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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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1. 역대 기록
2.1. 16강전 벨기에전 - 5 : 2 승
2.2. 8강전 스웨덴전 - 2 : 1 승
2.3. 4강전 체코슬로바키아전 - 1 : 3 패
2.4. 3위 결정전 오스트리아전 - 3 : 2 승
3.1. 15강전 스위스전 - 1 : 1 무
3.2. 15강전 재경기 스위스전 - 2 : 4 패
5.1. 16강 조별리그 튀르키예전 - 4 : 1 승
5.2. 16강 조별리그 헝가리전 - 3 : 8 패
5.3. 16강 조별리그 재경기 튀르키예전 - 7 : 2 승
5.4. 8강전 유고슬라비아전 - 2 : 0 승
5.5. 4강전 오스트리아전 - 6 : 1 승
5.6. 결승전 헝가리전 - 3 : 2 승
6.1. 16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3 : 1 승
6.2. 16강 조별리그 체코슬로바키아전 - 2 : 2 무
6.3. 16강 조별리그 북아일랜드전 - 2 : 2 무
6.4. 8강전 유고슬라비아전 - 1 : 0 승
6.5. 4강전 스웨덴전 - 1 : 3 패
6.6. 3위 결정전 프랑스전 - 3 : 6 패
7.1. 16강 조별리그 이탈리아전 - 0 : 0 무
7.2. 16강 조별리그 스위스전 - 2 : 1 승
7.3. 16강 조별리그 칠레전 - 2 : 0 승
7.4. 8강전 유고슬라비아전 - 0 : 1 패
8.1. 16강 조별리그 스위스전 - 5 : 0 승
8.2. 16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0 : 0 무
8.3. 16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2 : 1 승
8.4. 8강전 우루과이전 - 4 : 0 승
8.5. 4강전 소련전 - 2 : 1 승
8.6. 결승전 잉글랜드전 - 2 : 4 패
9.1. 16강 조별리그 모로코전 - 2 : 1 승
9.2. 16강 조별리그 불가리아전 - 5 : 2 승
9.3. 16강 조별리그 페루전 - 3 : 1 승
9.4. 8강전 잉글랜드전 - 3 : 2 승
9.5. 4강전 이탈리아전 - 3 : 4 패
9.6. 3위 결정전 우루과이전 - 1 : 0 승
10.1. 16강 조별리그 칠레전 - 1 : 0 승
10.2. 16강 조별리그 호주전 - 3 : 0 승
10.3. 16강 조별리그 동독전 - 0 : 1 패
10.4. 8강 조별리그 유고슬라비아전 - 2 : 0 승
10.5. 8강 조별리그 스웨덴전 - 4 : 2 승
10.6. 8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1 : 0 승
10.7. 결승전 네덜란드전 - 2 : 1 승
11.1. 16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0 : 0 무
11.2. 16강 조별리그 멕시코전 - 6 : 0 승
11.3. 16강 조별리그 튀니지전 - 0 : 0 무
11.4. 8강 조별리그 이탈리아전 - 0 : 0 무
11.5. 8강 조별리그 네덜란드전 - 2 : 2 무
11.6. 8강 조별리그 오스트리아전 - 2 : 3 패
12.1. 24강 조별리그 알제리전 - 1 : 2 패
12.2. 24강 조별리그 칠레전 - 4 : 1 승
12.3. 24강 조별리그 오스트리아전 - 1 : 0 승
12.4. 12강 조별리그 잉글랜드전 - 0 : 0 무
12.5. 12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2 : 1 승
12.6. 4강전 프랑스전 - 3 : 3 무(PSO 5 : 4 승)
12.7. 결승전 이탈리아전 - 1 : 3 패
13.1. 24강 조별리그 우루과이전 - 1 : 1 무
13.2. 24강 조별리그 스코틀랜드전 - 2 : 1 승
13.3. 24강 조별리그 덴마크전 - 0 : 2 패
13.4. 16강전 모로코전 - 1 : 0 승
13.5. 8강전 멕시코전 - 0 : 0 무(PSO 4 : 1 승)
13.6. 4강전 프랑스전 - 2 : 0 승
13.7. 결승전 아르헨티나전 - 2 : 3 패
14.1. 24강 조별리그 유고슬라비아전 - 4 : 1 승
14.2. 24강 조별리그 아랍에미리트전 - 5 : 1 승
14.3. 24강 조별리그 콜롬비아전 - 1 : 1 무
14.4. 16강전 네덜란드전 - 2 : 1 승
14.5. 8강전 체코슬로바키아전 - 1 : 0 승
14.6. 4강전 잉글랜드전 - 1 : 1 무(PSO 4 : 3 승)
14.7. 결승전 아르헨티나전 - 1 : 0 승
15.1. 24강 조별리그 볼리비아전 - 1 : 0 승
15.2. 24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1 : 1 무
15.4. 16강전 벨기에전 - 3 : 2 승
15.5. 8강전 불가리아전 - 1 : 2 패
16.1. 32강 조별리그 미국전 - 2 : 0 승
16.2. 32강 조별리그 유고슬라비아전 - 2 : 2 무
16.3. 32강 조별리그 이란전 - 2 : 0 승
16.4. 16강전 멕시코전 - 2 : 1 승
16.5. 8강전 크로아티아전 - 0 : 3 패
17.1. 32강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전 - 8 : 0 승
17.2. 32강 조별리그 아일랜드전 - 1 : 1 무
17.3. 32강 조별리그 카메룬전 - 2 : 0 승
17.4. 16강전 파라과이전 - 1 : 0 승
17.5. 8강전 미국전 - 1 : 0 승
18.1. 32강 조별리그 코스타리카전 - 4 : 2 승
18.2. 32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1 : 0 승
18.3. 32강 조별리그 에콰도르전 - 3 : 0 승
18.4. 16강전 스웨덴전 - 2 : 0 승
18.5. 8강전 아르헨티나전 - 1 : 1 무(PSO 4 : 2 승)
18.6. 4강전 이탈리아전 - 0 : 2 패
18.7. 3위 결정전 포르투갈전 - 3 : 1 승
19.1. 32강 조별리그 호주전 - 4 : 0 승
19.2. 32강 조별리그 세르비아전 - 0 : 1 패
19.3. 32강 조별리그 가나전 - 1 : 0 승
19.4. 16강전 잉글랜드전 - 4 : 1 승
19.5. 8강전 아르헨티나전 - 4 : 0 승
19.6. 4강전 스페인전 - 0 : 1 패
19.7. 3위 결정전 우루과이전 - 3 : 2 승
20.1. 32강 조별리그 포르투갈전 - 4 : 0 승
20.2. 32강 조별리그 가나전 - 2 : 2 무
20.3. 32강 조별리그 미국전 - 1 : 0 승
20.4. 16강전 알제리전 - 2 : 1 승
20.5. 8강전 프랑스전 - 1 : 0 승
21.1. 32강 조별리그 멕시코전 0 : 1 패
21.2. 32강 조별리그 스웨덴전 2 : 1 승
22.1. 32강 조별리그 일본전 - 1 : 2 패
22.2. 32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1 : 1 무
22.3. 32강 조별리그 코스타리카전 - 4 : 2 승


1. 역대 기록[편집]


FIFA 월드컵 역대전적 서열: 2위
★★★★②②②②③③③③④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1930년 우루과이
불참[1]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1934년 이탈리아
3위[2]
9
4
3
0
1
11
8
파일:프랑스 국기.svg
1938년 프랑스
15강[3][4]
10위
1
2
0
1
1
3
5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1950년 브라질
출전 금지[5]
파일:스위스 국기.svg
1954년 스위스
우승[6]
1위
15
6
5
0
1
25
14
파일:스웨덴 국기.svg
1958년 스웨덴
4위[7]
8
6
2
2
2
12
14
파일:칠레 국기.svg
1962년 칠레
8강
7위
7
4
2
1
1
4
2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966년 잉글랜드
준우승[8]
2위
13
6
4
1
1
15
6
파일:멕시코 국기.svg
1970년 멕시코
3위[9]
15
6
5
0
1
17
10
파일:독일 국기.svg
1974년 서독
우승[10]
1위
18
7
6
0
1
13
4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978년 아르헨티나
8강[11]
6위
7
6
1
4
1
10
5
파일:스페인 국기.svg
1982년 스페인
준우승[12]
2위
11
7
3
2
2
12
10
파일:멕시코 국기.svg
1986년 멕시코
준우승
2위
11
7
3
2
2
8
7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90년 이탈리아
우승[13]
1위
17
7
5
2
0
15
5
파일:미국 국기.svg
1994년 미국
8강
5위
10
5
3
1
1
9
7
파일:프랑스 국기.svg
1998년 프랑스
8강
7위
10
5
3
1
1
8
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2002년 한국/일본
준우승[14]
2위
16
7
5
1
1
14
3
파일:독일 국기.svg
2006년 독일
3위[15][16]
16
7
5
1
1
14
6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2010년 남아공
3위[17]
15
7
5
0
2
16
5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4년 브라질
우승[18][19]
1위
19
7
6
1
0
18
4
파일:러시아 국기.svg
2018년 러시아
조별리그[20]
22위[21]
3
3
1
0
2
2
4
파일:카타르 국기.svg
2022년 카타르
조별리그
17위
4
3
1
1
1
6
5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2026년 북미
?
?
?
?
?
?
?
?
?
합계
우승(4회)
20/22[22]
225
112
68
21
23
232
130

2.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편집]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당시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 및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와중에 축구 같은 스포츠 따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또 당시엔 비행기가 아직 발달되지 않아서 유럽에서 남미까지 갈 만한 수준이 못 되었으므로 오직 여객선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개최국인 우루과이에서 유럽 국가들을 위해 호화 여객선을 구입하고 체제 경비까지 모두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독일은 이 대회에 불참했다.

독일이 처음으로 진출한 대회는 2회 대회인 1934 이탈리아 월드컵이었다. 유럽 지역예선에서 독일은 프랑스, 룩셈부르크와 함께 8조에 속했다. 1차전 룩셈부르크와의 경기에서 독일은 9 : 1 대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 요제프 라셀른베르크가 혼자서 4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다음 경기에서 룩셈부르크가 프랑스에 1 : 6으로 대패하며 예선 탈락이 확정되면서 자동적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어 독일과 프랑스 간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대회를 앞두고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은밀히 이탈리아와 사전 밀약을 맺어두었다. 이 대회는 노골적으로 편파적으로 진행된 대회였는데 당시 이탈리아의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노골적으로 심판들을 향해 이탈리아에 유리하게 판정하지 않으면 험한 꼴을 보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가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같은 파시즘 형제 국가였던 독일에도 겸사겸사 유리하게 하여 사이좋게 결승전에서 만나도록 설계했다. 즉, 같은 파시즘 형제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가 서로 우승, 준우승을 나눠먹기로 미리 협의를 해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대회 조직 위원회는 독일 측 경기는 전부 이탈리아인 심판이 주심을 맡도록 조작질을 해놓았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독일은 최소 준우승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2.1. 16강전 벨기에전 - 5 : 2 승[편집]


파일:1934 FIFA World Cup Italy Poster.png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16강 제7경기
1934년 5월 27일 16:00(UTC+1)

스타디오 조반니 베르타 (이탈리아, 피렌체)
주심: 프란체스코 마테아 (이탈리아)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5 : 2
파일:벨기에 국기.svg
독일
벨기에
25′ 슈타니슬라우스 코비에르스키
49' 오토 지플링
66', 70', 87' 에드문트 코넨
득점자
29', 43' 베르나르트 포르호프
관중: 8,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1라운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8강전 스웨덴전 - 2 : 1 승[편집]


파일:1934 FIFA World Cup Italy Poster.png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8강 제8경기
1934년 5월 31일 16:30(UTC+1)

스타디오 산 시로 (이탈리아, 밀라노)
주심: 리날도 바를라시나 (이탈리아)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2 : 1
파일:스웨덴 국기.svg
독일
스웨덴
60′, 63' 카를 호만
득점자
82' 괴스타 둔케르
관중: 3,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이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4강전 체코슬로바키아전 - 1 : 3 패[편집]


파일:1934 FIFA World Cup Italy Poster.png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4강 제2경기
1934년 6월 3일 16:30(UTC+1)

스타디오 나치오날레 PNF (이탈리아, 로마)
주심: 리날도 바를라시나 (이탈리아)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1 : 3
파일:체코 국기.svg
독일
체코슬로바키아
62' 루돌프 노아크
득점자
21', 69', 80'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관중: 15,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이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3위 결정전 오스트리아전 - 3 : 2 승[편집]


파일:1934 FIFA World Cup Italy Poster.png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3·4위전
1934년 6월 7일 18:00(UTC+1)

스타디오 조르조 아스카렐리 (이탈리아, 나폴리)
주심: 알비노 카라로 (이탈리아)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3 : 2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독일
오스트리아
1', 42' 에른스트 레너
27' 에드문트 코넨
득점자
28' 요한 호르바트
54' 카를 세스타
관중: 7,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이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편집]


개최국 이탈리아와 사바사바 해서 우승컵을 나눠먹기로 했는데도 4강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의해 덜미를 잡히며 계획에 실패한 독일은 이번 대회에선 반드시 우승을 하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지역예선에서 독일은 스웨덴, 에스토니아, 핀란드와 함께 1조에 속했다. 독일의 예선 1차전 경기는 1937년 6월 29일에 열렸다. 1차전 핀란드 원정 경기에서 독일은 2 : 0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해 8월 29일에 열린 에스토니아와의 2차전 경기에서도 가뿐하게 4 : 1 완승을 거두며 앞서 이미 2승을 기록한 스웨덴과 함께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사실상 순위 결정전이었던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5 : 0 대승을 거두어 조 1위로 예선을 마무리 했다.

이 대회는 1938년 6월 4일에 개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38년 4월 10일에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대독일주의를 주장하며 같은 게르만족 국가인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결국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스트리아 역시 1937년 10월 5일에 라트비아를 2 : 1로 꺾고 본선 진출을 확정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미 16강에서 스웨덴과 맞붙는 것으로 대진표까지 결정된 상황이었다. 결국 오스트리아란 나라가 대회 전에 없어져 버렸기에 16강전 스웨덴 vs 오스트리아의 경기는 스웨덴의 부전승으로 결정되었다.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병합한 히틀러는 대표팀도 통일해야 한다며 당시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강제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병합했다. 즉, 며칠 전까지 오스트리아 대표로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은 졸지에 독일 대표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당시엔 오스트리아도 꽤 알아주는 축구 강국이었기에 전문가들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독일 대표팀을 우승후보 1순위로 지목하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해묵은 감정이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겉으로만 한 집안이었을 뿐 속으로는 굉장히 심하게 곪아 터져 있었다. 이 곪아 터진 갈등은 결국 참극으로 되돌아왔다.


3.1. 15강전 스위스전 - 1 : 1 무[편집]


파일:1938 FIFA World Cup France Poster.png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16강 제1경기
1938년 6월 4일 17:00(UTC+1)

파르크 데 프랭스 (프랑스, 파리)
주심: 장 랑제뉘 (벨기에)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1 : 1
파일:스위스 국기.svg
독일
스위스
29' 요제프 가우헬
득점자
43' 앙드레 아베글렁
관중: 27,152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1라운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15강전 재경기 스위스전 - 2 : 4 패[편집]


파일:1938 FIFA World Cup France Poster.png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16강 재경기
1938년 6월 9일 18:00(UTC+1)

파르크 데 프랭스 (프랑스, 파리)
주심: 이반 에클린트 (스웨덴)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2 : 4
파일:스위스 국기.svg
독일
스위스
8' 빌헬름 하네만
22' 에르네스트 뢰르처(O.G)
득점자
42' 오이겐 발라셰크
64' 프레디 비켈
75', 78' 앙드레 아베글렁
관중: 20,025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1라운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연합국의 처분에 따라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었다. 동서독 모두 1945년부터 4년 간 서독 지역은 미국, 영국, 프랑스의 군정 하에 또 동독은 소련 군정 하에 있었다. 그 후 1949년 5월에 미국, 영국, 프랑스 군정 하에 있던 서부 지역에서 서독 즉, 독일연방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같은 해 10월에 소련 군정 하에 있던 동부 지역에서 동독 즉, 독일민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두 독일은 모두 같은 해에 FIFA에 재가입했다.

그러나 FIFA는 서독과 동독의 가입은 승인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이란 이유로 서독, 동독, 일본은 1950 브라질 월드컵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다. 동서독은 FIFA에 의해 출전 정지 징계를 받으면서 결국 이번 월드컵은 남의 잔치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회가 2020년 현재까지 독일이 출전하지 못한 마지막 대회이며, 이 다음 대회부터 독일은 단 1번의 예선 탈락 없이 매 대회에 개근하고 있다.


5.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편집]



5.1. 16강 조별리그 튀르키예전 - 4 : 1 승[편집]


파일: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로고.svg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2조 제1경기
1954년 6월 17일 17:30(UTC+1)

방크도르프 슈타디온 (스위스, 베른)
주심: 조제 다 코스타 비에이라 (포르투갈)
파일:독일 국기.svg
4 : 1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서독
터키
14' 한스 셰퍼
52' 베른하르트 클로트
60' 오트마르 발터
84' 막스 모를락
득점자
2' 수앗 마마트
관중: 28,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조별리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2. 16강 조별리그 헝가리전 - 3 : 8 패[편집]


파일: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로고.svg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2조 제3경기
1954년 6월 20일 16:50(UTC+1)

세인트 야콥 스타디움 (스위스, 바젤)
주심: 윌리엄 링 (잉글랜드)
파일:독일 국기.svg
3 : 8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49-1956).svg
서독
헝가리
25' 알프레드 파프
77' 헬무트 란
84' 리카르드 헤르만
득점자
3', 21', 69', 78' 산도르 콕시스
17' 페렌츠 푸스카스
52', 54' 히데그쿠티 난도르
75' 조제프 토스
관중: 56,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조별리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3. 16강 조별리그 재경기 튀르키예전 - 7 : 2 승[편집]


파일: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로고.svg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2조 플레이오프
1954년 6월 23일 18:00(UTC+1)

하르드투름 슈타디온 (스위스, 취리히)
주심: 레이몬드 빈센티 (프랑스)
파일:독일 국기.svg
7 : 2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서독
터키
7' 오트마르 발터
12', 79' 한스 셰퍼
30', 60', 77' 막스 모를락
62' 프리츠 발터
득점자
21' 무스타파 에르탄
82' 레프테르 퀴취칸도니아디스
관중: 17,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조별리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4. 8강전 유고슬라비아전 - 2 : 0 승[편집]


파일: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로고.svg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8강 제3경기
1954년 6월 27일 17:00(UTC+1)

스타드 드 샤르밀 (스위스, 제네바)
주심: 이스트반 졸트 (헝가리)
파일:독일 국기.svg
2 : 0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서독
유고슬라비아
9' 이반 호바트(O.G)
85' 헬무트 란
득점자
-
관중: 17,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결선 토너먼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5. 4강전 오스트리아전 - 6 : 1 승[편집]


파일: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로고.svg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4강 제2경기
1954년 6월 30일 18:00(UTC+1)

세인트 야콥 스타디움 (스위스, 바젤)
주심: 빈첸초 오를란디니 (이탈리아)
파일:독일 국기.svg
6 : 1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서독
오스트리아
31' 한스 샤퍼
47' 막스 모를락
54'(PK), 64'(PK) 프리츠 발터
61', 89' 오트마르 발터
득점자
51' 에리히 프롭스트
관중: 58,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결선 토너먼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6. 결승전 헝가리전 - 3 : 2 승[편집]


파일: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로고.svg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결승전
1954년 7월 4일 17:00(UTC+1)

방크도르프 슈타디온 (스위스, 베른)
주심: 윌리엄 링 (잉글랜드)
파일:독일 국기.svg
3 : 2
파일:쥘리메 컵.svg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49-1956).svg
서독
헝가리
10' 막스 모를락
18', 84' 헬무트 란
득점자
6' 페렌츠 푸스카스
8' 치보르 졸탄
관중: 60,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결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편집]



6.1. 16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3 : 1 승[편집]


파일:1958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1조 제1경기
1958년 6월 8일 19:00(UTC+1)

말뫼 슈타디온 (스웨덴, 말뫼)
주심: 레지널드 리프 (잉글랜드)
파일:독일 국기.svg
3 : 1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서독
아르헨티나
32', 79' 헬무트 란
42' 우베 젤러
득점자
3' 오레스테 코르바타
관중: 31,156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조별 리그 1조&2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2. 16강 조별리그 체코슬로바키아전 - 2 : 2 무[편집]


파일:1958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1조 제3경기
1958년 6월 11일 19:00(UTC+1)

올림피아슈타디온 (스웨덴, 헬싱보리)
주심: 아서 에드워드 엘리스 (잉글랜드)
파일:독일 국기.svg
2 : 2

파일:체코 국기.svg
서독
체코슬로바키아
60' 한스 셰퍼
71' 헬무트 란
득점자
25' 밀란 드보락(PK)
42' 즈데넥 지칸
관중: 25,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조별 리그 1조&2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3. 16강 조별리그 북아일랜드전 - 2 : 2 무[편집]


파일:1958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1조 제5경기
1958년 6월 15일 19:00(UTC+1)

말뫼 슈타디온 (스웨덴, 말뫼)
주심: 조아킴 캄포스 (포르투갈)
파일:독일 국기.svg
2 : 2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서독
북아일랜드
20' 헬무트 란
78' 우베 젤러
득점자
18', 60' 피터 맥팔란드
관중: 21,99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조별 리그 1조&2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4. 8강전 유고슬라비아전 - 1 : 0 승[편집]


파일:1958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8강 제4경기
1958년 6월 19일 19:00(UTC+1)

말뫼 슈타디온 (스웨덴, 말뫼)
주심: 레이몬드 위슬링 (잉글랜드)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서독
유고슬라비아
12' 헬무트 란
득점자
-
관중: 20,055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8강 이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5. 4강전 스웨덴전 - 1 : 3 패[편집]


파일:1958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4강 제2경기
1958년 6월 24일 19:00(UTC+1)

울레비 (스웨덴, 예테보리)
주심: 이스트반 졸트 (헝가리)
파일:독일 국기.svg
1 : 3
파일:스웨덴 국기.svg
서독
스웨덴
24' 한스 셰퍼
득점자
32' 카를 스코글룬트
81' 요한 그렌
88' 쿠르트 함린
관중: 49,471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8강 이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6. 3위 결정전 프랑스전 - 3 : 6 패[편집]


파일:1958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3·4위전
1958년 6월 24일 19:00(UTC+1)

울레비 (스웨덴, 예테보리)
주심: 후안 브로치 (아르헨티나)
파일:독일 국기.svg
3 : 6
파일:프랑스 국기.svg
서독
프랑스
18' 한스 치슬라어치크
52' 헬무트 란
84' 한스 셰퍼
득점자
16', 36', 78', 89' 쥐스트 퐁텐
27' 레몽 코파(PK)
50' 이봉 두이
관중: 25,00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8강 이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1962 FIFA 월드컵 칠레[편집]



7.1. 16강 조별리그 이탈리아전 - 0 : 0 무[편집]


파일:1962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62 FIFA 월드컵 칠레 2조 제2경기
1962년 5월 31일 15:00(UTC-4)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칠레, 산티아고)
주심: 로버트 할리 데이비슨 (스코틀랜드)
파일:독일 국기.svg
0 : 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서독
이탈리아
-
득점자
-
관중: 65,440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62 FIFA 월드컵 칠레/조별 리그 1조&2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2. 16강 조별리그 스위스전 - 2 : 1 승[편집]


파일:1962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62 FIFA 월드컵 칠레 2조 제4경기
1962년 6월 3일 15:00(UTC-4)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칠레, 산티아고)
주심: 레오 호른 (네덜란드)
파일:독일 국기.svg
2 : 1
파일:스위스 국기.svg
서독
스위스
45′ 알베르트 브륄스
59' 우베 젤러
득점자
73' 하인츠 슈나이터
관중: 64,922명



7.3. 16강 조별리그 칠레전 - 2 : 0 승[편집]


파일:1962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62 FIFA 월드컵 칠레 2조 제5경기
1962년 6월 6일 15:00(UTC-4)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칠레, 산티아고)
주심: 로버트 할리 데이비슨 (스코틀랜드)
파일:독일 국기.svg
2 : 0
파일:칠레 국기.svg
서독
칠레
21′ 호르스트 스치마니아크(PK)
82' 우베 젤러
득점자
-
관중: 67,224명



7.4. 8강전 유고슬라비아전 - 0 : 1 패[편집]


파일:1962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62 FIFA 월드컵 칠레 8강 제4경기
1962년 6월 10일 14:30(UTC-4)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칠레, 산티아고)
주심: 아르투로 야마사키 말도나도 (페루)
파일:독일 국기.svg
0 : 1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서독
유고슬라비아
-
득점자
85' 페타르 라다코비치
관중: 63,324명



8.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편집]



8.1. 16강 조별리그 스위스전 - 5 : 0 승[편집]




8.2. 16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0 : 0 무[편집]




8.3. 16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2 : 1 승[편집]




8.4. 8강전 우루과이전 - 4 : 0 승[편집]




8.5. 4강전 소련전 - 2 : 1 승[편집]




8.6. 결승전 잉글랜드전 - 2 : 4 패[편집]




9.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편집]



9.1. 16강 조별리그 모로코전 - 2 : 1 승[편집]


파일: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4조 제2경기
1970년 6월 3일 16:00(UTC-6)

에스타디오 누 캄프 (멕시코, 레온)
주심: 로런스 반 라벤스 (네덜란드)
파일:독일 국기.svg
2 : 1
파일:모로코 국기.svg
서독
모로코
56′ 우베 젤러
80′ 게르트 뮐러
득점자
21′ 호메이니 자릴
관중: 12,942명



9.2. 16강 조별리그 불가리아전 - 5 : 2 승[편집]


파일: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4조 제4경기
1970년 6월 7일 12:00(UTC-6)

에스타디오 누 캄프 (멕시코, 레온)
주심: 호세 마리아 오르티즈 데 멘디빌 (스페인)
파일:독일 국기.svg
5 : 2
파일: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국기(1967-1971).svg
서독
불가리아
20′ 라인하르트 리부다
27′, 52'(PK) , 88' 게르트 뮐러
67' 우베 젤러
득점자
12′ 아스파루흐 니코디모프
89' 토도르 콜레프
관중: 12,710명



9.3. 16강 조별리그 페루전 - 3 : 1 승[편집]


파일: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4조 제5경기
1970년 6월 10일 16:00(UTC-6)

에스타디오 누 캄프 (멕시코, 레온)
주심: 아벨 아길라르 엘리잘데 (멕시코)
파일:독일 국기.svg
3 : 1
파일:페루 국기.svg
서독
페루
19′, 26', 39' 게르트 뮐러
득점자
44′ 테오필로 쿠비야스
관중: 17,875명



9.4. 8강전 잉글랜드전 - 3 : 2 승[편집]


파일: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8강 제4경기
1970년 6월 14일 12:00(UTC-6)

에스타디오 누 캄프 (멕시코, 레온)
주심: 앙헬 노베르토 코에레자 (아르헨티나)
파일:독일 국기.svg
3 : 2
(연장전)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서독
잉글랜드
68′ 프란츠 베켄바우어
82' 우베 젤러
108' 게르트 뮐러
득점자
31′ 앨런 뮬러리
49' 마틴 피터스
관중: 23,357명



9.5. 4강전 이탈리아전 - 3 : 4 패[편집]


파일: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4강 제2경기
1970년 6월 17일 16:00(UTC-6)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 멕시코시티)
주심: 아르투로 야마사키 (멕시코)
파일:독일 국기.svg
3 : 4
(서든데스 연장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서독
이탈리아
90′ 카를하인츠 슈넬링어
94', 110' 게르트 뮐러
득점자
8′ 로베르토 보닌세냐
98' 타르치시오 부르니치
104' 루이지 리바
111' 지아니 리베라
관중: 102,444명



9.6. 3위 결정전 우루과이전 - 1 : 0 승[편집]


파일: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3·4위전
1970년 6월 20일 16:00(UTC-6)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 멕시코시티)
주심: 안토니오 스바르델라 (이탈리아)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서독
우루과이
26′ 볼프강 오베라트
득점자
-
관중: 104,403명



10. 1974 FIFA 월드컵 서독[편집]



10.1. 16강 조별리그 칠레전 - 1 : 0 승[편집]


파일:1974 FIFA 월드컵 서독 로고.svg
1974 FIFA 월드컵 서독 1조 제1경기
1974년 6월 14일 16:00(UTC+1)

올림피아슈타디온 (서독, 서베를린)
주심: 도안 바바잔 (터키)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칠레 국기.svg
서독
칠레
18′ 파울 브라이트너
득점자
-
-
퇴장자
67′ 카를로스 카스젤리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81,100명

10.2. 16강 조별리그 호주전 - 3 : 0 승[편집]


파일:1974 FIFA 월드컵 서독 로고.svg
1974 FIFA 월드컵 서독 1조 제3경기
1974년 6월 18일 16:00(UTC+1)

폴크스파르크 슈타디온 (서독, 함부르크)
주심: 마흐무드 무스타파 카멜 (이집트)
파일:독일 국기.svg
3 : 0
파일:호주 국기.svg
서독
호주
12′ 볼프강 오베라트
34′ 베른하르트 쿨만
53′ 게르트 뮐러
득점자
-
관중: 53,000명


10.3. 16강 조별리그 동독전 - 0 : 1 패[편집]


파일:1974 FIFA 월드컵 서독 로고.svg
1974 FIFA 월드컵 서독 1조 제6경기
1974년 6월 22일 19:30(UTC+1)

폴크스파르크 슈타디온 (서독, 함부르크)
주심: 라몬 바레토 루이스 (우루과이)
파일:독일 국기.svg
0 : 1
파일:동독 국기.svg
서독
동독
-
득점자
77′ 위르겐 슈파바서[23]
관중: 60,200명


10.4. 8강 조별리그 유고슬라비아전 - 2 : 0 승[편집]


파일:1974 FIFA 월드컵 서독 로고.svg
1974 FIFA 월드컵 서독 2라운드 B조 제1경기
1974년 6월 26일 16:00(UTC+1)

라인슈타디온 (서독, 뒤셀도르프)
주심: 아르만도 마르케스 (브라질)
파일:독일 국기.svg
2 : 0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서독
유고슬라비아
39′ 파울 브라이트너
82′ 게르트 뮐러
득점자
-
관중: 67,385명


10.5. 8강 조별리그 스웨덴전 - 4 : 2 승[편집]


파일:1974 FIFA 월드컵 서독 로고.svg
1974 FIFA 월드컵 서독 2라운드 B조 제4경기
1974년 6월 30일 19:30(UTC+1)

라인슈타디온 (서독, 뒤셀도르프)
주심: 파벨 카자코프 (소련)
파일:독일 국기.svg
4 : 2
파일:스웨덴 국기.svg
서독
스웨덴
51′ 볼프강 오베라트
52′ 라이너 본호프
76′ 위르겐 그라보우스키
89′ 울리 회네스(PK)
득점자
24′ 랄프 에드스트룀
53′ 롤란트 산트베리
관중: 67,800명


10.6. 8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1 : 0 승[편집]


파일:1974 FIFA 월드컵 서독 로고.svg
1974 FIFA 월드컵 서독 2라운드 B조 제5경기
1974년 7월 3일 16:30(UTC+1)

발트슈타디온 (서독, 프랑크푸르트)
주심: 에리히 리네마이어 (오스트리아)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폴란드 국기.svg
서독
폴란드
76′ 게르트 뮐러
득점자
-
관중: 62,000명


10.7. 결승전 네덜란드전 - 2 : 1 승[편집]


파일:1974 FIFA 월드컵 서독 로고.svg
1974 FIFA 월드컵 서독 결승전
1974년 7월 3일 16:30(UTC+1)

올림피아슈타디온 (서독, 뮌헨)
주심: 잭 테일러 (잉글랜드)
파일:독일 국기.svg
2 : 1
파일:FIFA 월드컵 트로피.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서독
네덜란드
25′ 파울 브라이트너(PK)
43′ 게르트 뮐러
득점자
2′ 요한 네스켄스(PK)
관중: 75,200명



11.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편집]



11.1. 16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0 : 0 무[편집]


파일: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로고.svg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2조 제1경기(개막전)
1978년 6월 1일 15:00(UTC-3)

에스타디오 엘 모누멘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심: 앙헬 노베르토 코에레자 (아르헨티나)
파일:독일 국기.svg
0 : 0
파일:폴란드 국기.svg
서독
폴란드
-
득점자
-
관중: 67,759명


11.2. 16강 조별리그 멕시코전 - 6 : 0 승[편집]


파일: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로고.svg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2조 제3경기
1978년 6월 6일 16:45(UTC-3)

에스타디오 샤토 카레라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심: 파루크 보조 (시리아)
파일:독일 국기.svg
6 : 0
파일:멕시코 국기.svg
서독
멕시코
15′ 디터 뮐러
30′ 한지 뮐러
38′, 73'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44′, 89' 하인츠 플로헤
득점자
-
관중: 35,258명


11.3. 16강 조별리그 튀니지전 - 0 : 0 무[편집]


파일: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로고.svg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2조 제5경기
1978년 6월 10일 16:45(UTC-3)

에스타디오 샤토 카레라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심: 세자르 게레로 오로스코 (페루)
파일:독일 국기.svg
0 : 0
파일:튀니지 국기.svg
서독
튀니지
-
득점자
-
관중: 30,667명


11.4. 8강 조별리그 이탈리아전 - 0 : 0 무[편집]


파일: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로고.svg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2라운드 A조 제2경기
1978년 6월 14일 13:45(UTC-3)

에스타디오 엘 모누멘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심: 두산 막시모비치 (유고슬라비아)
파일:독일 국기.svg
0 : 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서독
이탈리아
-
득점자
-
관중: 67,547명


11.5. 8강 조별리그 네덜란드전 - 2 : 2 무[편집]


파일: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로고.svg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2라운드 A조 제3경기
1978년 6월 18일 16:45(UTC-3)

에스타디오 샤토 카레라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심: 라몬 바레토 (우루과이)
파일:독일 국기.svg
2 : 2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서독
네덜란드
3′ 뤼디거 아브람치크
70′ 디터 뮐러
득점자
27′ 아리에 한
82′ 레네 판 더 케르크호프
-
퇴장자
88′ 딕 나닝가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40,750명


11.6. 8강 조별리그 오스트리아전 - 2 : 3 패[편집]


파일: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로고.svg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2라운드 A조 제5경기
1978년 6월 21일 13:45(UTC-3)

에스타디오 샤토 카레라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심: 아브라함 클라인 (이스라엘)
파일:독일 국기.svg
2 : 3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서독
오스트리아
19′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72′ 베르트 횔첸바인
득점자
59′ 베르티 포그츠(O.G)
66', 87′ 한스 크랑클
관중: 38,818명


12.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편집]



12.1. 24강 조별리그 알제리전 - 1 : 2 패[편집]


파일: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로고.svg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2조 제1경기
1982년 6월 16일 17:15(UTC+1)

에스타디오 엘 몰리논 (스페인, 히혼)
주심: 엔리케 라보 레보레도 (페루)
파일:독일 국기.svg
1 : 2
파일:알제리 국기.svg
서독
알제리
67′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득점자
54′ 라바 마드제르
68′ 라크다르 벨루미
관중: 42,000명


12.2. 24강 조별리그 칠레전 - 4 : 1 승[편집]


파일: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로고.svg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2조 제3경기
1982년 6월 20일 17:15(UTC+1)

에스타디오 엘 몰리논 (스페인, 히혼)
주심: 브루노 겔러 (스위스)
파일:독일 국기.svg
4 : 1
파일:칠레 국기.svg
서독
칠레
9', 57', 66′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81′ 우베 라인데르스
득점자
90′ 구스타브 모스코소
관중: 42,000명


12.3. 24강 조별리그 오스트리아전 - 1 : 0 승[편집]


파일: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로고.svg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2조 제6경기
1982년 6월 25일 17:15(UTC+1)

에스타디오 엘 몰리논 (스페인, 히혼)
주심: 브루노 겔러 (스위스)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서독
오스트리아
10′ 호르스트 흐루베쉬
득점자
-
관중: 41,000명




12.4. 12강 조별리그 잉글랜드전 - 0 : 0 무[편집]


파일: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로고.svg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2라운드 B조 제1경기
1982년 6월 29일 21:00(UTC+1)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페인, 마드리드)
주심: 아르날두 체자르 코엘류 (브라질)
파일:독일 국기.svg
0 : 0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서독
잉글랜드
-
득점자
-
관중: 75,000명


12.5. 12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2 : 1 승[편집]


파일: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로고.svg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2라운드 B조 제2경기
1982년 7월 2일 21:00(UTC+1)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페인, 마드리드)
주심: 파올로 카사린 (이탈리아)
파일:독일 국기.svg
2 : 1
파일:스페인 국기.svg
서독
스페인
50′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75′ 클라우스 피셔
득점자
82′ 헤수스 자모라
관중: 90,089명


12.6. 4강전 프랑스전 - 3 : 3 무(PSO 5 : 4 승)[편집]


파일: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로고.svg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4강 제2경기
1982년 7월 8일 17:15(UTC+1)

에스타디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스페인, 세비야)
주심: 카를르스 코르버르 (네덜란드)
파일:독일 국기.svg
3 : 3
(PSO 5 - 4)
파일:프랑스 국기.svg
서독
프랑스
17′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102′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108′ 클라우스 피셔
득점자
27′ 미셸 플라티니(PK)
92′ 마리우스 트레소르
98′ 알랭 지레스
관중: 70,000명

승부차기
국가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점수
5
4
순서
후축
선축
1
만프레드 칼츠
O
알랭 지레스
O
2
파울 브라이트너
O
마누엘 아모로스
O
3
울리 슈틸리케
X
(골키퍼 선방)
도미니크 로셰테우
O
4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O
디디에 시스
X
(골키퍼 선방)
5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O
미셸 플라티니
O
6
호르스트 흐루베쉬
O
막생 보시스
X
(골키퍼 선방)


12.7. 결승전 이탈리아전 - 1 : 3 패[편집]


파일: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로고.svg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결승전
1982년 7월 11일 20:00(UTC+1)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페인, 마드리드)
주심: 아르날두 체자르 코엘류 (브라질)
파일:독일 국기.svg
1 : 3
파일:FIFA 월드컵 트로피.svg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서독
이탈리아
83′ 파울 브라이트너
득점자
57′ 파올로 로시
69′ 마르코 타르델리
81′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관중: 90,000명


13.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편집]



13.1. 24강 조별리그 우루과이전 - 1 : 1 무[편집]


파일: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E조 제1경기
1986년 6월 4일 12:00(UTC-6)

에스타디오 라 코레히도라 (멕시코, 케레타로)
주심: 보이테크 크리스토프 (체코슬로바키아)
파일:독일 국기.svg
1 : 1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서독
우루과이
84' 클라우스 알로프스
득점자
4' 안토니오 알사멘디
관중: 30,500명


13.2. 24강 조별리그 스코틀랜드전 - 2 : 1 승[편집]


파일: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E조 제3경기
1986년 6월 8일 12:00(UTC-6)

에스타디오 라 코레히도라 (멕시코, 케레타로)
주심: 이오안 이그나 (루마니아)
파일:독일 국기.svg
2 : 1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서독
스코틀랜드
23' 루디 푈러
49' 클라우스 알로프스
득점자
18' 고든 스트런
관중: 30,000명


13.3. 24강 조별리그 덴마크전 - 0 : 2 패[편집]


파일: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E조 제5-1경기
1986년 6월 13일 12:00(UTC-6)

에스타디오 라 코레히도라 (멕시코, 케레타로)
주심: 알렉시스 포넷 (벨기에)
파일:독일 국기.svg
0 : 2

파일:덴마크 국기.svg
서독
덴마크
-
득점자
43' 예스퍼 올센(PK)
62' 존 하르트만 에릭센
-
퇴장자
88′ 프랑크 아르네센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36,000명


13.4. 16강전 모로코전 - 1 : 0 승[편집]


파일: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16강 제6경기
1986년 6월 17일 16:00(UTC-6)

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 (멕시코, 몬테레이)
주심: 조란 페트로비치 (유고슬라비아)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모로코 국기.svg
서독
모로코
88' 로타어 마테우스
득점자
-
관중: 19,800명


13.5. 8강전 멕시코전 - 0 : 0 무(PSO 4 : 1 승)[편집]


파일: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8강 제2경기
1986년 6월 21일 16:00(UTC-6)

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 (멕시코, 몬테레이)
주심: 헤수스 디아스 (콜롬비아)
파일:독일 국기.svg
0 : 0
(PSO 4 - 1)
파일:멕시코 국기.svg
서독
멕시코
-
득점자
-
65′ 토마스 베르톨트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퇴장자
100′ 하비에르 아기레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41,700명

승부차기
국가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점수
4
1
순서
선축
후축
1
클라우스 알로프스
O
마누엘 네그레테
O
2
안드레아스 브레메
O
페르난도 키라테
X
(골키퍼 선방)
3
로타어 마테우스
O
라울 세르빈
X
(골키퍼 선방)
4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O
-
-


13.6. 4강전 프랑스전 - 2 : 0 승[편집]


파일: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4강 제1경기
1986년 6월 25일 12:00(UTC-6)

에스타디오 할리스코 (멕시코, 과달라하라)
주심: 루이지 아뇰린 (이탈리아)
파일:독일 국기.svg
2 : 0
파일:프랑스 국기.svg
서독
프랑스
9′ 안드레아스 브레메
89′ 루디 푈러
득점자
-
관중: 45,000명


13.7. 결승전 아르헨티나전 - 2 : 3 패[편집]


파일: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결승전
1986년 6월 29일 12:00(UTC-6)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 멕시코시티)
주심: 호무알두 아르피 필류 (브라질)
파일:독일 국기.svg
2 : 3
파일:FIFA 월드컵 트로피.svg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서독

아르헨티나

74′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81′ 루디 푈러
득점자
23′ 호세 루이스 브라운
56′ 호르헤 발다노
84′ 호르헤 부르차가
관중: 114,600명


14.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편집]



14.1. 24강 조별리그 유고슬라비아전 - 4 : 1 승[편집]


파일: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로고.svg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D조 제2경기
1990년 6월 10일 21:00(UTC+1)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이탈리아, 밀라노)
주심: 페테르 미켈센 (덴마크)
파일:독일 국기.svg
4 : 1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서독
유고슬라비아
28', 64' 로타어 마테우스
39′ [[위르겐 클린스만|{{{#000 위르겐 클린스만}}}]]
70′ [[루디 푈러|{{{#000 루디 푈러}}}]]
득점자
55' 다보르 요지치
관중: 74,765명


14.2. 24강 조별리그 아랍에미리트전 - 5 : 1 승[편집]


파일: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로고.svg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D조 제4경기
1990년 6월 15일 21:00(UTC+1)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이탈리아, 밀라노)
주심: 알렉세이 스피린 (소련)
파일:독일 국기.svg
5 : 1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서독
아랍에미리트
35', 75' 루디 푈러
37′ [[위르겐 클린스만|{{{#000000 위르겐 클린스만}}}]]
47′ [[로타어 마테우스|{{{#000000 로타어 마테우스}}}]]
58′ [[우베 바인|{{{#000000 우베 바인}}}]]
득점자
46' 칼리드 이스마일
관중: 71,169명


14.3. 24강 조별리그 콜롬비아전 - 1 : 1 무[편집]


파일: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로고.svg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D조 제5-1경기
1990년 6월 19일 17:00(UTC+1)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이탈리아, 밀라노)
주심: 앨런 스노디 (북아일랜드)
파일:독일 국기.svg
1 : 1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서독
콜롬비아
88'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득점자
90+3' 프레디 링콘
관중: 72,510명


14.4. 16강전 네덜란드전 - 2 : 1 승[편집]


파일: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로고.svg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16강 제4경기
1990년 6월 24일 21:00(UTC+1)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이탈리아, 밀라노)
주심: 후안 카를로스 로우스타우 (아르헨티나)
파일:독일 국기.svg
2 : 1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서독
네덜란드
51' 위르겐 클린스만
85' 안드레아스 브레메
득점자
89' 로날드 쿠만(PK)
22′ 루디 푈러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퇴장자
22′ 프랑크 레이카르트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74,559명


14.5. 8강전 체코슬로바키아전 - 1 : 0 승[편집]


파일: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로고.svg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8강 제3경기
1990년 7월 1일 21:00(UTC+1)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이탈리아, 밀라노)
주심: 헬무트 콜 (오스트리아)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체코 국기.svg
서독
체코슬로바키아
25' 로타어 마테우스(PK)
득점자
-
관중: 73,347명


14.6. 4강전 잉글랜드전 - 1 : 1 무(PSO 4 : 3 승)[편집]




14.7. 결승전 아르헨티나전 - 1 : 0 승[편집]




15. 1994 미국 월드컵[편집]



15.1. 24강 조별리그 볼리비아전 - 1 : 0 승[편집]


파일:1994 FIFA 월드컵 미국 로고.svg
1994 FIFA 월드컵 미국 C조 제1경기(개막전)
1994년 6월 17일 14:00(UTC-5)

솔저 필드 (미국, 시카고)
주심: 아르투로 브리지오 카르테르 (멕시코)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독일
볼리비아
61′ 위르겐 클린스만
득점자
-
-
퇴장자
83′ 마르코 에체베리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관중: 63,117명


15.2. 24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1 : 1 무[편집]


파일:1994 FIFA 월드컵 미국 로고.svg
1994 FIFA 월드컵 미국 C조 제3경기
1994년 6월 21일 15:00(UTC-5)

솔저 필드 (미국, 시카고)
주심: 필리피 카바니 (우루과이)
파일:독일 국기.svg
1 : 1

파일:스페인 국기.svg
독일
스페인
61′ 위르겐 클린스만
득점자
14′ 이온 고이코에체아
관중: 63,113명


15.3. 24강 조별리그 대한민국전 - 3 : 2 승[편집]


파일:1994 FIFA 월드컵 미국 로고.svg
1994 FIFA 월드컵 미국 C조 5-2경기
1994년 6월 27일 월요일 15:00 (UTC-6)

[[코튼 볼|{{{#000000 코튼 볼]] ([[미국|{{{#000000 미국]], [[댈러스|{{{#000000 댈러스]])
주심: [[조엘 퀴니우|{{{#000000 조엘 퀴니우]] [[프랑스|{{{#000000 (프랑스)]]
관중: 63,998명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2 : 3

파일:Deutscher-fussball-bund-logo.png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대한민국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52′ [[황선홍|{{{#000000,#dddddd 황선홍}}}]]
63′ [[홍명보|{{{#000000,#dddddd 홍명보}}}]]
파일:득점 아이콘.svg
12′, 37' [[위르겐 클린스만|{{{#000000,#dddddd 위르겐 클린스만}}}]]
20′ [[카를하인츠 리들레|{{{#000000,#dddddd 카를하인츠 리들레}}}]]
[[https://m.youtube.com/watch?v=vkhMXruAYXg&pp=ygUN7ZWc6rWtIOuPheydvA%3D%3D|{{{#000000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1994usa/match-center/3076|{{{#000000 매치 리포트}}}]]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독일 국기.svg



15.4. 16강전 벨기에전 - 3 : 2 승[편집]


파일:1994 FIFA 월드컵 미국 로고.svg
1994 FIFA 월드컵 미국 16강 제1경기
1994년 7월 2일 12:00(UTC-5)

솔저 필드 (미국, 시카고)
주심: 쿠르트 뢰틀리스베르거 (스위스)
파일:독일 국기.svg
3 : 2

파일:벨기에 국기.svg
독일
벨기에
6′, 38' 루디 푈러
11′ 위르겐 클린스만
득점자
8′ 게오르그 그륀
90' 필리프 알베르트
관중: 60,246명


15.5. 8강전 불가리아전 - 1 : 2 패[편집]


파일:1994 FIFA 월드컵 미국 로고.svg
1994 FIFA 월드컵 미국 8강 제3경기
1994년 7월 10일 12:00(UTC-4)

자이언츠 스타디움 (미국, 이스트 러더퍼드)
주심: 호세 토레스 카데나 (콜롬비아)
파일:독일 국기.svg
1 : 2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독일
불가리아
47' 로타어 마테우스(PK)
득점자
75′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90' 요르단 레치코프
관중: 72,000명


16.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편집]



16.1. 32강 조별리그 미국전 - 2 : 0 승[편집]




16.2. 32강 조별리그 유고슬라비아전 - 2 : 2 무[편집]




16.3. 32강 조별리그 이란전 - 2 : 0 승[편집]




16.4. 16강전 멕시코전 - 2 : 1 승[편집]




16.5. 8강전 크로아티아전 - 0 : 3 패[편집]





17.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편집]


크로아티아에게 0:3 충격패를 당하며 독일 대표팀이 2개 대회 연속으로 8강에 그치는 부진함을 보이자 독일 축구 연맹은 결국 베르티 포크츠를 경질하였다. 보통 독일은 감독을 경질하면 그 후임 감독은 수석코치를 승격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하곤 했는데, 독일 축구 연맹은 당시 수석코치였던 울리 슈틸리케가 영 미덥지 못했는지 슈틸리케를 감독으로 승격시키지 않고 에리히 리베크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리베크도 기울어가는 독일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독일 축구의 당면 과제는 로타어 마테우스 중심의 스리백 스위퍼 시스템이란 낡은 구식 축구를 탈피하는 것이었다.[24] 하지만 리베크는 계속해서 스리백 시스템을 고수하려 했고 이 문제 때문에 슈틸리케와 척을 지고 대판 싸움을 벌였으며, 거기다가 독일 선수들도 리베크와 슈틸리케에게 둘 다 불만을 품어 반항하고 개기는 모습을 보이며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슈틸리케는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돌아가 버렸고 호르스트 흐루베쉬가 급하게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이렇게 좌충우돌 속에서 독일은 유로 2000을 치르게 되었다. 당시 독일은 루마니아, 포르투갈, 잉글랜드와 함께 A조에 속했다. 1차전 루마니아전에선 전반 5분 만에 비오렐 몰도반에게 선제골을 먹었다가 28분에 메멧 숄의 동점골로 간신히 1:1로 비겼다. 2차전 경기는 숙적 잉글랜드와의 경기였는데, 이 중요한 경기에서 독일은 앨런 시어러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 : 1로 패배했다. 2차전까지 중간 순위는 포르투갈이 2승(승점 6점)으로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1승 1패(승점 3점)를 기록한 잉글랜드가 2위, 독일과 루마니아가 1무 1패(승점 1점) 1득점 2실점으로 동률을 기록해 공동으로 최하위에 있었다. 독일로서는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무조건 2골 차 이상으로 이기고 동시에 잉글랜드 VS 루마니아의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독일은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세르지우 콘세이상에게 해트트릭을 얻어맞는 굴욕을 당하며 1무 2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결국 리베크도 경질되었고 새로운 감독으로 만 40세의 루디 푈러가 선임되었다. 하지만 푈러는 이때까지 어떤 팀도 맡아본 적이 없는 초짜 감독이어서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사실상 전설적인 선수였던 사람답게 선수들 군기 좀 잡으라고 선임한 것에 가까웠다.

이번 대회는 유럽에게 총 14.5장의 티켓이 배당되었다. 이 중 1장은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가 확보한 자동 출전권이었고, 나머지 13.5장이 유럽 지역예선에 배당되었다. UEFA에 소속된 51개 팀 중 자동 출전하는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50개 팀을 9개 조로 나누었는데, 이 중 5개 조는 6팀씩 들어가고 나머지 4개 조는 5팀씩 들어간다. 그리하여 각 조 1위를 차지한 9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각 조 2위를 한 팀은 무작위 추첨을 통해 먼저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갈 팀을 1팀 지정한다. 대륙간 플레이오프 행이 결정된 1팀은 아시아 지역예선 3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 승리할 시 본선에 오른다. 그리고 나머지 8팀은 추첨을 통해 홈 & 어웨이 단판 승부 플레이오프를 펼쳐 승리한 4팀이 본선에 오르는 방식이다. 이때 독일은 잉글랜드, 핀란드, 그리스, 알바니아와 함께 9조에 속했다. 전통의 라이벌 잉글랜드를 빼면 모두가 핫바리들 뿐이었다.

1차전에서 독일은 홈에서 그리스를 2 : 0으로 이기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리고 2차전 라이벌 잉글랜드 원정 경기에서 독일은 전반 14분에 터진 디트마르 하만의 결승골로 1 : 0 승리를 거두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3차전 조 최약체 알바니아와의 홈 경기에서 독일은 시종일관 고전을 면치 못하며 2 : 1 신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4차전 그리스 원정 경기에선 4 : 2 승리를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9조의 순위는 독일이 4전 전승(승점 12점)으로 1위, 잉글랜드가 2승 1무 1패(승점 7점)로 2위, 핀란드가 1승 1무 2패(승점 4점)로 3위 그리스와 알바니아가 1승 3패(승점 3점)로 동률이었으나 골득실에서 알바니아가 -2, 그리스가 -5를 기록해 알바니아가 4위, 그리스가 5위에 있었다.

5차전 핀란드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면 독일은 이제 본선 진출의 9부 능선을 넘을 수 있었으나, 독일은 이 중요한 경기에서 2 : 2 충격적인 무승부를 거두고 말았다. 6차전 알바니아 원정 경기에서도 독일은 고전 끝에 2 : 0으로 승리했다. 같은 날 잉글랜드 역시 그리스 원정 경기에서 2 : 0 승리를 거두었다. 이 시점에서 독일은 5승 1무의 전적으로 승점 16점을 기록 중이었고, 잉글랜드는 1경기 덜 치른 상황에서 3승 1무 1패의 전적으로 승점 10점을 기록 중이었다. 이제 7차전은 잉글랜드와의 홈 경기였다. 두 팀 모두 승점 3점이 절실한 경기였다. 특히 잉글랜드로서는 반드시 이 경기를 이겨야 1경기 덜 치른 상황에서 독일과의 승점 차를 3점으로 좁혀 순위 역전을 노려볼 수 있었다. 반면 독일로서는 이 경기를 이기면 본선 진출을 거의 확정짓게 된다.

이 경기에서 독일은 전반 6분 만에 카르스텐 얀커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잉글랜드의 거센 반격을 받았다. 불과 6분 뒤에 마이클 오언에게 동점골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전반 종료 직전에 스티븐 제라드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전반을 1 : 2로 마쳤다. 그리고 후반 3분에 또 오언에게 골을 내주었고, 후반 20분에도 또 오언에게 골을 내주어 오언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는 굴욕을 겪고 말았다. 그리고 후반 28분에 에밀 헤스키가 굿바이 골을 터뜨리며 무려 1 : 5로 대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자 독일 전역은 푈러에 대한 욕설로 가득찼고, 푈러의 부친은 경기를 보다가 심장 발작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했다. 1 : 5라는 역사적인 대참패에 푈러는 물론이고 독일 축구 협회 회장까지 나서서 전 국민에게 석고대죄를 올려야 했다. 반면 잉글랜드는 경사가 났다. 처음엔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을 외국인이라고 배척했지만 적지에서 1970 멕시코 월드컵 이후 국제 대회 때마다 자신들을 물먹였던 독일을 무려 5 : 1이란 큰 점수 차로 발라버렸으니 그에게 엄청난 찬사가 쏟아졌고 심지어는 기사 작위를 수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리하여 7차전 경기 직후 독일의 승점은 16점에서 묶여버렸고, 잉글랜드는 1경기 덜 치른 상황에서 13점까지 치고 올라와 독일과의 승점 격차를 3점으로 좁혔다. 그리고 독일이 휴식할 때 잉글랜드는 알바니아와의 홈 경기에서 2 : 0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독일과 잉글랜드는 승점 16점으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 득실에서 잉글랜드가 +10, 독일이 +4를 기록해 순위가 뒤집혔다. 이제 독일로서는 마지막 8차전 핀란드와의 홈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동시에 잉글랜드가 홈에서 그리스에 비기거나 져야만 본선에 직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독일인들은 열심히 기도하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기도가 어느 정도 통했는지, 잉글랜드는 홈에서 의외로 그리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2 : 2 무승부에 그쳤다.[25] 그러나 독일 역시 핀란드를 상대로 고전하다가 1골도 못 넣고 0 : 0으로 비겼다. 결국 잉글랜드가 조 1위를 지켜 본선에 직행하였고 독일은 플레이오프로 떨어졌다.

독일의 플레이오프 상대는 동유럽의 우크라이나로 정해졌다. 하지만 속담에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을 것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독일이 쇠잔해졌다고 하더라도 구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핫바리 우크라이나 따위에게 잡힐 만큼 쇠잔하진 않았다. 1차전 원정 경기에선 1 : 1 무승부에 그쳤지만 2차전 홈 경기에선 압도적인 홈 관중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힘을 배가시켜 우크라이나를 4 : 1로 발라버리며 합산 점수 5 : 2를 기록하여 가까스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본선에 오른 독일은 2001년 연말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위치한 벡스코에서 열린 조 추첨식에서 아일랜드, 사우디아라비아, 카메룬과 함께 E조에 속했다. 딱히 어려운 상대가 없는 무난한 조 편성이었다. 독일은 조별리그는 일본에서 치르고 16강에 진출할 경우 한국으로 이동해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지역예선에서 플레이오프까지 밀릴 정도로 형편 없는 모습을 보였기에 독일은 농담으로라도 우승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그렇게 기대감이 식을 대로 식은 상황에서 독일 대표팀은 결전의 땅 일본으로 떠났다.


17.1. 32강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전 - 8 : 0 승[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E조 2경기
2002.06.01.(토) 20:30 (UTC+9)

삿포로 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
주심: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우발도 아키노
파일:독일 국기.svg
8 : 0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20′, 25', 70' 미로슬라프 클로제
40' 미하엘 발락
45+1' 카르스텐 얀커
73' 토마스 린케
84' 올리버 비어호프
90+1' 베른트 슈나이더(FK)
득점
-
관중: 32,218명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독일 국기.svg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중동의 왕자 사우디아라비아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맞붙은 것은 이번이 최초였다. 독일은 이전까지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과 총 3차례 맞대결을 벌여 3전 전승을 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26] 독일도 당시 팀 내 상황이 뒤숭숭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브라질 출신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이 경질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에서는 4년 동안 무려 6명이나 되는 감독들이 교체되었다. 그나마 아시아 대회에선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아직 강호임을 입증했지만 세계 무대와의 격차는 여전히 컸다. 특히 나세르 알 조하르가 조별리그 2차전에 급하게 감독으로 부임해 아시안컵 준우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연맹은 뜬금없이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슬로보단 산트라치 감독을 선임하며 알 조하르를 다시 수석코치로 내려버렸다. 그러나 산트라치가 별로 신통치 못하자 다시 경질해 버리고 알 조하르를 감독으로 세웠다. 조하르는 독일전을 앞두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27] 하지만 그 자신감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못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독일은 초반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전반 1분 만에 193cm의 장신 공격수 카르스텐 얀커가 헤더 슛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전반 7분, 얀커가 또 사우디아라비아의 골망을 흔들었으나 골을 넣기 전에 얀커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비수 압둘라 주브로마위에게 거친 태클을 범했기 때문에 주심 우발도 아키노는 노골을 선언했다. 그 이후로도 독일은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밀어붙이며 공격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너무나도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간신히 버티기만 했다. 탄탄한 피지컬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독일의 맹공에 왜소한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은 몸싸움에서 밀리며 계속해서 위기 상황을 허용하였다. 그러던 전반 20분, 미하엘 발락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좌측 진영에서 크로스를 올렸고 중앙에 있던 얀커가 바이시클 킥을 시도했으나 헛발질에 그치며 볼은 땅에 맞고 바운드되어 튀어올랐다. 이 볼을 옆에 있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헤더 골을 터뜨리며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이 골을 시작으로 독일의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불과 5분 후에는 발락이 좌측에서 올린 크로스를 클로제가 다시 한 번 헤더로 마무리하며 스코어를 2 : 0으로 벌렸다. 클로제 옆에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수가 3명이나 있었지만 이들은 공중볼 경합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프리 헤더 찬스를 허용하였고 그대로 실점으로 이어졌다. 이 골을 성공시킨 후 클로제는 그 후로도 널리 회자되는 공중제비 골 셀레브레이션을 선보였다. 독일이 이렇게 공격을 퍼붓는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변변한 슈팅 찬스 한 번 잡아보지 못했다. 독일의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반 40분, 크리스티안 지게가 전방으로 띄운 볼을 발락이 역시 헤더로 마무리하며 점수는 3 : 0으로까지 벌어졌다. 사실 이날 독일의 공격 패턴은 대부분 피지컬, 힘과 높이를 활용한 단순무식한 패턴이었다. 그냥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면 헤더로 찍어내리는 게 끝이었다. 하지만 이 단순무식한 독일의 공격 패턴에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전반 추가시간 1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우측 진영에서 토르스텐 프링스가 전방으로 볼을 띄웠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센터백 레다 투카르가 걷어내기 시도를 했으나 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공은 그대로 얀커의 발 앞으로 굴러갔다. 얀커는 그대로 오른발 논스톱 슛을 날렸고, 이 슛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알 데아예아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며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 점수를 4 : 0으로 벌렸다. 그렇게 전반전 경기는 독일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흘러갔고 독일의 4 : 0 리드로 마쳤다.

경기가 일방적인 페이스로 흐르자 푈러는 아예 사우디아라비아를 철저하게 박살내 버리려는 듯 하프 타임 때 센터백 카르스텐 라멜로프를 빼고 미드필더 옌스 예레미스를 교체 투입해 스리백을 포백으로 전환해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 조하르 역시 하프 타임 때 선수 2명을 동시에 교체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독일은 후반전에도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밀어붙였으나 후반 초반에는 의외로 마무리에서 살짝살짝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후반 초반에 득점 기회를 여러 차례 날렸다. 후반 21분, 푈러는 얀커를 빼고 올리버 비어호프를 교체 투입했다. 그러자 독일의 공격 템포가 더욱 활기를 띄었다. 그리고 후반 25분, 베른트 슈나이더가 우측에서 올린 크로스를 클로제가 또 한 번 헤더로 받아넣어 스코어를 5 : 0으로 벌렸다. 당시 슈퍼 루키였던 클로제는 자신의 월드컵 데뷔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장면에서도 페널티 에어리어에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수들이 3명이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클로제를 제대로 마크하지 못하며 또 다시 프리 헤더 찬스를 안겨주었다.

5골 차로 앞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게 자비심이란 전혀 없었다. 독일은 아예 기록이라도 세우려는 듯 계속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밀어붙였다. 클로제가 골을 넣은지 불과 3분 후, 후반 28분에 독일의 코너킥 찬스에서 지게가 올린 코너킥을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토마스 링케가 헤더로 또 추가골을 터뜨리며 스코어는 6 : 0으로 벌어졌다. 이 장면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수들은 공중전에서 전혀 독일 선수들에게 상대가 되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다. 후반 31분, 루디 푈러는 해트트릭을 기록한 클로제를 빼고 올리버 뇌빌을 투입해 체력 안배에 나섰고 조하르 또한 어떻게든 1골을 넣겠다고 공격수를 교체했다. 그렇게 양 팀 모두 3장의 교체 카드를 소진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계속해서 제대로 된 공격 찬스를 잡아보지 못하고 끌려다녔으며 모처럼 얻은 공격 찬스에서도 부정확한 슈팅을 날리며 전혀 독일에 위협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악몽은 아직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반 39분, 슈나이더의 킬 패스를 받은 비어호프가 사우디아라비아 센터백 사이를 파고들며 중거리 슛을 날렸고, 이 역시 그대로 골문으로 향하며 스코어는 7 : 0으로 벌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한 것인지 경기를 아예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1분에 독일의 역습 찬스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드필더 모하메드 누르가 슈나이더를 향해 거친 파울을 범해 경고를 받았고 페널티 에어리어 외곽 지역에서 프리킥 찬스를 허용했다. 그리고 이 프리킥 찬스에서 킥커 슈나이더가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점수는 8 : 0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2분 후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며 그대로 독일의 8 : 0 승리로 끝이 났다. 이로써 독일은 아시아 팀과의 4번째 맞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아시아 팀을 상대로 전승 기록을 이어갔다. 그리고 8 : 0 승리는 독일의 월드컵 단일 경기 최다 점수 차 승리였고 이날 기록한 8득점은 역시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경기였다. 독일은 사우디아라비아를 8 : 0으로 찍어누르며 여전히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경기에서 0 : 8로 대패하며 자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에서 단일 경기 최다 실점 및 최다 점수 차 패배를 당했다. 아시아 팀 전체로 확대해 봐도 이 경기는 1954 스위스 월드컵 때 대한민국이 헝가리에게 0 : 9로 대패한 이후 2번째로 가장 큰 점수 차 패배였다.[28] 어쨌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경기 한 방으로 골득실이 무려 -8까지 떨어진 탓에 이제 1승 1무 1패(승점 4점)로는 16강 진출을 절대 할 수 없게 되었다. 즉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야만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된 것이다.


17.2. 32강 조별리그 아일랜드전 - 1 : 1 무[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E조 3경기
2002.06.05.(수) 20:30 (UTC+9)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 (일본, 이바라키현 이바라키시)
주심: 파일:덴마크 국기.svg 킴 밀톤 닐센
파일:독일 국기.svg
1 : 1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독일
아일랜드
19' 미로슬라프 클로제
득점
90+2' 로비 킨
관중: 35,854명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로비 킨
1차전에서 기분 좋은 대승을 거둔 독일은 조별리그 2차전에서 아일랜드를 만났다. 두 팀이 월드컵 무대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일랜드는 1차전에서 카메룬과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끝에 1 : 1 무승부를 거두었다. 독일로서는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무조건 16강 진출이 확정된다. 반면 아일랜드로서는 3차전 상대가 조 최약체인 사우디아라비아인 만큼 이 경기에서 이기면 최상이고 안 되면 어떻게든 무승부라도 따내야 했다. 독일은 이 경기에서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전과 똑같은 선발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아일랜드는 1차전에서 라이트백으로 출전한 게리 켈리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올리고 그 빈 자리에 스티브 피넌이 들어갔으며, 1차전에서 오른쪽 미드필더로 출전한 제이슨 매카티어를 벤치에 앉힌 걸 제외하면 역시 똑같은 선발 라인업으로 경기에 임했다.

전반전 초반에는 독일이 공격적으로 나서며 경기를 주도했고 아일랜드는 탄탄한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득점 기회를 노렸다. 전반 초반 몇 차례 탐색전이 오고간 후 전반 19분에 베른트 슈나이더의 패스를 받은 미하엘 발락이 중원에서 전방으로 길게 볼을 띄웠다. 그리고 이 볼을 신예 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정확하게 헤더로 연결하여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클로제는 첫 출전한 대회에서 벌써 4골이나 터뜨려 대회 득점왕 경쟁에 가세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독일은 아일랜드의 작전에 완전히 말려들고 말았다. 아일랜드는 주도권을 독일에게 내주면서도 골만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 늪 축구로 독일을 괴롭혔다. 1 : 0이란 점수는 불안하기에 독일은 계속해서 추가골을 넣으려고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아일랜드는 끈적끈적한 수비로 절대 골을 내주지 않고 버텼다. 그렇게 전반전은 일단 독일이 1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너무 무리하게 힘을 써서 8골이나 넣은 탓인지 이날 경기에서 독일 선수들은 뭔가 좀 시원찮은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빠른 역습을 무기로 한 아일랜드에게 허를 찔리는 모습을 보였다. 세계 최고의 수문장인 올리버 칸의 맹활약이 아니었다면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독일과 아일랜드 모두 70분까지 교체 카드 없이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이후 후반 28분, 아일랜드의 믹 매카시 감독은 독일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해 승부수를 띄웠다. 레프트백 이언 하트와 오른쪽 미드필더 게리 켈리를 동시에 빼고 공격수 나이얼 퀸과 미드필더 스티븐 리드를 동시에 교체 투입한 것이다. 즉 수비 숫자를 줄이고 공격 숫자를 늘리는 맞불 교체 카드였다. 푈러도 후반 30분에 부진했던 카르스텐 얀커를 빼고 올리버 비어호프를 교체 투입했다.

독일과 아일랜드 모두 결정적인 득점 찬스가 왔지만 그걸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스코어는 여전히 독일이 1 : 0으로 위태위태하게 리드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후반 40분을 넘어서자 푈러는 공격수 클로제를 빼고 미드필더 마르코 보데를 투입해 지키기에 나섰다. 후반 42분, 매카시도 수비수를 교체하는 것으로 교체 카드를 다 썼으며 후반 44분엔 푈러가 슈나이더를 빼고 옌스 예레미스를 교체 투입해 교체 카드 3장을 모두 썼다. 그렇게 90분이 다 지나갔고 추가 시간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2분, 아일랜드의 라이트백 스티브 피넌이 하프라인 바로 아래에서 전방으로 길게 볼을 띄웠다. 이 볼을 나이얼 퀸크리스토프 메첼더와의 공중볼 경합 끝에 승리하며 따냈고, 이 세컨드 볼을 로비 킨이 받았고 킨은 독일 수비의 빈틈으로 침투해 칸과의 1 : 1 상황에서 침착하게 마무리하여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1분 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며 경기는 1 : 1 무승부로 끝났다.

그리하여 독일은 2차전에서 16강 진출을 확정짓지 못하고 3차전까지 지켜봐야 했다. 다음 날 오후 6시 사이타마에서 열린 카메룬 VS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는 사무엘 에투의 결승골로 카메룬이 1 : 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E조의 중간 순위는 독일과 카메룬이 1승 1무(승점 4점)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에서 독일이 +8, 카메룬이 +1이어서 독일이 1위, 카메룬이 2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2무(승점 2점)를 기록한 아일랜드가 3위, 2패(승점 0점)을 기록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조 최하위에 있었다. 즉 이미 탈락이 확정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나머지 3팀 모두 16강 진출의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E조의 판세는 이차방정식을 넘어 삼차방정식 수준으로 꼬여갔다.


17.3. 32강 조별리그 카메룬전 - 2 : 0 승[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E조 5-1경기
2002.06.11.(화) 20:30 (UTC+9)

시즈오카 스타디움 (일본,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주심: 파일:스페인 국기.svg 안토니오 로페스 니에토
파일:독일 국기.svg
2 : 0
파일:카메룬 국기.svg
독일
카메룬
50′ 마르코 보데
79′ 미로슬라프 클로제
득점
-
40′ 카르스텐 라멜로프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퇴장
77′ 파트리크 수포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47,085명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독일 국기.svg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축구역사상 최악의 경기로 폭력사태까지 터진 독일과 카메룬의 경기장면이다.

독일의 조별리그 3차전 상대는 아프리카의 맹주 카메룬이었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재미있게도 이 대회에서 카메룬 대표팀을 이끈 감독은 빈프리트 셰퍼라는 독일인이었기에 독일인 감독 더비가 펼쳐졌다. 카메룬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불굴의 사자 로저 밀러의 맹활약에 힘입어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버티고 있던 아르헨티나를 1 : 0으로 꺾고 동유럽의 다크호스 루마니아마저 2 : 1로 제압하고 16강에 올랐으며, 16강에서도 남미의 다크호스 콜롬비아를 2 : 1로 꺾고 8강까지 올랐던 팀이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긴 것이 8강 신화 이후 12년 만에 거둔 첫 승리였다. 독일은 이 경기에서 이기거나 비기면 무조건 16강에 진출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패배할 경우엔 반드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일랜드를 상대로 무승부라도 해주어야 한다. 반면 카메룬은 독일을 이기면 16강에 진출할 수 있지만, 비기거나 질 경우엔 사우디아라비아가 역시 아일랜드를 상대로 무승부라도 해주어야만 16강에 올라갈 수 있다. 즉 독일에 비하면 경우의 수가 약간 불리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시즈오카 스타디움에서 독일과 카메룬 양 팀의 운명이 걸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경기는 월드컵에서 흔치 않은 막장 경기였다. 전반 8분에 카메룬의 중앙 미드필더 마르크 비비앙 푀가 경고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독일과 카메룬 두 팀 모두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미친 듯이 카드를 수집했다. 그리하여 전반전에 양 팀이 주고받은 경고 횟수만 무려 9장이었다.[29] 그 중 독일 센터백 카르스텐 라멜로프가 경고 2장을 받아 전반 40분에 퇴장을 당해 독일은 수적 열세까지 짊어졌다.[30] 전반 초반에 카메룬의 신예 공격수 사무엘 에투가 독일 배후 공간으로 침투한 왼쪽 미드필더 살로몽 올랑베에게 킬 패스를 찔러주었지만 라멜로프가 멀뚱히 바라보면서 1 : 1 찬스를 허용했다. 그러나 올랑베는 올리버 칸을 보고 쫄아버린 것인지 주춤주춤하다가 결국 슈팅이 칸에게 막히며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쳤다. 이후로도 카메룬은 흑인 특유의 탄력적인 기술과 스피드를 앞세워 발이 느린 독일 수비진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문제는 골 결정력이었다. 카메룬 선수들은 찬스는 잘 만들었으나 그 찬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골을 넣어야 할 때 골을 넣지 못했다.

전반전 내내 무려 9장의 경고가 나올 만큼 거친 경기를 했던 양 팀은 결국 득점을 올리지 못했고 0 : 0으로 마쳤다. 같은 시각 요코하마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VS 아일랜드의 경기에선 전반 7분 만에 로비 킨이 선제골을 넣어 아일랜드가 1 : 0으로 앞서갔다. 현재 실시간 순위는 독일과 카메룬, 아일랜드 3팀 모두 1승 2무(승점 5점)로 동률이지만 독일이 골득실에서 제일 앞서서 1위이고 카메룬과 아일랜드는 골득실까지 동률이지만 다득점에서 아일랜드가 1골 더 많아 아일랜드가 2위, 카메룬이 3위였다. 독일로서는 이대로 경기가 끝나도 16강에 올라갈 수 있지만 카메룬은 이제 반드시 독일을 이겨야만 16강에 올라가는 위기 상황에 몰렸다. 2차전까지 비실거렸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때도 정신을 못 차리고 헤롱헤롱대서 그들의 선전을 기대할 수조차 없어졌다. 그만큼 이 대회에서 보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은 정말 최악이었다.

하프 타임 때 푈러는 부진했던 카르스텐 얀커를 빼고 마르코 보데를 교체 투입했다. 후반전에도 양 팀은 거친 공방전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후반 5분, 카메룬의 살로몽 올랑베가 센터 서클에서 치명적인 볼 컨트롤 미스를 범했다. 팀 동료의 패스를 받으려다가 볼을 튕기는 바람에 그대로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볼을 헌납하고 만 것이다. 볼을 낼름 줏어먹은 클로제는 카메룬 수비수들의 마크를 이겨내며 볼 키핑에 성공했고, 카메룬 수비수들의 이목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때 보데가 빈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갔고, 그걸 본 클로제는 곧바로 보데에게 패스했다. 패스를 받은 보데는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해 골키퍼와의 1 : 1 상황에서 침착하게 왼발 슛으로 마무리하여 선제골을 터뜨리는데 성공해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이전까지 탄력적인 기술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운 카메룬의 공격에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였던 독일은 역습 한 방으로 카메룬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이제 조 3위로 떨어진 카메룬은 갈 길이 급해졌다. 셰퍼는 후반 8분, 센터백 빌 차토를 빼고 공격수 파트리크 수포를 투입해 수비 숫자를 줄이고 공격 숫자를 늘려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전반전 내내 막장 싸움판 경기를 벌이던 두 팀은 후반전에도 개싸움 경기를 시전했는데, 후반전에도 양 팀은 무려 7장의 경고를 주고받았다.[31] 교체 투입된 수포는 후반 15분에 거친 파울을 범하다 경고를 받더니 후반 32분에 발락에게 거친 파울을 범하여 또 1장의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결국 독일과 카메룬 모두 사이좋게 1명씩 퇴장당하며 10 : 10으로 경기했다. 그 정도로 이 경기는 누가누가 더 많이 반칙하나 경쟁하는 것 같이 보일 정도로 질 낮은 싸움판 경기였다.

그렇게 서로 막장 VS 막장 대결을 벌이던 중 후반 34분, 디트마어 하만이 우측 진영을 쇄도하다가 발락에게 패스했고, 발락은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중앙을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그걸 클로제가 내려찍는 헤더로 마무리하며 스코어를 2 : 0으로 벌려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이로써 클로제는 첫 출전한 대회에서 5번째 골을 터뜨려 득점왕 경쟁에서 선두로 앞서갔다. 2골 차로 벌어지자 푈러는 후반 35분과 39분에 연달아 교체 카드를 써서 주전 선수 체력 안배 및 잠그기에 들어갔다. 결국 이런 질 낮은 격투기 수준의 경기가 마지막까지 이어진 끝에 독일이 카메룬을 2 : 0으로 이기며 2승 1무(승점 7점)로 조 1위를 기록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같은 시각 요코하마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VS 아일랜드의 경기는 예상대로 아일랜드의 3 : 0 완승으로 끝나 아일랜드가 1승 2무(승점 5점)로 조 2위를 기록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즉 유럽 팀 2팀만 살아남은 것이다. 16강 진출에 성공한 독일과 아일랜드는 나란히 한국으로 이동해 16강전을 치르게 되었다. 반면 카메룬은 1승 1무 1패(승점 4점)에 그쳐 승점 1점 차이로 밀리며 조 3위로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17.4. 16강전 파라과이전 - 1 : 0 승[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6강 1경기
2002.06.15.(토) 15:30 (UTC+9)

제주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주심: 파일:과테말라 국기.svg 카를로스 바트레스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독일

88' 올리버 뇌빌
득점
-
-
퇴장
90+2′ 로베르토 아쿠냐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25,176명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독일 국기.svg 옌스 예레미스
16강 진출에 성공한 독일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했고, 독일의 16강전 상대는 B조 2위를 차지한 남미의 파라과이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맞붙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독일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8 : 0이란 엄청난 점수로 뭉갰으나 그 뒤로는 아일랜드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 : 1 무승부를 거두었고, 카메룬을 상대로는 서로 질 낮은 격투기를 하다가 2 : 0으로 겨우 이겨 16강에 올랐다. 파라과이 역시 1차전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상대로 먼저 2골을 넣었으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2골을 그대로 헌납하여 2 : 2로 비겨 다 잡은 승리를 놓쳤고, 2차전에선 조 최강팀인 스페인을 상대로 카를레스 푸욜자책골 덕에 간신히 영패만 면하고 힘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1 : 3으로 패배해 탈락 위기에 몰렸다가 3차전에서 승점자판기 슬로베니아를 3 : 1로 털고 간신히 16강에 오른 팀이었다. 즉 두 팀 모두 조별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못 보이고 올라온 것이다. 그렇게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이 대회 16강전 첫 번째 경기인 독일 VS 파라과이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가 열리자 두 팀은 매우 극도로 조심스러운 경기를 펼쳤다. 조별리그에서 받은 경고는 8강에 진출해야 소멸되는데, 문제는 독일이 카메룬전에서 무려 8장이나 되는 경고를 받아버리는 바람에 중원을 조율하던 디트마어 하만과 크리스티안 지게가 경고 누적으로, 센터백 카르스텐 라멜로프가 퇴장으로 출전 정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파라과이 역시 중원의 핵심이었던 카를로스 파레데스가 3차전 슬로베니아와의 경기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출전 정지를 받았다. 즉 독일과 파라과이 양 팀 모두 핵심 선수들이 출전 정지를 받아 나올 수 없게 되면서 공수의 혈이 막혀버린 것이다. 중원을 조율할 선수들이 모조리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아 빠져버렸으니 결국 경기는 중원이 생략된 질 낮은 뻥축구로 변질되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파라과이는 전반 29분에 공격수 로케 산타 크루즈가 부상을 당해 일찌감치 교체 카드 1장을 낭비하게 되었다. 이제 파라과이로서는 공격을 책임질 선수도 빠져버렸다. 계속 지루한 롱볼 공격만이 오고 가자 처음에 환호하며 응원을 보내던 관중들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조별리그에서만 무려 5골이나 터뜨렸던 신예 공격수 클로제는 이번 경기에선 아예 침묵해 버렸다. 경기 중 볼 만한 것이라고는 오로지 올리버 칸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라는 세계 기라성 같은 골키퍼들의 선방 쇼밖에 없었다.

전반전은 그렇게 두 팀 모두 아무런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0 : 0으로 마쳤다. 하프 타임 때 푈러는 라멜로프의 출전 정지 징계로 인해 대신 선발 출전한 센터백 마르코 레머를 빼고 미드필더 제바스티안 켈을 투입해 포백을 스리백으로 전환했다. 후반전 경기 역시 지루하게 흘러갔다. 하만의 조율 없이 미하엘 발락 혼자서 공격을 풀어나가기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다. 파라과이 역시 사실 본인들이 16강 진출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을 못하고 있었다가 얻어걸려서 올라왔기에 그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있어서 패기만만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고 그저 칠라베르트의 선방쇼와 이따금씩 얻어 걸린 역습 찬스에 의존해 간신히 골을 안 내주고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다가 아예 그냥 취침을 하기 시작했다. 후반 15분, 레프트백 크리스토프 메첼더가 부상을 당하자 푈러 감독은 프랑크 바우만을 교체 투입했다. 독일과 파라과이 양 팀 모두 좀처럼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하며 계속해서 0 : 0이란 답답한 흐름을 이어갔다.

후반 39분, 파라과이의 체사레 말디니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 카를로스 보네트를 빼고 디에고 가빌란을 투입해 연장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어느덧 후반전도 점점 종료가 임박해져 왔다. 슬슬 연장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후반 43분, 베른트 슈나이더가 우측 진영을 쇄도하다가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이걸 올리버 뇌빌이 논스톱 오른발 슛으로 연결해 드디어 적막을 깨고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워낙 기습적인 슈팅이었던지라 칠라베르트는 몸 한 번 날려보지 못하고 그대로 실점하고 말았다. 이제 급해진 건 파라과이였다. 말디니는 후반 45분, 공격수 넬손 쿠에바스를 교체 투입해 동점골을 노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추가시간에 로베르토 아쿠냐가 옌스 예레미스를 고의로 손으로 쳐버린 게 주심에게 적발되었고 결국 퇴장당하고 말았다. 푈러는 골을 넣은 뇌빌을 빼고 게랄트 아사모아를 투입해 시간을 끌었다. 결국 경기는 독일의 1 : 0 승리로 끝이 났고 독일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워낙 형편없고 지루한 경기였던지라 독일 내 반응은 싸늘했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여 독일 축구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으며, 현역 시절 푈러의 선배 선수였던 차범근 MBC 해설위원은 이 경기를 중계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독일 대표팀 경기 중에서 오늘 경기가 최악의 경기였다. 이런 식의 경기는 한강 고수부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이 같은 차범근의 혹평을 전해들은 푈러는 "판단력이 떨어지는 차 감독의 평가에 대해 우리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독일 프로팀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차 감독이 당시에 아스피린을 과용했다."라며 불쾌감을 표했다. 하지만 독일 현지의 반응은 오히려 푈러에게 "차붐이 맞는 말씀 하셨는데 네가 뭘 잘했다고 말대꾸냐?"라는 식이었다. 덕분에 이 경기는 이 대회 최악의 경기로 선정되었다. 워낙 지루하고 재미도 없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17.5. 8강전 미국전 - 1 : 0 승[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2경기
2002.06.21.(금) 20:30 (UTC+9)

울산문수축구경기장 (대한민국, 울산광역시 남구)
주심: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휴 달라스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미국 국기.svg
독일
미국
39' 미하엘 발락
득점
-
관중: 37,337명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미국 국기.svg 클라우디오 레이나


독일의 8강전 상대는 북중미의 미국이었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맞붙은 건 이번이 2번째였다. 지난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 때는 독일이 2 : 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이후 1999년 2월에 치른 친선 경기에서 독일은 미국에게 힘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0 : 3 대패를 당했고, 그 해 7월에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다시 만나 또 0 : 2로 완패를 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라고 마냥 쉽게 볼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한편 미국은 4년 전 프랑스에선 32개 출전국 중 32위를 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이번엔 조별리그 1차전에서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3 : 2로 격침시키는 파란을 일으키더니 2차전에선 개최국 대한민국과 1 : 1로 비겼다. 그러나 3차전에선 폴란드에게 뜬금없이 1 : 3으로 완패해 탈락 위기에 몰렸다가 같은 시각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을 1 : 0으로 잡아준 덕에 간신히 16강에 오르는 롤러코스터 같은 경기력을 보였다. 하지만 16강전에선 같은 대륙 라이벌 멕시코를 2 : 0으로 완파하며 8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미국은 8강 상대가 독일로 정해지자 자신감에 넘쳤다. 최근 2차례 A매치에서 독일을 상대로 모두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이 경기는 울산광역시 남구 옥동에 위치한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렸다. 독일에게 한 가지 희소식이 있었다면 이 경기가 열리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김동성이 억울하게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을 빼앗겨 버린 사건과 며칠 전에 여중생 2명이 주한미군장갑차에 깔려 희생당한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인해 반미 여론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관중들은 거리가 멀고 경제 사정이 어려운 제3세계 국가 팀들을 위해서 절반씩 나누어 공평하게 응원해 주었으나[32] 세 팀만은 찬밥 취급을 하였으며, 그 세 팀은 바로 중국, 미국, 이탈리아였다. 중국은 이른바 소림축구 때문에 한국 선수들이 여러 차례 피해를 본 것과 역사적 감정 때문에, 미국은 전술했듯이 당시 극에 달했던 반미 여론 때문에 철저하게 찬밥 신세였으며, 이탈리아는 프란체스코 토티[33]의 자만 섞인 발언에 빡친 한국 관중들이 16강전이 열리는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집결하여 이탈리아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마다 가차없이 야유를 보냈으며, 결국 연장 후반 12분에 안정환에게 골든골을 먹고 8강전 티켓을 대한민국에게 내주었다. 이 때문에 한국 땅을 밟은 독일 대표팀은 반미 감정으로 인한 반사 이익으로 개최국 대한민국 국민들의 열렬한 응원까지 등에 업었다.

경기를 치러보니 미국은 정말 만만찮은 상대였다. 4년 전에 대회 꼴등을 했던 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국은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오히려 독일을 향해 공격적인 축구를 했다. 미국은 랜던 도노반을 필두로 키는 작지만 스피드가 민첩한 공격수들을 앞세워 독일을 제대로 괴롭혔고, 독일은 올리버 칸 골키퍼의 맹활약 덕에 실점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그 정도로 경기는 객관적 전력 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경기를 지배했다.[34] 하지만 이렇게 잔뜩 웅크리며 버티던 독일은 강력한 한 방을 숨기고 있었다. 전반 39분, 독일의 프리킥 찬스에서 크리스티안 지게가 찬 킥을 미하엘 발락이 헤더슛으로 마무리해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미국은 독일을 상대로 경기를 지배하고도 득점 찬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상대의 세트피스 한 방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뒤이어 올리버 뇌빌이 좌측에서 올린 크로스를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헤더로 연결했으나 골대를 맞추며 독일은 추가골을 넣을 절호의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그렇게 전반전은 독일이 1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이 되자 미국은 더욱 더 거세게 공격적으로 나섰고, 독일은 수비로 버틴 후 역습을 노렸다. 후반 5분, 미국의 코너킥 찬스에서 킥커 클라우디오 레이나가 찬 코너킥을 독일 센터백 크리스토프 메첼더와 미국 센터백 토니 사네가 공중볼 경합을 벌였으나 중앙으로 흘러 공격에 가담해 있던 미국의 센터백 그레그 버홀터의 발 앞으로 갔다. 버홀터는 왼발 논스톱 슛을 날렸고, 이 슛은 골문에 붙어 서 있던 독일의 우측 미드필더 토르스텐 프링스의 왼손에 맞았는데 얼핏 봐선 골 라인을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프링스의 손에 맞고 떨어진 볼을 재빨리 칸이 재빨리 잡았고, 미국 선수들은 골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주심 휴 달라스는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아울러 프링스의 핸들링도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페널티킥도 주지 않았다. 미국으로선 억울하게 1골을 도둑맞은 것이다. 이렇게 독일은 오심의 덕을 보았다.

미국의 브루스 아레나 감독은 후반 13분에 첫 번째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브라이언 맥브라이드를 빼고 한국전에서 득점했던 클린트 매시스를 투입해 공격의 칼을 갈았다. 한편 푈러도 후반 15분에 베른트 슈나이더를 빼고 옌스 예레미스를 교체 투입해 슬슬 잠그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후반 20분에 수비수 프랭키 헤이덕도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코비 존스를 투입하며 계속 공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칸이 지키는 독일의 골문은 좀처럼 함락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레나는 후반 35분에 마지막 교체 카드를 쓰며 끝까지 공세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경기를 지배하고도 좀처럼 칸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맸다. 그 사이 푈러는 적절한 시점에 남은 교체 카드 2장을 마저 쓰며 시간을 질질 끌고 잠그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경기는 결국 독일의 1 : 0 승리로 끝이 났고, 독일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그리고 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이후 사상 최초로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독일은 경기 내내 객관적인 전력상 열세로 꼽히는 미국에게 시종일관 밀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굵고 짧은 세트피스 한 방으로 득점을 따내며 결국은 결과를 가져오는 효율적인 축구를 했다. 하지만 이 경기 역시 굳이 말하자면 승리당한 경기에 가까웠다. 객관적인 전력상 열세인 미국에게도 고전하는 모습은 딱히 좋게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 경기를 앞두고 독일은 미국보다 이틀을 더 쉬고 경기에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건 썩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또 조별리그에서 5골을 넣는 맹활약을 했던 슈퍼 루키 클로제는 토너먼트에 들어선 활약상이 주춤했다.[35] 반면 미국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칭찬을 받았다. 아쉽게 패배했지만 오심으로 인해 억울하게 1골을 도둑맞은 것도 있었고, 독일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은 건 물론이고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미국 축구의 저력을 과시하기엔 충분했을 듯하다. 다만 그렇게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하고 좋은 경기를 했지만 골을 넣어야 할 때 못 넣었던 게 미국의 패인이었다. 축구는 골로 승부가 갈린다는 평범한 진리가 생각나는 경기였다.

17.6. 4강전 대한민국전 - 1 : 0 승[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 1경기
2002년 6월 25일 화요일 20:30 (UTC+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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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0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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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4강전 상대는 개최국 대한민국이었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2번째였다. 첫 번째 만남은 8년 전인 1994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있었다. 이때 독일은 전반에만 위르겐 클린스만의 멀티골과 칼 하인츠 리들레의 추가골에 힘입어 3 : 0으로 크게 앞서갔으나, 후반전에 한국의 거센 반격을 받아 황선홍홍명보에게 잇달아 실점하며 3 : 2로 고전 끝에 신승한 바 있었다. 마침 현 독일 대표팀 감독 푈러는 그때 그 현장에 선수로 있었던 인물이었다.[36] 한편 대한민국은 지난 대회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약체였지만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여 4년 동안 대개혁을 거쳐 환골탈태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폴란드를 2 : 0으로 제압하며 첫 승을 신고한데 이어 2차전에선 미국과 1 : 1로 비겼으나 3차전에서 우승후보 중 하나였던 포르투갈을 1 : 0으로 꺾고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16강에선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를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2 : 1로 제압하고 8강에 올랐다. 그리고 8강에선 무적함대 스페인마저 0 : 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5 : 3으로 꺾으며 4강까지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래서인지 내심 독일 축구팬들은 8년 전 그날의 기억과 이번 대회 한국의 돌풍 때문에 크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이 경기는 이 대회 야신상 수상자를 가리는 중요한 경기였다. 4강에 진출한 팀들 중 독일의 골키퍼 올리버 칸은 5경기 1실점을 기록했고 대한민국의 이운재 골키퍼는 5경기 2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튀르키예의 뤼쉬튀 레츠베르 골키퍼는 5경기 3실점을 기록했으며, 브라질의 마르쿠스 골키퍼는 5경기 4실점을 기록했다. 즉, 올리버 칸>이운재>뤼쉬튀 레츠베르>마르쿠스 순으로 적은 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4강까지 올라오면서 가장 적은 실점을 기록한 두 팀 간의 맞대결이었기에 사실상 이 경기의 승자가 곧 야신상 수상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므로 이 경기는 결승 진출 및 대회 야신상 수상자가 걸린 아주 중요한 맞대결이었다. 한국 축구팬들은 반드시 8년 전 패배를 설욕하고 결승전이 열리는 요코하마로 가자고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좋은 경기력을 보였음에도 골운이 따라주지 못했다.

양 팀의 결승 진출이 걸린 운명의 한독전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독일은 이 경기에서 크리스토프 메첼더 - 토마스 링케 - 카르스텐 라멜로프 - 토르스텐 프링스 포백 라인과 중원에 마르코 보데 - 미하엘 발락 - 디트마르 하만 - 베른트 슈나이더가 섰고 공격에 올리버 뇌빌 - 미로슬라프 클로제 투톱이 나서는 4-4-2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골키퍼는 여전히 올리버 칸이었다. 3-5-2 포메이션을 쓴 미국전에 비하면 다소 공격적인 포메이션이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골키퍼 이운재가 나섰고 수비 라인엔 최진철 - 홍명보 - 김태영 스리백 라인이 서고 중원에 이영표 - 박지성 - 유상철 - 송종국이 섰으며 공격엔 이천수 - 황선홍 - 차두리가 서는 3-4-3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스페인전과 비교하면 부상을 당한 김남일이 결장했고, 박지성이 김남일의 자리로 내려갔으며 설기현안정환이 벤치로 들어갔다는 게 달랐다.

경기가 시작되자 대한민국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지친 듯 힘에 부친 듯한 모습을 보였다. 폴란드 - 미국 - 포르투갈 - 이탈리아 -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상대들과 연달아 싸운 데다가 경기도 상대 팀보다 하루 내지는 이틀씩 늦게 치르는 바람에 체력 회복을 위한 텀이 짧았던 게 화근이었다. 반면 독일은 사우디아라비아 - 아일랜드 - 카메룬 - 파라과이 - 미국 등 비교적 수월한 상대들과 경기를 치렀고, 또 한국과는 반대로 상대 팀보다 경기를 먼저 치러서 체력 회복을 위한 텀이 길었다. 이 경기에서도 한국 선수들보다 하루를 더 쉬고 경기에 나선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한국 선수들은 점점 체력적으로 열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철저하게 수비 후 역습으로 나서며 독일의 공격을 잘 방어해냈다. 지칠 대로 지친 한국과 대결하는데도 좀처럼 한국의 골문이 열리지 않자 독일 선수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전반전 내내 방패와 방패 간 대결이 이어지며 지루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0 : 0으로 마무리했다.

후반전이 되자 히딩크는 백전노장 스트라이커 황선홍을 빼고 안정환을 투입했고, 이탈리아, 스페인 선수들과 연달아 씨름하면서 탈진해 버린 센터백 최진철도 불러들이고 이민성을 교체 투입했다. 이후로도 독일이 계속해서 공격하고 한국은 압박 수비로 버틴 후 역습하며 득점 기회를 만들어 갔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독일의 공세를 잘 방어했던 한국은 순간 집중력 미스 한 번에 모든 것을 어그러뜨리고 말았다. 후반 30분에 수비수 김태영이 치명적인 패스 미스를 범했고, 이 패스 미스를 가로챈 뇌빌은 중앙으로 쇄도하던 발락에게 패스했고 발락이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이운재가 쓰러지면서 주먹으로 볼을 쳐냈다. 위기를 넘겼다 싶었으나 불행하게도 볼은 다시 발락의 발 앞에 갔고, 발락은 다시 왼발로 슛을 날려 기어이 결승골을 뽑아냈다. 히딩크는 동점골을 위해 홍명보를 불러들이고 공격수 설기현을 교체 투입해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경기 막판에 박지성이 좋은 득점 기회를 잡았으나 제대로 슛을 쏘지 못해 하늘 위로 떠버렸다.

결국 경기는 이렇게 독일의 1 : 0 승리로 돌아갔고, 한국의 행진도 여기서 멈추게 되었다. 이로써 독일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그리고 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후 최초로 결승전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4강까지 올라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데다 아무리 지역예선에서 나사 빠진 모습을 보였어도 여전히 세계 강호 중 하나인 독일을 상대로 대등하게 맞서 싸운 한국의 선전에 모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체력이 조금만 더 버텨주었다면 결승 진출의 대업을 이룰 수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불운한 대진운 때문에 막강한 상대들과 연달아 겨루게 되었고 그 때문에 힘이 부친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한편 독일은 이 경기에서 어느 정도 심판 판정의 이익을 보기도 했다. 위에 기록된 주심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경기의 주심 위르스 마이어는 독일계 스위스인이었다. 마이어라는 성씨는 독일어권에서 매우 흔한 성씨 중 하나다. 뜻은 '골짜기'라는 뜻인데 독일어권 성씨들은 조상의 직업이나 거주지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즉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을 총칭해서 마이어라고 불렀고 그게 성씨가 된 것이다. 윗골짜기에 살면 '오버마이어', 아랫골짜기에 살면 '운테마이어', 뒷골짜기에 살면 '힌터마이어'가 된다. 성씨가 없던 시절에 한스라는 이름을 쓰는 독일인이 있고 그가 산골짜기에 살면 그를 '산골짜기 한스'라고 불렀고 그게 성씨로 굳어져서 '한스 마이어'가 되는 식이다. 16년 후 한국 VS 독일 경기에서도 심판이 독일계 미국인이었다. 실제로 이전까지 독일은 각 경기 20개 이상 파울을 했지만, 이 경기에선 독일이 8개, 한국이 16개였다. 이런 불공평한 심판 배정을 두고 당시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제프 블래터FIFA 회장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

17.7. 결승전 브라질전 - 0 : 2 패[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결승전
2002년 6월 30일 일요일 20:30 (UTC+9)
[[닛산 스타디움|{{{#ffffff 닛산 스타디움]] ([[일본|{{{#ffffff 일본]], [[가나가와현|{{{#ffffff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ffffff 요코하마시]])
주심: 파일:UEFA ITA.png [[피에를루이지 콜리나|{{{#ffffff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관중: 69,029명
파일:Germany DFB 2002.png
파일:FIFA 월드컵 트로피.svg

파일:Brazil CBF 2002.png

파일:UEFA GER.png 독일
파일:UEFA BRA.png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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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79′ [[호나우두|{{{#373a3c,#dddddd 호나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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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진출에 성공한 독일은 다시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했고, 독일의 결승전 상대는 월드컵 최다 우승국인 삼바 군단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FIFA 월드컵 통산 전적 1위 팀이고 독일은 2위 팀인데, 둘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의외로 이번이 사상 최초였다. 사실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동독이 맞대결을 한 적은 있었지만 현재 독일 대표팀은 과거 서독 대표팀 시절의 기록을 승계하고 있기에 이번을 첫 번째 맞대결로 본다. 사실상 남미 최강팀과 유럽 최강팀의 맞대결이고 남미 축구와 유럽 축구의 자존심이 걸린 한 판 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팀은 사실 이번 대회에선 그렇게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던 팀은 아니었다. 독일이 지역예선에서 맛이 간 모습을 보였듯이 브라질 역시 이번 대회 지역예선에선 9승 3무 6패(승점 30점)라는 심히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여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과 브라질 모두 대회 초반 우승후보들의 대거 탈락이라는 호재와 그로 인한 대진운의 수혜를 입어 결승전까지 진출하게 되었다.[37]

한편 경기를 앞두고 독일에게 비상사태가 발생했는데, 바로 독일 중원의 사령관 미하엘 발락이 직전 경기인 한국전에서 경고를 받는 바람에 경고 누적으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결승 진출 1등 공신은 바로 발락인데 정작 이 중요한 경기에서 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경기의 주심이 하필 이탈리아 출신의 명심판 피에를루이지 콜리나로 배정된 것도 독일에게는 찜찜한 요소였다. 그 이유는 사실 독일이 지은 죄가 있었기 때문인데, 1년 전 독일이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에게 홈에서 1 : 5로 대패하는 치욕을 겪었던 그날 독일 축구 협회는 그 경기의 주심이었던 콜리나에게 선물을 했는데 그게 하필 헤어드라이기(...)[38]였다는 것이다. 독일 축구 협회 입장에선 장난이었을지 몰라도 콜리나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래서 지은 죄가 있다 보니 속담에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찜찜함을 느낀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브라질은 전반 7분, 센터백 토마스 링케의 패스 미스를 가로챈 브라질 미드필더 클레베르손이 첫 번째 슈팅을 날리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 슛은 올리버 칸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독일도 전반 14분, 좌측 진영을 쇄도한 베른트 슈나이더가 중앙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패스했으나 클로제가 루시우 페헤이라의 마크에 넘어지며 볼을 받지 못해 슈팅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전반 18분, 호나우지뉴가 문전 외곽에서 독일 수비수 배후로 침투한 호나우두를 향해 절묘한 킬패스를 넣어 호나우두가 칸과 1 : 1 상황을 맞았으나 칸은 앞으로 전진해 슈팅 각도를 잘 좁혔고 결국 호나우두의 슈팅은 왼쪽으로 벗어나며 독일은 위기를 넘겼다. 전반 29분에도 호나우지뉴의 킬패스를 받은 호나우두가 다시 칸과 1 : 1 상황을 맞았으나 이번에도 칸이 선방하며 독일은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전반 41분, 클레베르손이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골문 오른쪽으로 크게 벗어났다. 종료 직전 호나우두의 슈팅도 칸이 막아내 실점 위기를 넘겼다. 전반전은 그렇게 0 : 0으로 끝이 났다. 독일은 국가 이동에 대한 페널티 때문인지 전반전 내내 브라질에게 다소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후반전이 되자 독일도 다시 반격에 나섰다. 후반 1분, 독일의 코너킥 찬스에서 마르코 보데가 올린 코너킥을 옌스 예레미스가 헤더로 연결했으나 브라질의 센터백 에드미우손의 몸에 맞고 튕겨나왔고, 세컨드볼을 수비에 가담한 히바우두가 걷어내 버리면서 기회를 아쉽게 날려버렸다. 후반 3분에 독일이 다시 문전 외곽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킥커 올리버 뇌빌이 찬 프리킥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브라질 골문으로 날아갔지만 브라질 골키퍼 마르쿠스가 펀칭으로 선방하며 아쉽게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후반 6분, 브라질의 코너킥 찬스에서 호나우지뉴가 중앙으로 공을 붙이는 척하면서 앞의 호베르투 카를로스에게 패스했고 카를로스는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이 크로스를 지우베르투 시우바가 헤더로 연결했으나 칸이 막아냈다. 이때 칸은 시우바와 충돌하면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고 말았으나, 일단 계속 뛰겠다고 해서 교체되진 않았다.

후반 11분에 독일의 디트마르 하만이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강한 중거리 슛을 날렸으나 골문 위로 크게 벗어났다. 후반 17분, 베른트 슈나이더가 문전으로 침투한 뇌빌을 향해 킬패스를 넣었으나 그 패스를 받기엔 뇌빌의 다리가 너무 짧았고 결국 공은 마르쿠스의 품 안에 안기고 말았다. 에드미우손이 완벽하게 뇌빌의 움직임을 놓쳤기에 패스가 잘만 연결됐으면 골을 넣을 수도 있었지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후반 22분, 브라질의 공격 상황에서 센터백 토마스 링케가 호나우두에게서 태클로 볼을 빼앗았고 이때 흐른 볼을 카르스텐 라멜로프가 받아 하만에게 연결했는데, 하만은 치명적인 볼 컨트롤 미스를 범해 호나우두에게 다시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호나우두는 옆의 히바우두에게 패스했고, 히바우두는 문전 외곽에서 강슛을 날렸고 칸이 선방했으나 슛이 워낙 강했던데다 아까 손가락 부상을 당한 탓에 볼을 흘려버렸다. 그 흐른 볼을 문전으로 쇄도한 호나우두가 잽싸게 밀어넣으며 브라질이 1 : 0으로 앞서갔다.

1골을 뒤지게 되자 푈러는 후반 29분에 부진했던 클로제를 빼고 올리버 비어호프를 교체 투입하였고, 후반 32분엔 예레미스를 빼고 게랄트 아사모아를 투입해 공격 숫자를 늘려 반전을 꾀했다. 그러나 후반 34분, 브라질의 공격 상황에서 클레베르손이 우측 진영을 쇄도하다가 중앙으로 패스했고 그걸 히바우두가 재치 있게 공을 옆의 호나우두에게 흘려주었다. 그리고 호나우두는 한 번 접은 뒤 오른발 강슛을 날려 추가골을 뽑아내 브라질이 2 : 0으로 앞서갔다. 독일도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후반 37분, 토르스텐 프링스가 문전 외곽에서 페널티 박스 안에 있던 비어호프에게 패스했고 비어호프가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마르쿠스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푈러는 후반 39분에 백전노장 미드필더 보데를 빼고 크리스티안 지게를 투입해 교체 카드 3장을 모두 썼다. 그러나 브라질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전 감독은 후반 40분에 호나우지뉴를 빼고 주니뉴 파울리스타를 투입했고, 후반 45분엔 호나우두를 빼고 데니우손을 투입하며 아껴둔 교체 카드를 써 잠그기에 들어갔다. 경기 종료 직전 지게가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멋진 슈팅을 날렸으나 마르쿠스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결국 경기는 브라질의 2 : 0 승리로 끝이 나며 브라질이 5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독일은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그래도 의의는 컸다. 1990년에 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이후 독일은 한동안 국제 대회에서 심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녹슨 전차'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서 이번 월드컵에서도 기대치가 심하게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준우승까지 해냈기에 자신들의 건재함을 어느 정도 입증할 수 있었고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 대회 이후 독일이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4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한 것을 감안하면 이 대회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이번 대회의 성적에 대해서 평가 절하하는 의견도 있는데, 그 이유는 독일의 대진운이 기막히게 좋았기 때문이다. 토너먼트 대진이 파라과이 - 미국 - 대한민국 - 브라질로 이어졌으니 사실상 거저줍기 식의 대진운이어서 결승전에 못 간 게 더 이상한 대진운이라는 게 그것이다. 물론 대진운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그동안 독일이 국제 대회에서 죽을 쑤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래도 준우승이란 성적은 자신감을 쌓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18. 2006 FIFA 월드컵 독일[편집]


전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독일은 루디 푈러에게 다시 지휘봉을 맡겼으나, 이것은 크나큰 패착으로 돌아왔다. 한일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치른 국제 대회인 유로 2004에서 독일은 체코, 네덜란드, 라트비아와 함께 죽음의 조인 D조에 속했다. 최약체 라트비아를 빼면 모두 막강한 상대들이었지만 체코나 네덜란드나 모두 2년 전 한일 월드컵에서는 유럽 예선에서 탈락했던 팀들이었고 독일은 준우승을 차지한 팀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1차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졸전 끝에 1 : 1 무승부를 거두는데 그쳤다. 물론 네덜란드도 만만한 팀은 아니기에 이것까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2차전에서 최약체 라트비아를 상대로도 졸전 끝에 0 : 0 무승부에 그쳤고, 라트비아 따위를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했기에 독일 내 여론은 폭발할 대로 폭발했다. 명색이 2년 전 월드컵 준우승을 한 나라가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핫바리 팀에게 0 : 0 무승부를 기록했으니 속이 상해도 상할 수밖에 없었다.

2차전까지 D조의 순위는 체코가 2승(승점 6점)으로 이미 8강 진출 및 조 1위를 확정지었으며, 뒤를 이어 독일이 2무(승점 2점)로 2위, 네덜란드와 라트비아가 각각 1무 1패(승점 1점)로 동률이었으나 다득점에서 앞선 네덜란드가 3위, 라트비아가 4위에 있었다. 이제 독일로서는 3차전에서 반드시 체코를 이겨야만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중요한 경기에서 독일은 체코에게 1 : 2로 패배했고, 같은 시각 네덜란드가 라트비아를 3 : 0으로 이기면서 독일은 2무 1패(승점 2점)로 조 3위에 그쳐 2개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푈러는 국민 역적으로 전락했으며 즉시 경질되었고, 푈러의 뒤를 이어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이는 슈퍼스타 위르겐 클린스만이었다. 하지만 당시 클린스만은 겨우 만 40세였고 클럽팀 감독조차 맡아본 적 없는 생 초짜였다. 독일 축구 협회는 이 약점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수석코치 요아힘 뢰프를 붙여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즉 실제 전술을 세우고 팀을 꾸리는 건 수석코치인 뢰프가 하고 클린스만은 현역 시절 슈퍼스타였던 만큼 선수들의 사기 진작과 군기를 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클린스만과 뢰프는 1970년대 람바참바 스타일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즉 힘과 피지컬, 높이에 의존하는 단순무식하고 투박하며 딱딱한 축구에서 벗어나 세밀한 패스 플레이로 재미있게, 또 공격적인 축구를 하는 람바참바 스타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위해 두 사람은 그간 독일 대표팀이 오랫동안 집착해 왔던 순혈주의마저도 허물었다. 사실 독일은 유럽의 동아시아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럽 국가치고는 본래부터 민족적 유동성이 적었고 식민지도 거의 없었던 나라라 비교적 단일 민족에 가까운 편이었다. 독일이 지금 같은 다민족 국가가 된 건 불과 100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순혈주의에 집착하는 경향이 심했다. 하지만 클린스만과 뢰프의 일대 개혁으로 터키계 이민자들과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선수들도 독일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출범한 클린스만호도 처음부터 순탄하게 굴러간 것은 아니었다. 유로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후 독일 대표팀은 다시 처음부터 출발하는 의미로 아시아 원정을 계획했다. 2004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아 원정에서 독일은 일본 → 한국 → 태국 순으로 원정을 떠났다. 2년 후에 자국에서 열릴 월드컵 홍보도 할 겸 유로 2004에서의 충격적인 성적으로 인해 자신감이 침체되어 있던 대표팀에게 비교적 약체인 아시아 팀들과 맞붙어 자신감도 쌓아줄 겸 해서 기획한 것이었다. 독일은 첫 번째 상대인 일본과의 경기에선 미로슬라프 클로제미하엘 발락의 투맨 쇼에 힘입어 3 : 0으로 가볍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두 번째 상대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선 김동진, 이동국, 조재진에게 잇달아 실점하며 1 : 3 충격패를 당하고 말았다. 독일이 아시아 팀과의 A매치에서 패배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 때문에 클린스만은 자국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 독일 공영방송에선 이대로 가다간 2년 후 월드컵이 걱정된다며 진지하게 한국전 패배에 대해 토론하기까지 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태국을 5 : 1로 이기긴 했지만 자신감을 쌓아줄 목적으로 한 경기가 도리어 또 하나의 상처만 만든 게 되어버렸다.

독일은 이 대회 개최국이었기에 지역예선을 면제받았다. 그래서 지역예선을 치르지 않는 대신 다른 팀들과 평가전을 치렀는데, 평가전 성적도 들쑥날쑥이어서 불안감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2005년 연말에 있었던 조 추첨 결과 독일은 폴란드, 코스타리카, 에콰도르와 함께 A조에 편성되었다. 이번 대회부터는 개최국이 개막전을 치르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독일의 개막전 상대는 북중미의 코스타리카로 정해졌다. 비교적 무난한 조 편성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회 직전에 치른 평가전 성적은 자꾸 불안감을 키웠으며, 특히 2006년 3월 밀라노에서 있었던 이탈리아와의 평가전에서 독일은 1 : 4 대패를 당했다. 물론 아주리 징크스라고 독일이 이탈리아에게 약한 면이 있긴 했지만 이건 너무 심한 대패였다. 그래서 클린스만을 경질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또 5월 30일에 레버쿠젠에서 치른 일본과의 평가전에서도 독일은 불과 1년 6개월 전에 3 : 0으로 털어버린 팀에게 쩔쩔매며 2골을 먼저 내줬다가 간신히 만회해 2 : 2로 비기는 졸전을 치렀다. 그리하여 독일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점점 옅어져 갔고, 그렇게 독일은 불안감을 안고 대회에 나섰다.

18.1. 32강 조별리그 코스타리카전 - 4 : 2 승[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A조 제1경기 (개막전)
2006년 6월 9일 18:00(UTC+1)

알리안츠 아레나 (독일, 뮌헨)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 (아르헨티나)
파일:독일 국기.svg
4 : 2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독일
코스타리카
6′ 필립 람
17′, 61' 미로슬라프 클로제
87' 토르스텐 프링스
득점자
12′, 73' 파울로 완초페
관중: 66,000명
Man of the Match: [[미로슬라프 클로제|{{{#000000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독일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북중미의 코스타리카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맞붙은 건 이번이 최초였다. 지난 대회에서 코스타리카는 튀르키예에게 골득실에서 밀려 아쉽게 16강 진출에 실패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코스타리카는 잦은 감독 교체로 혼란을 빚었고, 이번엔 지역예선을 3위로 겨우 통과해서 본선에 올라왔다. 결국 이리저리 교체되었던 감독 자리는 4년 전 코스타리카 대표팀을 이끌었던 알레산드레 기마랑예스 감독이 다시 맡았다. 독일은 여태껏 월드컵에서 북중미 팀을 상대로 단 1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1986년도에 멕시코와 무승부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승부차기에서 이겼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코스타리카 역시 만만한 팀은 아니었고, 또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독일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탓에 쉬운 경기는 아닐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평가전은 역시나 평가전일 뿐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독일은 초반부터 코스타리카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전반 6분, 팀 보로프스키가 중원에서 볼을 받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패스했으나 코스타리카 수비수 힐베르토 마르티네스의 마크에 막혀 볼을 잡지 못했다. 뒤이어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볼을 잡았으나 역시 코스타리카 수비수 두글라스 세케이라의 마크에 볼이 좌측으로 흘렀다. 하지만 이 볼을 오버래핑한 레프트백 필립 람이 받았고, 람은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코스타리카 센터백 미차엘 우마냐를 피해 중거리 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내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하지만 코스타리카도 마냥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다. 전반 12분, 센터 서클 부근에서 코스타리카의 중앙 미드필더 마우리시오 솔리스가 전방의 파울로 완초페에게 패스를 넣었는데, 독일 수비수들은 모두 앞으로 전진해 오프사이드 트랩을 형성했지만 아르네 프리드리히가 미처 왼쪽 다리를 빼지 못해 완초페와 동일 선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프리드리히의 어이없는 실수로 오프사이드 트랩이 깨지자 완초페는 허허벌판이 된 독일 진영을 달리며 옌스 레만 골키퍼와 1 : 1 경합 상황을 만들었고, 가볍게 오른발 땅볼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동점골을 터뜨려 다시 승부를 1 : 1 원점으로 돌렸다. 독일 수비수들은 모두 오프사이드라고 어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코스타리카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5분 후인 전반 17분, 베른트 슈나이더가 코스타리카 우측 진영에서 코스타리카의 주장 루이스 마린의 마크를 이겨내고 중앙의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대각선 땅볼 크로스를 올렸다. 슈바인슈타이거는 페널티 박스로 쇄도해 그 패스를 받았고 쇄도하는 클로제를 보고 패스를 했고, 클로제는 잽싸게 왼발로 밀어넣으며 스코어를 다시 2 : 1로 벌렸다. 지난 대회에서 헤더로만 5골을 넣었던 클로제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발로 득점을 했다. 경기가 치러진 날은 클로제의 생일이었는데, 클로제는 이 골로 본인의 28번째 생일을 자축했다. 이걸로 클로제는 개인 통산 월드컵 6득점을 기록해 막스 모를락, 헬무트 할러와 함께 독일의 월드컵 개인 득점 순위 8위에 올랐다. 이후 30여 분 동안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지만 더 이상의 득점은 나오지 않았고 전반전은 그렇게 독일이 2 : 1로 앞선 채로 끝났다.

후반전에도 전체적인 경기 양상은 독일의 공세, 코스타리카의 수세로 이어졌다. 볼 점유율도 70 : 30에 가까울 정도로 독일은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코스타리카를 밀어붙였고 코스타리카는 수비 후 역습을 노렸다. 그러던 중 후반 16분, 중원에서 보로프스키가 오버래핑한 람에게 패스를 건넸고 람은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크로스를 올렸다. 람의 크로스는 정확히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한 클로제에게 연결되었고, 클로제는 곧바로 헤더로 연결했으나 호세 포라스 골키퍼가 쳐냈다. 하지만 볼은 다시 클로제의 발 앞으로 떨어졌고 클로제는 잽싸게 오른발로 밀어넣어 스코어를 3 : 1로 벌렸다. 클로제는 월드컵 개인 통산 7호골을 달성해 한스 샤퍼와 함께 7위를 차지했다. 코스타리카 선수들이 세컨드 볼 싸움에서 집중력을 잃은 게 아쉬웠다. 그렇게 승부의 추는 점점 독일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28분, 교체 투입된 코스타리카의 라이트백 헤르비스 드루몬드가 중원에서 중앙 미드필더 왈테르 센테노에게 패스했다. 센테노가 볼을 잡자 완초페와 로날드 고메스는 독일 수비의 배후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갔고, 이때 독일 센터백 2명은 모두 완초페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놓쳤다. 센테노는 그 센터백 2명 사이로 완초페에게 패스를 놓는 패기를 선보였고, 완초페는 또 다시 레만과 1 : 1 상황을 맞았고 침착하게 마무리하여 스코어를 다시 3 : 2로 좁혔다. 이번에도 프리드리히의 움직임이 문제였는데, 프리드리히가 고메스를 마크하는데 급급해 오프사이드 트랩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또 다시 완초페와 동일 선상에 위치해서 오프사이드 트랩이 깨져버렸던 것이다.

점수가 1점 차로 좁혀지자 독일에게는 다시 위기가 닥쳤다. 3 : 2 상황에서 양 팀은 계속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받았지만 좀처럼 서로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클린스만은 후반 27분에 보로프스키를 빼고 제바스티안 켈을 투입했고, 후반 34분에 클로제를 빼고 올리버 뇌빌을 투입해 반전을 꾀했다. 기마랑예스도 후반 33분에 미드필더 마우리시오 솔리스를 빼고 크리스티안 볼라뇨스를 투입해 변화를 주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던 중 후반 42분, 독일이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로 나선 슈바인슈타이거는 문전으로 공을 붙이는 척하다가 중앙의 토르스텐 프링스에게 패스했고, 프링스는 패스를 받자마자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슛을 날렸고 이것이 그대로 빨랫줄처럼 코스타리카 골문으로 날아가 골망을 흔들었다. 그렇게 스코어는 4 : 2로 벌어졌다.

후반 추가시간 1분, 클린스만은 주장 베른트 슈나이더를 빼고 다비드 오동코어를 교체 투입해 시간을 끌었고 코스타리카 역시 같은 시각에 교체 카드를 써서 만회골을 노렸다. 그러나 독일 수비수들은 지능적으로 잠그기에 들어갔고 결국 경기는 독일의 4 : 2 승리로 끝났다. 간만에 골 잔치가 열렸던 개막전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독일은 공격은 합격점을 받았지만 수비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는데, 특히 프리드리히의 오프사이드 트랩 실수로 완초페에게 2골이나 같은 방법으로 허용한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클린스만의 표정은 승장임에도 불구하고 굳어있었다.

18.2. 32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1 : 0 승[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A조 제3경기
2006년 6월 14일 21:00(UTC+1)

베스트팔렌 슈타디온 (독일, 도르트문트)
주심: 루이스 메디나 칸탈레호 (스페인)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폴란드 국기.svg
독일
폴란드
90+1′ 올리버 뇌빌
득점자
-
-
퇴장자
75′ 라도스와프 소볼레프스키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65,000명
Man of the Match: [[필립 람|{{{#000000 필립 람}}}]] (독일)

독일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이웃나라 폴란드였다. 양국은 오랜 역사적 악연으로 얽힌 팀이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3번째였다. 지난 2번의 맞대결에서 독일이 1승 1무로 근소하게 우세에 있다. 폴란드는 1차전에서 남미의 에콰도르에 0 : 2로 덜미를 잡히는 충격패를 당한 바 있다. 그들로서는 이 경기마저도 지면 거의 탈락이나 진배 없었다. 반면, 독일은 이 경기를 이기면 뒤이어 열릴 코스타리카 VS 에콰도르의 경기에서 코스타리카가 이기지 않는 한 16강 진출이 확정된다. 그렇게 역사적 악연으로 얽힌 두 팀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독일은 1차전 당시 부상으로 결장한 주장 미하엘 발락이 출격했고 팀 보로프스키는 벤치로 들어갔다. 그걸 빼면 1차전 선발 라인업과 똑같았다. 반면 폴란드는 1차전에선 4-4-2 포메이션으로 나왔으나 이 경기에선 4-2-3-1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선발 라인업도 3명이 바뀌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독일이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밀어붙였고 폴란드는 수비로 버틴 후 역습을 노렸다. 전반 10분, 미하엘 발락의 패스를 받은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왼발 강슛을 날렸으나 폴란드 골키퍼 아르투르 보르츠의 선방에 막혀 버렸다. 전반 21분엔 레프트백 필립 람의 크로스를 클로제가 헤더로 연결했으나 골문 우측 바깥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전반 27분엔 폴란드의 라이트윙 이레네우시 옐렌이 역습 찬스에서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옌스 레만 골키퍼가 안전하게 잡아냈다.

전반 35분엔 다시 오버래핑한 레프트백 람이 문전으로 쇄도한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패스했고 포돌스키가 상대 수비 마크로 인해 넘어지면서도 왼발 슛을 날렸으나 역시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전반 종료 직전에 다시 람이 오버래핑해서 문전의 포돌스키에게 패스했고 포돌스키가 슛을 날렸으나 또 골키퍼 선방에 막히며 기회를 날렸다. 독일은 전반전 내내 파상공세를 퍼붓고도 좀처럼 폴란드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아랍에미리트를 5 : 1로 대파한 이후 독일은 3개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 2차전에서 좀처럼 승리를 하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 징크스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전반전은 득점 없이 0 : 0으로 끝이 났다.

후반전에도 전체적인 경기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독일의 공세, 폴란드의 수세가 이어지던 중 후반 12분, 폴란드의 역습 찬스에서 폴란드의 이레네우시 옐렌이 독일 문전 외곽에서 슛을 날렸으나 또 레만 골키퍼가 안전하게 막아냈다. 답답한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19분에 라이트백 아르네 프리드리히를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다비드 오동코어를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늘렸다. 그리고 후반 26분엔 포돌스키를 빼고 올리버 뇌빌을 투입했다. 그러던 중 후반 30분, 폴란드의 미드필더 라도스와프 소볼레프스키가 클로제를 잡아채 쓰러뜨리는 파울을 범해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소볼레프스키는 이미 전반 28분에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결국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폴란드는 수적 열세를 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호재에도 좀처럼 골이 터질 줄 몰랐다.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32분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빼고 팀 보로프스키를 교체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한편, 폴란드의 파베우 야나스 감독은 레프트윙 야체크 크지누벡을 빼고 수비수 마리우시 레반도프스키를 투입해 수비를 보강했다. 후반 38분엔 레프트백 미하우 제프와코프도 빼고 수비수 다리우시 두트카를 교체 투입해 더욱 수비를 보강했다. 어떻게든 0 : 0으로 경기를 끝내면 다음 경기에서 코스타리카를 잡을 경우 16강 진출 가능성이 생기는 폴란드는 계속해서 잠그기에 들어갔다. 어느 새 90분이 다 흘렀고 추가시간이 적용되었다. 계속해서 팽팽하게 0 : 0의 스코어가 이어지던 추가시간 1분에 폴란드의 우측 진영을 쇄도하던 오동코어가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크로스를 올렸고 이걸 뇌빌이 슬라이딩 슈팅으로 마무리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제골을 넣었다. 폴란드는 90분을 끈질기게 버텼지만 1명이 퇴장 당해 수적 열세에 놓였고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렇게 경기는 고전 끝에 독일의 1 : 0 승리로 돌아갔다. 2승(승점 6점)을 기록한 독일은 16강 진출을 거의 확정지었다.

다음 날 함부르크에서 오후 3시에 열린 코스타리카 vs 에콰도르의 경기는 예상을 깨고 에콰도르가 3 : 0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2승을 기록한 독일과 에콰도르는 모두 16강 진출이 확정되었고 반대로 폴란드와 코스타리카는 2패를 기록해 모두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었다. 2차전에서 진출팀과 탈락팀이 모두 결정되었으니 참으로 싱거운 조별리그였다. 다만 골 득실에서 에콰도르가 +5, 독일이 +3에 그쳐서 예상 외로 에콰도르가 조 1위, 독일이 2위에 있었다. 폴란드와 코스타리카 역시 승점은 0점으로 동률이었지만 골 득실에서 폴란드가 -3, 코스타리카가 -5였으므로 폴란드가 3위, 코스타리카가 최하위에 있었다.


18.3. 32강 조별리그 에콰도르전 - 3 : 0 승[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A조 제5-1경기
2006년 6월 20일 16:00(UTC+1)

올림피아슈타디온 (독일, 베를린)
주심: 발렌틴 이바노프 (러시아)
파일:독일 국기.svg
3 : 0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독일
에콰도르
4′, 44' 미로슬라프 클로제
57' 루카스 포돌스키
득점자
-
관중: 72,000명
Man of the Match: [[미하엘 발락|{{{#000000 미하엘 발락}}}]] (독일)

독일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남미의 에콰도르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맞붙은 것은 이번이 최초였다. 이미 독일과 에콰도르 모두 나란히 2승을 거두어 16강 진출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이 경기는 순위 결정전 이외의 큰 의미는 없는 상황이다. 다만 독일로서는 16강전에서 B조 1위로 예상되는 잉글랜드를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조 1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는데도 그대로 베스트 11을 내보냈다. 다만 센터백 크리스토프 메첼더 대신 로베르트 후트가 들어간 것만 다르다. 즉, 이 경기를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반면, 에콰도르는 달랐다. 에콰도르는 2차전 코스타리카전과 비교해 선발 라인업에서 5명이 바뀌었다. 즉, 오히려 에콰도르가 1.5군을 내보내고 경기에 임한 것이다. 아마도 에콰도르는 본래부터 16강 정도가 목표였던 팀이라 1위를 하든 2위를 하든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루이스 페르난도 수아레스 감독이 이런 선택을 한 듯하다.

경기가 시작되자 독일이 초반부터 공세를 높였다. 독일은 전반 4분 만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패스를 받은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오른발 땅볼 슛으로 마무리하여 1 : 0으로 앞서 갔다. 이로써 클로제는 이번 대회 3호골을 기록하여 득점왕 경쟁을 이어갔고 또 개인 통산 월드컵 8호골을 기록해 루디 푈러와 함께 독일의 월드컵 개인 통산 득점 순위 6위에 올랐다. 전반 15분엔 레프트백 필립 람의 크로스를 클로제가 헤더로 연결하려고 시도했으나 높이가 맞지 않아 실패했다. 전반 19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에콰도르 좌측 진영에서 오버래핑하는 람에게 패스를 넣었고 람은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크로스를 올렸다. 이걸 베른트 슈나이더가 논스톱 슛으로 연결했으나 홈런이 되고 말았다. 계속해서 독일이 공격을 하고 에콰도르는 거의 하프 라인을 넘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계속 수비만 했다.

전반 33분, 클로제가 로빙 패스를 한 번에 받아 논스톱 슛을 날렸으나 이 역시 홈런이 되었다. 뒤이어 전반 44분, 미하엘 발락이 에콰도르 수비수 3명 사이에 있던 클로제에게 패스를 넣었고 클로제는 에콰도르 센터백 히오반니 에스피노사의 거친 마크를 이겨냈고 또 각도를 줄여 선방하려고 전진한 에콰도르 골키퍼 크리스티안 모라를 제치고 그대로 빈 골문으로 질주해 추가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2 : 0으로 벌렸다. 그리하여 클로제는 대회 4호골을 기록하여 득점왕 경쟁에서 선두를 달렸다. 그리고 본인의 월드컵 통산 9호골을 성공시켜 우베 젤러와 함께 독일의 월드컵 개인 통산 득점 순위 5위에 올랐다. 그렇게 전반전은 독일이 2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하프 타임 때 독일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교체 없이 그대로 후반전에 내보냈지만 에콰도르의 수아레스 감독은 부진했던 공격수 펠릭스 보르하를 빼고 크리스티안 베니테스를 교체 투입했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독일의 공세, 에콰도르의 수세로 이어졌다. 그리고 후반 12분, 베른트 슈나이더가 우측에서 올린 크로스를 문전으로 침투한 루카스 포돌스키가 슬라이딩 슛으로 연결해 마무리 하며 스코어를 3 : 0으로 벌렸다. 폴란드 출신 신예 포돌스키의 월드컵 데뷔골이었다. 3점 차로 벌어지자 에콰도르도 더 이상 수비만 하지 않고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후반 27분에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킥커 에딘손 멘데스가 찼지만 골문을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중반에 교체 카드 3장을 일찌감치 쓰며 주전들 체력 안배를 시켜주었다.

그리하여 경기는 독일의 3 : 0 완승으로 끝이 났다. 이로써 독일은 3전 전승(승점 9점)을 기록해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독일이 1라운드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기록한 건 1970 멕시코 월드컵 이후 36년 만의 일이었다.[39] 독일은 막강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3전 전승으로 조별리그를 마치는 경우가 드물었다. 통일 독일 대표팀으로서 출전한 지난 3번의 대회에서도 모두 2승 1무로 조별리그를 마쳤는데 4번째 도전 끝에 드디어 3전 전승을 해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20년 현재까지 이 대회가 독일이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기록한 마지막 대회로 남아 있다. 그 이후로 치른 3번의 대회 중 2번은 2승 1패, 2승 1무였고 나머지 1번은 1승 2패에 그친 것도 모자라 아예 조별리그에서 탈락해버렸다.


18.4. 16강전 스웨덴전 - 2 : 0 승[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16강 제1경기
2006년 6월 24일 17:00(UTC+1)

알리안츠 아레나 (독일, 뮌헨)
주심: 카를루스 이우제니우 시몽 (브라질)
파일:독일 국기.svg
2 : 0
파일:스웨덴 국기.svg
독일
스웨덴
4′, 12' 루카스 포돌스키
득점자
-
-
퇴장자
35′ 테디 루치치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66,000명
Man of the Match: [[미로슬라프 클로제|{{{#000000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독일의 16강전 상대는 B조 2위를 차지한 스웨덴으로 결정되었다. 두 팀은 월드컵에서 자주 만난 사이인데 이번이 벌써 4번째 맞대결이다. 지난 3번의 맞대결에서 상호 전적은 2승 1패로 독일이 근소하게 우세에 있다. 그러나 A매치 전체로 확장해 보면 독일은 1978년 이후 단 1번도 스웨덴에 패배한 적이 없다. 월드컵에서의 1패도 1958 스웨덴 월드컵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지난 경기에서 잉글랜드에 유달리 강한 이른바 '바이킹 징크스\'의 덕을 본 스웨덴은 이번엔 독일에 약한 '게르만 징크스\'를 걱정해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보인 스웨덴의 모습은 꽤나 실망스러웠다. 조별리그 1차전에선 첫 출전한 북중미의 약체팀 트리니다드토바고를 상대로 0 : 0 무승부를 하는 굴욕을 당하더니 2차전에선 파라과이를 고전 끝에 1 : 0으로 겨우 이겼다. 3차전에서 잉글랜드에 강한 유달리 징크스 덕에 겨우 2 : 2 무승부를 거두며 간신히 16강에 올라왔다. 때문에 경기는 독일의 우세로 예상되었다.

독일은 지난 에콰도르전과 비교해 크리스토프 메첼더가 다시 들어간 걸 제외하면 선발 라인업에 변화가 없었다. 스웨덴 역시 지난 잉글랜드전과 비교하면 마르쿠스 알베크 대신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들어간 것 빼곤 선발 라인업에 변화가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독일이 초반부터 스웨덴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하여 전반 4분, 라이트백 아르네 프리드리히가 센터백 페어 메르테자커에게 패스했고 메르테자커가 중원에 있던 토르스텐 프링스에게 패스했다. 프링스는 전방으로 볼을 길게 띄웠고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공중볼을 따냈다. 루카스 포돌스키가 그 볼을 받으려 했으나 스웨덴 수비의 방해로 받지 못했다. 볼은 미하엘 발락의 발 앞에 갔고 발락은 다시 클로제에게 패스했다. 클로제가 문전으로 쇄도했으나 스웨덴의 안드레아스 이삭손 골키퍼가 먼저 전진해 선방했다. 하지만 그 볼은 다시 포돌스키의 발 앞에 갔고 포돌스키가 빈 골문으로 재빨리 강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40] 그렇게 4분 만에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그리고 전반 12분, 발락이 중원에서 전방의 클로제에게 긴 땅볼 패스를 넣었고 클로제가 스웨덴 수비수 3명을 끌고 다니며 포돌스키에게 빈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포돌스키에게 볼을 건넸다. 클로제의 패스를 받은 포돌스키는 노마크 상태에서 편안하게 왼발 슛을 날려 추가골을 뽑아내 스코어를 2 : 0으로 벌렸다. 이른 시간에 점수가 2골 차로 벌어지면서 사실상 승부는 이 때 결정이 나버렸다. 승세를 탄 독일은 아예 스웨덴을 박살내버리려는 듯 계속해서 신들린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2골을 실점한 스웨덴도 더 이상 골을 내주면 승부를 뒤집기 어려워지므로 정신 차리고 수비를 강화해 더 이상 골을 내주지 않았다. 이삭손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가 아니었으면 정말 스웨덴은 전반전에만 5골 이상 내줄 뻔했다. 그런데 전반 35분, 스웨덴의 수비수 테디 루치치가 클로제의 유니폼을 잡고 끄는 반칙을 범해 경고를 받았다. 문제는 루치치는 이미 전반 28분에 경고를 받았기에 결국 퇴장당하고 말았다. 전반 39분, 즐라탄이 좋은 득점 찬스를 잡아 슛을 날렸으나 옌스 레만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전반전은 그렇게 독일이 2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은 전반전과 달리 스웨덴이 주도해서 경기하고 독일은 페이스를 늦추며 지키는 방향으로 갔다. 후반 6분, 센터백 크리스토프 메첼더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스웨덴 공격수 헨릭 라르손을 밀어버리는 반칙을 범했다. 주심 카를루스 시몽은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페널티킥 직전에 스웨덴의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은 교체 카드를 써서 독일의 집중력을 끊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킥커 라르손이 찬 킥은 하늘 높이 날아가고 말았다. 스웨덴은 천금 같은 만회골 득점 기회를 놓쳤다. 페널티킥이 실패로 돌아가자 독일이 다시 반격했다. 하지만 더 이상 실점하면 끝장인 스웨덴도 호락호락하게 골을 내주지 않았다. 후반전에도 스웨덴의 이삭손 골키퍼가 여러 차례 호선방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후반 25분을 넘어서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아껴뒀던 교체 카드를 활용하며 잠그기에 들어갔다. 후반 27분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빼고 팀 보로프스키를 투입해 체력 안배를 시켜주었고 후반 29분엔 올리버 뇌빌을 투입하고 루카스 포돌스키를 뺐다. 뒤이어 후반 40분엔 토르스텐 프링스를 빼고 제바스티안 켈을 투입해 단단히 걸어잠갔다. 독일은 잠그면서도 계속해서 공격 템포를 늦추지 않고 스웨덴을 몰아붙였다. 오히려 독일이 2골밖에 못 넣은 게 이상할 정도로 무수히 많은 유효슈팅을 날렸다. 이삭손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으면 스웨덴은 정말 대패했을 정도였다. 결국 경기는 독일의 2 : 0 승리로 끝이 났고 독일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스웨덴은 이 경기도 지면서 28년 째 이어진 게르만 징크스를 깨는데 실패했다. 이 이후로도 스웨덴은 독일을 만나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2년 뒤에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재회했을 때도 스웨덴은 독일, 멕시코, 대한민국과 한 조에 속해 그 조에서 1위를 차지했고 독일은 조 꼴찌로 탈락했는데도 불구하고 혼자만 독일을 못 이겼다. 바이킹 징크스는 2010년대 들어서 깨졌지만 게르만 징크스는 현재 진행형이다.


18.5. 8강전 아르헨티나전 - 1 : 1 무(PSO 4 : 2 승)[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8강 제1경기
2006년 6월 30일 17:00(UTC+1)

올림피아슈타디온 (독일, 베를린)
주심: 류보시 미헬 (슬로바키아)
파일:독일 국기.svg
1 : 1
(PSO 4 - 2)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독일
아르헨티나
80' 미로슬라프 클로제
득점자
49' 로베르토 아얄라
관중: 72,000명
Man of the Match: [[미하엘 발락|{{{#000000 미하엘 발락}}}]] (독일)

승부차기
국가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점수
4
2
순서
선축
후축
1
올리버 뇌빌
O
훌리오 크루즈
O
2
미하엘 발락
O
로베르토 아얄라
X
(골키퍼 선방)
3
루카스 포돌스키
O
막시 로드리게스
O
4
팀 보로프스키
O
에스테반 캄비아소
X
(골키퍼 선방)

독일의 8강전 상대는 남미의 아르헨티나였다. 두 팀은 월드컵에서 굉장히 자주 만난 사이였다. 이번이 벌써 5번째 맞대결이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이전까지 월드컵 맞대결에서 2승 1무 1패로 독일이 근소하게 우세에 있다. 4년 전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는 불운이 연달아 겹쳐 일어나 1승 1무 1패(승점 4점)를 기록하고 조 3위에 그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치욕을 겪은 바 있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의 아르헨티나는 굉장히 무서웠다. 1차전에서 아프리카의 신흥 강호 코트디부아르를 2 : 1로 이긴 것을 시작으로 2차전에선 지역예선에서 그 무적함대 스페인을 플레이오프로 떨어뜨리고 본선에 직행한 돌풍의 팀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무려 6 : 0으로 처참하게 밟아죽였다. 3차전에선 네덜란드와 0 : 0으로 비겼지만 16강에선 멕시코를 연장 혈투 끝에 2 : 1로 제압하고 8강까지 올라왔다.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은 승부가 예측되었다.

독일은 지난 경기들과 똑같은 선발 라인업으로 경기에 나섰다. 아르헨티나는 멕시코전과 비교해 라이트백 리오넬 스칼로니 대신 파브리시오 콜로치니가 투입되었고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우측 미드필더인 캄비아소의 자리엔 좌측 미드필더인 막시 로드리게스가 대신 들어가서 메웠고 막시 로드리게스의 빈 자리는 루초 곤살레스가 대신 들어가 메웠다. 또 멕시코전에선 에르난 크레스포-하비에르 사비올라 투 톱이 경기에 나섰으나 오늘 경기에선 크레스포와 카를로스 테베스 투 톱이 섰다. 즉, 지난 경기 선발 라인업에서 3명을 바꾸고 나선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양 팀은 굉장히 치열하게 맞붙었다. 하지만 워낙 둘 다 극강인 팀들이라 팽팽한 샅바 싸움이 이어졌고 좀처럼 골이 터지질 않았다. 양 팀 모두 결정적인 득점 찬스가 왔어도 뭔가 허둥대다 그냥 날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전반전은 0 : 0으로 마쳤다.

후반전이 되자 아르헨티나가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후반 4분, 코너킥 찬스에서 플레이메이커 후안 로만 리켈메가 중앙으로 붙였고 그걸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로베르토 아얄라가 곧바로 헤더슛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뽑아냈다. 센터백 크리스토프 메첼더가 앞에서 어그로를 끄는 크레스포의 움직임에 현혹되어 아얄라를 완벽하게 놓쳤고 뒤늦게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대신 마크를 시도했으나 애초에 본업이 수비수가 아닌 클로제가 제대로 된 마크를 하긴 어려웠다. 그리하여 아르헨티나가 1 : 0으로 앞서갔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17분, 베른트 슈나이더를 빼고 다비드 오동코어를 투입해 반전을 꾀했다. 그러던 중 후반 26분, 아르헨티나의 수문장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가 공중볼 경합 도중 클로제와 충돌하여 옆구리에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의 호세 페케르만 감독은 아본단시에리를 불러들이고 후보 골키퍼 레오 프랑코를 교체 투입했다. 이것이 이 날 경기의 분수령이었다. 그리고 1분 후엔 플레이메이커 리켈메를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 에스테반 캄비아소를 투입해 수비를 강화하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한편 여전히 0 : 1로 뒤지고 있자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29분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빼고 팀 보로프스키를 교체 투입했다. 어느 덧 후반 30분을 넘어서자 페케르만 감독은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고 크레스포마저 불러들이고 훌리오 크루스를 투입했다. 하지만 페케르만 감독의 이 같은 교체 카드는 결국 패착으로 돌아왔다. 후반 35분, 독일의 스로인 찬스에서 주장 미하엘 발락이 레프트백 필립 람에게 패스했다. 람은 다시 발락에게 패스했고 발락은 문전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이 크로스를 보로프스키가 방향을 바꾸는 헤더 페스로 클로제에게 건넸고 클로제가 다시 내려찍는 헤더로 동점골을 터뜨려 다시 승부를 1 : 1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로서 클로제는 대회 5호골을 기록해 득점왕 선두 자리를 지켰고 아울러 개인 통산 월드컵 10호골을 성공시켜 독일 선수로랭 헬무트 란,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더불어 공동 3위에 랭크되었다. 이후 남은 시간 동안 양 팀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지만 승부가 나질 않았고 후반전은 1 : 1로 끝이 났다.

연장전에서도 두 팀은 팽팽한 샅바 싸움을 주고 받았다. 스쿼드 면에서 좀 더 우세였던 아르헨티나가 조금 더 밀어붙이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플레이메이커 리켈메와 타겟맨 크레스포가 교체 아웃되어 버린 후라 그리 파괴력이 뛰어나진 않았다. 결국 연장전 30분 동안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리게 되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각각 3번씩 승부차기를 치렀는데 독일은 프랑스, 멕시코, 잉글랜드와 승부차기를 치러 3번 모두 승리했고 아르헨티나 역시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잉글랜드와 승부차기를 치러 3번 모두 승리했다. 즉, 둘 중 하나는 이 경기에서 최초의 승부차기 패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승부차기를 앞두고 독일 코치는 옌스 레만 골키퍼에게 아르헨티나의 킥커들에 대한 특징을 적은 메모지를 전달했다. 놀랍게도 레만 골키퍼는 이걸 양말에 꽂아놓고 대놓고 꺼내 읽는 패기를 보였다.

승부차기는 독일의 선축으로 시작되었다. 1번 킥커 올리버 뇌빌의 킥을 아르헨티나 수문장 프랑코 골키퍼가 방향은 읽었으나 킥이 워낙 강해서 손에 맞고 그대로 골문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아르헨티나 1번 킥커 훌리오 크루즈 역시 골대 좌측 상단을 뚫는 킥으로 가뿐하게 성공시켰다. 레만 골키퍼 역시 방향은 읽었으나 하필 그곳은 이른바 야신 사각지대라 불리는 곳이라 막을 수가 없었다. 뒤이어 2번 킥커로 나선 주장 미하엘 발락도 가뿐하게 킥을 성공시켰다. 아르헨티나의 2번 킥커는 선제골의 주인공 로베르토 아얄라였다. 하지만 승부차기의 징크스는 그 날 가장 잘한 선수는 반드시 실축한다는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아얄라는 부담이 컸는지 골문 오른쪽을 향해 낮고 빠른 슛을 날렸으나 옌스 레만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독일이 2 : 1로 앞서갔다. 뒤이어 독일의 3번 킥커 루카스 포돌스키는 골키퍼를 속이며 정확하게 반대쪽으로 킥을 날려 골을 성공시켰다. 아르헨티나의 3번 킥커는 막시 로드리게스였다. 이번에도 레만 골키퍼가 방향은 읽었으나 킥이 더 빨라서 골로 연결되었고 3 : 2로 1점 차가 유지되었다. 이제 독일의 4번 킥커는 팀 보로프스키였다. 보로프스키 역시 프랑코 골키퍼를 속이며 간단하게 성공시켰다. 아르헨티나 4번 킥커는 에스테반 캄비아소였다. 아르헨티나로선 캄비아소가 실축하면 끝장이다. 반드시 캄비아소가 성공해야만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캄비아소의 킥은 옌스 레만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결국 독일이 승부차기 4 : 2로 승리하며 2개 대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독일은 공동으로 승부차기 무패 신화를 쓰고 있던 아르헨티나를 맞아 어려운 진검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4번 킥커에서 승부를 결정지어 버리며 싱겁게 마무리지었다. 그리하여 독일은 월드컵 승부차기에서 4전 4승을 기록하여 승률 100% 신화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4번째 승부차기 대결에서 비로소 1패를 떠 안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로서는 더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게 이 대회 이후로 독일과 2번 더 맞붙었는데 이 때가 가장 내용과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 때 독일 홈에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갈 정도로 독일을 이길 뻔하기까지 했었던 것과 달리 4년 뒤엔 희대의 졸장 디에고 마라도나가 팀 케미스트리를 망쳐놓는 바람에 독일에 0 : 4로 대패를 당하게 된다.


18.6. 4강전 이탈리아전 - 0 : 2 패[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4강 제1경기
2006년 7월 4일 21:00(UTC+1)

베스트팔렌 슈타디온 (독일, 도르트문트)
주심: 베니토 아르춘디아 (멕시코)
파일:독일 국기.svg
0 : 2
(서든데스 연장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독일
이탈리아
-
득점자
119' 파비오 그로소
120+1'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관중: 65,000명
Man of the Match: [[안드레아 피를로|{{{#000000 안드레아 피를로}}}]] (이탈리아)




독일의 대진표는 정말 산 넘어 산이었다. 4강전 상대는 바로 천적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였다. 독일과 이탈리아 역시 월드컵에서 꽤 자주 만난 사이인데 이번이 벌써 5번째 맞대결이었다. 이전까지 양 팀의 월드컵에서의 전적은 2무 2패로 독일이 열세에 있다. 1962 칠레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2라운드 조별리그에선 두 번 다 0 : 0으로 비겼고 1970 멕시코 월드컵 4강전에선 7골을 주고 받는 난타전 끝에 3 : 4로 패배했고 1982 스페인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이탈리아에 1 : 3으로 패배해 준우승에 그친 바 있다. 이상하게 독일은 국제대회에서 이탈리아만 만나면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회가 열리기 3개월 전 밀라노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독일은 1 : 4 대패를 당하기까지 했다. 독일은 이번 경기가 열리는 곳이 독일 국가대표팀이 무려 71년 동안 단 1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승리의 땅 도르트문트라는 점을 들어 이번만은 반드시 아주리 징크스를 털어버리겠다고 큰소리 쳤고 이탈리아는 3개월 전 밀라노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려보라고 조롱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이번 월드컵에서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독일은 조별리그는 코스타리카, 폴란드, 에콰도르라는 비교적 쉬운 상대들과 함께 꿀조에 편성되어 조별리그는 쉬웠으나 토너먼트는 스웨덴 -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지옥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조별리그는 가나, 미국, 체코 등과 함께 막강한 상대들과 속해 죽음의 조였으나 토너먼트는 호주 - 우크라이나로 이어지는 시시한 난이도였다. 독일이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악전고투를 벌이며 승부차기까지 가는 씨름을 한 끝에 간신히 이겼다면 이탈리아는 우크라이나를 만나 하품이나 쩍쩍하면서 3 : 0으로 가볍게 털어버리고 4강에 올라왔다. 독일이나 이탈리아나 둘 다 체력 회복을 빨리 한 쪽이 어느 쪽이냐가 승부를 결정지을 관건이 될 것이다.

독일은 지난 아르헨티나전과 비교해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토르스텐 프링스 대신 제바스티안 켈이 들어가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대신 팀 보로프스키가 들어간 걸 제외하면 선발 라인업에 큰 변동이 없었다. 이탈리아는 지난 우크라이나전과 비교해 센터백에 호주전에서 퇴장당해 결장했던 마르코 마테라치가 복귀한 걸 제외하면 역시 큰 변동이 없었다. 경기는 초반부터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전반 초반에 이탈리아가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프란체스코 토티가 찼으나 옌스 레만 골키퍼 정면으로 갔다. 그 이후 독일이 전반적으로 공세적으로 나왔고 이탈리아는 카테나치오와 특유의 더티 플레이로 독일의 공세를 방어했다. 주장 미하엘 발락과 투 톱 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 루카스 포돌스키 모두 이탈리아 수비진의 더티 플레이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8강전까지 크리스티안 자카르도자책골 외에 단 1골도 내주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그물망 같은 수비를 독일은 좀처럼 뚫지 못했다. 그렇게 전반전은 0 : 0으로 끝이 났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대체로 독일이 공격하고 이탈리아가 수비로 버틴 후 역습에 나섰다. 하지만 잔루이지 부폰이 지키는 이탈리아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독일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먼저 교체 카드를 뽑았다. 후반 28분, 팀 보로프스키를 빼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투입했다.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 역시 1분 후, 루카 토니를 빼고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를 교체 투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교체 카드에도 불구하고 굳게 닫힌 이탈리아의 골문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다. 분명히 볼 점유율, 슈팅 횟수 등에서 독일이 더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이탈리아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후반 38분에 클린스만 감독은 베른트 슈나이더를 빼고 다비드 오동코어를 투입해 공격의 속도를 높이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시간인만큼 연장전을 대비해 교체 카드 1장을 아껴두었다. 결국 후반전에도 양팀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며 0 : 0으로 경기를 마쳤고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독일로서는 2경기 연속 연장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연장전이 되자 이탈리아의 리피 감독은 마우로 카모라네시를 빼고 빈첸초 이아퀸타를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늘렸다. 어떻게든 연장전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였다. 연장전에 독일은 이탈리아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의 핸드볼 파울로 인해 페널티 박스 바로 외곽에서 프리킥을 얻었고 킥커 미하엘 발락이 찼으나 또 크로스바 위로 벗어나 버렸다. 연장 전반 14분엔 이탈리아가 시모네 페로타를 빼고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를 교체 투입해 교체 카드를 모두 썼다. 결국 연장 전반 역시 0 : 0으로 승부가 갈리지 않았고 이제 연장 후반 15분이 남았다. 이제 이 마지막 15분을 놓고 두 팀의 셈법이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연장 후반 6분, 클린스만 감독은 클로제를 빼고 올리버 뇌빌을 투입해 마지막 교체 카드를 썼다. 이제 두 팀은 체력적으로 점점 힘들어졌으며 연장전도 어느덧 다 끝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두 팀의 계산이 달라졌다. 몇 분 안 남은 상황에서 점수는 여전히 0 : 0이었고 이대로 가면 승부차기로 갈 수밖에 없다. 독일은 이전까지 월드컵에서 4번 승부차기를 치러 4번 모두 승리한 최강자였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전까지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프랑스와 3번 승부차기를 치러 3번 모두 패배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다. 즉, 승부차기로 흐르면 독일이 훨씬 더 유리해진다. 이탈리아로서는 어떻게든 승부차기로 넘어가기 전에 경기를 끝내야 했다.

시계가 118분을 넘어서자 독일은 서서히 라인을 내리고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무승부도 나쁘지 않고 승부차기로 이기면 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승부차기가 쥐약인 이탈리아가 그 꼴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경기 막바지에 이르자 이탈리아의 공격 템포가 더욱 빨라졌다. 연장 후반 14분, 이탈리아의 코너킥 찬스에서 킥커 델피에로가 중앙으로 볼을 올리는 척하다가 문전 외곽에 있던 안드레아 피를로에게 패스했다. 피를로는 줄 듯 말 듯 멈칫하면서 독일 수비수 4명을 끌고 갔고 독일 수비수들의 이목이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진 틈을 타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노마크로 있던 파비오 그로소에게 패스했다. 그로소가 지체없이 왼발 슛을 날렸고 그대로 독일 골문 왼쪽 구석을 파고 들며 119분 만에 이탈리아가 1 : 0으로 앞서갔다. 독일로서는 이제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 어떻게든 동점골을 넣어서 승부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야 했다.

추가시간 1분에 독일의 공격 상황에서 파비오 칸나바로의 수비에 막히며 다시 이탈리아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이 때 독일 선수들은 골 넣기 위해 모두 이탈리아 진영으로 밀고 올라간 탓에 커버 플레이가 늦어졌다. 역습에 나선 이탈리아 공격수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는 멈칫하는 플레이로 독일 수비수 3명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고 감각적으로 뒤에서 쇄도하는 델 피에로에게 패스했다. 노마크 상태가 된 델 피에로는 레만 골키퍼와 1 : 1 상황에 놓였고 침착하게 오른발로 마무리하여 스코어를 2 : 0으로 벌려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독일로선 막판 2분을 버티지 못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렇게 또 다시 지긋지긋한 그 저주의 이름 아주리 징크스가 다시 한 번 독일의 발목을 잡았다. 또 다시 이탈리아의 벽을 넘지 못한 독일은 결승전을 손님들에게 내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때 2분을 못 버텨 승부차기를 못 치르고 패배한 독일의 한은 10년 뒤 유로 2016에서 해소되었다. 이 대회에서 독일은 이탈리아와 1 : 1로 비긴 뒤 승부차기 6 : 5로 승리해 드디어 끈질기게 이어져 온 아주리 징크스를 격파하는데 성공했다![41] 아마도 이 때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면 이 때 이미 아주리 징크스를 격파할 수도 있었지만 파비오 그로소 한명을 막지 못해 독일의 결승 진출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8.7. 3위 결정전 포르투갈전 - 3 : 1 승[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3·4위전
2006년 7월 8일 21:00(UTC+1)

고틀리프 다임러 슈타디온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심: 가미카와 도루 (일본)
파일:독일 국기.svg
3 : 1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독일
포르투갈
56′, 78'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60' 프티(O.G)
득점자
88' 누누 고메스
관중: 52,000명
Man of the Match: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000000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독일)

지긋지긋한 아주리 징크스의 벽을 넘지 못한 독일은 베를린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리는 결승전 대신 슈투트가르트로 이동해 3위 결정전을 치르게 되었다. 이 경기 전까지 독일은 계속 뮌헨, 도르트문트, 베를린 이 3곳만 돌면서 경기를 했는데[42] 이 경기에서 최초로 그 3개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독일의 3위 결정전 상대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이끄는 포르투갈이었다. 독일과 포르투갈이 월드컵에서 맞붙은 것은 이번이 사상 최초였다. 그러나 6년 전 포르투갈은 유로 2000에서 독일에 0 : 3 대패의 굴욕을 안겨준 바 있었고 4년 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은 저 스콜라리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에 결승전에서 패배해 우승을 눈 앞에서 놓친 바 있었다. 따라서 이 경기는 6년 전 대패의 설욕전이자 스콜라리 감독에 대한 작은 복수전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독일과 포르투갈은 모두 조별리그는 쉬웠으나 토너먼트는 어려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코스타리카, 폴란드, 에콰도르 등 비교적 손쉬운 상대들을 만나 가볍게 3승으로 해치웠으나 토너먼트는 스웨덴 -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 등 까다로운 상대들과 연달아 맞붙었다. 포르투갈 역시 조별리그는 앙골라, 이란, 멕시코 등 손쉬운 상대들이여서 가볍게 3승으로 쓸어버렸으나 토너먼트는 네덜란드 - 잉글랜드 - 프랑스 등 산 넘어 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은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무려 40년 만에 4강 신화를 쓰는 선전을 했다. 지난 대회에서 황금세대들이 총 출동하여 우승후보라는 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미국에 패배하여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던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에선 절치부심하여 4강까지 올라갔으나 천적 프랑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 독일은 이탈리아전과 비교해 선발 라인업에 크게 변화를 주었다. 우선 골키퍼는 옌스 레만 대신 올리버 칸이 나섰다. 그리고 센터백 역시 페어 메르테자커 대신 옌스 노보트니가 출전해 크리스토프 메첼더와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레프트백으로 출전했던 필립 람은 라이트백으로 옮겼고 그 빈 자리는 마르첼 얀센이 채웠으며 아르네 프리드리히는 결장했다. 중앙 미드필더 역시 미하엘 발락이 빠지고 토르스텐 프링스가 복귀했다. 그리고 왼쪽 미드필더 팀 보로프스키가 빠지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들어가 총 5명이 바뀌었다. 반면, 포르투갈은 라이트백 미겔 대신 파울루 페헤이라가 투입된 것과 루이스 피구 대신 시망 사브로자가 들어간 걸 빼면 프랑스전 라인업과 똑같았다. 피구가 빠졌기에 오늘 경기는 파울레타가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왔다.

경기가 시작되자 독일이 5분 만에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킥커 베른트 슈나이더가 찬 킥은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크리스토프 메첼더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헤더로 떨구었고 그걸 제바스티안 켈이 논스톱 왼발 슛으로 연결했으나 포르투갈 레프트백 누누 발렌트의 팔에 맞고 골라인을 벗어났다. 켈은 주심에게 핸드볼 파울이라고 어필했으나 주심 가미카와 토루는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독일에 페널티킥을 주지 않았다. 2분 후, 토르스텐 프링스데쿠에게 거친 파울을 범해 경고를 받았다. 전반 15분엔 독일의 수비 배후 공간으로 침투한 포르투갈 원톱 파울레타올리버 칸과 1 : 1 찬스를 맞았다. 그러나 독일 수문장 올리버 칸은 비록 옌스 레만에 의해 주전에서 밀렸지만 여전히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며 골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독일과 포르투갈 양 팀 모두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몇 차례 맞이했으나 살리지 못하며 전반전은 결국 0 : 0으로 마무리했다.

하프 타임 때 포르투갈의 스콜라리 감독은 코스티냐를 빼고 프티를 교체 투입했고 독일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후반전이 되자 경기를 하루 늦게 치른 포르투갈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점점 힘에 부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틈을 독일이 놓치지 않았다. 후반 12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문전 외곽에서 포르투갈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다가 중거리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내 스코어를 1 : 0으로 벌렸다. 잘 버텨왔던 포르투갈 선수들은 선제골을 내주자 그 때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불과 3분 후,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독일이 프리킥을 얻었다. 킥커 슈바인슈타이거가 찬 킥을 수비에 가담한 포르투갈 미드필더 프티가 걷어내려다 실수를 범하며 자책골을 집어넣는 바람에 스코어는 2 : 0으로 벌어졌다. 2골 차로 벌어지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20분,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빼고 올리버 뇌빌을 교체 투입했다. 스콜라리 감독 역시 후반 24분, 레프트백 누누 발렌트를 빼고 공격수 누누 고메스를 교체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2분 후, 클린스만 감독은 루카스 포돌스키를 빼고 미케 항케를 투입해 월드컵 무대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2골 차로 앞선 독일은 서서히 잠그기에 들어갔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스콜라리 감독은 파울레타를 빼고 루이스 피구를 교체 투입시켰다. 그러나 불과 1분 후, 슈바인슈타이거가 첫 번째 골과 똑같이 문전 외곽에서의 중거리슛으로 멀티골을 뽑아내 스코어를 3 : 0으로 벌렸다.[43] 실상 독일의 3골 모두 슈바인슈타이거의 발 끝에서 나와 해트트릭이나 다름 없었지만 2번째 골은 프티의 발에 맞고 들어갔기에 프티의 자책골로 기록되어 해트트릭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이 대회가 해트트릭이 없는 대회로 기록되지 않았을 것인데 좀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 3골 차까지 벌어지자 클린스만 감독은 남은 교체 카드 1장을 루카스 포돌스키를 빼고 토마스 히츨슈페르거를 교체 투입해 월드컵 데뷔전을 치르게 해주었다.

3골 차까지 밀렸지만 포르투갈로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교체 투입된 포르투갈의 백전노장 공격수 루이스 피구가 독일 우측 진영을 쇄도하였고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이 크로스를 누누 고메스가 연결해 만회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3 : 1로 좁혔다. 옌스 노보트니크리스토프 메첼더가 고메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놓쳐서 고메스가 프리 헤더로 만회골을 넣었다. 포르투갈은 남은 시간 동안 사력을 다해 골을 노렸지만 독일은 지능적인 수비로 시간을 질질 끌었고 결국 경기는 독일의 3 : 1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하여 독일이 대회 3위를 차지했고 포르투갈이 4위를 차지했다. 다음 날 열린 결승전은 이탈리아가 프랑스와 1 : 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5 : 3으로 제압하여 24년 만에 우승하는데 성공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독일이 우승했고 개최국 이탈리아가 3위를 했는데 이번엔 반대로 이탈리아가 우승하고 개최국 독일이 3위를 한 것이다. 좀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3위에 그친 것은 아쉽지만 이 대회를 통해 독일은 자신 있게 10년 넘게 이어진 '녹슨 전차' 시절에서 벗어났다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경기를 시작으로 독일은 어떤 국제대회를 막론하고 국제대회에서 포르투갈을 만나기만 하면 전승을 기록하며 포르투갈의 천적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한편, 포르투갈은 이 대회를 끝으로 루이스 피구, 파울레타 등 황금세대들이 하나하나씩 대표팀을 은퇴하였고 뒷 세대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원맨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포르투갈은 이 대회 이후론 농담으로도 우승후보로 거론되지 못하고 있으며 매 대회마다 잘 가봐야 16강 정도에 그치는 그저 그런 팀이 되어버렸다. 2019년 현재까지 이 대회가 포르투갈 대표팀의 마지막 불꽃 정도가 되어버렸다. 거기다 이제 호날두도 슬슬 나이가 들어 은퇴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데 현재 포르투갈에 호날두를 대체할 만한 이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19.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대회가 끝난 후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며 대표팀 감독 자리를 사임했다.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은 자연스럽게 수석코치였던 요아힘 뢰프가 승계받았다. 선수 시절엔 차범근의 백업 선수에 불과했을 정도로 무명이었고 감독이 되어서도 군소 리그 팀을 전전하였던 뢰프는 어느 새 전차군단의 사령탑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이 출범한 뢰프의 전차군단이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는 바로 유로 2008이었다. 당시 독일은 유로에서 2개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 탈락이란 수모를 겪은 상태였다. 이번엔 반드시 명예 회복을 하리라 다짐했다. 독일은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폴란드와 함께 B조에 속했다. 독일은 1차전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루카스 포돌스키의 멀티골에 힘입어 2 : 0으로 가볍게 승리했다. 모국을 울린 나쁜 남자 포돌스키 2차전 상대는 10년 전 월드컵에서 0 : 3 대패의 수모를 안겨준 크로아티아였다. 이번은 그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이번에도 1 : 2로 패배하며 또 설욕에 실패했다. 그러나 3차전에서 오스트리아를 1 : 0으로 이기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 상대는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이었다. 2년 전 월드컵에선 독일이 포르투갈을 3 : 1로 이겼지만 아직 유로에선 포르투갈을 이겨본 적이 없고 오히려 유로 2000에선 독일이 0 : 3 대패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쉽지 않은 경기가 예측되었고 과연 두 팀은 5골을 주고 받는 난타전을 벌인 끝에 독일이 3 : 2로 간신히 승리해 4강에 올랐다. 4강 상대는 파티흐 테림 감독이 이끄는 돌풍의 팀 터키였다. 독일은 터키와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3 : 2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당시 스페인은 명장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의 지휘로 티키타카 전술을 확립해 점점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결국 독일은 스페인에 0 : 1로 패배하고 준우승에 그쳤다. 뢰프 감독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그 이후로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 시스템을 독일에 이식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의 모토는 1970년대 람바참바 스타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이번 월드컵 지역 예선에선 유럽에 총 13장의 출전권이 배정되었다. UEFA에 소속된 53개국이 출전해 9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 경기를 치르는데 8개 조는 6팀으로 나머지 1개 조는 5팀으로 구성된다. 그리하여 각 조 1위를 차지한 9개 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2위를 차지한 팀은 최하위 팀과의 전적을 제외한 조정승점으로 순위를 매겨 9위를 차지한 팀은 바로 탈락하고 나머지 8개 팀이 플레이오프를 치러 승리한 4팀이 본선에 직행한다. 독일은 러시아, 핀란드, 웨일스, 아제르바이잔,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4조에 속했다. 독일은 1차전 최약체 리히텐슈타인 원정 경기에서 가뿐하게 6 : 0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2차전 핀란드 원정 경기에선 미로슬라프 클로제해트트릭을 하는 맹활약을 하고도 시종일관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결국 3 : 3 충격적인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3차전 경기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와의 홈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도 독일은 악전고투 끝에 2 : 1 신승을 거두었다. 4차전 웨일스와의 홈 경기에서도 고작 1 : 0 승리를 거두는데 그쳤다. 하도 이 시기에 독일이 부진하자 선수들의 자신감이 바닥을 쳐서 결국 뢰프 감독은 점점 약팀과의 평가전을 잡게 되었고 급기야는 대학교 축구부 팀과 평가전을 치르기도 했다. 5차전 리히텐슈타인과의 홈 경기에서 독일은 4 : 0 승리를 거두었다. 6차전 웨일스 원정 경기에서도 2 : 0 승리를 거두며 점점 본 궤도에 올랐다.

6차전까지 4조의 순위는 독일이 5승 1무(승점 16점)로 1위, 러시아가 5승 1패(승점 15점)로 2위를 기록해 독일의 승점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뒤이어 웨일즈가 1경기 더 치러서 3승 4패(승점 12점)으로 3위, 핀란드가 3승 1무 2패(승점 10점)로 4위, 아제르바이잔이 1경기를 덜 치러서 1무 4패(승점 1점)으로 4위, 리히텐슈타인이 1무 5패(승점 1점)으로 최하위였다. 이 시점에서 리히텐슈타인은 남은 4경기를 모두 이겨도 이미 승점 15점을 기록한 러시아를 넘어설 수 없기에 결국 탈락이 확정되었다. 7차전 아제르바이잔 원정 경기에서 독일은 2 : 0 승리를 거두었고 이 시점에서 아제르바이잔은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도 역시 러시아의 승점을 넘을 수 없기에 탈락이 확정되었다. 8차전 아제르바이잔과의 홈 경기에선 4 : 0 대승을 거두었다. 이 때 조 2위 러시아도 리히텐슈타인과 웨일스를 각각 3 : 1, 3 : 0으로 꺾고 승점 6점을 추가해 계속해서 독일과 승점 경쟁을 이어갔다. 8차전까지 독일이 기록한 승점은 총 22점이었고 러시아는 총 21점을 기록해 두 팀의 승점 차이는 겨우 1점이었다.

사실상 9차전 독일 vs 러시아의 경기가 이 조의 본선 진출자를 가리는 경기인 셈이다. 이에 홈팀 러시아는 인조잔디 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꼼수를 부렸다. 하지만 독일에 약했던 거스 히딩크의 징크스는 러시아의 홈 어드밴티지보다 더 강력했다. 결국 독일이 러시아를 1 : 0으로 꺾고 승점 25점을 확보하여 러시아와의 승점 차를 4점으로 벌려 1경기를 남기고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10차전 핀란드와의 홈 경기에서도 독일은 1 : 1로 비겨 총 전적 8승 2무(승점 26점), 26득점 5실점의 성적으로 지역예선을 마무리했다. 2009년 연말에 열린 조 추첨에서 독일은 호주, 세르비아, 가나와 함께 죽음의 조인 D조에 속했다. 어려운 상대라기보다는 조금 까다로운 상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독일은 대회를 앞두고 2명의 주전 선수가 이탈하는 악재를 겪었다. 첫 번째 악재는 올리버 칸옌스 레만이 은퇴한 후 새로이 전차군단의 수문장으로 등극한 로베르트 엔케자살이었다. 엔케는 하나 뿐인 딸을 끔찍이 아꼈는데 안타깝게도 이 아이는 희귀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결국 엔케는 참척을 당하고 말았다. 참척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엔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 번째 악재는 캡틴 미하엘 발락의 부상이었다. 전차군단의 에이스이자 주장으로서 팀을 든든하게 이끌었던 미하엘 발락은 월드컵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 FA컵 경기 도중 케빈프린스 보아텡과 충돌해 큰 부상을 당하며 결국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독일은 이 악재로 생긴 두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19.1. 32강 조별리그 호주전 - 4 : 0 승[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D조 제2경기
2010년 6월 13일 20:30(UTC+2)

모지스 마비다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
주심: 마르코 로드리게스 (멕시코)
파일:독일 국기.svg
4 : 0
파일:호주 국기.svg
독일
호주
8′ 루카스 포돌스키
26′ 미로슬라프 클로제
68′ 토마스 뮐러
70′ 카카우
득점자
-
-
퇴장자
56′ 팀 케이힐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관중: 62,660명
Man of the Match: [[루카스 포돌스키|{{{#000000 루카스 포돌스키}}}]] (독일)

독일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아시아의 호주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1974 서독 월드컵 이후 36년 만의 일이었다. 36년 전, 서독 대표팀은 호주를 3 : 0으로 대파했다. 재밌는 건 그 때 호주는 동독 대표팀과도 맞붙었는데 동독 대표팀 역시 호주를 2 : 0으로 이겼다는 것이다. 당시 호주는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 소속이었고, 이번엔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옮겨서 출전했다. 이 경기는 호주가 아시아 소속으로서 출전한 첫 번째 경기였다. 독일은 이 경기 전까지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과 5번을 맞붙어 5전 전승을 기록한 바 있다.[44] 과연 아시아 팀 상대 전승 신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이 된다. 호주의 핌 베어벡 감독은 독일의 전력을 의식해 상당히 수비적인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는데 공격수를 아예 두지 않는 전술을 들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건 큰 패착으로 돌아왔다.

전반 3분에 호주가 코너킥 찬스에서 꽤 위협적인 공격 찬스를 얻었으나 아쉽게 득점에 실패했고, 그 이후로는 계속해서 독일의 일방적인 주도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전반 6분,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호주 진영으로 쇄도해 들어가 문전에서 오른발 슈팅을 날렸으나 마크 슈워처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세컨드 볼을 토마스 뮐러가 받아 중앙으로 짧게 크로스를 했고 이 볼을 메수트 외질이 왼발 슛을 날렸으나 빗맞으며 허공 위로 떠버렸다. 그리고 전반 8분, 호주 진영 우측을 쇄도하던 플레이메이커 외질이 페널티 박스로 침투한 뮐러를 보고 패스를 찔러넣었고 뮐러는 페널티 박스 우측 외곽에서 중앙의 클로제에게 볼을 건넸다. 그 때 호주 수비수 4명이 클로제를 에워싸면서 좌측 외곽에 있던 루카스 포돌스키가 노마크 상태였다. 그걸 본 클로제는 패스를 받지 않고 흘려주었고 포돌스키가 그 흐른 볼을 받아 논스톱 왼발 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내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1골을 실점한 호주도 라인을 올리고 역습에 나섰으나 결정적인 2차례 슈팅이 모두 허공을 가르며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그리고 전반 26분, 라이트백 필립 람이 우측을 오버래핑하며 치고 올라가 중원에서 길게 크로스를 올렸다. 문전에는 클로제와 슈워처 골키퍼가 1 : 1로 서 있었다. 슈워처 골키퍼가 높이 점프하여 선방하려 했으나 클로제가 한 발 먼저 헤더로 연결해 추가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2 : 0으로 벌렸다. 전반 30분엔 클로제가 절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뜨린 외질에게 킬패스를 건넸고 외질이 골키퍼와 1 : 1 찬스를 맞았다. 슈워처 골키퍼가 전진한 걸 보고 외질은 가볍게 찍어 차 골키퍼를 넘기는데는 성공했으나 골 라인을 넘기 직전에 호주 센터백 루카스 닐이 한 발 먼저 걷어내 골로 연결되진 않았다. 그렇게 전반전은 독일이 2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이 되자 호주도 반격에 나섰다. 베어벡 감독은 하프 타임 때 중앙 미드필더 빈스 그렐라를 빼고 공격수 브렛 홀먼을 투입했다. 후반 2분, 라이트백 루크 윌크셔가 우측에서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리처드 가르시아가 헤더로 연결했으나 그 볼이 독일 센터백 페어 메르테자커의 팔에 맞았다. 호주 선수들은 페널티킥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메르테자커의 팔은 몸쪽으로 붙어있었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주심은 경기를 그대로 속개했다. 이 때까지 비교적 호주는 2골 차로 밀리고 있어도 독일과 대등한 경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러나 후반 11분, 팀 케이힐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거친 백태클을 범했고 주심은 즉각 케이힐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호주는 결국 수적 열세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 때부터 경기는 완벽하게 독일의 일방적인 진행으로 이어졌다. 호주는 마크 슈워처 골키퍼의 몇 차례 결정적인 슈퍼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8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처럼 8점 차 대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호주는 간신히 추가 실점을 하지 않고 어렵게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후반 23분, 루카스 포돌스키토마스 뮐러가 원 투 패스를 주고 받으며 호주 진영으로 밀고 올라왔고 문전 외곽에서 포돌스키가 뮐러에게 패스했다. 뮐러가 문전으로 쇄도하자 호주의 레프트백 스콧 치퍼필드가 태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뮐러는 치퍼필드를 제치며 그대로 몸을 돌려 오른발 땅볼 슛을 날렸다. 이 슛은 슈워처 골키퍼의 손 끝을 지나 골대를 맞고 굴절되며 안으로 들어가 추가골이 되었다. 그리하여 스코어는 3 : 0으로 벌어졌다. 신예 토마스 뮐러는 자신의 월드컵 데뷔골을 월드컵 데뷔전에서 성공시켰다. 3골 차로 앞서자 요아힘 뢰프 감독은 클로제를 빼고 브라질에서 귀화한 선수인 카카우를 교체 투입해 체력 안배를 시켜주었다. 그리고 불과 2분 후, 외질이 호주의 좌측 진영을 쇄도해 들어가며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에서 중앙을 쇄도하는 카카우를 향해 패스를 했다. 이 때 호주 선수들의 커버 플레이가 늦어지면서 페널티 박스엔 루카스 닐과 칼 발레리 단 2명밖에 없었다. 카카우는 골키퍼와의 1 : 1 찬스에서 힘 들이지 않고 추가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4 : 0으로 벌렸다. 이로써 카카우 역시 본인의 월드컵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렸다.

4골 차로 벌어지자 뢰프 감독은 플레이메이커 외질도 불러들이고 공격수 마리오 고메스를 투입해 체력 안배를 시켜주었다. 호주 역시 같은 시각에 교체 카드 3장을 다 쓰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1명이 퇴장당하며 선수들이 한 발 더 뛰어야 하다 보니 체력이 소진되어 더 이상의 힘을 내지 못했다. 후반 36분엔 포돌스키마저 불러들이고 마르코 마린을 교체 투입해 역시 체력 안배를 시켜주었다. 호주는 후반 38분, 니키타 루카비차의 슛이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는 불운을 겪고 말았다. 이후 독일은 경기 템포를 조절하며 호주의 반격을 늦췄고 결국 경기는 독일의 4 : 0 대승으로 끝이 났다. 그리하여 독일은 2002 한일 월드컵 이래로 3개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 1차전에서 최소 4득점 이상을 기록한다는 좋은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또 이번 경기를 승리하면서 아시아 팀을 상대로 6전 전승을 기록하여 아시아 팀 상대 전승 신화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되었다. 반면, 호주는 이 경기 한 방으로 인해 골 득실 차가 -4까지 떨어져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야 하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19.2. 32강 조별리그 세르비아전 - 0 : 1 패[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D조 제3경기
2010년 6월 18일 13:30(UTC+2)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주심: 알베르토 운디아노 마옌코 (스페인)
파일:독일 국기.svg
0 : 1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독일
세르비아

득점자
38′ 밀란 요바노비치
37′ 미로슬라프 클로제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퇴장자
-
관중: 38,294명
Man of the Match: [[블라디미르 스토이코비치|{{{#000000 블라디미르 스토이코비치}}}]] (세르비아)

독일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동유럽의 세르비아였다. 두 팀은 월드컵에서 굉장히 자주 만난 사이인데 이번이 벌써 7번째 맞대결이었다. 이전의 맞대결에서 상호 전적은 독일이 4승 1무 1패로 우세에 있다. 독일은 세르비아에 1962 칠레 월드컵 8강전에서 0 : 1로 패배했던 걸 빼면 단 1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1차전에서 독일이 호주를 4 : 0으로 대파한데 반해 세르비아는 1차전에서 가나에 아사모아 기안페널티킥 한 방에 무너지며 0 : 1로 패배했다. 독일로서는 이 경기를 이기고 뒤이어 열리는 가나 VS 호주의 경기에서 호주가 이기지 않는 한 곧바로 16강 진출이 확정된다. 반면, 세르비아는 이 경기마저 패배하면 뒤이어 열리는 가나 VS 호주의 경기에서 호주가 이겨주지 않는 한 그대로 탈락이 확정된다. 객관적 전력과 1차전 경기를 고려하면 독일의 압도적인 우세가 점쳐진다. 그러나 공은 둥글다고 이런 예상이 꼭 반드시 적중하진 않았다.

독일의 요아힘 뢰프 감독은 1차전 선발 라인업 그대로 내보냈다. 반면, 세르비아는 4-4-2 포메이션을 썼던 가나전과 달리 오늘 경기는 4-1-4-1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또 선발 출전 선수도 3명이 바뀌었다. 그렇게 양 팀의 운명이 걸린 한판 승부가 펼쳐졌다. 경기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독일의 일방적인 주도로 펼쳐졌다. 독일은 경기를 원사이드로 지배하며 계속해서 세르비아를 몰아붙였고 금방이라도 골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것인지 문전에서 슛을 쏘기만 하면 족족 빗나갔다. 우세한 경기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좀처럼 세르비아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경기 중반을 넘어서자 서서히 독일 선수들의 플레이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전반 37분,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세르비아의 주장 데얀 스탄코비치를 무리한 태클로 쓰러뜨려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클로제는 이미 전반 12분에 경고를 받았기에 결국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했다.

독일에 점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분 후, 세르비아의 역습 찬스에서 자기 진영에 있던 네마냐 비디치가 밀로시 닌코비치에게 패스했다. 닌코비치는 우측을 쇄도하던 밀로스 크라시치에게 패스했다. 크라시치는 독일의 레프트백 홀거 바트슈투버의 마크도 이겨내고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그 크로스를 203cm의 장신 공격수 니콜라 지기치가 독일 센터백 페어 메르테자커와의 공중볼 경합에서 승리해 헤더로 떨구었고 지면에 맞고 튀어오른 볼을 밀란 요바노비치가 가슴으로 트래핑한 후 멋진 왼발 발리킥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 그리하여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세르비아가 1 : 0으로 앞서갔다. 독일로서는 클로제의 퇴장으로 인한 불운과 골을 넣어야 할 때 제 때 넣지 못해 쓴맛을 보게 된 것이다.

1골을 뒤진 독일도 가만 있지 않았다. 전반 종료 직전, 코너킥 찬스에서 메수트 외질이 페널티 박스 우측 외곽에 있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패스했고 슈바인슈타이거는 다시 외질에게 패스했다. 외질이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는데 그걸 한 발 먼저 세르비아 골키퍼 블라디미르 스토이치코프가 쳐냈다. 하지만 그 볼은 사미 케디라의 발 앞에 갔고 케디라가 슛을 날렸으나 크로스바를 맞추는데 그쳤다. 다시 볼은 그라운드 안으로 튕겨져 들어왔고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메르테자커가 공중볼을 따냈으며 그걸 토마스 뮐러가 바이시클 킥으로 연결했으나 골 라인을 넘기 직전에 골문에 붙어 서 있던 수비가 걷어냈다. 독일로서는 정말 골 운이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허탈한 순간이었다. 결국 전반전은 세르비아가 1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독일은 10명이 뛰고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날 정도로 계속해서 라인을 올리고 공격적으로 세르비아를 밀어붙였고 세르비아는 철저하게 선수비 후역습을 고수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이 날 경기에서 독일의 골 결정력은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다. 루카스 포돌스키는 수 차례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얻었으나 그걸 모조리 날려먹었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당시 독일이 지고 있는 경기를 하고 있었기에 그만큼 마음이 급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된 불운으로 득점 찬스를 날려먹던 독일은 마침내 세르비아의 센터백 네마냐 비디치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핸드볼 파울을 범해 페널티킥을 얻었다. 킥커는 포돌스키가 나섰다. 독일은 반드시 이 골을 성공시켜야 했다. 그러나 어찌 된 것인지 이 페널티킥마저도 스토이치코프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정말 이 날은 독일에 마가 꼈다 싶을 정도로 뭘 해도 안 되는 날이었다.

10명이 뛰는 독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쳐갔고 이후론 세르비아의 반격을 받아 추가 실점할 뻔한 상황을 여러 차례 맞이했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결국 경기는 세르비아의 1 : 0 승리로 돌아갔다. 요아힘 뢰프 감독은 물통을 집어던지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이로서 독일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덴마크에 0 : 2로 패배한 이후 24년 만에 조별리그에서 패배를 기록하고 말았다. 아울러 1962 칠레 월드컵 8강전에서 세르비아에 0 : 1로 패배한 후 48년 만에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뒤이어 열린 가나 VS 호주의 경기는 1 : 1 무승부로 끝나버리며 1승 1무(승점 4점)를 기록한 가나가 조 1위로 올라섰다. 1승 1패(승점 3점)에 그친 독일은 이제 탈락 위기에까지 몰렸다. 왜냐하면 독일의 3차전 상대는 가나인데 세르비아의 3차전 상대는 최약체인 호주이기 때문이다. 세르비아가 호주를 이기고 가나가 독일과 비겨버리면 독일은 그대로 탈락하고 만다. 이제 독일에 남은 선택지는 오로지 가나를 이기는 것 외엔 없다.


19.3. 32강 조별리그 가나전 - 1 : 0 승[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D조 제5-1경기
2010년 6월 23일 20:30(UTC+2)

사커 시티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주심: 카를루스 이우제니우 시몽 (브라질)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가나 국기.svg
독일
가나
60′ 메수트 외질
득점자
-
관중: 83,391명
Man of the Match: [[메수트 외질|{{{#000000 메수트 외질}}}]] (독일)

독일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아프리카의 신흥 맹주 가나였다. 두 팀은 월드컵에서 이번에 처음 만났다. 2차전까지 D조의 순위는 가나가 1승 1무(승점 4점)으로 1위였고 독일과 세르비아가 1승 1패(승점 3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독일이 +3, 세르비아가 0을 기록해 3골이 더 앞선 독일이 2위, 세르비아가 3위였으며 1무 1패(승점 1점)를 기록한 호주가 최하위에 있었다. 4팀 모두 산술적으로 16강 진출의 가능성이 있다. 3차전 결과에 따라 호주가 16강에 진출할 수도 있고 가나가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하여 이 조의 최종전인 가나 VS 독일의 경기와 호주 VS 세르비아의 경기는 모두 단두대 매치가 되었다. 16강에 자력 진출을 하기 위해선 독일은 반드시 가나를 이겨야만 한다. 그렇게 양 팀의 운명이 걸린 단두대 매치가 펼쳐졌다.

이 날 경기에서 독일은 선발 라인업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우선 원톱 스트라이커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지난 경기에서 퇴장을 당해 출전이 정지되었으므로 카카우가 대신 원톱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레프트백 자리엔 홀거 바트슈투버 대신 제롬 보아텡이 들어갔다. 한편, 가나 대표팀 중앙 미드필더로 케빈프린스 보아텡이 이 경기에 출전했는데 두 사람은 서로 이복형제 지간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가나 혈통이지만 독일 태생이었는데 형인 케빈프린스 보아텡은 가나 대표팀을 선택하여 가나 대표팀의 일원으로 월드컵에 출전했고 동생 제롬 보아텡은 독일 대표팀을 선택해 독일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한 것이다. 그러나 평소 둘 사이는 그다지 원만하진 않았는지 월드컵 무대에서의 형제 상봉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데면데면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은 2차전에서 당한 충격패의 여파가 아직 가시질 않았는지 이 날 경기에서도 다소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다. 클로제 대신 원톱으로 출전한 카카우는 쓸데없이 긴 드리블로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상대에 역습의 빌미를 제공했으며 메수트 외질은 환상적인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별개로 골 결정력이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경기 초반에 외질이 가나의 리처드 킹슨 골키퍼와 1 : 1 상황을 맞았으나 그 상황에서 골을 넣지 못했다. 오히려 가나의 코너킥 찬스에서 아사모아 기안에게 위협적인 헤더 슛을 허용하여 하마터면 선제골을 허용할 뻔하기까지 했다. 골문에 붙어 서 있던 필립 람의 육탄방어가 아니었으면 정말로 독일은 위험했다. 독일과 가나 모두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며 어려운 경기를 했다. 결국 전반전은 0 : 0으로 끝이 났다. 같은 시각 호주 VS 세르비아의 경기도 0 : 0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일진일퇴의 지루한 공방전만을 이어갔고 양 팀 모두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자꾸 놓치며 맥 빠진 경기를 했다. 그러던 중 후반 15분, 가나의 우측 진영에서 토마스 뮐러필립 람이 서로 패스를 주고 받으며 가나의 수비수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고 뮐러가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중앙에 있던 외질에게 패스했다. 외질은 문전 외곽에서 왼발 감아차기 중거리슛을 날렸고 그 슛이 멋진 궤적을 그리며 골문 좌측 상단을 출렁였다.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선제골이 터진 것이다. 그렇게 경기는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이제 급해진 건 가나였다.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탈락할 수도 있는 가나는 어떻게든 동점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올리며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2차전까지 고작 페널티킥 2골이 득점의 전부일 정도로 빈공이었던 가나는 이 경기에서도 한심한 골 결정력을 자랑하며 좀처럼 독일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한편, 넬스푸르트에서 열린 호주 VS 세르비아의 경기는 예상 외로 호주가 후반 24분과 후반 28분에 연달아 득점하여 2 : 0으로 앞서갔다. 이로 인해 실시간 순위는 독일이 2승 1패(승점 6점)로 1위, 가나와 호주가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동률이지만 골 득실에서 가나가 0, 호주가 -2가 되므로 가나가 2위, 호주가 3위가 되며 세르비아가 1승 2패(승점 3점)로 최하위가 된다. 이 소식이 전해졌는지 경기 막판에 두 팀은 서로 패스 연습으로 시간을 때우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경기는 독일의 1 : 0 승리로 끝이 나며 2승 1패를 기록한 독일이 조 1위를 차지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가나도 이 경기에서 졌지만 호주보다 득실 차에서 3골이 더 앞서 간신히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조 1위를 차지하면서 강호로서의 자신감을 지켰으며,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서 가나와 또 같은 조가 되었다.


19.4. 16강전 잉글랜드전 - 4 : 1 승[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16강 제3경기
2010년 6월 27일 16:00(UTC+2)

프리 스테이트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블룸폰테인)
주심: 호르헤 라리온다 (우루과이)
파일:독일 국기.svg
4 : 1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독일
잉글랜드
20′ 미로슬라프 클로제
32′ 루카스 포돌스키
67′, 70' 토마스 뮐러
득점자
37′ 매튜 업슨
관중: 40,510명
Man of the Match: [[토마스 뮐러|{{{#000000 토마스 뮐러}}}]] (독일)

독일의 16강전 상대는 바로 라이벌인 축구종가 잉글랜드였다. 이 둘 역시 월드컵에서 상당히 자주 만난 사이인데 이번이 벌써 5번째 만남이었다. 이전까지 월드컵에서 상호 전적은 1승 2무 1패로 초박빙 백중세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 2무 중 1번은 승부차기에서 독일이 이겼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독일의 근소 우세라고 보는 편이 맞다. 독일과 잉글랜드 둘 다 조별리그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독일은 1차전 상대 호주는 4 : 0으로 가볍게 격파했으나 2차전에서 세르비아에 0 : 1 충격패를 당했고 3차전에서도 가나를 상대로 고전 끝에 간신히 1 : 0 승리를 거두었다. 잉글랜드 역시 조별리그 1차전에선 로버트 그린 골키퍼의 기름손 때문에 미국을 상대로 어이없는 1 : 1 무승부를 기록했고 2차전에서도 알제리의 늪 축구에 정통으로 당하며 0 : 0으로 비겨 탈락 위기에 몰렸다가 3차전에서 슬로베니아를 간신히 1 : 0으로 꺾고 16강에 올랐다. 역사적 악연으로 얽힌 두 팀의 맞대결인만큼 이 경기에서 시원시원한 승리를 거두어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독일의 선발 라인업은 지난 가나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카우 대신에 다시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선발 출전한 것만 다를 뿐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잉글랜드 역시 지난 슬로베니아전과 비교해 선발 라인업에 큰 변동이 없었다. 단지 스티븐 제라드제임스 밀너의 자리가 바뀌었다는 것만 달랐다. 경기 초반엔 다소 지루한 탐색전이 오고 갔다. 몇 차례 슈팅이 오고 갔지만 두 팀 다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그러던 중 전반 20분,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의 골킥이 한 번에 길게 전방으로 날아갔고 원톱 스트라이커 클로제가 잉글랜드 센터백 존 테리와 매튜 업슨의 마크를 이겨내고 페널티 박스로 쇄도해 데이비드 제임스 골키퍼와 1 : 1 상황을 만들어냈고 그 때 미끄러지면서 오른발 슈팅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내 스코어를 1 : 0으로 벌렸다. 이로써 클로제는 본인의 월드컵 통산 12득점을 기록해 월드컵 통산 득점 4위에 올랐고 3위 쥐스트 퐁텐과 1골 차로 추격했다.[45]

1골 차로 앞서자 경기는 독일의 페이스로 흘러갔다. 전반 32분, 플레이메이커 메수트 외질이 잉글랜드 우측 진영에서 우측에 있던 클로제에게 패스했고 클로제는 전방으로 쇄도하는 토마스 뮐러를 향해 패스를 뿌렸다. 이 때 잉글랜드의 포백 라인이 너무 앞으로 전진해서 그대로 배후 공간을 내줬고 뮐러는 허허벌판이 된 잉글랜드의 배후 공간을 아무런 방해 없이 내달리며 페널티 박스로 진출했다. 뒤늦게 글렌 존슨이 토마스 뮐러를 마크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그 때문에 왼쪽에서 침투하는 루카스 포돌스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놓쳤다. 뮐러는 노마크 상태인 포돌스키에게 패스했고 포돌스키는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왼발 대각선 슈팅을 날려 추가골을 뽑아내 스코어를 2 : 0으로 벌렸다. 잉글랜드로서는 포백 라인의 느린 커버 플레이가 화를 부른 게 되었다.

2골 차로 벌어지자 잉글랜드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전반 37분, 코너킥 찬스에서 킥커 프랭크 램파드가 중앙으로 킥을 올리는 척하면서 옆에 있던 제임스 밀너에게 패스했고 밀너는 뒤의 스티븐 제라드에게 패스했다. 제라드는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길게 볼을 띄웠고 그걸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매튜 업슨이 헤더로 연결해 만회골을 터뜨려 다시 스코어를 2 : 1로 좁혔다. 그리고 1분 후, 잉글랜드의 역습 상황에서 센터서클에서 볼을 잡은 밀너가 전방의 저메인 데포에게 땅볼 패스를 넣었다. 그러나 데포가 볼을 잡기 전에 먼저 독일 센터백 아르네 프리드리히가 걷어냈다. 하지만 볼은 뒤이어 침투한 램파드의 발 앞에 갔고 램파드는 페널티 박스 정면 외곽에서 중거리슛을 날렸다. 램파드의 슛은 골 포스트를 맞힌 후 아래로 떨어져 골 라인 안쪽으로 떨어졌다. 잉글랜드의 동점골이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심 호르헤 라리온다는 잉글랜드의 득점 선언을 하지 않았고 노이어 골키퍼는 천연덕스럽게 볼을 잡아 노골인 척 멀리 킥을 날렸다. 잉글랜드로서는 심판의 오심 때문에 억울하게 1골을 도둑맞은 셈이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독일이 2 : 1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이 되자 잉글랜드는 어떻게든 동점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높이 올리고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잉글랜드 본인들의 허접한 골 결정력과 독일의 조직적인 수비에 막혀 좀처럼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좀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자 잉글랜드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밀너를 빼고 조 콜을 교체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그리고 후반 22분, 잉글랜드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그러나 램파드가 찬 킥은 독일 수비벽에 가로막혔고 가레스 배리가 세컨드볼을 따내려 했지만 제롬 보아텡이 걷어내며 순식간에 독일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볼을 잡은 토마스 뮐러가 그대로 전방으로 쇄도했고 반대편에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도 함께 쇄도하고 있었다. 슈바인슈타이거가 노마크인 것을 확인한 뮐러는 램파드의 마크를 피해 반대편으로 길게 패스했다. 슈바인슈타이거가 볼을 잡자 그의 주위로 애슐리 콜글렌 존슨, 존 테리까지 3명이 들러붙었고 그 때문에 다시 뮐러가 노마크 상태가 되었다.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슈바인슈타이거는 다시 오른쪽의 뮐러에게 패스했고 뮐러는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그대로 오른발 강슛을 날려 쐐기골을 뽑아내 스코어를 3 : 1로 벌렸다.

이제 시간이 겨우 20분 남짓 남은 시점에서 2골 차로 벌어진 이상 잉글랜드에 남은 선택지는 오로지 공격 뿐이었다. 그래서 계속 무리하게 "돌격, 앞으로!"를 하며 독일 진영으로 밀고 올라왔다. 그리고 후반 25분, 글렌 존슨이 우측에서 스로인 한 볼을 존 테리가 받아 조 콜에게 건넸다. 그런데 그만 조 콜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조 콜의 슛이 사미 케디라의 몸빵에 맞고 튕겨나와 버렸고 이 흐른 볼을 클로제가 받아 좌측에 노마크 상태로 있던 메수트 외질에게 패스했다. 외질은 허허벌판이 된 잉글랜드의 좌측 진영을 쇄도했고 반대편에서 토마스 뮐러도 함께 쇄도하고 있었다. 공격하느라 우르르 독일 진영에 몰려가 있던 잉글랜드 수비수들은 커버 플레이가 늦었고 애슐리 콜 혼자서 둘을 상대하기엔 너무도 버거웠다. 애슐리 콜이 외질에게 마크하러 가자 토마스 뮐러가 노마크 상태가 되었고 외질은 페널티 박스에서 뮐러에게 패스를 건넸다. 그리고 뮐러가 달려가면서 오른발 슛을 날려 스코어를 4 : 1로 벌렸다.

3골 차로 벌어지자 요아힘 뢰프 감독은 후반 27분에 클로제와 뮐러를 동시에 불러들이고 마리오 고메스피오트르 트로초프스키를 투입해 체력 안배를 시켜주었다. 한편, 잉글랜드의 카펠로 감독은 부진했던 저메인 데포를 불러들이고 에밀 헤스키를 교체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이미 경기는 감독의 손을 떠나 있었다. 후반 38분엔 뢰프 감독은 외질마저 불러들이고 슈테판 키슬링을 교체 투입해 여유를 부렸다. 카펠로 감독은 후반 42분에 수비수 글렌 존슨을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숀 라이트필립스를 투입해 계속 독일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지만 잉글랜드의 허접한 골 결정력은 독일의 촘촘한 수비망을 전혀 뚫지 못했다. 그리하여 경기는 독일의 4 : 1 대승으로 끝나며 독일이 8강 진출에 성공했고 잉글랜드는 탈락했다. 경기가 끝난 후 잉글랜드는 주심의 오심 때문에 억울하게 1골을 도둑맞은 것에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것만 제대로 인정되었으면 후에 경기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르헤 라리온다의 오심 하나로 덮기엔 이 경기에서 전체적으로 잉글랜드의 실력이 독일보다 많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과연 램파드의 동점골이 인정되었어도 잉글랜드가 이길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반면, 독일은 44년 전 제프 허스트의 날치기 골에 대한 인과응보라고 조롱했다. 허스트의 골과 램파드의 골은 장면 자체는 비슷했지만 전자는 골 라인을 넘지 않았는데 골로 선언하였고 후자는 골 라인을 넘었는데 골 선언을 안 했다는 게 다르다.


19.5. 8강전 아르헨티나전 - 4 : 0 승[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8강 제3경기
2010년 7월 3일 16:00(UTC+2)

그린 포인트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주심: 라브샨 이르마토프 (우즈베키스탄)
파일:독일 국기.svg
4 : 0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독일

아르헨티나

3′ 토마스 뮐러
68′, 89' 미로슬라프 클로제
74′ 아르네 프리드리히
득점자
-
관중: 64,100명
Man of the Match: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000000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독일)

독일의 8강전 상대는 아르헨티나였다. 이 둘 역시 월드컵에서 상당히 자주 만난 사이인데 이번이 벌써 6번째 맞대결이다. 두 팀의 월드컵 상호 전적은 2승 2무 1패로 독일이 근소하게 우세하다. 최근 월드컵 맞대결은 바로 지난 대회 8강전이었는데 그 때는 1 : 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독일이 4 : 2로 승리했다. 이번의 아르헨티나는 지난 대회에 비해선 전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 이유는 아르헨티나 팀 감독이 바로 희대의 졸장 디에고 마라도나였기 때문이다.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지역예선에서 고작 8승 4무 6패(승점 28점)의 전적으로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며 남미 지역예선 4위로 턱걸이 통과한 팀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평가전에서 독일은 홈에서 아르헨티나에 0 : 1로 패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마라도나 감독은 인터뷰 자리에 함께 나온 토마스 뮐러를 보고 "저 볼보이가 나가면 그 때 인터뷰를 하겠다."며 잔뜩 거만한 모습을 보였다.[46] 토마스 뮐러로선 자신을 볼보이 취급한 마라도나 감독에게 설욕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경기 전 예측으로는 아무리 아르헨티나가 예선에서 맛이 간 모습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강팀이며 독일 역시 그 못지 않은 강팀이니 쉽게 승부가 갈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는 영 딴 판이었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아르헨티나의 라이트백 니콜라스 오타멘디루카스 포돌스키에게 거친 파울을 범해 독일이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킥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문전으로 킥을 올렸고 그걸 신예 토마스 뮐러가 공의 궤적을 정확하게 쫓아가 헤더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그리하여 독일이 경기 시작 3분 만에 1 : 0으로 앞서갔다. 경기 초반에 일찌감치 실점하자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동점골을 넣기 위해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독일은 조직적인 수비로 아르헨티나의 맹공을 차단했다. 오히려 독일의 간헐적인 역습에 허를 찔리며 자꾸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다. 독일은 심리적으로 침착하고 여유로웠지만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조급증을 이기지 못하고 뭔가 자꾸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전반 35분, 선제골의 주인공 토마스 뮐러가 리오넬 메시와 볼 경합 도중 핸드볼 파울을 범한 게 라브샨 이르마토프 주심에게 적발되었고 그 때문에 경고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뮐러는 조별리그 가나전에서 경고를 1장 받았기 때문에 경고 누적이 되어 4강에 진출하더라도 경기에 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일로서는 불운한 순간이었다. 이후 이어진 아르헨티나의 프리킥 찬스에서 위치가 바로 문전 바깥이라 좋은 위치였으나 마음이 급했는지 무려 4명이나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려버려 곤살로 이과인의 동점골이 무효가 되었다. 독일 역시 포돌스키의 슛과 뮐러의 슛이 밖으로 나가는 불운을 겪으며 전반전은 그렇게 독일이 1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두 팀 모두 하프 타임 때 교체 카드를 쓰지 않고 선발 출전한 선수들 그대로 후반전에 내보냈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대체로 아르헨티나의 공세, 독일의 수세로 이어졌다. 하지만 앙헬 디 마리아의 슛도 곤살로 이과인의 슛도 모조리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며 계속해서 독일의 1 : 0 리드가 이어졌다. 그러던 후반 23분, 독일의 역습 상황에서 사미 케디라가 뮐러에게 패스했고 뮐러는 아르헨티나 센터백 마르틴 데미첼리스의 파울 때문에 넘어지는 와중에도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정확하게 패스했다. 볼을 받은 포돌스키는 페널티 박스로 침투해 들어가 아르헨티나 센터백 니콜라스 부르디소를 피해 중앙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패스했다. 이 패스를 끊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세르히오 로메로 골키퍼와 부르디소가 각각 손과 발을 뻗었으나 패스는 그대로 클로제에게 갔고 클로제는 볼을 한 번 튀긴 후 안전하게 밀어넣으며 스코어를 2 : 0으로 벌렸다. 그리하여 클로제는 월드컵 통산 13득점을 기록하여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과 타이 기록을 세웠고 득점왕 2위 게르트 뮐러의 기록을 1골 차로 추격했다.

2골 차로 벌어지자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 감독은 라이트백 오타멘디를 빼고 미드필더 하비에르 파스토레를 투입해 수비 숫자를 줄이고 공격 숫자를 늘렸다. 하지만 이건 그대로 패착으로 되돌아왔다. 한편, 요아힘 뢰프 감독은 후반 27분에 제롬 보아텡을 빼고 마르첼 얀센을 투입해 체력 안배를 시켜주었다. 그리고 2분 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아르헨티나 진영 좌측에서 볼을 잡아 문전으로 쇄도해 엔드라인에서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아르네 프리드리히를 보고 패스를 넣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가 가브리엘 에인세의 태클에 넘어지면서도 슛을 날려 쐐기골을 뽑아내 스코어를 3 : 0으로 벌렸다. 3골 차로 벌어지자 마라도나 감독은 그대로 멘탈이 터져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하기만 할 뿐 어떠한 변화를 주지 못했다. 아르헨티나는 후반 30분에 앙헬 디 마리아를 빼고 공격수 세르히오 아궤로를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늘렸으나 이 역시 패착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후반 32분, 뢰프 감독은 사미 케디라를 불러들여 체력 안배를 시키고 토니 크로스를 교체 투입했다. 교체 투입된 크로스는 뛴지 얼마 안 되어 유효슈팅 하나를 기록했으나 세르히오 로메로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뢰프 감독은 이만 하면 됐다는 듯 후반 39분, 경고를 받은 뮐러마저도 불러 들이고 피오트르 트로초프스키를 투입했다. 그리고 후반 44분, 독일의 역습 찬스에서 포돌스키가 함께 쇄도하던 좌측의 메수트 외질에게 패스했다. 그 때 아르헨티나 수비수들 시선은 전부 외질에게 쏠려 뒤에 있던 클로제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쳤다. 외질은 슬금슬금 페널티 박스로 침투하던 클로제를 보고 로빙 패스를 넣었고 그걸 클로제가 오른발 논스톱 발리슛으로 연결해 스코어를 4 : 0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하여 클로제는 월드컵 통산 14득점을 기록하여 게르트 뮐러와 타이 기록을 세웠고 1위 호나우두의 기록을 1골 차로 추격했다. 이 골이 터지자 클로제는 간만에 그의 전매특허 골 셀레브레이션인 공중제비 셀레브레이션을 선보였다. 경기 막판에 리오넬 메시가 날린 슈팅은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가 안전하게 선방했다.

그리하여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4 : 0으로 박살을 내버리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독일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3개 대회 연속으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아르헨티나는 이번에도 독일에 발목을 잡히며 또 다시 8강에서 짐을 싸야 했다.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에서 4점 차 대패를 한 것은 1974 서독 월드컵 때 네덜란드에 0 : 4 대패를 당한 후 무려 36년 만의 일이었다. 선수로선 레전드였으나 감독으로선 초짜였던 마라도나는 제대로 쓴맛을 보고야 말았다. 한편, 아르헨티나가 독일에 0 : 4로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본 라이벌 브라질은 굉장히 비웃고 조롱했다. 물론 브라질 역시 이 대회에서 8강에 그쳤지만 그들은 독일과 전력이 비슷한 네덜란드를 상대로 접전 끝에 1 : 2 석패를 했는데 아르헨티나는 독일에 힘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0 : 4로 대패했다고 비웃은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은 4년 후 홈에서 독일에 이 때의 아르헨티나보다 더 처참한 꼴을 당하고 말았다. 브라질로서는 결국 속담 그대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 되었다.


19.6. 4강전 스페인전 - 0 : 1 패[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4강 제2경기
2010년 7월 7일 20:30(UTC+2)

모지스 마비다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
주심: 커셔이 빅토르 (헝가리)
파일:독일 국기.svg
0 : 1
파일:스페인 국기.svg
독일
스페인

득점자
73′ 카를레스 푸욜
관중: 38,294명
Man of the Match: [[차비 에르난데스|{{{#000000 차비 에르난데스}}}]] (스페인)



독일의 4강전 상대는 무적함대 스페인이었다. 이 둘 역시 월드컵에서 상당히 자주 만난 팀인데 이번이 벌써 4번째 대결이었다. 양 팀의 월드컵 상호 전적은 2승 1무로 독일이 우세에 있다. 그러나 방심할 순 없는 것이 불과 2년 전 유로 2008 결승전에서 독일은 바로 이 스페인에 패배해 준우승에 그친 바 있었다. 티키타카 전술로 전성기에 오른 스페인은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에서의 모습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극단적인 수비벽을 세운 스위스에 0 : 1 충격패를 당했고 2차전에선 조 최약체 온두라스를 겨우 2 : 0으로밖에 못 이겼다. 3차전에선 칠레를 상대로 오심의 덕을 조금 봐서 2 : 1 신승을 거두고 16강에 올라왔다. 그리고 16강전에서 포르투갈을 고전 끝에 1 : 0으로 간신히 이기고 올라갔고 8강에서도 파라과이를 상대로 간신히 1 : 0 신승을 거두고 올라왔다. 마치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가 로베르토 바조의 힘으로 꾸역꾸역 올라갔듯이 이 대회의 스페인도 다비드 비야의 힘으로 꾸역꾸역 4강까지 올라온 것이다.

한편, 독일 역시 상황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바로 신예 공격형 미드필더 토마스 뮐러가 경고 누적으로 이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뮐러의 부재는 독일로선 정말 크나큰 손실이었다. 뮐러의 빈 자리를 피오트르 트로초프스키로 메우긴 했지만 잘 메워진 것인지는 경기를 치러봐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두 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독일은 파괴적인 공격력을 보였던 16강전, 8강전과 달리 이 경기에선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을 잡아냈던 스위스의 전술을 벤치마킹 해 다소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썼다. 그리하여 경기는 스페인이 주도하고 독일이 수비로 버틴 후 역습을 노리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스페인 역시 골 결정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볼 점유율과 슈팅 횟수에 비해선 정말 골을 터뜨리지 못했고 토마스 뮐러가 빠진 독일은 그 빈자리를 제대로 메우지 못하며 무기력하고 답답한 모습만을 보였다. 전반 종료 직전 메수트 외질이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스페인의 센터백 세르히오 라모스의 태클에 걸려 넘어졌으나 주심은 그냥 넘어감으로써 독일은 스페인에 페널티킥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전반전은 0 : 0으로 끝이 났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페인이 계속해서 볼을 점유하며 공격하고 독일은 소극적으로 내려앉아 수비를 한 후 역습을 노리는 작전을 취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빈약한 골 결정력은 좀처럼 독일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경기 내용만 보면 이미 3~4골 차로 벌어졌어도 할 말이 없는 경기였지만 이상하게 스페인은 좀처럼 독일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사비 알론소의 결정적인 두 차례 슈팅은 모두 골문을 외면했고 4강까지 하드캐리했던 다비드 비야의 슛도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슛도 모두 골문을 외면했다. 독일 역시 수비만 하지 않고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슛은 멀리 허공으로 날아갔다. 공격에 가담한 스페인 센터백 라모스가 마누엘 노이어와 1 : 1 찬스를 맞았으나 루카스 포돌스키의 마크로 간신히 실점을 막았다. 얼마 후 다비드 비야가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강슛을 날렸으나 역시 노이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요아힘 뢰프 감독은 후반 7분에 제롬 보아텡을 빼고 마르첼 얀센을 투입하고 후반 17분엔 피오트르 트로초프스키를 빼고 토니 크로스를 투입해 반전을 꾀했다. 독일의 역습 찬스에서 시도한 토니 크로스의 반 발짝 빠른 슈팅도 스페인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의 선방에 막혔다. 이렇게 계속 0 : 0 팽팽한 스코어가 이어졌다. 그리고 후반 28분, 스페인의 코너킥 찬스에서 킥커 차비 에르난데스가 띄운 킥을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카를레스 푸욜이 높이 솟구쳐 헤더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 73분 동안 잘 버텼던 독일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0 : 1로 끌려가게 되었다. 1골을 넣은 스페인은 기세가 올라 계속해서 추가골을 넣겠다고 공격을 퍼부었고 독일은 무기력하게 수비하기에만 급급했다. 뢰프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 사미 케디라를 빼고 공격수 마리오 고메스를 투입해 반전을 꾀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후반 막판까지 안 쓰고 아껴뒀던 교체 카드를 차례차례 쓰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결국 경기는 스페인의 1 : 0 승리로 돌아갔고 독일은 두 대회 연속으로 4강의 벽에 막히며 또 3위 결정전으로 가야 했다. 독일이 두 대회 연속으로 4강에서 패배를 기록한 건 이번이 사상 최초였다. 경기가 끝난 후 독일 내에선 뢰프 감독의 전술에 대한 비난이 끊이질 않았다. 스페인에 지나치게 쫄아서 소극적으로 내려앉아 있다가 실컷 두들겨 맞고 결국 패배했다는 것이었다. 토마스 뮐러의 부재가 더욱 아쉽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이란 없는 법이다. 지난 대회엔 이탈리아에 막혀 3위 결정전으로 가야 했는데 이번엔 스페인에 막혀 3위 결정전으로 가야 했다. 번번이 남유럽 국가들에게 덜미를 잡혀 우승에 실패한 뢰프 감독으로선 아마 남유럽 국가들에게 이가 갈릴 듯하다. 이번 대회에서 독일은 신예들의 성장을 확인하며 완벽한 세대교체를 이뤘지만 뭔가 2%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다음 대회를 기약하게 했다.


19.7. 3위 결정전 우루과이전 - 3 : 2 승[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3·4위전
2010년 7월 10일 20:30(UTC+2)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주심: 베니토 아르춘디아 (멕시코)
파일:독일 국기.svg
3 : 2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독일
우루과이
19′ 토마스 뮐러
56' 마르첼 얀센
82' 사미 케디라
득점자
28' 에딘손 카바니
51' 디에고 포를란
관중: 36,254명
Man of the Match: [[토마스 뮐러|{{{#000000 토마스 뮐러}}}]] (독일)

마지막 3위 결정전 상대는 남미의 우루과이였다. 이 팀 역시 독일이 월드컵에서 자주 만난 팀인데 이번이 벌써 4번째 맞대결이다. 양 팀의 상호 전적은 2승 1무로 독일이 우세에 있다. 하지만 지난 3경기는 모두 서독 대표팀 시절의 경기이고 독일이 통일되고 난 이후에 우루과이와 맞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루과이와의 마지막 월드컵 대결은 1986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이었는데 그 때는 1 : 1 무승부를 기록했다. 월드컵 초대 챔피언이었지만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4강을 차지한 이후 긴 세월 동안 암흑기를 걸었던 우루과이는 이번 대회에서 명장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의 지휘 아래 40년 만에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탄탄한 수비와 디에고 포를란 - 루이스 수아레스 - 에딘손 카바니 삼각편대의 빠른 역습이 장기인 팀이었다. 그래서 상당히 어려운 경기가 될 수 있었다.

승패의 의미가 없는 경기여서 그런지 요아힘 뢰프 감독은 그간 뛰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주었다. 골키퍼는 마누엘 노이어 대신 한스-외르그 부트가 출전했고 라이트백 필립 람 대신 제롬 보아텡이 그 자리에 들어가고 레프트백엔 데니스 아오고가 들어갔다. 그리고 레프트윙 루카스 포돌스키 대신 마르첼 얀센이 들어갔고 원톱 미로슬라프 클로제 대신 카카우가 들어갔다. 총 4명이 바뀐 것이다. 우루과이 역시 전 경기 네덜란드전과 비교해 선발 라인업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우선 가나전 신의 손 사건으로 퇴장 당해 결장한 루이스 수아레스가 복귀하며 다시 삼각편대가 구성되었고 알바로 페레이라가 벤치를 지켰다. 가나전에서 부상을 당해 네덜란드전을 결장한 주장 디에고 루가노 역시 복귀하였다. 루가노가 복귀하면서 네덜란드전에서 디에고 고딘과 함께 센터백을 봤던 마우리시오 빅토리노는 다시 벤치로 들어갔다. 네덜란드전과 비교해 총 3명이 바뀌었다.

경기를 치러보니 우루과이는 8강 상대 아르헨티나와는 질적으로 다른 팀이었다. 그들은 슈퍼스타는 거의 없지만 확실히 실속 있고 알찬 팀이었다. 그래서 초반 독일은 상당히 고전했다. 그러나 전반 19분, 사미 케디라가 센터서클 부근에서 디에고 포를란과 에히디오 아레발로의 마크를 이겨내고 좌측의 마르첼 얀센에게 패스했다. 얀센은 좌측 진영을 쇄도하다가 중원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노마크 상태인 걸 확인하고 그에게 패스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먼 거리에서 강력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우루과이 골키퍼 페르난도 무슬레라가 쳐냈다. 그러나 세컨드 볼을 토마스 뮐러가 재차 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내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이로써 토마스 뮐러는 처음 출전한 월드컵에서 5골을 기록하여 계속해서 득점왕 경쟁을 이어갔다. 우루과이 수비수들은 모두 오프사이드라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골키퍼의 선방 이후에 우루과이 수비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게 아쉬웠다.

하지만 우루과이도 마냥 무기력하게 물러서지만 않았다. 전반 28분, 우루과이의 중앙 미드필더 에히디오 아레발로가 센터서클에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태클을 가해 볼을 빼앗았다. 이 볼을 루이스 수아레스가 받아 독일 진영으로 쇄도했고 독일 수비수들의 커버 플레이가 늦어지면서 2 : 3으로 수적 열세에 몰렸다. 수아레스는 좌측의 에딘손 카바니가 노마크 상태인 걸 확인하고 카바니에게 패스했다. 카바니는 자신의 스피드로 독일 센터백 페어 메르테자커를 제치고 페널티 박스에서 넘어지면서도 오른발 슛을 날려 동점골을 뽑아냈다. 이로써 우루과이의 삼각편대 모두 골고루 1골씩 득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독일과 우루과이 모두 수비 집중력 부족으로 사이좋게 1골씩을 실점한 셈이 되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1 : 1로 팽팽한 균형을 이룬 채 끝이 났다.

후반전이 되자 우루과이가 초반부터 공격을 펼쳤다. 후반 6분, 중원에서 혼전 상황에서 원톱 스트라이커 카카우가 치명적인 패스 미스를 범했고 이 볼을 우루과이의 중앙 미드필더 에히디오 아레발로가 가로챘다. 아레발로는 자신의 피지컬과 스피드로 독일 수비수들을 제치며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짧은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이 볼을 디에고 포를란이 멋진 시저스 킥으로 마무리 하며 역전골을 뽑아냈다. 이로써 우루과이가 2 : 1로 앞서 나갔다. 이 대회에서 가장 자블라니를 완벽하게 소화한 남자란 찬사를 받은 포를란 역시 대회 5호골을 기록하여 득점왕 경쟁에 가세했다. 우루과이는 1970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소련을 1 : 0으로 이긴 후 40년 째 유럽 팀을 상대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는데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독일이 우루과이의 40년 만에 유럽 팀 첫 승 제물이 되고 만다.

1골을 뒤지게 된 독일은 다시 반격에 나섰고 불과 5분 후, 센터백 페어 메르테자커가 라이트백 제롬 보아텡에게 패스했고 보아텡이 얼리 크로스를 올려 전방으로 볼을 띄웠다. 그리고 이걸 마르첼 얀센이 헤더 슛으로 마무리하여 동점골을 뽑아냈다. 다시 승부는 2 : 2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가자 독일과 우루과이 양 팀 모두 치열하게 치고받았다. 요아힘 뢰프 감독은 후반 28분, 부진했던 원톱 카카우를 빼고 슈테판 키슬링을 교체 투입했다. 한편, 우루과이의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도 후반 32분, 경고를 받은 미드필더 디에고 페레스를 빼고 왈테르 가르가노를 교체 투입했다. 뢰프 감독은 후반 36분, 얀센도 빼고 토니 크로스를 교체 투입했다. 이렇게 양 팀의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후반 37분, 독일이 코너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 메수트 외질이 띄운 킥은 공격에 가담했던 센터백 아르네 프리드리히의 몸에 맞고 튕겨나갔다. 그런데 이 때 우루과이의 주장 디에고 루가노가 치명적인 볼 터치 미스를 범해 볼이 높이 튀어 올랐다. 이 볼을 사미 케디라가 헤더로 연결해 재역전골을 뽑아냈다. 스코어는 3 : 2로 독일이 다시 앞서갔다.

우루과이는 후반 43분, 카바니를 빼고 193cm의 백전노장 장신 스트라이커 세바스티안 아브레우를 교체 투입해 우당탕탕 한 방을 노렸다. 뢰프 감독은 추가시간에 외질을 빼고 터키계 수비수 세르다르 타스치를 교체 투입해 시간을 끌었다. 후반 종료 직전, 우루과이가 페널티 박스 정면 외곽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이제 추가시간도 다 끝난 상황이라 사실상 이게 마지막 공격 찬스였다. 킥커는 자블라니 마스터 디에고 포를란이 나섰다. 포를란의 킥은 정확한 궤적을 그리며 힘차게 골문으로 날아갔지만 아쉽게도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말았다. 프리킥이 실패로 돌아간 후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며 결국 경기는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는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 끝에 독일이 우루과이를 3 : 2로 꺾고 2개 대회 연속으로 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40년 만에 4강에 진출하며 암흑기 탈출을 선포한 우루과이는 아쉽게도 4위에 그쳤다. 우승을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신예들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대회였다.


20.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완벽한 세대교체를 통해 미래 세대의 성장을 확인했지만 아쉽게 두 대회 연속 4강에 그친 독일은 다시 요아힘 뢰프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겨 다음 대회를 준비했다. 월드컵이 끝난 후 치른 첫 국제대회인 유로 2012에서 독일은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그 대회에서 독일은 네덜란드, 포르투갈, 덴마크라는 만만찮은 상대들과 함께 죽음의 조인 B조에 속했다. 그러나 독일은 전혀 개의치 않고 1차전에서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을 1 : 0으로 이긴 뒤 네덜란드와 덴마크를 각각 2 : 1로 격파하며 3전 전승으로 아예 청소를 해버리고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그래서 독일의 우승 확률이 더 높아졌다. 이후 8강전에선 그리스를 상대로 아예 2진을 투입하는 여유를 부리고도 4 : 2 완승을 거두어 4전 전승으로 4강까지 올랐다.

4강 상대는 천적 이탈리아였다. 독일은 국제대회에서 유독 이탈리아만 만나면 작아지는 아주리 징크스를 앓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은 2년 전 월드컵에서 4강까지 올랐으며 이번 대회에서도 전승가도를 달리며 온 반면 이탈리아는 2년 전 월드컵에서 졸전 끝에 2무 1패라는 사상 최악의 성적으로 탈락했고 이번 대회에서도 스페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8강에 오른데다 8강에서도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며 진을 다 빼고 겨우 올라왔다. 그래서 이번만은 독일이 승리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를 치르자 독일은 전반 20분과 36분에 잇달아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실점하며 0 : 2로 끌려갔다. 그런데다 토마스 뮐러 대신 출전한 토니 크로스는 탐욕의 끝판왕을 보이며 안 풀리는 경기를 더욱 안 풀리게 했다. 결국 독일은 종료 직전 메수트 외질페널티킥 골로 간신히 1골을 만회해 1 : 2로 패배하며 또 다시 이탈리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우승에 실패했다.

독일은 여전히 뭔가 2%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다시 월드컵을 향한 대장정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도 유럽은 총 13장의 출전권을 부여받았다. UEFA 소속 53개국을 9개 조로 나누는데 8개 조는 6팀, 1개 조는 5팀으로 구성해 조별리그를 치른다. 각 조 1위를 한 9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조 2위 팀은 각 조 최하위 팀과의 전적을 제외한 조정 승점으로 순위를 매겨 최하위를 한 1팀은 탈락하고 나머지 8팀은 플레이오프를 치러 승리한 4팀이 본선에 오른다. 독일은 스웨덴,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카자흐스탄, 페로 제도와 함께 C조에 속했다. 사실상 스웨덴 외에 대항마가 없는 조였다. 독일은 1차전 최약체 페로 제도와의 홈 경기에서 3 : 0 승리를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뒤이어 2차전 오스트리아 원정 경기 역시 2 : 1 승리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약체들을 상대로 조금 고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우려를 보였다. 그러나 3차전 아일랜드 원정 경기에서 6 : 1 대승을 거두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4차전 경기는 사실상 순위 결정전인 스웨덴과의 홈 경기였다. 홈 관중의 압도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독일은 전반 8분과 15분에 터진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멀티골과 38분에 터진 페어 메르테자커의 골, 후반 11분에 터진 메수트 외질의 골을 묶어 4 : 0으로 크게 앞서갔다. 이렇게 독일은 이 조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스웨덴마저도 압도적인 힘으로 박살내며 잘했다. 후반 15분까지는. 그 시간을 넘어서자 독일 선수들은 승리에 도취했는지 조직력이 흐트러졌다. 그 틈을 스웨덴이 놓치지 않고 대반격에 나섰다. 후반 17분에 터진 스웨덴 주장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만회골을 시작으로 남은 30분 동안 대반격에 나선 스웨덴은 독일에 자신들이 먹은 4골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리하여 경기는 4 : 4 무승부로 끝나버렸다. 이 때문에 뢰프 감독과 선수들 모두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정신 상태가 해이해졌다고 질타를 한 것이다. 이 경기 무승부로 인해 독일은 전승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5차전 카자흐스탄 원정 경기는 3 : 0 승리로 끝내며 한숨을 돌렸다. 6차전 카자흐스탄과의 홈 경기 역시 4 : 1로 승리했다. 이 시점에서 C조의 순위는 독일이 5승 1무(승점 16점)로 1위, 스웨덴과 아일랜드, 오스트리아가 3승 2무 1패(승점 11점)로 동률을 이루고 있었으나 골 득실에서 스웨덴이 +4, 아일랜드가 +2, 오스트리아가 +10을 기록해 오스트리아가 2위, 스웨덴이 3위, 아일랜드가 4위를 기록했다. 뒤이어 카자흐스탄이 1무 5패(승점 1점)로 5위, 페로 제도가 6전 전패(승점 0점)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카자흐스탄과 페로 제도는 남은 4경기를 다 이겨도 본선에 직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둘의 전력을 고려할 때 남은 4경기를 다 이긴다는 보장도 없기에 사실상 탈락이나 다름 없었다.

독일은 7차전 오스트리아와의 홈 경기를 3 : 0으로 승리하며 승점 3점을 추가해 19점으로 올렸다. 그리고 스웨덴이 아일랜드를 2 : 1로 이기며 승점을 14점으로 올렸다. 같은 날 카자흐스탄이 페로 제도를 2 : 1로 이겨 페로 제도의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역시 3경기 남은 시점에서 2위 스웨덴과 승점이 10점 차가 났기에 결국 탈락이 확정되었다. 8차전 페로 제도 원정 경기에서도 독일은 3 : 0으로 가볍게 승리하며 승점이 22점이 되었고 스웨덴 역시 카자흐스탄 원정 경기를 1 : 0으로 이겨 승점이 17점이 되었다. 한편 오스트리아 VS 아일랜드의 경기는 오스트리아가 1 : 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2팀 모두 남은 2경기를 다 이겨도 이미 승점 22점을 확보한 1위 독일을 넘어설 수 없기에 본선 직행이 불가능해졌다.

8차전까지 1위 독일과 2위 스웨덴의 승점 차가 5점이었기 때문에 독일로서는 9차전 아일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다른 경기 결과에 관계 없이 본선 진출이 확정된다. 독일은 아일랜드를 3 : 0으로 이기며 승점 25점을 확보해 남은 경기에 관계 없이 조 1위를 확정해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아일랜드는 이 경기에서 패배하며 탈락이 확정되었다. 스웨덴은 오스트리아를 홈에서 2 : 1로 이겼고 오스트리아 역시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스웨덴은 독일과의 승점 차를 좁히는데 실패해 본선 직행이 좌절되었다. 독일은 마지막 스웨덴 원정 경기에서 5 : 3 완승을 거두어 유종의 미를 거둠과 동시에 지난 홈 경기의 수모를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서 독일은 지역 예선을 9승 1무(승점 28점), 36득점 10실점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조 추첨에서 독일은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 북중미의 양대 산맥 미국, 아프리카 최강팀인 가나와 함께 죽음의 조인 G조에 속했다. 독일 입장에서도 어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조였다. 특히 미국 감독은 전임 사령탑이었던 위르겐 클린스만이었다. 뢰프 감독으로서는 수석코치 시절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을 이젠 적장으로 만난 것이다. 1990년 동, 서독이 통일된 이후 준우승 1회, 3위 2회, 8강 2회에 그친 독일은 이번에야말로 통일 이후 첫 우승을 하겠다는 각오로 결전의 땅 브라질로 향했다.


20.1. 32강 조별리그 포르투갈전 - 4 : 0 승[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G조 1경기
2014. 06. 16.(월) 13:00(UTC-3)

아레나 폰치 노바 (브라질, 살바도르)
주심: [[밀로라드 마지치|{{{#000000 밀로라드 마지치}}}]] (세르비아)
파일:독일 국기.svg
4 : 0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독일
포르투갈
12'(PK), 45+1', 78' 토마스 뮐러
32' 마츠 후멜스
득점자
-
-
퇴장자
37′ 페페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Man of the Match: 토마스 뮐러(독일)
관중 : 51,081명

독일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포르투갈이었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 였다. 8년 전 2006 독일 월드컵 3위 결정전에서 처음 만났을 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맹활약에 힘입어 독일이 포르투갈을 3 : 1로 격파한 바 있다. 유로 2000에서 세르지우 콘세이상에게 해트트릭을 당하며 0 : 3 충격패를 당했을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독일이 매번 포르투갈을 상대로 우세한 모습을 보였기에 독일의 근소한 우세가 예상되었다. 불과 2년 전 유로 2012에서도 독일은 포르투갈을 1 : 0으로 제압했다. 점수만 1 : 0이었지 전체적인 경기 내용은 독일이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갈도 그리 만만한 팀은 아니기에 독일이 근소한 점수 차로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독일이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포르투갈을 몰아붙였다. 전반 12분, 플레이메이커 메수트 외질의 킬패스를 받은 마리오 괴체가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하자 포르투갈의 라이트백 주앙 페레이라가 잡아 쓰러뜨렸다. 주심 밀로라드 마지치는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킥커로 나선 토마스 뮐러가 정확하게 골문 왼쪽 구석으로 차 넣으며 독일이 이른 시간에 1 : 0으로 앞서갔다. 포르투갈도 반격에 나섰지만 나니의 슈팅이 허공을 가르는 등 골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이 계속해서 점유율 축구로 점유율을 높여가며 포르투갈을 질식시켰다. 그리고 전반 32분, 독일의 코너킥 찬스에서 킥커 토니 크로스가 올린 킥을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마츠 후멜스가 정확하게 헤더로 연결하면서 추가골을 터뜨려 스코어는 2 : 0으로 벌어졌다. 경기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밀리자 포르투갈 선수들의 멘탈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전반 37분, 토마스 뮐러가 전방에서 볼 경합을 하던 중 페페가 얼굴을 쳐서 쓰러뜨렸는데 뮐러가 살짝 오버하면서 넘어졌다. 그런데 화를 참지 못한 페페가 그대로 뮐러의 머리에 고의로 박치기를 하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주심인 밀로라드 마지치는 즉시 페페에게 퇴장을 명령했고 포르투갈은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수적 열세까지 짊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사실상 오늘 경기의 분수령이었다. 페페가 퇴장당하면서 경기는 급격하게 독일 쪽으로 기울었다. 전반 45분, 토니 크로스가 골문 밖 30m 지점에서 페널티 박스에 있던 토마스 뮐러에게 패스를 넣었고 뮐러는 왼발로 볼을 한 번 받은 뒤 곧바로 슛을 날려 스코어를 3 : 0으로 벌렸다. 수비의 중심인 페페가 퇴장을 당하자 포르투갈의 수비는 정말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다. 뮐러의 이 골도 수비가 제대로 마크를 하지 못해서 벌어진 것이었다. 경기 전 예측과는 달리 독일의 일방적인 흐름으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독일의 3 : 0 리드로 끝이 났다.

후반전이 되자 독일은 경기 템포를 조절하면서도 절대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 수비수들의 집중 마크에 포르투갈의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제대로 된 공격 찬스 한 번 잡아보지 못했다. 포르투갈의 파울루 벤투 감독은 경기 흐름을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추가 실점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교체 카드를 수비를 보강하는 쪽으로 썼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포르투갈은 한동안 추가 실점을 하지 않고 버텨냈다. 독일의 요아힘 뢰프는 3골 차 리드에 만족했는지 주전 선수들 체력 안배를 시켜줬다. 후반 18분에 메수트 외질을 빼고 안드레 쉬얼레를 투입했고 후반 28분엔 센터백 마츠 후멜스까지 빼고 슈코드란 무스타피를 투입했다. 그리고 후반 33분, 교체 투입된 쉬얼레가 포르투갈의 우측 진영을 쇄도해 들어가 페널티 박스에서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이 크로스를 포르투갈 골키퍼 후이 파트리시우가 쳐냈으나 볼이 불행히도 빈 공간으로 침투한 토마스 뮐러의 발 앞으로 가버렸고 뮐러가 곧바로 툭 차 넣으며 스코어를 4 : 0으로 벌렸다. 이로써 뮐러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후반 37분에 뢰프 감독은 토마스 뮐러를 불러들여 체력 안배를 시키고 루카스 포돌스키를 교체 투입했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한 것인지 남은 시간 동안 변변한 공격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경기는 독일의 4 : 0 대승으로 끝이 났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 이 경기장에서 같은 이베리아 반도 국가인 스페인이 네덜란드에 1 : 5 대패를 당하는 이른바 폰치노바 쇼크를 당했는데 포르투갈 역시 독일에 0 : 4 대패를 당한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 국가 두 나라 모두 게르만족 국가들에게 4점 차 패배를 당하였으니 폰치노바 경기장은 가히 이베리아 반도 국가의 무덤이라 할 만한 곳이 되었다. 이 날 대승으로 독일은 단숨에 조 1위로 올라갔고 포르투갈은 순식간에 탈락 위기로 몰려버렸다. 이 경기 한 방으로 골 득실이 -4까지 떨어졌기에 포르투갈로서는 반드시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야만 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


20.2. 32강 조별리그 가나전 - 2 : 2 무[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G조 3경기
2014. 06. 21.(토) 16:00(UTC-3)

카스텔랑 (브라질, 포르탈레자)
주심: 산드로 리치 (브라질)
파일:독일 국기.svg
2 : 2
파일:가나 국기.svg
독일
가나
51' 마리오 괴체
71' 미로슬라프 클로제
득점자
54' 안드레 아이유
63' 아사모아 기안
Man Of the Match: [[마리오 괴체|{{{#000000 마리오 괴체}}}]] (독일)
관중 : 59,621명

독일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아프리카의 신흥 맹주 가나였다. 4년 전에도 두 팀은 같은 조에 편성되었는데 그 때는 메수트 외질의 결승골에 힘입어 독일이 1 : 0으로 승리했다. 독일이 이 경기를 승리하면 다음 날 포르투갈이 미국을 이기지만 않는다면 곧바로 16강 진출이 확정된다. 한편, 가나는 1차전에서 미국에 1 : 2 패배했기 때문에 이 경기마저 진다면 다음 날에 포르투갈이 미국을 이겨줘야만 16강 진출의 길이 열리게 되며, 만일 포르투갈이 미국에 비기거나 패배할 경우 곧바로 탈락 확정이다. 그렇게 양 팀의 운명이 걸린 경기가 벌어졌다.

전반전에 독일은 토마스 뮐러 제로톱으로 경기에 나섰고 양쪽 날개로 마리오 괴체메수트 외질이 나서 이 삼각편대로 가나를 공략했다. 이 경기에서 독일은 그 두터운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약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 약점을 읽은 가나는 철저하게 독일의 공격을 봉쇄하였고 점유율을 내주는 대신 효율적인 속공으로 독일을 괴롭혔다. 뮐러나 괴체, 외질 모두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이 아닌데다가 스트라이커가 아니었기에 떡대들로 도배된 가나의 수비진을 전혀 부수지 못했다. 상대 수비를 부술 말 그대로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게 뚜렷하게 보였다. 그 때문에 독일은 좀처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전반전을 0 : 0으로 마쳤다.

하프 타임 때 독일의 요아힘 뢰프 감독은 라이트백 동생 제롬 보아텡을 빼고 슈코드란 무스타피를 투입해 계속해서 포터백 전술을 유지했다. 그리고 후반 6분, 토마스 뮐러가 가나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문전으로 침투한 마리오 괴체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괴체는 헤더를 시도했으나 제대로 되질 않아 머리를 맞고 떨어진 볼이 다시 왼쪽 무릎에 맞으며 조금 우스꽝스럽게 골이 들어갔다. 그렇게 예상대로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고전했지만 선제골을 넣었기에 경기가 다시 순조롭게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 탈락을 하게 될지 모르는 가나도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가나는 후반 7분, 미드필더 케빈프린스 보아텡을 빼고 공격수 조르당 아예우를 교체 투입하며 맞불을 놓았다. 그리고 후반 9분, 가나의 공격 상황에서 크리스티안 아츠가 전방의 아사모아 기안을 향해 패스를 시도했으나 센터백 페어 메르테자커가 걷어냈다. 그 흐른 볼은 아츠를 지나 설리 알리 문타리에게 갔다. 문타리는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에 오버래핑 해있던 라이트백 해리슨 애풀이 노마크인 걸 보고 패스했다. 애풀은 얼리 크로스를 올렸고 그걸 아예우가 헤더로 골을 넣으며 스코어를 다시 1 : 1 원점으로 돌렸다. 레프트백 베네딕트 회베데스의 늦은 대처가 아쉬웠다.

그리고 후반 18분, 가나의 역습 상황에서 문타리가 절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고 배후 공간으로 침투한 기안을 보고 패스를 넣었다. 패스를 받은 기안은 페널티 박스로 쇄도하여 오른발 강슛을 날려 역전골을 뽑아내며 2 : 1로 앞서갔다. 뢰프 감독이 포백 라인을 모두 센터백 선수들로 꾸린 이른바 포터백 전술의 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센터백들이라 주력이 조금 달리면서 가나의 속공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제 급해진 건 독일이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다음 경기서 미국을 이겨도 16강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결국 뢰프 감독은 후반 24분에 괴체를 빼고 백전노장 스트라이커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투입했고 1분 후엔 사미 케디라도 빼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까지 투입했다.

그리고 1분 후, 독일의 코너킥 찬스에서 킥커 토니 크로스가 찬 볼을 클로제가 잽싸게 오른발로 밀어넣어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로서 클로제는 월드컵에서 총 15골을 득점해 브라질의 호나우두와 함께 월드컵 최다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게 되었다. 이후 독일과 가나는 계속해서 공방전을 이어갔지만 득점은 없었고 결국 경기는 2 : 2 무승부를 기록했다. 다음 날에 열린 미국 VS 포르투갈 경기도 2 : 2 무승부에 그쳤다. 그리하여 4팀 모두 16강 진출 가능성이 산술적으론 존재했다. 결국 어느 팀도 16강 진출을 확정짓지 못했고 탈락이 확정된 팀도 없는 가히 죽음의 조다운 결과였다.


20.3. 32강 조별리그 미국전 - 1 : 0 승[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G조 5-1경기
2014. 06. 26.(목) 13:00(UTC-3)

아레나 페르남부쿠 (브라질, 헤시피)
주심: 라브샨 이르마토프 (우즈베키스탄)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미국 국기.svg
독일
미국
55' 토마스 뮐러
득점자
-
Man Of the Match: [[토마스 뮐러|{{{#000000 토마스 뮐러}}}]] (독일)
관중 : 41,876명

독일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북중미의 미국이었다. 이 경기를 앞두고 미국은 1차전에서 가나를 2 : 1로 이기며 3번째 맞대결만에 첫 승을 거둔 뒤 2차전에서 포르투갈과 2 : 2 무승부를 기록해 1승 1무(승점 4점)로 독일과 승점은 같으나 골 득실이 +1이라 +4를 기록한 독일에 밀려 조 2위에 있었다. 독일과 미국으로선 이 경기에서 서로 비기기만 해도 나란히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둘이 비기면 독일과 미국은 나란히 승점 5점으로 올라가지만 포르투갈과 가나는 누가 이기든 승점이 4점까지밖에 못 올리기 때문이다. 마침 미국 대표팀 감독은 전임 독일 대표팀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린스만이었다. 그러나 요아힘 뢰프 감독은 미국을 봐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독일은 볼 점유율을 높이며 사정없이 미국을 몰아붙였다. 미국은 극단적인 수비로 일관하며 독일의 공세를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도 독일의 약점인 '스트라이커 부재'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날 경기에서 뢰프 감독은 또 토마스 뮐러 제로톱 카드를 꺼냈는데 뮐러는 스트라이커가 아니었고 공간연주자란 별명답게 공간을 창출하는 게 장기인 선수였다. 그런 유형의 선수라서 극단적인 수비를 하는 팀을 상대로는 좀처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뢰프 감독에게 "펩 과르디올라 좀 그만 따라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거기다 빌드업 능력이 좋은 필립 람을 자꾸 본 포지션인 라이트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려고 하면서 포백 라인을 전부 센터백 출신들로 꾸리다보니 오버래핑이 전혀 살아나지 못했다. 특히 레프트백으로 나선 베네딕트 회베데스의 발이 너무 느려서 양쪽 날개가 다 펴지질 않았다.

그 때문에 80%에 가까운 볼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골문을 열지 못한 채 답답하게 전반전을 0 : 0으로 마쳤다. 한편, 같은 시각 가나를 반드시 5점 차 이상으로 이기고 동시에 독일이 미국을 이겨줘야만 16강에 올라가는 포르투갈은 가나를 상대로 상대 자책골로 간신히 1 : 0으로 앞서는데 그쳤다. 실시간 순위에서 독일과 미국은 1승 2무(승점 5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앞선 독일이 1위, 미국이 2위를 기록했고 1승 1무 1패(승점 4점)에 그친 포르투갈은 3위에 있었다. 1무 2패(승점 1점)인 가나는 조 최하위였다. 하프 타임 때 뢰프 감독은 루카스 포돌스키를 빼고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교체 투입했다. 클로제가 투입되자 서서히 경기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후반 10분, 독일의 코너킥 찬스에서 킥커 메수트 외질이 공을 띄우는 척하면서 클로제에게 패스했다. 클로제는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볼을 받아 다시 외질에게 패스했다. 외질이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그 볼을 공격 가담한 센터백 페어 메르테자커가 헤더로 연결했으나 미국 수문장 팀 하워드 골키퍼가 펀칭으로 쳐냈다. 그러나 볼은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 있던 토마스 뮐러의 발 앞으로 왔고 뮐러는 곧바로 중거리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 드디어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이 대회 4호골을 기록한 뮐러는 브라질의 네이마르,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콜롬비아의 하메스 로드리게스 등과 함께 계속해서 득점왕 경쟁을 이어가게 되었다.

오랫동안 수비로 일관하던 미국도 이제 더 이상 수비만 할 수 없었다. 미국도 클린트 뎀프시를 중심으로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독일의 수문장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인 마누엘 노이어였다. 노이어는 넓은 수비 범위를 과시하며 미국의 반격을 모조리 꺾어버렸다. 그렇게 경기는 독일의 1 : 0 승리로 끝이 났다. 이로서 독일은 2승 1무(승점 7점), 7득점 2실점을 기록해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미국 역시 이 경기에서 패배해 포르투갈과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포르투갈이 가나를 2 : 1로 이기는데 그쳐 골 득실에서 3골이 더 앞서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결국 G조는 독일인 감독이 이끄는 두 팀[47]만 살아남은 셈이 되었다.


20.4. 16강전 알제리전 - 2 : 1 승[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6강 6경기
2014. 06. 30.(월) 17:00(UTC-3)

이스타지우 베이라 히우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주심: 산드로 리치 (브라질)
관중: 43,063명

파일:Germany DFB 2014.png

2 : 1
파일:Algeria_NFT_(logo).png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92′ 안드레 쉬를레
120′ 메수트 외질
파일:득점 아이콘.svg
120+1′ 압델무멘 자부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라이스 음볼리 (알제리)
독일의 16강전 상대는 H조 2위를 차지한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였다. 독일과 알제리는 32년 전인 1982 스페인 월드컵 당시 발생했던 이른바 히혼의 수치 사건이란 악연으로 얽힌 팀이었다. 서독과 오스트리아 두 게르만족 형제국들이 스코어가 딱 1 : 0이 되도록 조작하여 알제리는 2승 1패를 기록하고도 억울하게 탈락한 바 있었다. 독일과의 리턴 매치가 성사되자 당연히 알제리는 32년 전의 빚을 갚겠다고 잔뜩 별렀다. 이에 요아힘 뢰프 감독은 "왜 우리 선수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로 소란스럽게 하느냐?"고 거칠게 화를 냈다. 이런 역사적 악연 때문에 두 팀의 경기는 시작 전부터 격렬하게 불 타올랐다.

이 경기에서도 뢰프 감독의 전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포터백 전술과 토마스 뮐러 제로톱 전술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다만 센터백 마츠 후멜스가 감기 몸살에 걸려서 후멜스에 밀려 여태껏 라이트백을 보던 제롬 보아텡을 원래 포지션인 중앙으로 옮기고 슈코드란 무스타피를 선발 출전시켰다. 상대에 따라 맞춤형 전술을 짜는 것으로 유명한 알제리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쓰리백 전술을 내놓아 독일을 고전시켰다. 쓰리백은 중앙 수비를 두텁게 하는 전술이라 측면을 흔들지 않는 한 부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회베데스는 본래 스피드가 느려서 오버래핑에 쥐약이었고 무스타피도 별반 다르지 않아 공격 루트가 중앙으로 한정되어 계속 알제리의 수비벽에 막혀버리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독일은 볼 점유율만 높았을 뿐 전혀 알제리의 의표를 찌르지 못하며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다. 오히려 공격 작업을 간소화한 속공으로 나선 알제리가 위협적인 장면을 더 많이 만들었다. 거기다 슈코드란 무스타피는 스피드도 별로 안 빠른 주제에 쓸데없이 욕심만 많아서 무리하게 높이 올라왔다가 알제리 선수들에게 볼을 뺏겨 수시로 배후 공간을 노출해 알제리의 역습을 살려주어 팀에 민폐만 잔뜩 끼쳤다. 후멜스가 빠지자 수비 라인 조율이 제대로 안 되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이 경기에서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의 장기인 스위퍼형 골키퍼의 진면목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포터백 전술의 패착이 또 한 번 입증된 것이다. 그렇게 답답한 공방전만을 이어간 채 전반전은 0 : 0으로 끝났다.

하프 타임 때 뢰프 감독은 부진했던 마리오 괴체를 빼고 안드레 쉬얼레를 교체 투입했다. 하지만 그 교체 약발도 잘 듣지 않았다. 알제리 선수들의 한 발 더 뛰는 조직적인 수비에 독일은 좀처럼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후반 25분, 슈코드란 무스타피가 공을 걷어내다 햄스트링 파열 부상을 당했다. 결국 뢰프 감독은 무스타피를 빼고 사미 케디라를 교체 투입했고 필립 람을 레프트백으로 내렸다. 제자리로 돌아간 람은 펄펄 날기 시작했고 비로소 독일의 막힌 혈이 뚫리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경기는 점점 독일의 페이스로 흘러갔고 알제리는 라이스 음볼리 골키퍼의 선방으로 간신히 실점만 하지 않고 버텼다. 그렇게 후반전도 0 : 0으로 끝났고 승부는 이제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 전반 2분, 오버래핑한 레프트백 베네딕트 회베데스가 전방의 토마스 뮐러에게 패스했다. 뮐러는 중앙으로 쇄도하면서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낮은 크로스를 올렸고 이걸 쉬얼레가 감각적인 힐킥으로 연결해 드디어 선제골을 터뜨리며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알제리도 반격하고자 했지만 이미 체력이 다 바닥난 상태라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연장 후반 4분에 뢰프 감독은 지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빼고 크리스토프 크라머를 교체 투입했다. 연장 후반 15분, 우측에서 볼을 받은 쉬얼레가 페널티 박스로 쇄도하면서 좌측의 메수트 외질이 노마크인 것을 보고 곧바로 패스했다. 외질이 볼을 잡자 음볼리 골키퍼가 전진했고 외질은 다시 쉬얼레에게 패스했다. 쉬얼레가 슛을 날렸으나 골문에 붙어선 수비수 에사이드 벨칼렘이 걷어냈다. 그러나 그 볼은 다시 외질의 발 앞에 갔고 외질이 재차 왼발 슛을 날려 추가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2 : 0으로 벌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알제리도 불과 1분 후, 소피앙 페굴리가 우측에서 띄운 크로스를 압델무멘 자부가 논스톱으로 슛을 날려 만회골을 뽑았으나 너무 늦었다. 결국 경기는 독일의 2 : 1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독일 내 반응은 "승리당했다!"였다. 특히 은퇴한 레전드 미하엘 발락은 뢰프 감독을 향해 공개적으로 "람을 왜 자꾸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려고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발락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너무 펩 과르디올라를 따라하려고 한다."고 뢰프 감독을 향해 날선 비판을 했다. 반면, 알제리는 졌지만 잘 싸웠다는 찬사를 받았다. 매 경기마다 각기 다른 전술을 내놓으며 상대의 허를 찌르는 할릴호지치 감독의 용병술은 극찬을 받았다. 허나 이 대회가 끝난 후 알제리는 다시 그저 그런 약팀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이로 볼 때 이 경기의 선전엔 알제리가 독일에 강한 징크스도 한 몫했던 모양이다.


20.5. 8강전 프랑스전 - 1 : 0 승[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8강 1경기
2014. 07. 04.(금) 13:00(UTC-3)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심: 네스토르 피타나 (아르헨티나)
파일:독일 국기.svg
1 : 0
파일:프랑스 국기.svg
독일
프랑스
13' 마츠 후멜스
득점자
-
Man Of the Match: [[마츠 후멜스|{{{#000000 마츠 후멜스}}}]] (독일)
관중 : 74,240명

독일의 8강전 상대는 라이벌인 프랑스로 정해졌다. 두 팀은 이미 월드컵에서 3차례 맞대결을 펼친 바 있다. 상호 전적은 1승 1무 1패로 호각세에 있다. 다만 그 1무도 승부차기 끝에 독일이 이겼다는 걸 감안하면 독일의 근소 우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회 프랑스는 지역 예선에서 심히 맛이 간 모습을 보이며 플레이오프까지 밀려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우크라이나에 원정에서 0 : 2로 패배해 탈락 위기까지 몰렸다가 홈에서 3 : 0으로 이겨 간신히 본선에 올랐다. 그러나 본선에서의 프랑스는 예선과는 영 딴판이었다. 1차전에서 온두라스를 3 : 0으로 격파한 후 2차전에서 스위스를 5 : 2로 크게 이겼으며 3차전에서 에콰도르와 0 : 0 무승부를 기록해 2승 1무의 준수한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해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도 나이지리아를 2 : 0으로 깨고 8강에 올랐다.

이 경기를 앞두고 요아힘 뢰프 감독은 세간의 비판을 받아들여 포터백 전술을 포기하고 필리프 람을 다시 제자리인 라이트백으로 내렸다. 다만 페어 메르테자커가 감기 증세를 보였으므로 센터백 라인을 마츠 후멜스 - 제롬 보아텡 라인으로 세우고 레프트백은 그대로 베네딕트 회베데스가 섰다. 수비형 미드필더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사미 케디라가 섰다. 답답했던 제로톱 전술도 버리고 토마스 뮐러는 다시 본 포지션인 라이트윙으로 내렸고 백전노장 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원 톱으로 섰다. 전체적으로 펩 과르디올라식 전술을 버리고 유프 하인케스식 전술을 채택했다. 이렇게 스타일을 바꾸니 알제리전에 비해 확실히 나아졌다.

초반 카림 벤제마마티유 발부에나를 앞세운 프랑스의 맹공을 막아낸 독일은 전반 13분, 결정적인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로 나선 토니 크로스가 문전으로 볼을 띄웠고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마츠 후멜스가 마크맨 라파엘 바란을 그냥 한 손으로 집어 던져버리고[48] 방향만 바꾼 헤더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리며 독일이 1 : 0으로 앞서갔다. 후멜스는 비단 공격만 잘한 게 아니라 본업인 수비도 일품이었다. 그가 감기 몸살로 결장했던 알제리전에서 독일 수비 라인은 뭔가 삐걱대며 불협화음을 내며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는데 오늘 경기에선 톱니바퀴 맞물리는 듯한 유기적인 조직력을 보였다. 1골을 실점한 프랑스는 반격에 나섰지만 장신 떡대들로 이뤄진 독일 수비진에게 피지컬 싸움에서 밀리며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못했다. 어렵게 슛을 날려도 마누엘 노이어의 엽기적인 선방쇼에 막혔다. 노이어는 역동작에 걸린 상태에서도 발부에나의 슛을 감각적으로 쳐내 프랑스를 좌절시켰다. 결국 전반전은 독일이 1 : 0으로 앞선 채로 끝났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계속해서 프랑스의 공세, 독일의 수세로 이어졌다. 두 팀은 후반 중반까지 단 1장의 교체 카드도 쓰지 않고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독일에 위협적인 역습을 계속 내줬다. 위고 요리스 골키퍼의 선방 덕에 간신히 실점만 막았다. 후반 23분, 뢰프 감독은 백전노장 클로제를 불러들여 휴식하도록 했고 안드레 쉬얼레를 교체 투입했다.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 감독도 뒤이어 교체 카드를 연달아 2장을 쓰며 공격 강도를 높였다. 그러나 골키퍼 노이어가 지키는 독일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질 않았다. 뢰프 감독은 후반 38분, 메수트 외질을 불러들이고 마리오 괴체를 투입해 굳히기에 들어갔다. 데샹 감독은 올리비에 지루까지 투입해 계속 공격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종료 직전, 뢰프 감독은 토니 크로스를 빼고 크리스토프 크라머를 투입해 시간을 끌었다. 결국, 전반 13분에 터진 후멜스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킨 독일이 1 : 0으로 승리해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서 독일은 2002 한일 월드컵 이래로 4회 연속 4강 진출이란 기록을 썼다. 하지만 독일은 지난 두 대회 연속 4강에서 발목이 잡혀 우승을 놓쳤고 지난 3번의 대회에서 독일을 이긴 팀들은 모두 우승을 차지해 전투력 측정기로 전락해 있었다. 이제 그 4강 징크스를 깨뜨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록 오늘 경기에서도 독일은 좀 답답한 모습은 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승리를 챙기는 실리축구를 했다.


20.6. 4강전 브라질전 - 7 : 1 승[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4강 1경기
2014년 7월 8일 화요일 17:00 (현지 시각 기준)
[49]
[[미네이랑|{{{#FBCC00 미네이랑]] ([[브라질|{{{#FBCC00 브라질]], [[벨루오리존치|{{{#FBCC00 벨루오리존치]])
주심: [[마르코 로드리게스(심판)|{{{#fbcc00 마르코 로드리게스]] (멕시코)
관중: 58,141명

파일:Brazil CBF 2014.png

1 : 7

파일:Germany DFB 2014.png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89′ [[오스카(축구선수)|{{{#373a3c,#dddddd 오스카}}}]]
파일:득점 아이콘.svg
10′ [[토마스 뮐러|{{{#373a3c,#dddddd 토마스 뮐러}}}]]
22′ [[미로슬라프 클로제|{{{#373a3c,#dddddd 미로슬라프 클로제}}}]]
24′, 25′ [[토니 크로스|{{{#373a3c,#dddddd 토니 크로스}}}]]
28′ [[사미 케디라|{{{#373a3c,#dddddd 사미 케디라}}}]]
68′, 78′ [[안드레 쉬를레|{{{#373a3c,#dddddd 안드레 쉬를레}}}]]
[[https://playvod.imbc.com/Vod/VodPlay?broadcastId=1003010100236100000|{{{#FBCC00 경기 다시 보기}}}]] | [[https://m.youtube.com/watch?v=GiHyN5uw4Ho|{{{#FBCC00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14brazil/match-center/300186474|{{{#FBCC00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독일 국기.svg [[토니 크로스|{{{#00296d 토니 크로스}}}]]



20.7. 결승전 아르헨티나전 - 1 : 0 승[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결승전
2014년 7월 13일 일요일 16:00 (현지 시각 기준)
[50]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FBCC00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 ([[브라질|{{{#FBCC00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FBCC00 리우데자네이루]])
주심: [[니콜라 리졸리|{{{#FBCC00 니콜라 리졸리]] (이탈리아)
관중: 74,738명

파일:Germany DFB 2014.png

파일:FIFA 월드컵 트로피.svg

파일:Argentina AFA 2014.png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1
0
112′ [[마리오 괴체|{{{#373a3c,#dddddd 마리오 괴체}}}]][51]
파일:득점 아이콘.svg
-
[[https://playvod.imbc.com/Vod/VodPlay?broadcastId=1003010100251100000|{{{#FBCC00 경기 다시 보기}}}]] | [[https://m.youtube.com/watch?v=KB1e10vDUvs|{{{#FBCC00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14brazil/match-center/300186501|{{{#FBCC00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독일 국기.svg [[마리오 괴체|{{{#00296d 마리오 괴체}}}]]



21. 2018 러시아 월드컵[편집]



21.1. 32강 조별리그 멕시코전 0 : 1 패[편집]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조별리그 F조 1경기
2018. 6. 17.(일) 18:00(UTC+3)

루즈니키 스타디움 (러시아, 모스크바)
주심: 알리레자 파가니 (이란)
관중: 78,011명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0 : 1

파일: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FIFA WORLD CUP 2018 GER.png 독일
파일:FIFA WORLD CUP 2018 MEX.png 멕시코
-
파일:득점 아이콘.svg
35′ 이르빙 로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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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FIFA WORLD CUP 2018 MEX.png 이르빙 로사노

독일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북중미의 제왕 멕시코였다. 국제대회에서 자주 부딪히는 두 팀이지만 독일은 여태껏 국제대회에서 단 1번도 멕시코에 패배를 해본 적이 없었다. FIFA 월드컵 전적만 하더라도 독일은 멕시코와 3번 맞붙어 2승 1무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그나마 그 1무도 승부차기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3전 전승이나 다름 없었다. 또 지난 해에 있었던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독일은 대표팀 주전 선수들을 대거 빼고도 멕시코를 4 : 1로 대파하는 기염을 토한 바 있었다. 그렇기에 독일은 이번에도 이긴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경기에 나섰고 멕시코는 이번만은 이긴다는 비장한 각오로 경기에 나섰다. 독일은 21세기에 치른 대회에서 조별리그 1차전에선 꼭 4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좋은 기록이 있다.[52] 과연 이번에도 그 좋은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주목되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를 치러보니 1년 사이에 멕시코는 환골탈태해 있었다. '교수님'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을 필두로 한 멕시코는 독일의 약점을 철저하게 연구, 분석을 했는지 스피디한 역습 축구로 독일을 괴롭혔다. 발이 느렸던 독일 수비진들은 멕시코의 빠른 역습에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전반 10분에 엑토르 에레라의 중거리슛으로 포문을 연 멕시코는 빠른 역습으로 발이 느린 독일 수비진의 배후 공간을 파고 들며 득점 기회를 만들어갔다. 반면에 독일 선수들은 뭐가 그리 여유로운지 느긋하게 패스 플레이를 주고 받으며 실속 없는 점유율 게임이나 하고 있었다. 특히 율리안 드락슬러는 공만 잡으면 미친 듯이 템포를 학살하며 탐욕을 부렸고 토마스 뮐러는 실전 감각이 덜 올라온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오히려 독일이 다소 밀리는 듯한 경기력을 보이며 0 : 0 팽팽한 균형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전반 35분, 독일 센터백 마츠 후멜스가 공격에 가담하며 상대 진영 중원까지 밀고 올라왔는데 그만 엑토르 에레라의 태클에 볼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흐른 볼을 엑토르 모레노가 받아 긴 땅볼 패스로 전방의 치차리토에게 뿌려 주면서 곧바로 멕시코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이 때 독일이 라인을 너무 높이 끌어올린데 반해 발이 느려 커버 플레이가 늦어지면서 남은 수비수는 제롬 보아텡 1명밖에 없었다. 볼 간수를 제대로 못해 역습의 빌미를 제공한 후멜스는 뭐가 그리 여유로운지 빨리 내려와서 수비할 생각은 않고 느릿느릿 조깅이나 하고 있었다. 번개 같은 스피드로 독일 진영으로 쇄도한 치차리토는 반대편의 이르빙 로사노에게 길게 패스했고 급기야 공격형 미드필더 메수트 외질이 급히 내려와 수비에 나섰으나 둘이 조우한 곳이 하필 페널티 에어리어였고 전문 수비수가 아니었던 외질로서는 혹여나 페널티 킥을 내줄지도 모른단 생각에 함부로 발조차 뻗어보기 힘들었다.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한 로사노는 간단한 개인기로 외질을 제치며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와 1 : 1 상황을 만든 뒤 오른발 땅볼 슛으로 침착하게 마무리하여 골을 성공시켰다. 그리하여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멕시코가 1 : 0으로 앞서갔다.

3분 후, 독일은 다시 동점골을 넣을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었고 키커 토니 크로스의 킥도 기가 막히게 좋았는데 안타깝게도 멕시코 수문장 기예르모 오초아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그렇게 전반전은 멕시코가 1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이 되자 독일은 정말 극단적으로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후반 19분엔 라이트백 요주아 키미히가 직접 문전까지 쇄도해 멋진 바이시클 킥을 날렸으나 골로 연결되진 않았다. 한편, 멕시코의 오소리오 감독은 독일의 공격이 살아날 조짐을 보일 때마다 교체 카드를 써서 독일의 공격 템포를 죽이는 영악함까지 보였다. 독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요아힘 뢰프 감독은 후반 15분에 부진했던 수비형 미드필더 사미 케디라를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마르코 로이스를 교체 투입했으며 후반 34분엔 레프트백 마빈 플라텐하르트를 빼고 공격수 마리오 고메스를 투입했다. 그렇게 공격수를 늘려가며 극단적인 파상공세를 취했다. 하지만 공격수 숫자만 늘어났을 뿐 전체적인 공격 패턴이 바뀌질 않아 족족 멕시코 수비수들에게 틀어막혔으며 오히려 라인을 너무 높이 끌어올린 탓에 수시로 배후 공간을 노출해 계속해서 멕시코의 빠른 역습을 얻어 맞았다. 그나마 멕시코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추가실점만 안 했을 뿐이었다.

후반 41분, 뢰프 감독은 티모 베르너를 빼고 율리안 브란트를 투입하며 공격의 칼을 갈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느릿느릿한 패스 플레이 위주의 공격만 반복하여 전혀 멕시코를 효율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점유율 축구의 패착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190cm의 장신으로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인 마리오 고메스를 투입했으면 공중볼을 띄워서 피지컬적으로 열세인 멕시코 수비수들을 찍어누르는 방법을 해야 마땅할 것인데 독일은 뭐가 그리도 천하태평인지 느릿느릿 패스만 주고 받았다. 경기 막판에 얻은 2번의 세트피스 찬스에선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까지 멕시코 진영 문전에 올라가 공격에 가담했지만 그런 보람도 없었다. 결국 독일은 1차전에서 멕시코에 0 : 1 충격패를 당하고 말았다. A매치에서 독일이 멕시코에 패배한 건 33년 만의 일이었다. 아울러 이 경기를 통해 독일은 월드컵에서 역사상 최초로 북중미 팀에게 패배하는 기록을 남겼다. 또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패배한 건 1982년 스페인에서 알제리에 1 : 2로 패배한 이후 36년 만의 일이었다.

멕시코전에서의 뜻밖의 패배로 인해 독일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 경기로 인해 약이 바짝바짝 오른 것인지 토니 크로스는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남은 스웨덴과 한국 전을 반드시 이겨서 16강에 올라가겠다고 이를 갈았고 마누엘 노이어 또한 이제부터 모든 경기가 다 결승전이라는 식으로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이 와중에 마츠 훔멜스는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동료들을 질책, 비난하며 팀 상황이 개판이란 사실을 보여줬다.

한편 SBS 해설위원으로 위촉되어 이 경기를 중계했던 한국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박지성은 이 경기에서 나온 독일의 문제점들을 보고 "전 독일이 과연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려고 나온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 정도면 우리나라도 비벼볼 만 하겠는데요."라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물론 당시 한국 대표팀의 사정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한국의 독일 팬들은 우리 주제나 알라며 비난을 했고 한국전에 1군으로 진심을 다해 임할것이 분명해진 독일의 패배를 진심으로 슬퍼했다. 하지만 이 때 박지성의 안목이 정확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1.2. 32강 조별리그 스웨덴전 2 : 1 승[편집]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4경기
2018.06.23.(토) 21:00(UTC+3)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 (러시아, 소치)
주심: 시몬 마르치니악 (폴란드)
관중: 44,287명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 : 1
파일: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FIFA WORLD CUP 2018 GER.png 독일
파일:FIFA WORLD CUP 2018 SWE.png 스웨덴
47′ 마르코 로이스
90+5′ 토니 크로스
파일:득점 아이콘.svg
32′ 올라 토이보넨
81′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제롬 보아텡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FIFA WORLD CUP 2018 GER.png 마르코 로이스

독일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이었다. 두 팀 역시 월드컵에서 꽤 자주 만난 사이다. 독일은 스웨덴과 월드컵에서 총 4번 만나 3승 1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또 1978년 이후로 스웨덴과의 A매치에서 단 1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이 경기가 조별리그 2차전이란 것인데 독일은 유난히 조별리그 2차전에 약한 징크스가 있다. 조별리그 2차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이겨본 게 12년 전 자국에서 열린 대회의 폴란드전인데 그나마도 굉장히 고전하다가 후반 추가시간에 겨우 득점해서 1 : 0으로 이긴 것이다. 심지어 2010년 남아공 대회 당시엔 조별리그 2차전에서 세르비아에 0 : 1로 패배하는 바람에 당시에 독일만 유일하게 세르비아에 패배했고 다음 대회 때에도 2차전에서 가나와 2 : 2로 비기는 바람에 독일 혼자만 가나를 이기지 못했던 바가 있기에 그러한 점들이 우려되고 있다. 더욱이 독일은 1차전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기에 그로 인한 심리적 타격에서 빨리 털고 일어나야 되는 상황이다.

이 경기를 앞두고 열린 한국과 멕시코 경기에서 멕시코가 2 : 1로 승리하면서 멕시코가 2승(승점 6점)으로 조 1위를 달리고 있고 있고 한국은 2패(승점 0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현재 스웨덴이 1승으로 승점 3점을 얻은 상황이므로 독일이 안전하게 16강에 가려면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야했다. 만약 이 경기에서 비기면 다음 경기에서 한국을 아무리 큰 점수 차로 꺾어도 멕시코와 스웨덴 둘이 비겨버리면 독일은 승점 1점이 모자라서 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패배하면 그런 경우의 수를 따질 것도 없이 그 즉시 바로 탈락이다. 한편, 스웨덴 역시 딱히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1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이 유효슈팅 1개도 날리지 못하는 빈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역시 빈약한 골 결정력을 보이며 후반 20분에 얻은 페널티 킥으로 겨우 1골 넣은 다음 침대축구까지 쓰는 꼼수를 부려서 겨우 1 : 0으로 이겼기 때문이다.[53] 그래서 스웨덴 역시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갈 길 급한 독일은 초반부터 강공으로 스웨덴을 밀어붙였다. 쉴새 없이 두들기는 독일 전차의 포격에 금방이라도 스웨덴 골문이 함락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토마스 뮐러의 슛도 율리안 드락슬러의 슛도 번번이 골문을 외면했다. 그렇게 자기 진영에 잔뜩 웅크리며 독일의 공세를 방어하던 스웨덴은 번뜩이는 역습 한 번으로 독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전반 12분엔 올라 토이보넨이 하프라인 근처에서 독일 센터백 안토니오 뤼디거에게서 공을 빼앗으면서 스웨덴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마르쿠스 베리가 단독 드리블로 페널티 박스까지 쇄도했으나 독일 센터백 제롬 보아텡이 베리의 어깨를 잡아채 쓰러뜨려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이 때 페널티 킥이 선언되어야 했으나 주심은 그냥 넘어갔다. 이렇게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전반 31분, 독일 수비형 미드필더 제바스티안 루디마르쿠스 베리의 축구화 스터드에 맞아서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코피가 쉴새 없이 줄줄 흘렀기에 결국 요아힘 뢰프 감독은 부상당한 루디를 빼고 일카이 귄도안을 투입했다. 그런데 선수 교체로 혼란스러워진 틈에 대형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전반 32분, 수비형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가 하프라인 근처에서 치명적인 패스미스를 범하며 곧바로 스웨덴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독일 진영 우측을 파고 들던 빅토르 클라에손은 전방의 올라 토이보넨을 향해 볼을 띄웠고 토이보넨은 페널티 박스에서 볼을 받았다. 안토니오 뤼디거가 저지를 시도했으나 토이보넨은 오른발로 볼을 가볍게 띄워 차서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54] 그리하여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스웨덴이 1 : 0으로 앞서갔다.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독일은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한국과 동반 조기탈락이 확정될 위기에 직면했다. 전반 39분에 일카이 귄도안이 스웨덴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로빈 올센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세컨드 볼을 페널티 박스로 쇄도한 토마스 뮐러가 재차 슈팅을 시도했으나 뒤따라온 스웨덴 수비의 방해로 인해 제대로 발에 맞지 않아서 헛되이 기회를 날렸다. 그렇게 전반전은 0 : 1로 뒤진 채로 끝이 났다. 보통 같았으면 이 때 벌써 득점왕 후보가 나와도 나왔을 독일이었지만 이번 대회에서 독일은 벌써 135분째 단 1골도 넣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끔찍한 빈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반 종료 직전에 나온 마르쿠스 베리의 헤딩슛은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추가 실점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으며, 이를 통해 독일의 수비가 또다시 허점이 드러났음을 제대로 보여주고 말았다.

요아힘 뢰프 감독은 하프 타임 때 부진했던 율리안 드락슬러를 빼버리고 타겟형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스를 투입했다. 그리고 전반전에 원톱을 보았던 티모 베르너는 레프트윙으로 내렸고 마르코 로이스는 중앙으로 옮겼다. 후반전이 되자 독일은 초반부터 스웨덴을 성난 사자처럼 밀어붙였다. 토니 크로스가 스웨덴 진영 문전에서 좌측의 티모 베르너에게 패스를 건넸고 베르너는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다. 타겟형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스가 왼발로 볼을 살짝 건드려 튀겼고 그걸 뒤에 있던 마르코 로이스가 재빨리 침투해 왼쪽 무릎으로 받아 넣어 드디어 독일의 이번 대회 첫 골이자 동점골을 터뜨려 다시 스코어를 1 : 1 원점으로 돌렸다. 로이스는 골 셀레브레이션도 마다하고 직접 볼을 집어 센터서클로 옮겨놓으며 조금이라도 빨리 경기를 진행하려고 했다. 스코어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스웨덴은 무승부도 나쁘지 않다는 듯 극단적인 수비로 일관하며 경기 템포를 엿가락처럼 늘어뜨렸다. 그런 와중에 후반 36분, 센터백 제롬 보아텡이 마르쿠스 베리를 향해 거친 파울을 범해 경고를 받았는데 이미 후반 26분에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결국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이 중요한 시점에 독일은 수적 열세라는 불운까지 짊어지게 된 것이다.

10명이 뛰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 독일이었지만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을 큰 점수 차로 꺾어도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기에 계속 공격적으로 나왔다. 후반 42분에 뢰프 감독은 레프트백 요나스 헥토르마저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율리안 브란트를 투입해 더욱 공격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스웨덴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어느덧 후반전도 45분이 지나고 추가시간이 적용되었다. 토니 크로스가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중앙의 일카이 귄도안에게 패스를 건넸고 귄도안은 우측에 노마크로 서 있던 브란트에게 패스했다. 브란트는 페널티 박스 우측 외곽에서 멋진 중거리슛을 곧바로 때렸지만 안타깝게도 골대를 맞추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제 추가시간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고 스코어는 여전히 1 : 1이었다. 그런데 추가시간 5분에 스웨덴 진영 좌측을 쇄도하던 티모 베르너를 스웨덴의 수비형 미드필더 지미 두르마즈가 거친 태클로 쓰러뜨리면서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독일은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사실상 마지막 공격 기회였다. 킥커로 토니 크로스가 나섰다. 크로스는 먼저 옆의 마르코 로이스에게 짧게 패스했고 로이스는 볼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다시 크로스가 오른발로 슛을 날렸는데 멋진 궤적을 그리며 스웨덴의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2분 후 경기가 종료되면서 결국 독일의 극적인 2 : 1 역전승으로 끝이 났다.

이후 독일은 이 경기에서 또다시 아쉬운 경기 매너를 보였다. 경기가 독일의 역전승으로 끝나자 코칭 스태프 자리에 있었던 독일의 미디어 담당관 울리히 포크트와 축구협회 직원 게오르그 펠라우가 갑자기 스웨덴 벤치로 가더니 스웨덴 코칭 스태프들을 향해 주먹감자 도발을 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에 다혈질인 스웨덴의 얀네 안데르손 감독이 대폭발하였고 스웨덴 선수들도 곧바로 달려들며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다. 독일의 요아힘 뢰프 감독은 이 사실을 못 봤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실제로 뢰프 감독은 벤치 클리어링 발생 당시 그 상황을 뒤로 한 채 한 독일의 스태프와 어깨동무한 채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관련 영상

그 밖에 토니 크로스는 자신의 패스미스에 대해 지적하는 기자들에게 4백 번쯤 패스하다 보면 한두 번 정도는 실수할 수 있다며 자만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55]

어쨌든 이 경기로 인해 독일은 1승 1패(승점 3점), 2득점 2실점을 기록해 스웨덴과 승점, 득실 차, 다득점까지 모두 동률이었지만 승자승 원칙에서 앞서 조 2위로 올라섰고 스웨덴은 3위로 내려왔다. 독일이 이 경기를 승리하면서 승점이 6점까지 오를 가능성이 생겼으므로 멕시코는 2승을 기록하고도 16강 진출을 확정짓지 못했다. 한편, 2패를 기록한 한국도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이기고 동시에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길 경우 한국, 독일, 스웨덴 3팀이 모두 1승 2패로 동률이 되어 골 득실을 비교해 조 2위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에 이 대회에서 2차전까지 모두 패배를 하고도 유일하게 탈락이 확정되지 않았다. 즉, 가히 죽음의 조답게 여전히 혼돈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스웨덴과 멕시코를 상대로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2연속 패배를 기록했기에 그보다 더 강한 독일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고, 독일 선수들과 독일 팬들 역시 이제 16강 진출이 거의 눈앞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운명의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21.3. 32강 조별리그 대한민국전 0 : 2 패[편집]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5-1경기
2018년 6월 27일 수요일 23:00 (한국 시각 기준)
[56]
[[아크 바르스 아레나|{{{#900000 아크 바르스 아레나}}}]] (러시아, 카잔)
주심: [[마크 가이거|{{{#900000 마크 가이거}}}]] (미국)
관중: 41,835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 블랙.svg
2 : 0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FIFA WORLD CUP 2018 KOR.png 대한민국
파일:FIFA WORLD CUP 2018 GER.png 독일
90+4′ [[김영권|{{{#373a3c,#dddddd 김영권}}}]]
90+6′ [[손흥민|{{{#373a3c,#dddddd 손흥민}}}]] (A. [[주세종|{{{#373a3c,#dddddd 주세종}}}]])
파일:득점 아이콘.svg
-
[[https://playvod.imbc.com/Vod/VodPlay?broadcastId=1003752100188100000|{{{#900000 경기 다시 보기}}}]] | [[https://m.youtube.com/watch?v=rE8COCbqT6E|{{{#900000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18russia/match-center/300331532|{{{#900000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FIFA WORLD CUP 2018 KOR.png [[조현우|{{{#ddbf83 조현우}}}]]





독일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아시아의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던 대한민국이었다. 독일 입장에서는 마지막 경기에서 승점 3점을 거저 챙길 수 있어 보였고,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지난 1994 미국 월드컵2002 한일 월드컵에서 만났을 때 모두 독일이 승리했다. 독일은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과 총 6번 맞대결을 하여 6전 전승을 기록한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큰 점수차로 승리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다른 아시아 팀을 상대로는 최소 2점 차 이상으로 이기는 독일이 한국 상대로는 상당히 고전했다는 점이 변수였다. 지난 두 번의 맞대결에서 독일이 이기기는 했지만 스코어가 각각 3:2, 1:0으로 고작 1점 차였다. 한국과 독일의 전력 차를 고려하면 심히 부끄러운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만큼 그리 쉬운 경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

이 경기는 이 대회 조별리그 경기 중 가장 FIFA 랭킹 격차가 큰 팀 간의 시합이었다. 당시 독일은 피파랭킹 1위이자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한국은 57위였다.[57] 그 때문인지 어느 도박사는 한국의 2:0 승리보다 독일의 7:0 승리가 더 확률이 높다고 예측했다!

2차전까지 F조의 중간 순위는 멕시코가 2승(승점 6점)으로 조 1위였고, 독일과 스웨덴이 1승 1패(승점 3점), 2득점 2실점으로 승점과 득실 차, 다득점까지 동률이었지만 승자승에서 독일이 앞서 독일이 2위, 스웨덴이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패(승점 0점)을 기록한 한국이 조 4위였다. 독일로서는 16강에 오르는 건 물론이고 16강 상대로 막강한 브라질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 1위를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을 무조건 큰 점수차로 이겨야 한다. 그래서 요아힘 뢰프 전 감독은 "반드시 2골 차 이상으로 이기겠다!"며 필승을 다짐했다. 한편, 한국도 2패를 기록했지만 이 경기에서 독일을 2점 차 이상으로 이기고 동시에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기면 한국, 독일, 스웨덴이 모두 승점 3점으로 동률이 되고 골득실을 비교하면 한국은 0 이상, 독일은 -2, 스웨덴은 -1 이하가 되므로 조 2위로 껑충 뛰어올라 16강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양 팀의 운명이 걸린 한독전이 열렸다.

갈 길이 급했던 독일은 초반부터 파상공세로 한국을 밀어붙였다. 거의 7:3에 가까운 볼 점유율을 앞세워 한국을 질식시키다시피 하며 쉴새없이 포격을 가했다. 그러나 어찌된 것인지 조현우 골키퍼가 지키는 한국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가 않았다. 약팀이라고 생각해 금방 무너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좀처럼 골문이 열리지를 않자 독일 선수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전반 16분, 사미 케디라가 반칙을 범하며 위험 지역에서 프리킥을 내주었다. 키커로 나선 정우영이 멋진 무회전 프리킥을 날렸고, 세계 최고의 골키퍼인 마누엘 노이어조차도 제대로 캐칭을 못 했고 흘러나온 볼을 향해 손흥민이 쇄도했으나 간신히 펀칭으로 위기를 넘겼다. 전반 38분에 독일의 공격 상황에서 원톱 티모 베르너가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에서 헤더로 떨군 볼을 공격에 가담한 독일 센터백 마츠 후멜스가 받았으나 슈팅 직전에 조현우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전반 종료 직전에 한국의 주장 손흥민이 독일 문전에서 강력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골문 왼쪽으로 벗어났다. 전반전은 그렇게 0:0으로 마무리되었다. 같은 시각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멕시코와 스웨덴의 경기도 0:0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아직 이 때까지 실시간 순위로 독일이 조 2위에 있었으므로 아직까지는 독일 벤치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45분 후에 그것도 추가 시간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악몽을 꾸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 때는 미처 몰랐다.

후반전 시작 1분만에 정우영이 독일의 플레이메이커 메수트 외질에게서 볼을 탈취해 멋진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의 정면으로 갔다. 뒤이어 후반 3분, 측면을 오버래핑한 라이트백 요주아 키미히가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레온 고레츠카가 논스톱 프리 헤더슛으로 연결했지만 한국의 수문장 조현우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조현우의 이 선방이 이 경기의 분수령이었다. 당연히 골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이게 조현우의 선방에 막히자 독일 벤치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뒤이어 후반 5분에 외질의 패스를 받은 원톱 티모 베르너가 논스톱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골문 왼쪽으로 벗어나며 독일은 땅을 쳐야 했다. 한국은 지난 스웨덴전, 멕시코전과 다르게 굳건한 수비로 끈질기게 독일에 골을 내주지 않고 버티며 끝까지 애간장을 태웠다. 그렇게 스코어는 계속해서 0:0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비보가 날아들어왔다. 스웨덴이 선제골을 넣어 1:0으로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실시간 순위에서 스웨덴과 멕시코가 2승 1패(승점 6점)로 나란히 조 1, 2위를 차지했고 1승 1무 1패(승점 4점)에 그친 독일은 3위로 떨어졌다. 더 이상 무승부로도 16강에 진출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반드시 한국을 이겨야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된 독일은 점점 급해졌다. 요아힘 뢰프 전 감독은 후반 13분, 수비형 미드필더 사미 케디라를 빼고 공격수 마리오 고메스를 투입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나섰다. 후반 17분에는 레온 고레츠카를 빼고 토마스 뮐러를 투입했다. 이에 한국의 신태용 전 감독은 후반 24분에 공격형 미드필더 문선민을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 주세종을 투입해 수비 강도를 더욱 높이는 것으로 맞불을 놓았다. 하지만 독일은 이렇게 공격수 숫자를 늘리며 시종일관 공격을 퍼붓고도 좀처럼 한국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같은 시각 스웨덴이 멕시코를 3:0으로 리드하면서 멕시코의 골 득실은 -1까지 떨어졌다. 이제 독일로서는 한국을 1:0으로만 이기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골키퍼 조현우가 지키고 있는 한국의 골문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다.

계속해서 답답하게 0:0의 스코어가 이어지자 요아힘 뢰프 감독은 후반 33분, 레프트백 요나스 헥토르마저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율리안 브란트를 투입했다. 한편, 황희찬이 교체 투입되었는데도 전방 압박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헥토르와 키미히가 활개치게 만들자 신 감독은 후반 34분, 황희찬을 다시 빼고 수비수 고요한을 투입해 수비를 보강했다. 후반 41분, 플레이 메이커 메수트 외질이 우측에서 올린 크로스를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센터백 마츠 후멜스가 노마크 상태에서 헤더를 했으나 볼을 어깨에 맞추는 실수를 범하며 천금같은 득점 기회를 날렸다. 후반 42분에는 토니 크로스가 문전에서 중거리 슛을 날렸으나 골키퍼 조현우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후반 44분, 토니 크로스의 빌드업을 한국의 라이트백 이용육탄방어로 저지하며 다시 한국의 역습 찬스로 이어졌고 이재성이 문전으로 쇄도해 슛을 날렸으나 센터백 니클라스 쥘레의 다리에 맞고 굴절되며 밖으로 나갔다. 한국에 코너킥 찬스가 주어졌다. 그리고 정규시간 45분이 지나고 6분의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한국의 코너킥 찬스에서 키커 손흥민이 찬 킥은 낮고 빠르게 페널티 에어리어로 날아와 장현수를 지나 토니 크로스에게 갔다. 토니 크로스는 볼을 지키기 위해 뒤에 있던 센터백 니클라스 쥘레에게 백패스를 했는데 그만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았다. 크로스의 백패스는 야속하게도 쥘레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며 골문 앞에 서 있던 한국 센터백 김영권의 발 앞에 갔다. 김영권은 볼을 침착하게 멈춰세운 후 곧바로 왼발 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 하지만 부심은 김영권의 위치가 독일의 2번째 수비수였던 마리오 고메스보다 앞쪽에 있었고 볼이 윤영선에게서 왔다고 판단하여 오프사이드를 선언했다. 그리고 주심 마크 가이거도 부심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위기를 넘기는 듯했다. 그러나 VAR 측에서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의견을 내며 비디오 판독을 할 것을 권고했다. 결국, 비디오 판독이 결정되었고 판독 결과 토니 크로스의 백패스가 그대로 김영권에게 흘러간 것이 밝혀져 후반 추가시간 3분에 한국의 득점이 선언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한국이 독일을 상대로 1:0으로 앞서갔다.

이제 독일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비디오 판독 때문에 지연된 시간이 산입되면서 추가시간은 9분까지 늘어났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독일은 무조건 탈락이었다. 토마스 뮐러는 다급하게 주심 마크 가이거에게 남은 시간을 물었고 6분이 남았다는 걸 듣자 곧바로 동료들에게 6분이 남았다는 사인을 보냈다. 이제 독일에 남은 선택지는 오직 공격뿐이었다. 무조건 남은 6분 안에 2골을 넣어 승부를 뒤집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독일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까지 골문을 비우고 전방으로 올라가 공격에 가담했다. 추가시간 6분, 토니 크로스가 중원에서 전방으로 띄운 볼을 마리오 고메스가 헤더로 떨구었고 리바운드 볼을 마르코 로이스가 슈팅하기 전에 먼저 조현우 골키퍼가 펀칭을 했다. 볼이 터치 라인 밖으로 벗어나면서 독일이 스로인 찬스를 얻었다. 그리고 율리안 브란트가 골문을 비우고 올라온 골키퍼 노이어에게 스로인을 했는데, 노이어가 볼을 받으려는 사이에 한국의 수비형 미드필더 주세종이 곧바로 달려들어 볼을 탈취해 전방의 손흥민에게 길게 로빙 패스를 넣었다. 준족으로 소문난 손흥민은 하프라인 바로 아래쪽에서 50 m 거리를 단 5.5초만에 주파하는 미친 주력을 선보이며 그대로 텅 빈 골문에 추가골을 터뜨렸다.[58] 이제 스코어는 2:0으로 더 벌어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3분이었고, 그 안에 3골을 넣어야만 하는 미션 임파서블 같은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독일은 조별리그 탈락은 둘째치고 아예 조 꼴찌로 떨어져버린다. 그래서 독일은 선수 11명 전원이 아예 자기 진영을 비워버리고 우르르 한국 진영으로 몰려와 공격을 퍼부었다. 선수 22명 전원이 한 쪽 진영에만 있는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보람도 없이 추가시간 7분에 있었던 율리안 브란트의 날카로운 슈팅도 한국 골키퍼 조현우의 선방에 막혀버렸고, 추가시간 8분에 있었던 마츠 후멜스의 슈팅마저도 막히고 말았다. 추가시간 9분, 독일의 코너킥 찬스에서 후멜스가 반 박자 빠른 헤더 슛을 했지만 이것마저 허공으로 높이 떠버렸다. 최후의 몸부림마저 무위로 돌아가자 후멜스는 실소를 지으며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조현우 골키퍼의 골킥이 뜸과 동시에 주심 마크 가이거의 휘슬이 울리며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격파했다. 경기가 끝나자 토마스 뮐러니클라스 쥘레눈물을 흘렸고, 웬만해선 눈물 보이는 일 없던 주장 마누엘 노이어 역시 눈물을 훔쳤다. 메수트 외질은 아예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고, 마리오 고메스는 그대로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버렸다. 마르코 로이스 또한 경기 종료 직전에 굳은 표정을 짓더니 라커룸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벤치에 멀거니 앉았다.[59]

이렇게 경기가 한국의 2:0 승리로 끝나면서 한국과 독일은 1승 2패(승점 3점)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 득실에서 한국이 0, 독일이 -2를 기록하여 결국 독일은 조 최하위 월드컵 22위로 떨어지며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다. 독일이 월드컵 1라운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60] 1라운드가 토너먼트였던 시절까지 확장해 봐도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이후 무려 80년 만의 일이다. 또 독일이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에 패배한 것 역시 이번이 최초였으며[61], 월드컵 톱시드 팀 전체로 넓혀보면 두번째다.[62] 독일이 조별리그 3차전에서 패배한 것은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당시 덴마크에 패배한 이후 32년만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 스코어 역시 2:0이었다. 또 월드컵에서 FIFA 랭킹 50위 이하의 팀에게 패배한 최초의 FIFA 랭킹 1위 팀이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남기고 말았다. 유럽 팀이 유럽에서 열린 대회에서 아시아 팀에 패배한 것은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당시 이탈리아가 북한에 0:1로 패배한 이후 무려 52년만의 일이다. 독일은 총 2득점 4실점을 기록했는데 이렇게 골 득실이 마이너스로 끝난 것 역시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이후 60년만의 일이었다.[63]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라는 악령은 단 1번도 조별리그 탈락의 역사를 쓴 적이 없던 독일마저도 결국 피해가지 못했던 것이다.[64]

이로써 독일은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때의 이탈리아,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때의 브라질,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의 프랑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때의 이탈리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때의 스페인에 이어 여섯 번째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한편, 한국은 독일을 상대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같은 시각에 멕시코가 스웨덴에 0:3으로 패배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1승 2패 월드컵 19위로 선전했으나, 16강은 진출이 좌절되며 함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65] 한편, 스웨덴에 0:3으로 대패했던 멕시코는 먼저 2승을 기록하고도 탈락 위기에 몰렸으나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잡아준 덕에 간신히 16강 진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패배한 독일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탈락시킨 팀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같은 세계 최강 팀도 아니고 몇 수 아래라고 본 아시아의 한국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경기를 카잔의 치욕(Die schande von Kasan)으로 명명했다. 이 경기가 독일 축구 역사상 20년 전의 크로아티아전을 뛰어넘는 최악의 졸전이 되고 만 것이다.[66] 반면에 한국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던 상황에서 이뤄낸 승리라 이 경기를 카잔의 기적으로 명명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독일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은 것만으로도 서러웠지만, 그 이후에 세계구급으로 쏟아지는 혹평과 온갖 조롱들은 그들을 더욱 서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 우승 직후에 있었던 미로슬라프 클로제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이른바 '가우초 셀레브레이션' 논란과 지역예선 당시 있었던 토마스 뮐러의 산마리노 비하 발언, 그리고 이번 대회에 있었던 스웨덴 벤치 조롱 사건 등 온갖 오만무례한 행동으로 어그로를 착착 긁어모으고 있었으므로 이 같은 사태는 거의 자업자득에 가까웠다. 특히 지난 대회에서 미네이랑의 비극이란 치욕을 겪었던 브라질과 여태껏 독일에게 물 먹은 적이 많았던 영국은 한국의 승리를 마치 자신들의 승리인 양 기뻐하며 독일을 마음껏 조롱했다.[67]

22. 2022 카타르 월드컵[편집]


러시아에서 대한민국에 0 : 2로 패배하는 굴욕을 당하며 사상 최초로 32강 조별리그 탈락(22등)이라는 수모를 당한 독일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월드컵 직후 사상 최초로 열린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 독일은 프랑스, 네덜란드와 함께 A조에 속했다. 독일은 프랑스와의 1차전에서 월드컵 때보다는 확연히 좋아진 경기력을 보이며 프랑스를 몰아붙였으나 프랑스 골키퍼 알퐁스 아레올라의 괴물 같은 선방에 막히며 0 : 0으로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때 경기력은 상당히 좋았기에 잠시나마 요아힘 뢰프 감독에 대한 평도 좋아졌다. 그러나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독일은 또 다시 무의미한 점유율에 의존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독일 선수들은 골 넣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인지 21회의 소나기 슈팅을 날리고도 모두 헛방으로 끝났으며 결국 네덜란드의 역습에 잇달아 허를 찔리며 0 : 3으로 대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3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토니 크로스의 페널티킥 골로 앞서가고도 또 다시 2골을 내리 먹히며 1 : 2로 패배했다. 4차전 네덜란드와의 홈 경기도 2 : 2 무승부를 거두는데 그치며 2무 2패라는 처참한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본래라면 B리그로 강등되어야 했으나 규정 변경으로 간신히 강등을 면했다.

그 다음에 열린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 독일은 스페인, 스위스, 우크라이나와 함께 4조에 속했다. 1차전 스페인과의 홈 경기에서 독일은 후반 6분, 티모 베르너의 선제골로 앞서가고도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종료 직전에 호세 루이스 가야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 : 1 무승부에 그쳤다. 2차전 스위스 원정 경기에서도 독일은 전반 14분, 일카이 귄도안의 선제골로 앞서가고도 또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후반 12분에 실반 비드머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 : 1로 비겨 무려 6경기 연속 승리에 실패했다. 3차전 우크라이나 원정 경기에서 간신히 첫 승을 올리긴 했지만 고작 2 : 1 승리에 그친데다 그나마도 이 경기에서도 역시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하마터면 또 무승부로 마칠 뻔하기까지 했다. 4차전 스위스와의 홈 경기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인 끝에 3 : 3 무승부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5차전 우크라이나와의 홈 경기에서 3 : 1로 승리하며 한숨을 돌리나 했지만 6차전 스페인 원정 경기에서 결국 이전까지 불안했던 모습이 핵폭탄처럼 터져 버렸다. 독일은 스페인에 일방적으로 밀리며 단 1개의 유효 슈팅도 기록하지 못한 채 무려 0 : 6이란 스코어로 대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요아힘 뢰프 감독에 대한 여론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 직후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이 열렸다. 독일은 북마케도니아, 루마니아, 아이슬란드, 아르메니아,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J조에 속했다. 사실상 독일을 막을 자가 없는 꿀조였다. 독일은 1차전 아이슬란드와의 홈 경기에서 3 : 0 대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2차전 루마니아 원정 경기에서도 독일은 1 : 0 승리를 거두며 2연승을 이어갔다. 그러나 3차전 북마케도니아와의 홈 경기에서 독일은 졸전 끝에 1 : 2 패배를 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이것은 3년 전 대한민국에 패배했던 카잔의 치욕 그 이상의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녹슨 전차 시절의 재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 경기의 영향으로 요아힘 뢰프 감독은 유로 2020을 끝으로 사임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1년 연기된 유로 2020에서 독일은 프랑스, 포르투갈, 헝가리와 함께 F조에 속했다. 요아힘 뢰프는 마음이 급해졌는지 세대교체를 위해 더 이상 뽑지 않겠다던 토마스 뮐러, 마츠 후멜스, 제롬 보아텡 등을 다시 대표팀에 소집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1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마츠 후멜스자책골로 0 : 1로 패배하고 말았다. 2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선 아무리 뢰프가 쇠잔해졌어도 여전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천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걸 보여주며 4 : 2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3차전 헝가리와의 경기에선 상대에게 먼저 골을 내주며 끌려다니는 끝에 2 : 2로 간신히 무승부를 거두며 1승 1무 1패(승점 4점)의 전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해 겨우 16강에 올랐다. 그러나 16강에서 라이벌인 잉글랜드에 힘 한 번 못 써보고 0 : 2 참패를 당해 결국 요아힘 뢰프는 마지막 명예 회복도 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물러나야 했다. 후임으로 한지 플릭 감독이 새롭게 취임했다.

한지 플릭 감독이 취임한 후 첫 번째 경기인 월드컵 지역예선 4차전 리히텐슈타인 원정 경기에서 독일은 고작 2 : 0 신승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5차전 아르메니아와의 홈 경기에서 6 : 0 대승을 거두며 다시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J조의 순위는 독일이 4승 1패(승점 12점)로 1위, 아르메니아가 3승 1무 1패(승점 10점)로 2위, 루마니아가 3승 2패(승점 9점)로 3위, 북마케도니아가 2승 2무 1패(승점 8점)로 4위, 아이슬란드가 1승 1무 3패(승점 4점)로 5위, 리히텐슈타인이 5패(승점 0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6차전 아이슬란드 원정 경기에서 독일은 아이슬란드를 4 : 0으로 대파하였고 반면에 2위 아르메니아는 홈에서 최약체 리히텐슈타인과 1 : 1로 비기는 굴욕을 당해 하위팀과 계속해서 격차를 벌려 나갔다. 그리하여 6차전 종료 후 순위는 독일이 5승 1패(승점 15점)로 1위, 아르메니아가 3승 2무 1패(승점 11점)로 2위, 루마니아가 3승 1무 2패(승점 10점)로 3위, 북마케도니아가 2승 3무 1패(승점 9점)로 4위, 아이슬란드가 1승 1무 4패(승점 4점)로 5위, 리히텐슈타인이 1무 5패(승점 1점)로 최하위를 차지했다. 리히텐슈타인은 4경기 남은 시점에서 1위 독일과 승점 14점 차이로 벌어졌기에 본선 직행 실패가 확정되었고 아르메니아, 루마니아, 북마케도니아 이 3팀이 승점 1점 차로 2위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7차전 루마니아와의 홈 경기에서 독일은 전반 9분에 이아니스 하지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위기에 몰리긴 했지만 후반전에 세르주 그나브리의 동점골과 토마스 뮐러의 역전골에 힘입어 2 : 1 역전승을 거두었다. 같은 날 북마케도니아는 리히텐슈타인 원정에서 4 : 0 대승을 거두었지만 아르메니아는 아이슬란드 원정 경기에서 1 : 1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하여 7차전 종료 후 순위는 독일이 6승 1패(승점 18점)로 1위, 북마케도니아와 아르메니아가 3승 3무 1패(승점 12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득실 차에서 북마케도니아가 +9, 아르메니아가 -2에 그쳐 북마케도니아가 2위, 아르메니아가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루마니아가 3승 1무 3패(승점 10점)로 4위, 아이슬란드가 1승 2무 4패(승점 5점)로 5위, 리히텐슈타인이 1무 6패(승점 1점)로 최하위를 차지했다. 리히텐슈타인은 3경기 남은 시점에서 조 2위 북마케도니아와 승점 차가 11점으로 벌어졌기에 결국 예선 탈락이 확정되었다. 아이슬란드 역시 3경기 남은 시점에서 조 1위 독일과 승점 차가 13점으로 벌어졌기에 본선 직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8차전 상대는 3차전에서 잊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던 북마케도니아였다. 독일은 북마케도니아 원정에서 전반전엔 북마케도니아의 밀집 수비에 가로막혀 고전했지만 후반전에 카이 하베르츠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티모 베르너의 멀티골과 자말 무시알라의 쐐기골에 힘입어 4 : 0 대승을 거두며 3차전에서의 치욕을 되갚아주었다. 같은 날 아이슬란드는 리히텐슈타인을 홈으로 불러들여 4 : 0 대승을 거두었고 루마니아와 아르메니아의 맞대결에선 루마니아가 1 : 0 신승을 거두었다. 8차전 종료 직후 순위는 독일이 7승 1패(승점 21점)로 1위, 루마니아가 4승 1무 3패(승점 13점)로 2위, 북마케도니아와 아르메니아가 3승 3무 2패(승점 12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골 득실에서 북마케도니아가 앞서서 3위, 아르메니아가 4위를 차지했으며 아이슬란드가 2승 2무 4패(승점 8점)로 5위, 리히텐슈타인이 1무 7패(승점 1점)로 최하위를 차지했다. 이로서 독일은 2경기 남은 시점에서 2위 루마니아와의 승점 차를 7점으로 벌리며 유럽에서 가장 먼저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 기염을 토했다. 불과 반 년 전만 하더라도 북마케도니아에 패배해 3위로 떨어지며 독일이 사상 최초로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68] 우려도 나왔으나 감독 교체 이후 승승장구하며 아직 자국 축구의 건재함을 보여주어 오히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것이다.

9차전 리히텐슈타인과의 홈 경기에서 독일은 5명이 골고루 득점하는 조직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상대 자책골 2개를 얻어내는 행운까지 겹치며 무려 9 : 0 대승을 거두었다. 같은 날에 2위 결정전인 북마케도니아와 아르메니아의 맞대결은 북마케도니아가 무려 5 : 0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루마니아와 아이슬란드의 맞대결 역시 0 : 0 무승부에 그쳤다. 이로서 아이슬란드는 2승 3무 4패(승점 9점)에 그치며 지난 대회에서의 돌풍이 무색하게도 조 5위에 그쳐 탈락이 확정되었다. 9차전 종료 직후 J조의 순위는 독일이 8승 1패(승점 24점)로 1위, 북마케도니아가 4승 3무 2패(승점 15점)로 2위, 루마니아가 4승 2무 3패(승점 14점)로 3위, 아르메니아가 3승 3무 3패(승점 12점)로 4위, 아이슬란드가 2승 3무 4패(승점 9점)로 5위, 리히텐슈타인이 1무 8패(승점 1점)로 최하위에 그쳤다. 마지막 10차전에서 독일은 2군을 풀고도 아르메니아를 4 : 1로 대파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리고 같은 날 루마니아는 리히텐슈타인을 2 : 0으로 승리했으나 북마케도니아 역시 아이슬란드를 3 : 1로 이겨 순위 역전에 실패했다. 그리하여 J조의 최종 순위는 독일이 9승 1패(승점 27점)로 1위로 본선에 진출했고, 북마케도니아가 5승 3무 2패(승점 18점)로 2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으며, 루마니아는 아쉽게도 5승 2무 3패(승점 17점)에 그쳐 승점 1점 차로 3위를 하여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아르메니아 또한 초반 선전이 무색하게 후반부에선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3승 3무 4패(승점 12점)로 4위, 아이슬란드 또한 2승 3무 5패(승점 9점)로 5위, 마지막으로 리히텐슈타인은 1무 9패(승점 1점)로 최하위에 그쳤다.

그리고 4월 1일 카타르에서 진행된 조 추첨에서 독일은 FIFA 랭킹 11위에 그치며 톱시드에서 짤리고 포트 2에 속했다. 독일은 스페인, 일본,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E조에 편성되었다.[69] 독일로선 전 대회에 이어서 2연속으로 동아시아 팀[70]과 맞대결하게 되었다. 하여간 조 편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서 독일은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플레이했다. 그런데...


22.1. 32강 조별리그 일본전 - 1 : 2 패[편집]




첫 단추부터 꼬여버린 경기이다. 게다가 이 패배를 통해, 월드컵 4회우승국이 사상 최초로 아시아팀 상대 2연패라는 치욕적인 기록까지 달성했다.다른의미에서 거의 30년간은 깨지기 힘든 월드컵 기록이다

22.2. 32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1 : 1 무[편집]




22.3. 32강 조별리그 코스타리카전 - 4 : 2 승[편집]



경기는 이겼지만 일본이 스페인마저 잡아내는 바람에 코스타리카와 손잡고 나란히 탈락하게 되었다. 독일 축구 역사상 최초로 두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1] 당시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 및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에 있었다.[2]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3위[3] 당시는 모든 경기가 1라운드부터 15강 토너먼트로 치러졌다. 또한 본선 진출국이 16개국이 아닌 15개국인 이유는 진출국이었던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합병당했기 때문이다.[4] 첫 경기에서 스위스와 무재배하고 재경기 끝에 탈락. FIFA 공식 기록은 재경기까지 포함.[5]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인 추축국에 대한 징계로 출전자격을 박탈당했다.[6] 헝가리에 16강 본선 조별리그에서 3:8로 대패하고 결승전에서 3:2로 복수에 성공했다. 참고로 결승전 당시 서독 선수 전원이 암페타민을 흡입한 상태였고, 헝가리는 남미의 강호 두 팀(브라질, 우루과이)와 혈전 + 패싸움 끝에 부상 선수가 다수 나온 반면, 서독은 선수 유출 없이 상대적으로 쉬운 팀(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을 누르고 올라왔다. 헝가리를 이긴 것이 이변이었으며, 지금도 베른의 기적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참고로 당시 메스암페타민은 불법이 아니어서 1950년대 많은 선수들이 이를 복용했고 50년말 특정 대회에서는 이를 복용하지 않고 출전하는 선수가 드물지경이 되었다. 독일의 경우 스스로 이 사실을 공개했지만 다른 많은 나라들도 비슷한 지원을 해준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공산권 국가들 사이에서는 선수가 원치 않아도 강제로 약물을 복용하도록 하여 많은 문제가 되기도 했다.[7]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4위[8] 잉글랜드와의 결승전 연장전 세 번째 골이 라인을 넘어가지 않았음에도 인정되었다. 아직까지도 가장 논란이 많은 결승전이다.[9]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3위[10] 서독과 동독이 같은 조에 속했는데 동독이 서독을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러나 서독은 토탈풋볼의 네덜란드를 누르고 우승을 가져갔다.[11] 당시 2라운드 8강 조별리그 방식이었고 독일은 8강 조별리그에서 탈락(6위)했다.[12] 24강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알제리에 1:2로 패하는 이변을 연출. 마지막 경기에서 오스트리아와의 승부조작으로 유명했던 대회. 충격을 받은 독일 팬이 자살하고 프랑스로부터 '노벨 평화상'감이란 비아냥을 받은 팀이었지만 결국 프랑스는 4강에서 졌고 서독은 결승에 갔다.[13] 최초의 3회 연속 월드컵 결승 진출 기록을 세웠다. 이후 브라질이 1994~2002년에 같은 기록을 세웠다. 서독으로서 우승한, 그리고 서독으로 출전한 마지막 월드컵이었다.[14]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에 1:5로 대패를 당하며 최악의 졸전을 보인 끝에 올라왔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무려 8:0으로 대학살한 것을 시작으로 결국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클로제가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역대 준우승국들 중 가장 쉬운 대진으로, 결승에 오르기까지 우승후보급 강팀을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15]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에서 최종 3위[16] 16년 전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우승이 독일, 3위가 개최국이었는데 2006 독일 대회에서는 우승이 이탈리아, 3위가 개최국이라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17]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3위[18] 이 대회까지 4회 연속 4강 진출 및 16회 연속 8강 진출을 달성했다.[19] 4강전에서 홈 팀 브라질을 상대로 7 : 1 대승을 거두고, 클로제의 월드컵 최다골을 비롯해 최다 결승 진출, 팀 최다득점까지 다양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동서독 통일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20] 1라운드에서 탈락한 것 자체는 1938 프랑스 월드컵 1라운드 15강 토너먼트 탈락(10위)에 이어 두 번째이자 80년 만이고, 1라운드 조별리그 제도가 부활한 이후로는 최초의 1라운드 조별리그 탈락(22위)이다. 정확히 말하면 조별리그 제도가 있었던 초대 월드컵에 독일이 불참했기 때문에 1라운드 조별리그 제도가 부활한 이후라는 표현을 쓴 것. 즉, 이 대회의 독일 대표팀이 최초로 1라운드 조별리그 탈락했다는 말은 맞는 말이고, 최초로 1라운드 탈락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21] 세르비아와 공동 22위[22]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23] 여담으로, 이 선수는 14년 후인 1988년에 탈동(脫東)하여 서독으로 귀순했다.[24] 이 문제는 대한민국에게도 비슷하게 있었는데, 바로 홍명보 중심의 스리백 스위퍼 시스템 탈피 문제였다. 홍명보와 마테우스는 둘 다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선수였는데, 딥라잉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한 선수였지만 이상하게 포백 시스템에 잘 적응을 못하는 게 똑같았다. 즉 둘 다 스리백 시스템 하에서만 위력을 발휘하는 선수였다. 마테우스의 대체자 마티아스 자머 역시 같은 유형의 선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마테우스나 잠머는 수비형 미드필더에서도 잘하는 선수였지만 홍명보는 수비형 미드필더에선 제대로 못했다는 것. 홍명보는 오로지 쓰리백 스위퍼 자리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선수였다.[25] 그것도 하마터면 질 뻔했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데이비드 베컴이 간신히 동점골을 넣어서 비긴 것이다.[26] 1990 이탈리아 월드컵 - VS 아랍에미리트 5 : 1 승, 1994 미국 월드컵 - VS 대한민국 3 : 2 승, 1998 프랑스 월드컵 - VS 이란 2 : 0 승[27]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웃기는 이야기지만,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브라질에게 0 : 1로 석패했고 남아공과 우루과이에게 각각 1 : 0으로 승리해서 어깨가 좀 으쓱해 있던 상황이었다.[28] 그나마 48년 전 대한민국의 경우는 6.25 전쟁 직후 나라에 돈이 없어서 스위스까지 가는데만 시간을 지나치게 허비해 경기 시작 몇 시간 전에야 겨우 경기장에 도착하여 현지 적응 훈련은 커녕 시차 적응도 못하고 옷만 바로 유니폼으로 환복하고 경기를 치른 것이었다. 헝가리에 당한 0 : 9 패배는 되려 한국이 엄청나게 선전한 결과였다. 참고로 당시 그 경기에서 헝가리가 쏜 유효슈팅이 무려 100개였는데 그 중 9개만 성공했고 헝가리의 골 성공률은 고작 9%에 불과했다. 이때 사우디아라비아가 당한 패배와 비교할 바가 전혀 아니었다.[29] 독일 측에서는 카르스텐 얀커, 디트마어 하만, 미하엘 발락, 카르스텐 라멜로프(2장), 올리버 칸까지 총 6장을 받았고, 카메룬 측에서는 마르크 비비앙 푀, 리고베르 송, 빌 차토까지 총 3장을 받았다.[30] 사무엘 에투에게 2번이나 연달아 다리를 걸어 전반 37분에 경고를 받았고, 3분 후인 40분에 또 경고를 받아 퇴장당했다.[31] 독일 측에선 크리스티안 지게, 토르스텐 프링스까지 총 2장의 경고를 받았고 카메룬 측에선 제레미, 살로몽 올랑베, 파트리크 수포(2장), 로랑까지 총 5장의 경고를 받았다.[32]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 관중들은 오로지 인기 팀들만 응원했다.[33] 전반 22분 볼 경합 과정에서 김남일을 팔꿈치로 때린 것이 드러나면서 경고를 받았고, 연장 전반에는 할리우드 액션으로 페널티킥을 유도하려다 실패하고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34] 사실 당시 피파랭킹으로 독일은 11위였고 미국은 13위여서 큰 차이가 없었다. 여담으로 당시 12위는 잉글랜드였다.[35] 재미있는 사실을 말하자면 클로제는 한국과 궁합이 안 맞는지 현역 시절에 한국 대표팀과 2차례 치른 A매치에서 단 1골도 넣지 못했고 아예 한국 땅에서 열린 경기에선 단 1골도 못 넣었다. 반면 일본과는 궁합이 잘 맞는지 월드컵 때도 일본에서 열린 경기에선 5골을 넣었고 일본 대표팀과 치른 2차례 A매치에서는 총 3골을 넣었다.[36] 다만 푈러는 한국전에서는 결장했다.[37] 다만 굳이 대진을 비교하자면 브라질 쪽이 조금 더 어려웠다. 독일의 대진이 사우디아라비아 - 아일랜드 - 카메룬 - 파라과이 - 미국 - 대한민국이라는 역사상 다시 나오기 힘들 꿀대진이었던 반면 브라질은 터키 - 중국 - 코스타리카 - 벨기에 - 잉글랜드 - 터키로 이어져 조별리그는 꿀조였지만 토너먼트는 꽤 난이도가 있었다.[38] 다들 알다시피 콜리나는 시원한 대머리라서 헤어드라이기 따위는 필요 없는 사람이다.[39] 2라운드도 조별리그였던 시절도 포함하면 1974 서독 월드컵 때에 2라운드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한 적은 있다.[40] 사실 이 때 포돌스키의 슛은 스웨덴 수비수 테디 루치치의 머리에 맞고 들어갔는데 자책골로 볼 수도 있지만 그냥 포돌스키의 득점으로 기록되었다.[41] 하지만 이 때에도 쉽게 이긴 것은 아니다. 이 경기 전까지 독일은 월드컵과 유로를 통틀어 단 2명만이 승부차기에서 실축했던 팀이었는데 이탈리아와의 승부차기에서 토마스 뮐러, 메수트 외질,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까지 총 3명이 실축하며 9번 킥커까지 승부가 이어질 정도로 상당히 고전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승부차기를 더 못 차서 6 : 5로 이길 수 있었다.[42] 조별리그 1차전부터 4강전까지 독일 대표팀의 동선은 뮌헨 → 도르트문트 → 베를린 → 뮌헨 → 베를린 → 도르트문트로 홈 어드밴티지를 극도로 악용한 꼼수를 부렸다.[43] 다만 득점 이후 슈바인슈타이거는 상의 탈의 셀레브레이션을 하다가 경고를 받았다. 이 대회부터 FIFA는 선수들이 신체 노출하는 것에 극도로 제재를 가했다. 이 대회부터 상의 탈의 셀레브레이션을 하면 무조건 경고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경고 받은 선수가 골 넣고 상의 탈의 셀레브레이션을 하면 경고 누적으로 골 넣자마자 퇴장당한다.[44] 1990 이탈리아 월드컵 - vs 아랍에미리트 5 : 1 승, 1994 미국 월드컵 - vs 대한민국 3 : 2 승, 1998 프랑스 월드컵 - vs 이란 2 : 0 승, 2002 한일 월드컵 - vs 사우디아라비아 8 : 0 승, vs 대한민국 1 : 0 승.[45] 다만 이 대회부터 클로제는 나이가 30대에 들어서인지 전매특허 공중제비 셀레브레이션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46] 다만 이건 독일 측이 결례를 범한 것도 있다. 감독은 안 나오고 어린 유망주를 대신 내보냈다는 점에서 상대편 감독에 대한 예의가 어긋난 행동을 했는데, 예를 들어 외교 문제로 기자회견을 하는 장소에 한 쪽은 대통령이 나온 반면 다른 쪽은 차관 급의 공무원이 나온 것과 같은 셈이다. 그러니 마라도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었다. 물론 뮐러가 애꿎게 욕 먹어서 기분이 나쁘긴 하겠지만.[47] 독일, 미국[48] 후멜스와 바란은 키는 191cm로 동일하지만 체중은 후멜스가 10kg 정도 더 무겁다. 바란이 미들급이라면 후멜스는 헤비급이다. 피지컬에서 바란은 후멜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49] 대한민국 시각 기준 2014년 7월 9일 수요일 05:00.[50] 대한민국 시각 기준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04:00.[51] 이번 월드컵 베스트 골 4위를 기록했다.[52] 2002년 한일 월드컵 - 8 : 0 승 (대 사우디아라비아)
2006년 독일 월드컵 - 4 : 2 승 (대 코스타리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 4 : 0 승 (대 호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 4 : 0 승 (대 포르투갈)
[53] 사실 그게 한국의 전략이었다. 스웨덴은 본래 수비를 탄탄히 세우고 상대를 자기 진영으로 유인한 다음 빠르게 역습해서 득점을 하는 스타일인데 그걸 역으로 한국이 써버리니 스웨덴 입장에서도 계산이 꼬인 것이다. 그러나 장현수의 어이없는 실수 2번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54] 독일의 이 실점은 지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대한민국벨기에에게 선제골을 내준 장면과 매우 유사했는데, 당시 벨기에의 마르크 데흐리서가 슛을 띄워서 차는 바람에 그 슛이 골대를 앞서 나온 대한민국의 골키퍼 최인영의 키를 훨씬 넘기며 붕 떠오르다가 내려오면서 그대로 선제골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55] 이러한 자만심의 업보라도 되는 듯이 독일 탈락의 전초가 된 로사노와 김영권의 골 모두 크로스의 패스미스가 시발점이었다.[56] 현지 시각 기준 2018년 6월 27일 수요일 17:00.[57] 토너먼트 경기를 포함하면 16강에서 맞붙은 스페인(10위)과 러시아(70위)의 차이가 더 크기는 했지만 러시아는 월드컵 개최국이었으므로 지역 예선을 치를 일이 없어서 랭킹 포인트를 얼마 쌓지 못한 탓에 순위가 낮은 것이었다. 그리고 스페인과 러시아의 16강전이 승부차기까지 갔으므로 전적상은 무승부다.[58] 주세종의 패스가 가는 시점에서 손흥민이 하프 라인 아래 한국 진영에 있었으므로 온사이드다. 오프사이드 룰은 무조건 하프 라인 너머 상대 진영에서 패스를 주고받을 때만 적용된다.[59] 사실 이들은 그 동안 승승장구하고 있던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으니 이런 치욕적인 패배는 전혀 감당치 못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시아의 국가대표팀에게 패배했으니 그 충격이 다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60] 2라운드 8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당시 1번 있었다.[61] 월드컵으로 한정했을 경우다. A매치 전체로는 이미 2004년 친선경기에서 한국에 3대1로 패배한적이 있다. 이 경기에서 독일대표팀 감독이었던 요아힘 뢰브는 당시에는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을 보좌하는 수석코치였다. 지리적으로는 아니지만 협회는 아시아에 소속된 호주에게도 친선경기에서 패배한적은 있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는 일본에게도 패배했다. 2022년 기준 AFC 소속 대표팀에게 A매치에서 4패를 기록 중이다. 그리고 2023년 9월에 치러진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는 2022년의 그 때보다 더욱 비참한 점수차로 대패당하기까지 했다.[62] 2018 월드컵 당시를 기준으로 월드컵에서 1승이라도 거둬 본 팀은 한국, 일본,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호주뿐이다. 북한이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서 이탈리아를 1대0으로 이겼지만 당시 톱시드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칠레였다. 이후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당시 E조 톱시드였던 벨기에에게 1대0으로 승리한것이 첫번째다. 이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이란이 미국에게 2대1로 이겼으나 당시 톱시드는 독일이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1승 이상을 기록한 한국과 일본은 개최국이었기때문에 본인들이 톱시드였다. 그 이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까지 아시아팀들은 1승도 못하거나 1승을 하더라도 톱시드 팀을 상대로는 기록하지 못했다. 이 이후 대회인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일본이 스페인을, 한국이 포르투갈을 모두 2대1로 역전승하면서 무려 3번의 사례가 더 추가되었다.[63]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당시, 독일(서독)의 최종 순위는 4위였다.[64] 더군다나 조별리그 최하위, 마이너스 골득실은 이전의 독일팀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플레이오프로 본선해 진출했던 2002년 대회에서도 준우승은 했던 팀이 독일이었다. 게다가 이전 대회였던 2014 브라질 대회에서는 9승 1무에 10실점으로 유럽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올라 세계 축구계를 멘붕에 빠뜨린 대사건을 일으키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는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은퇴한 이후였음에도 유럽예선을 전승으로, 실점조차 4실점으로 그야말로 압도적인 성적으로 유럽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랐음에도 1승 2패/골득실 -2 월드컵 22위라는 실로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될 성적을 받아들고 광탈해버린 것이다. 여기에 조별리그에 속한 팀 가운데 한국에 유일한 다실점을 기록한 팀이라는 불명예까지 안았다.[65] 만일 멕시코가 스웨덴까지 단 1점차라도 꺾었더라면 한국은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조별리그 1승 2패의 성적으로 16강에 진출한 팀이라는 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멕시코가 스웨덴을 1:0으로 이겼을 경우 멕시코가 3승이 되고 나머지 3팀이 모두 1승 2패가 되는데 이 때 골득실차가 한국은 0, 스웨덴은 -1, 독일은 -2가 되어 골득실차가 제일 높은 한국이 조 2위로 16강에 오르게 되는 것이었다. 참고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승 2패로 16강에 진출한 사례는 현재까지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66] 20년 전의 크로아티아전에서는 크리스티안 뵈른스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라는 점이라도 있었지만, 이 경기에서는 그런 것도 없었다.[67] 미네이랑의 비극 당시 호나우두가 해설위원으로서 중계를 하면서 조국 브라질이 1:7 대패를 당하는 모습과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자신의 득점 기록을 깨는 것을 목도했는데 불과 4년 뒤에 그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관중석에서 자신의 조국 독일이 한국에 0:2로 패배해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광경을 목도하는 묘한 데자뷔 현상을 일으켰다. 물론 브라질도 그래놓고 나중에 8강에서 벨기에에게 털림과 동시에 탈락하며 찝찝하게 대회를 마무리하긴 했다. 물론 독일보다는 양반이다.[68] 독일이 월드컵에 출전을 못한 것은 1950 브라질 월드컵이 마지막이었는데 그것도 예선 탈락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찍혀서 출전 금지가 되어서 못 나온 것이다. 독일은 브라질과 함께 지역예선에서 단 1번도 탈락한 적이 없는 단 둘 뿐인 팀이다.[69] 이때 스페인이 톱시드인 자리에 독일을 보낸 사람이 다름아닌 로타어 마테우스였다.[70] 2018-대한민국, 2022-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