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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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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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바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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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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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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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바스 전쟁
War in Donbass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일부
파일:24.07.2020-eng.png
2020년 7월 24일자 돈바스 지역의 상황 지도 출처
베이지 색으로 표시된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가 반군의 통제하에 놓여 있다. MH17편의 추락 지점 또한 표시되어 있다.
기간
2014년 4월 6일 ~ 2022년 2월 24일 [1]
장소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러시아 로스토프주
원인
친러 성향 도네츠크, 루간스크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대립.
교전세력

(2014~2015)


[2]
지원국





지휘관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2014~2019)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19~)
아르세니 야체뉴크
올렉산드르 투르치노우
아르센 아바코우
발레리 헬레테이
빅토르 무젠코
미할로 쿠신
발레리 잘루즈니
안드리 파루비
발레틴 날리바이셴코
파벨 구바레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인민의 주지사 (2014)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국가수반 (2014~2018)
데니스 푸실린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국가수반 (2018~)
알렉산드르 보로다이
이고르 스트렐코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국방장관(2014)
블라디미르 안튜페예프
드미트리 트라페즈니코프
알렉산드르 아난첸코
블라디미르 파쉬코프
이고리 하킴쟈노프
블라디미르 코노노프
겐나디 칩카로프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인민의 주지사 (2014)
발레리 볼로토프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국가수반 (2014)
이고리 플로트니츠키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국가수반 (2014~2017)
레오니트 파세치니크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국가수반 (2017~)
바실리 니키틴
마라트 바시로프
세르게이 코즐로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영향
우크라이나인 92만 5500명 해외로 망명[62만]
우크라이나 내 실향민 141만 4523명 발생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확전
피해규모[3]

우크라이나
- 전사 및 실종 4600명 이상
- 부상 1만 명 이상
- 민간인 3300~1만 3천여 명 사망
- 민간인 3만여 명 부상 추정

친러 반군
- 전사 및 실종 5700명 이상
- 부상 1만 3500명 이상

언어별 명칭
우크라이나어
Антитерористична операція на сході України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대테러리스트 작전; 2014.4.14~2018.4.30)
Операція об'єднаних сил (합동 군사 작전; 2018.4.30~)
러시아어
Вооружённый конфликт на востоке Украины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무력 충돌)

1. 개요
1.1. 전쟁의 성격과 명칭에 관하여
2. 상세
3. 배경
4. 전개
5. 타임라인
6. 주요 교전 세력들
6.1. 친정부 세력
6.2. 반정부 세력
7. 러시아의 개입
8. 미국의 무성의한 지원
9. 기타
10. 여파
11. 매체에서
1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돈바스 전쟁돈바스 지역에서 2014년 4월에 발발한 친러 성향 반군 및 러시아군[4]우크라이나군 사이의 전쟁. 약 8년동안 지속된 전쟁으로, 2014년~2015년에 격화되었다가 그 이후로는 교착상태가 이어졌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함에 따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1.1. 전쟁의 성격과 명칭에 관하여[편집]


Oscar Jonsson과 Robert Seely(2015)가 '전영역적 분쟁'이라고 평한 것은 항상 러시아의 침공(invasion), 병합(annexation), 그리고 군사 및 기타 형태의 침략(aggression)으로 분류된다. 우크라이나에 '내전(civil war)'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설명할 때 '내전'이라는 용어를 오용하는 것은 세 가지 요인과 관련된다. 첫째, 러시아가 벌이는 군사적 방식을 비롯한 대(對) 우크라이나 개입을 부정하거나(denial) 또는 축소하는(downplaying) 것이다. 둘째, 러시아어 사용자들이 우크라이나화에 의해 억압받고 위협받으며 또한 동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문명을 공유'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Cohen 2019, 17). 셋째, 우크라이나 각 지방이 분리된 정도를 지극히 과장하여 이 나라가 '인공적인(artificial)' 창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Taras Kuzio, "Russian Military Aggression or ‘Civil War’ in Ukraine?"(Nov 27 2020)#[5]


(전략)지나치게 자주, 이 위기는 언어정책과 정체성 충돌 및 역사적 불만으로 야기된 우크라이나의 국내 문제라고 이야기된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라는 말이다.

틀렸다. 우크라이나는 국제적 침략자로서 우리의 집단안보를 위협하는 러시아 연방을 상대로 자기방어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전쟁은 이제 18개월이 지났고, 이제 우리는 실상을 좀 더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중략)

그리고 러시아의 지원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고 기능할 수도 없을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당국을 "반군" 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우리는 1930년대 만주국 "반군" 정부에 대해 일본의 침략을 언급하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1930년대 만주의 통합되고 독립적인 분리주의 운동의 미신에 관한 입발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만들어낸 "반군" 정부를 인정해서는 안된다(후략)

Rory Finnin[6]

, Thomas D Grant[7], "Don’t call it a civil war – Ukraine’s conflict is an act of Russian aggression", August 24, 2015 4.35pm BST#

이 전쟁의 영어 위키백과 표제어는 War in Donbas이다. 'War in Donbas'를 문자 그대로(literally) 번역하면 '돈바스 내에서의 전쟁'이니 즉 '돈바스 내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틀린 것이다. in은 그냥 전쟁이 벌어지는 지리적 범위를 한정시키는 전치사지, '~내에서의 전쟁(War in)'이니 어거지로 '내전(civil war)'이라고 오역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나 BBC##도 현재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War in Ukraine라고도 표현한다. 명백한 국제전인 이 침공도 저 논리대로라면 우크라이나의 내전이 된다.

이 전쟁이 내전이면 영어권에서는 War in Donbas가 아니라 그냥 Ukrainian Civil War(우크라이나 내전)라고 하면 될 것이다. Spanish Civil War, Russian Civil War처럼 말이다. 애초에 소위 반군은 러시아군 장교의 지휘를 받을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반군으로 위장한 러시아군이며 훈련도 무기도 러시아에게 공급받는 군대다. 러시아측이 "내전"으로 위장하느라 전투기 같은 하이테크 장비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었을뿐.[8]###

2. 상세[편집]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친러 반군의 목적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는 것 또는 러시아와의 합병이나, 우크라이나와 정부를 포함한 세계 대부분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공식 언론 보도에서는 주로 АТО(Антитерористична операція, 대테러리스트 작전)이라는 말을 쓴다. 이는 우크라이나 반군들을 정식 국가의 군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동시에 테러리스트로서만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2월 20일에 이 전쟁의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명칭이 “anti-terrorist operation”(ATO)에서 “taking measures to ensure national security and defense, and repulsing and deterring the armed aggression of the Russian Federation in Donetsk and Luhansk oblasts.”로 변경되었다. Goodbye, ATO: Ukraine officially changes name of Donbas war (2018.02.20.). 직역하자면 국가 안보와 방위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 및 도네츠크, 루한스크에서의 러시아 연방의 무력 침략 거부 및 저지 정도이다. 즉 서방의 지원유무와 무관하게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더욱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위해서 명칭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3. 배경[편집]


돈바스 전쟁은 2004년 오렌지 혁명,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러시아의 크림 반도 강제 합병과 연관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이 두 사건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만큼 전후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로마이단과 크림 합병 사건을 파악하고 이 문서를 보는 것이 좋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친러 정책에 반대한 친서방 성향 시위대가 정부의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반정부 시위를 계속하여 결국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친서방 과도정권을 수립하였다(유로마이단 혁명). 그러나 이에 반발한 친러계 주민들은 친러계가 주로 분포한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이 새로운 과도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그 와중에 러시아군이 전광석화로 크림 반도에 군사 개입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민 투표가 치뤄져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한 후 러시아에 합병되었다(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물론 우크라이나는 여기에 격렬하게 반발하였고, 아직도 계속되는 동부 지역의 반 키예프 분리주의 운동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으며 동부의 친러계 시위대 역시 분리주의 운동을 강경하게 주장하여 시위대들의 수 차례 충돌 및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러시아계가 대다수라 크림 반도 합병은 어느 정도 수월하게 진행됐지만,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우크라이나계도 섞여 있어서 어느정도 물밑 작업을 실시하였다.

이 와중에 의원과 청년 몇명이 친러 폭도에 납치됐다가 토막난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터졌다. 확실한 명분을 잡은 과도정부는 위기대책본부를 구성, 폭력사태의 주동자들을 테러범으로 규정하고 군을 투입했으며 초기에 군은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한 지역 봉쇄와 사태 안정을 위한 행진으로 국한됐지만, 조기선거로 포로센코 대통령이 당선되고 과도정부 체재가 종료되면서 본격적인 군사작전이 시작됐다.

동부지역의 분리주의 반군들이 장악했던 지역들 중 오데사하르키우 등 몇몇 곳은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군에게 진압되었지만, 도네츠크루한스크는 2014년 5월 12일 정부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분리독립 투표를 치러 가결하였다. 이후 이들은 '노보러시아 연방국'으로 통일을 선언했으나 도네츠크 측은 연방국가, 루한스크는 국가연합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분리주의가 형성된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의 부정부패, 돈바스의 몰락등에도 이유가 있다. 우크라이나 건국 초기만 봐도 돈바스는 이렇게 분리주의가 강한 곳이 아니였다. 실제로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결정하는 우크라이나 주민투표에서 이 지역 주민의 80% 이상이 찬성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돈바스의 몰락을 가속화했는데 1993년께 이르자, 돈바스 지역의 산업 생산은 거의 붕괴됐고, 심할 경우 임금은 80%나 하락했다. 심지어 이 지역은 인류가 몰락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할리우드 영화의 무대로 캐스팅될 정도였다. 또한 러시아와 가까운 지리적 위치 및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이 공존하는 지역적 특수성[9]은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돈바스 지역의 독특한 지방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후 돈바스는 꾸준히 자치를 요구해왔다#

4. 전개[편집]


2014년 4월 12일, 도네츠크 분리주의자들이 슬로뱐스크 시청을 점령하면서 발단이 시작되었다. 하르키우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도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봉기를 일으켰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조기에 진압하였다. 반면 도네츠크에서는 분리주의자들이 격렬히 저항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즉시 슬로뱐스크로 공세를 해서 도네츠크 분리주의자들을 격퇴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피해가 더 컸다. 도네츠크 반군은 54명이 전사하고 전차 1대를 손실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51명 전사, 40명 포로, Mi-24 공격헬기 4대 격추, Mi-8 수송헬기 2대 격추, An-30 수송기 1대 격추라는 뼈 아픈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심지어 오폭으로 교량 붕괴사고까지 일으켜 사상자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의 피해가 커진 이유는 도네츠크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곳곳에 바리케이드들을 설치해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때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직후에는 우크라이나 땅에 소련군 병기가 잔뜩 남은 탓에 우크라이나는 자기 국력으로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군사무기 일체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경제난과 부정부패 탓에 무기들 대부분은 폐기되거나 부패한 정치인들 손으로 해외 분쟁지역으로 팔려나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군은 가용병력과 장비가 크게 부족한 상태에 직면했고, 전쟁 전 기간에 걸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5. 타임라인[편집]


위키피디아에서 돈바스 전쟁의 경과를 일 단위로 정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의 발표를 주로 참고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이 반군 측의 공격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측의 공격 내용은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 정부 측에서 매일 갱신하는 전황 지도


5.1. 2014년[편집]




5.2. 2015~2020년[편집]




5.3. 2021년[편집]




5.4. 2022년 이후[편집]





6. 주요 교전 세력들[편집]



6.1. 친정부 세력[편집]


우크라이나 정부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파일:우크라이나군 엠블럼.svg
파일: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 엠블럼.svg
파일: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 엠블럼.svg
파일:우크라이나 보안국 엠블럼.svg
우크라이나 국군[10]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11]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
우크라이나 보안국

소련 붕괴 이후 소련군의 주요 유산들을 물려받아 우크라이나는 잠깐이마나 세계 3위 수준인 핵탄두(4800발)와 세계 4위 수준 군사력을 보유했었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러시아, 영국, 미국 등 핵보유국들의 반발때문에 대부분을 퇴역 및 폐기하였다.우크라이나 같은 신생 국가가 만일 핵무기 관리를 부실하게 하면, 최악의 경우 이슬람 테러리스트한테 흘러가 테러에 사용될 수도 있다. 핵을 골고루 나눠 가질 바에는 차라리 러시아같이 이미 핵을 많이 보유하였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강대국만 핵을 가짐이 낫다고 보았다. 따라서 진영을 막론하고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보유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핵탄두는 러시아로 반환됐고 핵투사 전력 대부분은 미국 감시 아래 폐기됐다.

부패한 정치가들이 320여억 달러어치에 달하는 주요 무기들을 중국(소련제 항공모함 랴오닝함)이나 분쟁 지역 등지로 팔아먹어서 자기 이익을 챙겼음도 우크라이나 군사력 약화에 한몫했다. 부패한 정치가들의 안일한 인식과 방산비리로 인한 국민들의 군에 대한 불신까지 겹쳐서 전쟁 준비태세도 당연히 약화되었다.

그나마 중장비는 운송도 어렵고 유사시 필요하기도 해서 대부분 남겨놓는 등 전쟁을 할만한 수준의 물자와 무기는 아직 가졌지만 예산이 없었다. 경제력 부족이 아니라 예산부족인 건 우크라이나의 지하경제 규모가 서민경제까지 퍼져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이걸 다 합치면 중진국 수준의 생활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쟁 중인데도 다른 분쟁국가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 중대한 인도적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도 보이는 경제규모보다 실제 경제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인데, 문제는 지하경제는 세금을 걷을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어찌됐건 궁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크림 사태 당시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군 차량 대부분의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실제 병력은 정부군과 민병대를 합쳐 20만 명대에 이르고 있지만, 물자 부족으로 인해 실제 투입 가능 병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태 초기 당시 우크라이나 육군 병력 4만 1천 명 중 실전 투입 가능 병력이 6천 명에 국한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전선에 정부군 외에도 자체적으로 조직된 의용군이 다수 참전하면서 통제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 의용군 중에는 '아조프 대대'[12]를 비롯한 네오 나치 세력도 존재한다.

그래도 서방과의 관계를 확고하게 하고 러시아를 상대로 대의명분을 가지기 위해 네오나치 세력들을 전쟁이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는 약화시켰으므로 2021년 기준으로도 이들이 우크라이나군 못지않게 영향력을 보이는 수준은 아니다. 애초에 의용군의 역할은 러시아와 반군의 공세에 맞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시민을 무장시키는 역할을 아조프 대대가 담당한 부분이 있어서 실제로 그랬는지는 의문.

2014년 당시 러시아군과 친러반군에게 계속 패퇴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이를 악물고 서방제 보병장구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장비들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자체적인 역랑을 총동원하고 NATO의 지원을 받아 군전력을 어떻게나마 현대화시키고 있다. 미군과 NATO로부터 체계적인 군사 훈련도 받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를 늘리고는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붕괴를 거울 삼아 우크라이나에 국제원조를 제대로 활용할 만큼의 최소한의 청렴도를 갖출 것과 도와줄 수는 있으나 결국 안보의 최종 책임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져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할 것을 요구한다.

6.2. 반정부 세력[편집]



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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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보스토크 대대 깃발(도네츠크 인민공화국).svg
파일:러시아 정교군 깃발.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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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자크
보스토크 대대
러시아 정교군[13]
러시아군

실제 병력은 10만 안팎으로 추정. 이 지역 인구 자체가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 조금 넘는 관계로 징병제를 실시해도 상시 유지 가능 병력은 수만 정도여서 이를 보충하기 위한 러시아에서 파병한 지원군의 수가 적지 않은데, 푸틴이 투입한 러시아군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 자발적으로 가담한 진짜 의용군도 있기는 한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지원군 중 국제법상 문제되지 않는 의용군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특수부대 위주로는 러시아군이 투입된 건 확실하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에게 붙잡힌 몇몇 러시아계 특수부대원이 러시아군 소속이라고 신분을 밝힌 바 있다. 정규군으로 간주되면 비밀 특수부대라 해도 포로 대우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증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 전쟁 초기에만 200여 명 이상이 우크라이나 땅에서 전사한 것으로 서구 및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언론이 추정하고 있다. 그 외에 국경을 넘은 러시아인 지원병들의 인명 손실 규모는 확실치 않다. 우크라이나 친정부 의용병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군과 친러 반군, 러시아 의용군도 네오 나치 세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 외에도 탈영한 우크라이나 대통령 친위대였던 베르쿠트 대원들이 반정부군에 합류했다고 한다.

서구의 대안우파와 파시스트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환영했다.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자인 리처드 스펜서, 매슈 하임바크[14], 데이비드 듀크 등은 푸틴을 찬양하고 그가 벌이는 전쟁을 옹호했다.

특히 스펜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유럽 극우파들의 모임을 조직하려고 했는데, 초청된 사람들 가운데는 러시아 언론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하던 독일의 네오나치 마누엘 오흐젠라이터도 있었다. 폴란드 파시스트 콘라트 렌카스(Konrad Rękas)는 푸틴의 유라시아 구상 전반과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했으며, 또다른 폴란드 파시스트인 로베르트 루시니아는 그와 함께 우크라이나가 유대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러시아의 선전 방침을 퍼뜨리려고 노력했다.

헝가리 요빅의 지도자는 알렉산드르 두긴의 초청을 받아 모스크바로 와서 유라시아를 찬양했고, 그리스 황금새벽당의 네오나치들은 러시아가 유대인의 국제적 음모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있다고 찬양했다.

반군 영내에서 러시아군의 최신 전차인 T-90이 대놓고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인데도 러시아는 계속 "휴가 나온 장병들이 의용군으로 참전하는 것이다" 라며 극구 부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친러 반군이 하도 인기가 없다보니 점령지 주민들을 위협해서 징용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아래 영상은 친러 반군 소속 소말리아 대대의 지휘관이자 도네츠크의 아이돌인 미하일 톨스티흐 중령인데 본명보다 기비(Givi)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이 직접 도네츠크 역에서 참호를 팔 사람들을 직접 '모집'하는 영상이다. 2017년 2월 8일에 우크라이나군의 로켓에 맞아 사망했다.
【접기/펼치기】
소말리 대대 병사: "총질해서 사람들 이목 좀 끌까요?"
기비: "처음부터 총 안 쏴도 돼."
소말리 대대 병사: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이목 끄는 것)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남자들은 우측으로 여자들은 좌측으로 줄을 세우고 그렇게 하면 남자들을 버스에 태울 수 있죠."
기비: "우리는 삽질할 사람이 필요해"
기비: "남친이랑 어디 가는지 말해 줄래?"
여자1: "우리는 됐네요."
소말리 대대 병사: "뭔 뜻이야? 우리도 이 일하는거 힘들어."
기비: "(아마 피난 가는 곳인 듯) 우리랑 같이 가는 게 어때? 좋아, 우리랑 같이 가자"
소말리 대대 병사: "그들이 당신을 기다려 줄 거 같아?"
여자2: "물론 기다려 줄..."
소말리 대대 병사: "너는 떠나겠지 겁쟁아, 너희들은 왜 조국을 지키지 않는 거야?"
기비: "너희들이 돌아왔을 때 너희들이 어떻게 조국을 지켰는지 떠들겠지 맞지?"
여자2: " 왜 5살짜리 애한테 그런 말을 해요?"
기비: " 애 아빠한테 한 말이야, 아빠는 조국을 지켜야만 해, 아빠는 그렇게 해야만 해, 또 러시아한테 도움 요청할거야? 그래 여기 왔다."
여자2: "아! 제발 좀..."
기비: "뭐?? xx"
기비: "참 잘난 여자들이야."
소말리 대대 병사: "맞아요."
기비: "이봐 친구, 참호 좀 파지 않을래?"
남자1: ...
기비: "이런 찐따 새끼."
남자1: "제가 허리에 문제가 있어서..."
기비: "우리 부대에는 60살 먹은 병사도 있어, 내 말 이해했지? 참호 안에서만 있으면 그렇게 건강할 필요 없어" (옆에 남자에게) 당신도 장애인이야?"
남자2: ...
여자2: "그는 자기 아들 데리고 나가는 거예요. (아들을 피난시키는 듯) 돌아와요."
기비: "나도 알아, 그러고 이렇게 하겠지!" "이렇게 묻겠지, 어디에 서명하면 돼요?(서명하고 떠나는 시늉하는 것처럼)"
기비: "거기 형씨, 마누라 치마폭에 싸여서 재미보는 기분은 어때?"
기비: "우리가 2차 세계대전에서 어떻게 이겼는지 알아? 우리는 함께 싸웠어, 내 말이 틀려? 그럼 어떻게 설명할래?"
여자3: "젊은이(기비), 당신 무기만 아니면 해 줄 말이 많아요."
기비: "나한테 뭔 말 해주려고?"
여자3: "제발 좀 우리를 보호하지 마, 누구한테 우리를 보호한다는 거야?"
기비: "아, 키예프로 가고 싶지?(우크라이나) 내가 당장 보내주지."
여자: "그래 나 거기로 가려고 하고 있는거야, 댁들이 우리를 보호한다고 하지 않았으면 그들도(우크라이나 정부군) 우리한테 포격을 할 필요도 없지."
기비: "그래, 내가 정말 데려다 준데도, 내 말 이해 못해?"

병사들이 기비를 말리며 역에서 나간다,

기비: "정말 충격적이야."
기비: "나는 저 겁쟁이 새끼들이 포격으로 죽였으면 좋겠어, 마지막 한명까지 다."

벤치에 앉은 아줌마들한테 다가가며

기비:"나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여자 2 흉내 내며) xx 도대체 왜 여기에 왔어!! 그러는 거야" (여자3 흉내 내며) "우리는 키예프에 가야 한다고요, 누가 우릴 지켜준다는 거죠?"
여자4: "그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거예요."
기비: "저 극우파 새끼들(자막에 banderite라고 하는 건 우크라이나 극우파를 말함) 좀 봐, 뭐라고 불려야 하지?" (벤치에 앉은 아줌마들을 가르키며) "당신들 좀 보라구, 평범한 여자들이잖아 틀려? 내 말이 맞지?" "또 내 총 치우라고 할꺼야?, 내가 이 총을 버리길 원해?, 나는 니 목구멍을 박살낼 수 있어!!"
여자4: "제발 그런 말 좀..."
기비: "뭘 쳐다보는 거야, 나는 니가 박격포 공격 받는 참호 속에서 쳐박아서 니놈을 터뜨려죽일 수 있어." "다른 놈들? 걔들은 지들 여자친구 뒤에 숨어서 보고 있겠지, 정말 충격적이야."

번역 출처: “우크라이나 정부가 용역을 모으는 영상". 제목만 보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징용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흔한 제목 낚시다.


7. 러시아의 개입[편집]




러시아는 돈바스 전쟁이 격화되기 전에도 현지에 병력과 무기를 지원하여 반란을 획책하였다. 처음 몇달간은 반군에게도 우왕좌왕하며 일패도지하던 우크라이나군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설마 동부에 러시아가 침공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데다가 반군이 군복을 입지 않아서 피아식별이 불가능했다.그러나 이후 크라마토르스크의 통제권을 되찾고 5월 27일에는 도네츠크 공항도 방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반군을 몰아붙이며 주요 요충지를 손쉽게 탈환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러시아군의 중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체계가 전개되면서 우크라이나군은 더 이상 일방적인 제공권을 바탕으로 분리주의자 반군을 폭격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호를리우카에 맹폭을 가하며[15] 공세를 가했지만 반군의 저항으로 결국 호를리우카를 탈환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 주민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현지 영상.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도로에 수많은 러시아 연방군 소속 장갑차와 트럭이 늘어져 있다. 출처

반군이 정부군의 공세로 수세에 몰리자 러시아 정부는 더는 묵과할 수 없어 반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병력을 보내 직접 개입했다. 러시아 대통령 소속 인권자문위원회는 러시아군 100여명이 8월 13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 스니츠녜에서 친(親)러시아 반군의 교전을 지원하다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위원은 러시아군이 트럭에 탄약을 싣고 가다 그라드 미사일 공격을 받았으며 부상자도 300여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또 유족 10여명과 현장을 목격한 군인들로부터 이런 증언을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소속된 인권자문위원회는 대통령 소속기구이기는 하지만 인권 사안을 다루고 있어 크렘린궁과 불편한 관계라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출처

8월 7일 우크라이나군은 일로바이스크에 대규모 공세를 가해 20일 친러 반군들을 격퇴해 일로바이스크를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군의 함정이었다. 일로바이스크와 교두보를 잇는 도로가 방치되자 러시아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로를 점령했고, 일로바이스크를 완전히 포위했다.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던 친러 반군이 아닌 러시아 정규군이 삽시간에 우크라이나군 본대를 포위해버리자 우크라이나군은 크게 당황했다. 포위망을 탈출하지 못한 우크라이나군 1400명은 보급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저항하다가 나중에 가면 보급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일로바이스크에 고립되었다.

러시아군은 일로바이스크 전투를 새로 도입한 무기 체계와 전술의 실험실로 활용했다. 특히 러시아군이 대대전술그룹(Battalion Tactical Group)이라는 일종의 모듈형 제병 합동 기동 부대들을 실험적으로 투입해 큰 효과를 거두었다. 러시아군 신형 T-72B3 전차들은 우크라이나군의 구형 T-64B 전차를 압도했으며 정보전력도 앞서있었다.

러시아군 무인정찰기(UAV)들이 정확하게 우크라이나군 좌표를 따낸 뒤 러시아군 포병들이 우크라이나군을 정확히 포격했으며 전자전까지 벌여 우크라이나군의 전술 통신망을 무력화시켰다.# 또한 현지의 반군을 보조전력 및 정보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인한 사상자 수는 경미했지을지언정, 그 과정에서 장비를 많이 손실하며 당장 우크라이나군이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는 수단이 소멸되었다.

결국 우크라이나군은 반군 및 러시아군과 평화협정을 맺어 푸틴에게 철수로를 약속받았으며, 차량 60여 대에 분승하여 도시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또한 반군과 러시아군의 함정이었다. 러시아군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기에 우크라이나군에게 갑자기 무장해제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의용군 대대들을 남겨놓고 퇴각할 것을 요구했다. 돈바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군은 사실상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반군과 러시아군을 맞이했다. 때문에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직접 부대를 창설하여 돈바스 지역의 전선에 파병되었고, 이들을 의용군 대대라고 한다. 2014년 당시 창설된 의용군 대대는 82개가 있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이 당연히 거부하자 러시아군과 반군은 바로 공격하여 그들을 전멸시켰다.


전투 현장을 기동중인 러시아군과 돈바스 반군. 곳곳에 파괴되고 유기된 우크라이나군 차량들이 보인다.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시신도 있으니 주의.

일로바이스크 전투는 우크라이나군에 끔찍한 손실을 안겨주었다. 우크라이나군은 366명이 전사하고 429명은 부상, 128명은 생포, 158명은 실종되었다. 우크라이나 내부 조사에 따르면 피해가 더 심한데 우크라이나군 1천여 명이 "전사"했으며,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해당 전투를 두고 고기 분쇄기라고 부를 정도였다. 사실 일로바이스크 전투는 러시아군과 반군이 평화협정을 맺어 철수 중인 적군을 공격하여 무참히 살육한 전쟁범죄였다.

승승장구하는 우크라이나군의 보고를 받고 영토를 탈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던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들은 참패에 큰 충격을 받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으며, 우크라이나 의회는 패배에 관한 청문회를 개최했고, 10월 14일에는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발레리 헬레테이(Valeriy Heletey)가 작전조율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일로바이스크 전투에서 우크라이나에 파멸적인 피해를 안겨주었던 러시아 제98근위공수사단은 2022년 러시아의 침공에서도 침략의 첨병에 섰지만, 그동안 절치부심했던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이번에는 역으로 포위되었다. 이에 98공수사단은 육군의 64차량화보병여단과 함께 부차 학살까지 자행하며 발악했다. 하지만 결국 우크라이나군은 휘하의 331공수연대를 전멸시키고 그 연대장마저 사살하며 일로바이스크의 복수를 이루었다.

일로바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철수가 진행 중이던 8월 29일에는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침공 중#이라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물론 러시아는 부인했으며, 보도 당시 병력 규모는 1천여 명으로 추산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우크라이나 돈바스 영내에서 반군으로 위장한 러시아군 수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대다수는 일단 러시아 측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인 의용군이었지만 각종 중장비로 무장한 이들의 존재가 의용군이라고 믿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고, 또한 이 보도를 통해 세계는 비로소 우크라이나가 "내전"을 겪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평화적인 분쟁 해결 목소리는 사라지고 강경론이 대세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는 "전날 러시아의 전차와 장갑차가 국경을 넘어 남동부의 노보아조우스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군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 병력과 정부군에 퇴각 명령을 내린 상태"라고 밝혔다. 사실상 노보아조우스크를 빼앗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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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가 공개한 위성 사진.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기갑 부대가 이동하는 모습이다. 확대한 부분(붉은 사각형 안)에서 러시아군 장갑차·탱크 등이 보인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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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새롭게 남동부 해안 지역(마리우폴, 베지멘네, 노보아조우스크)을 뺏겼다. 정부군에 갇힌 친러 반군이 우크라이나의 남동 해안부 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단 러시아군은 의용군이 추가파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러시아 정예 공수부대원이 생포되기도 하였으며, 그가 기자 회견을 하기도 하였다. 출처 우크라이나는 이들 러시아 병사들을 본국으로 보내주었다. 러시아는 이들의 우크라이나 침입 자체는 인정했지만 "국경지대를 순찰하던 중 의도치 않게 국경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출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에게 반군들을 계속 공격할 시, 전술 핵무기를 우크라이나군에게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하였다.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에 의하면, "러시아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계속되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에 대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진입 여부 논란과 관련, 러시아군이 징집병들에게 우크라이나 파병을 위한 동의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모스크바 남쪽 툴라 지역 병사들의 어머니회가 폭로했다. 어머니회는 현지 방송 '도즈디'에 툴라 지역 한 부대에서 병사들로부터 동의서 서명을 받으면서 자발적으로 서명한 8명 이외의 다른 병사들에겐 강제로 서명케 하거나 부대 지휘관들이 대신 서명했다고 말했다. 출처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러시아 어머니들에 대한 기사도 나오고 있다. 출처출처2출처3출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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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러시아 어머니가 크렘린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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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아들이 거기 싸우고 있나?" 러시아 병사인 아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다는 소식에 울고 있는 러시아 어머니. 참고 물론, 러시아 정부와 언론은 계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유럽연합(EU)의 조제 마누엘 바호주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우크라이나 수도(키이우)를 2주 안에 점령 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러시아는 이에 대해 발언 자체는 사실이나 전체 문맥과는 상관 없이 인용돼 다른 의미로 전달되었다고 주장했다. 출처 러시아 관영 언론과 정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일부 언론과 블로거들은, 자국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출처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러시아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개입은 기정 사실이라며 "러시아 정규군과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개입되어 있다. 포격이 있었고, 탱크가 움직였고, 공습이 있었다. 이게 전쟁이 아니면 뭐냐"고 말하였다. 출처

9월 5일, SNS로 러시아 공수부대원이 우크라이나 내에서 인증샷을 올렸다. 전쟁 수행 여력에 차질이 빚어진 우크라이나는 결국 9월 5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 아래에 민스크 협정을 체결해 러시아, 돈바스 반군과 정전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그러나 돈바스 반군과 러시아군은 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도네츠크 공항에 2차 공세를 가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숫적 열세에 처한 상황에서도 잠도 안자고 초인적인 수준의 방어를 계속 해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서는 1월 16일을 사이보그(도네츠크 공항에서 최후까지 방어를 한 우크라이나군을 부르는 별명) 추모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군과 돈바스 반군의 거침없는 공세를 막아낼 순 없었고 결국 2015년 1월 21일, 도네츠크 공항을 점령당하게 된다.

한편 2015년 1월 14일, 우크라이나군의 교도부 데발체베[16]에 우크라이나군의 3배에 달하는 돈바스 반군과 러시아군이 포위섬멸을 시도하면서 또 다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데발체베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잇는 철도 교통요충지이므로 우크라이나군은 물론 돈바스 반군과 러시아 입장에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데발체베에서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이는 우크라이나군.

돈바스 반군은 우크라이나군으로 위장한 채 우크라이나군 보급로에 파괴 공작을 걸며 우크라이나군을 약화시켰다. 우크라이나군은 전략요충지인 데발체베 돌출부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고 OTR-21 토치카 탄도미사일까지 쏘아대었다. 그러나 러시아군과 돈바스 반군의 공세는 거침이 없었고 데발체베와 외부가 연계되는 유일한 고속도로가 러시아군에 의해 장악당하면서 6천여 명의 우크라이나군이 또 포위되어 버렸다.

데발체베에는 러시아군의 끊임없는 포탄 세례가 쏟아졌고 러시아군 전차들은 우크라이나군 방어선을 돌파해 우크라이나군을 유린해버렸다. 우크라이나군이 전차와 장갑차들로 반격을 가하려고 하면 민가에 숨어있던 러시아군 대전차보병들이 기습을 가해 큰 피해를 주었다.

게다가 데발체베 전투가 아직 진행 중인 2월 12일, 앙겔라 메르켈프랑수아 올랑드의 중재하에 벌어진 2차 민스크 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는 외교적 패배를 경험하고 만다. 특히 돈바스 반군에 대한 더 많은 자치권 보장이 명시된 해당 회담은 반군을 섬멸시키려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에게 뼈아픈 정치적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 회담 이후에도 러시아군과 반군의 공세가 벌어져 우크라이나군은 큰 피해를 입었고 결국 철수하면서 데발체베를 둘러싼 전투가 20일에 러시아군의 승리로 끝이 난다. 다만 일로바이스크와 달리 러시아군과 반군은 우크라이나군의 철수를 방해하지 않았다.

데발체베 전투는 일로바이스크 전투만큼 우크라이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우크라이나 자체 집계로는 179명의 병력이 전사하고 110명이 러시아군에 생포당했으며 데발체베를 완전히 러시아군과 돈바스 반군의 손에 넘겨주어야 했다. 이것은 정부측의 집계이며, 다른 주장에 의하면 전사 269명, 실종 81명, 부상 508-668명, 포로 112-121명으로 일로바이스크 전투 못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은 패배했을지언정 오합지졸 군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군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치열하게 잘 싸워주었고 이로 인해 돈바스 반군과 러시아군의 피해가 커졌다. 일로바이스크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150명 이상이 전사했고 데발체베 전투에서도 70명 이상이 전사하는 등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쉬로키네를 공격하는 아조프 대대.

그러나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고 양측의 무력행위는 완전히 중단된 것이 아니었다. 2월 10일, 우크라이나군이 쉬로키네 지역에 공세를 가하면서 몇 달간 양측의 치열한 공방전이 개시되었다. 2015년 7월 3일, 결국 쉬로키네 지역에서 돈바스 반군이 철수하고 해당 지역이 비무장지대로 설정되면서 양측의 전투는 종결되었다. 돈바스 반군은 110명 이상이 전사하고 우크라이나군은 70명이 전사했다.


마린카로 공세를 시작하는 돈바스 반군.

2015년 6월 3일, 이번에는 돈바스 반군이 정부군이 통제중인 마린카로 공격을 시도했다. 러시아군의 개입이 없는 돈바스 반군의 단독 공격이었다. 데발체베 전투 이후로 양측이 전차와 장갑차까지 동원한 중규모 이상의 전투였다. 돈바스 반군은 한때 마린카를 장악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다시 밀려났다. 이후에는 양측 간의 산발적인 교전 외에 이렇다 할 전투가 전무했으며 그동안 우크라이나군은 미국과 서방세계의 지원에 따라 전투력을 상승시켜나가며 실력을 다져나갔다.

한편으로는 위기가 고조되었다가 다시 완화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2016년 10월, 우크라이나 측에서 노보로시야군 기지에 대한 항공촬영 사진을 공개하며 러시아군만 사용하는 UR-77 공병전차가 식별되었다면서 사실상 러시아 정규군이 개입한 증거라고 제시하였다. 또한 러시아 공수군 포로의 인터뷰 역시 공개하였다.

2020년에는 3만 명이 주둔한다고 추정하였다. #

8. 미국의 무성의한 지원[편집]


얼핏 보면 러시아의 팽창에 대해서 미국에서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고 있는 중으로 보일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제스처 수준에만 머무를 뿐이라는 회의적인 시선들도 나오고 있다. 왜냐면 미국이 제스처만 열심히 취하고 적극적인 지원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최대한 회피하는터라,# 우크라이나 친서방파 입장에서는 복장 터지는 상황이다. 즉 트럼프 정부 초기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보다는 친중국가 파키스탄에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원조하는 상황이었다. 2018년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금 총 8억 달러 삭감, 중단했던 우크라이나 군사비 원조 재개 2억 5천만달러 책정.

또 다른 비교 사례로 미국이 이스라엘에 원조하는 군사원조 금액은 1년에 38억 달러 정도에 이른다.#[17]

상식적으로 따진다면 미국이랑 내전으로 국가가 파탄난 시리아나 수니파 아랍 국가들까지 적으로 두고 있고 미국의 강화된 경제제재를 받아 이스라엘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는 이란과 가내수공업으로 로켓 만드는 하마스헤즈볼라를 상대하는 이스라엘보다 세계 군사력 2위 러시아를 상대해야 하는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원조 액수가 가야한다. 하지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로 지불하는 금액은 이스라엘의 그것에 15분의 1도 안되는 수준에다가 그마저도 매년 지불되는 것조차 아니다.

사실 이는 미국 입장에서야 우크라이나가 시리아나 레바논처럼 돼서 러시아 국력을 자석처럼 빨아먹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동부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살고 있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입장에서만 중요하지 미국 입장에선 중요하지도 않으며 폴란드 등 중동부 유럽에서부터 러시아 방어에 나서도 충분히 서유럽 핵심 동맹국들 방어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경제나 사회가 안정화되어봤자, 미국 입장에서 손해가 되었으면 손해가 되었지 전혀 이익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멸망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지원하고 그 이상의 지원은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파키스탄의 경우 인도양을 마주하고 있고 만일 파키스탄이 아예 중국의 속국화가 된다면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이 틀어질 수 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아프간과의 접경지대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들의 온상이기에 이들이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노획한다면 상상하기도 힘든 대재앙이 터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파키스탄이 중국에 종속되는 것을 막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핵무기를 장악하는 핵재앙이 발생하는 것을 저지해야 하기에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많은 원조를 주는 것은 미국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경우는 절대 상식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미국의 예외적인 특혜를 받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오래전부터 미국내에서도 이미 이스라엘은 막대한 지원을 안받아도 되는 부유한 국가인데도 계속 미국에게서 막대한 지원을 제공받는 비정상적인 외교 관계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좋든 싫든 간에 미국이 대중동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필요한 나라이다. 더군다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카슈끄지를 암살하면서 사이가 악화되었고 터키의 경우 에르도안이 반미, 반서방 정책을 수립하면서 미국과의 사이가 틀어졌기에 실질적으로 중동에서 기댈 우방은 이스라엘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미국 내 유대인들, 친이스라엘 로비 단체의 로비 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

돈바스 전쟁에서 미국이 보인 무신경함은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여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미국은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에 약 179억 달러의 안보 지원을 약속했는데, 그 중 151억 달러는 2월 24일 침공이 시작된 이후에 약속한 것이다.


9. 기타[편집]


이 전쟁은 매우 특이한 선례를 가지고 있다. 바로 공개적인 스트리밍을 통해서 부족한 물품을 지원받는다는 점인데,# 사실 이런 식의 기부금이나 군수물품을 민간의 도움으로 보급받는 건 ISIS알카에다 등 조직이 부실하고,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집단들이 해왔던 일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조직이 부실하지도 않고, 명분이 있음데도 공개적으로 지원을 호소해 개인들로부터 기부금이나 군수물품을 보급받아 전쟁에 활용하고 있다.

다만 위 문단은 오해가 있는 것이, 군수물자의 상당수를 민간 기부나 사비를 털어 확보하는것은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아닌 아조프 연대같은 민병대, 준군사조직의 얘기고, 우크라이나군은 당연히 정규군인 만큼 자체적인 체계와 보급이 근간이다. 물론 부족했던 만큼을 민간에서의 전폭적인 지원과 희생으로 채운것은 사실이지만, 근대국가의 역사에서 이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좁게는 방위성금기, 넓게는 6.25 전쟁의 비슷한 예시가 넘친다.

밀덕들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특이한 전쟁이다. 오랫동안 소련의 주력 전차 자리를 놓고 정치적 분쟁을 벌이던 T-64 - T-80 계열과 T-72 - T-90 계열 전차가 이번에는 서로 포격전을 하면서 기구한 집안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T-80 계열 공장이 우크라이나에 위치하고, 러시아의 공장은 모조리 문을 닫은 통에 러시아에서 80계열의 명맥이 끊겨버리고,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공장은 80계열을 계속 마개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전쟁에 대한 논문에 의하면 동세대의 T-64, T-72, T-80간 교전에서의 교환비는 1:1 수준이라 한다. 하지만 현대화 개량을 받은 T-72의 경우 평균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의 구형 125mm 전차와 3대1 정도의 교환비를 실전에서 선보였고 러시아군에서는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위키나 밀리터리 사이트에서 걸고 넘어지는 사소한 마이너 스펙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동세대의 구형 T-64, T-72, T-80간 실전 전투력 차이는 거의 없다는 평가도 있다.

보병들의 화력전도 상당히 특이한 양상이었는데, 보통 보병들이 가용할 수 있는 최대의 화력은 단연코 박격포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경우, 어느나라 군대에서든 흔히 볼만한 분/소대형 60mm 박격포나 중/대대형으로 쓰이는 81mm 박격포조차도 자주 보이지 않았다. 여건 상 박격포를 편제에 넣을 화력이 부족해서 라기에는 박격포 만큼 가성비가 뛰어난 무기가 없기 때문에 상당히 의문스러운 부분. 후술할 무기들이 더 가성비가 뛰어나거나, 그렇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들은 참호와 진지를 구축한 다음, 상급 부대의 화력지원을 기대할 수 없거나 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라면, 현장 인원들이 독자적으로 그 부족한 여건 속에서 특이한 방식으로 화력을 끌어모은다. 러시아 AGS 계열의 고속유탄기관총박격포 대용으로 사용한다. 매우 고각으로 사격해서 유탄이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게 흩뿌리는 것. 정부군과 반군을 막론하고 저렇게 쏘는 것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다만 영상에도 나오듯이 감으로 일단 쏘고, 착탄지점 근처에 있는 병사가 무전으로 어디 떨어졌는지 알려주면 거기 맞춰서 또 감으로 각도를 수정하는 방식이니 명중률은 당연히 엉망이다.

또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전쟁들에서 그랬듯이 RPG-7이나 RPG-22 같은 대전차 로켓 탄두를 미리 개조해두었다. 영상 설명과 댓글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위험한 행위다. 이러다 사고가 난 적이 몇번 있다보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그냥 애초부터 탄두가 개조된 버전으로 생산해준다는 카더라도 있다. 이렇게 개조하여 최대사거리를 늘린다음 하늘에 대고 적을 향해 발사하기도 하며, 소련제 대전차 소총들까지 동원하는등, 정말 화력우세와 사거리 확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선에서 전투하는 장병들이, 주먹구구식 교리까지 정립해 쓸 정도로 노력을 다한다는건 그만큼 우크라이나는 군대 자체에 보병들의 화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국 육군이나 해병대의 보병 출신인 군필자들이라면 잘 체감했겠지만, 보병교리가 가장 낙후되고 취약하다는 한국군만 해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다.

한국은 상술한대로 보병대대 예하에 다수의 60mm 박격포와 81mm 박격포,[18] K4 고속유탄기관총을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 노후된 90mm 무반동총까지 현궁 대전차미사일로 교체하고 있는 중이다. 결정적으로 한국은 좁은 영토 특성상 인접 부대와의 제병협동 작전을 벌이는 것을 기본 교리로 삼고 있고 기갑과 포병, 항공 장비의 수는 우크라이나군과는 비교도 안 되게 월등한 편이므로 비교적 화력지원 요청이 어렵지 않은 편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한국군보다 훨씬 열악한 여건 속에서 더 적은 수의 군대로 남한면적의 6배나 되는 국토를 방위해야 하는 입장인데, 돈바스 지역에 전쟁이 발발하고 장기전으로 이어지면서 그곳에 화력을 분배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단, 소강상태로 진입한 현재에도 이런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심지어 제식 채용된 지 100년도 넘은 PM M1910이 다시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식명 그대로 제식 채용 연도가 1910년, 그러니까 소련 시절도 아니고 무려 러시아 제국 시절이다!(M1911과 비슷하다.) 물론 생산은 소련 성립 후에도 계속되어,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생산되었다곤 하지만 기관총이라 해도 CZ Vz.26도 아닌 이런 할아방탱이를 갖다 굴리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전쟁 전까지 우크라이나가 이 기관총 3만 5천 정 가량을 치장물자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선이 고착화되자 2016년부터 이를 꺼내서 공식적으로 재도입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정치가들이 부패로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재래식 병기들을 세계의 분쟁지역에 팔아넘겼던데다가 2000년대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고 자주 군사합동훈련도 하는 사이였다.

즉, 우크라이나는 자국이 급격한 친서방 정책을 펼칠 시 러시아와 전면전 수준의 분쟁이 터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안보불감증에 시달린 상태에서 제대로 된 무기들을 보유하지 못했고 러시아에 제대로 허를 찔린 것이다.

우크라이나나 친러진영 모두 소형 민수용 무인기를 활용해서 정찰을 하거나, 작은 폭탄을 달아서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때 크고작은 무인기들과 인터넷의 연결이 매우 유용하다는 전훈을 얻었고, 러시아군의 침공이 시작되자 확보해둔 무인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영국이 돈바스 전쟁중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무기를 대량 수출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하원 무기수출통제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 면허가 251건이나 유지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저격용 총기와 야간투시경 등이 공급됐다고 밝혔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제재 조치에도 러시아와 1억 3천만 파운드, 2300억 원 규모 무기수출 거래를 유지해 전년도보다 오히려 52%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영국 상무부는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 면허를 다시 검토하고 있으며, 아직 유지되고 있는 면허는 모두 상업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상무부 대변인은 또 대공화기를 비롯한 일부 무기는 브라질 해군으로 인도될 예정이며, 러시아군에게는 어떤 미사일이나 미사일 부품도 수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12억 유로(약 1조 6600억 원) 규모의 상륙함 수출 포기 압력을 받았던 프랑스의 집권 사회당은 이런 소식에 "캐머런 총리의 위선이 드러났다."며 반격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비난여론에 부딪히면서 우크라이나 동부에 군사개입하는 벼랑끝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러시아 국민과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지지세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 동부에 군사개입을 단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푸틴의 지지율이 아주 살짝 감소한 적 있다. 지지율이 81% 이상에서 79% 정도로 하락.

일반 국민뿐 아니라 크림 반도 합병에 열광했던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러시아 극우세력 LDPR[19]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 등 친러세력의 개입 요청에 부응하지 않은 것을 두고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푸틴 대통령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브레인'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두긴은 이달 초 미 시사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에 개입하지 않으면 푸틴 대통령은 끝"이라고 일갈했다. 두긴의 일갈은 스티븐 F. 코헨의 "우크라이나를 서방에게 빼앗기는 그날로, 푸틴이 지금까지 이룩했던 모든 업적들과 역사에 남을 입지, 기반은 모두 무(無)가 돼버린다." 는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두긴은 미국 중심 가치관에 대항하는 '유라시아주의 사상'을 주도한 인물이다. 영국왕립국방연구소(RUSI)의 러시아 연구원 이고르 스투야긴은 "푸틴 대통령이 국민의 기대치를 너무 높여놨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기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자국내 구심력을 유지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은 (크림 반도 합병에 이은) '새로운 승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보로시야 측에서 부상당한 주민들을 돌보다가 우크라이나군에게 간호사가 고문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SNS에 여성 간호사의 사진을 올렸는데, 해당 사진의 주인은 사샤 그레이라는 포르노 배우 사진이었다. 즉 빼도 박도 못할 가짜 뉴스.

우크라이나 축구협회가 크림반도에 있던 축구팀들을 러시아에 강탈당했다고 FIFA에 제소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 다만 세바스토폴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팀들도 친러 성향의 팬덤이 형성된 팀들이다. 미국과 유럽은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친러세력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푸틴의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격추 사건의 진상을 둘러싸고 서방과 대립이 깊어지면 추가제재에 직면할 상황이지만 애국심에 기반한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친러파를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무장세력의 3분의 1은 러시아 출신 의용병이다. 지도부 역시 대부분이 러시아 출신이다. 일례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전투를 지휘하는 러시아 출신 이고르 스트렐코프 사령관은 체첸 분쟁에도 참여했던 사람이다. 푸틴 정권의 통제 아래 있는 언론매체가 친서방 우크라이나 정부를 '파시스트'로 칭하면서 러시아계 주민이 탄압받고 있다고 연일 보도해 러시아인들의 참전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비슷한 일이 자국에도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가상으로 친러파 준동에 대처하는 훈련을 2015년 6월에 시행하였다 시위 진압부터 내전 상태, 더 나아가 정규전까지 이르는 상황에 대해 훈련을 시행했다고 한다.# 갑갤 짧은 해설 미국 등의 서방권 커뮤니티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을 풍자하기도 했다.#(삭제됨) 구글 이미지 검색

우크라이나의 페미니즘 단체 페멘이 돈바스 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로 도주했다는 주장이 한국 커뮤니티상에서 횡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페멘이 우크라이나를 떠난 것은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지기도 전인 2013년 8월 30일의 일이며#, 당시 페멘은 키이우의 사무실을 폐쇄하면서 그 명분을 '자신들의 삶과 자유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들었다. 페멘에 따르면 실제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은 2010년 조기 대선에서 승리한 후로 페멘 소속 활동가들을 위협하려고 했으며, 2013년 8월 27일에는 우크라이나 경찰당국이 (역시 페멘의 주장에 따르면) 조작된 무기소지 혐의로 처벌하려 시도했다.

즉 페멘은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떠난 것이며, 오히려 페멘은 돈바스 전쟁이 한창이던 2014년 여름 키이우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페멘의 활동 약화는 돈바스 전쟁보다는 지도부 중 한 명이 자살해서 이를 복구하지 못한 데 있다. 이러한 허위정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발발 이후 더 유포되었다.


10. 여파[편집]


전쟁의 여파와 친러 반군의 막장 운영으로 친러 괴뢰국의 점거지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지역과 러시아로 각각 141만 4798명, 92만 5천여 명이 피난했다고 한다. 그래서 반군의 점령 지역은 전전에 해당 주의 인구밀집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칭 공화국들의 주민을 모두 합쳐도 180만 명에 불과하단 추측도 있다. # 단, 해당 추측은 돈바스의 생활수준이 전쟁으로 인해 크게 추락하였으므로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보다 실제 출생률이 훨씬 낮을 것이 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출생률을 그대로 대입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이 당시 탈출한 난민들이 몰려서 마리우폴이 크게 확장됐는데, 이 마리우폴 주민들이 고향을 파괴한 러시아를 향한 증오와 우려를 계기로 결성한 것이 아조프 연대다.

전쟁중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보여준 무력한 모습, 그리고 러시아군과 반군의 적대행위는 당시 우크라이나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다행히도 우크라이나는 이때의 실패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8년간 노력한 덕에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군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돈바스 전쟁의 경우 아이러니 하게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상대로 선전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되는데 우크라이나군의 경우 8년간 진행된 돈바스 전쟁을 통해 다량의 실전경험을 얻고 친러 반군과의 전투를 통해 러시아군의 전투교리 체계를 파악한다. 또한 미국 그리고 서방과의 교류와 나토군 교관들을 통해 나토 신속 대응군 교리와 체계를 우크라이나군에 이식하고 그리고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같은 서방제 무기들을 도입했으며 돈바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교들을 초고속으로 승진 시키는 동시에 아조프 연대의 정규군 편입과 우크라이나군 공수군 규모를 8개 여단으로 확충하는 군제개혁을 단행한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능력있는 군수뇌부와 장교층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또한 군대 역시 나토군의 전술을 세련되게 구사할 수 있늘 서방권 군대로 변화해 세계 국방력 2위의 러시아군에게 큰 타격을 가한다.

11. 매체에서[편집]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이 사태를 다룬 우크라이나 감독 세르히 로즈니챠의 영화 돈바스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주목할만한 시선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다음영화 정보

이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로 '클론다이크'가 있다. 부국제 예고편 돈바스 지역 내 친러 주민과 친우크라이나 주민간 갈등과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사건,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피해 등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로,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다. 여담으로 영화의 제작진들 역시 러시아의 침공 이후 대다수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우크라이나측에서 제작한 93: the Battle for Ukraine이 있다.영상,영상


12. 관련 문서[편집]


[1] 2022년 러시아와의 전면전으로 확전.[2] 2022년 2월 22일 이전까지 위장부대 투입 및 물자를 보급하여 반군을 지원함. 푸틴의 파병 명령으로 참전이 기정사실화되었고, 이후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62만] 2009명 러시아로 망명[3] 단 우크라이나군과 반군의 사상자는 모두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발표에 근거한 것이다. 반군 측은 정확한 피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4] 러시아군의 돈바스 파병은 이미 여러 언론이나 연구자들을 통해 확인되었다. Sustained fighting erupted in eastern Ukraine that summer, amidst compelling evidence of Russian military involvement#. 2022년 침공 전에 이미 일로바이스크 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러시아군의 투입이 확인됨#. 2014년 중순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해방지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러시아는 하이브리드전을 파하고 전면군사개입으로 전환함#. 2015년 3월 3일 로이터 기사에 따르면 1만 2천여 명이 돈바스에 주둔함#. 돈바스에 파병된 러시아군을 분석한 마크 갈레오티의 저서#.[5] 타라스 쿠지오는 영국 출신의 우크라이나 정치, 경제 및 안보 전문가이다. 현재 그는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 Canadian Institute of Ukrainian Studies의 선임연구원(Senior Research Associate)으로 재직 중이다.[6] 케임브리지 대학교 우크라이나학 부교수[7] 케임브리지 대학교 울프슨 칼리지 선임연구원[8]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다뿐이지 하술할 일로바이스크 전투를 보면 드론도 운용해서 우크라이나군 기갑부대의 좌표를 따 전투에 활용하는 등 일개 반군이 가능한 차원을 넘었다.[9]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 전역에 거주하지만 돈바스와 크림반도에 특히 집중적으로 분포한다.[10] 육군, 공군, 해군, 공수군으로 구성됨. 의용군인 지역방위대대 44개 포함이다.[11] 우크라이나 내무부 산하. 의용군인 국가근위대대 3개 포함.[12] 시작은 의용군이었지만 이후 내무부 산하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에 편입되었다.[13] Русская православная армия(Russian Orthodox Army), 러시아 출신으로 이뤄진 민병대로써 서방에서는 사실상 러시아군으로 간주되고 있다.[14] 신세대 백인주의 지도자로서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에서 '큐어넌 샤먼'으로 유명해진 제이크 앤젤리 옆에 나란히 서서 의회 경찰과 대치했던 사람이다.[15] 이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16] 러시아어로 데발체보. 2014년 7월에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했던 지역이다.[17] 아이언돔 문서를 참고하시면 아시다시피 실질적으로는 이보다도 더 많은 액수로 볼 수 있다.[18] 게다가 신형 모델도 등장해 2020년대 부터 군에 실전배치되고 있다.[19] 러시아 자유민주당.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부르짖는 극우파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