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부산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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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가사
4. 해외에서의 인기
5. 그 외



1. 개요[편집]



30주년 기념에 수록된 버전

조용필의 데뷔곡이자 최대 히트곡 중 하나. 롯데 자이언츠의 대표 응원가이며 부산광역시를 상징하는 노래 중 하나다.


2. 역사[편집]


법원이 인정한 가사 표절 판정곡이다. 정확히는 이 곡의 작사 겸 작곡가 황선우가 가사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판정이다.[1] 사연은 조금 복잡한데, 이 곡의 창작, 편곡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작곡가 황선우가 1969년에 처음 이 곡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제목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황선우는 이 곡을 통영 출신의 가수 지망생이었던 김해일(본명 김성술)과 음반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김해일이 "통영과 관련된 노래를 부르면 통영시[2]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하여 제목을 "돌아와요 충무항에"라고 바꾸고 이 곡에다가 김해일 본인이 가사를 작사한 후 김해일 본인이 직접 노래를 불러 <유니버어살레코오드사>가 1970년 12월16일에 발표했다.#[3]

다만 "돌아와요 충무항에"는 당시에 거의 전혀 알려지지 못했는데, 지금의 곡과는 달리 다소 늘어지는 반주였고, 가수였던 김해일은 음반 발표 후 별다른 활동을 안 하다가 군에 입대를 했고, 1971년 휴가를 나왔다가 대연각 화재사건 때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사망 후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은 음반을 전부 회수해 불사르면서 묻혔다가, 훗날 김성술의 친구가 간직하고 있던 음반이 세상에 다시 드러난다.# # KBS 방송자료실에도 보관되었던 모양이다.#

작곡가 황선우는 이 곡이 사장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1972년에 이 곡을 다시 김트리오의 멤버였던 조용필에게 줬다. 황선우는 제목을 원래 자신이 원했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고 바꾸고 가사도 일부 수정하여 1972년에 발표했다. 하지만 이 때도 곡은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다. 이 1972년 버전은 일명 "돌아와요 해운대에"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2절에 해운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1972년 "돌아와요 해운대에"라는 제목으로 당시 조용필과 이남이 등이 팀을 이룬 김트리오에게 넘겼다는 설이 있다.#)

4년 후인 1976년 조용필이 다시 이 곡을 빠른 템포로 편곡하고 가사의 일부를 수정하여 본인의 독집 앨범에서 발표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곡은 황선우가 작곡 겸 작사가로 기재되어 있지만, 가사의 일부분은 과거 김해일이 작사한 "돌아와요 충무항에"와 같았다. 2004년에 스펀지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관련된 이야기가 방송이 나간 후, 작사자 김해일(본명 김성술)의 어머니가 2004년 가사 표절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결과 3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났고, 이후 황선우가 김성술의 유족들에게 합의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표절 논란은 일단락되었다.[4]# 서울서부지법 2006. 3. 17., 선고, 2004가합4676, 판결

이후에도 조용필은 이 곡을 다시 조금 더 빠르고 경쾌한 분위기로 편곡하여 1980년에 조용필이 정규 1집을 발표하면서 수록되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게 바로 1980년 버전이다.

이 노래가 히트한 배경에는 발표 당시에 재일교포들의 고국방문이 활성화되면서 그 정서가 이 노래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후로 이 노래는 "부산 갈매기",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더불어 부산광역시를 상징하는 노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조용필의 최대 히트곡 중의 하나가 되었다.


3. 가사[편집]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그리운 내 형제
--
가고파 목이 메여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
언제나 말없는 저 물결들도
부딪혀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
돌아왔다 부산항그리운 내 형제


4. 해외에서의 인기[편집]



돌아와요 부산항에, 일본어 가사판

椿咲く春なのに あなたは帰らない
츠바키 사쿠 하루 나노니 아나타와 카에라나이
(동백꽃이 피는 봄인데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네요)
たたずむ釜山港(プサンハンに 涙の雨が降る
타다즈무 부산항니 나미다노 아메가 쿠루
(여기에 내가 있는 부산항에는 눈물같은 비가 내려요)
あついその胸に 顔うずめて
아쯔이 소노 무네니 카오 우즈메테
(당신의 뜨거운 가슴에 얼굴을 묻고)
もう一度幸せ 噛みしめたいのよ
모우 이치도 시아와세 카미시메따이노요
(다시 한 번 당신과의 행복을 떠올려요)
トラワヨ プサンハンへ
토라와요 푸산항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逢いたい あなた
아이타이 아나타
(보고 싶어요 당신을)
--
行きたくてたまらない あなたのいる街へ
이키타쿠테 타마라나이 아나타노 이루 마치에
(가고 싶어서 견딜수가 없어요. 당신이 있는 그 부산에)
さまよう釜山港(プサンハンは 霧笛が胸を刺す
사마요우 푸산항와 무테키가 무네오 사스
(당신을 찾아서 헤메는 부산항에는 무적이[5] 가슴을 찔러요)
きっと伝えてよ カモメさん
키잇토 츠타에테요 카모메상
(잊지 말고 꼭 전해줘요 갈매기씨)
いまも信じて 耐えてるあたしを
이마모 신지테 타에테루 아타시오
(지금도 당신을 그리워하며 괴로움을 참고 있다는 것을)
トラワヨ プサンハンへ
토라와요 푸산항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逢いたい あなた
아이타이 아나타
(보고 싶어요 당신을)

한국어 가사와 일본어 가사는 조금씩 뜻이 다르다. 하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한국어 가사로 부른다. 그리고, 조용필은 1983년에 일본의 방송(후지TV 밤의 히트 스튜디오)에 출연하여 2절 가사를 일본의 엔카 가수들과 같이 일본어 가사로 부르기도 했고, 1987년 일본 투어에서도 일본어 가사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의 엔카 가수 덴도 요시미와 같이 '후타리노 빅쇼' 방송에 출연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 적이 있었으며[6] 덴도 요시미는 1절, 조용필은 2절을 불렀다.당시의 영상으로, 25분 45초부터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뿐만아니라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져서 수많은 일본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했다. 그리고,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일본 기네스북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가 된 외국 가수의 노래" 로 등재되어 있으며 (약 30회 이상) 일본 내에서도 현재까지 일본에 진출한 한국 배우/한국 가수를 통틀어서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노래 중의 하나다. 또한, 2020년대가 된 현재에도 일본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가 된 한국 노래이며 일본 가라오케의 한국 가요 인기 순위에서 지금도 항상 최상위권에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정식 싱글로 처음 발매한 가수는 코믹 엔카 그룹 도노사마킹즈(殿さまキングス)로, 1979년 "눈물의 부두(泪の波止場)"라는 곡으로 발매했다. 이 당시 가사는 한국어 가사와 거의 같았다고 한다. 이후 1983년 아츠미 지로(渥美二郎)가 "釜山港へ帰れ(부산항으로 돌아와요)"의 제목으로 정식 발매하면서 70만장을 팔았고, 현재 이 곡은 아츠미 지로의 대표곡 중 하나로 남아있다. 참고로 아츠미 지로 버전부터 노래 가사가 아래 내용으로 개사되었다.

그 외에도 일본 엔카의 여왕으로 불리던 미소라 히바리도 이 곡을 리메이크했고, 아시아의 가희로 불리던 대만의 가수 등려군도 일본어판으로 리메이크를 했었다. 또한, 일본에서 활약하던 한국의 김연자, 계은숙, 이성애도 리메이크를 했고, 미녀 엔카 가수로 유명한 야시로 아키, 모리 마사코, 시마즈 아야, 아츠미 지로, 흑인 엔카 가수 제로도 이 곡을 리메이크했다. 당장에 일본 제목인 "釜山港へ帰れ"로 유튜브에 검색하면 무려 20여 명 이상의 일본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어 버전은 외국에 나가 있는 형제를 그리워하는 원곡 내용과는 달리, 여자가 항구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린다는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이는 미군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숨지는 "마담 버터플라이"의 한일 버전으로 해석해 식민지를 잃은 애잔한 감정을 내포시켰다는 해석이 있으며, 주간조선에서는 칼럼을 통해 일본의 상속제도에서 기인한 한일 간의 문화차이라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7]

독특하게도 가사 중간의 "부산항"과 후렴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일본어로 번역하지 않고 한국어 원어 그대로 부른다. 이 부분 가사 표기도 가타카나로 "トラワヨ プサンハンへ"일 정도다.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1980년대 성인 가요계를 대표하던 명곡이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사치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생각하면 된다.

일본에서 커버 곡을 부른 대표적인 가수들은 아래와 같다.



김연자가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모리 마사코가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려군(테레사 텅)이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요시 이쿠조가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시마즈 아야가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5. 그 외[편집]



폴 모리아의 "Please Return to Pusan[8] Port"다.

  • 이지리스닝 음악의 대가 폴 모리아도 연주곡으로 편곡하여 "Please Return to Pusan Port"라는 제목으로 음반에 실었다. 그리고, 이 음악은 MBC FM 라디오의 12시~2시 프로그램인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의 시그널로 쓰였다.


  • 과거 마산 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 제2 홈경기가 열렸을 때는 가사의 "부산" 부분을 모두 "마산"으로 바꾸고 노래 제목도 "돌아와요 마산항에"로 바꿔 불렀으나, 2011년 NC 다이노스가 창단되고 롯데가 마산 야구장을 홈으로 쓰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사장되었다. 다만 2014년부터 롯데 자이언츠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제 2홈경기가 열리면서 이 경기장에서는 가사의 "부산" 부분이 "울산"으로 바뀌고 제목도 "돌아와요 울산항에"로 바뀌었다.[9] 그래서 울산 홈경기에서는 "동백섬"과 "오륙도" 부분을 "방어진"[10]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2018년부터 야구장에서 부산 갈매기를 부를 수 없게 되자 이 노래가 명실상부한 롯데의 대표 응원가가 되었다.

  • 메탈슬러그 2X의 4 스테이지의 이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釜山港へ帰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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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곡은 황선우 본인이 했다.[2] 당시는 충무시[3] 제작은 12월 16일이고, 발매는 1971년 1월 4일일 가능성이 높다.#[4] 지금의 노래 제목은 황선우가 처음 지었을 때 붙인 노래 제목이라고 한다.[5] '무적'은 안개가 끼었을 때, 선박(船舶)의 충돌(衝突)과 같은 사고(事故)를 막기 위해서 등대(燈臺)나 배가 울리는 고동을 말한다.[6] 덴도 요시미는 공교롭게도 한국과 연관이 매우 깊은 가수다. 1996년 전라남도진도군을 배경으로 하는 "진도 이야기(珍島物語)" 싱글을 130만장을 판매하면서 대형 가수의 반열에 올라섰고, 2007년에는 나훈아의 "울긴 왜 울어"의 번안곡을 리메이크해서 자신의 가수생활 35주년 기념곡으로 발매하기도 했다.[7] 이는 일본에선 개항 이전부터 장남의 권위가 컸기에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형제는 남이 되는 시초"라는 속담도 있을 정도다.#[8] 현행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Busan이지만, 노래 제목 자체는 Pusan이므로 이에 따라 표기.[9] 이 부분은 2008년에 개그콘서트의 전 코너 달인에서 김병만이 써먹었던 내용이다.[10] 울산을 상징하는 어항(漁港) 중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