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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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설명
3. 운영 사례


1. 개요[편집]


  • 한문: 督戰隊[1]
  • 일본어: 督戦隊
  • 영어: Supervising unit, Barrier troops
  • 러시아어: Заградительный отряд
사전적 의미는 전투를 감시하고 독려하는 부대를 의미한다. 이것만으로는 단순히 장병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일종의 심리전 부대로 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 이들에게 부여한 임무 때문에 대단히 끔찍한 악명을 얻게 되었다. 이들의 임무는 아군을 죽여서라도 도망치는 것을 막는 것이다.


2. 설명[편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인들의 탈영적전도주는 전시 군대의 최우선 요소중 하나인 '사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대부분 사형과 같은 중벌로 다스렸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인 생존 및 귀향에 대한 욕구 때문에 진영에서 도망치려는 군인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특히나 전근대 시절에 징병되어 군인이 된 이들이나 현대라도 신생국가나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같이 국가가 해주는 거 하나 없고 귀속의식도 없는 나라에서 징병된 사람 입장에서는 말이 좋아 징집이지 사실상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납치되어 총알받이로 끌려온 거나 마찬가지인지라 이들 군에서의 탈영 시도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나마 외적이 상대라면 좀 낫지만 대개 이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썩어빠진 정부에 반기를 든 반군들이고, 제대로 훈련받은 적군도 아니고 어린 소년병들이 대다수였다.

예로부터 병사들을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진형의 주위나 바로 뒤에 따로 부대를 배치해서, 도망치는 군인들을 사살해서라도, 진영에서 이탈하거나 총을 거꾸로 드는 것을 방지하려 했는데, 바로 그 임무를 맡은 부대가 바로 독전대이다.

근대 이후에는 시민의식, 민족 의식 등이 더욱 확산되면서 군인들의 위치가 "모두를 위한 방패"로 탈바꿈하고 군 안팎으로 군인들에 대한 인식도 바뀌면서 탈영 시도도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언제나 그렇듯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탈영을 막을 방법 중 하나로서 여전히 독전대를 운용하는 케이스가 존재했다. 특히 인권이라는 개념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전체주의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는 지역의 군대에서 주로 독전대를 운용했다. 이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소련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독전대의 역할은 매우 비인간적인 인권 침해라는 지적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독전대 개념을 폐기시켰다. 물론, 주된 이유는 즉결처분 자체가 부작용은 엄청난데 기대한 효과는 없는 수준이니, 즉결처분을 전담하는 독전대도 사라진 것이다. 헌병 등이 탈주병을 체포해 처벌하는 형태는 여전히 남아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식으로 체포해서 군사 재판에 회부하는 형태이고 전선에서 잡자마자 즉결처분하는 형태는 아니다. 이런 형태의 독전대는 평시는 물론이거니와 전시에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정상적인 군대라면 존재해서는 안 된다.


3. 운영 사례[편집]


나치독일의 무장 친위대(다만 일부는 독일 국방군 야전헌병에서 차출되기도 했다)의 악명높은 독전대 그라이프코만도(Greifkommando)는 탈영병들을 색출하여 형벌부대를 편성해 지뢰제거나 자살에 가까운 공격 등 극히 위험한 전투에 내모는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치 독일이 패망을 향해가던 1945년에 들어서 점령지와 독일 본토의 민간인들을 상대로 강제징집과 징발, 불응시 처형이라는 전쟁범죄를 일삼았다.[3] 한편 소련군엔 방첩부대인 스메르시NKVD 소속의 독전대가 있었는데 이들은 전선 직후방에서 탈주병, 배반자들을 색출해 처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소련군의 형벌 부대에서도 독전대를 편성해 형벌 부대원들을 강제로 위험한 임무에 내몰았다. 급기야 명령 제227호로 아예 후퇴를 공식적으로 금지시키고 후퇴하는 병사들은 장교들이 즉결처분했다. 물론 처형 대상인 장병들의 대규모 역습에 역으로 벌집이 돼서 죽은 사례도 많다.

다만 독소전쟁 규모상 부대 단위로 행선지를 잃고 방황하는 병력들을 수습해서 다른 상급 제대에 배속시키거나 전선 방향을 알려주는 정도의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는 독전대가 없는 다른 국가의 군대에서도 헌병 등이 수행한 임무이다.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GPS도 없던 시절에, 그 넓은 전선에서 길을 잃을 확률은 꽤 높았다. 지도를 잘못 보는 경우도 있고[4] 지형을 구분하지 못해 같은 곳을 맴도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장병 개개인이 소속 부대를 잃고 낙오된 사례도 있었다.

6.25 전쟁 당시의 국군과 북한군 또한 독전대를 운영했다는 참전용사들의 증언이 있다.[5]

(용인에서) 많은 사병들이 초췌한 몰골을 하고 고지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고지 후방 지대에서는 헌병이 10미터 간격으로 서서 아군의 후퇴를 저지하고 있었다. “명령 없이 후퇴하면 총살이다. 진지를 사수하라.”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아마 이것이 독전이구나.......”하고 진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병들은 독전의 기세에 눌려 다시 고지를 향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이라 얼마 후 다시 많은 병력이 쏟아져 내려왔다. 마치 호수 제방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이에 헌병 독전대는 계속 소리치면서 전선 복귀를 강요했다. 이때 사병 몇 명이 헌병 통제선을 넘어서자 헌병은 이들을 향해 발포했다. 순간 사병 3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병들은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않았다. 일제히 헌병에게 사격을 가했다. 순간 헌병 5명이 쓰러졌다. 아군끼리의 불행한 살육전이었다. 헌병들은 하는 수 없이 통제선을 열어주었다. 이에 사병들은 남쪽을 향해 패주의 길에 올랐다. 비극의 순간이었다.

<어머니와의 약속> p.29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러시아군우크라이나군이 독전대를 운용하고 있다는게 확인되었다.# #

창작물에서 이런 독전대가 등장할 때는 해당 군대가 매우 비인간적이고 정상이 아님을 강조하거나, 혹은 정상이라고 해도 독전대를 운용해야 할 정도로 전황이 막장 상황임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높은 확률로 독전대의 대원들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듯한 냉혹한 면모를 보인다. 다만, 독전대 임무를 종료한 뒤엔 아군을 죽였다는 그 충격 때문에 극심한 자기합리화PTSD를 겪고 정신줄을 놓는 묘사도 있긴 하다.

미디어 매체에서는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오마주한 콜 오브 듀티 1의 소련군 첫 미션에서[6], 에이스 컴뱃 제로에선 슈바르체 편대가 독전대로 등장한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는 2인당 1정씩 소총 받고 자살돌격하러 내몰린 소련 육군 신병들이 견디다 못해 퇴각하려 들자 독전대가 기관총으로 전원 사살한다. 독일 영화 몰락이나 2차 대전을 다룬 게임 배틀필드 V에서는 전쟁 막바지의 미쳐돌아가는 나치 독전대들의 무차별 처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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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독할 독'에 '싸울 전', '무리 대'를 사용한다. 여기서 독은 감독은 물론 제독의 '독'과도 같은 한자이다.[2] 군법에 따른 재판과 사형이 있었을 뿐이지 즉결처분 권한은 부작용 때문에 자주 쓰이지는 않았다.[3] 이들은 심지어 패망 직전인 베를린 공방전 중에도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니며 전투를 피해 피난가는 민간인들을 상대로 '조국 수호의 의무를 저버린 겁쟁이'란 명분을 들이대며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4] 이런 혼선이 지휘부에서 일어나면 완전 엉뚱한 곳으로 공격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그 예시로 이오시프 스탈린이 지도를 잘못 보고 별 볼일 없는 마을이 독일군에 점령당한 것을 이름이 비슷한 전략 요충지로 착각해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탈환을 명령한 적이 있다. 스타브카에서는 당연히 전략 요충지는 멀쩡하니 명령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스탈린은 강압적으로 대응해 결국 스탈린을 설득하기를 포기한 뒤, 소련군은 적잖은 사상자를 내면서 아무런 전술적, 전략적 가치가 없는 마을을 무리해 가면서 탈환했다. 더 황당한 건 스탈린은 탈환 보고를 받았을 때 시큰둥했다.[5] 다만 1950년대 초의 한국은 국민국가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를 끝내고 독립한 뒤 아직 국민들에게 뭘 크게 해준 것도 없는 신생국가였다. 전쟁에 나가라는 요구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지금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개전 직전 통과된 징병제에 반발이 거세기도 했었고.[6] 한 명은 총만 주고, 한 명은 탄약만 준다. 그걸 받고 안 가고 있으면 즉결 처분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