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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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돌잡이
4. 해외의 돌잔치
5. 기타


1. 개요[편집]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지났을 때 하는 잔치를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첫 번째 생일 관련 잔치이다. 과거엔 '주년'을 가리킬 때는 '돐'이 표준어였고 '돌'은 틀린 말이었으나, 현재는 '주년'을 가리킬 때도 오히려 '돌'이 표준어, '돐'이 틀린 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과거부터 생일 관련 잔치는 '돐잔치'가 아니고 '돌잔치'였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아기들은 돌잔치를 하는 시기에 걷기 시작한다.

첫돌을 맞는 아기의 평균 키는 남아 75.7cm, 여아 74cm이고 몸무게는 남아 9.6kg, 여아 8.9kg이다. 이 때문에 첫돌을 맞은 아기들은 놀이공원에서 대부분의 놀이기구는 키 제한에 걸려 타지 못한다.

국립국어원의 설명에 의하면 옛날엔 ''을 1년 주기의 의미로 쓰고 '돐'을 생일의 의미로 쓰는 구별이 있었지만, 둘의 차이가 모호해 혼란스러웠던 데다 구태여 '돌'과 '돐'으로 구별해야 할 필요성이 부족하다고 여겨 '돌'로 통일했다고 한다. 북한 표준어 규범인 문화어에선 아직도 이 구분이 쓰인다. 유의할 점은 북한에서도 '돐'과 '돌'을 구분하던 이 구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일을 뜻하는 돌은 '돐'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서도 '돐잔치'가 아니라 '돌잔치'라고 한다. (북한에서의 실제 사용례) 여하튼 한국에서는 거의 '첫 생일' 이외의 뜻으로 사용하는 용례가 거의 없는 반면에 북한에서는 '주년'이라는 표현보다 돐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을'과 같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붙었을 때의 발음도 [돌씨\], [돌쓸\]이다.

2. 상세[편집]


1이란 숫자의 상징성도 있지만 예전엔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탓에 출생신고도 늦추는 일이 많았고,[1] 1년을 살아 남았으면 앞으로도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 잔치를 벌인 것이다.

환갑잔치의 위상이 떨어진 데 비해 영아 사망률은 낮아졌지만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영아 사망률은 10% 이상이였다. 그 때문에 1950년대 이전에는 남자아이의 이름에 오래 살라는 뜻의 '길 영'자를 많이 넣어 영수, 영호, 영식 등의 이름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영아 사망률은 크게 떨어져 2016년 기준 신생아 1000명 중 2.8명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낮아졌지만 저출산 경향으로 돌잔치는 위상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

오죽하면 군대에서 병사들에게 청원 휴가를 내 줄 때 그 병사의 부모님 환갑잔치가 있어도 청원 휴가를 안 주는데[2], 그 병사에게 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돌잔치를 하면 2일 이내에서 청원 휴가를 줄 정도이다. 게다가 비혼 인구나 아이를 안 낳는 부부가 늘다 보니 돌잔치에 친구를 부르는 것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특히 둘째 이후의 돌잔치엔 친구는 생략하고 친지들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개신교기독교 집안에선 예배/첫돌 미사와 돌잔치를, 불교 집안도 첫돌 예불과 돌잔치를 같이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생일 축하를 금기시하므로 안 한다. 심지어 속설 때문에 안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전직 인천시의원 정창일[3]는 그의 누나 정복순이 돌잔치를 치르고 얼마 안 돼서 죽는 바람에 본인 포함 5남매가 돌잔치를 못 했다고 할 정도로 옛날에는 속설이 강했다고 한다.

옛날엔 돌잔치를 하고 나면 기저귀를 떼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엔 배변 훈련을 늦게 하는 추세로, 보통 기저귀를 떼는 게 2살 넘어서이며, 그것도 낮엔 완전히 떼고 잘 때만 기저귀를 차는 식으로 배변훈련을 천천히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3살인데도 기저귀를 못 뗀 경우도 있을 정도. 사실 소아청소년과(구 소아과) 쪽에서 아이의 배변 훈련은 보통 18개월에서 24개월 경에 시작하며, 아무리 빨라도 최소 12개월, 즉 돌은 지나야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소변을 가리는 능력이 완전히 갖춰지는 건 개인차가 있어 16~48개월 정도로, 보통 만 4세 생일까지 대소변을 잘 못 가리는 걸 딱히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단, 대소변을 제외한 다른 능력은 돌 전후로 뚜렷하게 발달하기 시작하며, 말을 알아들을 뿐 아니라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며 걸음마가 가능해지고 소근육도 발달한다. 따라서 적절한 장난감 선택 등을 통해 올바른 놀이방법 형성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기이다.

진짜 생일과 다른 날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엔 주로 생일 전에[4] 돌잔치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전염병 확산 등)이 있는 경우 생일이 지나고 나서 돌잔치를 치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5] 이런 경우는 돌은 음력 생일을 따르는 집안에서 많은데, 아기가 윤년 전년이나 윤달을 낀 해, 그 중에서도 윤달이 오기 전에 태어나는 바람에[6] 음력 생일이 윤달로 인해 뒤로 미뤄진 케이스가 많다. 북한에선 돌잔치 날짜를 잡을 때도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과 기일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만약 아이가 쌍둥이일 경우엔 대개 아이 2명의 생일이 같아[7] 아예 아이 2명의 돌잔치를 같은 날에 치른다.[8] 아이가 삼둥이 이상이어도 3명 이상의 아이 중 하나라도 생일이 다르지 않는 이상 쌍둥이와 마찬가지이다.[9] 쌍둥이 이상일 경우는 그만큼 아이 숫자가 많아져 아이 1명의 돌잔치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그나마 성별이 같은 쌍둥이라면 낫지만, 성별이 다른 쌍둥이라면 더 많은 돈이 깨진다.

드레스 코드는 단정한 편이 좋다. 남성의 경우 블레이저에 셔츠 청바지, 운동화 입은 비즈니스 캐주얼도 나쁘지 않고, 여성은 원피스나 블라우스에 치마나 바지 입어도 충분. 군인이라면 정복이나 전투복을 입자. 현대엔 장례와는 달리 스트릿 패션도 용인되는 분위기다. 덜 격식적이고 밝은 분위기의 행사기 때문. 오히려 장례식처럼 올 블랙으로 입었다가 혼자만 튀어 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장도 가능하면 블랙보다는 네이비나 차콜이 더 무난하며 정 블랙밖에 없어서 입어야 한다면 넥타이라도 밝은 색으로 하든가, 보 타이(나비넥타이)를 쓰자.

관혼상제가 다 그렇듯 원래는 다 집에서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보통 사람들은 대개 집에서 친척과 친지들을 초청해서 했지만, 2000년대부터 밖에서 치르는 돌잔치가 점점 많이 늘어나더니 2010년대부터 핵가족화나 도시화에 따른 아파트 확대 등의 영향으로 집에서 손님 치르기가 힘들다 보니 밖에서 하는 것으로 추세가 바뀌었다. 예식장이나 컨벤션센터에서 하는 경우가 많으며[10], 아예 돌잔치만 전문으로 하는 예식장도 상당수다. 이런 곳에선 돌잔치에 사용할 드레스/정장한복까지 빌려 주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식당에서 하기도 하는데, 통째로 빌리거나 아니면 간소하게 가족들끼리만 모여서 밥을 먹는다. 돌잔치 담당 업소가 없는 외국에 사는 한국인(재외국민)[11]들은 호텔에서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재미교포미국에 있는 호텔을 빌려서 돌잔치를 치르거나 재일교포일본에 있는 호텔에서 돌잔치를 치르는 식. 한국에서도 호텔을 예식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한국 정서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종교가 있는 집안에선 자신이 믿는 종교의 종교시설에서 돌잔치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신교 집안에선 교회에서, 가톨릭 집안에선 성당에서, 불교 집안에선 사찰에서 돌잔치를 치르기도 한다. 부모가 직업군인(장교, 부사관)이면 아예 향군회관에서 돌잔치를 치른다. 그러나 최근 돌잔치에 초대하는 사람이나 초대를 받는 사람이나 모두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되므로 가까운 가족들만 모여 간소하게 식사만 하고 셀프차림상을 빌려 사진만 찍는 추세로 문화가 바뀌고 있다.

이런 탓에 단위나 규모가 작은 에 사는 경우 거주하는 시군에서 돌잔치를 치르는 게 아니라 인근 큰 도시로 원정을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지역엔 예식장이 없거나[12], 있다고 해도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영세 업체가 대부분이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큰 도시에 있는 업체를 이용하려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이를테면 성주군[13]이나 고령군, 군위군[14], 칠곡군[15]에 사는 사람은 대구광역시에서, 영덕군[16], 울진군[17], 울릉군[19]에 사는 사람은 포항시에서,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20], 홍천군[21] 주민은 춘천시에서, 평창군 주민은 생활권에 따라 원주시[22]강릉시[23]에서[24], 보은군, 옥천군, 괴산군 등 충청북도 군 지역 주민은 생활권에 따라서 대전광역시청주시[25]로, 영암군, 해남군, 무안군 등 전라남도 군 지역 주민은 광주광역시[26]목포시[27], 순천시[28]에서 치르는 식이다.[29] 영천시 같은 경우도 '시'지만 도시가 작다 보니 대구포항, 경주, 울산, 부산 같은 더 큰 도시로 나가는 편이다. 과천시도 '시'인데 규모가 매우 작아서 서울이나 안양 등 주변 대도시로 나가는 편이며[30], 여주시 역시 '시'인데 인구가 적고[31] 생활권이 갈려서 충주, 원주, 이천 등 주변 도시로 나가는 편이다. 생활권에 따라 도 경계를 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인천광역시 옹진군에서 경기도 안산시, 시흥시 등지로 가거나, 경기도 가평군[32]에서 강원도 춘천시로 가거나, 충청북도 보은군[33]에서 대전광역시로 가거나, 경상남도 합천군[34], 창녕군[35], 밀양시[36]에서 경상북도 도계를 넘어 과거 경북 관할이었던 대구광역시로 가거나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충청남도 도계를 넘어 과거 충남 관할이었던 대전광역시로 가는 식으로. 인천광역시 동구도시인 자치구임에도 불구하고 관내에 예식장이 하나도 없어서[37] 예식장 돌잔치를 치르고 싶으면 미추홀구서구 등 다른 구로 나가야 한다. 다른 지역으로 나가지 않으면 주로 그 시군의 중심지(시내, 읍내)에 있는 식당에서 하게 되는데, 보성군(보성/벌교), 창녕군(창녕/남지) 등 중심지가 2개 이상인 지역은 더 가까운 곳에서 치른다.

참석하는 손님[38]들은 축의금을 낸다. 김영란법과 관련해 돌잔치는 경조사로 보지 않는다는 발표가 나옴에 따라 공직자들의 경우 직무연관성이 있는 경우는 돌잔치 축의금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됐다.[39] 쌍둥이 이상일 경우에는 이 문제가 복잡해진다. 예를 들면 쌍둥이 돌잔치는 아이가 2명이니 축의금을 더 받아야 하느냐, 아니면 쌍둥이는 생일이 같으니 축의금을 더 받지 않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이 문제 중 하나이다.

아기의 생일이 2월 29일이라면 다음 해에 2월 29일이 없기 때문에 다음 2월 29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2월 28일이나 3월 1일, 혹은 그 이전(주로 2월 29일 이전에 오는 가장 가까운 주말)에 치른다. 음력으로 윤달일 경우는 다음 해에 윤달이 없고, 또 다음 윤달이 언제 올 지 모르므로[* 윤2월~윤8월이라면 그나마 낫지만 윤9월~윤1월일 경우는 문제가 된다. 2014년 음력 윤9월은 95년 후인 2109년에, 1984년 윤10월은 182년 후인 2166년에야 다시 돌아오므로 결국 윤달로는 치를 수 없다.] 다음 윤달까지 기다리지 않고 윤달 전 달[40]이나 윤달 다음 달[41]에 치른다고 한다. 음력 30일이 생일인 경우 다음 해 음력에 그 달 30일이 없으면 그냥 음력 29일에 치른다.

2023년에는 2022년생들이 첫돌을 맞는다. 이들은 2041년에 성인이 된다. 대학 학번은 재수를 안 했을 경우 41학번, 재수했을 경우는 42학번 혹은 그 이후이다. 그리고 2023년생은 2024년에 첫돌을 맞는다.

2020년 5월에는 돌잔치에서 돌을 맞은 아기를 포함해 3명이 코로나19에 걸리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수도권은 2020년 12월 24일, 비수도권은 2021년 1월 3일 이후로는 돌잔치도 5인 이상은 금지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는 아기가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42] 아기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결정한 것이다.

2000년생은 21세기에 최초로 돌잔치를 치르고, 2099년생은 21세기에 마지막으로 돌잔치를 치른다.

1944년 8월 14일생은 일제강점기, 1945년생은 제주도가 전라남도였던 시기, 1959년생은 제1공화국 시기, 1961년생은 강남이 경기도, 울진군이 강원도, 금산군이 전라북도였던 시기, 1962년생은 제2공화국 시기, 1967년생은 고속도로 개통 이전, 1971년생은 제3공화국 시기, 1975년 4월 15일생은 에버랜드 개장 이전, 1979년생은 제4공화국 시기, 1986년생은 제5공화국 시기, 1988년 7월 11일생은 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장 이전, 1995년생은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이었던 시절, 1996년생은 IMF 이전, 2003년 3월 31일생은 KTX 개통 이전, 2015년생은 SRT 개통 이전, 2018년생은 코로나 이전에 마지막으로 돌잔치를 치렀다.

개명을 한 사람은 돌잔치를 치를 당시에는 개명하기 전의 이름으로 치렀으나, 드물게 개명 후 돌을 맞는 아기도 있다. 특히 1939년~1940년생은 1940년 창씨개명령 시행 이후 돌을 맞아 조선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돌잔치는 일본 이름으로 치러야 했다. 1949년~1952년생은 1950년 6.25전쟁 발발로 인해 전쟁통에 돌잔치를 치러야 했다.

21세기 들어서는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강아지, 고양이의 돌잔치를 해 주는 경우도 있다.[43] 또한 어린이집 이용이 늘어나면서 어린이집에서 돌잔치를 하는 아기들도 늘고 있다.

3. 돌잡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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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잡이라고 해서 아기의 미래를 예측해 보는 소소한 행사도 한다. 올려져있는 물건중에 아기가 하나를 선택하여 잡으면 미래에 잡은 물건과 관련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식. 돌잡이 용품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적당히 비슷한 의미를 줄 수 있다 싶은 물건으로 대체해도 상관없다. 보다시피 현대에 추가된 물품들도 많다.

  • : 학자나 작가. 외국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로 된 책을 잡으면 외국어에 능통할 팔자라고도 한다.
  • 연필 등 필기구: 교사, 교수 혹은 수재[44]
  • 붓, 먹, 벼루: 명필가.
  • , : 부자(자산가). 요즘엔 돈 뿐만 아니라 카드 (체크카드, 신용카드)까지 놓거나, 외국 돈(주로 미국 달러중국 위안)까지 놓는 경우도 있다. 외국 돈을 잡으면 외화 벌이를 잘 할 팔자나,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할 팔자 또는 외국에 이민을 가서도 돈을 많이 벌 팔자라고도 한다.[45]
  • 대추: 자손의 번창
  • : 무병장수. 다만 요즘은 워낙 다들 무병장수하는 세상이다 보니[46], 은근슬쩍 철밥통공무원이 될 팔자라고 바꾸기도 한다.
  • 청진기, 통, 주사기: 의료인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등)
  • 마이크[47]: 연예인, 방송기자
  • 법봉: 법조인 (판사, 검사, 변호사)
  • 계산기: 금융업 종사
  • , 모형 총, 경찰용품[48]: 직업군인(장교, 부사관)이나 경찰관
  • 각종 스포츠 용품: 운동선수 - 야구공, 골프공, 테니스공 뿐만 아니라 축구공, 배구공, 농구공이 올라가기도 한다. 특히 부모 중에 운동 선수가 있으면 부모에 이어서 유명해지라고 관련 용품이 꼭 오른다. 또한, 특정 선수가 유명해질 때도 등장하기도 한다. 박세리가 히트 칠 땐 골프공이, 박찬호 땐 야구공이, 김연아가 뜨면 피겨 스케이팅 부츠가 올랐다고.
  • 사과: 먹을 복이 많을 것이라고 한다.
  • 마우스: 컴퓨터 전문가 - 시대의 영향을 타서 유행을 많이 탔다. 닷컴 열풍이 한창 불 때 최인기 품목이었다가, IT 업계가 3D 취급받으면서 스리슬쩍 사라지기도 했다. 그래도 자수성가로 대박나는 건 IT 산업 뿐이라며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 카메라: 영화감독, 사진작가 등의 창작 분야같은 직업을 의미한다.
  • 지휘봉: 직업군인, 지휘자, 사업가, 국회의원, 대통령 등 리더십이 필요한 직책을 뜻한다.
  • 비행기: 스튜어디스, 파일럿 등 항공 관련 직업을 의미한다.
  • 소고, 악기[49]: 예술가, 디자이너, 음악인 등의 예술 분야같은 직업을 의미한다.

시대가치관 변화에 따라 돌잡이 품목이 달라지듯이 돌잡이 아이가 잡으면 좋겠다고 은근슬쩍 원하는 품목의 종류도 달라졌다. 오래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이었던 과거엔 당연히 최고 인기 물건은 이었지만, 이 물건들의 상징은 요즘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누릴 수 있는 것이 돼 버렸다. 그래서 아이가 잡을 확률을 낮추고자 상에서 구석진 곳으로 밀어내고 대신 마이크나 스포츠 용품 등 부모들이 원하는 끼 많은 미래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가까운 데에 놓기도 한다. 많은 자손을 상징하는 대추도 과거엔 인기 아이템이었지만 지금은 자식 많다는 게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닌지라 마찬가지로 구석으로 밀리거나 아예 돌잡이 상에서 추방되기도 한다는 듯. 일부 책에 의하면 의 경우는 잡으면 애가 멍청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50] 그러나 좋은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어서 애매. 그래서인지 부정적인 의미가 조금이라도 있는 물건들은 요즘은 그냥 안 놓는 경우도 많은 듯.

Cake Boss 9시즌 에피소드에서 한국식 돌잡이와 그걸 바탕으로 만든 파티용 대형 케이크를 다루었다. 영상,

4. 해외의 돌잔치[편집]


  •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선 유아세례가 돌잔치와 비슷한 의미로 치러지기도 한다.
  • 일본에선 돌잔치를 하쓰탄조비(初誕生日, 첫 생일)라고 하며, 쌀 한 되 분량(약 1.8kg) 정도로 만든 떡인 잇쇼모치(一升餅)를 보자기에 싸서 아이가 메고 걷게 하는 풍습이 있다. 이는 아이가 평생 먹을 양식을 짊어지고 간다는 의미로, 一升餅의 一升(한 되)와 一生(일생)의 발음이 いっしょう로 동일한 점을 가지고 만든 풍습이다. 1.8kg가 갓 돌을 맞은 아이에게는 약간 무거워서 아버지들이 걷는 것을 도와주곤 한다. 한국과 똑같이 돌잡이 풍습이 있으며 이를 에라비토리(選び取り), 같은 행사를 오키나와에서는 탕카유에(タンカユーエー)라고 부른다. 물건의 종류나 의미는 한국과 대동소이.


5. 기타[편집]


아이돌이라는 단어는 한국어에 한해 다음 말장난의 수단이 된다: 아이 vs 아이돌(idol). 30대 초반에 이르러, 친구들은 아이돌 보는(to watch idols) 친구 무리와 아이 돌보는(to take care of children) 친구 무리로 분리된다고 한다.

34세: 우리 아이 vs 우리 아이돌

(2021년 6월, 삼성생명 광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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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탓에 여름인 음력 6월에 태어난 사람이 거의 겨울이 다 돼가는 양력 11월생으로 신고되었다거나, 1962년생이 호적상으로 1964년생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경규1960년생인데 호적상으론 1962년생이다. 1930~40년대생 노년층의 경우는 2년 이상 늦게 등록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1970년대 초중반까지는 몇달~1년 차이가 났던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그 시절 부모들은 아이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길 영()' 등 장수와 관련된 글자를 이름에 넣은 것이다. 그 시기 남자 이름으로 인기 있는 것은 영수, 영호, 영식, 영철, 영일, 영길, 영환, 영진, 영준, 영훈, 영석, 영섭, 영무, 영제, 영종, 영재, 영우, 영빈 등이고 여자 이름으로 인기 있는 것은 영자, 영순, 영숙, 영희, 영애, 영혜 등이었다. (1960년대까지 남성 이름 1위는 '영수'였다.) 이 시기 이름 중 남자 이름은 현재 영유아~30대에도 볼 수 있는 이름이 많지만 (그렇다고 시대를 아주 안 타는 건 아니라, ‘순’이나 ‘복’으로 끝나는 이름은 30대 이하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촌스러워졌다. 반대로 ‘하준’ 등의 이름은 50대 이상에서 보기 드문 이름이다.) 여자 이름은 현재 젊은 층이 잘 쓰지 않는다. 다만 한자는 다른 경우가 많다.[2] 옛날엔 부모님이 환갑잔치를 치른 외동아들은 60세 이상인 독자로 분류해서 6개월 방위병으로 빼 준 적이 있었다.[3] 1951년 음력 1월 7일 (양력 2월 12일)생, 서울 송파구 풍납동 (당시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풍납리) 출생으로 지역구는 연수구 제1선거구.[4] 특히 생일 전이면서 생일과 가장 가까운 주말에 하는 게 일반적. 생일이 주말이면 그냥 당일에 하기도 한다. 생일이 공휴일이거나, 혹은 특정 기념일(설날, 추석 등)에 겹치면 그 전 주 주말에 하는 경우도 있으며, 2010년대부턴 주 5일제의 영향으로 복잡한 주말을 피해 금요일에 돌잔치를 치르는 경우도 늘고 있다. 1월 초가 생일이면 전년도 12월에 치르거나, 연말에 돌잔치를 치르는 게 민폐가 된다는 이유로 아예 음력 생일(양력으로 1월 초면 주로 음력 11월 중순~12월 중순)을 적용해 훨씬 앞으로 당기거나 뒤로 늦추는 경우도 있으며, 아이가 음력 윤달 출생인 경우 다음 해엔 윤달이 없고 또 그 윤달이 언제 돌아올 지 모르니 윤달 전이나 윤달 다음 달에 치른다.[5] 예를 들면, 2015년메르스 사태. 이로 인해 아기에게 메르스가 전염될까 봐 불안해진 부모들은 2015년 6월 중에 치르기로 예정된 2014년 6월생 아기들의 돌잔치를 취소하고 메르스가 잠잠해진 뒤로 미루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메르스 때문에 아들 연우의 돌잔치를 취소한 도경완-장윤정 부부의 경우가 이런 케이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도 아기에게 신종플루가 전염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2008년 9~12월생 아기들의 돌잔치를 대거 취소하거나 신종플루가 잠잠해진 뒤로 미뤘다. 2020년~2022년에도 코로나19 사태로 2019년~2021년생 아기들의 돌잔치를 대거 취소하는 경우가 생겼다.[6] 단적으로 2014년만 봐도 그렇다. 2014년엔 윤9월이 껴서 음력 1~9월생인 아이들의 돌잔치 날짜는 음력을 적용하면 20일 가까이 늦어진다. 이 해만이 아니라 음력 윤달이 9~1월인 경우 음력 날짜가 20일까지 늦어지는 것도 가능하다.[7] 쌍둥이인데 생일이 다른 경우는 대개 출생 시점이 밤 11시에서 오전 1시 사이에 걸린 경우이다. 자시에 태어났다면 쌍둥이인데도 생일이 다를 수 있는 셈.[8] 재수없게 출생 시점이 월말 23시~월초 1시 사이에 걸려 태어난 달이 달라진 쌍둥이들이라면 양력을 적용하면 첫째가 태어난 달, 음력을 적용하면 둘째가 태어난 달에 치르는 경우가 많으며, 음력 평달 말일 23시~윤달 첫날 1시 사이나 윤달 말일 23시~다음 평달 첫날 1시 사이에 걸리면 윤달에 태어난 아이는 다음 해에 음력 생일이 없으므로 비슷한 시점에 치르기 위해 합의를 하기도 한다.[9] 삼둥이 이상일 때 생일이 달라지려면 3명(혹은 그 이상)의 아이들이 전날 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1시 사이에 태어나야 하는데, 이런 경우 아이 숫자가 많다 보니 쌍둥이보다는 다소 확률이 낮은 편이지만 조합은 더 많아진다. 3명인 경우는 1명이 전날 오후 11시 59분 45초에 태어나고 나머지 2명이 다음날 오전 0시 0분 3초에 태어난다든가.[10] 이런 이유로 예식장이 투표소로 지정된 경우 선거일에 돌잔치를 하는 아이의 부모가 투표를 하고 투표한 곳에서 돌잔치를 하기도 한다.[11] 이런 경우는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이민을 갔거나 아예 아이가 해당 국가에서 태어난 케이스이다.[12] 국내엔 이런 지역이 2018년 기준 9곳 있으며, 경기 침체와 농어촌 지역 인구 감소로 더 늘어날 예정.[13] 초전면, 벽진면 등지에 사는 사람들은 김천에서 치르는 편이다. 정작 김천시 주민들은 대체로 구미에 가서 돌잔치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14] 소보면, 효령면, 군위읍 주민 일부는 구미에, 우보면, 의흥면, 산성면, 삼국유사면 주민 일부는 안동이나 경주로 가서 돌잔치를 치르는 경향이 있다.[15] 북삼읍, 약목면 등지에 사는 사람들은 구미에 가서 치르는 편이다.[16] 지품면 주민 일부는 안동에서도 치른다.[17] 북면, 죽변면, 울진읍 주민들은 해당 지역에서 포항이 멀어서 강원도 삼척이나 동해에서 치르는 편이고, 멀리는 강릉까지 나가서 치르기도 한다. 금강송면 주민들의 경우 봉화군 주민들처럼 거의 영주, 안동에서 치르는 편이다.[18] 이런 사람들의 경우 울릉도에 살면서 외지에 친척을 둔 사람이나 돌을 맞은 아기 혹은 그 부모의 고향이 울릉도인 경우가 많다.[19] 울릉군은 전라남도 신안군, 전라남도 보성군, 충청남도 계룡시, 인천광역시 동구, 옹진군, 부산광역시 강서구, 영도구와 함께 관내에 예식장이 없다. 울릉군 주민들은 예식장에서 돌잔치를 치르고 싶으면 배 타고 포항에 나가야 하는 셈. 그마저도 출항이 불규칙해서 타지에서 하는 돌잔치에 참석하려는 울릉도 주민[18]들과 예식장에서 돌잔치를 치르고 싶은 울릉도 주민들은 돌잔치를 치르기 며칠 전부터 포항 등 외지로 나가야 한다.[20] 물론 원통 이북에 사는 사람은 간성, 양양 주민들처럼 속초로 가서 치르는 편이다.[21] 홍천군 주민 일부는 관내의 대명 비발디파크에 있는 예식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홍천군 서부의 서면 주민 일부는 경기도계를 넘어 남양주나 서울로, 동부의 내촌면, 서석면, 내면 주민들은 강릉이나 속초로 나가서 치르기도 한다.[22] 평창읍 등 원주 생활권일 경우. 횡성이나 영월, 여주, 제천, 양평, 단양에 살아도 평창읍 등 원주 생활권의 평창군 주민들처럼 원주에 가서 치른다.[23] 진부면과 대관령면 등 강릉 생활권일 경우. 정선군, 태백시 주민들도 강릉 생활권의 평창군 주민들과 같이 강릉에 가서 치른다.[24] 강원도는 위치별로 생활권이 깔끔하게 나누어진다. 철원만 경기도의 영향을 많이 받을 뿐.[25] 단양군은 예외. 해당 지역은 청주보다 원주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단양군 주민들은 돌잔치를 치르기 위해 원주로 더 많이 간다.[26] 주로 화순군, 장성군 등 광주권 군 주민들이 돌잔치 장소로 광주의 예식장을 고른다. 전라북도에선 순창군, 고창군 주민들이 주로 광주에 원정을 가는 편.[27] 주로 무안군, 해남군, 강진군 등 전남 서남부권의 군과 영암군 삼호읍 주민들이 돌잔치 장소로 목포의 예식장을 고른다. 완도군, 무안군 주민 일부는 바다 건너 제주시의 예식장을 돌잔치 장소로 고르기도 하지만, 비행기나 배를 타야 하는 탓에 워낙 오래 걸려서 보편적인 경우는 아니다.[28] 구례군, 보성군, 고흥군 등 전남 동부권의 군 주민들이 돌잔치 장소로 순천의 예식장을 고른다. 전라북도 남원시나, 경상남도 하동군, 남해군 주민들도 순천의 예식장에서 돌잔치를 치르는 경향이 있다.[29] 전남은 위치별로 생활권역이 깔끔하게 나눠지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론 교통이나 광주와 목포/순천의 규모 차이 때문에 딱 떨어지지 않으며, 거리가 엇비슷한 일부 지역은 목포/순천보다는 광주의 영향 아래 놓인다.[30] 성남시는 경계만 접할 뿐 직접 갈 수 있는 도로가 없어서 과천 주민들의 돌잔치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31] 여주는 명색이 '시'인데도 불구하고 양평보다도 인구가 1만 명 가량 적다.[32] 설악면, 청평면 주민 일부는 서울이나 남양주에서 치르기도 한다.[33] 주로 회인면, 회남면에서 이런다. 보은읍만 해도 청주의 영향력이 더 강하며, 보은군은 고속도로도 청주시, 상주시 방향으로만 연결돼 있다.[34] 합천군 주민 일부는 진주거창, 부산에 가서 치르기도 한다. 삼가면이나 용주면, 봉산면, 대병면 주민들은 산청군, 함양군 주민들처럼 진주나 거창에서 치른다.[35] 창녕군 남부에 사는 사람은 의령군, 함안군, 고성군 주민들처럼 창원에 가서 치르기도 한다.[36] 삼랑진 등 밀양시 남부나 동부에 사는 사람은 지역 자체가 대구보다 부산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부산이나 울산, 김해에 가서 돌잔치를 치르기도 한다.[37] 관내에 예식장이 없는 지역 중 화천군계룡시, 강서구, 영도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섬으로만 이뤄진 군이다.[38] 대학수학능력시험, 공무원 시험, 의료인 면허시험의 출제위원으로 들어간 경우, 고시 채점관으로 들어간 경우나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는 우편으로만 보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능, 공무원 시험 등의 출제위원으로 들어간 경우는 외출이 불가능하므로 100%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경찰, 소방관, 교도관들도 비상근무가 걸려 있으면 마찬가지.[39] 단, 5만원 이하의 선물(상품권 등)은 문제가 없다. 서로 직무 연관성이 없는 경우라면 100만 원 이하의 금액까진 축의금으로 주더라도 문제가 없다.[40] 가령 음력 윤 4월 8일이 생일인 아기의 돌잔치는 평달 4월 8일에 치르는 식.[41] 가령 윤 7월 보름에 태어난 아기의 돌잔치는 평달 8월 보름에 치르는 식.[42]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아기는 마스크 착용이 면제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43] 다만, 강아지나 고양이의 1년은 사람 나이로 15~20세 정도이다.성인식[44] 보통 아기들이 가장 많이 잡는 게 바로 이 연필이다. 아기가 보기에 가장 신기하게 생겨서 그렇다고.[45] 2010년대 기준으론 인기 아이템으로, 돌잡이 만화나 썰에서 돈 잡게 만들려는 부모와 일가친척의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경우가 보인다.[46] 다만 이말이 반대가 될수 있다.[47] 만약 장난감 마이크라면 거의 80%로 아이들이 잡는다...[48] 전통적으로는 활을 놓았지만, 오늘날엔 활이 흔치 않아 장난감 총으로 대체하는 추세. 다만 행사 장소에 따라 전통적 방식대로 장난감 활을 두는 곳도 있다.[49] 경우에 따라 리코더하모니카 등을 두기도 한다[50] 크레이지 아케이드 만화판에서 배찌와 케피는 함께 돌잔치를 치뤘는데, 둘이 떡을 잡겠다고 서로 싸웠다고 한다. 극중에서 저 둘이 식탐이 과도하게 많고 살짝 모자란 성격이며, 먹을거에 정신이 팔려서 사고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여기서 나온 장면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