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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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특징
4. 디스코 음악가(가수) 및 히트곡 목록
5. 여담
6. 출처



1. 개요[편집]


경쾌한 레코드 음악에 맞추어 자유롭게 추는 일종의 , 혹은 그 음악. 여기에서는 음악을 다룬다.[1]


2. 역사[편집]



2.1. 미국에서[편집]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유행한 Funk에서 파생된 댄스 음악미국 흑인 음악 장르로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특징. 펑크 음악이 점점 업비트가 강해지면서 더 이상 펑크의 범주에 엮을 수 없게 되자, 이러한 업비트의 빠른 펑크 음악을 "디스코"라고 칭하게 되었다. 단어 자체는 디스코텍에서 파생되었다.[2]

디스코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형성된 것으로 보여지며, 미국 동부의 뉴욕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당시 미국의 지배적인 음악은 락 음악이었는데, 디스코는 이러한 락 음악의 지배적인 분위기와 댄스 음악에 대한 지나친 멸시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한 점도 있다.

당시 미국은 1960년대 후반의 혁신적인 분위기로 인해 보다 쾌락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금기가 되지 않았고, 디스코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Isaac Hayes[3]Barry White같은 뮤지션들은 초기 디스코 음악의 확립에 기여했다.

일단 이 음악은 당시의 사회분위기에 비해 "지나치게" 말초적인 음악이었고, 댄스 뮤직에 대한 당대의 거부감도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게이 클럽이나 일부 제한된 사이키델릭 클럽, 히피 클럽의 플레이리스트에 오르곤 했다. 이러한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주목을 받게 되고 나서 메인스트림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74년경이나 되어서의 이야기다.[4] 그리고 당시로서 당연한 반응이지만, 평론가들은 이 음악을 저속하다고 엄청나게 깠다.[5]

이전에는 위의 이유들로 인해 이래저래 "경박하고 품위없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하는 사람만 하는 비주류 문화였으나, 1977년 12월 개봉된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라는 영화와 동시기에 발매된 사운드트랙이 초대박 히트를 기록하며 '디스코'라는 장르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게 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디스코 열풍은 디스코 폭파의 밤 이후 80년대 초까지 명맥을 유지하다 인기가 사그러들었다. 계속되는 디스코의 시대에 염증을 느낀 록 애호가들이 디스코 음반을 폭파하고 폭동으로 번진 전대 미문의 사건이었다. 이후 록이 다시금 입지를 다지는 동안 디스코는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전성기는 끝났지만 음악 자체의 영향력은 시대가 지나면서 일종의 복고 열풍으로 인해 재조명되었다. 현재는 록 음악댄스 음악이 섞이면서 디스코의 소스를 많이 차용한 곡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 다양한 음악가(특히, 하우스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들이 디스코로 회귀의식을 보이고 있다. 다프트 펑크Random Access Memories나, EDM 씬에서도 누 디스코(Nu-Disco)나, 퓨처 펑크 등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레트로 열풍으로 인해 디스코의 영향을 받은 노래들이 히트를 치고 있다. 팝 음악 진영에서 더 위켄드 등을 필두로 하는 신스웨이브에 이어 두아 리파를 필두로 하는 디스코 사운드가 다시금 유행하며 레트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도자캣(Say So), 방탄소년단(Dynamite), 리조(About Damn Time), 마일리 사이러스(Flowers), 비욘세(Cuff It) 등이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전체 앨범을 디스코풍으로 만든 제시 웨어의 앨범 'What's Your Pleasure?', 'That! Feels Good!', 카일리 미노그의 'DISCO'는 평단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2.2. 한국에서[편집]


대한민국에서 유행한 시기는 1978년부터이다. 원래 1975년경부터 비 지스를 비롯한 다양한 디스코 그룹들이 소개되었으나 당시 일명 "다운타운 디제이"[6]들 사이에서 유행했을 뿐, 대중적인 인기는 없었지만 1978년 존 트라볼타토요일 밤의 열기가 유행한 이후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유행도 한 때, 80년대 중반 이후엔 디스코는 구닥다리 음악이 되어 내세우는 팀이 없게 되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2007년 원더걸스가 복고 컨셉으로 Tell Me를 들고 나왔고, 크게 히트하면서 청년~중년층까지도 걸그룹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으며, 결국 이는 걸그룹 시장의 파이 자체가 확대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후 2012년 크레용팝이 제목도 전술한 영화와 비슷한 제목인 Saturday Night로 디스코를 들고 나왔다. 결과는 실패. 하지만 후에 락을 디스코로 편곡한 빠빠빠로 대 히트를 기록했다. [7]

이후 2020년 방탄소년단이 디스코 장르의 Dynamite로 활동했다.

오늘날 크게 인기 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디스코가 유행하던 시기에 고고장, 나이트 좀 다녀본 중장년층들은 여전히 좋아하는 경우가 많으며, 방송인 유재석이 이런 케이스이다.


2.3. 포스트 디스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포스트 디스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개러지 하우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하우스(음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5. 누 디스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누 디스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특징[편집]


디스코는 소울 음악, 펑크, 라틴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디스코 밴드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원을 자랑하기도 한다. 드럼, 베이스, 기타, 보컬과 같은 밴드가 기본적인 구성이며, 그 외에는 오르간(때로는 오르간이 두명), 브라스 섹션(트럼펫, 트롬본, 색소폰 등등등), 타악기주자(봉고, 우드블럭, 카우벨 등등), 여성 코러스를 포함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도 당시 점점 세분화되고 복잡해져가고 있던 프로그레시브 록 [8]등 대중음악의 흐름에서 일부만 차용했다. 비트는 분명 세분화 되어서 드럼 자체는 엄청나게 그루브해졌지만, 나머지 멜로디를 담당하는 악기가 다소 단조로워지는 경향이 있다. 당시로서는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았던 16비트를 많이 사용한 것도 특징 중 하나이다. 또한 음악 자체가 일종의 공식화가 되어있어서 16비트 드럼비트에 업비트 베이스라인을 끼워 맞추면 어떤 곡이든 디스코로 변형시킬 수 있는 마법의 음악이기도 하다. 노래방에 가서 리모콘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반주를 디스코로 바꿔주는 버튼이 있는데, 이걸 켜보면 마법을 체험할 수 있다.

미국 흑인들이 유행을 시킨 음악 중 하나이고 위에 써있는 내용대로, 게이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독자적으로 발전하여서, 나중에 Nu-NRG, Hi-NRG(하이에너지), 해피 하우스, 유로비트 등의 장르로 발전하였다. 이탈로 하우스가 유로비트의 조상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사실 유로비트를 느리게 하면, 후기 이탈로 하우스와 비슷해진다.

디스코 복고 열풍 이전에 디스코 시대 이후의 Hi-NRG와 쌍벽을 이루는 과도기적 음악으로 포스트 디스코(후기 디스코)라는 음악 장르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포스트 디스코는 소울과 재즈를 강조함으로서[9] 현대 R&B네오 소울, 소울풀 하우스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4. 디스코 음악가(가수) 및 히트곡 목록[편집]


Hi-NRG(하이에너지), 이탈로 디스코, 포스트 디스코, 누 디스코는 각각 문서들로. 하위 장르를 모두 아우른 건 해당 분류로 이동할 것.

링크

아래 대표곡들은 미국에서 크게 히트한 디스코 곡들이다.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대표곡들로 기술한다. 미국 위키피디아의 각 곡 문서들과 빌보드 차트를 참고한 결과이다.

빌보드 핫 100 1위 곡은 볼드체 처리됨.

  • 아이작 헤이즈 - Theme from Shaft (1971)[10], Don't Let Go (1979)









































  • Brass Construction - Movin' (1976)

  • 윙스 - Silly Love Songs (1976)[11], Goodnight Tonight (1979)




  • Andrea True Connection - More, More, More (1976)



  • Boz Scaggs - Lowdown (1976)



  • Brick - Dazz (1976)

















  • Samantha Sang - Emotion (1977)


  • John Paul Young - Love Is in the Air (1977)

  • 앤디 깁 - Shadow Dancing (1978)[12]





















  • Dr. Hook - When You're In Love With A Beautiful Woman (1979), Better Love Next Time (1979), Sexy Eyes (1980)







  • Patrick Hernandez - Born to Be Alive (1979)

  • 키스 - I Was Made for Lovin' You (1979)








  • Electric Light Orchestra (ELO) - Last Train to London (1980)



  • 조지 벤슨 - Give Me the Night (1980)[13]






5. 여담[편집]


  • 디스코를 불렀던 여자 가수들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디스코 퀸으로는 도나 서머가 있다. 특히 도나 서머의 Hot Stuff는 대한민국에 디스코 열풍을 불어넣었다. 조르조 모로더는 3집부터 8집까지 도나 서머 앨범의 총괄 프로듀싱을 도맡으며 당대 최고 프로듀서로 불렸다.

  • 여자에 도나 서머가 있다면 남자에는 비 지스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비 지스의 경우 How Deep Is Your Love 내지 Holiday로 우리나라에 제일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두 노래는 디스코의 기본 성격을 강하게 띠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에[14] 비 지스가 디스코 밴드인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비 지스의 경우 워낙 오랜 기간동안 명곡들을 많이 만들어낸 그룹이기 때문에 단순히 '디스코 그룹'으로 취급하기 어렵지만, 일단 비 지스가 차트를 점령한 기간은 디스코 음악으로 주로 차트를 점령했다.[15]

  • Chic는 당대의 히트뿐만 아니라 후대에 남긴 음악적인 유산으로 인하여 디스코 뮤지션 가운데서는 드물게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79년의 싱글 Good Times는 힙합 뮤지션들에게 수도 없이 샘플링 되어 힙합 태동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16]

  • 디스코 장르에 속하는 Dead or AliveYou Spin Me Round (Like a Record)[17]와 릭 애슬리의 "Never Gonna Give You Up"은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이 만들었으며, 대략 20년이 지나서 인터넷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가지게 된다. 자세한 건 미트스핀릭롤링 문서로.

  • 디스코 폭파의 밤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록 애호가들은 디스코를 끔찍이 싫어했다. 단순히 음악만을 싫어한 경우도 있지만, 디스코가 유행하며 록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디스코가 쇠퇴하며 록은 다시금 부활하는듯 했으나, 1990년대부터 디스코와 같은 흑인 음악인 R&B, 힙합이 음악 시장의 주류가 되었고[18][19][20][21][22] 록은 메인스트림에서 다시 밀려났다.



6. 출처[편집]



[1] 디스코 댄스 자체가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추는 것이다.[2] 디스코 그래피는 디스크(음반)에 기록한다(graph)는 의미로서 음반작업을 의미하기도 하고 음반에 담긴 앨범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당시의 디스크/음반이라고 하면 레코드판을 말하는데, 디스코텍(discotheque=disco+theque)은 이러한 레코드판이 쌓여있는 보관실/보관소를 말한다. (참고로 영화기록보관소를 씨네마텍이라고한다.) 당시 클럽에는 이런 레코드판이 책장?(선반)마다 빽빽하게 꽂아져있는 레코드판보관소가 있었고 거기서 디스크 자키가 음반을 선별해서 음악을 틀어주고 그 음악에 맞춰 손님들이 춤을 추던 곳이 음반보관실의 상징성으로 디스코텍이라 불렸고 그 클럽에서 당시 많이 틀어주던 funk 파생 음악이 디스코라는 이름의 장르로 불리게 된 것이다. 참고로 더 이전 세대의 클럽에서는 빅밴드들이나 락밴드들이 라이브로 공연을 하곤 했으며, 백투더퓨처1편 영화 후반 학교축제 장면에서 밴드가 연주를 하고 학생들이 춤추는 장면이 나온다. 마침 그 시기가 재즈에서 락음악이 파생되던 시기였다.[3] 사우스 파크의 셰프 담당 성우로 알려진 그분 맞다. "Theme from Shaft"는 디스코의 확립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영화 샤프트의 주제곡. 1971년 빌보드 핫 100 2주간 1위.[4] 이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디스코를 메인스트림에 선보인 노래는 휴즈 커퍼레이션의 "Rock the Boat"와 칼 더글라스의 "Kung Fu Fighting"이다. 여담으로 영화 칼리토에서 칼리토가 출소하고 나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원래는 대마초와 긴머리가 지배하던 세상이었는데 출소하고 보니 못 보던 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라는 시점이 바로 이 시기이다.[5] 30년 뒤에 디스코는 힙합 문화로 인해 재조명 된다.[6] 대도시에서 나이트클럽/음악다방을 중심으로 음악을 틀던 디제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사실상 당시 새로운 음악의 공급처 역할을 했다.[7] 사실 빠빠빠는 노래가 좋아서 뜬 것 보다는 컨셉이 특이해서 히트에 성공한 케이스이다.[8] 예로는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9] 물론 뉴웨이브에서 파생한 신스팝적 요소도 섞여있지만 마이클 잭슨 식의 흑인 팝 음악으로 많이 소화된 느낌이 든다, 마치 마이클 잭슨빌리 진을 듣는 것 같은... 사실 빌리 진도 이 장르가 영향을 준 곡이다.[10] 1971년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기록한 곡으로 극초창기의 디스코 곡이다.[11] 1976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12] 1978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 빌보드 핫 100 7주 연속 1위[13] 1980년 곡으로 마지막으로 큰 히트를 친 "정통 디스코" 곡이다. 미국 위키피디아 출처.[14] How Deep Is Your Love는 디스코 시기(1978년)에 나왔지만 잔잔한 발라드 사랑노래이며, Holiday는 1967년 노래인지라 디스코가 당연히 아니다.[15] 비 지스의 핫 100 1위 곡은 무려 9개에 달하는데 그 9개는 모두 70년대에 달성한 것이며, 하나를 제외하고는 죄다 디스코 시대인 70년대 중후반에 기록한 것이다. 흔히 디스코 시대를 논할 때 "백인들이 흑인들의 음악이었던 디스코를 훔쳐갔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백인"들 중 제일 대표적인 것이 이 비 지스이다.[16] 힙합 음악 자체가 디스코가 메인스트림에 올라서자, 새로운 하위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유행을 타며 생겨난 장르이다.[17] 디스코의 하위 장르인 Hi-NRG(하이에너지).[18] 미국 전역에서의 히트곡 순위를 매기는 차트 빌보드 핫 100에서는 1990년대 동안 컨템퍼러리 R&B 곡들이 강세였고, 힙합 음악의 경우는 90년대 초반에는 팝 랩 성향의 곡들이, 90년대 중반에는 G-funk로 대표되는 서부 힙합 곡들이, 90년대 말에는 퍼프 대디를 필두로 한 동부 힙합 곡들이 핫 100의 상위권을 기록했다.[19] 2000년 ~ 2008년까지의 빌보드 핫 100에서는 힙합 음악컨템퍼러리 R&B 곡들이 강세였다. 이 두 장르가 메인스트림에 위치했던 90년대보다도 인기가 더 높아졌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 목록을 보면 힙합과 R&B 곡들이 거의 대부분이다.[20] 빌보드 200에서는 80년대부터 마이클 잭슨Thriller,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바비 브라운Don't Be Cruel, 자넷 잭슨Janet Jackson's Rhythm Nation 1814 등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하는 히트 앨범들이 나왔고 1990년대 초반으로 가면 MC 해머Please Hammer, Don't Hurt 'Em을 시작으로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Music Box, 마이클 잭슨Dangerous, 휘트니 휴스턴The Bodyguard: Original Soundtrack Album, 자넷 잭슨janet., 스눕 독Doggystyle과 같은 거대한 성공을 거둔 앨범들을 포함해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하는 R&B, 힙합 앨범들이 많이 나왔다. 이후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힙합 앨범들이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하거나 상위권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21] 빌보드 선정 1990년대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는 1위 머라이어 캐리, 2위 자넷 잭슨, 3위 가스 브룩스, 4위 보이즈 투 멘, 5위 셀린 디온, 6위 마돈나, 7위 TLC, 8위 휘트니 휴스턴, 9위 마이클 볼튼, 10위 토니 브랙스턴으로 10명 중 6명이 R&B 아티스트였다. (1 ~ 2위, 4위, 7위 ~ 8위, 10위) 싱글/곡 차트 빌보드 핫 100과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의 차트 성적을 기준으로 선정되었다.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Billboard.html?id=9w0EAAAAMBAJ#v=onepage&q&f=false (YD-18 페이지)[22] 빌보드 선정 2000년대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는 1위 에미넴, 2위 어셔, 3위 넬리, 4위 비욘세, 5위 앨리샤 키스, 6위 50 센트, 7위 니클백, 8위 브리트니 스피어스, 9위 데스티니스 차일드, 10위 JAY-Z로 10명 중 8명이 힙합이나 R&B 아티스트였다. (1 ~ 6위, 9 ~ 10위) 앨범 차트 빌보드 200과 싱글/곡 차트 빌보드 핫 100에서의 차트 성적을 기준으로 선정되었다. https://www.billboard.com/music/music-news/artists-of-the-decade-266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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