 은퇴로 인해 45회 중원선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자민당은 요사노를 대신해 신인인 야마다 미키를 공천했다.
첫 출마하는 자민당 정치 신인과 6선에 도전하는 가이에다의 맞대결이 성사되었고, 개표 결과 야마다 미키가 민주당 가이에다 반리를 단 0.4%p 차이로 꺾고 당선됐다. 야마다는 여당 중진을 꺾고 일본 정치 1번지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한편 가이에다는 소속 정당이 참패하는 와중에도 지역구에서 선전했으나, 첫 출마하는 정치 신인에게 석패하고 비례대표로 힘겹게 부활해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자민당과 민주당 이외에도 일본 유신회, 일본 공산당, 다함께당, 일본 미래당 등 당시 주요 원내 정당들이 모두 후보를 낸데다가 행복실현당 등 기타 군소후보들까지 출마하면서 후보만 무려 9명이나 나왔다. 이 때문에 1위를 기록한 자민당 야마다 미키 당선자의 득표율도 30%조차 안 나왔다.
야마다와 가이에다의 두번째 매치. 이번에는 가이에다가 민주당 당수로 출마하게 되었다.
개표 결과, 자민당 야마다 미키 의원이 7.1%p 차이로 민주당 가이에다 반리를 꺾고 당선되었다. 가이에다는 안 그래도 리턴매치에서 또 패배한 상황에 자신이 이끄는 정당마저도 참패하면서 당수인 본인도 비례대표로 부활하지 못하고 낙선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참고로 가타야마 데쓰 일본 사회당 당수가 1949년 24회 중원선에서 낙선한 이후 65년 만에 제1야당 당수 낙선이 재현됐다.
신주쿠구의 일부 지역과, 미나토구의 일부 지역이 각각 10구와 2구로 변경된 이후 치러졌다.
이번에도 자민당 현역 의원인 야마다 미키와 전 민주당 대표였던 입헌민주당 소속 가이에다 반리가 출마하면서 3번째 리턴매치가 이루어졌다.
개표 결과 입헌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 전 민주당 대표가 자민당 야마다 미키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지난 선거처럼 가이에다 반리 의원과 야마다 미키 의원이 재대결한다.
국민민주당에서는 야마오 시오리 의원이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야권 후보 단일화에 따라 도쿄도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다고 밝혔다.
일본 유신회는 오노 다이스케 전 구마모토현 부지사를 공천했다. 전직 자위대원인 무소속 나이토 히사오 후보도 출마한다.
개표 종료 직후 발표된 NHK 출구조사 결과, 입헌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 후보가 40%를 살짝 넘겨 자민당 야마다 미키 후보를 적은 차이로 누르고 승리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출구조사를 뒤집고 개표 결과 야마다 미키 후보가 당선되었다. 가이에다 반리는 4년만에 지역구를 다시 잃었고 비례대표로 부활해 당선되었다.
도쿄도의 지역구 의석 수가 5석 증가함에 따라 선거구가 조정되는데 1구에서는 이제 치요다구와 신주쿠구만을 관할하게 되면서 정말로 도쿄의 핵심중의 핵심만을 관할하는 '정치 1번지'가 되었다.
자유민주당 소속 야마다 미키 의원이 재출마할 전망이며, 입헌민주당에서도 가이에다 반리 의원을 다시 총지부장으로 내정하고 공천했기에 5번째 맞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유신회 소속 오노 다이스케 의원은 도쿄 7구로 지역구를 옮겨 참의원 의원이자 정무조사회장인 오토키타 슌을 옹립하기로 결정했다.#
공산당에서도 지난 선거와 달리 후보를 냈는데, 나카노 겐 후보가 출마한다. 참정당은 간호사인 요시카와 리나 후보를 공천했다. 세 아이의 엄마이고, 미인이다.#
1. 개요[편집]
도쿄도의 치요다구와 신주쿠구를 관할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
현재 지역구 중의원 의원은 자유민주당 소속 야마다 미키.
2. 상세[편집]
지역구 내에 천황 일가가 거주하는 고쿄를 비롯해 일본 국회의사당, 일본수상관저, 카스미가세키, 도쿄도청 등 일본의 주요 정치, 행정 기관들이 밀집해있다. 그 외에도 마루노우치, 오테마치, 도쿄역, 신주쿠역, 가부키초, 아키하바라, 칸다, 일본 무도관, 야스쿠니 신사 등 도쿄의 주요 시설들이 위치한다. 과거 미나토구가 관할 구역으로 포함되었을 당시에는 롯폰기와 도쿄 타워까지 이 지역구 내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일본의 정치 1번지[1] 로 불리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소선거구제 도입 이래 2005년 44회 중원선를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1위, 2위간의 득표율차가 10%p 이상 차이났던 적이 없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는 선거구인 것이 특징이다.
이 지역구에서 당선된 대표적인 정치인으로는 요사노 가오루와 가이에다 반리가 있다. 요사노는 무라야마 내각 시절부터 문부대신을 역임했으며, 이후에도 오부치 내각, 오부치 제1차 개조내각, 제3차 고이즈미 개조내각, 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 후쿠다 야스오 개조내각, 아소 내각에서 통상산업대신, 내각관방장관, 재무대신을 역임했고, 민주당 정권 시절인 간 제2차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등 각종 대신직에 올랐다. 가이에다도 요사노와 같은 시기인 간 제2차 개조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을 역임했으며, 이후 민주당 대표를 거쳐 중의원 부의장을 지내고 있다. 그 외에도 군소후보들의 출마가 많다.[2]
3. 역대 중의원 의원[편집]
4. 역대 선거 결과[편집]
4.1.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2.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3.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4.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요사노와 가이에다의 4번째 매치. 이번에는 자민당의 요사노 가오루가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민주당 가이에다 반리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가이에다는 비례대표로 부활하지 못하고 낙선했다.
참고로 소선거구제 개편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들 중 이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의 득표율이 과반을 넘는 것과 1, 2위 간의 득표율 차가 두자리수를 기록한 사례는 현재까지 이 선거가 유일하다.
4.5.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이번 선거에도 현역인 요사노와 가이에다의 5번째 매치가 성사됐다.
개표 결과 가이에다 반리가 자민당 요사노 가오루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로써 4년 만에 원내에 복귀하게 되었다. 다만 정권교체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3.9%라는 크지 않은 표차로 당락이 갈리면서 자민당 요사노 가오루도 비례대표로 부활해 당선되었다.[3]
한편 스마일당 소속 맥 아카사카 후보도 출마했다.
4.6.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현역 의원인 가이에다 반리는 간 제2차 개조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직을 역임했다. 허나 이것이 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면 장점이 되지만, 민주당 정권의 평가가 극악을 달리게 되면서 장점이 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한편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가이에다와 함께 치열한 접전을 펼쳤던 자민당의 요사노 가오루는 건강 문제로 선거를 3개월 앞두고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도쿄 1구를 주름잡던 요사노와 가이에다 두 사람의 라이벌 매치는 요사노의 정계 은퇴로 인해 45회 중원선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자민당은 요사노를 대신해 신인인 야마다 미키를 공천했다.
첫 출마하는 자민당 정치 신인과 6선에 도전하는 가이에다의 맞대결이 성사되었고, 개표 결과 야마다 미키가 민주당 가이에다 반리를 단 0.4%p 차이로 꺾고 당선됐다. 야마다는 여당 중진을 꺾고 일본 정치 1번지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한편 가이에다는 소속 정당이 참패하는 와중에도 지역구에서 선전했으나, 첫 출마하는 정치 신인에게 석패하고 비례대표로 힘겹게 부활해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자민당과 민주당 이외에도 일본 유신회, 일본 공산당, 다함께당, 일본 미래당 등 당시 주요 원내 정당들이 모두 후보를 낸데다가 행복실현당 등 기타 군소후보들까지 출마하면서 후보만 무려 9명이나 나왔다. 이 때문에 1위를 기록한 자민당 야마다 미키 당선자의 득표율도 30%조차 안 나왔다.
4.7.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다와 가이에다의 두번째 매치. 이번에는 가이에다가 민주당 당수로 출마하게 되었다.
개표 결과, 자민당 야마다 미키 의원이 7.1%p 차이로 민주당 가이에다 반리를 꺾고 당선되었다. 가이에다는 안 그래도 리턴매치에서 또 패배한 상황에 자신이 이끄는 정당마저도 참패하면서 당수인 본인도 비례대표로 부활하지 못하고 낙선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참고로 가타야마 데쓰 일본 사회당 당수가 1949년 24회 중원선에서 낙선한 이후 65년 만에 제1야당 당수 낙선이 재현됐다.
4.8.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신주쿠구의 일부 지역과, 미나토구의 일부 지역이 각각 10구와 2구로 변경된 이후 치러졌다.
이번에도 자민당 현역 의원인 야마다 미키와 전 민주당 대표였던 입헌민주당 소속 가이에다 반리가 출마하면서 3번째 리턴매치가 이루어졌다.
개표 결과 입헌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 전 민주당 대표가 자민당 야마다 미키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4.9.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지난 선거처럼 가이에다 반리 의원과 야마다 미키 의원이 재대결한다.
국민민주당에서는 야마오 시오리 의원이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야권 후보 단일화에 따라 도쿄도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다고 밝혔다.
일본 유신회는 오노 다이스케 전 구마모토현 부지사를 공천했다. 전직 자위대원인 무소속 나이토 히사오 후보도 출마한다.
개표 종료 직후 발표된 NHK 출구조사 결과, 입헌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 후보가 40%를 살짝 넘겨 자민당 야마다 미키 후보를 적은 차이로 누르고 승리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출구조사를 뒤집고 개표 결과 야마다 미키 후보가 당선되었다. 가이에다 반리는 4년만에 지역구를 다시 잃었고 비례대표로 부활해 당선되었다.
4.10.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도쿄도의 지역구 의석 수가 5석 증가함에 따라 선거구가 조정되는데 1구에서는 이제 치요다구와 신주쿠구만을 관할하게 되면서 정말로 도쿄의 핵심중의 핵심만을 관할하는 '정치 1번지'가 되었다.
자유민주당 소속 야마다 미키 의원이 재출마할 전망이며, 입헌민주당에서도 가이에다 반리 의원을 다시 총지부장으로 내정하고 공천했기에 5번째 맞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유신회 소속 오노 다이스케 의원은 도쿄 7구로 지역구를 옮겨 참의원 의원이자 정무조사회장인 오토키타 슌을 옹립하기로 결정했다.#
공산당에서도 지난 선거와 달리 후보를 냈는데, 나카노 겐 후보가 출마한다. 참정당은 간호사인 요시카와 리나 후보를 공천했다. 세 아이의 엄마이고, 미인이다.#
[1] 한국의 종로구와 비슷한 포지션이다.[2] 대표적으로 마타요시 미츠오가 2003년 43회 중원선 이래 사망 전까지 꾸준히 이 선거구에 출마했었다. 맥 아카사카도 2009년 45회 중원선 당시 스마일당 소속으로 이 선거구에 출마했었다.[3] 여담으로 46회 중원선 문단에 후술되어 있지만, 요사노는 이 선거 이후 건강 문제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2017년 5월에 사망하면서 이 선거가 요사노 가오루의 생애 마지막 선거가 된다.[4] 추천[5] 추천[6] 추천[7] 추천[8] 추천[9] 오치아이 지역을 제외한 전역[10] 아자부, 롯폰기, 아카사카, 다카나와, 가이간 3초메, 미타 1~3초메, 시바우라 4초메, 고난, 다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